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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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손석희 (孫石熙, Sohn[1] Suk-hee)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6년 7월 27일[2](63세)[3]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밀양 손씨

신체

177cm[4]

학력

서라벌중학교
휘문고등학교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학사[5]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육군군수사령부)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르첼리노)

가족

배우자 신현숙, 슬하 2남

직업

언론인

데뷔

1984년 MBC 아나운서

현직

JTBC 대표이사 사장

JTBC 뉴스룸 메인 앵커

링크

1. 개요
2. 생애
2.1.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까지
2.2. MBC 입사
2.2.1. 기자 시절 주요 보도 뉴스
2.3. MBC 노동조합 활동
2.4. 이후
2.5. JTBC
2.5.1. 메인 뉴스 앵커로
3. 트리비아
3.1. 일반 사항
3.2. 동안
3.3. 정치적 성향
4. 비판 및 논란
5. 이력
5.1. 방송 활동
5.1.3. 기타
5.2. 약력
5.3. 수상

1. 개요

대한민국언론인. 現 JTBC 대표이사 사장.

MBC 아나운서국 국장 및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3년 5월 13일 JTBC에 입사한 후 JTBC 뉴스룸 메인 앵커 겸 JTBC의 보도, 시사, 교양 담당 사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11월 20일부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2. 생애

2.1.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까지

1956년, 서울토박이 집안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으며[6],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6.25 전쟁 참전으로 인해 무공훈장을 2개나 받은 경력이 있다. 손석희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전역하여 여러 사업을 했으나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했고 때문에 손석희 가족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손석희는 취직하기 전까지 30차례나 이사를 다녔고, 집이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손석희 아버지가 양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연천군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렸다. 손석희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 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거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 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손석희는 마지막이었다.[7]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한다. 반면교사의 적절하고도 훌륭한, 한편으로는 굉장히 씁쓸한 사례

국민학생 시절 심한 도벽이 있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이 도벽의 대상이었고, 무엇이든 훔치지 않고는 못 배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시작해서 이웃집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수 차례 회초리를 맞아도 소용없었고, 어머니가 울면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아버지에게 피멍이 들도록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손석희의 자전격 수필집 '풀종다리의 노래'에 나와 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 성북구로 이사를 갔고, 조용했던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서 덩달아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6학년 때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를 보다가 갑자기 천장에서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 대충 지은 집에서 빗물 새는 건 흔한 일이어서 식구 모두 신경 쓰지 않다가, 떨어지는 흙이 점점 많아지자 살림을 마루로 옮기고 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오니 곧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8]

국민학교 졸업 후에 서라벌중학교에 입학했다. 손석희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해(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어 중학교 평준화 1세대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전교생이 시험을 쳐서 우열반을 나눴는데, 우반 C반에도 떨어져 열반에 속하게 되어 저녁 보충 수업을 받지 않고 노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대충 포기하는 학생이 된 셈이었다고 손석희 본인 스스로 말한 바 있다. 특히 물상을 못했는데, 관성의 법칙이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고 한다. 물포자

중학교 때는 한때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서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파트가 드물던 당시 서울에서 제법 좋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당시 그 아파트에는 유명 배우들도 여럿 살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MBC의 인기 여배우였던 김영애도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종종 마주쳤다고 한다. 또 고교 시절에는 같은 동네에 살던 여배우 고(故) 여운계와 탁구 복식조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걷는 것을 좋아해 6~7정거장 거리를 꼬박꼬박 걸어다녔다고 한다.

명문 공립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하고[9] 후기 지망으로 당시 종로구 계동에 있던 휘문고에 들어갔다. 입학식 직후 선배들의 눈에 띄어서 방송반원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방송실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학생이 송승환이었다고 한다.[10]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이 때 경험은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식구들한테 "넌 조울증 기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휘문고 1학년 때 아버지가 부도를 내 중학교 때 여유로워졌던 집은 다시 어려워졌고, 산비탈에 있는 방 2칸에 부엌 딸린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학교까지 걸어다니며 차비를 모아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과 레코드 2장을 샀고[11] 결혼하고 새 전축을 살 때까지 15년을 내리 그 전축과 보냈다고 한다.

수험생 시절 특히 수학을 못했는지, 2015년 3월 16일 JTBC 뉴스룸 2부 팩트 체크 시간에, 자인이 사실 수포자였다고 말했다.[12] 그 이전에도 수학을 못했다고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었다.

재수를 해서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국민대에 합격만 해 놓고 다음해와 다다음해 사수까지 하며 2번 더 입시를 봤으나 모두 실패하여 그냥 국민대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13] 손석희는 자신의 20대 시절을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로 규정했다. 허무주의에 빠진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이 주 이유였다고 밝혔다. # 손석희는 자신이 20대 시절 빠졌던 허무주의에 대해 나이답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평했다. 손석희는 노조 활동을 하게 된 이유를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허무주의를 끝장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1979년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좀 편해보겠다고' 타자까지 배워 입대했다고 한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본인이 원하던 대로 타자 주특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타자 주특기 후반기교육을 받던 시절, 여군 피우진[14]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손석희가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던 훈련소는 여군 부사관후보생들을 훈련하는 곳이었는데, 이 훈련부대 중대장 중 한 명이 피우진이었다고 한다. 피우진 본인도 군 시절 이야기를 쓴 저서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훈련병 시절의 손석희에 대해 짧게 회고하였다.

후반기교육 후 부산에 있던[15]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배치되었다.

