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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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제16대
곽치영[1]

제16·17대
유시민

제18대
손범규


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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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몫 비례대표

민병주

김정록

윤명희

조명철

강은희

주영순

신의진

이상일

이에리사

이만우

박근혜

안종범

김현숙

김장실

이자스민

최봉홍

류지영

송영근

민현주

박창식

손인춘

김상민

현영희

이재영

신경림

이운룡

박윤옥

양창영

장정은

이동주

정윤숙

민주통합당 몫 비례대표

전순옥

최동익

은수미

홍종학

진선미

김용익

배재정

백군기

남인순

김광진

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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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김기식

한명숙

도종환

김현

진성준

최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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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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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몫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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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조윤숙

이영희

오옥만

노항래

나순자

유시민

윤난실

서기호

자유선진당 몫 비례대표

문정림

김영주

황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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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뉴스깨기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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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김구라

진보 패널

이철희

유시민

노회찬

이철희

보수 패널

강용석

이준석

전원책

박형준

}}}}}}||

시즌1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시즌2

유현준

장동선

시즌3

김진애

김영하

김상욱

}}}||

이름

유시민 (柳時敏)[2]

출생

(양력) 1959년 7월 28일 (61세)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리[3]

본관

풍산 류씨[4]

학력

대구수성국민학교 (졸업)
대구대륜중학교 (졸업)
대구심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 / 학사)
마인츠 대학교 (경제학 / 석사)

종교

무종교(무신론)[5]

신체

174cm, A형

형제

2남 4녀 중 차남[6]

배우자

한경혜

자녀

1남 1녀[7]

현직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제5대 이사장
보해양조 사외이사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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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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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민주당}}}]] (1988 -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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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국민정당}}}]] (2002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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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2003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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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2007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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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2008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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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당}}}]] (2010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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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의당}}}]] (2012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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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2013 - 2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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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2018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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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2[10]

의원 대수

16, 17

서명

SNS

[11] [12]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13]

1. 소개
2. 일생
3. 정치, 경제 성향
3.1. 정치 성향
3.3. 정치, 경제 관련 어록
4. 방송 활동
4.1. 과거 출연작
5. 저서
6. 선거 이력
7. 비판과 논란
8. 전과
9. 여담

1. 소개

대한민국정치인, 작가, 정치평론가, 방송인.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한민국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했으며[14],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한때 현란한 말솜씨와 배경 지식 등으로 큰 인기를 얻어 진보 진영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정치인이었지만,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꾸었고 얼마 뒤인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작가, 논술 강사, 강연자,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시민은 자신을 소개할 때 '이것저것 하다가 지금은 글 쓰는 사람'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방송 활동이 활발해진 2017년 들어와서는 스스로를 ‘방랑 예능인’이라 자칭하기도 한다. 사실 일단은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기 때문인지 그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예능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담조의 발언이고, 진지하게는 방송이 ‘부업’이고 본업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유 작가의 시민이라는 이름은 역사교사였던 선친이 조선 무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애 류성룡의 13대 직계손이다. 탤런트 류시원과 같은 항렬이다. 유시민의 12대조는 장수찰방 류여, 11대조는 졸재 류원지이다. 알쓸신잡 시즌 2 안동편에서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을 방문했는데, 만난 마을 주민 어르신들이 유시민을 '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2. 일생

  자세한 내용은 유시민/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정치, 경제 성향

3.1. 정치 성향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ㅡ 2016년 3월 17일 JTBC 썰전 1부 도중. 전원책 변호사가 유시민 작가에게 친노냐고 묻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그 저기 쓴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오늘 제가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15]

노무현 前 대통령의 퇴임 직후 봉하마을 연설 中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거나 포기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그분이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참여정부의 자산을 상속받겠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누구도 참여정부의 부채를 승계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 부채는 우리 국민참여당이 인수해서 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남긴 좋은 자산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정당과 대한민국에 넘기고, 국민참여당노무현 대통령이 빚지고 가신것만 인수해서 끝까지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시다!

그분이 불가능한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합시다!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입시다!"

국민참여당 당 대표직 수락연설 中(2011.3.19, 국민참여당 전국 당원 대회)[16][17]

저는 리버럴로서 당원에게 아무 권한도 주지 않는 정당체제와 싸웁니다. 국가상징물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공개적인 충성 서약을 하게 하는 국민의례에 반대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원합니다. 성차별을 제도화한 호주제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파업권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이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며, 그런 전제 위에서 불법파업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합니다.

