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 FC

  잉글랜드의 여자 프로축구 클럽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위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9-20 시즌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C조

벤피카
(Benfica)

아틀레티코
(Atlético)

갈라타사라이
(Galatasaray)

아스타나
(Astana)


2018-19 시즌 참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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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풋볼 그룹

맨체스터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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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 마리노스

클럽 아틀레티코 토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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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FC}}}

Manchester City F.C.

정식 명칭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애칭

시티즌 (The Cityzens)[1]
블루스 (Blues)[2]
블루문 (Blue Moon)
샤크팀 (Shark Team)[3]

창단

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1887년 (아드윅 AFC)
1894년 4월 16일 (맨체스터 시티 FC)[4]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The Premier League)

연고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Manchester)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
(55,017명 수용 가능)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체스터 더비

소유주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나얀 (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회장

칼둔 알 무바라크 (Khaldoon Al Mubarak)

사장

페란 소리아노 (Ferran Soriano)[5]

단장

치키 베히리스타인 (Txiki Begiristain)

감독

펩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주장

다비드 실바 (David Silva)

부주장

페르난지뉴 (Fernandinho)
케빈 더브라위너 (Kevin De Bruyne)

영구결번

23[6]

공식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공식 웹 사이트 및 팬 카페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6회)

1936-37, 1967-68, 2011-12, 2013-14, 2017-18, 2018-19

EFL 챔피언십 (2부)
(7회, 최다)
[7]

1898-99, 1902-03, 1909-10, 1927-28, 1946-47, 1965-66, 2001-02

FA컵
(6회)

1903-04, 1933-34, 1955-56, 1968-69, 2010-11, 2018-19

EFL컵
(6회)

1969-70, 1975-76, 2013-14, 2015-16, 2017-18, 2018-19

FA 커뮤니티 실드
(6회)

1937, 1968, 1972, 2012, 2018, 2019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69-70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로드리 (Rodrigo Hernández Cascante)
(2019년, From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63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다닐루 (Danilo)
(2019년, To 유벤투스 FC, 3700만 £)[8]

최다 출장

앨런 오크스 (Alan Oakes) - 680경기 (1959~1976)

최다 득점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 239골 (2011~ )

리그 득점왕
(4회)

프랭크 로버츠 (1924-25)
프란시스 리 (1971-72)
카를로스 테베스 (2010-11)
세르히오 아구에로 (2014-15)

2018-19 시즌 유니폼 킷

HOME

AWAY

THIRD

GK

메인 스폰서

소매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1. 개요
2. 엠블럼
2.2. 새 엠블럼 (2016~ )
3. 역사
3.1. 창단과 짧은 리즈시절 전까지
3.2. 영광의 시대와 침체기
3.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3.4. 현재
4. 시즌별 일람
5. 역대 감독
6. 스쿼드
6.1. 1군 스쿼드
6.2. 임대중인 선수
6.3. 주요 선수
7. 스태프
8. 역대 스폰서
8.1. 메인 스폰서
8.2. 유니폼 메이커
9. 현재 스폰서
9.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
9.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10. 응원가
10.1. Blue Moon
10.2. Hey Jude
11. e스포츠
12. 이야깃거리
12.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
12.2. 한국과의 관계
12.3. 기타
13. 둘러보기

1. 개요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 블루 문 by 비디 아이[9]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트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프로 축구 클럽. 홈 경기장은 에티하드 스타디움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 2003년 ~ 현재)이다.

맨체스터의 이름을 가진 축구 팀은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안에 무수히 있지만 개중 그레이터맨체스터 주의 중심도시인 맨체스터 시를 연고로 하는 유일한 1부 리그 팀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트래포드(Trafford)가 연고지이고 볼턴 원더러스 FC, 위건 애슬레틱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볼턴위건에 속해있다. 자세한 사항은 맨체스터 항목 참조.

1880년 세인트 마크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여 1887년 아드윅 AFC로 바꿨다가 1894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구단주는 아랍 에미리트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다. 법적으로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ADUG)이 시티 풋볼 그룹의 대주주가 되고 시티 풋볼 그룹과 그 회장인 칼둔 알 무바라크가 그를 대신하여 구단을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만수르가 투자청을 세운 이유는 맨시티를 인수하기 위해서이고 그 예하의 시티 풋볼 그룹은 맨시티 인수 이후 전 세계의 다른 구단들(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 등)과 함께 지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경영 구조일 뿐이므로 최종 결재권자는 여전히 만수르이다.

2. 엠블럼

맨체스터 시티 FC의 엠블럼 변천사

맨체스터 시의회의 문장

방패를 포함해서 역대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또는 몇 군데에서만) 들어가는 상징들은 모두 본래 맨체스터 시의 상징들에서 따온 것이다. 각각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방패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발생 계기가 고대 로마 시절 요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도시가 지형적으로 방어 능력이 뛰어났던 것을 의미한다.

방패 안에서 윗부분에 있는 것은 (船)로 맨체스터가 교역도시임을 상징하며 배 아래에 물결치는 것은 맨체스터에 있는 운하를 의미한다.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물 위에 떠다니는 배를 찾을 수 있다.

