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연도구분

1995년

1996년

1997년

연대구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96년

대한민국

78년

단기

4329년

불기

2540년

황기

2556년

이슬람력

1417년 ~ 1418년

간지

을해년 ~ 병자

주체

85년

민국

85년

일본

헤이세이 8년

히브리력

5756년 ~ 5757년

에티오피아

1988년 ~ 1989년

1. 개요
2. 주요 이슈
2.1. 실종된 개혁의지, 1996년 문민정부
2.3. 여의도 지하철 시대의 개막
2.4. 정보인권 침해의 해, 1996년
2.5.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해체, 그리고 서기회의 정신 계승
2.6. 하루아침에 난리가 난 말레이시아
3. 사건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
5.1.2. 2월
5.1.3. 3월
5.1.4. 4월
5.1.5. 5월
5.1.6. 6월
5.1.7. 7월
5.1.8. 8월
5.1.9. 9월
5.1.10. 10월
5.1.11. 11월
5.1.12. 12월
5.1.13. 일자 불명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가수
6.1.1. 한국
6.1.2. 해외
6.2. 만화계
6.3. 스포츠
6.4. 배우
6.5. 예능인
7. 은퇴
7.1. 가수
7.2. 스포츠
8. 히트작
8.1. 드라마
8.2. 영화
8.3. 가요
8.4. 개그 코너
8.5. 애니메이션
8.6. 베스트셀러
8.7. 히트상품
9. 유행어
10. 최초
10.1. 방영 프로그램
10.2. 인터넷 웹사이트
11. 관련 문헌
12. 달력

1. 개요

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문민정부에서 그나마 좋았던 해[1] 그리고 1990년대 들어 비틀대던 학생운동권이 연세대 사태로 KO펀치를 맞아 몰락 테크를 타기 시작했다. 종신 정년제, 연공 서열제가 유지되던 당초의 관행과는 달리 기업들이 능력별 진급제를 도입하고 명예 퇴직을 권유하는 일이 많아져 '명퇴 증후군', '실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나는 등 다가올 경제 위기가 예고되기도 했다.

한국의 마지막 벨 에포크를 상징하는 해이며, 초대형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넘어갔으나, 정치권에선 15대 총선 이후 문민정부의 보수회귀 기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등으로 지지도가 하락하여 레임덕의 가속화와 경제 면에선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로 200억 달러 돌파하면서 외채가 1천억 불을 넘는 등 경제에 잇달아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에 크게 터지고 말았다.

Windows 95가 설치된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이다.[2] 오오 찬양하라! 또한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4일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

1.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가 협력하는 열린사회

"정보를 가진 자"와 "정보를 못 가진 자"의 격차를 해소, 모든 국민들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차별없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접근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2. 인간중심의 가치를 창조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사회

인간이 자연을 보다 지혜롭게 이용하고 자연파괴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한다.

3. 전통문화가 발전적으로 전파되고 계승되는 문화사회

정보사회에서는 문화의 교류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세계 각국의 새로운 정보시스템들은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므로 우리도 정보화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정보자원으로 적극 개발,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4. 투명하고 공정한 정보민주주의 사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기에 제공하는 것이 정보민주주의 구현의 실체다. 정보민주주의에서는 열려 있는 전자공간을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신념의 자유 등이 보다 확실히 보장될 수 있다.

5. 인류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아시아의 정보중심국가

APII를 제창, 실현시킨 데 이어 앞으로도 아시아지역의 이해증진과 공동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제협력을 추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진보진영 입장에서 1996년은 '통신사상 암흑의 해'라 불릴 정도로 공권력에 의한 사이버 공간 단속이 가장 심했다. 이는 아래에 후술.

IT업계에선 혁신이라 불릴 만한 해인데, 최초의 한국산 온라인 그래픽 게임바람의 나라가 1996년 4월 5일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여 우리 온라인게임 시대를 개막했다.[3] 그리고 '무궁화위성 2호' 발사로 KBS가 위성방송 채널 2개를 국내 최초로 개국했고, 국내 이동전화업계에선 2세대 디지털방식 서비스 'CDMA' 시대가 개막되었다.

종전 국민학교란 이름이 공식적으로 초등학교로 바뀐 첫 해이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교육 학사일정이 시작되는 3월 1일부터이다. 간혹 83년생들이 초등학교 졸업했다고 말하도 하는데, 1996년 3월을 기준으로 바뀐 것이기에 1996년 2월에 졸업한 83년생들은 국민학교를 졸업한게 맞다.