군 복무 중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2015년 3월 12일 서강대 개강 미사 특강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군 복무 시절 성당에 가면 좀 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가보니 미사 시간에 가슴도 치고, 무릎도 꿇고, 계속 서 있고 해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국민대학교 시절에는 디자이너 장광효[16]와 동문이었는데, 장광효의 말에 따르면 위 아래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이었다고 한다. 훗날 화제가 된 손석희의 값싼 시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외형에 그다지 신경쓰는 성격이 아니었던 듯 하다.

2015년 국민대학교에서 모교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자랑스런 국민인상'을 수여했다.

취업준비생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구연습장을 많이 다녔고, 오락실에서 갤러그 150만점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호황기에 진입하고 있던 당시에는 그리고 대학생의 수가 적었던 당시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취준생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2.2. MBC 입사

1984년 MBC아나운서로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KBS와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하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 MBC에서 빠른 속도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져서 입사 2년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을 정도였으나 손석희 본인은 기자를 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1986년 보도국으로 발령나 기자가 되었다.[17] 기자 시절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했다.[18] 그러나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전혀 잡지 못하여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실패했고, 결국 1년 만에 아나운서로 재발령되었다고 한다.[19]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1987년 2월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었다.[20][21]

다만 아나운서 방송초기 당시에는 MBC가 명목상으로 공영방송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관영방송이었던 관계로 당연히[22] 땡전뉴스를 진행했다.[23] 주말 뉴스를 맡았기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 대통령이 불시에 전방부대를 시찰한 것이나, 국경일 경축사 등의 뉴스를 땡전뉴스 형식으로 보도했다.[24] 평화의 댐 모금방송도 손석희가 MC를 맡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은 어용방송을 진행했을대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며, 훗날 방송민주화 운동 및 파업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손석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10 항쟁,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3대 대선, 13대 총선, 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MBC 뉴스데스크MBC 뉴스센터[25] 앵커직을 맡는다. 이때가 1988 서울올림픽과도 겹쳤던 시기이기 때문에 20년 뉴스 보기를 통해 당시 올림픽이 진행되었을 때 날짜를 잘 검색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손석희 앵커가 올림픽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하간 1989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았다가 1990년에는 저녁 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된다.(MBC 뉴스와이드, MBC 뉴스투데이, MBC 아침 뉴스 2000)

아나운서 생활 때 만난 6살 연하의 아나운서 신현숙[26]과 1년 7개월 열애 끝에 1987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손석희-신현숙 이후 MBC 아나운서국에서는 문지애-전종환 전까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내 커플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 바람으로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 법에 맞서 쟁위 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 방송 리본을 달기로 하지만, 패용자가 모두 빼앗긴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손석희는 이것을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자괴심에 시달리다가 다음날인 8월 21일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 해당 날짜의 뉴스데스크. 그의 양복에 '공정방송'이라고 쓰인 리본이 달린 걸 볼 수 있다.

2.2.1. 기자 시절 주요 보도 뉴스

이 외에도 앵커 시절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공판을 모두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방송 때 브리지트 바르도와 인터뷰한 전력이 있으나, 시선집중 7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인터뷰 대상을 다그친 사례로 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이라고.

2.3. MBC 노동조합 활동

이후, 1992년 가을에는 MBC 노동조합 활동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게 된다.

파업 당시 일화가 있다. 관련 링크.

MBC 노동조합 파업 당시의 사진이다. 사실, 손석희의 사진을 찾아보면 웃는 사진이 별로 없긴 하다. 위 사진도 네이버에서 '해맑은 손석희' 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일한 사진이기도 하다. 참고로 워낙 젊어보여서 실감하기 힘들지만, 이 당시 만 36세였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라는 말을 남겨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여당에게 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하고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 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는 이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 동료 몇 명과 함께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다.

여담으로 이 때 이미 미남으로 유명해서 관련 보도 중에는 "누가 이처럼 선하게 생긴 미청년을 파업 현장으로 내몰았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당시 여성 앵커의 상징이었던 백지연도 다른 노조 간부들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다.

훗날, 김주하 앵커는 2011년 출간한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서 손석희 앵커와 일화를 공개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던 손석희 앵커와 파트너가 된다니… 공정방송을 위해 저항하다 수갑을 찬 채 차에 오르고,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흑백사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분과 뉴스를 한다니!"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갑을 찼던 것은 역시 노동조합 파업 사건 때문이었다.

2.4. 이후

그러다가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국제 민간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사측에서 1년 갔다 오라는 것을 "쉴 바에야 확실히 쉬자"고 2년을 고집했는데, 공부만 하다 왔다고 한다. 유학을 위해 쳐야 하는 토플 공부부터 시작해,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당시 미국 유학 때 찍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손석희의 미국탐험' 으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만큼 고생하기도 했고, 애착이 간다고 한다.

귀국하여 1999년 아침뉴스 2000(現 뉴스투데이)를 통해 방송에 복귀했고, 2000년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자가 된다.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아침 6시 15분부터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초창기에는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들이 먼저 연락해 온다고 한다. 참고로 동명이인 프로게이머도 준프로 시절에 여기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2002년 유시민의 뒤를 이어서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28]가 되었다. 2009년 11월 19일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였으나 결국 10주년 방송이후로 하차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MBC측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명했으나 MBC가 그리 돈에 쪼들리는 방송국도 아니고 7년이나 하던 100분 토론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인물을 갑자기 치운다는건 의아할수 밖에 없고,[29] 이에 대해 MBC의 후배인 최승호 PD[30]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극우인사들로 점령된 뒤 손석희 아나운서가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라고 소회하였다.[31]

목요일이면 밤에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시선집중 라디오 생방송을 하는 생활을 몇 년 동안 했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MBC 아나운서 국장으로 재직했으며, 2006년 MBC를 퇴사하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옮겼다.