그 아래의 세 개의 직선은 맨체스터의 세 개의 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어웰 (Irwell), 어크 (Irk), 메들록 (Medlock) 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미는 맨체스터가 지금은 분리되어있지만 본래 랭커셔 주의 일부였기 때문에 랭커셔 주와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인 장미가 들어간 것이다.

2.1. 검독수리

1997 City unveil a new club badge. This new design features the Latin motto “Superbia in proelio” meaning ‘Pride in battle’.

1997년 시티가 새로운 클럽 뱃지를 발표한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전장에서의 자긍심' (Pride in battle)이라는 뜻의 라틴어 모토 “Superbia in proelio”가 특징이다.

- 공식 웹 사이트의 클럽 히스토리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쓰인 엠블럼이다.

중앙의 독수리는 검독수리 (Golden Eagle)이며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는 Pride in Battle (전장에서의 자긍심)을 뜻하는 라틴어 표어인 Superbia in proelio이다. 엠블럼에는 필기체로 적혀있기 때문에 o가 a와 헷갈려 proelio, proelia, praelio, praelia 등(...) 논쟁이 있었지만 분명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proelio가 맞다.

독수리 위에 있는 세 개의 별은 세리에 A유벤투스인테르처럼 리그 우승 횟수 같은 걸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식이다.

사실 이 엠블럼의 문양은 화려해보이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역사는 참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엠블럼이 만들어진 해가 1997년인데 맨시티는 해당시즌인 1997-98 시즌 챔피언십 18위를 차지하며, 팀 역사상 최초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기 때문이다. 강등당하기 바로 직전인 당시 1997-98 시즌엔 2부 리그 14위를 차지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팀 성적이 떨어지는 와중에, 구단은 뜬금없이 100년간 쓰던 역사적인 엠블럼을 버리고,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아무 의미없는 별 세개와 독수리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당시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주변 여론은 이 사실을 비꼬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만수르 부임부터 엠블럼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교체 20년 뒤인 2016년에 전통의 엠블럼으로 회귀하게 된다.

2.2. 새 엠블럼 (2016~ )

새 엠블럼 발표

2015-16 시즌, 예전 엠블럼으로 회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다가 영국 특허청의 유출로 인해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현지 팬들과 30일 동안 엠블럼의 교체 여부와 엠블럼의 문양에 대해 협의했는데 이전의 독수리 엠블럼을 유지하자고 하는 입장은 1/3 (34%) 밖에 되지 않았으며 엠블럼을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차기 엠블럼에 들어갈, 맨시티와 맨체스터를 대표할 수 있는 색상과 상징물들을 투표했는데 색상은 하늘색 (94%) 과 흰색 (68%) 이 채택되었고, 상징물은 이전의 엠블럼에도 있었던 맨체스터의 배 (85%), 세 개의 강 (67%), 그리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붉은 장미 (60%) 가 채택되어 새 엠블럼에 조합되었다.

그 외 기타 팬들의 피드백과 기존 엠블럼 등을 포함하여 새 엠블럼을 만들었는데, 팀 이름의 배치를 위아래로 각각 Manchester, City로 나눈 것은 독수리 엠블럼에 있던 이니셜 (M.C.F.C)보다 더욱 맨시티를 대표하는 이름을 넣기 위해, 창단연도인 1894를 넣은 것[10][11]은 맨시티의 긴 역사와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패를 넣되 그 모양이 예전과는 다르게 바깥 원을 넘도록 만든 것은 방패 안의 문양을 돋보이게 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3. 역사

맨체스터 시티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3.1. 창단과 짧은 리즈시절 전까지

1880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고튼 서부에 위치한 세인트 마크스 교회 (St. Mark's Church)의 교인들이 다분히 인도적인 목적으로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알려질 축구 클럽을 창단했다. 당시 많은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맨체스터 동부, 특히 고튼에 만연해있었는데 현지인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이것을 개선하고 사회적 병폐를 줄이라는 아서 코넬 (Arthur Connell) 목사의 독려에 따라 교회 관리인인 윌리엄 비스토우 (William Beastow)와 토마스 굿비히어 (Thomas Goodbehere), 그리고 아서 코넬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 (Anna Connell)이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St. Mark's West Gorton) 라는 교회 축구 팀을 창단한 것이다. 특히 안나 코넬은 19세기에 창단된 프로 축구 팀 가운데, 창단 멤버 중에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안나 코넬이 창단에 큰 기여를 했는데 원래는 크리켓이나 럭비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지방 음주 노숙자라든지 여러 사회문제가 된 알콜중독자를 위한 스포츠로 두 종목은 맞지 않는다며[12] 축구팀을 만들자고 건의한 게 그녀였다고 한다.(2016년 9월호 베스트 일레븐 지 출처)

1884년,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되지만 불과 한 시즌 뒤에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분리되었다. 1887년에 연고지를 맨체스터 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된다. 1889년에는 하이드 로드 근처의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광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고, 아드윅 AFC와 뉴턴 히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예전 이름)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1892년 잉글랜드 축구 2부리그가 설립되었고 아드윅 AFC가 창립 멤버로 참가, 1894년에는 팀 이름을 맨체스터 시티 FC로 바꾸기도 하였으나 그 시절 리그는 매우 열악했고 지방의 중소 구단으로 자금 문제로 2부 리그로 내려갔다가 1898-99시즌에서야 드디어 1부 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시 2시즌도 안 가 강등당했다. 그러다가 1시즌 만에 승격과 같이 다음 해인 1903-04시즌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FA컵 우승과 같이 리그 2위(우승은 더 웬즈데이가 2연속 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는가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거치며 중소 구단으로서 지내야 했다.(그 와중에 1923년 홈구장 하이드 로드가 불에 타버려서 메인 로드로 경기장을 옮기기도했다.)

