남아 선호 사상

1. 개요
2. 원인
2.1. 인류학적 측면
2.2. 생물학적 측면
2.3. 사회학적 측면
3. 종교의 남아 선호 사상
4. 한국의 남아 선호 사상
5. 문제점
5.1. 여아낙태
5.2. 인구감소
5.3. 일명 고추 보기, 만지기, 사진 찍기
6. 관련 인물
6.1. 실존 인물
6.2. 가상 인물
7. 관련 문서

1. 개요

남아선호사상(,,,,,)은 동ㆍ서양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관습적으로 자녀로서 "딸보다 아들을 더욱 선호하는 풍조"를 말한다.

말 그대로 자녀로서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다.

인류가 문명을 세우기 이전부터 존재한 관념이며, 이런 남아 선호 사상은 대부분의 농경 민족의 역사에서 이집트와 같은 몇몇 극소수의 문명을 제외하고는 예외를 찾기 힘들다. 특히 가부장 문화와 대(代)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문화권에서 남아 선호 사상이 두드러지며 유교의 정점을 이룬 조선에선 '소박맞다'라는 개념이나 씨받이라는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극심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청년 세대의 초 저출산 사태, 그리고 이에 대한 여파로 2017년에는 출생률을 최초로 앞지른 노인 사망률을 보이고 있고 독거노인의 큰 증가 등 오히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을 궁지에 몰아 넣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과정은 소요시간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과민성 쇼크의 진행 양상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2. 원인

2.1. 인류학적 측면

전통적으로 인류학적 관점에서 남아 선호 사상은 원시의 수렵 기반 사회 구조에서 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또한 근대까지 남았거나 현대에도 남아있는 원시적인 수렵 생활을 유지하는 민족들의 경우에는 모계사회인 경우가 있다.[1] 물론 모계사회라고 여아 선호사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업혁명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데, 실질적으로 이 시점부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한 곳에 무리지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구 증가도 빠르게 일어났다.

농업혁명은 남녀 간의 직업을 고도로 분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 이전 시대에도 남자는 수렵을 주로 담당하고 여성은 채집이나 육아를 맡는 정도의 분업은 존재했다. 그러나 농경사회 들어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넓은 이동반경과 사회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일을 맡게 되어 그 지위가 더욱 증대되었다.[2] 쉽게 말해서, 남자들이 사회의 요직들을 차지하고 무기를 들고 외적을 지키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육아 및 생활에 집중하는 분업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2.2. 생물학적 측면

남아선호 관념이 시공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퍼진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물학적인 학설들도 존재한다. 우선 종족의 보전을 위해 자연적으로 성비가 조절된다는 설이 있다. 물리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다른데 이로 인해 손실율(?)이 높은 남성인구수를 채우기 위해 남성을 더 많이 낳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험심이 강해 사고를 자초하기도 쉽고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항산화력,면역력,각종 저항능력이 낮다 보니 질병에 따른 사망비율이 높고 환경적응에 따른 사망률 또한 높다.또한 1개밖에 없는 X염색체 때문에 유전병도 더 많이 걸리고 활발한 외적 활동(전쟁, 사냥) 등의 요인으로 타고난 신체 및 사회활등 특성상, 여성보다 빨리 죽는 일이 많다보니 성비가 안 맞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의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현대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을 훨씬 웃돈다.

특히 과거 남성의 수명이 짧아 소모율이 높던 아랍의 경우 일부다처제형사취수제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야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남성은 많아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지만 여성의 인구가 늘면 인구 증가와 직결된다. 인구 증가와 직결되는 것은 가임기 여성의 인구수이기 때문이다.[3] 가축의 경우만 보더라도 번식을 위해 많은 숫자의 암컷이 필요한 것에 비해 수컷은 씨를 뿌려줄 한, 두마리만 있으면 된다. 또한 Y염색체를 통해 남성 쪽이 자손에 대한 유전적인 동질성을 확인하기 쉬워서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인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조상이 갖고 있던 염색체들이 꾸준히 흩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오로지 부계로 유전되는 Y염색체만은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보존된다. 즉 최소한의 유전적 '정체성'을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형제들은 물론 사촌형제와 조카, 종질까지도 남자라면 모두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기에 확고한 동질성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혈연적 유대에 자연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4]

