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산체스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No. 17

호아킨 산체스 로드리게스
(Joaquín Sánchez Rodríguez)

출생

1981년 7월 21일(38세)

국적

스페인

출생지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

신장

179cm

포지션

윙어

등번호

17번

클럽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B (1999~2000)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00~2006)
발렌시아 CF (2006~2011)
말라가 CF (2011~2013)
ACF 피오렌티나 (2013~2015)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5~)

국가대표

51경기 4골

1. 소개
2. 클럽 활약상
2.1. 레알 베티스
2.2. 발렌시아 C.F.
2.3. 말라가 C.F.
2.4. ACF 피오렌티나
2.5. 레알 베티스로 복귀하다
2.5.1. 2018-2019 시즌
2.5.2. 2019-2020 시즌
3. 국가대표 활약상
4. 여담
4.1. 같이 보기

1. 소개

레알 베티스 소속의 스페인 축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이다. 중위권 베티스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포지션 정점을 찍어본, 월드 클래스로 평가 받았던 선수였다. 아쉬운 점은 소속팀 복이 없었다는 것. 충분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빅 클럽으로 이적할 수 있었지만 베티스에 대한 애정, 애매했던 이적 시기로 인해 커리어 내내 전통적인 명문 클럽에선 활약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발렌시아, 말라가, 피오렌티나 정도의 팀이었으니. 그래도 정상급 라이트 윙어하면 꼭 언급되던 선수 중 하나얐다.

클래식 윙어가 사라지는 경향 속에서도 적절히 적응하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특히 17/18 시즌 베티스의 유로파 리그 진출을 견인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2002 월드컵 8강 한국전에서의 여러 가지 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클럽 활약상

2.1. 레알 베티스

1999년 레알 베티스 B 팀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는데, 1999년 스페인 유스 대회에서 베티스를 우승시킨후 당시 FC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루이 판 할 감독이 극찬하였을 정도. 당시 강등되었던 그래도 이제는 재강등후 승격된 베티스를 맹활약과 함께 프리메라 리가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그 레알 마드리드 C.F.호베르토 카를로스를 농락하는 등의 뛰어난 활약을 하며 당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카마초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대엔 재능있는 풋내기 였음에도 2002년 월드컵에 주전으로 등장하여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 망한 가이즈카 멘디에타보다 풋사과인 호아킨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월드컵 8강전에서 MOM급 활약을 보이며 대한민국 수비진을 털던 모습은 아직도 많이 회상될 정도. 하지만 경기의 판정도 한동안 말이 많았을 정도로 좀 석연찮은 데다가[1] 막상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오니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다.[2] 이 장면은 홍명보가 넣고 4강에 기뻐하는 장면과 함께 뱅크샷으로 꽤 많이 우려먹어진다. 안습. 그 경기의 MVP로 뽑혔지만 승부차기를 실축한 후 그 특유의 벙찐표정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그 다음날에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호텔 창가에 앉아있는 사진이 공개되어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2년 이후 베티스에서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중하위권 정도의 빅 클럽이 못되는 베티스의 중흥을 이끌지만 호아킨은 베티스에 대한 애정이 강했으며, 베티스 역시 자기팀의 프랜차이즈이자 에이스인 선수를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호아킨의 영입설에 가장 근접한 팀은 바로 지구방위대로 명성을 떨치던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호아킨 자신이 루이스 피구를 그렇게 존경하기에 레알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였지만 레알이 선택한건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3][4]

어쨌건 이적도 물건너 간후, 강한 기복과 함께 상당히 지지부진하며 유로 2004에서도 부진한 플레이와 함께 까이면서 묻히나...싶었지만 04/05시즌에 다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 무엇인지 호아킨은 보여 주었다. 시즌 도움왕에 등극함과 함께 베티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시즌 MVP를 줘도 아깝지 않는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때는 아직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가 국내에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단 1시즌 뿐이었지만 호아킨은 이미 최정상을 한번 찍어본 선수다.

