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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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의 역임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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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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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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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고판남
김길준

제12대
고건
김봉욱

선거구 개편
채영석,(제13대 / 군산시),
김봉욱,(제13대 / 옥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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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고건
,서울시장,

2대
이명박
,서울시장,

3대
김진선
,강원지사,

4대
허남식
,부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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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전남지사,

6대
김관용
,경북지사,

7대
박맹우
,울산시장,

권한대행
최문순
,강원지사,

8대
이시종
,충북지사,

9대
유정복
,인천시장,

10대
최문순
,강원지사,

11대
김관용
,경북지사,

12대
박원순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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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8년 1월 2일 (82세)

경기도 경성부 청진정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본적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월하리[1]

본관

제주 고씨 문충공파[2]

우민(又民)[3]

재임기간

제46대 내무부 장관

1987년 5월 26일 ~ 1987년 7월 14일

제30대 국무총리

1997년 3월 5일 ~ 1998년 3월 2일

제35대 국무총리

2003년 2월 27일 ~ 2004년 5월 24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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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고형곤[4], 어머니 장정자

형제자매

형 고석윤
남동생 고경
여동생 고혜경, 고혜련

배우자

조현숙

자녀

아들 고진, 고휘, 고위

종교

개신교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52회)
서울대학교 (정치학 / 학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원광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학사장교 중위 만기전역[5]

의원선수

1

의원대수

12

경력

제18대 전라남도 도지사(관선)
대통령비서실 정무제2수석비서관
제27대 교통부장관
제35대 농수산부장관
제12대 국회의원(전북 군산시-옥구군)
제46대 내무부장관
제22대 서울특별시장(관선)
제30대 국무총리
제31대 서울특별시장(민선)
제35대 국무총리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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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생
3. 여담
4. 선거 이력
5.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 교육자.

소위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이며, 실제로 국무총리에 민선 서울시장 등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이 분야 최고의 콩라인들이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능력면에서는 이쪽도 만만치 않다. 30대(문민정부), 35대(참여정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22대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31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무엇보다도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직까지 맡았는데 무사히 수행했다.[6] 보통 대통령의 정치적 방패로 자주 사용되는 한국의 국무총리 포지션이지만 국무총리 재직시에도 관료로서 본인의 정무적 능력을 꽤 확실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2. 일생

1938년 1월 2일 아버지 철학자 고형곤과 어머니 장정자 사이에서 3남 2녀[7]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6.25 때는 아버지 고향인 전북으로 내려와 전주북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경기고등학교[8]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9][10]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했다.[11]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37세에 전라남도지사[12][13]에 취임했다.

1979년 박정희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 제2수석비서관이 되었는데, 이후 1980년 5.17 내란날 군정에 반대해 사임하였다.#그러나 전두환 정부가 완전히 들어서자 다시 장관으로 들어왔고 민주정의당에 들어갔다.[14]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봉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5월에는 내무부장관이 되어서 6월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물론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에 2개월만에 물러났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채영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노태우 정부의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내고[15], 뒤이어 명지대학교 총장직에 있다가 문민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호남계 인사이면서, 군사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했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넓은 인맥을 가졌으면서, 부패에서도 자유롭다는 점 덕분에 민주화 이후로도 중용되었다.

1998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당선되어 4년간 시정을 이끌었다. 서울특별시의 무리한 요청으로 인해 군인 3명이 사망한 육군 CH-47 올림픽대교 추락 사고가 이 시기에 발생하였으며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나 사과는 없었다.

그리고 2003년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YS 시절에 이어 두 번째다. 군부-YS-DJ-노무현까지 좌우 가리지 않고 중용된 나름대로 화려한 실적(?). 국무총리 기록만 놓고 본다면 민주화 이후 각기 다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두번이나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16]

이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게 된다.

2.1. 고건 권한대행 체제

  자세한 내용은 고건 권한대행 체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대권주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5월 24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여러 정치 세력에서 일한 점과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직 수행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점을 인정받아 유력한 여권의 대권 후보로 떠오른다.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차기대권주자 여론조사상 1등이 이명박, 박근혜가 아닌 고건이었을 정도였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2006년 고건 총리의 지지세력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일명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약칭 한미준)이란 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나, 고건 스스로 '한미준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당'이라고 부인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17]

하지만 이런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관료 출신이란 한계 때문이었는지[18] 스퍼트를 하지 못하며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되었고,[19] 지금 와서 보면 의아할 수도 있지만 당시엔 이명박 후보가 나름 여권(열린우리당) 지지층도 일부 흡수했기 때문. 이유는 이명박 후보가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경제 성장에 대한 화려한 비젼을 내세워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2006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를 사실상 실패한 인사라 평했는데[20], 이에 자기 부정이라며 발끈한 고건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갈라서는 분위기가 되자, 여권 내에서도 지지층이 갈리게 된다.[21] 이후 이런 여권 내 갈등 때문인지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다. 고건은 동력을 잃었다고 느꼈는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 1월 16일 스스로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3년 뒤 정계도 은퇴하며 야인으로 돌아갔다.