2002년 월드컵이 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일본에서 공동개최를 하기로 확정되었다(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 당시 양국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경쟁으로 열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다. 같은 시기 하시모토 류타로 신임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3년만에 재집권함으로서 일본의 우경화가 점차 급증되어 1995년에 이어 독도 영유권 및 일본 정치인의 망언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 격랑을 맞았던 때이기도 했고 남북관계 역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더 악화되어 대북경협까지 동결되었다.

인디펜던스 데이 등의 개봉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에서만 역대 한 해 흥행 수입과 관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하여 94년의 기록을 경신했으며, 한국에선 영화사전심의제 철폐와 <은행나무 침대> 흥행, 영화진흥법 제정, 대기업의 영화산업 전폭지원 확산 등 으로 우리 영화사상 귀중한 해가 되었다. 다시 한 번, 95년 영화 지못미. 학계에선 미국 미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저서 <문명의 충돌>을 발표해 냉전시대 이념전쟁 대신 앞으로 '종교/문명권 간 충돌'을 예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포츠계에선 프로야구팀 현대 유니콘스데뷔 첫 해에 30-30 클럽을 달성한 괴물 신인 박재홍과 쟁쟁한 투수진을 앞세워 포스트시즌에서 한화 이글스쌍방울 레이더스를 잇따라 물리치며[4]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삼청태 때의 한을 풀었고, 농구대잔치에선 문경은, 이상민 등 최강전력이 복무 중이던 상무 농구단이 결승전까지 가는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MLB에선 뉴욕 양키스가 WS에서 18년 만에 다시 우승하여 명가의 부활을 알렸다. 또 NBA 인기팀 시카고 불스가 정규시즌에서 72승을 달성해 1972년 LA레이커스의 69승을 뛰어넘었다. 또 NFL의 명문팀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이 해 5번째로 슈퍼볼에 우승했는데 이 해를 마지막으로 2019년 현재까지 슈퍼볼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이 해 태어난 사람은 교육적인 고통이 극심했던 세대가 되었다. 중학교 때는 수학(산포도 등이 추가)과 영어가 개정되었고 고2까지 집중이수제를 했고 폐지되었을 땐 이미 고3(...). 아이고, 의미 없다. 그리고 고3 때는 스포츠 행사가 껴있던데다가[5] 역사상 최악의 물수능이자 막장 수능를 치른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이 세대까지는 극심한 입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 해 초등학교 입학한 세대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경제, 교육, 취업, 그리고 남자는 국방면에서 최악이라... 이 해는 태어날 때부터 최악이었다. 수능이 연기된 해도 만만치 않다.

한편 UN은 이 해를 '빈곤퇴치의 해'로 지정했고, 문화체육부에서는 이 해를 문학의 해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그 해에 박노해, 황석영, 김하기, 진관 스님 등 양심있는 작가들이 이미 구속되었거나 새로 구속되었기 때문에 재야 계열에선 '문학 탄압의 해'로 꼽히기도 했다. 언론계에선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기준으로 '한국신문 100주년'을 성대히 맞이했고, 국내 최고령 대기업 두산그룹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1996년 올해의 한자는 '食(먹을 식)'이었다.

어째 언급이 잘 안 됐는데 이 해는 병자년이였다. 1976년 병진년보다도 더 묻힌 감이 있다.

경기도 파주군, 용인군이천군, 충청남도 논산군, 경상남도 양산군이 시로 승격된 해이기도 하다. 또한 용인에 위치한 자연농원도 이때 에버랜드로 개명되었으며 캐리비안 베이도 개장했다.

2. 주요 이슈

2.1. 실종된 개혁의지, 1996년 문민정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보수회귀로 차기 재집권의 기회를 마련코자 했다. 그는 지방선거가 끝난 3주일 뒤 7월 20일에 민자당 당무위원과 상근 당직 초청 조찬에서 "1996년에 있을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선 후보자 공천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당을 직접 장악해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김영삼은 이를 실행해 당명도 12월 6일부터 '신한국당'으로 바꾸었고, 마침내 1996년 4월 11일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과반수에 미달했음에도 승리를 거머쥐었으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처럼 '안정 위에 중단', '중단 위에 개혁'을 외치던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국민들의 불신 속에서 이미 물 건너갔고, 대신 김영삼 정부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그해 3월 연세대생 노수석 사망사건, 6월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강제연행 사건, 11월 27일 평택 에바다농아원 농성 강제진압, 12월 안기부법 및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또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은 기습적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해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날 본회의에는 신한국당 157명 중 외유중인 김윤환 고문과 야당의 감시를 받고 있던 김수한 국회의장을 뺀 155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에 야당은 반발해 국회 농성에 들어갔으며, 민주노총도 다음날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김영삼 정부 몰락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2.2. 전-노 심판