이러한 대활약과 함께 수많은 빅 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내었으며, 특히 부유한 첼시 FC에서 정말 강한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높으신 분들이 직접 행차하셔서 이적을 추진하였을정도. 하지만 호아킨은 그런 러브콜을 다 거부하며 베티스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챔스에서도 호아킨의 현란한 플레이가 먹힐지 주목을 받았으나...

챔스도 나갔으면서 선수보강이 부족하여, 특히 호아킨의 공백을 매울수가 없었기에 호아킨은 매 경기 선발출전하면서 혹사를 당하면서 정말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게된다. 결국 망했어요.

결국 2006년 월드컵에서의 오른쪽 윙 주전은 리버풀 FC에서 빛나는 간지를 내뿜던 루간지 루이스 가르시아에게 넘겨주고 만다. 근데 루이스 가르시아도 기복 엄청 심한데...

그렇다보니 베티스는 팀의 아이콘인 호아킨을 이적시키게되는 초강수를 두게되며, 호아킨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정든 베티스를 떠나며 유리몸미남들이 바글바글한 빅클럽 발렌시아 C.F.로 이적하게 된다. 호아킨 역시 미남이다. [5]

2.2. 발렌시아 C.F.

2006년 8월에 25m 유로로 발렌시아 C.F.로 이적하여 첫 시즌에 35경기 출장 5골을 기록했다.

마침 발렌시아의 왼쪽 윙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비센테 로드리게스가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게임에나 나올 전설의 윙어라인인 좌센테 우아킨을 기대했지만... 비센테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호아킨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팀내 고참급 선수였던 앙굴로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8강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애쉴리 콜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하며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여줘 팬들로 하여금 호아킨이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일 것이라 기대하게 하였지만, 07-08시즌 초반 성적부진으로 키케 플로레스 감독이 경질되고 희대의 먹튀 로날드 쿠만이 감독으로 오면서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때 호아킨의 안습행보가 정말 두드러졌는데, 쿠만이 호아킨의 플레이를 두고 30유로 수준이라고 디스한 것부터 시작하여[6] 본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인 호아킨을 왼쪽 윙이나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는 등 정말 별 방법으로 다 굴려졌다.[7][8]

쿠만 감독이 경질되고 08-09시즌에 부임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지휘 아래 호아킨은 다시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다비드 실바의 부재 시에는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신임받았으나 헤타페 CF 에서의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뒤 바이백 조항으로 팀에 복귀한 파블로 에르난데스가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호아킨은 다시 힘겨운 주전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09-10시즌에 들어서면서 에메리 감독은 후안 마타와 함께 다비드 비야를 측면에서 지원해줄 자원으로 호아킨에 비하면 측면에서의 파괴력이 떨어지나 더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한 파블로를 더 선호했고, 호아킨은 그의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을 더 잘 살릴수 있는 장신 공격수 니콜라 지기치와 기용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상황에 격분한 호아킨은 결국 훈련장에서 에메리 감독을 상대로 패드립 (...)을 시전하는 등 관계가 악화되나 싶었지만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2010-11시즌 팀내 3번째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비야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7번을 부여받게 되었고 파블로가 부진한 사이 다시 주전자리를 꿰차게 되었다.특히 11월에는 라 리가 돌파 성공률 순위 1위에 랭크되기도.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시즌 막바지에 말라가 CF와의 링크가 지속적으로 뜨더니 결국 말라가 이적에 합의했다.

2.3. 말라가 C.F.

2010-11 시즌이 끝난 후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있는 말라가 C.F.에 영입되면서 발렌시아 C.F.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 23경기에 출전해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상을 보였으며, 팀은 프리메라리가 4위를 차지해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12-13 시즌에는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해 전 시즌보다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0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공헌하는 등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8강전에서는 1차전 홈에서 0:0무승부로 마쳤지만 2차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말라가의 4강행 신화를 써내려가나 싶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마르코 로이스와 펠리페 산타나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팀은 2:3으로 분패했다.

