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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大城ガクト(오오시로 가쿠토)[1]

예명

GACKT CAMUI, GACKT.C[2]
神威楽斗(신위락두)|(카무이 가쿠토)

국적

일본 [image]

출생

1973년 7월 4일 (46세) / 일본 오키나와[image]

장르

일본 록, 얼터너티브 록, 팝 록, 발라드, 댄스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성우

데뷔

1995년 10월 10일 말리스 미제르 쇼케이스 '華麗なる復活劇(화려한 부활극)'[3]

솔로데뷔

1999년 5월 12일[4] 미니 앨범 Mizérable

소속

MALICE MIZER(1995~1999)
S.K.I.N.(2007)
YELLOW FRIED CHICKENz(2010~)
The Ba·Lue Hearts(2019)[5]

링크

공식 사이트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1. 개요
2. 이력
2.1. 생애~Malice Mizer까지
2.2. 솔로 데뷔 후
2.3. 2007년 이후
3. 세부활동
3.1. 2013년
3.2. 2014년
3.3. 2015년
3.4. 2016년
3.5. 2017년
3.6. 2018년
3.7. 2019년
3.7.1.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실시
3.8. 2020년
4. 음악성
5. 어학 능력과 화술
6. 덕업일치
7. 대인관계
7.1. 각트의 팬으로 알려진 사람들
8. 논란
9. 기부활동
10. YELLOW FRIED CHICKENz
11. 디스코그래피
11.1. 솔로활동
11.1.1. 싱글
11.1.2. 앨범
11.1.2.1. 오리지널 앨범
11.1.2.2. 미니 앨범
11.1.2.3. 베스트 앨범
11.1.2.4. 컴필레이션 앨범
11.1.2.5. 리믹스 앨범
11.2. YELLOW FRIED CHICKENz 명의
11.2.1. 싱글
11.2.2. 앨범
12. 필모그래피
12.1. 영화
12.2. 드라마
12.3. 애니메이션
12.3.1. OVA
12.4. 게임
12.5. CM
13. 도서
14. 여담

1. 개요

MOON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2003년.

2018년 최근.

일본 비주얼락의 대표주자

○ 2007 MKMF 에서의 소개 멘트.

일본가수이자 엔터테이너다.

본명은 데뷔 이래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이며 구글 검색 결과나 중화권 쪽 사이트 등 일각에서는 본명이 오카베 사토루(岡部 学)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양친의 이혼 때문에 (자신의 출생지이던) 오키나와 현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양자로 입적하고 어머니 성이던 오오시로(大城)로 변환하며 오오시로 사토루(大城 学)라는 본명으로 개명하였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팬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카무이 가쿠토가 본명이라고 믿어주는게 예의였다. 그러다가 2017년 12월 27일, 각트가 핵심 멤버로 참여한 가상화폐 회사 SPINDLE에서 본명인 大城ガクト(오오시로 가쿠토)로 참가・기획을 하고 있다며 본인의 블로그에 본명을 최초로 공개를 하였다! 이로 인해 모친의 성이 오오시로라는 것이 사실도 정식으로 확인되었다. (SPINDLE의 프로필)한편 중화권에서는 본명이 大城學(Dàchéng xué, 다청쉐)라는 패기돋는(...) 표기로 알려졌다.

GACKT라는 예명은 어린 시절 미군 병사들이 '가크'라고 불렀다는 것에 착안해서 지었다는 설과 지휘봉을 뜻하는 일본어 '타쿠토'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영어 예명이라서 한국에서는 각트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가쿠토라고 부른다.[6] 사실 GACKT라는 표기를 단번에 '가쿠토'라는 발음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7] 무명 시절에는 영어 이름만 보고 가쿠토라고 발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2009년 6월에는 솔로 10주년을 맞이하여 Gackt에서 GACKT로 개명했다. 표기만 전부 알파벳 대문자로 변경. 참고로 성(姓)인 카무이아이누어로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모양.[8]

모 방송에서 자신이 흡혈귀이기 때문에 생년월일이 1540년 7월 4일이라는 농담을 했었으나, 2009년 11월 5일에 1973년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뒤에 알려진 것이 한 프로그램[9]에서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정설화되어버렸다고, 처음엔 난처했지만 나중에는 즐기기로 했다고 밝혔다고.[10]

그런데 이는 솔로 데뷔 전에 활동 하였던 비주얼계 밴드 Malice Mizer가 지향 하던 극한의 컨셉에 기인한 부분도 있다. 실제 당시 리더인 Mana는 Malice Mizer 활동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Moi Dix Mois에서도 특유의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미디어 자리에서 말은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데뷔부터 현재까지도 보통 Mana의 인터뷰는 다른 멤버가 대신 이야기 하거나[11] 매니저로 대변인까지 동행 하며 대변인이 모든 인터뷰를 대신하는 등 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트만 하더라도 Malice Mizer 초기부터 인터뷰 때에 Malice Mizer 멤버들이 모두 프랑스 출신이라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꿋꿋이 하였고 이런 극단적인 컨셉은 후에 비주얼계 특유의 문화로 이어지게 되었다.[12] 물론 세이키마츠와 같이 비주얼계가 아님에도 극단적인 컨셉을 했던 밴드가 있었으나 씬 내에서 유행으로 번창시킨 밴드는 역시 Malice Mizer. 그냥 각트는 Malice Mizer에서 탈퇴한 멤버이니 만큼 그에 따라서 Malice Mizer 시절의 극단적인 컨셉을 그만둔 거라고 보면 된다.

2. 이력

2.1. 생애~Malice Mizer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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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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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고교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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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시기

1973년 7월 4일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13]는 음악교사 겸 무술관 관장으로 엄한 성격을 가졌으며, 어머니[14] 는 조그마한 미용실을 운영했다. 그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장난기많은 성격으로 쾌활하게 지내었다고 한다. 한편 그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류큐의 귀족 집안이었는데, 일본에 귀속된 이후에도 지역 내에서 상당한 명망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증조부 또한 지방 영주로 그 세가 엄청났다고.

이후 명문가 출신으로써 주위의 기대를 받던 각트는 교토로 집을 옮기며 그곳에서 자란다. 중학생이 되면서 각트는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자극을 받아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강요로 시작한 피아노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영재교육으로 시작된 각트의 피아노 실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연주자를 꿈꿀 정도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다 고교 선배가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것을 서포트하면서 락에 매료된 각트는 독학으로 드럼을 마스터한다. 이는 각트가 락 음악에 투신하게 된 계기 또한 되었다.

고교 졸업 이후 각트는 도쿄로 상경하여 호스트 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자서전에서도 밝힌 내용으로, 이 당시 각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하였다. 이 여성은 각트보다 6살 위의 연상에, 당시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일본계 금융회사의 고위직에 있었다. 하지만 각트는 1995년을 기점으로 이 여성과 단기간(약 6개월)만에 이혼하였다.[15] 말리스 미제르 가입 이후 생긴 사생팬들로 인해 양쪽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다고.

말리스 가입 전에는 현재 세션 멤버인 기타리스트 You와 함께 1994년에 CAINS:FEEL(카인즈 필)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드러머로서 활동하다가 보컬 부재 상황을 계기로 보컬리스트로 전환하게 된다. [16] 보컬의 부재를 채우지 못한 카인즈 필의 해체 이후 다시 호스트 일에 집중하던 각트는 우연히 가게에 찾아온 남자 두명과 친해지게 된다. 그들은 다름아닌 Malice MizerMana와 Közi였다.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각트와, 이탈리안 고딕을 표방했던 말리스 멤버들은 대화 주제가 맞아 떨어지면서 아주 가까워진다. 이후 Mana로부터 Malice Mizer에 가입을 권유받은 각트는 1995년 10월에 Malice Mizer를 가입하였고, 1997년 3월에는 싱글 'Bel Air'로 멤버들과 함께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메이저 데뷔하게 된다. 이 시기의 활동은 Malice Mizer 항목 참고.