1925-26시즌에는 감독 없이 FA컵 우승을 하기도 하고, 맨유 원정에서 6대1로 이기기도 했지만 강등당한다(...). 1928년에는 최고의 서포터즈를 가진 클럽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34년 FA컵 우승, 라이벌인 맨유가 첫 리그 우승(1907-08시즌)을 거둔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인 1936-37시즌에서야 맨시티도 첫 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하지만 37-38시즌, 리그 42경기에서 80골이나 넣는 공격력을 보유하고도 77실점이나 허용하는(...)수비진 탓에 강등당했다. 결국 맨시티는 지금까지 다음 시즌에 강등된 유일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실점보다 높은 득점(+3)을 기록하고도 강등된 유일한 팀으로 남는다. 그래서 1951년에 전쟁포로 독일인 골키퍼 버르트 트라우트만을 전격 영입하면서 타팀의 어그로와 수비를 강화하면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승격과 강등을 거치면서 1955년에 FA컵 결승전에서 뉴캐슬에게 패해 우승컵을 내주지만, 1년 후 다시 결승에 진출해 우승한다. 1958년 뮌헨 참사에서 맨시티의 골키퍼였으며 기자로 활동하였던 프랭크 스위프트[13]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3.2. 영광의 시대와 침체기

1965년, 조 머서가 감독으로, '빅 말(Big Mal)'이라는 닉네임을 막 달았던 말콤 앨리슨이 코치로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했다.

머서와 앨리슨의 부임 이후 맨시티는 큰 변혁을 맞았다. 조 머서 감독의 지휘 아래 말콤 앨리슨은 활력 넘치는 공격진을 만들었다. 간단하지 않은 전술,투지 넘치고 정교한 축구를 3년 연속 이어갔고 2부리그로 강등된 신세에서 다시 승격, 1967-68시즌 팀의 2번째이자 31년만의 리그 우승, 1968-69시즌 FA컵 우승, 그리고 1969-70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과 함께 지금까지 맨시티의 유일한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인 UEFA 컵 위너스 컵까지, 이 모든 것은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972년 구단 앰블럼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짧은 영광도 잠시, 1971년 피터 스웨일스 회장 취임 후 조 머서가 맨시티를 떠났고, 1973년 맨시티 성공의 주역이었던 앨리슨이 조 머서와의 불화로 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팀을 떠났다. 이후 1975-76시즌 풋볼 리그 컵우승을 하지만, 1981년 FA컵 준우승 이후로 거둔 우승은 고작해야 2부 리그 우승뿐이었다.

다만 맨시티의 20세기 후반 역사를 명맥유지도 불안했던 하위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맨시티는 당시에도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구장 중 하나를 가진 인기클럽으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1980년대에도 꾸준히 관중순위 3-4위를 찍었으며, 프리미어리그 개편 전 1부리그 통산 테이블에서도 7위를 기록한다. 우승을 밥먹듯 하던 전세계구 명문은 아니었으나 리그에서 가장 입지가 탄탄한 터줏대감 클럽 중 하나로 90년대에 방만한 운영으로 강등되기 전까지는 꾸준히 중위권 정도의 성적은 냈었던 팀이다.

3.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1992-93시즌부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새롭게 개편하면서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호이자 인기팀이 될 때, 맨시티는 쇠락을 거듭했다. 그 사이 팀을 방만하게 운영해 온 피터 스웨일스는 1994년에 사임했고, 팀 레전드인 프랜시스 리가 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럼에도 팀의 경영은 갈수록 더 악화되어 1995-96시즌 챔피언십 리그(2부), 더 나아가 1997-98시즌 리그 1, 즉 3부리그까지 강등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리그 강호는 아니지만, 이것은 역대 유럽 클럽 국제 대회 우승팀 역사상 처음(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으로 3부 리그 강등기록[14]이란 불명예였다. 그나마 1시즌만인 1998-99시즌 도중에 데이비드 번스타인 회장과 조 로일 감독이 각각 취임하여 1999년에 다시 2부리그로 승격했고[15] 1999-2000시즌에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만에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그 사이 덴마크 같은 유럽축구 변방과 중국 같은 제3세계 등지에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 보강에 주력한 후, 2001-02시즌에 새로 부임한 케빈 키건의 지휘 하에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와서 승격 첫 시즌인 2002-03시즌을 9위로 마감하여 나름 선전했고, 2003년에는 영광과 오욕의 메인 로드를 떠나 새 구장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틀었다.