2.4. ACF 피오렌티나

2013-14 시즌을 앞두고 말라가의 재정 악화로 인해 세리에 A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2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4-15 시즌에는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선보이며 피오렌티나의 중심 선수로 거듭났으며, 피오렌티나 또한 호아킨의 활약과 맞물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2014-15 시즌이 끝난 상황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레알 베티스로 복귀를 고려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레알 베티스로 간다는 오피셜이 떴다. #

2.5. 레알 베티스로 복귀하다

2015년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2006년 이후 9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루벤 카스트로와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베티스가 이기는 경기에서는 거의 항상 이 두 베테랑이 뭔가를 해주는 것이 공식과도 같은 상황. 16라운드 기준으로 공격포인트는 1골, 2도움을 기록 중이지만 실제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스탯 그 이상이다. 팀 역시 5승 5무 6패로 승격 첫 해에 순항 중이다.

2016-17 시즌에는 찰리 무손다를 주전에서 밀어냈다.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무손다는 첼시로 돌아갔다.

17-18 시즌에도 여전한 활약으로 시즌 후에 AS 선정 라리가 베스트 XI에 뽑혔다.

2.5.1. 2018-2019 시즌

2018-2019 시즌 9월 3일 지역 라이벌 세비야를 상대로 벌인 안달루시아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12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팀의 2번째 득점을 터트린 후, 세르히오 카날레스와 교체되었고, 팀은 4:3으로 승리하였다.

2월 7일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발렌시아전에서는 코너킥 키커로 나서 일명 바나나킥을 선보이면서 득점을 기록했다.

나이가 있어서 가끔 선발로 이곳저곳(세컨탑, 윙백) 나오지만, 나올때 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2.5.2. 2019-2020 시즌

라리가 6라운드. 레반테와 경기에서 팀의 3골에 모두 기여하고 키패스를 7회나 성공시키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3:1 승리에 공헌했다.

3. 국가대표 활약상

베티스에서의 활약으로 2002년 2월 13일 포르투갈과의 A매치에서 첫 데뷔하였고,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스페인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도 선발되었다.

한국의 2002 월드컵 8강전은 광주월드컵경기장 에서스페인과 맞붙었고, 호아킨은 선발 출전하여 120분 내내 대표팀을 괴롭혔다. 호아킨이 담당하던 오른쪽은 그에게 유린당하다시피 했으며, 이는 우승팀 브라질도 제대로 뚫은 적이 없던 영혼의 5백(정확하게는 7백에 가까운 구조)을 뚫어낸 유일한 경기였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와 실축했는데, 이는 양 팀 통틀어 유일한 실축으로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으로 끌어올려 주신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제일 인상깊었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가 한국의 4강진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만 셈.

귀국한 후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그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유로 2004에도 참가했으나 호세바 에체베리아에 밀려 주전으로 뛰지도 못했으며 스페인도 조별예선에서 광탈했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3경기에 출장했으나 인상깊은 활약을 보이진 못했으며 발렌시아 이적 이후 부진에 빠지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유로 2008 지역예선 북아일랜드전 이후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유로 2008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9]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 실바와 이니에스타를 백업해줄 역할도 산티 카솔라헤수스 나바스에게 완전히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월드컵 직전에 비센테 델 보스케가 뽑겠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였으나 그 직후 부상. 그렇게 나바스가 대신 월드컵으로 가면서 대표팀과 멀어지게 된다.

4. 여담

호아킨을 두고 나오는 별명으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 축구계의 서브컬처[10]에서 2000년대 중반 앨런 스미스리즈시절세리에 7공주에 버금가게 많이 사용된 유행어로, 아이러브사커에서 호아킨vs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비교글이 올라오자 댓글이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로 뒤덮인 것이 발단이 되었다.[11] 사실 그뿐만 아니라 '장난? 호아킨 쩝니다'라는 댓글도 꽤 임팩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줄여부르기 편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 쪽이 더 유행세를 탔다.

