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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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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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부문 대상

국희
(2000)

김수현
(2001)

태조 왕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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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작품
2.1. 드라마
2.2. 영화
3. 작품의 특징
3.1. 김수현 사단
4. 평가
5. 트리비아

1. 소개

70~90년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드라마 작가.

한국의 극작가. 김수현이란 이름은 필명으로 한자로는 金秀賢[1]이라고 쓰며, 본명은 김순옥이다.어? 실로 전설적인 드라마 작가로서 사실상 한국 드라마의 역사는 그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드라마의 대모', '언어의 마술사' 등으로 불리지만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행적으로 안티도 많은 편.

1943년 1월 27일 (77세) 일본령 조선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재학 당시 <고려신문>에 단편소설이 당선된 경력이 있다. 1965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직장생활이 체질이 아니었는지 사무직을 그만두고 이후 방송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극 작가로서의 경력은 1968년 문화방송 개국 7주년 기념 라디오 드라마 극본 현상 공모에 《그 해 겨울의 우화》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69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전격 데뷔하였다. 초기에는 영화 시나리오와 라디오 드라마 극본을 쓰다가 TV 방송이 활성화되어 가던 70년대에 TV 드라마 작가로 옮겨가게 된다.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을 계속 써 왔다고 하는데, 현재는 드라마 대본에만 주력하고 있다.

2. 작품

2.1. 드라마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대가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면모와 갈등을 다루는 가족극, 인물들 간 엇갈린 사랑을 그리는 멜로드라마, 그리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걸맞게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특집극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972년 일일극 <무지개>로 데뷔하였고 그녀의 명성을 널리 알린 작품은 1973년 <새엄마>라는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 역사상 초유의 411회 방영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가졌으며, 이 드라마로 그녀는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74년 <강남가족>, <수선화>, 1975년 <안녕>과 '한국 방송 대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자 200회 이상 방영되는 동안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신부일기>까지 연속으로 대 히트를 친다.

1975년에는 옴니버스 드라마에 도전을 하는데, 여자 주인공 5명을 주인공으로 여고 동창생들의 얘기를 그린 작품으로 주역급 탤런트 5명(남정임, 윤여정, 김혜자, 김윤경, 나문희)이 처음부터 함께 출연하고 60회를 단위로 돌아가면서 줄거리와 주인공이 바뀐다는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인 《여고 동창생》을 집필하였다. 그 이후 1977년 <당신>, <후회합니다>, 그리고 1978년 <청춘의 덫>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1975년부터 시작된 유신체제 하에서 그녀가 집필한 <당신>, <후회합니다>, <청춘의 덫> 등은 혼전임신, 불륜(간통)을 다룬 파격적인 소재의 드라마라는 이유로 조기종영을 당해버렸다. 결국 다시 홈 드라마인 <행복을 팝니다>와 1979년 <엄마, 아빠 좋아>를 집필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에는 8년 동안 16개의 드라마를 집필했는데, 특히 1년 넘게 일일극을 집필하고, 3~4일 뒤에 또 일일극을 집필하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타자기도 아닌 원고지에 펜으로 직접 집필하던 시기였다는 걸 감안하면....

1980년대에는 MBC를 벗어나 TBC에서도 주간드라마를 집필하기도 했고 KBS에서도 신년특집극을 집필했다. 1980년대에도 16개의 드라마를 집필하였지만, 1970년대의 강행군으로 지쳤는지 16 작품 중 6 작품이 특집극이었다.

1980년대에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1981년 KBS 특집극은 '핵가족 사회에서 시골에 있는 부모와 도시에 있는 자식과의 갈등'을 그리기도 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한강 인도교 폭파 임무로 총살당한 대령의 실화극'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륜드라마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풀리자, 1980년대 중반에는 불륜극을 쓰기도 했다.

1984년에는 뒤바뀐 자매의 운명을 그린 '사랑과 진실'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집필했다. 1987년에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사랑과 야망'을 집필하며 평균 시청률 70%대라는 기록을 세우는 등 1980년대 한국 시청자들을 지배했다.