구장 이전 이후의 리그 성적은 연이어 16위, 15위, 14위로(단, 2004-05시즌에서는 8위를 했음.) 하위 팀으로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인 팀이었다. 2006-07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3부 리그 팀 체스터필드에게 털리고, 리그 내내 홈에서 10골만을 넣고, 리그 후반기 1월 이후엔 홈에서 단 한 골도 못 넣는 미친 대활약을 벌이면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고, 이 때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맨시티의 흑역사가 되어 쫓겨난다.[16] 컬트적인 인기를 좀 얻긴 했지만...

그러다가 2007년 쿠데타로 태국에서 쫓겨난 전 타이 총리 탁신 친나왓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매입한다. 사실 맨시티 서포터들이나 영국 반응은 무덤덤했다. 탁신은 이전에 리버풀 FC를 사려다가 실패했었고 이 와중에 자신이 리버풀 팬이란 언론 홍보를 하는 바람에 맨시티 팬들에게 '리버풀에서 거절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맨시티를 샀다'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 좀 들여서 과거 잉글랜드 국대를 지휘한 바 있는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만한 몇몇 선수들을 영입했다.[17] 2007-08시즌 맨시티는 초반 프리미어리그 3연승을 거두며 선두에 오르기도 했고, 맨유에 홈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18]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2/3 정도 치른 시점까지 챔피언스리그를 사정권에 두었다.첼시 원정 0:6 패배라는 옥의 티도 있었지만 리차드 던마이카 리차즈의 센터백 라인은 맨시티의 호성적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적생인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도 적응기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풍 팀들이 겪듯이 맨유 원정 승리 후 리그 12경기에서 3승2무7패에 그치며 리그 9위(영국 언론 포포투에서는 중위권 성적인 9위도 잘한 것이라고 평을 내렸다.)로 리그를 마쳤다. 9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그 해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탁신 구단주는 하위 팀을 중위권 성적을 거두고 25년만에 UEFA 컵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하고[19][20],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겠다고 떠들면서 정작 팀의 주전 수비수 리처드 던의 주급을 올려주지 못해 잃을 뻔하던 일[21] 등 한심하고 답이 없는 운용을 거듭하다가 태국에 있던 그의 자금이 법으로 막혀버리자 구단을 냅다 알 파힘을 통해 만수르에게 팔아 버렸다.[22]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한국에서는 니콜라 아넬카쑨지하이가 활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순지하이는 팀이 2부 소속이었던 2001-0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이적했고, 다음 시즌 팀이 1부로 승격한 뒤 탁신이 구단주로 취임했던 2007-08 시즌 이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탁신이 구단주가 된 이후 선수 보강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어 결국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악동 중 한 명인 조이 바튼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국 언론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르크 비비앙 푀의 소속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페테르 슈마이켈데이비드 시먼 등 특급 수문장들도 이곳에서 선수 말년을 보냈다.

3.4. 현재

만수르의 인수 이후 맨시티의 역사는 개별 문서를 참조 바람.

4. 시즌별 일람

  현재 시즌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2019-20 시즌 문서를, 현재 시즌(리그)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2019-20 시즌/리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시즌

EPL

FA

EFL

CS

UCL

UEL

USC

FCC

감독

2002-03 시즌

9위
(승격)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2003-04 시즌

16위
( 7)

16강

16강

-

-

48강[23]

-

-

케빈 키건

2004-05 시즌

8위
( 8)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스튜어트 피어스

2005-06 시즌

15위
( 7)

8강

48강

-

-

-

-

-

스튜어트 피어스

2006-07 시즌

14위
( 1)

8강

48강

-

-

-

-

-

스튜어트 피어스

2007-08 시즌

9위
( 5)

32강

8강

-

-

-

-

-

스벤예란 에릭손

2008-09 시즌

10위
( 1)

64강

32강

-

-

8강[24]

-

-

마크 휴즈

2009-10 시즌

5위
( 5)

16강

4강

-

-

-

-

-

마크 휴즈

로베르토 만치니

2010-11 시즌

3위
( 2)

우승
(5회)

32강

-

-

16강

-

-

로베르토 만치니

2011-12 시즌

1위
( 2)
(3회)

64강

4강

준우승

32강

16강[25]

-

-

로베르토 만치니

2012-13 시즌

2위
( 1)

준우승

32강

우승
(4회)

32강

-

-

-

로베르토 만치니

2013-14 시즌

1위
( 1)
(4회)

8강

우승
(3회)

-

16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4-15 시즌

2위
( 1)

32강

16강

준우승

16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5-16 시즌

4위
( 2)

16강

우승
(4회)

-

4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6-17 시즌
(리그)

3위
( 1)

4강

16강

-

16강

-

-

-

펩 과르디올라

2017-18 시즌
(리그)

1위
( 2)
(5회)

16강

우승
(5회)

-

8강

-

-

-

펩 과르디올라

2018-19 시즌
(리그)

1위
(-)
(6회)

우승
(6회)

우승
(6회)

우승
(5회)

8강

-

-

-

펩 과르디올라

5. 역대 감독

6. 스쿼드

6.1. 1군 스쿼드

맨체스터 시티 FC 2018-19 시즌 스쿼드[주의]

번호

국적

포지션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나이)

신체 조건

계약시작

계약만료

비고

1

GK

클라우디오 브라보

Claudio Bravo

1983년 4월 13일 (36)