ㅡ 2002년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 中

(전략) 로마 때도, 아테네 때도 대중들의 지지라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에요.

(중략)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지율 하락이) 저는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보고요.

ㅡ 2018년 12월 21일, 돌베개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당시의 모습

진보 계열 정치권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히지만, 오랫동안 진보-좌파 계열에서 주류를 차지해온 호남계 인사들과는 사이가 껄끄롭다 못해 거의 척을 진 수준이다. 유시민은 호남 출신 인사들과는 친한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소위 말하는 영남 출신 좌파와 매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유시민 본인부터가 영남 출신이며, 유시민이 정치적으로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노무현, 조국, 문재인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또 영남 출신인 박원순, 이재명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 이해찬, 안희정 등 충청도 출신 진보 계열 인사들과도 친한 경우가 많다.

지역적 편애와 더불어 학벌에 대한 편애도 은근히 상당한데, 관련 인맥 대부분 서울대나 연고대 출신이거나 SKY 출신이 아니면 사법고시 합격자들에 한정된다. 80년대 말 ~ 90년대 운동권의 주류였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비롯한 몇몇 중상위권 대학 출신들과는 거의 잘 어울리지 않는 등 사시 출신이 아니라면 연고대 미만은 거의 인맥이 없다. 과거 김대중 불가론을 내세우며 조순을 대선 후보로 미는 등 자신의 출신학과인 서울대 경제학과에 대한 애착도 많은 듯 보인다. 다만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은사지만 학생운동을 하느라 수업을 듣지 않은 자신에게 F를 날렸기 때문인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정운찬이 정계에 진출했을 때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시민은 운동권 선배인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평민당에서 처음 정치권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김대중 총재와 동교동계 가신들을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김대중 총재가 보인 인기 영합적 행보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 지칭하며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3김 시대의 정점에 있던 그 80년대말 평민당에서 감히 김대중 총재를 까서 당내 파장이 일기까지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결국 유시민은 이해찬 보좌관을 그만두자마자 평민당을 탈당했다.

이후에도 유시민은 진보권 정치권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항상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을 누차 비난했다. 그는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대중 후보로는 대선에 절대 승리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타 지방 사람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면서 전라도 혐오증, 반김대중 정서를 대놓고 주장하면서 비호남 출신을 내세워야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주자로 자신의 은사인 조순 전 서울시장을 꼽았다.

결국 DJP 연합을 통해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유시민은 김대중이 대선 과정에서 보인 야합에 다시 한번 크게 실망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2년 가까이 흐른 시점에서 유시민은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라는 칼럼을 발표하여 현직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유시민은 칼럼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 가신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으며,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라고 개탄했다. 유시민은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특검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정작 정권을 잡자 이를 폐기했다는 점을 들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훗날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을 때, 우연하게도 인사청문회 첫 적용대상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유시민 본인이었는데, 유시민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후반에 이르자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등으로 인해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과 통치력을 상실했다면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유시민은 호남-진보계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호남 혐오론자, 영남 패권론자라는 비판을 공공연히 받아왔다.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 전인 2010년대초까지 선거 때마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계속하면서 호남 정치인들 및 그들이 주류를 차지한 민주당계 정당과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유시민은 민주통합신당에 잠깐 머물렀다가 탈당한 이후 호남계 민주당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으며, 대신 진보당-정의당 계열의 정당에 계속 몸을 담았다. 하지만 사실 유시민은 진보당 계열과도 노선이 달라서 과거 노회찬, 심상정, 진중권 등 정의당 계열의 대표적 인사들과 모두 크게 대립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호남계를 싫어했기에 그나마 사이가 덜 나빴고 수용 가능했던 진보당을 마지못해 택했던 것. 물론 이전에는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참담한 지지율 속에 임기를 마치고 열린우리당은 해체되었으며 친노 세력 또한 표면적으로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기에 이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넘어서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시민은 같은 영남 출신의 떠오르는 정치인 노무현과 뜻을 함께 하게 되었고, 노무현이 대선에 나서게 되자 마침내 그를 돕기 위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이후 유시민은 정치적으로 친노의 적통으로 불리고 있다. 유시민 본인은 자신을 불온한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다.[18]