1996년 8월 6일, 서울지검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12월 16일, 전두환노태우는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렇지만 항소심 선고에서 눈에 띄는 건 6.29 선언 이전의 정부를 '내란에 의한 정부'라 규정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 1부는 이날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전두환에게 군 형법상 반란죄와 내란죄,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노태우에 대해서도 같은 죄목으로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또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임 중 기업체 등으로부터 뇌물로 거둬들인 2,205억 원과 2,628억 원을 각각 추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황영시, 허화평, 이학봉은 반란 중요임무 종사죄 등을 적용해 각각 징역 8년을, 그리고 정호용, 이희성, 주영복은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허삼수, 유학성 징역 6년, 최세창 징역 5년, 그리고 차규헌, 장세동, 신윤희, 박종규는 징역 3년 6월이 선고되는 등 대부분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한편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박준병은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15명 가운데 전두환에 대해서는 사형에서 무기로, 노태우에 대해서도 징역 22년 6월에서 17년으로 감형하는 등 형을 낮췄지만, 주영복에 대해서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7 내란을 통해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 힘으로 정권을 탈취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6.29 선언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낮춘다'고 밝혔다.[6] 항소심 재판부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1심 판결은 물론, 검찰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인정했으나 두 사람에 대한 양형에는 관대했다. 권성 재판장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하극상의 패역으로 군의 기강을 파괴했다고 전두환을 질타했다. 5.17과 관련해서는 내란을 일으켜 힘으로 권력을 탈취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군사통치의 종식을 기대하는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판결했다. 노태우에 대해서는 분수에 맞지 않게 시종 전두환의 뒤를 따라 영화를 누렸다고 비판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이처럼 두 사람의 죄를 따지는데 엄격했다. 쟁점이었던 국헌문란의 폭동 종료시점을 1987년 6.29 선언으로 판단해 5공의 정통성을 사법적 판단으로 부인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양형에는 관대함을 보였다. 권력의 상실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로부터 탈피하는 일은 쿠데타를 응징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전두환의 형을 줄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노태우에 대한 형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선고는 실무적인 사법적 판단보다는 고도의 정치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논란을 빚었다.[7]

당시 전두환 노태우의 감형에 대해 mbc와 갤럽이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를 보면

전두환.노태우 감형 판결과 사면 여부 관련 여론조사 결과

- 전두환씨 감형(551명 전화조사)

부적절했다: 47.9%, 적절했다: 44%, 모르겠다: 8.0%

- 6.29가 감형요인?

잘못한일: 50.1%, 잘한일: 32.9%, 모르겠다: 17.0%

- 노태우씨 감형

부적절했다: 57.4%, 적절했다: 32.8%, 모르겠다: 9.8%

- 6.29가 내란종료 시점

옳다: 56.4%, 옳지 못하다: 26.8%, 모르겠다: 16.7%

- 전두환.노태우씨 사면 가능성

사면될 것: 42.2%, 사면 안될것: 40.5%, 모르겠다: 17.3%

- 항소심에 대한 시각

정치적 재판: 65.5%, 그렇지 않다: 20.9%, 모르겠다: 13.6%

- 실형받은 재벌도 감형

부적절했다: 48.8%, 적절했다: 40.4%

문화방송한국갤럽이 당시 전국의 성인남녀 551명을 전화 여론 조사한 결과 전두환 씨 감형에 대해 적절했다는 대답이 44%, 부적절하다는 대답이 47.9%로 찬반이 엇갈렸다. 전 씨가 6.29 선언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실일 경우 감형이 잘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32.9%만이 잘한 일이라고 답 해 6.29가 감형요인이라고는 보지 않는 경향이 우세했다. 노태우 씨 감형에 대해서는 32.8%만이 적절하다고 답했고, 부적절하다는 답변은 57.4%로 노 씨에 대한 국민정서가 전 씨에 비해 더 비판적이었다. 또 6.29를 내란종료 시점으로 규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56.4%로 우세했다. 전·노 두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 임기 안에 사면될 것이라 는 전망은 42.2%,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40.5%로 엇비슷했다. 아울러 이번 항소심 재판이 현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적 재판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65.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재벌총수들을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국민들이 다소 많았다.[8]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듬해인 1997년 대선에서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의 3후보의 뜻에 따라 김영삼대통령과의 협의로 1997년 12월 22일 사면되었다.[9] 반면 5공 정권 당시 간첩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함주명, 김성만 등 장기복역 시국사범(양심수)들은 거의 석방이 안 되어 희비가 엇갈렸다.[10]

2.3. 여의도 지하철 시대의 개막

그 동안 1~4호선 노선에서 제외되었던 서울 여의도 지역이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부분 개통으로 본격적인 여의도 지하철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 강서권 지역도 지하철 시대가 개막됨으로서 기존 지하철 노선에서 제외되었던 서울 여의도와 강서권 지역이 역세권 지역에 포함되어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시대가 개막되어 여의도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2.4. 정보인권 침해의 해, 1996년

당시 진보/재야계열을 비롯한 일반 네티즌 입장에서 1996년은 '통신사상 암흑의 해'라 불릴 정도로 공권력에 의한 사이버 공간 단속이 가장 심했다.

