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wiki style="margin-right:10px;margin-left:30px"

이 문서는 비로그인 사용자의 편집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사유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하위 문서: 우병우/논란

  관련 문서: 우병우 사단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박근혜 정부

4대
우병우

5대
최재경

검사의 전공

특수통

이름

우병우(禹柄宇)

출생

1967년 1월 28일 (52세),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1]

신장

174cm

아내

이민정#

자녀

장남 우주성#, 차남 우현성, 장녀 우지원#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사법연수원 19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
변호사우병우법률사무소 대표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학력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병역

면제(고도 근시)

종교

불교#

1. 개요
2. 일생
3. 논란과 의혹
4. 영향
5. 기타
6. 말말말
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논란에 휘말린 끝에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

간략한 인생사와 성향은 이 기사를 참조. 국정조사에서 "박근혜김기춘을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로 인해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2]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이 수많은 논란에 휘말려 있으나, <신동아> 기자의 논평을 빌리면, "우 수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직자이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강남 땅 매매와 관련해 몇 마디 한 것 말고는 언론 앞에서 입을 연 적이 거의 없다."[특종]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위 보도는 민정수석 취임 몇 달 후인 2015년 4월 6일 몇몇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폭로한 것인데, 이를 보면 언론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거의 안 쓴다' 라며 매우 부정적인 속내를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평생의 행적, 특히 민정수석이 된 후의 행적을 보면, 아무리 봐도 언론이 좋은 기사를 써 줄 구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비록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간접적으로 진경준 게이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에 모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인줄 알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그 장본인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스캔들의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민정수석실의 협조가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

검사로서는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는 설령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낙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업무인 민심 동향 파악, 사정 및 공직 기강 확립, 법률 보좌, 인사 검증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3]

국정농단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와중에 우병우만 구속을 면하고 있었던 것은 &quot;혼자 죽지 않겠다&quot;라고 검찰에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법조계에까지 파다하였다.[4]#[5]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이른바 우병우 사단에 대한 대폭적인 좌천이 이루어짐에 따라 '다 같이 죽게' 생겼다.... 라기도 뭐한 게, 이 일당이 쌓아놓은 법조계 인맥과 재산 규모를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죽는다' 는 표현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7년 6월 16일 열린 첫 공판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정치적 책임은 통감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는 그의 롤모델인 김기춘이 10여일 후 피고인 신문에서 한 진술과 같은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그가 이날 공판정에서 "이 자리를 통해 국민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라고 한 말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6]

3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결국 구속되어 기소되었다.

2018년 1월 29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한 논고는,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꼬집고 있다.#

민정수석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부처 인사 심사에 개입했다.

개인 비위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찰 업무는 외면해 국가기능을 상실시켰다.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하고 있다.

우병우 본인이 공판에서 한 최후진술도 그 골자는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였다. 특기할 것은, 이렇게 남 탓만 하는 것은 여느 국정농단 주역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태도였다는 사실이다(그의 롤모델인 김기춘조차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자기 자신의 판단하에 옳다고 생각하여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2. 일생

  자세한 내용은 우병우/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논란과 의혹

  자세한 내용은 우병우/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영향

우병우 ‘봐주기 수사‧기소’, 검찰개혁 여론에 기름 부어

[사설]‘우병우 라인’ 인사조치, 검찰개혁 시작이다

&quot;우병우 영장 기각 '자초'&quot;…커지는 검찰 개혁 목소리

우병우 불구속, 오히려 '검찰 개혁' 물꼬 트나

우병우 앞에선 무뎌지는 檢

우병우, 검찰개혁 일등공신 되나?

검찰청에서 폭로된 황제 수사 및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회장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유유히 구속을 빠져나갔던 전적으로 인해 검찰 권력의 강대함을 여과없이 잘 보여준 인물이다. 검찰내에서도 우병우의 입지와 영향력은 매우 강했는데 자세한 것은 우병우 사단 을 보자

하지만 이러한 행적들 때문에 우병우는 검찰 개혁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되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우병우가 자신의 친정이였던 검찰에 준 자폭은 엄청났는데 우병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검찰과 검사들은 사실상 검찰 개혁에 저항할 명분과 당위성 자체를 크게 상실해버렸다.