이후 멤버들과의 다툼으로 인해 1999년 1월에 Malice Mizer를 탈퇴한 각트는 콜롬비아와 계약 파기 후 닛폰 크라운으로 이적, 싱글 Mizerable을 발매하면서 솔로 아티스트로 거듭난다. 여담으로, 각트가 Malice Mizer 에서 탈퇴 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다.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리더 Mana가 그를 탈퇴하게 했다 라는 설이 있고, Malice Mizer 내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는데 (역시 Mana에게)역으로 탈퇴 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17] 당시 멤버들을 남기고 혼자 이탈한 것[18]처럼 보여 Mana의 팬들 Malice Mizer 팬에게 엄청 비난 된 건 사실이지만 본인과 Mana 사이에는 큰 악 감정이 없다고, 이 부분은 Mana 역시 인정. 아무튼 지금은 둘 다 서로를 축하 하면서 지내는 사이로 보이는 건 최근 들어 Mana도 각트가 있던 시기를 부정 하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서 그 때 에피소드 등을 언급 하기 때문이다.

2.2. 솔로 데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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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비주얼계에서 히데의 사망 1주기로 트리뷰트 앨범이 나오고, 추도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1999년 5월에 싱글 Mizerable로 기습 컴백을 치룬 각트는, 미니앨범과 싱글 총합 39만여장의 매상을 올리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룬다. 이후 발매한 두번째 싱글 Vanilla는, 이전의 아트락/고딕 성향과는 다른 펑크와 브라스 요소를 적극 도입하여 솔로로써의 음악성에 차별화를 두었다. 컨셉트 또한 미래지향적이고 말리스 시절과는 다른 신비주의 이미지로 탈바꿈 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그 해 연간 싱글 판매량 89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에는 이전에 비해 싱글들의 매상이 좀처럼 부진하기도 했으나, 정규 1집 Mars와 곡들의 높은 퀄리티로 코어 층을 형성하며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에 힘을 썼다. 그 결과 2001년도부터는 많은 수의 매니아 중심으로 결집하면서 싱글들의 성적도 향상되기 시작하였고, Another World를 발매할 때에는 라르크 앙 시엘을 상대로 11만장의 초동을 올리며 2위를 기록하는 등, 외적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2002년도에도 정규앨범 3집 MOON이 각트의 커리어 사상 가장 높은 매상을 올리면서 식지않은 인기를 보여주었고, 각트는 이를 시작으로 '뱀파이어'라는 주제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세계관인 'MOON PROJECT'를 발동한다.

이후 2004년을 기점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대대적으로 확장된 대한민국에 진출하면서 일본 외의 아시아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시켜나갔고, 한류 열풍이 부는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써 그 위치를 재확인하였다. 2005년에는 정규앨범 5집인 'Love Letter'를 한-일 동시 발매하면서 발라드와 R&B 수요가 커진 한국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뒤이어 정규 5집 Diabolos를 발매하며 더욱 다듬어진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러한 각트의 한국 진출은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큰 의의를 가지는데, 이전에도 일본 가수들이 한국 진출이나 공연을 단발적으로 가진 적이 있어도, 그처럼 본격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한국 활동을 장기간 진행한 경우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센스 음반이 아니라 한국어 정규음반 발매, 공중파 방송 출연[19], 대규모 투어 진행[20]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한국 진출을 실시한 일본 아티스트는 그 이후로는 전무하다.

각트는 Diabolos 발매 이후 2005년 12월 24일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쿄 돔에서 콘서트를 실시했다. 이 당시 콘서트의 오프닝이 상당히 강렬한데, 실제 말을 타고 돔 안을 한바퀴 빙 돌았다! 이 모습을 TV로 보고 한눈에 반한 풍림화산 총괄 프로듀서가 우에스기 켄신 역으로 출연 요청을 하게 된다.

2007년에는 X JAPAN요시키와 함께 프로젝트를 시동할 것을 발표하고 LUNA SEA스기조, 미야비를 영입하여 전설의 밴드S.K.I.N.을 결성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2007 Anime Festival에서 딱 한 번 공연을 하고 그 이후 공연한 적이 없다. X JAPAN과 LUNA SEA가 부활하면서 정황상 앞으로도 활동재개는 없어 보인다. 또한 NHK의 사극 풍림화산에서 우에스기 켄신 역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NHK 홍백가합전에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약 6회 동안 출연하는 등 유독 NHK 방송국과의 인연이 깊다. 특히나 2007년 홍백가합전에서는 세트를 아예 통째로 사용하여 드라마의 세트처럼 꾸미고, 극중 자신이 연기하는 우에스기 켄신 복장을 하고 나와 카리스마있는 연기와 함께 RETURNER ~闇の終焉~을 열창하였다.# 한편 2007 MKMF 공연에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2.3. 2007년 이후

2008년에는 VOCALOID 가쿠포이드의 목소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9년 개최된 가쿠포이드 콘테스트의 최우수작 Episode.0와 우수작 Paranoid Doll이 2년 뒤인 2011년에 각트의 39번째 싱글로 발매되었고 Episode.0 PV에서 본인이 가쿠포 코스프레를 하고 원곡 PV를 충실히 재연했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본인이 본인 보컬로이드를 디스 걸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원곡을 뛰어넘은 편곡 실력을 자랑.[21]

2009년에는 솔로데뷔 10주년을 맞아 기념 싱글 4연작(소악마 Heaven-Faraway-Lost Angels-FLOWER)을 일주일 단위로 연달아 발매, 모두 합쳐 10만장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침체된 락 씬에서 나쁘지않은 성적을 보였다. 또한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주제가인 Journey Through The Decade 또한 호평을 얻어,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그해 싱글 판매량 100위 안에 드는 데 성공한다. 또 서울에서 열린 2009 아시안 송 페스티벌에 일본 대표로 참석해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로 소감을 발표하고, 신곡 GHOST를 연주했다. 다만 이후 연속으로 계획했던 한국에서의 비주얼 라이브 투어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주최사의 경영문제와, 동방신기 팬덤 카시오페아의 예매표 연습구매 논란으로 인한 좌석수 미달로 취소되는 등의 아쉬움도 있었다.

2010년에는 할리우드 진출을 꾀해 조쉬 하트넷, 데미 무어 등 유명 배우와 함께 헐리우드 영화 분라쿠에 출연했다. 스턴트맨 없이 직접 모든 연기를 했기 때문에 액션 연기 중에 조쉬 하트넷에게 들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러한 가혹한 촬영이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힘내라면서 스태프가 보여준 오와라이 콤비 블랙 마요네즈의 네타로 신나게 웃다가 기운을 차려 끝까지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2012년에는 원안,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연극 「MOON SAGA -요시츠네 비전-」이 7월부터 10월까지 상연했다. MOON PROJECT라는 이름으로 콘서트와 영화로 그렸던 세계관이 처음 연극 무대로 꾸며졌다. 의상 컨셉 디자인은 CLAMP가 담당.[22] 2014년에는 속편인 「MOON SAGA -요시츠네 비전- 제2장」이 상연. 프로젝션 맵핑으로 생동감 있는 연출을 선보였다.#

또 연기활동의 일환으로 DAIGO부인 키타가와 케이코와 함께 드라마 '악몽짱'에서 주연인 시키 타카시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 역시 10% 이상의 시청율을 기록하며 상당히 인기를 모았다.

3. 세부활동

3.1. 2013년

여러분들의 아주 조금 앞을 걷고있는 선배로서,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꿈은 꾸는것이 아니라 이루는것. 꿈을 이루는것, 그것은 강한 의지를 관철하는것. 여러분의 미래를 기대하겠습니다. 졸업 축하해.

2013년 11월에 열린 팬클럽 이벤트인 카무이 학원제에서는 여장과 K팝에 맛들린 각트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게 해줬다.[26] 문제는 각트와 그 일당들의 여장이 웬만한 여자 배우 쌈싸먹을만큼 수준급이었다고, 일부는 각트가 구하라로 보였다. 라고 했으니 볼장 다 본 셈. 이 때 전곡을 가성으로 라이브를 했는데, 여러모로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미 YFC 콘서트 중에 고무줄 성대를 입증한 적이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3.2. 2014년

해피 뉴 이어, 각트입니다.