1990년대 첫 작품이었던 '배반의 장미'는 평범한 시청률로 끝났지만, 그 다음 작품인 코믹 홈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대흥행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SBS로 적을 옮기고 나서 방송한 1994년작 '작별'은 선정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어 기대에 못미치는 시청률을 거뒀다.

그 뒤 KBS 주말극 '목욕탕집 남자들'로 다시 성공한 김수현은 1997년 '사랑하니까'(SBS, HBS현대방송 공동제작)에서 영혼드라마를 시도하는 등 파격적인 소재를 가져왔으나, 당시 시청률 20%를 넘기지 못하는 대 참패를 당하게 된다.[2][3] 1999년에는 혼전임신 소재로 조기종영되었던 '청춘의 덫'을 리메이크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에 방송된 이영애, 이경영 주연의 '불꽃'은 다시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후 기사에 보면 계속 최고 시청률 36.8%를 강조하며 흥행 드라마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최고 시청률일 뿐, 평균 시청률은 17.1%에 불과했다. 극 초반엔 최지우, 류시원 주연의 '진실'에게 완패를 당했고, 설상가상으로 중반엔 안재욱 주연의 '나쁜 친구들'에게 10% 이상으로 밀리다가, '나쁜 친구들'이 끝나자 막판에 시청률이 올랐을 뿐이지 흥행작이라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4]

2년 뒤인 2002년 KBS 주말극 '내사랑 누굴까'도 초반에는 MBC 주말극인 '여우와 솜사탕'에게 밀리는 등 악재를 겪었지만, 중반부터 경쟁작이었던 '그대를 알고부터'와 '맹가네 전성시대'를 압도하며 시청률이 상승해 30부작 넘게 연장했다.

1년뒤 SBS에서 방송한 24부작 '완전한 사랑'은 '불꽃'과 '내사랑 누굴까'로 부진하다고 평가받은 김수현을 부활시켜준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2004년에는 잔잔한 가족드라마이면서 시청률 싸움에서 MBC '한강수타령'을 제압한 '부모님 전상서'가 방송되며 역시 김수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5]

2006년에는 1986년 자신의 히트작 '사랑과 야망'을 리메이크하며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예상과는 달리 저조한 성과를 거두었다. 시청률은 평균시청률 19.2%, 최고시청률 27.3%. 81부작이나 되는 대하드라마에 프라임 타임 시간대,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수치였다.

기존에는 50부작으로 원작의 96부작을 축약해서 집필할 계획이었으나 방대한 분량을 50부작 안에 다 담지 못해 결국 30회 이상 연장하며 이야기를 끌어갔다. 연기자들이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악재를 겪었으나, 묘하게도 연장을 한 시점부터는 안정적으로 변해갔으며 내용도 한층 좋아졌다. 원작의 경우 1959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으나 리메이크판에서는 후반부에 1990년대 중반까지 내용이 늘어났다.

'사랑과 야망' 리메이크판이 끝난지 얼마 안 되어 SBS 월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로 복귀하였다. 2006년 내내 MBC 드라마 '주몽'에게 밀렸던 SBS는 김수현에게 사정사정하여 월화 드라마 집필을 부탁했고 이에 김수현이 응하면서 집필을 한 것이다.

당시 '내 남자의 여자'가 시작하기 전에 상대드라마였던 고현정, 하정우 주연의 '히트'는 2주 먼저 방송하며 이미 18%의 시청률 기록하는 등 상승세에 있어 고전을 하지 않을까 했으나, '히트'의 극 내용상 삽질이 한번 있었고, 김수현의 필력도 워낙 발군이어서 방송을 시작한지 2주만에 '히트'를 역전시켰다. 그 후 '히트'가 종영되고 나자 곧바로 시청률에 탄력이 붙어 결국 최고 시청률 38.7%를 기록했다.

특이사항으로는 '내 남자의 여자'가 1980년대에 방송한 자신의 드라마 '모래성'과 유사하기 때문에 모래성 대본과 대조해가며 똑같은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는 거다. 역시 거장.