2011년 8월 24일에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물러나고 보궐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시장후보 출마를 묻는 질문에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나'라고 소드립을 날렸다.[32]

이 선거를 앞두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나경원 의원과 토론을 하던 도중, 손석희가 나경원 의원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검증성 질문을 계속 하자, 나경원 의원이 "정책이나 공약이나 이런 건 안 물어보시나요? 저는 사실 손석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거의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야권 후보는 많이 하셨더라고요. 저희가 예전에 보니까 그래서…"라고 불만을 토로해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다만, 그때 당시 손석희는 아직 박원순 후보와 토론을 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 <시선집중> 인터뷰는 가능하면 정책 위주로 가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네거티브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후보 검증이라고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조금 더 질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나경원 의원이 보통 언론에서 형평을 기한다는 이유로 좀 수준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고 말하자 손석희는 "일반적인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말씀하신 건가요?"라는 대답을 했고, 곧 주제가 바뀌면서 토론은 다시 좋게 진행되었다.

2012년 2월, 진중권에게 시선집중 제작진이 출연을 요청하자 진중권 측이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영입설이 나왔던 적이 있었지만, 본인은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MBC라는 조직, 라디오 방송에서의 존재감은 당시에 엄청났다. 그렇기에 MBC 내부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부임한 이후 자르고 싶은 라디오 진행자 리스트에 배철수와 함께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타격이 커서 인사 칼바람이 피해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손석희가 떠난 이후 공석이 된 시선집중은 이재용 아나운서가 후임으로 들어갔으나 그 때 임시인지 전담인지 확실히 나오지 않아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는 와중에 이전 손석희의 땜빵을 모두 이재용 아나운서가 매웠던 만큼 전담일거라는 의견이 높았으나 결국 얼마안가 김창욱 아나운서로 바뀌었고 김창욱 아나운서가 이를 이어받았으나 하필 그 당시 대전 MBC에서 일이 제대로 터지면서[33] 그 수습으로 김창욱 아나운서가 사장직을 맡기로 하면서 다시 공석이 되자 다시 이재용이 맡았으나 이것도 임시였고결국 산동호 아나운서가 정식 2대 진행자로 들어왔으나 4년이 지난 2017년에 하차한뒤 이후 몇명의 후임들이 1년도 못가고 계속 자리를 바꾼 와중에 2019년 현재는 심인보 아나운서가 담당하고 있다.

2.5. JTBC

손석희 취임 이전의 JTBC. 아래 짤들이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뉴스맞다.


손석희 취임 이후.

언론사 신뢰도 1위

미디어워드 10대 미디어

한국기자상 대상

채널평가 1위

방송채널 평가 1위

손석희 사장이 거기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 특히 MBC에 있던 고참 간부 기자들이 뒤에서 ‘아나운서만 해보고 토론 사회자와 라디오 진행자만 해 봐서 조직을 지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자들처럼 보도국에서 상하 위계를 배운 것도 아닌데 저런 사람이 무슨 리더십이 있겠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봤고[34], ‘취재를 안 해봤는데[35] 뭘 알겠냐’라는 식의 퇴행적인 자존심을 내세우는 선배들 얘기도 꽤 접했는데.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나타난 거죠.

-박성호 MBC 해직기자(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 복직 후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고, 현재는 하차했다.)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 JTBC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담당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MBC내에서 보낸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서 성원을 보냈는데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라 항상 중립주의였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게 꺼림직하단 의견도 있었고 손석희의 매형이 JTBC의 대 PD인 주철환인지라 매형의 영향력으로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게 아닌가하는 기사도 나왔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선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으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봐도 원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을 드러내는데, JTBC 자체도 원래 삼성만 빼면 은근히 정치적 중립에 가까웠던 만큼 손석희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놓고 비판했다.

이 때 첫 출근에 관한 웃긴 일화가 있는데, JTBC에서 지정한 손석희의 출근시간은 10시였던 만큼 기자들도 10시에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손석희는 이전 MBC시절처럼 이미 1시간이나 전인 9시에 출근한 뒤였기 때문에 뒤늦게 다시 내려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손석희의 JTBC행 이후로 부터 2018년 말, JTBC라는 방송사의 대표이사로 올라서기 까지의 직책은 보도담당 사장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초기에는 인사권은 없었고 다만 인사 담당자에게 의견을 내는 수준이었다 한다. 이따금씩 뉴스룸 대신 진행되는 특집토론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보도 부문의 편성에 대해서도 별도의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36]

2.5.1. 메인 뉴스 앵커로

그리고 본인이 뉴스를 직접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 의 단독 진행을 맡게 됐다는 뉴스가 떴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단독 앵커를 맡는다. 이 건들에 관련해서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가장 정확하다.

JTBC 뉴스 9 티저 영상.

JTBC 뉴스 9에서의 첫 오프닝.

2014년 1월 1일, JTBC 뉴스 9의 신년 특집에서는 100분 토론을 그만둔 지 4년만에 토론 진행을 했다. 관련 기사.

JTBC 뉴스 9 진행 1,000일을 맞아 여성중앙과 인터뷰를 했다. 관련 기사.