2.3. 사회학적 측면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 해 비료의 발명을 통해 인구가 폭증하였고 차츰 자녀계획도 다자녀에서 소자녀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남아 선호 사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자녀이기에 가뜩이나 남아를 선호하던 풍조에 더해지는 바람에 더욱 남성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이 동원된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대부분의 사회 구조는 남성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구 사회에서 남성의 위치는 여성보다 매우 높아졌으며 상류층의 사교계에선 여성은 남성들을 장식하기 위한 꽃으로 취급받곤 했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의 사회 활동과 여권 신장 운동으로 성적 분업의 격차가 상당히 개선된 현대에서도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 같은 단어로 여전히 큰 위력을 떨치고 있다. 예를 들어 CEO 같은 상위 직업은 'Old boy club'으로 불리는 나이 많은 남성들이 독식하다시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성적 격차는 남아에 대한 높은 기대와 여아에 대한 소홀한 대접으로 이어진다.

육아 차원에서의 관점으로 보자면, 딸이 아들에 비해 양육상 훨씬 조심스럽다는 문제점도 있다. 물론 성범죄는 남자든 여자든 당하고 나서 나타나는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똑같지만 자료상으로 따지면 성범죄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범죄가 수적으로 그 반대에 비해 완전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으로 많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딸 가진 부모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경이 많이 가며 마음을 놓기가 힘들다.

3. 종교의 남아 선호 사상

이슬람에서는 여성이 음욕을 자극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하여 히잡을 강제하는 등 여성의 색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연히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제약이 많고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가 높은 편이다. 간통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사형감이며 교리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여성 쪽이 음욕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지라 더 잔혹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5] 물론 이는 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과는 별개로 상당수가 그냥 원래부터 남성 중심 사회였으며, 또한 본래 꾸란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나름대로 여성을 배려하는 얘기[6]가 들어가 있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문제라면 이슬람권에서도 보수적이거나 후진적인 곳에선 이 조항들을 악용해 되려 여성 인권을 억압한다는 것.

이슬람 종교는 아니지만 유대교를 기반으로 한 하레디 역시 남존여비가 매우 심하다. 하레디/문제점 문서 참조.

그래도 이슬람권은 사정이 양호한 편이다. 힌두교권인 인도는 그 이슬람보다도 상황이 나빠서[7] 아예 여성의 가치를 재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취급하는 예가 다반사였다.(주방에서 타죽은 부인, 명예살인 참조.)[8]

불교의 경우 먼 옛날에는 비구니의 출가에 있어 제한사항을 두는 등[9] 여성을 알게 모르게 차별했다.

기독교는 예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목사사제의 지위는 남성이 독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여성 목사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보수적인 남성 목사가 기저귀 차는 여자가 무슨 목사 자격이 있느냐는 병크 같은 발언을 하기도 하고, 다른 종교가 남녀 차별이라며 까면서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어느 목사가 "이슬람에는 여자 이맘[10]이 없으니 남녀차별"이라고 한 개신교 신문에 깠다가, 다른 목사로부터 "한국의 개신교에 여자 목사가 있는지 좀 알아보고 그런 소리나 지껄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허나 현재 한국 개신교에는 여자 목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도 교파에 따라 다르며 보수 교단에 속하는 예수교장로회 합동이나 고신 교단의 경우에는 여성목사 안수 허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어 비난을 면치 못한다.

4. 한국의 남아 선호 사상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유교 전통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식의 종법에서 비롯된 문제다. 중국은 3000년 전부터 집안의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모두 아들, 특히 장남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데려와서라도 가계를 이어가게 했는데, 이 중국의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와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박히게 된 것. 이는 조선 건국자들의 사상 때문인데, 조선의 건국자들은 중국의 문화를 좋다고 여겼고 각종 중국의 문화를 조선에 대입시키면서 중국의 남자에게 돌아가는 종법까지 대입시킨 것.