2009년부터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가, 2013년 중앙일보에 자신의 공직자 시절을 비롯한 불출마 뒷이야기 등을 회고록으로 묶어 연재하였는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한 이유를 민주당계 정당 후보는 영남에서 어느정도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는데, 자신이 호남 출신[22]이라 그런지 여론조사상 그 영남에서 지지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보여 포기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이런 얘기를 들은 고건의 한 지지자가 고향이 호남인데도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불출마 철회를 요구하자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인제가 표를 분산시켰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한다. 하지만 이후 17대 대선 과정을 보면 보수가 분열해 이회창, 이인제 후보가 죄다 출마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동영 후보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최소한 정동영 후보만큼 큰 표차로 패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전망된다.

3. 여담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옥구)

민주정의당

67,179 (49.7%)

당선 (1위)

[25]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

민주정의당

28,118 (35.5%)

낙선 (2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새정치국민회의

1,838,348 (53.5%)

당선 (1위)

5. 관련 문서


  1. [1] 제주 고씨 집성촌으로, 이 때문에 본인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호남 출신인사로 분류된다.
  2. [2] 중시조 33세손 석(錫) 항렬. 큰형 고석윤만 항렬을 썼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형제들은 항렬을 쓰지 않았다.
  3. [3] '또 우', '백성 민자'로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우민(愚民)이 아니다.
  4. [4] 32세손 재(在) 곤(坤) 규(奎) 항렬
  5. [5] 면제라고 잘못 알고 있는 위키러들이 맞는데, 중위 제대한 것 맞다. 더구나 고건은 박정희 정부 때 활동한 공무원인지라, 현역 장군 출신인 박정희는 군면제자들을 지독히 혐오했기 때문에 박정희 치하 시절의 미필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군대를 다녀와야 했으며, 고건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겁하게 군면제를 받느니 차라리 현역장교로 떳떳하게 갔다겠다는 마인드로 군복무를 하고 나왔다.
  6. [6] 민주화 이후 최초의 권한대행이며, 두 번째는 박근혜 정부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7. [7] 남동생(고경)은 요절.
  8. [8] 김우중, 이종찬, 신구 등과 같은 학교 동창 사이이다.
  9. [9] 회고록에서 법학과보다 정치학과가 입학점수가 10점 더 높았다고 한다. 동숭동 캠퍼스 다리 건너 법학과는 육법전서를 붙잡고 씨름하는 등 학업에 열성이었는데, 정치학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토론이나 발표 등 문화생활에 열중했다고 회고했다. 재학 중 학생회장을 하는 등 정치 참여에 뜻을 두었으나 현실 정치에 회의감을 느끼고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10. [10] 아버지인 고형곤과는 1학년 때만 같은 캠퍼스에서 교수이자 학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이후 2학년 때 고형곤은 전북대 총장으로 가게 되어 헤어진다.
  11. [11] 처음 본 시험은 낙방했고, 재수를 해서 합격했다.
  12. [12] 당시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각 지방단체의 장은 관선이었다.
  13. [13] 고시출신이라고 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굉장히 빠른 승진인데 이는 고건이 새마을 운동을 실제로 기획하고 성공시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사업이었으니 그에 대한 일종의 보상 인사인 셈.
  14. [14] 이 점 때문에 훗날 민주진영에 들어온 고건을 일부 안티들이 까기도 했다.
  15. [15] 이 때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있었는데, 한보그룹 측 조합들에 택지를 특혜분양하라는 정권의 압력에 원칙을 고수하며 맞서다 괘씸죄(...)로 경질됐다. 그 후임으로 박세직이 시장으로 부임했다.
  16. [16] 김종필도 제4공화국-국민의 정부(제6공화국)에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이쪽은 민주화 정부에서만 국무총리로 역임한 건 아니다.
  17. [17] 참고로 '한미준'은 4년뒤 친박이 뜨자 이번엔 박근혜의 지지세력을 자처하면서(...), 당의 이름도 국가재건친박연합으로 개명하고 2010년 지방선거에 참여한다. 도대체 정체가 머냐 니들은... 정치권을 맴도는 정치낭인들이 선거 때마다 만드는 군소정당이라고 보면 된다. 고건이 뜨니까 고건 이름을 팔고, 이후 친박이 먹히니까 친박 간판을 단 것이다. 그리고 19대 대선은 반기문??
  18. [18] 다른 사례로 2017년 19대 대선 정국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유엔 사무총장 퇴임 뒤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권 행보를 이어가던 중 미숙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며 지지율 하락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2017년 2월 관료 출신 정치인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이처럼 정치적 기반이 미약하고 안정적인 사회 생활을 해왔던 관료 출신이 여러 험난한 정치적 길을 뚫고 대통령이 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 [19]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에선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20. [20] 좌우대립 속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길 기대해서 좌우 여러 진영을 거친 그를 총리로 지명한 것인데, 그 부분에서 실패하고 고립된 것 같아 아쉽다고 평했다. 물론 그 상황에 좀 맞지 않는 실언이긴 했지만.
  21. [21] 이에 대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통합신당파 견제를 위해 선전포고를 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 비노인 고건보단 그래도 친노계인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같은 인물들을 차기 대권주자로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정동영이 뽑힌게 함정.
  22. [22] 본인은 서울특별시 출신이지만 본적지 즉, 아버지의 고향이 군산시이다. 지금이야 고향이라고 하면 출생지를 우선하지만 90년대~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고향'이라고 하면 본적지를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23. [23] 역대 대통령중 최장신은 182cm의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24. [24] 청소년정책! 솔직하게 벗고 대화하자, 고건닷컴 우민회 청소년위원회 찜질방 심야토론회 개최.#
  25. [25] 민주한국당 김봉욱 후보와 동반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