2014년의 각트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는 언제나의 각트와 다름 없습니다만, 이 순간의,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이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한순간 한순간을 아름답게 지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 1년을 채색하고 싶습니다. 그런 제가, 2014년에 내건 메시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럼, 이걸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와.. 이걸 보고있는 누군가와 공유할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질 벚꽃"

져버릴 운명이라면, 지는 것에 긍지를 갖고 아름답게 지는, 그런 인생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사람은 죽습니다. 그리고 또 세상은 바뀌어갑니다만 자신이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도록 이 순간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럼, 2014년에도 각트를 잘 부탁드립니다.(2014년 1월 1일 신년인사)

3.3. 2015년

Q.포지티브하게되는 말을 주세요!!

A.뭐야? 침체되고 있어? 남에게 용기를 얻길 원해? 용기 같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자신의 안에서 쥐어 짜내는 것이다. 내 안의 용기를 쥐어 짜내 보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쫄지 말고, 한방 먹여 봐!!!

꿈을 그리고 쫓아가면서 그 시대가 움직여온건데. 그게 없어지니 정체되는거지. 인간의 세계도 똑같아서 움직임이 멈춘 시점에서 정체돼.

항상 다음 시대를 향해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움직이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돼.

그리고 나는 모두가 그걸 자신의 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일이 없습니까. 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태어난 의미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없어. 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너는 왜 여기에 있는거야라고 묻고 싶어 꿈을 발견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멈춰있는거니까.

그건 별로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 라던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써 괜찮은가? 아닌가에 대한거야.

이런 나의 코멘트를 비판하는 사람도 잔뜩 있어. 그건 그걸로 좋아.

남을 비판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략)

맞아 네가 흐름을 만들면 주변도 흘러가는거야.

시대도 움직여.

좋던 나쁘던 인간은 영향을 미치니까.

네가 시대를 움직여! 같은거지.

3.4. 2016년

3.5. 2017년

3.6. 2018년

3.7. 2019년

3.7.1.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실시

3.8. 2020년

4. 음악성

일부 곡에서는 아예 무반주로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DEARS의 love letter 버전은 중간에 반주가 완전히 끊기고 오로지 각트 본인의 목소리로만 노래를 진행하며, 라이브 콘서트 중에도 곡의 시작 부분에서는 무반주로 진행하는 경우가 꽤 많다. 2016년에 발매한 キミだけのボクでいるから(너만의 나로 있을테니까)의 경우에도 앞 부분이 무반주로 진행이 된다.
드럼 실력도 나쁜 편이 아닌게, 가끔 하이도와 함께 연주를 할 경우에는 하이도가 각트에게 드럼을 잘 맡긴다.피아노는 세 살부터 시작했지만 억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땡땡이를 많이 쳤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피아노가 있는 방에 넣어두고 쇠사슬로 입구를 막으면 창문으로 탈출하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고 토크쇼에서 언급, 그러고도 이후 10년 동안은 미친듯이 피아노를 쳐야했었다고 한다. 일부 곡의 경우에는 아예 피아노 버전으로 뜯어 고치는데 특히 Last song의 경우나 일부 곡은 피아노 버전이 나오면 원판을 듣기가 힘들다.
특히 콘서트의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가 "죽을 각오로 한다"라고 하는 만큼 스텝진들의 고생이 심하며 정말 누구나 인정하는 퀄리티를 자랑하는데, 전국 투어를 하는 과정에서는 3번이나 응급실로 실려갔으며, 내한 공연 당시에도 강행군으로 인해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갔다.[47]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 2006년 라이브 콘서트를 계기로 관객에게도 유명해지게 되는데. 관객들이 가득 들어차자 이번 공연은 제 의지로 야광 및 불빛이 나는 도구의 사용을 금지합니다라고 말한 뒤 모든 야광 도구 및 카메라가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연을 시작했다.[48]내한 공연 당시에는 일본에서 자신이 쓰는 음향기구를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한국 측 업체가 요구조건을 맞춰주겠다고 해서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업체가 제공한 음향장비로 음악을 틀어본 다음 격노해서 일본에 있는 모든 음향장비를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덕분에 한국 팬들과 가지는 첫 미팅이 무려 4시간이나 늦어져서 논란을 빚었지만, 일본에서도 같은 사건이 있었고 이후로 그런 일이 다시는 있지 않겠다고 사과함으로써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공연 전 리허설 때도 항상 전 장비를 갖추고 리허설을 하며, 리허설 분위기를 보고 싶다면 2013년 BEST OF THE BEST 라이브 콘서트 투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된다.# 시작부터 멤버들을 어마어마하게 갈구고 있다.

4.1. GACKT JOB

서태지서태지 밴드처럼 각트의 솔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세션 밴드.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5. 어학 능력과 화술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도, 느끼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무가치하다고 생각해."(「ストリ-トアクセNEXT FILEⅡ」에서)
>"눈물은 여자의 무기가 아냐. 여자의 무기는 웃는 얼굴이야."(「Pop Beat」2001.10월호)
>"나는 내 안에서부터 쥐어짜낸것이지, 다른사람으로부터 주어진것이 아니야."(My Birthday」2001.10월호)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것 같은 볼품없는 방식으로 삶을 살고싶지 않아."(「Kindai」2001.10월호)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싶고, 적어도 그것에 대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자신이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충격과 감동이 없다면 스스로도 그것을 할 의미가 없어."(「ARENA37℃」2001.6월호)
>"나에게 있어서 경어의 패턴은 3가지 있어. 하나는, 한도끝도없이 싫은 사람에 대해. 또 하나는, 한도끝도없이 살고있는 세계가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남은 하나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준 은인에 대해."[53](「ARENA37℃」2001.6월호)
>"사람의 일생은 허무한 것이지요? 그렇기때문에 더욱, 나는 언젠가 올 끝날 때까지, 내가 나로써 있기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하고싶지만."(「BANDやろうぜ」2001.1월호)
>그 외에도 공연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후배 가수에게 "아마추어는 꺼져!"라고 말하기도 했다.[54]
>"남자는 무엇인가 소중한 시합 전에는, 절대 섹스 하면 안돼!"(2003.2.3)브루스 웨인다크나이트 라이즈의 패배 원인
>"사람의 등을 밀어준다는 것, 앞으로 얼마나 더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설령 규모는 작더라도 지금부터 새로운 미래를 걸어나가는 아이들에게 이런식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곳에 있는 전원에게 이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 중 몇명이 꿈을 향해 나아갈수있게 되었다고 느껴준다면 그 마음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등을 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것, 그리고 노래를 통해 전한 마음은 눈 앞에 있는 상대가 한명이어도, 10만명이어도 같다. 오늘,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형들이 흘린 눈물은 평생 잊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매년 계속 할 것이다."(2013. 3. 1 오오츠키시 오오츠키 단기 대학 부속 고등학교의 졸업식에서)

6. 덕업일치

토미노 옹 앞에서 지크 지온을 외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7. 대인관계

7.1. 각트의 팬으로 알려진 사람들

각트의 팬을 자처하며 각트에게 애정을 표한 연예인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사람들이 있다.

8. 논란

아래는 다음 카페 일본 록 디비보기의 내용들.