이는 교조화되어 이른바 남존여비의 관념으로 굳어져버렸다. 그 결과, 고려까지만 해도 남녀균분상속이 존재했고 조선 초까지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으나[11],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림 세력이 득세하면서부터는 남아가 없을 경우 양아들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지독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12] 이는 중국의 계승 문화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융화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교(특히 성리학)에서 아들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유교에서는 위아래를 구분하는 서열을 중시하며 그 윗 서열에 남성과 어른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자, 맹자, 주자 등이 제시한 이런 기준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져 이의를 달 수 없었고, 반항하면 사문난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다.

이런 조선에서 여성들은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소박맞기까지 했다.[13] 반면, 남성의 축첩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칠거지악이라 하여 여성의 질투는 중죄로 다스렸다. [14] [15] 물론 보호장치[16] 가 있긴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저 모양이면 매일매일이 눈치밥이니 위자료 받고 이혼하거나 축첩을 묵인하는 대가를 받는 게 낫다. 이러한 분위기였으니 여자아이를 천대하는 풍조는 지극히 당연할 정도다.[17]

유교 사회에서 가문(家門)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제사라는 종교 의식을 통한 단합에서 소외당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문벌을 가진 가문은 누대에 걸친 족보와 조상을 자랑하였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가문을 결속시키고 사회적 세력을 쌓았다. 문중은 제사를 지낸다는 명분 하에 농경지나 야산 등의 토지를 가문의 이름으로 집중하여 그 자체가 재산을 보유하도록 되었다. 이러한 문중 자산은 '종손'이 승계하였으나, 동시에 종손은 제사를 지낸다는 전제 하에 문중 자산을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일종의 '공동 자산'으로 취급되었다. 문중의 재산은 다른 친척에게 원조를 주고 받을 중심점이 되었다. 과거 민법에서는 문중회의의 권한을 매우 크게 인정하였다.

그때까지도 친족 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에는 친족을 원조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로 여겨졌으나, 다른 형태의 복지는 현대 사회 이전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결국 가문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 복지 체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최소한의 복지 등 모든 것을 가문에 의지했으며, 가문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전근대 농업 경제 사회에서 이러한 단독 가구가 빈민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가문과 문중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생존과 사회 생활의 문제였다.

조선시대에 문중을 제외한 사적 결사체는 이런저런 명분 때문에 탄압받는 일이 많았다. 남자들이 모여서 뭐 해보려고 하면 당파나 역적 무리로 몰리기 쉽고, 불교는 조선시대에는 아예 전면에 나서지 않는 대신 그 세력을 인정받은 종교[18]이며, 상단은 애시당초 돈을 목적으로 이해관계를 갖고 모였기에 그 결속력이 매우 낮았으므로 조정에서 문제삼지 않았다. 결국 유일하게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 조직인 문중으로 관심이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가문 의식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그로 인해 남아 선호사상이 두드러진 것은 임진왜란의 탓이 크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말로는 성리학을 외치긴 했지만 심지어는 사대부들조차도 그렇게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던 터라... 우리가 잘 아는 신사임당의 경우만 하더라도 시부모를 떠나 아들 데리고 친정 가서 살았다. 조선 후기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전란 이후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세력 강화를 위해 가문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되었고, 여성들조차도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에 동조하면서 남아선호 사상이 극도로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이 망한 것도 불과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되어서,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유교적 관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남아선호가 매우 심한 집안의 경우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나 아들(손자)에게는 잘해주면서 딸(손녀)에게는 박대하는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은 비단 드라마동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19] 아들을 못 낳는다고 이혼을 요구하거나 아들을 잘 낳는다고 소문난 씨받이를 들인 사례가 무려 90년대 말에도 있었다. 사실상 현재의 남아 선호 사상이 그나마 잠잠해진 것은, 기껏해야 2000년도 들어서면서 부터였다.[20][21] 아직도… 딸 낳았다며 24년간 며느리 구박한 시어머니

기성세대는 다음 번에 아들을 낳는다는 기대로 딸 이름에 子, 男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22] 또한 딸을 그만 낳고 싶다는 의미로 딸 이름을 종순, 말순, 끝순, 막녀 등으로 지었다.