184 / 80

2016

2020

2

DF

카일 워커

Kyle Walker

1990년 5월 28일 (29)

183 / 70

2017

2022

3

DF

다닐루 루이스

Danilo Luiz

1991년 7월 15일 (28)

184 / 78

2017

2022

4

DF

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1986년 4월 10일 (33)

190 / 85

2008

2019

주장

5

DF

존 스톤스

John Stones

1994년 5월 28일 (25)

188 / 70

2016

2022

7

MF

라힘 스털링

Raheem Sterling

1994년 12월 8일 (25)

170 / 69

2015

2020

8

MF

일카이 귄도안

Ilkay Gündoğan

1990년 10월 24일 (29)

180 / 80

2016

2020

10

FW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Kun' Agüero

1988년 6월 2일 (31)

173 / 70

2011

2020

14

DF

에이므리크 라포르트

Aymeric Laporte

1994년 5월 27일 (25)

191 / 85

2018

2023

15

DF

엘리아킴 망갈라

Eliaquim Mangala

1991년 2월 13일 (28)

188 / 84

2014

2019

17

MF

케빈 더 브라위너

Kevin De Bruyne

1991년 6월 28일 (28)

181 / 68

2015

2023

18

DF

페이비언 델프

Fabian Delph

1989년 11월 21일 (30)

174 / 60

2015

2020

19

MF

리로이 자네

Leroy Sané

1996년 1월 11일 (23)

183 / 75

2016

2021

20

MF

베르나르두 실바

Bernardo Silva

1994년 8월 10일 (25)

173 / 64

2017

2022

21

MF

다비드 실바

David Silva

1986년 1월 8일 (33)

173 / 67

2010

2020

부주장

22

DF

뱅자맹 망디

Benjamin Mendy

1994년 7월 17일 (25)

185 / 85

2017

2023

25

MF

페르난지뉴 루이스

Fernandinho Luiz

1985년 5월 4일 (34)

179 / 67

2013

2020

3주장

26

MF

리야드 마레즈

Riyad Mahrez

1991년 2월 21일 (28)

179 / 67

2018

2023

30

DF

니콜라스 오타멘디

Nicolás Otamendi

1988년 2월 12일 (31)

183 / 81

2015

2022

4주장

31

GK

에데르송 모라에스

Ederson Moraes

1993년 8월 17일 (26)

188 / 86

2017

2025

32

GK

다니엘 그림쇼

Daniel Grimshaw

1998년 1월 16일 (21)

185 / 77

2017

2023

33

FW

가브리엘 제주스

Gabriel Jesus

1997년 4월 3일 (22)

175 / 73

2017

2023

34

DF

필립 산들러르

Philippe Sandler

1997년 2월 10일 (22)

188 / 82

2018

2022

35

MF

올렉산드르 진첸코

Oleksandr Zinchenko

1996년 12월 15일 (23)

175 / 64

2016

2020

47

MF

필 포든

Phil Foden

2000년 5월 28일 (19)

171 / 59

2017

2020

49

GK

아로 무리치

Aro Murić

1998년 11월 7일 (21)

199 / 81

2017

2021

55

MF

브라힘 디아스

Brahim Díaz

1999년 8월 3일 (20)

170 / 68

2016

2019

74

FW

루크 볼턴

Luke Bolton

1999년 10월 7일 (20)

174 / -

2017

2020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 감독: 펩 과르디올라 /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출처: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18년 8월 31일


  1. [주의] 1.1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2. 임대중인 선수


맨체스터 시티 FC 2019-20 시즌 임대명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맨체스터 시티 FC 2019-20 시즌 임대 명단

국적

포지션

이름

영문표기

임대 구단

계약만료

임대종료

GK

잭 스테픈

Zack Steffen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23

2020

GK

아로 무리치

Aro Muric

노팅엄 포레스트 FC

2024

2020

DF

토신 애더러바이오요

Tosin Adarabioyo

블랙번 로버스 FC

2021

2020

DF

이타쿠라 코

Ko Itakura

FC 흐로닝언

2022

2020

DF

필립 산들러르

Philippe Sandler

RSC 안데를레흐트

2022

2020

MF

다니엘 아르자니

Daniel Arzani

셀틱 FC

2021

2020

MF

믹스 디스커루드

Mix Diskerud

울산 현대

2022

2022

MF

알레시 가르시아

Aleix Garcia

로얄 엑셀 무스크론

2020

2020

MF

패트릭 로버츠

Patrick Roberts

노리치 시티 FC

2022

2022

MF

메시노 료타로

Ryotaro Meshino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2022

2020

FW

루카스 은메차

Lukas Nmecha

VfL 볼프스부르크

2021

2020

※ 주의 기기 환경에 따라 펼칠 시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

6.3. 주요 선수

2018년에 구단에서 제작한 레전드 드레싱룸 그림.
좌측부터 케빈 더 브라위너, 스테프 하우튼[26], 숀 라이트필립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우베 뢰슬러, 야야 투레, 리차드 던, 게오르기 킨클라제,
숀 고터, 파블로 사발레타, 다비드 실바, 뱅상 콤파니, 마이크 서머비, 에릭 브룩, 콜린 벨, 프랜시스 리, 빌리 메레디스, 폴 디코프,
말콤 앨리슨, 토니 북, 펩 과르디올라, 앨런 오크스, 로베르토 만치니, 닐 영, 조 머서, 마이크 도일, 조 하트, 프랭크 스위프트, 베르트 트라우트만, 조 코리건, 마이카 리차즈