1. 01년 겨울, TV에 출연하여 B'z의 곡 '언젠가의 메리크리스마스'에 대한 코멘트에서 '이런 곡을 작곡한 마츠모토군[70]은 대단하다. 이나바군의 보컬도 이곡에서는 훌륭해'라고 코멘트를 한 적이 있다. 02년 자신의 자서전 자백 176페이지에 (언젠가의 메리크리스마스의)'가사를 쓴것은 이나바군인 것 같은데, 그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있나 하고 생각했다'라고 적혀있다. 그 바로 옆줄에는 역시 연상인 Mr. Children의 사쿠라이 카즈토시에 대해서도 '카즈토시군'이라고 언급 되어 있다. 이것은 서태지가 TV에 나와서 '이런 곡을 작곡한 용필이(조용필)는 훌륭하다'라고 하는 것만큼 심한 소리.[71] 훗날 각트가 이나바 코시를 경애 한다는 식으로 수습하는 멘트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 일도 포함해서 일본 내의 각트의 이미지는 '윗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풍림화산에 출연한 이후 원로 배우들이 인격적으로 대단하다고 극찬을 하는 등 전체적으로 현재는 이미지 쇄신을 이뤘다. 드라마 제작중에 공개된 촬영 영상에서는 처신이나 사적인 연락에서도 고참 배우부터 일반 제작진까지 칭찬이 자자했다. 특히 풍림화산 참여 배우였던 원로 배우 오카타 켄의 사망을 추모해 나의 아버지의 날이란 곡으로 추모곡을 작사ㆍ작곡 하기도 했다.[72][73] 2014년 2월 U+K와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에 이어서 Kami를 생각 하면서 작사ㆍ작곡한 세번째 곡인 P.S I LOVE YOU 를 공개. [74]

2. 자기 팬에게 자기가 소유한 골프장에 투자 및 주식 구매를 권한 적이 있다. 그 팬은 각트 팬클럽에게 테러를 당해 개인정보를 넷상에 유출당하거나, 집에서 기르는 개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옷까지 칼로 찢기는 등의 피해를 보았고 각트 자신은 투자 유혹에 실패한 것에 앙심을 품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로는 투자를 실패한 쪽에서 고의적으로 저지른 정황도 포착 되었다고 한다.

3. 고참 밴드 근육소녀대의 베이시스트 우치다 유이치로에게 "난 나이나 위계 질서 이런걸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며, 난 468살이니까 당연히 당신보다 나이도 위다"라고 했다가 심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데, 밑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의외로 각트 최강설은 설득력 있는 소리다라는게 연배가 되는 가수들의 이야기.

4. 방송중에도 자신이 은연중에 싸움을 잘한다는 걸 어필하는듯한 리액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프로에서 장면 넘어가기전에 카메라에 정권을 내지른다든지...아버지가 오키나와 전통무술 도장 관장이라 이게 정설로 받아들여진적도 있었다. 2011년에 피에로 나카노와 요시다 고우의 대담에서 "각트 최강설은 근거 있는 소리다"라고 언급. "녹화장에서 혼자 있으면 주먹을 단련하고 있는 모습을 매번 보는데, 내 손이 저릴 정도로 단련한다"고 언급했다.[75][76]

하지만 이런 자신에 대해 자각을 하였는지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지 쇄신을 이룩했다. 오카타 켄과 같은 원로 배우도 인정할 정도로 성숙해졌다.[77] 특히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집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얼마전 최초로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곳을 보여줬는데, 헤어진 친구, 죽은 친구들의 유품을 모아둔 곳이었다.[78]

9. 기부활동

기부활동을 상당히 많이 벌인다. 대표적인 것이 유니세프 기부와 12월 어느 사랑노래의 저작권료를 9.11 테러 피해자들 기금에 기부한 것. 이 때문에 자금난을 겪은 경우도 있는데, 후쿠시마 지역 지진 당시에도 의외로 적은 금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었지만, 전후 사정을 본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각트가 기부를 받아야 했다. 동일본 지진이 발생하기 3개월 전에 배용준의 제안으로 한, 중, 일 스타들이 공동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기부 단체를 구성했는데, 여기에 올인한 상태였다.[88] 때문에 적은 비용을 낼 수 밖에 없었고,[89] 이 사정을 밝힐 수 없어서 더 빈축을 샀다.[90]

그래도 SHOW YOU'RE HEART와 같은 프로젝트와 YFC의 두번째 앨범인 ALL MY LOVE 등으로 대대적인 기부를 하고 있고, 돈만 기부한 연예인들과 다르게 피해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부,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91]

2012년 초에 발매 예정인 <ARE YOU "FRIED CHICKENz"??>에 수록된 "또 여기서 만나자" 역시 ALL MY LOVE와 마찬가지로 SHOW YOU'RE HEART의 일환으로 발매된다.[92]

참고로 데뷔 초부터 개인홈페이지에 기부버튼이 있었는데, 이 버튼을 누르면 누를 때마다 광고가 뜨면서 광고사가 적은 금액이지만, 재해 대비를 위한 기금 또는 이재민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확장해서 계속 운영하는 중.

2012년 3월 11일에는 피해지역 중 미야기현에 가장 먼저 도착해 헌화를 했다. 언론에서의 평가는 처음에는 적은 금액을 냈지만, 단순히 돈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써 도와주는 유일한 연예인[93]이라고 극찬.[94]

2016년 4월 라스트 비주얼라이브에 돌입한 와중에 쿠마모토현 대지진이 발생하자 5월까지 진행된 라이브에서 얻은 수익을 전부 지진 피해지역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밑에서 이야기할 YFC 활동은 맨 처음에는 멋진 남자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도호쿠 지진 때문에, 그 목적을 기부와 사랑으로 컨셉을 변경했다.

10. YELLOW FRIED CHICKENz

초식남육식남(또는 공룡남)으로 바꾸자는 테마 아래 2010년 3월 각트를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 프로젝트명. 약칭은 YFC. 밴드 이름이 노란 닭튀김인 이유는 잘 튀겨진 닭처럼 입에 감기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결성한 2010년에는 솔로 활동을 서포트하는 세션 멤버들이 그대로 밴드 멤버가 되어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3.11 지진 이후는 "뮤지션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어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의 등을 밀어줄 수 있도록,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테마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2011년 6월 9일에는 새로운 멤버로 LUNA SEA의 신야, FADE의 JON, TAKUMI, U:ZO가 가입하여 투 보컬, 쓰리 기타라는 다소 독특한 구성을 가진 밴드가 된다. 그전까지는 세션 멤버들로만 구성되어 솔로 활동의 연장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었으나 신 멤버 가입 이후로는 기존 솔로와 다른 독립된 활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그래도 여전히 콘서트에 솔로 곡이 포함되어 있지만 분위기 띄울 때는 역시 바닐라

참고로 신 멤버 가입과 세계 투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는 기자진들이 하는 질문과는 상반되고 뜻이 통하지 않는 A#SHO#E같은 발언을 일삼았던 적이 있었는데, 과연 이게 컨셉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진실은 저 너머에... 그런데 저 때 각트가 화를 낸 이유도 내뱉은 영어를 풀이하면 "YFC 기자회견에서 왜 내 솔로앨범얘기가 나오냐"[95]라는 의미로 한 말이라서 누가 옳다느니 의견이 분분하긴 하다. 실제 다른 뮤지션들 중에서도 솔로와 그룹 활동을 구분짓는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다른 활동 얘기가 나오면 화내는 사람도 있긴 있다.[96]각트만 이상한 건 아니다.사실 주목해야 할건 자막이다[97] 그리고 마이크를 놓은 상태로 욕을 할 떄의 각트의 표정이 깨알같은 개그

허나 정식으로 활동을 개시한지 1년여만인 2012년 7월 4일 무도관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해체한다는 소식을 전해와서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정확히 밝힌 바에 따르면 "일시적 해체" 일단 이 밴드 자체가 개인활동을 하는 여러 멤버들을 짜집기해서 만들어진 밴드이기 때문에 개인활동(원래 자기 소속 활동)을 하면서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잠시 해체한다고 한다. 7월 4일에 해채 콘서트 이후에는 일시적 해체이기 때문에 이후 활동을 보증하는 의미로 사진집을 발매한다고 한다.

11. 디스코그래피

[image]
각트의 음반

11.1. 솔로활동

11.1.1. 싱글

발매일

타이틀

비고

1999.06.30

Mizérable

각트의 솔로데뷔 싱글.