물론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무조건 성리학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곤란하다. 여권이 높다던 고려시대에도 중혼의 폐혜는 심각했고 # 이전부터 위에서 언급한 인류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이유 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은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다만 성리학의 교조화 이전에는 남아선호사상의 목적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교조화된 성리학이 단순한 생존 문제만이 아닌 사상 문제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범죄가 완전히 없다는 것도 아니라 성범죄 문제에 있어서는 뭐라고 해도 아들보다 딸이 더욱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아이들이 과거보다 훨씬 성적으로 개방성을 띠게 되면서 자녀의 탈선이나 성적인 피해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도 있다. 조두순이나 김수철같은 악질 성범죄자들이나 버닝썬 게이트, n번방 사건같은 조직적 성범죄가 나타나면서 딸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더더욱 고조시킨 것도 있다. [23] 다만 한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남녀 신생아 성비는 거의 자연상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관련 기사

현재 사위나 며느리를 볼 50~60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사회에서 성장해 왔고, 이제 결혼하여 자녀를 가질 20~30대들은 여자가 집안 일만 한다는 것은 사회 의식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굳이 아들이 딸보다 우선적으로 대우받아야 할 이유가 많이 사라진 셈이다.

더군다나 아들보다 딸이 더 부모에게 잘 대해주며 부모 부양 능력도 좋은 편이라는 인식이 늘어난 반면[24] , 아들은 결혼 비용 등의 문제로 크게 선호도가 줄어들었고, 일본 등에서는 결국 시집살이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 시가에서도 집을 해주지 않는 평등한 결혼문화가 자리잡았으므로 한국도 곧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언론에서 '딸바보' 이미지를 많이 밀었던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은 젊은 층 남성이 맞벌이를 선호하는 비중이 전에 비해 매우 커져가며 이젠 사실상 어느 성별이든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봐도 무방하다[25]

기사에 따르면 통계청 피셜로 2029년부터 20대, 50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진다고 한다.

5. 문제점

5.1. 여아낙태

자세한 내용은 성별 선택 낙태 문서 참조. 낙태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자, 낙태는 여성의 권리이며 여성해방의 상징이라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단골로 나오는 반박이다. 찬성론자는 여아 낙태는 그 기저에 구시대적인 남성우월주의가 깔려있다는 점이 문제이지 낙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편.

여담이지만 딸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낳아도 양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여자를 천시하여 낙태를 생각하던 사람이, 낳고 나서도 천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성차별 문제가 발생한다.

5.2. 인구감소

반대로 여성의 인구가 남성의 인구보다 많다면 인구감소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아를 낙태하게 되면서 남아의 인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인구수에 비해 많아진다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진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은데, 주로 40대 중~후반에 폐경기가 오게 되므로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26][27]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20~30대라는 소린데,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30대의 남성은 아이를 갖기 위해선 자신과 동시대에 태어난 또래의 여성 혹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결혼을 해야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가 된 남성의 인구가 4,000명(물론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이고 여성의 인구가 3,000명이라면? 약 1/4의 남성은 당연히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인구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돈(양육비+교육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선 한 가정당 한명씩만 낳는 추세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만 실제 상황에서는 여아낙태로 인한 성비붕괴와 무관하게 결혼대란이 터지는데, 원래 남성의 하위 10% 정도는 어느 시대나 도태되는 재원들이라 실질적인 성비는 100:125 같이 극단적인 수준인 인도의 몇몇 지역 정도가 아니면 맞는 편이고, 결혼 기피와 결혼 포기 현상이 극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혼 경력이 있는 이혼녀나 자식이 있지만 배우자는 없는 미혼모와 결혼하면 해결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가정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야 배우자와 좀 안 맞아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려는 경우가 많아서다.[28]