2008년에는 KBS로 복귀, '엄마가 뿔났다'로 흥행기록을 이어갔다. 초반엔 MBC 주말극 '천하일색 박정금'이 발목을 붙잡아 30%를 제대로 넘기지 못했으나, 중반부턴 그냥… 마지막엔 40%의 벽까지 돌파했다.

그 후 짧은 공백기를 가진 김수현은 2010년, '인생은 아름다워'를 집필했다. 동성애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잔잔하게 극을 이끌어갔으나, 결과는 '사랑과 야망'처럼 김수현의 이름값에 비하면... 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냈다.

방송되는 동안 SBS에서 2010년 월드컵을 독점 중계했는데, 이를 이유로 드라마의 내용을 10분 짧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김 작가에게 했다가 김 작가로부터 트위터에서 돌직구를 맞은 일도 있다. 야! 신난다~

2011년도 작품인 '천일의 약속'은 방송 3회만에 18%를 기록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지지부진하여 20%도 돌파하지 못하고 종영하였다. 천일의 약속은 20부작으로 총 제작비 80억인 나름 대작이었으나, 김수현 작가의 원고료와 주연인 김래원의 출연료가 각각 회당 5천만원, 연출인 정을영 PD의 연출료가 회당 2천만원, 여주인공인 수애의 출연료가 회당 3천만원으로 회당 제작비 4억 중 감독, 작가, 주연들 몫만 해도 1억 5천이나 되어 방영 초기에 너무 거품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2012년 초에는 TV조선의 특집극인 3부작 '아버지가 미안하다'를 집필하여 방송되었다. 보통 1%도 못 넘던 TV조선이었지만, 김수현의 특집극은 1부 1.364%, 2부 1.662%, 3부 1.440%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그 후 TV조선에서 개국초기에 과거 SBS 개국 때처럼 김수현의 작품을 받으려고 제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김수현의 차기작은 TV조선에서 방송이 될 예정이었으며, 이를 조선일보에서도 크게 홍보하였다. 가을 드라마로 24부작 가족극이라고...

그런데 이후 TV조선에서 드라마 제작을 중단한다는 썰이 나왔고, 설 특집극 때 있었던 방송사고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 드라마는 결국 JTBC로 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조선일보가 JTBC 홍보해준 꼴(…). 하긴 진작에 '인생은 아름다워'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드라마의 제목은 바로 '무자식 상팔자'.

'무자식 상팔자'는 종편 뿐 아니라 비지상파 드라마 부문에서 최고 기록을 달성했으며, 동시간대 지상파 경쟁 드라마인 '아들 녀석들'도 제쳤다. 역시 연장방영해 3월에 끝났다. 지금이야 JTBC의 시청률이 높고, 케이블tvN도 시청률이 매우 높아 두 방송국 다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슈스케 정도를 제외하면 지상파가 아닌 방송국에서 10%를 넘는 방송은 없었다. 하지만 김수현의 '무자식 상팔자'는 10%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며 종편의 시청률 장벽을 대거 뛰어넘었다. 결국 지상파에서의 위력이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종편에서 자신의 파워를 입증했다.

2013년 11월부터는 SBS 주말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집필했다. 캐스팅이 예정되었던 여주인공들의 연속 하차로 방영 전부터 말이 많았고, 그동안 줄곧 호흡을 맞춰온 정을영 감독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하차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이지아주연을 맡으면서 초반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내용 전개에서 질질 끄는 면이 있어 평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시청자들의 관심이 '임실댁'과 '한채린'이라는 조연급 캐릭터에 쏠리자, 조연급 캐릭터의 비중을 늘리고 기존 주연급 캐릭터의 비중을 줄이는 등 김 작가 기존의 집필 스타일과는 상이한 전개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대사 스타일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유해져서, 초반에는 시청률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가 중반부터 탄력을 받아 최종회는 19.4%의 기록으로 종영하였다. 하지만 줄곧 악역으로 묘사되던 인물(한채린) 및 불륜 커플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최종회로 김수현 작가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고, 심지어는 김수현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도 실망이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6년 2월부터는 SBS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를 집필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60부작에서 54부작으로 6부작 축소되어 조기종영이 결정되었다. 작품 자체도 평가가 영 좋지 않았고, 김수현이라는 이름값도 무색할 정도로 최고 시청률도 높아봐야 10%에 불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 원고료 및 배우들 출연료도 만만찮았는데, SBS 입장에서 끝까지 방영을 유지시키기도 어려웠다.