그해 4월에는 15대 총선을 즈음해 검찰이 PC통신 게시판에서 특정 후보들을 비방한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을 비롯해 8월에는 나우누리에 있던 한총련 CUG를 경찰이 나우콤 본사를 압수수색해 강제로 폐쇄했고, 9월에는 경찰이 강릉 무장공비 사건 조작설을 PC통신 게시판에 유포한 유저들에 대해 수사를 착수하여[11] 10월에는 <그들이 무장공비인가>를 올린 윤모씨를 구속한 바 있었다. 이 사태로 인해 PC통신 상에서 시사와 관련된 게시글 수가 감소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이듬해에 열린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의 엄중 적용 당시에도 발생했다.

이러한 공권력의 사이버공간 검열 움직임에 네티즌들은 PC통신 게시판에 같은 시기에 미국의 네티즌들이 통신품위법에 항의하기 위한 '블루리본운동'을 본따 '하얀리본(▷◁)'을 달아 끈질기게 항의했다. 어쩌면 이는 요즘 말하는 '온라인 시위'의 시초격이기도 하다.

2.5.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해체, 그리고 서기회의 정신 계승

이 해 서태지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한 해이기도 하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식 해체를 선언하였던 해여서 서태지 팬들과 젊은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며 기성문화를 거부하고 개성있고 파격적인 공세로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는 그 당시만 했어도 충격이자 이변적인 일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관련 기자회견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이끌어왔고 가요계를 이끌어왔던 그들이었기에 해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 해체에 슬픔을 느끼는 팬들도 많았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이후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H.O.T.라는 신성 아이돌 그룹이 이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가요계를 주름잡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세대 아이돌들의 전성기가 개막되었다.

세간에서는 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을 잠정적인 아이돌 그룹이라고도 보고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이전인 80년대까지는 아이돌 그룹도 없고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파격적인 그룹도 없었던데다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90년대 후반에서 1세대 아이돌 그룹이 탄생한 것을 봐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선조가 아닌가하는 추측도 내놨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아이돌 그룹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짐작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태지보이스는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자유와 도전정신은 죽지 않았다. 이들이 은퇴한 지 두어 달 뒤인 1996년 3월,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이하 서기회)'가 발족되었다. 전국적으로 13,000여 명을 둔 이 단체의 회장인 강민경은 서기회가 팬클럽이 아닌 서태지의 뜻을 이어받은 문화단체라 하여 "맹목적인 열광이 아닙니다. 서기회 회원들은 모두 '태지보이스 팬답게 행동하자'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들의 활동은 1996~1997년 겨울을 강타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정국 때 PC통신상의 활동에서 드러났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이라는 믿음으로 블랙리본 내걸기를 제안했고, 사회문제란인 '시대유감'과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는가'란 토론방에서 10~20대의 젊은 회원들이 총파업 지지글을 올리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같은 시기 나우누리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도 "태지보이스가 그렇게 부르짖던 자유와 도전은 모두 민주주의 아래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에 우리는 비민주적이고 국민을 기만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을 개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바입니다"라고 하여 '근조 민주주의'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내걸었다.

여담으로, 같은 해 7월 30일에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도 당사 총재실에서 서기회가 준비한 영상 콘서트 축하 메시지를 녹화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좋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신세대의 대표적 존재로 보며 소중히 생각한다"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했지만 예술인이란 대중의 사람으로 대중이 원하면 하루 속히 복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 <발해를 꿈꾸며>에서 "언젠가 우리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란 가사를 외우며 "이런 가사는 정말 감동적"이라 평했다.