1999.08.11

Vanilla

1999년 오리콘차트 싱글 연간 판매량 89위(약 25만장)

2000.02.09

Mirror

2000.02.16

OASIS

2000.03.08

鶺鴒 〜seki-ray〜

2000.08.30

再会 〜Story〜

2000.11.16

Secret Garden

2001.03.14

君のためにできること

2001.09.05

Another World

2001.12.16

12月のLove song

2002.04.24

忘れないから

2002.11.27

12月のLove song / December Love

12월의 러브송 영어 버전 수록

2003.03.19

君が追いかけた夢

2003.06.11

月の詩

테크노라이즈 엔딩

2003.06.25

Lu:na/OASIS

북두의 권 메인 테마

2003.11.12

Last Song

2001.12.03

12月のLove song / 十二月的情歌

12월의 러브송 중국어 버전 수록

2004.10.27

君に逢いたくて

2004.12.08

12月のLove song / December Love Song

12월의 러브송 한국어 버전 수록

2005.01.26

ありったけの愛で

2005.04.27

BLACK STONE

2005.05.25

Metamorphoze 〜メタモルフォーゼ〜

기동전사 Z건담 A New Translation 주제가. 2005년 오리콘 연간 싱글차트 62위.[98]

2005.08.10

届カナイ愛ト知ッテイタノニ抑エキレズニ愛シ続ケタ…

2006.01.25

REDEMPTION

FF7 : DC 주제가

2006.03.01

Love Letter

2007.02.07

野に咲く花のように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10화 삽입곡

2007.06.20

RETURNER 〜闇の終焉〜

현재까지 발표된 각트의 싱글들 중 유일한 오리콘 주ᆞ월간차트 1위곡

2008.11.26

Jesus

2009.01.21

GHOST

터미네이터 : 새라 코너 연대기 일본판 주제가ᆞ오리콘 주간차트 최고순위 3위 기록

2009.03.25

Journey through the Decade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오프닝 테마. 각트의 에이벡스 이적 후 첫 발매작이자 마지막 오리콘 플래티넘 인증 싱글.[99]

2009.06.10

小悪魔ヘヴン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 1탄

2009.06.17

Faraway 〜星に願いを〜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 2탄[100]

2009.06.24

LOST ANGELS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 3탄, 2009년 7월 1주차 빌보드 Japan 주간 1위

2009.07.01

Flower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 4탄

2009.08.11

The Next Decade

극장판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올 라이더 대 대쇼커 주제가

2009.12.09

雪月花 -The end of silence- / 斬〜ZAN〜

전국무쌍 3 주제가

2010.01.01

Stay the Ride Alive

가면라이더X가면라이더 더블&디케이드 MOVIE 대전 2010 주제가

2010.07.28

EVER

2011.07.13

Episode.0

가쿠포이드 페스티벌 우승작 싱글컷 및 재녹음

2011.11.30

Graffiti

스켓 댄스 3쿨 오프닝[101]

2012.02.22

UNTIL THE LAST DAY

2012.10.10

白露-HAKURO-

전국 BASARA MOONLIGHT PARTY 엔딩[102]

2012.12.19

WHITE LOVERS -幸せなトキ-

2014.02.12

P.S. I LOVE U[103]

2014.10.01

暁月夜 -DAY BREAKERS-

2015.10.07

ARROW

각트의 마지막 비쥬얼 라이브를 장식할 오프닝곡.[104]

2016.11.23

キミだけのボクでいるから[105]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1쿨 오프닝

2017.03.22

罪の継承〜ORIGINAL SIN〜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2쿨 엔딩

11.1.2. 앨범

11.1.2.1. 오리지널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2000.04.26

MARS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1.04.25

Rebirth

2002.06.19

MOON

2003.12.03

Crescent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5.02.14

Love Letter

국내 전용판 번안앨범 발매

2005.09.21

DIABOLOS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9.12.02

RE : BORN

2016.04.27

LAST MOON

국내 디지털 라이센스 발매

11.1.2.2. 미니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1999.05.01

Mizérable

11.1.2.3. 베스트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2004.02.25

THE SIXTH DAY 〜SINGLE COLLECTION〜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4.05.26

THE SEVENTH NIGHT 〜UNPLUGGED〜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10.07.21

THE ELEVENTH DAY 〜SINGLE COLLECTION〜

2013.07.04

『BEST OF THE BEST vol.1 ―MILD―』

2013.07.04

『BEST OF THE BEST vol.1 ―WILD―』

11.1.2.4.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2006.12.13

12月のLove songs 〜COMPLETE BOX〜

12월의 러브송 박스 세트

2007.12.19

0079-0088

기동전사 Z건담 A New Translation 수록곡 모음

2008.10.29

nine*nine

콘서트 실황 음원화

11.1.2.5. 리믹스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1999.11.03

Remix Of Gackt

[106]

2015.07.01

GACKTracks -ULTRA DJ ReMIX-

발매기념 라이브 파티 개최

11.2. YELLOW FRIED CHICKENz 명의

11.2.1. 싱글

발매일

타이틀

비고

2011.09.14

THE END OF THE DAY

2011.12.28

ALL MY LOVE / YOU ARE THE REASON

11.2.2. 앨범

발매일

타이틀

비고

2010.06.23

ARE YOU "FRIED CHICKENz"??[107]