당시 호아킨은 베티스의 소년가장으로서 레알 이적이 가시권에 있었던 라리가 정상급 선수였고 호날두는 맨유에서 포텐이 덜 터져서 섹날두, 혼자우두 등으로 까이던 시절이라 그런 반응이 나왔던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아호 드립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던 바로 그 해(2007년)에 호날두가 제대로 터져서 발롱도르 2위를 먹으면서 그아호 드립은 완전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 괴물이 된 호날두와 호아킨은 물론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은 호아킨이 유로2008 이후로 퇴물(...)취급받자 호아킨을 옹호하기 위한 팬들의 발언으로 자리잡았다. 꽤나 안습한 별명임에도 지금은 호아킨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호아킨이 위에 언급한 월드컵에서의 승부차기 실축의 여파(?)인지 페인 양성기로 유명한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는 호아킨의 승부차기 능력치를 짜게 준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도 아니기에 무시되는 부분이긴 하다.

10월 25일 챔스 경기 후에 호아킨 사진과 함께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올라왔다. 그래도 탈모는 못막아

4.1. 같이 보기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8-19 시즌 1군 스쿼드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영문 이름

비고

1

GK

호엘 로블레스

Joel Robles

2

MF

프란시스 게레로

Francis Guerrero

3

MF

하비 가르시아

Javi García

4

DF

주하이르 페달

Zouhair Feddal

5

DF

마르크 바르트라

Marc Bartra

6

MF

세르히오 카날레스

Sergio Canales

3주장

7

FW

세르히오 레온

Sergio León

8

MF

이누이 다카시

Inui Takashi

9

FW

안토니오 사나브리아

Antonio Sanabria

10

MF

리야드 부데부츠

Ryad Boudebouz

11

FW

크리스티안 테요

Cristian Tello

12

DF

시드네이

Sidnei

13

GK

파우 로페스

Pau López

14

MF

윌리엄 카르발류

William Carvalho

16

FW

로렌 모론

Loren Morón

17

MF

호아킨 산체스

Joaquín Sánchez

주장

18

MF

안드레스 과르다도

Andrés Guardado

부주장

19

DF

안토니오 바라간

Antonio Barragán

20

DF

후니오르 피르포

Junior Firpo

21

FW

조바니 로첼소

Giovani Lo Celso

임대[a]

23

DF

아이사 만디

Aïssa Mandi

구단 정보

감독: 키케 세티엔 / 홈구장: 베니토 비야마린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마지막 수정 일자: 2018년 9월 30일


  1. [a] 1.1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임대


  1. [1] 이는 2000년대 스페인 축구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 워스트 10 안에 들어가기도했다.
  2. [2] 축구에서는 정규시간에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선수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갔을때 실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된 것이다.
  3. [3] 이 소식을 접한 호아킨은 정말 살빠지도록 울었다고 하는 후문이 있다.
  4. [4] 하지만 그래도 아직 04/05년도 시즌에 레알의 플로렌티노 페레즈회장이 직접 언제 오냐고 하였을 정도.
  5. [5] 이적확정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호아킨의 눈물을 흘리며 했던 "저는 떠나지만 영원한 베티코(베티스의 팬) 입니다" 라는 인터뷰가 워낙 인상깊어서 발렌시아 팬들 사이에서 강제로 빼내온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6. [6] 호아킨은 이에 대항해 "당신이 여기와서 가장 고민한 건 '저녁식사 때 무슨 와인을 먹을까' 밖에 없잖수?" 라고 받아쳤다.
  7. [7] 하지만 이 흑역사로 인해 포지션 다양화를 장착하게 되어 각종 전술 변화 속에서 윙에서 미드필더, 원톱까지 다양하게 굴려지지만 어떤 위치에서도 제 몫을 해내는 만능형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8. [8] 첨언하자면 호아킨이 원톱으로 기용된 경기는 하필이면 친정팀 베티스와의 국왕컵 경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아킨이 헤딩으로만 2골을 기록하며 발렌시아가 2:1로 승리했었다...
  9. [9] 문제의 북아일랜드전 3:2 충격패 후에 인터뷰에서 호아킨은 아라고네스를 비난하는 어조의 말을 남겨 논란을 빚었고 결국 이 경기가 호아킨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10. [10] 호날두가 떠오르던 시기의 피파온라인의 영향도 있다. 당시 오른쪽 윙포워드 내지 윙어 위치에 호날두냐 호아킨이냐는 올드 피온 유저라면 기억할 것이다.
  11. [11] DC 해축갤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해축갤은 알싸를 까는 용도로 이 말을 자주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