결국 검찰은 19대 대선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검찰 출신이였던 홍준표조차도[7] 초강경한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그 누가 되었던 검찰 개혁을 끝끝내 피해가지를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5. 기타

6. 말말말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前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17년 2월 23일자 사설#[21]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 우병우~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를 구속~하! 라!"
- 우병우 구속가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정부의 상징.

- 전원책

우 전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과 과도한 권력욕이 박근혜정부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향신문 2017년 4월 7일자 기사 [단독]우병우, 아직도 “대통령님…” 공직 망각한 맹목적 충성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 [양선희의 시시각각] 법이 비껴간 우병우의 죄

지난 1년 사이에 포토라인에 4번째 섰습니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구속

2017년 1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서 기자들에게# 그런데, 행간을 읽어 보면, '내가 설마 검찰에 꼬리를 잡힐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법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라는, 한 점 죄의식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아니, 그러면 우병우 같은 사람은 앞뒤가 똑같은 사람입니까?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세형이 이름드립[22]을 칠 때 반격하면서

7. 둘러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주요 관련 인물

박근혜

김기춘 · 우병우 · 안종범 · 문고리 3인방 · 조윤선 · 이재용 · 문형표 · 추명호

최순실

정윤회 · 정유라 · 장시호 · 고영태 · 차은택 · 김종

관련 사건

전개 과정

사건의 배경 · 타임라인 · 박근혜의 해명

주요 내용

문제점 · 국정 개입 · 인사 개입 · 재단 활동 · 의료 논란 · 세월호 7시간

수사 · 재판

검찰수사 · 특별검사 · 국정조사 · 재판 · 탄핵 · 구속

기타 관련

기타 관련 인물 및 단체 · 언론 · 반응

기타 관련 사건 · 관련 집회

기타 관련 문화 및 여담 · 박근혜 퇴진 운동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 박근혜 석방 집회