2012.03.14

YELLOW FRIED CHICKENz I

1번 트랙 CIRCLE (.com)은 그래플러 바키 애니메이션 주제가

12. 필모그래피

12.1. 영화

12.2. 드라마

12.2.1. 웹드라마

12.3. 애니메이션

12.3.1. OVA

12.4. 게임

12.5. CM

13. 도서

14. 여담


  1. [1] 2017년 12월 27일 공개
  2. [2] 작사·작곡 명의
  3. [3] 중학교 재학시절인 1989년에도 카인즈 필(CAINS:FEEL)이라는 밴드로 인디 활동을 하기도 했다.
  4. [4] 그전에는 모두들 잘 알다시피 비주얼계 밴드 Malice Mizer에서 활동했다.
  5. [5] GACKT JOB 멤버들과 포지션을 바꾸어 공연하는 밴드로, 드럼의 VAL이 프론트맨으로 온다. 학원제에서 한시적으로 선보였는데, 각트를 대상으로 하는 VAL의 폭주하는 시모네타와 병맛(...)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아예 자체적으로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6. [6] 풍림화산(드라마)에서는 이 예명 때문에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보수적인 대하드라마의 스탭롤에 영문인 Gackt를 집어넣는 폭거(...)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분명히 독음으로 가쿠토라고 병기되어 있다.
  7. [7] 일본어를 기준으로 보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8. [8] CLAMPX에서도 써먹었다.
  9. [9] 일종의 가상 연애를 하는 프로그램. 당시 각트에게 인식은 미연시 고로 미연시에 맞는 설정을 제시한 거라고.
  10. [10] 그런데 저 얼굴로 40대를 보내고 있어서 어째 묘하게 설득력이 높다.
  11. [11] 주로 각트(Gackt)나 드러머였던 Kami
  12. [12] 특히 고딕 컨셉인 밴드들이 주로 이런다.
  13. [13] 2013년 작고.
  14. [14] 후에 아버지와 이혼후 본가로 돌아간다. 각트도 나중에 어머니쪽 성인 오오시로로 입적.
  15. [15] 각트는 이 후에 "난 더 이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겠다"라고 단언하였으며, 일생의 소원은 나중에 돈을 모아서 섬을 산 다음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소회한 바 있다.
  16. [16] 여담이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 당시 악곡들은 정말이지 음질이 나쁜데, 오프라인 모임에서 카인즈 필이 배포한 마스터링 테잎의 경우에는 상당히 깨끗한 음질을 자랑한다. 인터넷에 이 버전의 음원이 풀리지 않아서 각트의 팬들 사이에서는 이 마스터링 테잎이 귀중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17. [17] 하지만 정황상 사실 Mana가 점점 Gackt의 영향력에 위기감을 느껴 탈퇴 하게 했을 예측이 제일 확실 하다. 다만 대인배로 유명한 각트가 그래도 자기를 발탁한 은인이라 쿨하게 넘긴거라고.
  18. [18] 이때문에 각트가 말리스 미제르 시절 혼자서 만든 작곡인 Le Ciel이나 Regret를 솔로 전향 이후 부르지 못하는 것은, 이 당시 말리스 미제르 탈퇴로 인해 저작권 분쟁이 생겨 재판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부분을 아는 각트의 팬들은 역으로 Mana의 팬들과 큰 대립을 하기도 했고, 현재도 불편한 부분임을 인정한다.
  19. [19] 물론 SBS를 통해 콘서트 실황이 방영되었던 아무로 나미에라르크 앙 시엘(07'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도 있지만, 각트는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20. [20] 2004년, 2005년 팬미팅, 2006년, 2007년 대규모 단독 콘서트.
  21. [21] 지나치게 그전의 앨범들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엄연히 이 곡의 제작자가 각트 스타일로 만든거라.
  22. [22] 참고로 CLAMP또한 한국의 전통 의상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기도 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23. [23] 자세한 내용은 어학능력과 화술의 마지막 문단에서 참조.
  24. [24] 올림픽 태권도가 아닌 한국에서 북한태권도로 불리우는 ITF태권도
  25. [25] 가면라이더 BLACK으로 유명한 쿠라타 테츠오도 시즌 2에서 게스트 출연한 특촬물이다.
  26. [26] 카라의 미스터,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불렀다.
  27. [27] 전국무쌍 3 타이틀 곡
  28. [28]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가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당신과의 만남은 저의 모든것이었어요. 그저,너무나 행복해서 하지만 저는 당신이 새겨갈 인생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슬픔에 지금이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제 돌아보지 않길 바래요.사랑하는 당신만큼은 부디 사랑하는 것에 겁 먹지 말길 바래요.
  29. [29] 유가 비밀리에 결혼을 했으나 상대와의 갈등 끝에 헤어지면서 헤어진 상대 여성 측이 유는 물론 각트까지 엮어서 악랄하게 공격해 한동안 방송을 중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말도 안되는 공격이 많아서 잘 해결되었으나 각트 입장에선 여러가지로 당황스러웠다고.
  30. [30] 현재 켄신 공제는 각트가 참여한 이후 약 5배 정도 관람객이 증가했다. 이후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각트가 계속 참가할 듯하다.
  31. [31] 오답을 낸 팀원들은 그냥 집에 가자, 아냐 죽는게 나을거 같아 등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32. [32] 팀 기록은 39연승에서 멈췄지만 개인으로는 연승 유지.
  33. [33] 사운드가 어디서 어디까지 들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이동하고,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챠챠마루와 유에게 연주를 계속 부탁하는 등 일부에선 한 10곡 정도 부르는거 아니냐 라고 할 정도로 리허설을 진행했다.
  34. [34] 맛만보고 버리는게 아니라 원래는 같이가는 스태프나 멤버들과 함께 먹는다. 여기서는 화요 서프라이즈 제작진이 함께한 셈인데, 누군가 같이 먹어주니까 가능한 기행.
  35. [35] 다만 요시키 같은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에 LA로 이주한 상태이기도 하다.
  36. [36] 폭포가 있는 침실이 있다는 그 집이 맞다.
  37. [37] 편곡은 2013년도 카무이 학원제 때 선보였었던 편곡이다.
  38. [38] 30대 초반에 등을 심하게 다쳐 찬바람이 불면 쑤신다고 하였다.
  39. [39] 알콜 도수 40~50에 달하는 상당히 독한 술이다. 다음날 숙취가 굉장히 심한 것은 덤.
  40. [40] 대표로 미네기시 미나미, 미야자키 미호, 시타오 미우 등이 있었다.
  41. [41] 정확히는 1.5기생
  42. [42] 학생들이 자리를 내팽겨치고 단상 아래로 모여들었다!
  43. [43] 한화 약 17만 4천원.
  44. [44] 한화 약 60만원! 여담이지만 60만엔 대 초 VIP석은 무료 선물도 동봉된 초호화 대우를 자랑했다.
  45. [45] 일측에서는 각트가 갑론을박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비주얼계 싱어로 표현했던 것이, 이번 새 투어를 위한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46. [46] 20주년 콘서트 준비 등으로 인해 싱글발매는 결국 이뤄지진 않았다.
  47. [47] 본인도 인정하지만 자기는 오래 달리기 같은 지구력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고 단련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트 스스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멤버들은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 무대에 서 있는 그 순간만큼은 목숨을 건다."
  48. [48] 당시 공연의 영상을 보면 무대 위에서 그려지는 스토리 자체가 영화와 같은 양상이었고, 이 때문에 야광봉과 같은 불빛이 나는 도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못 쓰게 한 모양이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극장에서 야광봉 흔들면서 영화보는 사람은 없잖아?라는 한 네티즌의 지적으로 간단히 해결.
  49. [49] 유럽 투어 중에 폴란드어나 러시아어로 가볍게 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50. [50] 영어와 중국어 앨범은 정식발매되진 않았다. 해외 투어에서 간간히 불렀다.
  51. [51] 여태까지 일류 연예인 등급 체크에서 무시무시한 기록을 갱신한 것이 배경으로 작용해 최상위 브랜드 모델로 채택된 것.
  52. [52] 단순히 벗어라는게 아니라 여성으로써의 자신감과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표현 방식을 의미하는 거였지만, 벗어라니!?
  53. [53] 이 때문에 윗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54. [54] 당시 현장에 있던 스테프가 누구라고 정확하게 공개는 안해서 누구에게 한 이야기인지는 모른다.
  55. [55] 이 생각은 토미노가 생각하는 것이랑 비슷하다.
  56. [56] 특히 아무로 레이카이 시덴은 거의 비슷하다.
  57. [57] 이 때 디케이드 역의 이노우에 마사히로와 매우 친해졌는데, 서로 형님 동생을 부르면서 잘 이끌어나가는 모양. 여담으로 이 둘을 촬영장에서 붙여두는 건 매우 위험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노우에 마사히로 항목 참조.
  58. [58]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걸 각트는 기억하는데 하이도는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59. [59] 이에 각트는 요시키야 말로 정말 불가사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언제 어디서 어떤 포인트에서 욱하는건지 도통 모르겠다며 장난감 상자같은 사람이고 정말 그 재능과 재미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2%도 전달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60. [60] 팬들은 비비안 수의 경우에는 단순한 열애설로 추정하지만, 요네쿠라 료코같은 경우에는 깊고 진지한 관계까지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1. [61] 이 노래가 "널 만나고 싶지만"이었는데, 재미있는건 박용하와 처음 방송에서 만났을 당시에도 불렀던 노래기도 하다.