2013년, 당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평가와 관련하여 지상파 3사보다 JTBC 뉴스가 압도적인 보도 횟수를 자랑했다. 2013년 12월 19일, 결국 이와 관련하여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 가 편파보도로 중징계를 받았다. 관련 기사. 반면에 방송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종북이라고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TV조선 뉴스쇼 '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서 다소 논란이 일기도 했다.기사

2014년 4월 16일 JTBC 뉴스 9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우선, JTBC 기자의 망언에 가까운 표현으로 분위기가 안 좋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사과했다. 의례적인 사과와는 달리 댓글 등을 통해서도 진심을 담은 사과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평소의 언행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듯 하다. 또한, 내부 보도에서도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석희는 안전설계 전문가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구조대가 침몰한 배에 공기를 주입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작업에 관해 얘기했으나, 전문가는 "여객선 운행 특성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어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손석희는, 혀를 차다가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질문을 기다리던 상대방이 '전화가 끊겼나??' 하고 당황했을 정도. 손석희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지만 목이 멘 소리를 내는 등 냉정을 찾기 힘든 듯했다.7분 20초부터. 또한 4월 21일 방송에서는 실종자 가족이 전화 인터뷰 직전 딸의 시신 발견으로 급히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 영상.

2014년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참사 보도를 위해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서 JTBC 뉴스 9를 현지진행했다. 따로 마련한 세트나 특별한 의상, 메이크업도 없이 현장으로 나와서 직접 보도를 하며[37]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뉴스[38]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민적인 관심과 신뢰를 이끌어내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39]

손석희가 입사하기 전 JTBC 뉴스의 수준을 보면 한 사람으로도 방송사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2014년 9월 22일 JTBC 뉴스 9이 JTBC 뉴스룸으로 개편되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2016년 10월 24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손에 꼽는 역사적인 보도를 진행하였다.[40] 자세한 내용은 JTBC 뉴스룸/주요 보도 참조.

2018년 11월 20일부로 JTBC 보도담당 사장에서 공동 대표이사로 승진 임명되었다.[41] 이와 더불어 손 사장의 종전 직인 '보도담당 사장'직은 폐지 되었다.

3. 트리비아

3.1. 일반 사항

3.2. 동안

뱀파이어 파문술사

"그러면 정말 이런 말씀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동안이시네요. 정말 동안이세요."

- 아이유,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 중에 한 말

"잘 생기셨네요."

- 정우성[64]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견상 나이를 안 먹어서 동안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한다. 현재 63세로 물론 방송인지라 메이크업은 하겠지만(사진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스튜디오 사진들은 얼굴에 점이 잘 안 보인다. 조명 + 기본 메이크업), 메이크업을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동안이다.

심지어 JTBC 뉴스룸에 출연, 인터뷰에 응했던 서태지가 인사를 나누면서 "동안의 비법을 묻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이에 대한 손 앵커의 답변은 그런 거 없다. 참고로 서태지도 현재 40대 후반의 나이에 거의 미청년 수준의 얼굴을 유지하는 동안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말미에 "서태지와 손석희의 뱀파이어"라는 콜라보를 예고하기도 했다. 문답무용. 직접 보면서 확인해보자. #

2009년 100분 토론 고별방송에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現 서울특별시장)와 故노회찬 의원이 1956년생으로 손석희와 동년배인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65] 박원순의 동안 유지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손석희는 "내가 동안이 아니라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시다."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박원순은 한 인터뷰에서 "나이 들어보이는 외모가 변호사 일에서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JTBC의 '보스와의 동침'에 출연했을 때는 "손석희에게 문제가 있다. (동안이라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꽃미남의 그윽한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Careless Whisper'란 음악과 함께 안경을 벗는 모습이 힛갤에 등극했다(혹은 <손 교수의 은밀한 유혹>이라고 한다). 원본 수정본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방송에서는 전원책 변호사가 60대 초반의 전형적 유권자라며 "60대가 되어 보면 아실 겁니다."고 말했지만 손석희는 바로 (저도) "60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전원책 변호사는 (...). 심지어 둘의 나이는 겨우 1년 6개월 차이[66].

그렇지만 2016년 들어서 뉴스룸을 시청하다 보면, 이전보다 얼굴에 팔자주름이 깊게 패이고 흰 머리가 늘어난 모습이 역력하다. 사장이 쉬운 줄 알아?[67] 아무래도 3월에 있었던 검찰 소환 등 여러 스트레스로 인해 급노화가 진전된 것일 수도 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2017년 5월 31일 앵커브리핑에서는 노안이 왔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안습.물론 현재 시점에서 봐도 겨우 50대 중반 정도로 보일 뿐

어찌됐든 자타가 공인하는 미장년이다. 이런 외모 때문인지 남성 팬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들, 특히 젊은 여성 팬들도 꽤 많이 존재한다. 이들의 바람은 '손석희 교수 같은 시아버님이 있으면' 이다. 다만 이에 빗대 '손석희 교수가 시아버님이라면 잔소리는 100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긴 하다.

여담이지만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이미 MBC 시절부터 굴욕을 당했다.[68]

3.3. 정치적 성향

본인은 일단 언론인으로서 진영논리를 배제하고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시대의 상황을 전할 뿐이라는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오랫동안 피력해왔지만, 2019년에 공개된 손석희의 텔레그램 내용으로 보면 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다만 그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노리고 영입을 노리는 정치인들 덕분에 1990년대부터 매번 선거철만 되면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출마설이 신문에 오르내리긴 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정동영, 박영선(MBC), 박성범, 이윤성(KBS) 맹형규, 전용학(SBS), 한선교(프리랜서)등 지상파 방송인들이 줄줄이 정계 진출하자[69] '손석희도 혹시?' 하는 시각도 있었다. 100분 토론의 전임 진행자들이었던 유시민도 이 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된 바 있고.어째 몇 명 빼고는 끝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듯.