정치인 유시민을 논할 때는 친노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유시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친노계의 적통이나 다름 없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불리는 문재인, 오른팔, 왼팔인 안희정, 이광재보다도 친노라는 틀 속에서는 유시민보다 적통인 인물이 없다는 말까지 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일반적인 친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경력과 과정을 거쳤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학연, 지연, 혈연, 당적, 경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독일 유학을 했던 유시민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고, 경북 월성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유시민과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활동을 부산 지역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물론 넓게 봤을 때 같은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이 있으나 아무리 같은 영남권이라도 TK와 PK는 지역색이나 정치색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유시민이 같은 영남이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것도 아니다.[19]

노무현 당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 당원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나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노 후보를 바깥에서 도왔다. 인권 변호사 & 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자였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 운동을 했던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이, 뛰어난 능력과 신념을 가졌는데도 고졸 출신이라며 노무현을 깔보는 거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반발 심리로 '나도 당신들처럼 명문대 나왔고 학생 운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무현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됐다고도 한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전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멘트들.#

"김근태 의장이 존경스러웠던 분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김근태 의장이 따라배우고 싶으신 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분이었어요.''

ㅡ 영화 '노무현입니다' 중에서

이렇듯 뭘로 보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후에 유시민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노무현 개인에게 흠뻑 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가 호모는 아닌데 노무현이란 사람이 그냥 좋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노무현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유시민 본인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이고 심재철이나 김문수 등 여권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젊었을 적 친분을 가지고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걸 보면 정치계에선 노무현이 제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민주당의 친노계 의원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시민이라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 이유로는 비록 정당은 달라도 다른 친노계 민주당 의원들과도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20], 사적으로도 참여정부 시절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잘 유지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가 열릴 때에면 자주 민주당 소속 친노계 정치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입담을 과시하곤 한다. 이 때문에 유시민을 민주당계로 아는 사람도 제법 적지 않고, 실제로도 민주당계와 제3지대를 아우르는 광역계 친노계열로 구분된다.

유시민이 있던 진보 정당들의 강령도 노무현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그로 인해 진보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거리를 좁힌 인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사이에 끼친 영향은 크며, 친노 성향의 의원들이 이 둘 사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행동도 자주 하고 있으며 유시민도 그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ㅡ 시사IN 179호, 강금원과의 인터뷰에서

다만 유시민을 친노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의 측근 중 하나인 故 강금원 회장과 노무현이 있는데, 강금원 회장은 유시민의 행보를 비판하며 '쥐XX처럼 정치하지 마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으며, 그를 친노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다. 또한, 노무현 본인이 직접 유시민에 대해 '우리편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비슷해서 인정한 것이다'라고 잘라말했다.

여담으로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소비자' 유시민이 <한겨레>와 작별한 까닭은? 이유는 한겨레에서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인 욱한 감정으로 그런 것이고 본인 이름으로 구독하는 것은 미안하다며 아내의 이름으로 계속 구독 중이라 한다. 그랬던 그도 훗날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자 TV조선에 노무현재단에 노무현시민센터 설립을 위한 광고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친노에서의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친문으로 보아야 할 지는 복잡하지만, 최근의 행보에 따르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유시민은 문재인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이며, 위에 나왔듯이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친노 내에서 유시민이 가지는 강력한 상징성과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문재인의 인사로 보기에는 대단히 애매한 편이고, 유시민 본인은 썰전 158화에서 전원책이 지금도 친문이냐고 묻자 저는 친문이죠 라고 바로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되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대외적으론 친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고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간적인 매력이 확 땡기는 맛이 있나? 대선때 다들 고구마라 그랬잖나. 구도를 특별히 짰나? 그것도 없다. 그냥 시민들이 촛불 혁명을 일으켜서 그냥 나갔고 그냥 원래 생기신대로 어어 하다 대통령이 되었다.'란 발언을 해서 잠깐 논란이 됐는데 발언의 앞뒤 맥락을 거세해 부분만 두드러지게 보도된 게 드러났다.

68세대답게 20대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문재인 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좋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을 플라톤식 철인정치에 어울릴 법한 인물이라고 평가해주는 것이지만, 반대로 무오한 철인을 지지하지 않는 대중, 즉 20대 남성들은 저열한 욕망에 충실한 개돼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도 있는 선민의식 발언. 더군다나 저런 사상의 주어만 문재인에서 특정 인물로 바꾸면 훌륭한 20세기 초 전체주의자의 발언이다.

3.2. 암호화폐 관련

암호화폐에 대해서 튤립 버블에 비유하는 등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특히 현 상황의 암호화폐 시장을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21].