  62. [62] 공연 전에 홍백가합전 출연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이렇다. "홍백가합전에 나가는건 일단 축하 그리고 나는 올 나잇 닛폰 쇼에 나가는데 거기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것. 하면 집 주소 불어버린다"고 경고했었다. 이 영상 초반부에 한국어로 인사하는 점이 포인트라면 포인트.
  63. [63] 키류인 쇼의 덩치가 작아서 각트 의상은 입지 못하고 기타리스트 챠챠마루의 의상을 빌려입었다.
  64. [64] 덤으로 들고 나온 독특한 모양의 스탠드는 골든 봄버의 기타 캰 유카타가 특기를 살려 빈 상자 곽으로 만든 수제품(...)
  65. [65] 실제로 키리쇼의 골든 봄버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중 하나로,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번 돈을 펑펑 쓰고있는 반면메이드 카페를 차린다던지 키리쇼만 유달리 가난했던 인디 시절의 거지 근성이 남아서 돈을 잘 쓰지 못 한다고 한다.꾸미는 데도 소질이 없..
  66. [66] 우동에는 순무 라는 뜻(...)
  67. [67] 탄수화물 제한 때문.
  68. [68] 규동은 요시노야. 요시노야는 유명한 규동 체인점이다.
  69. [69] 이쪽 역시 각트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화와 음악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 학생때부터 X JAPAN을 비롯한 다른 일본 아티스트들도 굉장히 좋아해왔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심지어 연습생 시절에는 록 음악에 굉장히 심취해서 마침 일본 비주얼록 컨셉을 롤모델로 했던 밴드 TRAX의 원년멤버이기도 했을 정도.
  70. [70] '군(君)'은 일본에서 손아랫사람에게, 혹은 잘해야 동기들 사이에서나 쓰는 말이다.
  71. [71] 그들은 각트와 사석에서 밥 한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사이라고 한다.
  72. [72] 이전에도 죽은 매니저를 위해 낸 BLACK STONE, U+K,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 등의 추모곡이 있는데, BLACK STONE은 죽은 매니저가 자주 피던 담배의 영문식 품명이 BLACK STONE 이었고, U+K와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 곡은 Kami를 추모하여 작사ㆍ작곡한 하나의 연계 곡으로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은 라이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실성한 상태에서 이별한 사람을 그리워 하는 노래다. 실제로 이 노래 부르다가 각트가 라이브 콘서트 중에 실신 하기도 했다. 본인 말로는 당시에는 체력이 약해서 그랬다지만 실제로 라이브 영상을 보면 피를 토해도 어색할 게 없다. 반면에 U+K 곡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이미지에서 추모하는 곡이다. 상당히 극과 극인 컨셉의 곡이지만 연달아 들으면 납득 하는 구성.
  73. [73] 오가타 켄과 무슨 인연이기에 그렇게 오버스러운 행동을 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가타 켄이 맡은 역이 각트가 담당한 우에스기 켄신의 명군사인 우사미 사다미츠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늘 함께 등장했고 자연스레 촬영장에서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오가타 켄이 열성적으로 각트의 연기를 지도 해 줬고 도움을 주어서 사실상 현실에서도 부족한 주연 배우를 도우는 명 군사의 역할을 수행 했다는 기사가 발표 되었고 각트 역시 아버지라고 불러도 될 만큼 고마우신 분 이라고 직접 언급 했었다. 실제로 우에스기 겐신 각트를 검색하면 오가타 켄과 찍은 사진이 각트 단독 사진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74. [74] 초기에는 일절 언급이 없다가 팬들의 호응과 참여에 보답 하기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에서 이 사실을 최초 공개했다. 다만 언급 하던 중 갑자기 울어서 잠시 이벤트가 중지.
  75. [75] 그런데 각트라는 양반이 원래 혼자 있으면 저런 식으로 잘 논다.
  76. [76] 영화 분라쿠 스텝들 증언으로는 허당이 아니라고, 조쉬 하트넷이 처음에 각트를 업신여겼는데 나중에 몇번 주먹으로 다투고 나서는 급친해졌다고 한다. 분라쿠 촬영 이후 조쉬 하트넷이 실제로 몇번 심각하게 다퉜고, 주먹이 오가기도 했다고. 다만 그 이후에 꽤 친해졌다고 인터뷰를 했다.
  77. [77] 오카타 켄의 장례식에서 특유의 조용함으로 말 없이 서 있었지만, 같이 문상 온 풍림화산 제작진은 잘못하면 각트도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78. [78] 몇년 전에 대만에 사는 친구가 죽었을 때는 장례식에 참석 하지 못했고, 그 뒤에 묘소를 찾아서 말없이 몇시간 동안 머물러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 때 한 거라고는 줄담배 뿐. 죽은 친구가 즐겨 피우던 담배로 애도 했다.
  79. [79] 여기서 한가지 아주 잘못된 게 알려져 있는데 U+K,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 곡은 연계 곡이다. U+K는 Kami를 추모하기 위한 첫번째 추모곡인데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내용인 반면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는 눈을 감아도 이제는 볼 수가 없고 꿈 속에서도 만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각트 본인은 U+K 곡보다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에서 자신의 감정이 표현 되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 곡 라이브를 보면 절규 하면서 노래 부르다 죽을 기세. 실제로 이 곡이 마지막으로 부르는 곡인 콘서트 투어 중에 실제로 엔딩 롤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간 적이 꽤 있다.
  80. [80] 죽은 옛날 매니저를 추모하기 위한 곡. 매니저가 자주 피던 담배 품명이 BLACK STONE 이라고. 영문식 품명도 같아서 곡 명도 BLACK STONE 이라고 한다.
  81. [81]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2ch 등지에서는 우익~ 정부 측에서 친한파 관련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 라는 의견도 많고, 실제로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몇가지 탄압 사건을 고려해본다면 향후를 지켜봐야할 것이다. 특히 탈세혐의의 경우에는 고의적인 탄압일 가능성이 큰데, 왜냐하면 최근의 각트가 벌어들인 수익은 2002~2005년도에 비해 적다. 특히 소속사를 에이벡스로 옮긴 이유도 수익 감소라는 추측이 나오는 게 현 시점. 그런데 수익이 가장 많을 때는 탈세 혐의가 없다가 수익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자마자 탈세 혐의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특히 2009년도 경에는 각트가 돈을 많이 잃어서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뉴스보도도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탈세혐의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82. [82] 사과를 받아내는 수준에서 그쳤다.
  83. [83] 2013년 4월부터 전국투어 시작 중이었는데, 아시다시피 각트는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은 목숨을 건다.", "제대로 공연할 의사가 없으면 꺼져!"라고 할 정도로 라이브 무대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예민해진다. 상술했지만 10년 넘게 함께 일한 멤버들이나 스텝진들이 얼렁뚱땅 넘어가려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라고 느낄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84. [84] 더불어서 일본 쪽에서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신의 출신을 부정하는 기미가요까지 부르는 사람을 저렇게 탄압하는 걸 보면 일본의 극우도 갈 데까지 간 모양이라는 반응도 있다.
  85. [85] 여기에 갑주가 하나 있는데, 이걸로 "각트의 각츄(갑주의 일본식 발음)"이란 말장난을 했다.
  86. [86] 폭포를 설치한 이유는 습기 때문에...원래 이사오기 전에는 가습기를 10개 정도 틀고 살았는데 곰팡이가 펴서 철수, 그리고 고민한 끝에 폭포를 설치했는데, 그 결과 처음 몇주간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계속 꿨다고...
  87. [87] 그런데 정작 동북지진 발생 3개월 전에는 배용준의 기부활동에 전액을 올인하고 지진 발생 한달 전에 동북 일대의 팬 클럽을 위한 산 하나의 권리를 매입하는 바람에 동북지진 발생 당시 때는 진짜 돈이 없었다.(...) 이 무슨...거기다가 지진 후폭풍으로 현재 이 산은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 기부할게 아니라 기부받아야할 처지다.(...) 안습.
  88. [88] 덕분에 배용준이 아이젠과 닮은 것에 착안, "당황하지마라 경화수월이다!"라는 말도 나왔다.
  89. [89] 거기다가 이 때 통크게 기부한 뒤에 팬프로젝트 + 개인적으로 겨울 스포츠를 좋아해서 산 하나를 샀다. 지역은 밝히지 않았지만 스텝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북지진 발생 직전에 거액으로 권리를 매입. 덕분에 동북 지진 발생 당시에는 진짜 돈이 없었다. 근데 하필이면 자신이 매입한 지역으로 방사능이 불어닥쳐서...2013년 겨울 팬클럽 동반 수학여행은 포기. 사실상 기부를 해야할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지원을 받아야할 판. 2015년 한 방송에서 " 그거 매각했다"고 산을 처분했음을 밝혔다.
  90. [90] 그도 그럴게 국내에서 번 돈을 해외 아동을 돕는데 퍼줬다는 비난을 당시에 받았다. 특히 배용준이 주최한 아시아 행사에 장근석 등 한류 스타와 중국의 간판급 연예인들과 함께 기부 사업을 벌인 것 때문에 비난이 가중되었는데...하지만 이 당시에는 일본에 큰 일도 없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해외 기부 행사를 많이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한쪽이 이상한 멘탈.