2.2. 영화

1969년 데뷔작인 정소영 감독이 연출한 <저 눈밭에 사슴이>로 영화계에도 데뷔했다. 그 밖에 '미워도 다시 한 번' 1·2·3편을 비롯, <내가 버린 여자>(1977), <어미>(1985)를 비롯하여 22편의 영화 각본, 12편의 원작을 제공했다. 2001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2002'가 망한 뒤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중단했었다.

그러다 2009년 영화 하녀 리메이크 각본으로 오랫만에 영화 각본으로 돌아오는가 했더니 감독인 임상수와의 갈등으로 중도 하차했다. 블로그에서 임상수 감독에 대하여 뒷통수를 쳤다느니 엄청 비난했지만, 정작 하녀 원작 영화감독인 고 김기영 감독의 아들 김동원 씨가 김수현의 각본은 호러영화에 가까워서 썩 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며 되려 임상수 감독의 각본대로 만들어진 하녀 영화를 더 높게 평가했다. 보기 이후 김수현 작가는 앞으로 영화 시나리오는 쓰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

3. 작품의 특징

김수현의 집필 방법 중 특이점은 잔잔한 가족극은 주로 KBS에서, 파격적인 소재는 SBS에서 한다는 점과 가족극의 경우 연장을 요청하면 대개 응해서 연장을 하지만 불륜 등 파격적 소재의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연장을 하지 않고 원래 기획의도에서 끝낸다는 점이다.

그녀의 드라마, 특히 가족드라마라면 꼭 등장하는 필수요소가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또한 극중에서 나오는 대사가 마치 총알탄 쏘듯이 길게 이어져 나오거나 표준어와 비표준어의 경계에 있는 단어가 가끔씩 등장하고, 젊은 인물들의 대사에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지 않는 단어나 어미의 활용[6]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김수현의 드라마 대사가 서울 사투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서울 사투리를 쓰지 않기 때문. 이 때문에 서울 사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젊은 시청자들은 김수현 작가가 기존의 언어를 의도적으로 변형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배우들이 김 작가의 일정한 대사 톤과 호흡에 맞추어 연기를 하는 편으로, 이것도 호불호가 갈린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문어체로 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구어체와 문어체의 혼용이다. 이 부분에 대해 김수현은 '대사여야 하는 순간이 있고 말이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놓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특히 김수현의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들은 거의 다 살짝 절제된 목소리로 빠르게 긴 대사를 내뱉는데 이게 싸가지없어 보인다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인물 간 대사의 텀이 상당히 짧아서 거의 배우 A가 대사를 끝내기 무섭게 배우 B가 대사를 하는 식으로 극중 내내 대사를 주고받는 스타일도 호불호가 갈린다.

이는 김수현이 자신의 대본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심지어는 쉼표 같은 문장부호까지 모조리 지키도록 연기자에게 지시하기 때문. 예를 들어 점 3개만큼 쉬라고 써있는 걸 4개만큼 쉬면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대사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서이고 대본리딩에 참석해서 감독, 배우와 함께 맞춰가는 것이지 독단적인 것은 아니다. 김수현과 오랜 친구이자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윤여정은 '배우가 노래를 잘 하면 노래를 하게 하고 춤을 잘 추면 춤을 잘 추게 한다. 심지어 어떤 배우가 안 되는 발음이 있으면 그 발음이 들어간 단어는 피해 가면서까지 대본을 쓴다' 고 언급하기도.

또한 극 중 심각한 상황에서 몇몇 인물들을 통해 뜬금없이 분위기를 깨는 대사가 가끔씩 나오는 편인데, 이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오느냐'며 싫어하는 경우가 꽤 많다.