물론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이 종종 보이기는 하나, 이들은 원래 유명했던 인물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자나 앵커라면 정계 진출이 상당히 특이 사례이고,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아 정계 진출에 유리할 것도 별로 없다. TV 토론회에서 강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국은 TV 토론회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다만 낙선해서 정계를 떠난 전직들이 방송 진행자로 나오는 경우는 가끔 있다.[70] 하여튼 2010년대 썰전에서 강용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홍준표도 손석희에게 정계 진출(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을 매우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석희는 거절했는데, 실제 2011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서울시장 출마(+한나라당 입당)을 은근히 권유하자, 손석희는 당시 유행하던 개그를 빗대 "저는 영희가 아니라서... 그리고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습니까?"라는 답변으로 거절한 일화도 있다.소셜 라이브 그 후 6년이 지나고, 2017년 4월 25일에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사회자를 맡았는데, 문재인이 "국민 추천제로 내각을 구성할 계획인데, 손석희 앵커가 국민들에게 내각 인사로 높게 추천을 받는다면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손석희는 "추천 이전에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잠자코 듣던 홍준표가 “소는 누가 키우나 그 말이지요?”라고 물었다. 손석희는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십니까?”라고 언급하여 다시금 회자가 되었다. 네이버TV

실제로도 대놓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탄핵 정국 직후 한나라당의 장 모 의원[71] "탄핵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의로 유도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즉각 "알면서 왜 (탄핵을) 하셨습니까?"고 받아쳤다.해당 기사 탄핵 발의(3월 12일) 이전인 3월 6일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유 모 의원[72]이 탄핵안 발의가 총선용이 아니라며 "오히려 노 대통령이 탄핵의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하자 "그러면 그렇게 안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한 것. 이 질문에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자체가 헌법 수호에 문제가 되므로 총선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고 탄핵을 한다", "국민도 알아줄 거다" 라는 취지의 말을 어물거리며 말을 넘겼고 여기에 손석희는 "'글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해하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관광 태우며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도깨비뉴스의 분석기사.

한편으로 본인의 성향을 살짝 비춘 적도 있긴 한데, 2000년대 중반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별담화 형식으로 진행된 100분 토론 특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면전에서 좌우 대립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 생각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저는 참여정부를 별로 좌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라는 발언[73]을 하기도 했다. 또 일부 보수 세력들이 '손석희도 좌빨이다' 라고 한동안 트집을 잡자, 100분 토론에서 "저에 대해서 한두 분이 말씀을 하시는데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중립,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일 뿐"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기도 했다.[74] 그리고 이때 보수 쪽 출연자인 전원책 변호사가 농담식으로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표현해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인본주의, 휴머니즘이 뭐 어때서 활자로만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날은 특집 방송이라 그냥 훈훈하게 친 농담이었다. 전원책 변호사의 좌파 드립(...)이야 거의 전매특허라서 이상할 것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프리랜서 기자 폭행 논란에서 해당 프리랜서 기자가 텔레그램 문자 내용을 공개했는데 특히 탤레그램 문자 중에는 "1년 만에 자한당조중동세상이 됐음. 진짜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비판한 내용이 담겨있어 만약 진위여부에 따라 사실일 경우 사건과는 별개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서 중립성과 신뢰도에 타격이 우려된다. # 다만 세계일보는 이를 보도하면서 “공개한 텔레그램 내용이 실제로 손 사장이 보낸 게 맞는지 손 사장 측이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진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며 한 발 유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아 문자 작성시점이 2017년 12월경의 일이라고 한다면 2017년 말기는 북한의 6차 핵실험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 등을 당시 조중동이 활발하게 보도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곤혹을 겪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한당 역시 반등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상황을 말한 거라고, 손석희측 입장에서 굳이 변명해 말하자면 못할 것도 없기는 하다. 또한 이는 그저 개인적인 사견에 해당될 뿐이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뉴스 앵커로서 밝힌 것이 아니다.[75]

4. 비판 및 논란

손석희/논란 및 사건사고 참고.