  91. [91]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지진지역에 가장 많이 방문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창시절의 추억이 많은지 주로 중고등학교를 중점으로 가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도호쿠 고등학교 졸업식 참석이 대표적인 사례.
  92. [92] ALL MY LOVE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지진피해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하면서 다시 시작하자."는 잔잔한 이미지를 그려낸 노래라면 "또 여기서 만나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연재해로 중요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 사라진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돌아보지는 말자. 하지만 여기서 다시 만나자."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93. [93] 실제로 가장 먼저 기부단체 및 구호금 조성활동을 벌였고 아직도 유지하는 유일한 연예인이다. 2013년 1월 현재도 유지 및 활동하는 중이다.
  94. [94] 그도 그럴게 이렇게 직접 해당 지역을 수십차례 방문한 연예인은 각트가 유일하다. 역시 건덕은 착해
  95. [95] Ass Hole을 제외한 문맥을 풀이하면 "YFC멤버 중 하나로써 여기있는 나인데, 왜 내 솔로앨범얘기를 꺼내서 멤버들 병풍만드는 거냐"라는 의미이다.
  96. [96] 예를 들면한 뮤지션이 가수로써 새 앨범에 대한 인터뷰에 나왔는데, 겸업인 배우 활동 얘기하면 "지금 내 앨범 얘기하고 있는 중 아니었음? 드라마 얘기가 왜 나옴?"이라면서 화낸다거나
  97. [97] Ass Hole이 ケツの穴野郎(똥구멍 자식)이라고 직역되어서(...) 나왔다.
  98. [98] 이는 각트가 기록한 연간 싱글차트 순위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판매고는 의외로 낮은 15만여장.
  99. [99]20만장이 판매되었으며, 2009년에는 97,616장이 판매되었다. 특이하게도 꾸준히 팔려나가 2012년이 되어서야 판매고를 20만장 돌파와 함께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리고 Journey Through The Decade는 이후 각트의 마지막 20만장대 판매고의 싱글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0. [100] 팬클럽한정 앨범 아트가 엄하다. 각트와 각잡 멤버들이 나체로 팬티를 벗어던지면서 공중으로 점프하고 있다.
  101. [101] 한국에서는 챠탄이 불렀다.
  102. [102] 커플링 곡인 정열의 이나즈마는 이니셜 D 아케이드 스테이지 7 AAX의 BGM으로
  103. [103] 곡과 가사를 구상하는데 반년 이상 걸렸고, 각트 자신의 유언이라 할만큼의 곡이라고 한다. 제작기간 동안 받은 여러 사연들을 읽고,팬들과도 소통해서 탄생한 곡. 더불어 타이틀만 각트의 친필이었던 LOVE LETTER과 달리 안의 가사집과 구성이 모두 각트의 친필로 구성.
  104. [104] 곡 내부적으로는 꿈을 잃고 시대의 발전 동력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스스로 시대를 움직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의견에 비판도 많지만 그것도 스스로 건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면 충분히 좋다고 언급했다.기본적으로 지금의 나로도 괜찮은가? 에 초점이 있다고
  105. [105] LAST MOON의 수록곡
  106. [106] 각트의 허가없이 나온 앨범이다. 각트도 이 앨범 발매당시 잡지 등을 통해 사지 말라고 했을 정도(...). 판매량은 대략 34,920장으로 집계되었었다. 다만 리믹싱 퀄리티나 편곡은 현재 기준으로도 세련되게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감각적인 앨범 커버도 덤.
  107. [107] 참고로 이 앨범은 총 3가지 앨범아트가 존재하는데, 팬클럽 한정의 2개가 매우 엄하다. 1개는 엉덩이(...) 한개는 남자의 바지가 벗겨져있다. 물론 중요부위는 손으로 가렸...
  108. [108] 이시모리 프로덕션과 인도네시아 MNC 미디어와의 공동 제작 특촬물.
  109. [109] 성우와 모델이 둘 다 각트다. 이유는 캐릭터를 디자인한 노무라 테츠야가 각트의 팬이라고...
  110. [110] 위의 드왕고 CM 재활용(...)
  111. [111] 반응이 매우 좋아, 서적 발매 이후 1주일만에 10만장이 팔려나갔다!
  112. [112] GACKT JOB. 각잡이라 불리는 세션 멤버들.
  113. [113] 이때 반격으로 기타리스트인 YOU에게 "무처럼 생겼다고!"라고 반격했지만 정작 YOU가 "나 안 그래도 무로 캐릭터 만들었음" 해서 각트가 졌다. 실제로 YOU 본인의 공식 캐릭터가 무다.
  114. [114] 작은 신장은 아니지만 Malice Mizer 활동 당시 멤버 모두 굽있는 신발을 신기 시작 하면서 본인이 작아 보여 신게 되었다고.
  115. [115] 실제로 2013년 여름 인도네시아 특촬물 촬영차 내려갔을 때 촬영한 사진을 보면 그 많은 사람 속에서 혼자 높은 곳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116. [116] 실제로 신장이나 체격이 길고 큰 것은 맞다. 각트가 입었던 의상을 다른 사람이 입으면 치수가 커서 따로 제작을 하고, 본인이 소장 하는 경우가 많다. 각트가 집 사진을 공개할 때 마다 곳곳에 무대 의상이 전시 되어 있다. 특히 일본 갑옷 이라든지.
  117. [117] 구 에고이스트 플래티넘. 기존 제품인 에고이스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제품명을 바꾸었다. 샤넬 향수다운 강하고 성적이며 성숙한 향이 특징. 반대로 향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맡으면 딱 고급 아저씨 스킨 냄새(…).
  118. [118] '향수를 그렇게 뿌려대면서 그걸 다 구분하는게 신기하다.'라고 하이도가 발언했는데, 각트 본인은 와인 마니아이기 때문에, 그리고 와인은 향 뿐만 아니라 맛이라는게 존재하니 누구라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119. [119] 물론 뱀파이어 설의 연장선상의 드립일 뿐 이고 눈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120. [120] 이렇게 자고 싶을때 잔다는 말에 타카미자와가 "개랑 똑같네!"라고 발언. 각트는 "잠깐! 저 오늘 게스트입니다!"라고 응수.
  121. [121] 고등학생 무렵에 우연히 마스크를 쓴 어느 남자가 멋지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걸 보고 반해버린 각트가 다음 날 YOU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나임'이라고 하자 각트가 '그렇게 멋진 남자가 너따위일리가 없어!'하고 싸웠다고 한다. 뮤지션 답게 연주를 듣고 납득했다지만, 그 연주를 듣는 것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나. 여담으로 각트가 반한 YOU의 자태를 보고 싶다면 雪月花 -The end of silence-의 PV를 보자. 거기서 어린시절처럼 YOU가 가면을 쓰고 바이올린을 독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여성팬들이 그의 엄청나게 날씬한 허리를 보고 멘붕했다.
  122. [122] 동영상 메세지, 포토 메세지를 만들고 하고 싶은 말과 마지막에 SHOW YOU're haert 라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것.
  123. [123] 위기인 이 때에 우리가 다투면서 서로 마주해야할 필요가 있나. 라는 식이었다.
  124. [124] 2002년부터 수련해와서 현재는 유단자이다.
  125. [125] 물론 각트가 그때 한 말들 옳았고, 매니저 역시 이 때문에 뭐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것. 특히 각트는 누군가 다치는 것. 특히 아이들이 다치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 셈.
  126. [126] 대신 회비가 약 10만원 안팎이긴 한데, 돌아오는 혜택을 본다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다. 회원 전용 앨범 구입 구매권 + 행사 참여권 + 포스터 +각트랑 개인 촬영에. 아무튼 버라이어티하다.
  127. [127] 어릴 때 지진이나 자연재해에 자신도 트라우마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일본은 자연재해가 항상 곁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가르쳐도 시원찮을 판국에 그걸 폐지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였다. 논조가 상당히 격해서 제작진에게 자제 사인을 받았지만, 이 아저씨가 그걸 받아들일 양반인가. 실제로 들어보면 갑자기 열변을 토하다가 광고가 나와서 말이 짤린다! 그런데 광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미친거 아니냐!"란 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한다!
  128. [128] 참고로 이 노래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급하게 제작된 노래다. 때문에 전에 썼던 멜로디를 어쩔 수 없이 차용했다고. 후에 앨범화 되면서 수정했기 때문에 졸업식장에서 부른 것과는 약간 다르다.
  129. [129] 이 노래는 해당 학교에 완전 기부해버렸다. 즉 이 노래 앨범을 사면 그 학교 운영 수익금으로 쓸 수 있게 만들었던 것. 노래 자체는 각트는 그 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공식 앨범화 할 생각이 없었지만, 팬클럽 측의 요청으로 자신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게 허가를 요청해서 공식앨범으로 제작되었다.
  130. [130]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학교 졸업식에 와줬으면 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31. [131] 고득점을 위해서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점수가 높은 볼링 핀이다.
  132. [132] 각트가 우에스기 겐신으로 나왔던 드라마 풍림화산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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