김수현의 예전 작품 대본들은 남아있지 않는 것도 있는데 이는 김수현 본인이 당시 '나중에 나이 먹어 자기 복제할까 봐' 걱정되어 곧바로 처분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대본이나 각종 메이킹 필름 보관 같은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방송국이나 관련 기관에도 남아있는 대본들이 없는 모양. 이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기까지의 TV 프로그램 자료들이 비디오 테이프값이 비쌌던 데다가 당대 방송자료를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하기 이전의 시절인지라 테이프 돌려쓰기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7]이었다. 이럴 경우에는 기억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복원할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다만 PC를 사용하여 대본 작업한 후부터는 처분하지 않고 보관하였고 그 전 작품 중 일부는 작품 스탭이 보관하고 있던 대본을 워드작업 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데뷔 후~80년대 초반 작품들은 보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천일의 약속을 시작으로 김수현의 단막극 모음집 등 대본집이 출간되었으며 향후 7, 80년대의 작품도 구해지는 대로 출간될 수도 있다고 한다.

3.1. 김수현 사단

자신의 대본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철저하게 지도하는 탓에 그녀의 드라마를 한 배우들은 연기력이 상승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본 리딩 시 억양, 어투뿐 아니라 제스쳐까지 철저하게 계산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철저히 지적한다.[8]그래서 한 씬만 보고도 이게 누구 드라마인지 알수있지 (리메이크 작품인 <사랑과 야망>에 출연했었던 이훈의 경우는 그녀가 거의 포기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녀의 드라마에 이전에 나왔던 배우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자신의 대본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배우들만을 고르는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9] 그래서 그녀가 맡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가리켜 김수현 사단이라고 불려진다.

다만 중장년 배우들을 중심으로 극을 쓰기 때문에, 젊은 배우들이 그녀의 사단에 합류했다고 해서 딱히 주목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김수현 사단의 젊은 축에 속하는 이유리는 자주 출연하던 때에는 뜨지 못한 편에 가까웠으며,[10] 미니시리즈 여자주인공을 맡았던 남상미의 경우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다. 또 김희선의 경우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한 번 기용하긴 했으나 영 마땅찮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김희선 자체가 김수현 작가의 홈드라마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그 이후로는 다시 김 작가의 작품에 나오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이 지난 이후에는 젊은 층에 하석진 정도를 제외하면 김수현 사단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젊은 층에는 없다. 예전의 배우들은 시청률을 통해 김수현 드라마의 파워를 실감하며 인기를 얻은 측면도 있지만 2010년대부터 시들시들해진 인기와 특유의 대사 톤등으로 아예 김수현 드라마라면 안보는 사람도 있어 파괴력이 예전만 못한 탓인지 젊은 배우들은 자주 교체된다. 대체적으로 신인이거나 혹은 오랜 세월 연기를 했지만 한 방이 없는 배우들이 주로 나온다. 깐깐한 대본리딩에 연기 지도는 제대로 받고는 있으나 그에 걸맞는 성과를 느낄수 없으니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김수현 작가의 특징은 연기 못 하는 배우들은 아예 쳐다도 안 본다는 것이다. 발연기의 논란이 있는 배우들은 아예 물망에 올려도 까버린다. 실제로 작가 본인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사랑과 야망>의 원작 배우들 중에서 이미지가 가장 맞아 떨어지던 고소영을 제작진이 추전하자, "연기를 못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거부 때렸다고 한다. 생활 연기의 달인으로 꼽히는 김해숙도 리딩 때 감정을 하나도 안 실어서 연기하자, "왜 자꾸 니 잘 하는 일상연기를 안 하고 로봇 마냥 연기를 하냐? 일상연기를 해라. 알간?[11]"이라며 탈탈탈 털리는 마당에 연기도 못 하고, 흥행 파워 조차 딸리는 배우들을 굳이 쓰면서 모험을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기력이 좋다면 신인급 배우들도 쓴다. 하석진도 그렇고, 이유리도 그러한 편이다.

