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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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름
3. 지리
4. 관광
5. 역사
6. 기후
7. 정치
8. 문화적 특징
9. 이야깃거리
10. 출신 인물

1. 개요

그리스 남부 에게 해와 지중해에 걸쳐있는 섬으로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이며 지중해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유럽의 최남단[1]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산토리니나 미코노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해외에서는 산토리니 못지 않게 관광지, 휴양지로 유명한 그리스 섬이다. 오히려 좁디 좁은 산토리니보다는 영토 면적이 넓은 크레타가 더 돌아다니기 좋다는 평가를 내리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있다.

2. 이름

그리스어: Κρήτη, Kríti

영어: Crete

터키어: Girit

라틴어: Creta

독일어: Kreta

3. 지리

크레타섬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인데, 동에서 서까지 260km에 이르지만 남북으로 그 폭은 60km 정도이며, 폭이 12km에 불과한 부분[2]도 있다.

크레타섬 모양

크레타에는 산지가 많고, 동에서 서로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다. 가장 높은 산은 프실로리티스 산[3]으로 높이가 2,456m이다. 크레타섬엔 협곡도 많은데, 특히 사마리아 협곡이 유명하다. 사마리아 협곡은 그 길이가 16km 가량으로, 유럽에서 가장 긴 협곡 중 하나다. 그리스 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 가량을 올리브 나무가 차지하고 있으며, 올리브 농업은 관광업과 더불어 크레타섬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흔한 크레타의 전원풍경

4. 관광

한국에선 크레타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해외에서 크레타는 손꼽히는 여행지다. 특히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4] 매년 수백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크레타에 방문한다. 매년 트립어드바이저가 전세계 여행자들에게 투표를 받아 "세계 최고의 여행지" 랭킹을 매기는데, 크레타는 이 랭킹에서 늘 최상위권에 랭크된다.[5] 최근 들어 크레타섬에 방문하는 한국인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 크레타섬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도 있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배를 타고 크레타섬에 갈 수 있다. 하니아, 이라클리오에 각각 공항과 항구가 있다. 크레타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사마리아 협곡, 크노소스 궁전, 하니아 항구, 엘라포니시, 발로스, 프레벨리, 아르카디우 수도원 같은 곳들이 있다.

크레타의 중심도시인 이라클리오의 항구

5. 역사

크레타 섬의 역사는 키프로스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크레타 섬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꽃피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흔적은 크레타의 주도인 이라클리오(Ηράκλειο) 인근의 크노소스 궁전 정도밖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벽화와 도기 등을 보면 무척이나 화려하고 생기넘치는 해양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섬의 이름인 '크레타'도 BC 8세기경의 시인인 호메로스일리아드에서 이미 언급된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인들은 크레타 출신으로 추정된다.

미노아 문명의 프레스코벽화

고대 크레타 / 미노아인들의 복장

하지만 이후 고전기에 이르면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촌구석 쩌리로 여겨지다가 고대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거치는데, 그 와중에 826년부터 960년까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4차 십자군 원정 이후로 크레타 섬에 쳐들어온 베네치아가 접수해서 400여 년간 지배했다가 이후 베네치아인들을 쫓아낸 터키인들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1898년까지 받게 된다. (크레타 공방전 문서 참고) 힘들게 섬을 정복한 오스만 측은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세금을 제국 내에서 가장 낮게 내게 하여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나갔다. 따라서 18세기 말엽에 이르면 섬 인구 중 절반이 무슬림이 되었으나 나머지 기독교도들도 별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크레타 전쟁 당시의 게릴라들

이후 크레타는 잠시 크레타 자치국(Κρητική Πολιτεία)이라는 형태로 독립했다. 크레타인들은 이미 그리스 본토가 독립한 19세기 중엽부터 꾸준히 게릴라 활동을 통해 오스만 제국 정부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고, 섬의 임시정부를 출범하여 그리스영국 등으로 하여금 터키와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이르렀다. 이후 크레타는 자체적으로 드라크마 화폐도 찍어내고 하다가 결국 계획대로 1912년에 그리스와 합병됨으로써 짧은 역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섬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크레타 섬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한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에, '동지중해의 항공모함'[6]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바 있다.

6. 기후

크레타의 기후는 무척 온화하며,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비가 전혀 오지 않아서 몇 개월 동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계속 된다. 하지만, 겨울에는 장마처럼 비가 온다. 크레타는 바람이 많은 섬으로도 유명하다.[7]

7. 정치

그리스의 정치에서 크레타는 전통적으로 좌익 세력의 든든한 텃밭이자 아주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지역이다.

1974년 왕정으로 복귀할건지 공화국으로 갈건지 묻는 투표에서 크레타는 80~100%의 지지로 공화정을 지지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도 늘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을 지지한 텃밭이였다. 2004년 선거에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이 대다수의 지역을 신민주주의당에게 털릴 당시에도 크레타는 굳건하게 사회주의 운동을 지지했다. 2010년대 이후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이 몰락하고 급진좌파연합(시리자)가 등장한 이후로는 선거에서 시리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2019년 그리스 총선거에서도 본토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신민주주의당이 우세했는데 크레타 섬만은 모든 지역구가 급진좌파연합이 우세했다.