또한 이혼 후에는 대개 아이를 여자가 맡아 키우는데[29] 재혼하면 전남편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생부라고 해도 양육비 지급 의무가 소멸된다. [30] 또한 면접교섭 의무로 인해 아이들이 친아빠를 만나러 갈 때마다 집안에 불편한 기류가 흐를 수도 있고. 이런 이유로 인해, 이혼 경력 있고 자식 딸린 사람과 결혼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인면수심 새아빠(새아빠 쪽의 피 안 섞인 친척들, 의붓형제 포함)가 딸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워낙 많아서, 자식 중에 딸이 있는 엄마들에게 재혼을 꺼리게 한다.

5.3. 일명 고추 보기, 만지기, 사진 찍기

이건 정확히는 남자아이들이 보는 피해를 서술한 것이니 남아 선호 사상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남아 선호사상이 강한 곳에서는 일명 "남자아이의 고추 보기, 고추 만지기, 고추 사진 찍기" 등이 성추행이 아닌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인식된다. 한국에서 남아 선호 풍조가 강했던 1990년대까지는 이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용인되다보니, 미국 이민을 초창기 세대 역시 이런 풍습을 갖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미국 현지 남자 어린이가 귀엽다며 성기를 보거나 만지려고 하거나,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가 성추행범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경우도 있었다.[31] 또한 남자아이의 고추를 촬영한 사진도 아동 포르노로 취급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32] 북미권에서 아동 성범죄와 아동 포르노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비난과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은 남아선호사상이 나아진 편이나, 남자가 대를 이어야 한다고 떠드는 집이 현재까지도 많이 남아있다. 사실 이런 이유로 남아를 선호하는것은 아들바보와는 또 다른, 그냥 가부장적으로 남성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책임감 부여에 가깝다.[33] 2016년 무렵에 남자 신생아 고추 본뜨기란 것이 등장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본을 뜨는 작업 자체가 아기를 괴롭히는 행위이므로 그 자체로도 아동학대이지만 이걸 자랑스럽게 자식 얼굴 모자이크 처리도 안 하고 자기 블로그SNS에 올리는 정신 나간 부모도 있다. 굳이 남자 신생아 성기만 본을 떠서 보관할 이유가 없으니 가부장적 성 관념에 의한 성희롱, 아동학대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한국에서는 2010년대에도 노인들이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자아이의 고추를 만져야 쑥쑥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엄청나게 강한 편이다. 남자아이의 고추를 만지는 것은 물론 고추 사진을 찍기도 한다.

6. 관련 인물

6.1. 실존 인물

(가해자 - 피해자) 형태로 정리

  • (헨리 8세 - 아라곤의 캐서린, 앤 불린) -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첫째 왕비 캐서린은 폐위되었고, 둘째 왕비인 앤 불린은 참수했다[34]. 반대로 아들(에드워드 6세)을 낳아주었던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왕비였지만, 문제는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은 지 며칠 만에 산후병으로 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즉위한 에드워드 6세도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던 탓에 즉위하자마자 몇년 만에 요절하였고, 후임자로는 캐서린의 딸 메리 1세와 앤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각각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 (조혜련 모친 - 조혜련) - EBS 2016.3.15&22일 방영분 '리얼극장' 참조. 제목부터가 "행복-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딸, 조혜련과 어머니"다.
  • (임지호의 부친 - 임지호) - 전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해 씨받이를 들여 임지호를 낳았다고 한다.
  • (홍석천의 부친 - 홍석천의 형) - 홍석천을 낳기 전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해(당시 딸만 셋이었다) 씨받이를 들여 홍석천의 친형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석천이 태어난 후 다시 생모 슬하에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홍석천은 동성애자다.