시청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배우들에게선 평가가 매우 좋다. 연기력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순재는 가장 작업하기 좋은 작가로 김수현 작가를 꼽는데, "김수현 작가랑 작업하다 보면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네?? 라는 사실을 느낄 정도"라 평할 정도다. ㅎㄷㄷ[12]

아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배우들 목록이다. 전부 다 연기파 배우들이다. 하나 같이 다 연기파 배우들

4. 평가

귀가 아프다

한국 드라마의 표준을 만든 작가로 평가받는다. 재벌, 대가족, 통속극, 속칭 '사단' 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배우 출연진 등등 사실상 오늘날 한국 통속극의 원류 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특유 스타일은 당시 한국 시청자들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고, 현재까지도 한국 드라마의 공식처럼 자리매김 하였다.

당연히 동종 업계에서는 범접하기 힘든 리스펙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16] 일단 필모그래피도 그러하지만, 고령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작품활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귀감의 대상이 될만 하긴 하다. 한참 활발할 때는 1~2년 주기로 작품을 낼 때도 있었으니, 얼마나 글쓰기에 열정이 많은 사람인지 짐작할 만 하다.

그녀의 위상 덕분에 드라마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위상도 꽤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드라마 작가라고 하면 방송사나 PD가 요구하는 대본을 기계마냥 적어주는 사람 정도의 위상이었으나, 김수현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활동을 하고 이름값을 세운 덕분에 업계에서도 드라마 작가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실제로 본인도 드라마 작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현재 김은숙. 김은희 같은 네임드 작가들의 초석이 되어 준 셈.

다만 현재 김수현의 드라마에 대해서는 신구세대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편이다. 기성세대는 오랫동안 그녀의 드라마들을 봐 왔고, 그녀의 스타일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김수현의 드라마는 기성세대에게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신세대 중에서는 그녀의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의 흔한 통속극적 스타일의 원류인 탓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신세대에게 있어 대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김수현 드라마가 코드가 안 맞는 측면도 있긴 하다. 자신의 드라마를 비판하는 젊은 층을 대놓고 경멸시하는 꼰대스러움이 지적받고 있다. 김수현 자신도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부터 보수적인 면이 있다는걸 밝혔다.

최근 드라마 경향에 대해 "요즘 드라마의 절반은 중학생 습작수준"이란 말로 막장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에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막장 드라마의 문제와는 별개로 본인의 꼰대스러운 발언들의 여파로 긍정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다. 막장 드라마에 반감이 심한 시청자층과 김수현 작가의 팬덤 시청자층에서는 적절한 지적이라며 환영했지만 그 외에는 시청률 안나오니 꼰대가 열폭한다는 수준의 고깝다는 반응.[17]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김수현의 작품들은 작품성이나 흥행면에서나 영 시원찮은 반응만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단순한 호불호 정도로만 평가되던 작가 특유의 문제점들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비롯해 그래 그런거야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과 쓸데없이 남발하는 문어체 대사들 때문에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두 작품 모두 개연성 까지 날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인지라 항간에는 '이제 김수현의 시대는 끝났다' 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본인도 꽤나 굴욕이었는지 이 이후로는 작품활동은 현재 중단한 상태이다.[18] 그리고 후술할 내용대로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논란의 책인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회고록을 읽고 매우 좋은 평가를 남기면서 그녀가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상 영원히 사라졌다.