}}}}}}


  1. [1] 장모 김장자(강남구 논현동 24-11 알파임하우스)를 제외한 처제들이 모두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최순실, 최순득도 이 아파트에 거주다.
  2. [2] 헌데 행적을 살펴보면 김기춘보다는 차지철과 더 유사한 면이 많다. 다만 우병우는 차지철과는 달리 법률지식에 해박했던 데다 인사권을 이용해 본인의 비호세력을 형성한 것이 차이점. 그리고 이것이 2017년 연말까지 우병우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다.
  3. [3] 민정수석의 임무보다, 그 권한으로 주요 요직에 본인의 사람들을 임명하고 본인의 사익추구에만 최선을 다했다. 사실 언급된 업무를 보면 단 하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 박근혜 정부 고위직 전체가 그랬지만 민심 동향 파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각종 국가기관(국정원, 검찰, 감사원 등)에 자신의 비선라인을 만들어 사정 및 공직 기강을 초토화시켰으며, 자신의 법률 지식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들의 범죄를 덮는데 이용했고, 인사 검증은 온갖 논란의 대상이었던 진경준 검사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이쪽은 최순실이 청탁했다는 의혹까지 튀어나왔다!) 임명 건으로 제대로 말아먹었다.
  4. [4] 이게 심각한 것이, 이런 말이 통한다는 것은, 결국 검찰 수뇌부가 우병우와 함께 적극적으로 비리를 저질렀다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
  5. [5] 이 보도에 대해 우병우는 "정정보도 청구를 하겠노라"고 발끈했다고 하는데, # 공교롭게도 국정조사 때 '민정수석이면서 최순실청와대에 드나드는데도 최순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 아닌가?'라는 질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발끈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6. [6] 역시나 반년 후에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있는 줄 몰랐다고 우기면서, "사심 없이 공직을 수행하고 분수를 지키려 노력했다. 청와대의 관행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믿고 있다. (나를 기소한 것은,) 과거 내가 검사로 처리한 (일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발뺌을 하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군 박근혜의 변명과 상당히 비슷하다.
  7. [7] 홍준표는 검찰 시절에 강경하고 타협없는 수사로 때문에 주류와는 이미 비틀린 뒤였다. 때문에 홍준표는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었던 검찰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이미 홍준표는 검찰에 앙심을 품은 지 오래다.
  8. [8] 우병우의 승진을 강력하게 제동을 건 사람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던 조응천이었다고 한다. 조응천은 우병우와 비슷한 TK이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가 오만방자하다는 평판이 너무 지배적이라서 검찰 정기인사 때 우병우의 승진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응천이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잘리자마자, 검사장에서 탈락해서 변호사를 하던 우병우가 청와대로 들어온다.
  9. [9] 사실 이부분은 의심되는 것이 있는 게 우병우는 주민등록상으로는 빠른 67년 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학교(국민학교부터)를 1965년 생들과 다녔기 때문에(서울대 84학번. 우병우의 친구로 알려진 사람들도 죄다 1965년 생이다.), 실제 나이는 출생신고가 1년 이상 늦어진 빠른 66년이나 65년 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계만 봐도 1950~60년대 생 중에 이런 식으로 주민등록은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 나이대로 다닌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70~80년대생 중에도 종종 있다.
  10. [10]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시 '소년급제'를 한 만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지청장이 일찍 됐다.
  11. [11] 당시 재선 고령군수였던 이태근은 1947년생으로, 우병우보다 20살 연상이다.
  12. [12] 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2011. 참조.
  13. [13] 민주주의에서 선거로 뽑힌 선출직은 실권을 떠나 국민 대표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지자체장 소속이 고령군 같은 규모에 버금가는 소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지간한 대도시(안산시, 성남시 등)거나 광역자치단체장에게 갑질을 했으면(사실 여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30만 정도의 중소도시 수장만 해도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과 연줄이 있어서 부장검사 따위는 조질 수 있으며 사실 군수 정도만 되도 부장 검사에게 전혀 안 밀린다.) 그날 이후로 우병우의 법조인 커리어는 끝장이었을 것이다.
  14. [14] 박지원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이자 계파의 확실한 넘버2였다.
  15. [15] 승지 도승지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략 군대로 치면 국방부장관이 소장(투스타)(…)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 수 있나요?'하며 물어보고 허가받고 나서 오는지 마는지 듣고 대답(보고)했다고 생각해 보자. 행정부의 온갖 업무와 사정과 인사를 담당해 온 우병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막강했다는 증거.
  16. [16] 그리고 실제 파워도 윗 비서실장이 쩔쩔매던 일화처럼 막강한 권신.
  17. [17] 민주사회에서 김영삼 김대중 삼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 이야기나, 킹무성 킹순실 같은 별명이 절대로 칭찬이 아닌 것 처럼.
  18. [18] 지방경찰청장은 2급 공무원인 치안감인데 이정도면 평검사보다 최소 2직급은 높은 직위다. 이걸보면 자신보다 계급이 높아도 권력이 약하면 수족부리듯 부린 모양이다. 물론 당시 검찰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권력이 강했다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19. [19] 거기다 1심, 2심 대법원 판결 전부 무죄 확정이었다.
  20. [20] 수십년 전문 운전경력의 경찰간부가 아들 운전병 채용에서 '코너링이 남다르다'는 점을 언론 앞에서도 강조하며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대놓고 극찬하며 이유를 댄 것에 대한 패러디. 우병우아들 + 코너링 = 우회전
  21. [21]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우병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문서를 참조
  22. [22] 숏터뷰에서 성남을 거꾸로하면 남성이라고 성차별한다고 우기는것을 가리킨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