암호화폐와 관련해서 정재승 교수와 SNS상에서, 그리고 JTBC에서 토론을 했다. 자세한 사항은 JTBC 뉴스룸/긴급토론 -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문서 참조. 정재승 교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따로 나눌 수 없다는 의견인 반면, 유시민은 둘을 따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발언을 하였다.

2018년 1월 29일 암호화폐로 유시민 작가의 책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 ‘유시민 페이(RSMPAY)’가 등장했다. 유 작가는 서적판매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트에서는 유 작가가 직접 쓴 책 15권과 그의 추천도서 34권을 살 수 있다. '유시민 페이' 사이트 강 대표는 “오늘 오전 11시에 유시민 작가에게 직접 메일이 왔다”며 “유 작가가 자기 책을 파는 이벤트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15일 (RSMPAY)유시민이 거부하므로 (RSMPAY)는 유시민페이가 아니게 되어버렸고 유시민 관련 책이 사라진 걸로 보인다.

3.3. 정치, 경제 관련 어록

정치란 때로는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 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노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죠.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칙 중에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 이게 제 소신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은 상태에서, 뇌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할때 이루어둔 업적을 배경으로 얻은 지위를 가지고 그 사람, 과거에 그 지위를 획득할 당시의 능력있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에요. 20대, 30대, 40대 때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이, 학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뇌세포가 엄청 많이 돼갖고, 65, 66, 67, 68 돼가지고, 그때, 잘 나갈 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지위를 이용해서 말을 하는데, 그것은 20여 년 전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말을 하는 겁니다. 뇌세포의 일치 정도가 몇 %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ㅡ 2004년 11월 3일 중앙대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초청 강연 中 #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미움을 사는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22]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를 다 합쳐봐야 18조 5천억 원밖에 안 됐어요.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했다고요. 그러면서도 보육비 지원도 늘리고, 기초 연금도 도입하고, 장기 요양 보험제도 도입하고, 건강 보험도 혜택을 많이 늘렸어요. 그러면서도 18조 5천억 원밖에 재정 적자가 안 났어요. 그게 정부가 적자를 좀 보는 건 괜찮거든요. 왜냐하면 전체 GDP중에서 1~2%의 적자를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1억 연봉 버는 사람이 백만 원 정도 빚진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GDP에 1천조 정도 넘었으니까 그 당시엔 한 십조 정도 빚지는 것은 5년 정도 큰 문제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5년간 국가 부채 중에 어떤 것은 돈을 빌려서 산 것도 있기 때문에, 금융성 채무는 또 달라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거'요. 우리가 IMF때 은행들 살리려고 정부 자금을 투입해서 주식을 취득하고 정상화시킨 다음에 되팔아가지고 많이 회수했잖아요. 그런 금융성 채무는 괜찮아요. 화폐 가치를 안정화시키려고 외국환 평형 채권 기금을 발행해서 거기에서 빚을 얻어서 거기서 달러를 매입해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나중에 달러 팔면 돈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다고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이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60조였어요 연평균 32~33조 원. 근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565조 원이에요, 그것도 3년간이요.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 5년 동안 25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남기게 돼요. 문제가 엄청 심각하거든요. 다음 정권 교체를 해서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면 쓸 돈이 없어요. 펑펑 다 써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다) 어따 퍼줬냐? 국민들에게 퍼준 게 아니고 재벌들한테 퍼준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감세(= 부자 감세 정책) 그걸 원위치를 안 시켰기 때문에(= 부자 증세 정책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한 번 고쳐놓으면 항구적으로 감세가 되잖아요. 그게 누적되면서 그 효과가 계속 쌓여서 연간 50조 이상의 적자 재정을 보고 있잖아요. 아주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성장률은 2%밖에 안 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잖아요. 근데 지금 2%예요.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4.11 #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을 많이 썼기 때문에 돈이 모자르는 거니까 나중에 생으로 갚아야하는 돈이에요. 그게 참여정부 5년 동안 적자성 채무가 18조 5억 원 정도였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9조 원대 정도로 추산됩니다. 4대강 사업 8조 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놨으니까 포함이 안 된 거구요. 그거까지 합치면 10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졌어요. 근데 박근혜 정부는 이 추세로 가면 MB 정부를 초월하는 적자성 채무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이 돼요.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이 문제가 제기 되어서 정부가 단년도 예산안을 내는 거 말고도 5년짜리 옛날 중기 기획, 지금은 국가 재정 운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마다 향후 5년치를 예상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이걸 냈어요. 이걸 보면 U커브인데요 '첫해는 적자성 채무가 많아서 재무가 불건전하고 해마다 노력해서 줄여가서 임기 말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 이게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거와 똑같은 그림이에요. 이명박 정부 말대로 됐으면 2013년에는 균형 재정이 됐어야죠. 근데 2014년~2015년 오면서 적자성 채무가 커지기만 해서 이제 단년도에 30조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단 말이에요. 그럼 2018년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는 말인데 '그럼 2018년 되면 올라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고 마찬가지로 20~30조 원 상태의 적자 상태로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이거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쓰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써야지 5년짜리 국가 재정 운영을 엉터리로 작성해서 낸다. (중략)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유럽 연합이 경제 통합을 할 때, 통화 통합을 할 때의 기준이 국가 채무가 GDP 기준의 6%가 기준이었어요. 해마다 지는 거. 해마다 GDP 3%에 기준으로 잡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1억을 연봉을 버는 사람이 한 6천만 원 부채를 안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요. 해마다 6%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그 정도 빚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가는 부도가 안 나니까 괜찮다' 뭐, 이런 건데 제가 사실 채무 걱정을 하는 것은 '제대로 쓰면서 채무를 지는 거냐'는 문제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가 채무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문제 의식이 또 하나 있어요.