※ 현재 맨시티 소속 선수는 두꺼운 글씨로 표기

7. 스태프

8. 역대 스폰서

8.1. 메인 스폰서

사브
(1982~1984)

필립스
(1984~1987)

브라더 공업
(1987~1999)

에이도스 인터렉티브
(1999~2002)

FIRST ADVICE
(2002~2004)

토마스 쿡 그룹
(2004~2009)

에티하드 항공
(2009~ )[30]

8.2. 유니폼 메이커

엄브로
(1974~1997)

카파
(1997~1999)

르꼬끄 스포르티브
(1999~2003)

리복
(2003~2006)

르꼬끄 스포르티브
(2006~2009)

엄브로
(2009~2013)

나이키
(2013~2019)

푸마
(2019~ )

9. 현재 스폰서

9.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

에티하드 항공

나이키

에티살랏

아부다비 관광문화청

아바르

닛산

SAP

넥센타이어

Hays

Wix

Betsafe

QNET

EA SPORTS

Wega

DSQARED2

(주)신창중공업: 프리미어리그 2017년 11월 6일 아스날전에서 경기 직전 국민의례 행사 중 한 관객이 '신창중공업'이라는 한글이 적힌 점퍼를 입은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게 어찌나 화제가 되었는지 SNS에서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대유행했고, 신창중공업 홈페이지에 방문객들이 몰려서 접속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결국 신창중공업 측에서 '홈페이지가 마비가 될 정도로 관심을 가져 줘서 감사를 드린다'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회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관객은 신창중공업 측과 협력하는 영국 기업의 직원이며 2년 전 회사를 방문했을 때 점퍼를 선물한 것이라고.

9.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씨티은행

LG전자

Vitality

Wolf Blass

하이네켄

PZ Cussons

Whaley

PAK Lightning

Healthpoint

Soccerworld

Jiwasraya

Astra Otoparts

Tecate

Digicel

DJI 홀딩스

MTN 카메룬

SHB Bank

First Gulf Bank

AvaTrade

Barclays

10. 응원가

10.1. Blue Moon

Blue moon,

You saw me standing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of my own

Blue moon,

You knew just what I was there for

You heard me saying a prayer for

Someone I really could care for

And then there suddenly appeared before me

The only one my arms will ever hold

I heard somebody whisper 'Please adore me'

And when I looked, the moon had turned to gold

Blue moon,

Now I'm no longer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of my own

블루 문,

넌 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봤어

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블루 문,

넌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지 알았지

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들었어

그러자 갑자기 내가 평생 안을 단 한명이 내 앞에 나타났어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어

그리고 내가 보았을 때, 달은 금으로 변했어

블루 문,

난 더이상 혼자가 아니야

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10.2. Hey Jude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VS 레알 마드리드 CF

맨시티는 비틀즈의 유명곡인 Hey Jude또한 응원가로 사용한다. 맨체스터의 팀이 리버풀 출신 밴드의 곡을 응원가로 쓰는 이유는 바로 맨시티가 두번째로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프리미어 리그의 전신)에서 우승했던 1968년 당시 이 노래가 나왔기 때문이다.[31]

11. e스포츠


ESPORTS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 스쿼드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 스쿼드

국적

이름

ID

생년월일

계약년도

기종

기타

Manchester City Esports

숀 스프링겟

Shellzz

2018

PS4

리안 페소아

Ryan

1998년 2월 13일 (21)

2019

XB1

Manchester City Esports China

아루야

znbr[32]

2018

FO4

야오야쉰

tp

2019

FO4

장쉔

twins42

2019

FO4

소라윗 롯타나시라핀

Michael04

2019

FO4

임대

Manchester City Esports Korea

김성훈

Kim Sung Hoon

1988년 3월 16일 (31)

2019

FO4

서준열

Seo Joon Yeol

1994년 7월 22일 (25)

2019

FO4

김유민

Kim Yoo Min

2002년 3월 25일 (17)

2019

FO4

※ 주의 기기 환경에 따라 펼칠 시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

본국에서 FIFA 시리즈 팀을 운영하고 한국과 중국에 FIFA 온라인 시리즈 2개 팀을 운영하고있다. 중국은 2018년 창단, 한국은 2019년에 창단했다.

12. 이야깃거리

12.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

사실 만수르는 왜 굳이 맨시티를 구매했는가라는 의문은 맨시티가 만수르에게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앉지 못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에버튼 FC 등의 팀의 팬들, 그리고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제기된 의문이다. 겉으로 보면 사실 당시의 맨시티나 선덜랜드나 풀럼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특히 대부분의 팬들이 빅클럽의 팬이고 중위권 이하의 팀과 리그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 만수르가 맨시티를 구원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술된 이유로 인해 만수르는 다른 팀이 아닌 맨시티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12.2. 한국과의 관계

12.3. 기타

이 때문인지 2018-19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리야드 마레즈가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에이메릭 라포르트처럼 첫 시즌부터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존 스톤스, 뱅자맹 망디와 같이 꾸준히 부진하는 예외도 존재한다.

