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모바일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訓長

[image]

김홍도의 <서당>. 가운데에 앉아 계신 어르신이 훈장이다.

1. 개요
2. 외국의 훈장들
3. 훈장직에 속하는 가상인물

1. 개요

과거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의 교사 겸 교장을 뜻한다.

주로 그 동네에서 글깨나 배운 사람들[1]이거나 유랑중인 선비들이 생계를 위해 훈장이 되는 경우가 빈번했고 그 이외에도 마을사람들이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서 서당을 운영하였을 때 그 마을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을 훈장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싸움에 휘말려 지방으로 유배간 사람이 고관 출신이거나 명망 높은 사람일 경우 유배간 마을의 훈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엔 콧대 높은 양반집들도 돈을 싸들고 찾아갔는데, 요즘으로 치면 명문입시학원 스타 강사들과 비슷했다. 일단 과거 합격자라는 거 하나만으로도 남 가르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때로는 교육에 뜻이 있는 이가 사재를 털어 서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서당은 기본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만 고등 교육을 가르칠 능력은 되지 않았다. 고전에서 훈장이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에게 다른 스승을 찾아보라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러했다.현대에는 교사가 될려면 교대, 사범대에 입학하거나 임용시험을 봐야했지만 당대에 훈장이 되는데 별다른 시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2] 훈장의 학문 수준이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던 데다가[3], 서당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서민 계층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고등의 학문보다는 그냥 편지나 읽을 수 있고 벽보나 볼 수 있을 정도의 글을 가르치는 게 주된 목적이라 전체적인 교육의 질 자체가 낮았다.

때로는 조정에서 관리로 종사하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낙향 또는 귀양 온 선비들이 훈장이 되었는데 이 경우엔 정치적인 문제와는 상관없이 학문이 높은 검증된 인물라는 인식 덕에 인근에서 양반 자제들이 꾸역꾸역 몰려와서 전체적인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이로 인해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곤 했다. 그 예로 조광조의 스승 김굉필도 귀양와서 조광조를 가르쳤고 정약용다산초당에서 제자를 길렀다. 강진군의 제자들과 그 후손들은 20세기까지 계를 열어 정약용의 집안을 돕고 지냈다는 훈훈한 기록도 있다. 그의 형 정약전흑산도에서 서당을 운영했다.

일반 매체에서는 항상 정자관(程子冠)이라는 관을 쓰고 입에는 곰방대를 피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로 천자문 같은 기본적인 글과 역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최강 스킬은 바로 회초리. 실제로 서당의 교육은 꽤나 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가끔씩은 제자들을 불러 냇가나 주변 산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시짓기 대회도 해 상을 주는 등 다정한 모습도 보인 기록도 있다. 또한 훈장은 그 마을, 또는 고을의 지식인으로 학부모나 수령들에게 존경과 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문맹이 많았던 시대인지라 편지가 오면 받아읽고 보낼 편지를 대신 적어서 보내주거나 제사때 쓰는 지방이나 축문 등 을 대신 적어주는 일을 겸하기도 했다. 다만 한양같은 도심지역의 경우에는 양반의 수가 많아서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훈장의 학문수준이 떨어질때에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보통 서당 교육만으로 과거 합격을 노리기는 어렵고, 서당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천자문이나 사서삼경 완독 등)을 끝내면 지방 향교에 가거나 독학, 개인교습 등의 단계로 넘어갔다.

훈장도 사람인지라 수강료를 받고 살았는데, 강미(講米)라고 한다. 주로 쌀이나 땔감, 옷감 등을 받았는데 이것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지 지금처럼 교사노릇해서 돈벌 정도의 액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서당에 처음 입학하는 날에는 훈장에게 술, 닭, 옷감 등의 예물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예의였고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동의 부모들이 부담하며 춘추로 곡식을 내는 것이 관례였고 독신인 훈장에게는 의복, 식사, 세탁도 주선해 주었다.

조선시대 서당의 수업료는 강미(講米), 공량(貢糧), 학세(學稅), 학채(學債)등으로 불렀고 보통 서당의 강미는 대개 초학자(신입생)에게는 1년에 벼 반 섬, 그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한 섬(10말)을 받았다고 한다.

훈장과 서당은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차차 없어지게 되었다. 트인 훈장들은 신교육과 애국심을 가르쳤으나 일제가 1918년 서당규칙을 공표하면서 야학으로 변모되었다. "'훈장 0은 개도 못 먹는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고된 직업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 상에서 훈장질한다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사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단어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었으나 인터넷 상에서 쓰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 참견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표현으로 쓰인다. 선비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표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현대에는 공식 교육체계에서 훈장이나 서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한문 교사를 훈장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다. 유학이나 한문을 공부한 지식인들이 공부방을 만들고 이를 '~~서당'으로 이름 붙여서 일반인들에게 전통 예절과 한문 등을 가르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만 코메디언 김병조의 경우 조선대학교에서 명심보감 강의를 하면서 훈장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2. 외국의 훈장들

중세 아랍 사회에서도 조선처럼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치는 서당과 훈장 비슷한 글방과 선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훈장들이 존경을 받았던 조선과는 달리, 아랍 사회에서 글방 선생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는 굉장히 나빴다. 중세 아랍의 민담에서 글방 선생들은 어리석은 바보로 묘사된다.

글을 가르치는 지식인인 글방 선생이 이렇게 민담에서 바보 취급을 당한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랍 사회가 전쟁터에 나가 용맹을 떨치는 영웅들을 추앙하는 문화를 가졌기에 편하게 방에 들어앉아 글을 가르치는 선생들을 겁쟁이 정도로 하찮게 취급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듯하다.[4]

3. 훈장직에 속하는 가상인물

[image]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훈장 문서의 r300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1. [1] 주로 중인 계층
  2. [2] 그래도 마을차원에서 운영하거나 지방사족이 운영하는 서당의 경우에는 훈장의 학문수준이 일정수준 이상이 되었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서당의 경우에는 진짜로 학문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3. [3] 도심지에서는 훈장의 학문 수준이 낮을 시 장사가 잘 될 리가 없기에 평균적인 학문 수준이 높았지만, 인구가 적은 산간 오지 같은 경우에는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아 기초적인 수준의 글을 겨우 읽는 수준의 훈장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조선후기에는 무식한 훈장을 비웃는 설화나 민요도 찾아보면 은근히 있다.
  4. [4] 출처: 중동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저/ 생각비행/ 151~152쪽

분류

CC BY-NC-SA 2.0 KR(일반 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