6.2. 가상 인물

(작품 - 가해자 - 피해자) 형태로 정리, 작품명 가나다순

7. 관련 문서


  1. [1] 모계사회라고 해도 점박이하이에나처럼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식의 사회는 아니며, 일반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가지는 지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원시모계사회에서 씨족 내 가장 큰 발언력을 지니는 사람은 어머니의 남자형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원시수렵공동체 중에는 예외적으로 남미의 야노마모족처럼 여성을 폭력의 대상,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 이상으로는 대하지 않는 경우 또한 있는 편으로 이런 원시사회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인류 초창기에는 모계사회가 있었다는 이론은 폐기되었다.
  2. [2] 원시 수렵 민족에선 남녀의 하루 동안의 이동반경은 별 차이 없다.
  3. [3]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50만 명씩 있다고 치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명을 조금 넘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남자가 60만이고 여자가 40만이라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5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물론 이건 태어난 자녀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4. [4] 물론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도 있지만 이것은 염색체가 아니므로 형질 발현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저 Y형 유전자도 세포 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여 좀 다르게 된다. 하지만 친족 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건 사실이며 수십 세대 내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돌연변이로 특질을 갖으면 더더욱 해당 씨족의 개성이 확립된다.
  5. [5] 그것 이외에 꾸란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다 보니 간통의 경우 증인으로 4명이 필요한데, 여성은 절반으로 간주하여 여성들로 증인을 채우기가 힘들어서도 한 이유다.
  6. [6] 예를 들자면 남자는 아내를 3명까지 두어도 된다는 말은 원래 그 이전에는 제한없이 수십 명이고 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많아도 4명까지만 두라고 제한을 걸었다.
  7. [7] 그래도 이슬람에서는 명목상 남녀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다만 그 평등의 잣대가 우리 식과는 달라서 문제로 인식된다.
  8. [8] 한 가지 예로 들어보자면 인도에서는 결혼할 때 신부 측이 신랑 측에 거액의 돈을 보내는데, 얼마나 많으냐면 인도 노동자 8년치 임금에 해당되며, 이걸 마련하려고 신부 측에서는 집도 파는 일이 많고 이 돈이 없어 죽은 여성만 1년에 8천명이고 많은 여아들이 생매장당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태어나기 전에 낙태당하는 일도 잦다.
  9. [9] 다만, 이는 당시 인도에서 여성 수행자의 처지란 것이 매우 위태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물론, 궁극적으론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10. [10] 다만 정통 이슬람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성직자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이 '이맘'을 맡을 수 있으며 여성 이맘도 존재한다.
  11. [11] 조선 초기에 제도를 정비하면서 법적으로는 여권이 더욱 상승한 상태였다.
  12. [12] 실제로 가문에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경우 차남의 아들이 그대로 승계해 나갔다. 장남, 차남 모두 무후일 때는 삼남의 아들이 승계해 나간 경우도 존재하였다. 근래들어 굳이 양자를 잘 하지 않는 추세다.
  13. [13] 남아선호사상에 모체가 자녀의 성별을 결정한다는 믿음까지 겹쳤으니 말 다 했다. 사실자녀의 성별은 정자가 결정한다. 실제로 이 사실이 알려진 뒤로 아들 못 낳는다고 소박하는 일이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경우는 없어졌다.
  14. [14] 추가로 아들을 못 낳는것, 병에 걸려서 아들을 못 낳는것도 칠거지악에 들어갔다.