2.6. 하루아침에 난리가 난 말레이시아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국민 가수인 시티 누르할리자정규 1집을 내고 데뷔한 시기이다. 이 때 말레이시아 가요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지아나 제인이나 파우지아흐 라티프를 비롯한 기존의 인기 가수들에게 한방의 K.O를 날렸고, 시티는 이후 현재까지 말레이시아 가요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쥔 독재자가 되었다. 한국은 가수들의 자살 및 그룹 해체, 미국은 투팍의 암살 등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판에 말레이시아에서는 되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3. 사건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

로미오의 멤버

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

5.1.2. 2월

5.1.3. 3월

5.1.4. 4월

5.1.5. 5월

5.1.6. 6월

5.1.7. 7월

5.1.8. 8월

5.1.9. 9월

5.1.10. 10월

5.1.11. 11월

5.1.12. 12월

5.1.13. 일자 불명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가수

6.1.1. 한국

6.1.2. 해외

6.2. 만화계

6.3. 스포츠

6.4. 배우

6.5. 예능인

7. 은퇴

7.1. 가수

7.2. 스포츠

8. 히트작

8.1. 드라마

8.2. 영화

8.3. 가요

8.4. 개그 코너

8.5. 애니메이션

8.6. 베스트셀러

8.7. 히트상품

9. 유행어

10. 최초

10.1. 방영 프로그램

10.2. 인터넷 웹사이트

11. 관련 문헌

12.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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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초대형 사고 퍼레이드{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이상 1993년), 성수대교 붕괴사고(1994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이상 1995년)}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나라가 부도났다. 그렇다고 사고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한국 최대 규모 산불이었던 '고성 산불'과 신촌 롤링스톤즈 카페 화재사고 같은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터지기도 했다.
  2. [2] Windows 95 한국 정발일은 1995년 11월 28일. 1995년까지는 PC를 쓰려면 MS-DOS가 필수였다. 물론 1999년Windows 98 SE가 설치된 국민PC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과 맞물려 대중화한 것에 비하면 느린 보급 속도이긴 했지만.. 사실 PC 자체는 1993년에 한글 윈도우 3.1이 설치된 PC와 PC통신의 대중화가 맞물려 보급되었고, 보급 속도는 Windows 3.1 시절보단 그나마 더 빠르긴 했다.
  3. [3] 출처: 대한민국 IT사 100(김중태 著)
  4. [4] 쌍방울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리버스 스윕을 달성했다.
  5. [5] 그런데 그 스포츠 행사들(소치 쇼크,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사건사고 등)이 전체적으로 망했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면 큰 타격은 없다.
  6. [6]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무기와 17년으로 감형, mbc 뉴스
  7. [7] 항소심 재판부,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벌 관대, mbc뉴스
  8. [8] 전두환 노태우 사면 여론조사 mbc뉴스
  9. [9] 뒤바뀐 영욕 18년의 드라마, 동아일보
  10. [10] 상기한 양심수인 함주명과 김성만의 경우는 그 다음해인 1998년에 사면으로 풀려난다.
  11. [11] 디시인사이드 창립자로 유명한 김유식도 이때 PC통신에 강릉 공비침투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12. [12] 이는 북한 유훈통치 기간 동안 있었던 특이한 제도였다.
  13. [13] 작중 시점인 2011년에서는 대위로 진급했다.
  14. [스포일러] 14.1 후속작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의 부하가 차에 자카에프를 태우고 사람 몇 명 치면서 급하게 운전한 덕분에 자카에프가 살 수 있었고, 이 결과 자카에프의 신임을 얻었다. 이 장면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리마스터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를 쏴 죽이면 "미래가 바뀌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면서 시간의 모순이라는 도전과제를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부하를 쏴 죽이면 아군 사살로 간주되어 "친구를 죽였습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면서 미션 실패가 된다.
  15. [15]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정확한 생년월일이 밝혀진 인물이다!
  16. [16] 신짱아일 경우 최초 연재 기준으로 1990년생이다.
  17. [17] 작 중 연도가 정확히 밝혀진 애니메이션판 한정.
  18. [18] 봉지은과 같은 학번인 15학번으로 봉지은과 동갑이다. 봉지은과 같은 15학번 동기들 중 설주를 포함해서 신한나, 박태준, 한채정 포함. 단, 삼수해서 대학 늦게 진학한 김두치는 제외
  19. [19] '인생 봉지은 4'편에서 봉지은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방우리 나이가 12살이다.
  20. [20] 김두치와 같은 개불대 15학번이다.
  21. [21] 신작 기준으로 1996년생이지만 원작에서는 1961년생이다.
  22. [22] 그의 사망으로 최종적으로 봄, 여름만 다룬 채 <에스키모와의 100일>이란 제목으로 결정되어 방영.
  23. [23] 흥행스코어는 서울관객 30만명이었으나 제작비 대비 흥행에는 실패했다.
  24. [24] 쌍둥이 그룹 '수와진'의 형이다.
  25. [25] 투니버스에서 처음 방영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건 MBC 방영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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