8. 문화적 특징

본토와는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 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크레타 주민들은 자신을 그리스인이라고 하지 않고 크레타인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크레타 섬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적들에게 시달려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크레타의 수도원이나 주택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두 철저하게 요새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크레타의 문화는 상무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가령 대부분의 마을들은 한두 가문의 일족들이 함께 거주하는 집성촌의 성향이 짙으며 강력한 공동체적 연대와 더불어 크레타인 특유의 명예의식과 더불어 마을간의 갈등도 심했다. 과거의 경우 심하면 마을과 마을끼리 칼을 들고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다른 그리스 지역도 그렇지만 크레타 남자들은 전통복장을 입을 때 반드시 허리띠에 칼을 차는데 이는 남자다움의 상징이다. 전통춤들도 대부분 여럿이서 함께 '통일성'과 '단결'을 중시하는 춤들이 많은데 이는 과거 크레타 전사들이 훈련 겸 놀이 겸해서 춤을 추던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레타인의 전통복장. 터키인의 전통복과 매우 닮아있지만 크레타 남성들은 머리에 술 달린 머리띠를 한다는 게 결정적인 차이이다. 이 장식은 수천 년 전인 미노아 문명 시절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유서가 깊다.

다른 그리스 지방들과는 달리 크레타는 지중해 한복판에 위치한 무역거점지였고, 또한 남쪽의 이집트와 서쪽의 이탈리아, 동쪽의 아랍과 페르시아, 북쪽의 흑해터키 등의 교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고대시대부터 여러 외국인들이 크레타 섬에 정착했으며 그 결과 독특한 크레타만의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가령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섬 주민들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49% 정도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고, 이들과 동방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들과는 매우 조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또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있는 크레타의 전통복장이나 악기, 민요와 방언 등을 보면 본토의 그리스인보다는 차라리 서부 터키인에 가까울만큼 동방적인 면모를 풍긴다.

1861년 당시 크레타의 인종 분포. 파란색이 그리스인. 붉은색이 튀르크인 및 무슬림 그리스인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독립하고 크레타 내에서 정교인인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 터키 봉기가 일어나자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다시 정교회로 돌아오거나 터키로 떠나는 식으로 이주가 이루어져 크레타 독립 당시에는 불과 12% 정도만이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터키 독립전쟁이 끝나고 체결된 1923년 로잔 조약 이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터키인으로 간주되어 터키로 추방되었다. 대부분 터키어는 한두마디도 모르던 주민들을 말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 터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은 과거부터 터키에서 거주했고, 이스탄불에 거주해서 인구교환협정을 적용받지 않은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rum)과 크레타 섬에서 추방되어 터키로 온 이슬람교를 믿는 그리스인(giritli)으로 구분된다. '기리틀리'는 터키어로 크레타 사람이라는 뜻이고, 이들은 모국어로 그리스어를 사용하지만 정교회를 믿는 rum과는 대립하고있다. 이스탄불에 가면 그곳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의 절반 정도가 기리틀리이며, 또한 에게 해 지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8]

크레타의 민요[9]

9. 이야깃거리

크레타 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올리브 나무가 있다. 크레타섬 서부의 부베스라는 마을 근처에 있는 이 나무는 거의 3000년 이상 묵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열매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열매로 요즘도 올리브 오일을 짠다고 한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이 바로 크레타 섬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크레타로 일종의 순례 여행을 가는 여행자들이 있다. 크레타섬 이라클리오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과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있다. 앤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많은 장면들이 크레타섬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미노아 시대에 투우가 있었으나, 현대 스페인의 투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투우사는 소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소가 돌진하여 충돌하기 직전 소의 뿔을 잡는다. 소는 적을 들이박는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를 위로 튕겨 올리는데, 이 힘을 역이용해 투우사가 공중으로 뛰어 올라 공중제비를 넘는다. 즉 엄밀히 말하자면 투鬪우가 아니며, 영어로도 Bullfighting이 아닌 Bull-leaping(소 뛰어넘기)으로 표기한다. 이 투우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는데, 공중제비를 성공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풍년이 오기 쉽다고 생각했다고 카더라. 또한 이 의식은 남녀 모두 참여하였다. 미노타우로스 전설도 이 투우에서 나왔다고 한다.

10. 출신 인물


  1. [1] 정확히는, 크레타섬 남쪽 근해에 있는 가브도스 섬이 유럽의 최남단이다. 가브도스 섬은 크레타 주에 속해 있다.
  2. [2] 이에라페트라
  3. [3] 이다 산이라고도 한다
  4. [4] 유럽의 제주도라고나 할까.
  5. [5] 2019년 트립어드바이저 "세계 최고의 여행지" 순위: 1위 런던 - 2위 파리 - 3위 로마 - 4위 크레타 - 5위 발리. 도시 아닌 곳 중에서 크레타가 사실상 1위다.
  6. [6] 크레타 섬이 배경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 상황을 여인숙을 운영하는 늙은 여주인이 한때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4개국 함대의 제독을 혼자 전부 사로잡았다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비유한 장면이 나온다.
  7. [7] 이래저래 제주도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8. [8] 터키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해안 지대에도 수천 명 규모의 무슬림 크레타인 공동체가 있다. 1897년 그리스-터키 전쟁이 끝나자 술탄 압둘 하미드 2세가 당시 오스만 제국 영토였던 그 지역으로 피난처를 알선해주었기 때문.
  9. [9] 크레타 사투리로 부르는데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κ를 ts로 발음하는 크레타 사투리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0. [10] 엘 그레코는 스페인어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래 이름은 도미니코스 쎄오토코풀로스(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였으며 젊은 시절에 베네치아로 이주했다가 스페인에 정착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