  15. [15] 다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진짜 중죄로 다뤄지는 경우는 정말 심하게 하거나 질투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했다. 대표적인 예로 성종의 2번째 왕비였던 폐비 윤씨의 경우에는 왕비가 되고 8개월만에 폐비 논의가 있었는데, 이때 임사홍이 "예로부터 질투를 하지 않은 왕비들이 없으니, 부디 폐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해서 1차 폐비 소동을 종식시켰다. 따지고 보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데 질투하는 건 당연하니, 어찌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도 이 점은 유의한 듯. 만일 남자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귀는 여친이 다른 남자랑 몰래 사귄다고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오히려 너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하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문제시되기도 했는데 당연하지만 질투도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거다. 그런데 남편이 첩을 두든 말든 예스맨처럼 굴면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았다. 사씨남정기의 사정옥 역시도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보이겠지만 당대 유학자들조차 "아오 뭐 이렇게 답답한 여자가 다 있어!" 라고 반응했다고(...)
  16. [16] 삼불거라 해서 갈 데가 없거나, 부모상을 같이 치렀거나, 가난할 때 같이 고생하다가 뒤에 부귀하게 된 때는 내칠 수 없었다. 물론 이딴 거 다 무시하고 내쳐도 여자 쪽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집에 여자가 엊혀사는 모양새였으니..
  17. [17] 다만 일반 평민들 가정에서는 몰라도 양반 가문에서는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버리는 경우는 없었고 키우기는 다 키웠다. 물론 평민들 가정에서 버리는 건 여자이기 때문이기보다는 입이 많아져서가 맞겠지만.
  18. [18]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은 없어졌지만 무시는 여전했다.
  19. [19] 레진코믹스의 단지(웹툰)도 바로 이런 끔찍한 차별을 받은 여자(작가 본인)의 이야기이다.
  20. [20] 참고로 장녀는 그래도 넘어가졌는데, '큰딸은 살림 밑천'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성차별을 볼 수 있는 게, 첫째딸로 태어나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부터 공부 대신 일을 하여 돈을 벌어서 부모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음을 이런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같은 첫째라도 아들로 태어났으면 이런 일은 매우 드물었고, 전술했듯 모든 지원을 몰빵받아 장남 혼자서만 상급학교에 보내지는 일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일은 적어도 1980년 이전 얘기다.
  21. [21] 과거 MBC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타임머신에서 딸만 셋을 낳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세쌍둥이 손자들이 놀러오자 손녀가 갖고 있던 크레파스를 뺏어서(!) 손자에게 주는 막장 행각을 보여준다. 그 후 며느리는 기어이 아들을 낳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스토리.
  22. [22] 다만 여자 이름에 子를 붙이는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식 이름을 붙이게 강제한 것(창씨개명)이 남은 탓이 크다.
  23. [23]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은 치안유지가 매우 우수하고 범죄율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낮아서 매우 안전하다. 단적인 예로, 밤 10시 이후 외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국가는 미국같은 선진국도 있다! 특히 미국은 총기 소지가 너무 자유로워서 그렇다.
  24. [24]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은 같은 환경에서 커왔을 때 여성이 우위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손주는 아들보단 딸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가장 흔한 레파토리는 아들은 아무리 열심히 키워도 장가가면 남의 집 아들이라는 것(...)
  25. [25] 실제로 세계 어느 곳이든 천연자원이 부족하거나 없으며, 나름대로 육체적인 능력 외의 산업여건이 존재하고 경제여건이 조금 빡센, 이 조건을 모두 가진 지역의 남녀의 지위가 평등한 경우가 많다. 여성도 돈을 죽도록 벌어야 하니까(...)
  26. [26] 남성쪽은 걱정할 것이 없는게 60대에 또 자식을 얻은 사례는 드문드문 나오는 정도다. 아니, 나이 관계 없이 성관계가 가능하거나, 그게 안 되어도 정자만 얻을수 있다면 아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자가 60대에 애 낳은 사례는 진짜 극극소수다.(없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거와 다름 없다는 말)
  27. [27] 만약 가능은 하다 해도, 그 나이대에는 아이를 키울 체력이나 성인까지 키워낼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성인으로 키워낼 때까지 부모가 살아있을지도 불분명하고...