5. 이력

5.1. 방송 활동

5.1.1. MBC

5.1.2. JTBC

5.1.3. 기타

5.2. 약력

5.3. 수상


  1. [1] 특이하게도 Sohn을 쓴다.
  2. [2] 음력 6월 20일. 네이버 프로필에는 음력 생일로 반영되어있다.
  3. [3] 동갑으로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있다.
  4. [4] 정세균과 함께 찍은 사진. 키 차이가 꽤 난다. 정세균은 168cm다. 정세균 의원의 키가 1950년생의 평균적인 신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손석희가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치고는 키가 상당히 크다. 요즘 젊은 남자로 치면 185cm 포지션. 젊었을 때는 178cm이였으며 현재는 177cm 정도 되며, 177cm도 2019년 기준 20~30대 대한민국 남성 평균키보다 큰 키이다. 남성 평균키는 173cm 정도다.
  5. [5] 4수를 했는데, 국민대학교에는 재수 끝에 합격했지만 이후 두 번 더 시험을 치러 모두 낙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6] 누나는 손석희의 주선으로 손석희의 직장동료인 주철환 MBC PD와 결혼했다.
  7. [7] 가끔 독신 남교사들이 이런 짓을 했다. 이 시대의 대부분 성인 남성라면 말고는 달걀후라이도 제대로 못하는 시기였다. (라면도 못 끓이는 인간도 부지기수)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검열삭제 떨어진다'며,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걸 금기시하며, 안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굉장히 이상하게 보고 천시하는 시대였으니까. 즉, 자기 손으로 반찬 만들기는 싫으니까, 애들이랑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이런 짓을 했던 것. 뭐 이런 인간쓰레기교사를 할까 싶겠지만, 이 시기에는 교사들이 권위주의가 극에달했던 때라 학생들을 멋대로 다루어도 그럭저럭 넘어가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촌지나 편애 차별 심지어 비리도 당연했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훗날, 교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잃은 채 성인이 되고 학부모가 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8. [8] 나중에 본인이 진행하는 JTBC 뉴스룸 2016년 9월 13일자 앵커브리핑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던, 9월의 밤 건넌방의 공포'에서 이 집에서의 기억이 회상된다. 해당방영분의 내용은 2016년 경주 지진에서 보여준 국민안전처의 미적거리는 대응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영상
  9. [9] 당시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가 3대 명문고로 꼽혔고 용산고를 포함해서 4대 명문고라 부르기도 했다.
  10. [10] 연기자 출신이자, 무언극인 난타의 기획자로 유명한 그 송승환 사장 맞다.
  11. [11] 이때 구입한 앨범이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만토바니의 영화 OST 모음집이었다고 한다.
  12. [12] 수학 교육에 계산기 사용을 넣냐 마냐를 다루었다. 근데 미국 생활 때 가게에서 뭘 사는데 계산기를 안 가져온 점원이 2자릿수 계산을 못해 버벅이는 것을 자신이 암산해서 답을 알려주자 점원이 존경하는 눈으로 봤다며, '근데 전 수포자였습니다.'라고 마무리. 그리고 이 수포자 언급은 비교적 덜 진지해지는 코너에서 수학 관련 꼭지를 다루면 가끔 나온다.
  13. [13] 공교롭게도 고등학교와 대학 모두 후기 모집 학교에 합격했다.
  14. [14] 전 헬리콥터 조종사이자 현 국가보훈처장
  15. [15] 2007년 2월 대전광역시로 이전.
  16. [16] 차승원을 모델 데뷔를 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자기 아들로 위장하여 키웠다는 점에, 말종과 결혼하여 정신적 타격을 입은 김주하와의 반대적 상황에 희한하다는 말도 있었다.
  17. [17] 여담으로 이때 자신이 맡고있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도 그만두어야했다고 한다. 본인이 회상하기론 이때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는데, 만약 기자로 전직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한다고. 그 프로그램은 '젊음의 음악캠프'로 보이며 강석, 손석희 등이 진행을 맡았었다고 배철수가 언급한 바 있다.
  18. [18] 실제로도 이 당시 서울시 정책에 관한 뉴스를 많이 리포트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대한민국 방송 사상 최악의 생방송 사고로 꼽히는 귓속에 도청장치 사건인데 이 당시 강성구 앵커가 소개하려 했던 기사가 바로 손석희가 취재한 서울 지하철 관련 기사였다. 어쨌든 본인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만이었다고 한다.
  19. [19] 김재철 전 보도제작국장 증언다만 이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면 그다지 신뢰는 안 간다.
  20. [20] 한편으로 1989년 1월까지 손석희의 기자 리포트 영상이 MBC 뉴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한동안 아나운서와 기자를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89년 4월 23일, 새로 신설된 일요일 MBC 뉴스센터 앵커를 맡게 된다.
  21. [21] 후일 전종환 아나운서도 똑같은 코스를 밟는다. 그리고 더 전까지 올라가보면 MBC 아침 뉴스를 10년 넘게 진행하고 나중에 한 번 더 한아침뉴스의 엄기영 최우철 앵커도 이 코스를 거쳤다.
  22. [22] 물론 당대에 땡전뉴스가 원성의 대상이 되어서 시청료 거부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시청료 징수율이 매년 큰 폭으로 떨어질 지경이었기에 일선 앵커나 기자들 사이에서 자괴감이 들지 않을리가 없겠지만 1980년 언론통폐합을 앞두고 저항적이다싶은 직원들을 본보기 삼아 찍어냈던데다가 고문이나 의문사가 횡행하던 시절인지라 권력에 순응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23. [23] 군부대 시찰내용1, 군 부대 시찰내용2, 1987년 개천절 경축사, 직선제 개헌안 국민투표일 공고
  24. [24] 다만 이런 뉴스는 세계 어디를 가도 당연히 보도해야되는 뉴스들이긴 하다. 땡전 뉴스라고 하기엔 지나친 시각.굳이 이거 아니어도 깔 건 많다
  25. [25] 1989년 주말 뉴스데스크 자리에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편성된 이전의 뉴스센터가 잠깐 부활했다. 그러나 6개월만인 1989년 10월에 다시 폐지되었고, 이후로 1991년 4월에 다시 부활해서 1993년 10월까지 방송되었다.
  26. [26] 4대 뽀미 언니로도 유명하다. 그 덕인지 1995년 뽀뽀뽀 4000회 특집에 가족과 나오기도 했다. 참조.
  27. [27] 수도권 전철의 요금 인상 검토 관련한 내용이었다.
  28. [28] 1대 진행자는 정운영(99. 10~00. 6), 2대 진행자는 유시민(00. 7~02. 1).
  29. [29] 손석희는 2006년에 MBC를 퇴직했는데, 이렇게되면 외부인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니 만큼 당연히 출연료를 높게 부를수밖에 없다. 즉 출연료가 비싸진다는거 자체는 손석희 본인이 굳이 적게 받지 않는 이상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손석희가 나간게 2006년인데 하차한건 2009년으로 3년이나 지난 뒤라는 것. 이미 나간 인물을 상대로 방송국이 3년이라는 장기계약을 했을거란 가능성은 낮고 바로 하차시키지는 않았던 시점에서 손석희가 MBC를 떠난 이후에도 손석희를 운영자로 부를 정도로 프로그램이나 제작비엔 별 문제가 없단 것이 스스로 입증된 것이다.