13. 둘러보기


  1. [1] 맨시티에 멤버쉽 가입을 한 전 세계의 공식적인 팬들을 일컬을 때는 시티(City)라는 브랜드를 살리고 싶어서인지 일반적으로 쓰는 스펠링인 Citizen이 아니라 독특하게 Cityzen이라고 쓴다. 다만 이건 구단에서 팬들에 대해 쓰는 브랜드 이름이다. 구단에서 그런 브랜드를 쓴다고 갑자기 쓰던 별칭의 철자가 바뀌는 게 아니다.
  2. [2] 현지 팬덤이 맨시티를 별칭으로 부를 때는 보통 시티즌스 같은 별칭들을 쓰지 않으며, 단순히 블루스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번 시티팬이면 죽을 때까지 시티팬(One a Blue always a Blue), RIP Blue, Come on you Blues 이런 식으로 쓴다. 다만 첼시 FC와 같이 언급할 때는 시티를 스카이 블루스 혹은 단순히 시티라고 부르며 구별한다.
  3. [3] 소속 선수인 뱅자맹 망디가 팀이 17/18 시즌 전반기에 무패를 기록하며 극강일 때 유행시킨 별명으로 팬들은 물론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쓰게 되었고 관련 상품까지 내놓을 정도로 어느덧 자리잡은 별칭
  4. [4] 2016년 새로운 엠블럼에는 창단년도를 1894년으로 인정했다.
  5. [5] 2008년까지 FC 바르셀로나의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산드로 로셀과 그 측근들이 벌인 라포르타 퇴임 운동 중 해임당했다.
  6. [6]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도중 엄청난 더위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카메룬의 미드필더 마르크 비비앙 푀의 등 번호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당시 푀는 올랭피크 리옹 소속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어 있었지만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7. [7] 잉글랜드 2부 리그 공동 최다 우승이다(...) 이 팀이 만수르의 인수 전까지 험난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팀은 레스터 시티 FC로 여기도 2부 리그 우승을 7번 기록했다.
  8. [8] 2위는 2005년 숀 라이트 필립스(첼시) 3100만 £, 3위는 2015년 알바로 네그레도(발렌시아)의 2700만 £ 이다.
  9. [9] 2분35초경부터 이어지는 노래는 'The Beat Goes On'이라는 비디 아이의 1집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의 수록곡이다.
  10. [10] 정확히는 아드윅 AFC가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꾼 연도이다.
  11. [11] 한국에서는 연도를 저렇게 두 자씩 끊어놓은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본래 연도를 읽을 때부터 두 자씩 끊어서 읽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12. [12] 아닌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다른 교회 스포츠팀에서 크리켓에서 하라는 크리켓 배트로 상대방을 두들겨패고 패싸움이 벌어지거나 럭비도 공은 내팽개치고 사람을 들이박아 싸우기 일쑤였다고...
  13. [13] 맨시티 역대 키퍼 중 베르트 트라우트만 다음 두 번째로 뛰어났다고 꼽히는 레전드 키퍼이다.
  14. [14] 2004-05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가 리그 1로 강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
  15. [15]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3부리그 3위로 승격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맨시티는 6위였던 위건 애슬레틱을 제압하고 결승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제압한 질링엄 FC와 상대해야 했다. 당시 질링엄 감독은 토니 퓰리스. 맨시티는 질링엄을 상대로 후반 36분과 후반 41분에 실점하며 승격은 물건너가는 듯 했는데, 추가시간에만 2골을 득점하며 승부를 극적으로 연장으로 끌고갔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16. [16] 참고로 이 당시 피어스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속팀에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셌다. 물론 맨시티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청소년 대표팀 자리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간 키워온 선수들을 이끌고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섰지만 8강에서 한국에게 져 탈락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17. [17]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영입으로는 롤란도 비앙키, 발레리 보지노프, 베드란 콜루카, 지오반니, 겔손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가리도가 있다.
  18. [18] 2008년 2월 10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뮌헨 참사 5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있었는데 맨시티가 맨유를 2:1로 꺾으며 맨유팬들을 더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19. [19] 이 때 맨시티 팬들은 에릭손을 지킨다며 Save Our Sven, 줄여서 SOS 캠페인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맨시티는 리그 최종전에서 사실상 태업성 플레이를 하며 리그 최종전 미들즈브러 FC에게 8-1로 패하기도 한다.
  20. [20]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마크 휴즈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맨유 레전드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어 논란이 있었다.