5. 트리비아


  1. [1] 출처 : #.
  2. [2]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10%는 실패, 20%는 체면유지, 30%는 성공, 40%이상은 대박이라고 평할 정도로 지금과는 시청률 기준이 달랐었다. 그런데 천하의 김수현이 체면유지선인 20%도 넘기지 못한 것.
  3. [3] 이 드라마의 실패 후 HBS현대방송을 운영하던 금강기획(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에서는 해당 채널을 매각했으며, 이 채널은 돌고 돌아 채널CGV가 되었다.
  4. [4] 방송 내내 '내 이름은 김삼순'에게 밀리다가 김삼순이 끝나자마자 시청률이 대폭발한 '부활'을 생각하면 된다.
  5. [5] 당시 부모님 전상서의 경우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집필을 한 것이지 시청률은 포기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작품의 질 뿐 아니라 시청률까지 대박을 치면서 20회 가까이 연장했다.
  6. [6] 대표적으로 20대 딸이 50대 어머니에게 "~한 거 아니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7. [7] 70년대 최고 인기드라마였다는 여로나 아씨도 1회분만 남아있을 지경이었고, 방송사에서 1950-70년대 화면을 틀때마다 대한뉴스 자료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8. [8] 심지어, 그 김해숙도 대본 리딩 도중에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을 정도니...
  9. [9] 실제로도 김수현 드라마에 한번 출연한 배우가 다음 번에도 출연할 때 대본을 잘 소화한다.
  10. [10] 오히려 이유리는 악역을 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 것이 제대로 주목 받아 대박이 난 게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 평해지는 연민정.
  11. [11] 김수현 작가의 말투 중 하나다.
  12. [12] 참고로 이순재는 대학 교수 시절에 제자인 한지혜가 연극 작품 실습에서 자이언트 촬영으로 인해 계속 빠진단 이유 하나 만으로 C학점을 때려버린 분이고, 어떤 학생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데 불성실하기까지 해서 D학점을 때려버렸는데, 그 학생에게서 "B학점으로 해달라"는 전화가 , "내가 최순실도 아닌데, 양심 좀 있어라 도둑놈아"라고 깠다고 라디오 스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사실 연극 작품은 한 학기 내내 주말도 반납하고 죽어라 매달려야 퀄리티가 있는 작품이 나오기 때문. 이 때문에 연기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도 "뭐라고 하는진 들려야 할 거 아니냐"면서 특강 내내 기본기를 탄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분으로 유명하다.
  13. [13] 인생은 아름다워, 천일의 약속, 무자식 상팔자에 3연속 출연. 김수현 사단에 새로이 편입된 배우로 봐도 무방할 듯.
  14. [14] 무자식 상팔자,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 연속으로 출연했다.
  15. [15] 김 작가의 드라마에 3번이나 출연.
  16. [16] 김은숙 작가의 경우, 드라마 온에어에서 대놓고 김수현 작가에 대한 대사를 쓰면서 간접적으로 나마 리스펙을 표하기도 했다.
  17. [17] 꼰대 뉘앙스의 발언 누적으로 인한 반감이 많이 쌓인데다, 김수현류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을 정도의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도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18. [18] 본래 2018년 상반기에 KBS 주말극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취소되었다.
  19. [19] 해당 경비는 해고당했다.
  20. [20] 배우 라인업부터가 이순재, 김혜자, 강부자 등의 원로 배우들부터 줄세워야 하는 수준이다.
  21. [21] 안성기가 아역이고, 엄앵란이 20대이던 시절에 찍은 전설적인 영화다. 당시에 베드신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으니...
  22. [22] 참고로 4.19 혁명을 두고 한 말이다.
  23. [23] 당시까지만 해도 두 배우는 MBC 전속이었다.
  24. [24] 해당 극작가는 해당 사건으로 방송작가협회에서 제명 당했다.
  25. [25] 반론하자면, 가톨릭에서는 '살인범'은 감싸주더라도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감싸주지 않는다(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또한 가톨릭에 대해 무지한 세속 언론 및 비신자&신자들은 가톨릭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줄로 대단한 착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세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 항목 참조.
  26. [26] 다만 이 일화는 다소 억울할법도 한게 애초에 자리에 이름이 적혀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그냥 보이는데로 앉았던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일화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딱히 뭘 잘못한지 모르겠다" 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다.
  27. [27] 다만 엄밀히 말해 김수현의 빽이 작용한 것이라 당시 현장에서 윤여정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입으로도 "난 그 당시에 왕따였다" 고 고백할 정도.
  28. [28] 이후 홍석천은 인생은 아름다워에 캐스팅 되며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소재 부터가 아예 동성애가 메인으로 나오며, 작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기에 홍석천 본인도 "우리를 아름답게 그려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