  30. [30] 2018년 현재 MBC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31. [31] 당시 정권 비판적인 클로징멘트를 자주 쏟아내던 신경민 앵커가 1년만에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하차하고 엄기영 사장이 정권의 압박에 못 이겨 사장에서 물러나는 등의 일들이 있었다.
  32. [32] 이 소 드립은 후술할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TV 토론회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다시 언급했다. #1
  33. [33] 그 당시 사장이던 김재철은 노조탄압으로 악명이 높고 이래저래 일이 터지면서 결국 퇴직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사장직 해임의결을 앞두고 직접 사표내고 빠져버렸는데, 이 갑작스런 도주탓에 사장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결국 대전지부 사장이던 김종국이 급하게 본사 사장으로 임명되어 공석을 매꿧는데 이래되니 당연히 대전지부 사장직이 공석이 되는 탓에(...) 그 자리를 메꿀 인물이 필요해 김창욱 아나운서를 대전지부 사장으로 발령낸 것.
  34. [34] 하지만 손석희는 아나운서 국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조직지휘를 하긴 했다.
  35. [35] 사실이 아니다. 1986~1988년에 기자로 활동했다.
  36. [36] 물론 2018년 말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후에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대표이사이기 때문이다.
  37. [37] 그것도 앉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방송 끝날 때까지 서서 진행한다. 세트라고 해도 천막 하나 뿐이다. 서서 진행하는 게 뭐가 대수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요즘에는 1시간 30분간 방송한다. 장장 90분간 서서 생방송으로 진행한다고 생각을 해 보자.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것도 와닿지 않는다면, 지상파 진행자들의 진행 방식과 비교해 보시길.
  38. [38] "누가 믿고 뉴스를 보냐. 이제 알았어. 뉴스는 다 거짓말이야. 빨리 (중계차) 차 빼"라는 실종자 가족의 발언과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할 때 여러 방송국들의 카메라가 파손당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팽목항에서는 기성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손석희 앵커가 현지 진행을 시작한 첫 날, 실종자 가족이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실종자 이모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씨가 찾아와 하소연한 것을, 합의한 후 방송에 내보냈다.
  39. [39] 2014년 4월 28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은 5.061%. 같은 날 SBS 8 뉴스는 6.0%, MBC 뉴스데스크는 5.6%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TV간의 시청률 표본집단이 달라서 정확히 비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여타 종편 채널 뉴스의 시청률이 1%대에 불과함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결국 2014년 4월 29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이 처음으로 5.401%를 기록하며 MBC(5.4%)를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터넷 시청까지 고려한다면 사실상 JTBC 뉴스 9가 뉴스데스크를 앞질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같은 날 SBS 8 뉴스의 시청률은 6.4%.
  40. [40] 이런 여파를 가지고 온 보도로는 중앙일보가 최초 보도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가 있다. 이 보도 또한 6월 항쟁의 단초가 되어 결국 5공화국이 몰락하게 된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이라는 더 여파가 큰 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정부수립이전이고 또 오보다.
  41. [41] 이전에도 보도담당 사장이긴 했으나 당시에는 편성권이나 보도부문 산하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42. [42] 입사한지 2개월만에 정규뉴스프로그램진행을 시작했으며, 입사 3년차에 뉴스데스크 주말단독앵커로 안착했다. 다만 이때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손이 한창 부족할 시기여서 입사연차를 가릴 여유가 없었다.
  43. [43] 애초에 소문의 근거가 손석희 앵커가 국민대 출신치고는 너무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이어서 별로 신빙성도 없다.
  44. [44] 당연히 손석희가 언급한 미용실은 여의도 MBC를 말하는거다 2010년대야 DMC가 조성되면서 많은 방송사들이 상암에 있는거지 80년도 부터 2004년까지 MBC,KBS,SBS모두 여의도에 있었다.
  45. [45]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는 폭행사건에 피해자로 연루된 김웅으로부터 넘겨받은 녹취록을 공개했는데 거기에 손석희로 보이는 인물의 욕설이 담겨 있었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감정이 격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46. [46] 그 시절에는 담배 피던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최근 KBS에서 업데이트한 뉴스9의 영상자료중 87년의 오프닝 영상을 보면, 보도국에 있는 기자들이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수가 있다.
  47. [47] 180cm가 아닐 뿐이지, 178이면 웬만한 사람보다 큰 키다. 그런데 손석희는 60대다.젠장
  48. [48] 겸임교수야 비정규직이고 연구 실적이 없더라도 그 분야에서 사회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섭외하는 경우도 많지만 전임교수는 철저히 학문적 연구 실적으로 임용되는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교수 임용 과정에 불투명한 부분이 많아 채용 과정에 각종 인맥, 학연이 얽히고, 심지어 뒷돈이 오갔지만 현재는 해외와 동일하게 연구 실적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여 평가하여 임용되는 시스템이 많이 정착되면서 교수 임용 과정이 과거보다 투명해졌다.
  49. [49] 100분토론,시선집중 때부터 단골 섭외 게스트중 한명이었으며, 위의 노안드립에서도 알수 있듯 동갑이었다.
  50. [50] 현재는 링크가 삭제되었다.
  51. [51] 폐지가 아니라 시즌 종료다. 담당 PD가 제작 발표회에서 이미 밝혔고, 해당 PD는 시즌2를 론칭하였다.
  52. [52] 극중 배역을 맡은 사람이 이성민이다. 물론 손석희는 키가 178cm로 결코 작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큰 편. 하지만 180cm가 안 되어 루저가 되었다
  53. [53] 물론 관련 취재를 하고 물증을 확보한 기자는 손석희 사장이 아닌 서복현, 심수미, 김필준 같은 기자들이었다.