  21. [21] 정작 그 당시 던의 폼은 완전 최악이었고 주장 안 시켜준다고 징징대고 있었다. 결국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다.
  22. [22] 탁신은 덕분에 2배 이상 이득을 보았다. 그리고, 탁신의 후광을 입고 맨시티에 입단했던 태국 선수 3명은 2008년 10월에 전원 방출되었다.
  23. [23]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예선의 개념이 없었다.
  24. [24] 전 시즌이었던 2007~08 시즌에 '유럽 최고의 페어플레이 팀'으로 선정되어 출전했다.
  25. [25]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3위 팀 중 상위권을 차지함에 따라 16강부터 참가하게 됨.
  26. [26] 여자축구 선수.
  27. [27] 토미 도일의 친할아버지
  28. [28]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겠지만, 라이트 필립스는 1999년 맨시티에서 프로 데뷔해 2005년까지 153경기 26골을 기록했고, 그가 첼시 FC로 이적하면서 남긴 31.5m 유로는 14년동안 다닐루가 판매되기 전 까지 깨지지 않았던 맨시티의 판매 클럽 레코드이다.또한 2008년에 맨시티로 돌아와 2011년까지 뛰면서 64경기 9골을 기록했다. 합계 9년동안 219경기 35골과 그가 떠나면서 팀에게 남겨준 31.5m 유로의 이적료를 생각해 볼 때 팀의 레전드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29. [29] 너무나도 당연히 팀 레전드로 꼽혀도 문제 없었으나, 15-16시즌 중후반부터 보여주는 야야의 행보때문에 적잖은 팬들이 등을 돌려버렸다. 그래도 16-17시즌 중반들어 개과천선한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주면서 지지도도 회복했다. 그러나 17-18시즌 종료 후 펩을 자신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자라고 몰아가 팀 분위기도 망치는 소리를 한 덕분에 다시 팬들은 등을 돌려버렸다.
  30. [30] 유니폼의 스폰서와는 별개로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명명권 계약은 2011년에 체결되었다.
  31. [31] 출처
  32. [32] 이전 닉네임 Ronaldo
  33. [33] 결국 토트넘은 확장 이전하긴 한다
  34. [34] 물론, 에버튼과 토트넘의 라이벌인 리버풀과 아스날 역시 세계적인 명문 클럽이다.
  35. [35]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선더랜드도 1부리그에서 뛴 역사가 깊고 우승기록도 상당하며, 팬층도 두꺼워 홈구장이 5만석에 육박하는 인기클럽으로 관점에 따라 잉글랜드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기도 하는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이다. 2부리그 시절, 선덜랜드 팬인 서형욱이 2000년 초에 직접 2부리그 경기를 보러 갈때도, 2부리그로 강등당하던 시절에도 선덜랜드 서포터들은 2~3만명 수준 관중을 유지할 정도로 팬층이 두텁다.
  36. [36] 기껏해야 세리에ASS 라치오, SSC 나폴리 정도뿐이며, SSC 나폴리가 마라도나의 힘 덕에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세계적으로 하늘색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37. [37] 또한 이름에 시티가 들어가는 팀으로서 그나마 가장 역대성적이 좋은 팀이다. 버밍엄 시티, 스토크 시티, 헐 시티 같은 다른 팀들은 죄다 하위리그 팀이거나 늘 강등권에 시달리고 있으며, 역대 우승 성적을 봐도 맨시티보다 떨어진다. 맨시티는 유로파 리그 전신인 위너스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으며, 시티라는 단어가 들어간 팀으로서 유일무이한 유러피언 클럽 대회 우승팀이다. 지금은 2부리그 팀인 버밍엄 시티가 1960~61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유로파 리그 전신) 준우승(우승은 AS 로마)을 한 게 있긴 하다. 이게 이름에 시티가 들어간 팀으로선 유이하게 맨시티랑 같이 유러피언 클럽 대회 결승 진출 기록. 더불어 리그에서도 맨시티가 그동안 시티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리그 우승팀이었다가 2015-16시즌에 레스터 시티가 우승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
  38. [38] 반대로 버나드 섬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다. 참고로, 오아시스의 1~2기 멤버였던 폴 본헤드 아서스도 맨유 팬. 그 덕분에 95년 당시 맨체스터 시티와 싸우는 다른 팀의 경기에서 갤러거 형제가 맨시티를 응원하고 있을 때 본헤드 혼자만 다른 팀을 응원했는데 맨시티가 우승을 거두자 갤러거 형제에게 물폭탄을 맞으며 놀림당하는 모습이 슈퍼소닉 다큐를 통해 얼핏 나왔다.
  39. [39] 유니폼 색깔도 맨시티를 상징하는 하늘색인 경우가 많다.
  40. [40] 당장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18-19시즌 주장이었던 뱅상 콤파니, 19-20 시즌 주장인 다비드 실바, 골키퍼인 윌리 카바예로부터 시작해서 야야 투레, 라힘 스털링, 가브리에우 제주스, 엘리아큄 망갈라, 페르난지뉴, 파블로 사발레타, 페르난두, 파비안 델프, 바카리 사냐, 아론 무이 등등 최소 맨시티에 있는 동안 한번 이상 빡빡이였다.
  41. [41] 타팀에선 그렇게 많이 보이는 스포츠 헤어컷이지만, 시티에선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나마 최근 장발 스타일로 시티에서 뛴 선수라면 데미첼리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발로 잘랐다.
  42. [42] 사실 두 팀이 처음으로 대립 구도를 세운 건 2013-14 시즌이고, 2015-16 시즌엔 리그컵에서도 구도가 생겼으나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리버풀의 전력이 상승한 2016-17 시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