  28. [28] 이혼가정 자녀들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무신경한 말과 차별로 인해 살면서 상처받는 일이 많다. 그나마 취업은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투라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결혼시장에서 이혼가정 자녀의 결혼은 쉽지 않다. 특히 남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데, '편모가정에서 자란 남성은 양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산 홀시어머니는 아들한테 집착해서 며느리한테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더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사실, 단순한 편견이 아니다. 이는 가정 내 권력과 관계가 있다. 시집살이 항목 참조.) 게다가 이혼한 부부가 각각 재혼까지 했다면 시월드가 두 배가 된다.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고서야 자기 탓으로 자식에게 이런 페널티를 주고 싶은 부모가 몇이나 될까?
  29. [29]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전 배우자가 아이를 맡아 키우고 있는 자신에게 양육비를 안 준다며 상담하는 사람들의 86%가 여성이다. 물론 남성이 아이를 키우면 여성이 양육비를 보내주지만, 여성이 안 준다며 상담하는 경우는 단 14%뿐이라고. 19년 현재 법 개정 추진 중.
  30. [30] 물론 생부가 착한 사람이라면 친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며 굳이 양육비를 보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 배우자가 재혼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친자식 양육비 안 주려고 온갖 추태와 발악을 하며 패악을 부리는(모든 재산 명의를 가족 것으로 다 바꿔놓기, 연락처 바꾸고 집까지 이사해 잠적하기, 직장까지 그만둬버리기 등) 배드 파더스들 역시 엄청나게 많다.
  31. [31] 일부 이민자는 미국에서 이런 짓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후, 한국에서는 아이의 중요부위를 만지는 것이 아이한테는 친근감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관습이라며 우직하게 주장하기도 해 신문에 나는 등 파문이 생기기도 했다.
  32. [32] 이민 간 한국 할아버지가 손자를 발가벗겨 앉혀놓고(당연히 고추가 다 보이는 상태.) 첫돌 기념사진을 찍어 큼직하게 현상해 자기집 거실에 걸어놨는데, 이웃집 사람이 왔다가 그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는 온동네에 변태 노인으로 소문났고(...) 나중에 소문을 들은 한국인 목사가 할아버지에게 귀띔을 해줘서 사진을 떼어냈다고 한다.
  33. [33] 당장 이런 사상을 가진 부모라면 남동생이 누나랑 싸우면 남동생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더 어린 남동생에게만 남자라고 시키며 아들에게 유난히 엄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젊은 남성들이 남성은 특권층이라는 전통적 성 인식에 말도 안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결정적인 환경이 되었다.
  34. [34] 사실 이 쪽은 아들을 못 낳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저거 외에도 불륜(간통)과 근친상간, 반역의 죄도 있었다.
  35. [35] 일본 황실 최고령 출산이었다. 키코 비는 1966년생, 히사히토 친왕은 2006년생. 일본 황실 최초의 제왕절개이기도 하다.
  36. [36] 사실 일본 황실이 어째서인지 아들이 너무나도 귀해져서,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나기 전까지 41년 동안이나 왕자가 태어나지 않고 공주만 줄줄이 9명이 태어났다. (1969년 구로다 사야코, 1981년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공주, 1983년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 1986년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 1988년 센게 노리코, 1990년 모리야 아야코, 1991년 아키시노노미야 마코 공주, 1994년 아키시노노미야 카코 공주, 2001년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 문제는 덴노 계승과 관련된 황실전범은 여자 계승, 여계 계승 모두 부정하는지라, 일본 황실은 어떻게든 남자아이 하나는 얻어야 간당간당하게나마 대를 이을 수 있는 처지였다. 문제는 그 불똥이,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히 밝혀진 시대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인 일본에서 엉뚱하게 며느리 탓으로 돌려진다는 것.
  37. [37] 왕실만큼 남아선호가 여전하나 일반 가정에서조차도 남아선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사상으로 남존여비가 존재하여 여성들은 수동적 존재이자 미천한 존재로 취급한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뿌리깊다.
  38. [38] 여자다. 이름부터 학대 수준.
  39. [39] 그냥 다른 거 다 빼고 딸이라고 대놓고 차별대우 받았다. 결국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지만 부모의 보호 없이 바로 시작하는 독립생활이라는 게 어떨지는 뻔한 이야기. 인연 끊은 지 5년째고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40. [40] 서인숙의 시어머니
  41. [41] 그녀도 딸부잣집 막내였지만 강도의 습격으로 언니들을 모두 잃고 오빠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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