  54. [54] 이 메일이 인용 보도되고 외부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 손석희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5월 10일 뉴스룸 소셜 라이브에서 '메일이 툭하면 바깥으로 새어나간다'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이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55. [55] 오히려 손석희가 문재인을 편들어주듯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편향성, 공정성 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중립성을 유지해야 언론으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다.
  56. [56]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상당히 집요하게 따졌다는 느낌도 없진 않은 게, 김무성 전 대표와의 인터뷰도 그렇고, 인터뷰를 할 때 상대방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손석희는 몇 번 되묻다가 일단 알겠다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 전 대표와의 인터뷰에선 납득이 안 간다는 의사를 꽤나 강하게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이 있는데, 지금 사안이 워낙 민감한 사안인 데다가 정치인들의 의견이 하루가 다르게 약간씩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어, 그들의 진짜 생각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집요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더군다나 이 부분은 정치인들 인터뷰에서만 이런 것이 아니라 기자들과의 연결에서도 확실한 정보만을 요구하는 모습을 종종 드러냈다. 혹 취재가 잘못됐을 경우, 특히나 지금 이 시국이라면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뉴스룸에서는 사드 관련 번역 오역 등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것 때문에라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 또한 있을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57. [57]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 전에 했던 김무성 의원의 개헌 발언 후 동공 지진과 이후 자진해서 나갔던 박지원 의원의 "전국민 7-80%가 개헌을 지지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로 인해(실제로는 현 상황에서 개헌을 반대한다는 게 70%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재평가를 받는 상황. 물론 본인도 후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확실히 손석희 앵커에게 말렸다."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58. [58] 2017년 3월 13일 뉴스룸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이 이야기가 질문으로 나왔다. 후배 기자가 "왜 3월 10일에 하지 않으셨냐"고 물어보자 '원칙을 지킨 것뿐'이라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12월 9일에 했던 건 자기도 얼떨결에 한 거라서 하고 나서 나중에 많이 후회했다고.
  59. [59] 참고영상, 21초 즈음
  60. [60] 이름 최순실의 순실과 종결 어미 ~이가 결합하여 실이 [시리]가 된다고 한다.
  61. [61]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Can't Stop the Feeling의 후렴구에서 soon, so keep dancing라는 부분이 손석희 댄스라고 들린다. 캔ㅌ 스탑ㅍ 더 퓔럴ㄹ! 순 서키 댄 싱
  62. [62] 물론 잠깐 유학을 가긴 했지만, 학위 취득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쉬었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63. [63] 5월 중순에 한미연합훈련을 문제삼아 우리 측을 비난한 그 분 맞다.
  64. [64] 손석희 본인은 이 말에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거기에 대한 답변은 안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답변(...).
  65. [65] 서로 같은 년생이지만 학번은 다르다. 3월생인 박원순은 마지막 4월 입학대상자 1962년도에 입학했고, 손석희와 노회찬은 1963년도에 입학했다. 여기서 노회찬은 지금은 사라진 고입입시에 한 번 떨어지고 재수해서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거라 1957년생인 이종걸, 황교안과 같이 입학했다. 대학교 학번까지 가면 박원순은 재수를 해서 1975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제적을 당하고 단국대학교에 재입학, 손석희도 재수를 해서 1976년도에 입학, 노회찬은 입시에 떨어지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도에 입학했다.
  66. [66] 전원책 변호사는 1955년 1월 8일생이다.
  67. [67] 그래도 나이에 비해서 10살 이상 어려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
  68. [68] 1980년대에 두 사람이 MBC에 같이 있었으니 충분히 최문순 지사가 굴욕을 받을 만 하다! 문제는 한국 최장수 앵커가 최문순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69. [69] 이후 KBS에서는 안형환(18대 총선 출마), 민경욱(20대 총선 출마) 등이 있었다. MBC에서는 최문순(18대 총선 출마, 현 강원지사), 엄기영(2011 강원지사 재보궐선거 출마), 신경민(19~20대 총산 출마), 박광온(19대 재보궐선거 출마), 김성수(20대 총선 출마), 최명길(20대 총선출마, 17. 12. 05. 의원직 상실), SBS에서는 홍지만(18~19대 총선 출마), 정성근(19~20대 총선 출마) 등이 있었다.
  70. [70] 당장 강용석, 유정현, 안형환, 진성호(18대 의원) 등은 종편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사프로그램에서 극우인사로 악명을 떨쳤던 장성민도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71. [71] 통합민주당 출신 인사인 장광근 의원이다. 이 사람은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18대 국회에서 후반기 국토해양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뇌물수수로 국회의원 임기 1달을 남기고 의원직을 잃었다.
  72. [72] 당시 16대 국회 후반기 위원장이자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인인 유용태 의원이다.
  73. [73] https://www.youtube.com/watch?v=hgwBlxxijZA 9분부터 보면 된다.
  74. [74] 이 말은 나중에 만화가 주호민이 본인의 정치 성향을 밝히면서 사용하기도 했다.
  75. [75] 공개된 텔레그램은 후배 기자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지, 공적인 발언이 아니다. 아무리 중립성과 공정성을 요구받는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발언까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는 없다.
  76. [76] 영화 퍼펙트게임이 다루는 선동열vs최동원 경기에 대한 보도도 한 바 있다. 영상은 여기.
  77. [77] 100분 토론을 진행할 때 받은 상. 당시 타임머신을 진행하던 박수홍과 공동 수상.
  78. [78] 한겨레 신문의 초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