지금 내년도 예산안이 통합 재정 기준 기금까지 합쳐서 376조 원인데 복지 분야가 3%를 넘었다고 정부에서 엄청 이야기 하잖아요. 내년도 보건복지의 고용의 예산액이 통합 기준으로 기금 포함해서 155조 원이에요. 근데 이게 금년도보다 얼마 늘어났냐하면 9조 천억 원 정도 늘어난 거예요. 이 9조 천억 원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서 지출액이 많아지는 거 하나하고, 기초 연금 도입해서 금년도에 7월 달부터 줬기 때문에 1년 내내 주는 것에 3조 원 주는 것이 거의 다예요. 나머지는 늘어난 게 아주 미미합니다. 보육이라든가, 학교 무상교육이라든가, 실업자 지원이라든가 여기선 미미한 증가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2014년 예산안에서 각 부처별로 조금씩 조금씩 늘린 거예요.

특별히 늘었거나 줄은 게 없고 SOC[23] 건설 예산안은 7천억 늘었고요, 일반 지방 행정은 2조 원 늘었고요. 다 비슷비슷 늘어난 거예요. 그럼 재정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는 거냐? 이건 또 아니라는 거예요. 김무성 대표가 '부자 감세라는 건 야당의 선동'이라 이야기하는데 (중략) 법인세, 소득세,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 감세시켜준 게 이명박 정부 때 감세해준 게 지금까지 누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수(국민에게서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가, 지금 내년도에 법인세가 0.1%밖에 안 늘어나는 걸로 잡히는데 그러니까 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세무 행정의 기본 원리는 '능력에 따라 납세'인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세금을 안 걷고 한쪽으로 담배며 상업용 자동차며 무슨 주민세며 이런 걸 인상해서 돈을 걷는다는 이런 발상 자체 제가 볼 때에는 빚을 30조 원 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건전 예산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4.09.22#

2005년도인가 국회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했는데요. 국회 시정연설 중에 보건 의료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가 1조 원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걸 근거로 해서 '의료 산업 선진화 위원회'라는 걸 국정 과정 위원회로 만들어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하고, 대통령 보고에도 몇 차례 하고 그랬어요. 그게 민간 합동 위원회인데 정보 쪽 간사[24]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고, 그리고 민간에도 간사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 번 회의를 했는데 제가 장관 되자마자 1조 원이라는 데이터가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봤죠. 그때는 기획재정부가 아니고 재경부(재정경제부)에서 나온 데이터래요. 그래서 제가 재경부 국장에게 물어봤죠. 회의 중에 제가 '이거 재경부에서 데이터를 냈다고 그랬는데 출처를 밝혀보시오'라고. 연구보고서에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만든 보고서냐 제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 회의 때 보고 드리겠다고 해서 한 달 후 다음 회의 때 또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더니 민간 병원의 연구보고서에 있는 거래요. 그래서 '민간 병원 어디서?' 물어봤더니 미즈메디 병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래요.

그러면 미즈메디의 연구보고서라면 틀림없이 정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이면 우리 외환 관련 자료를 못 가지고 있지 않냐, 틀림없이 한국은행 자료나 참고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 연구보고서에는 이 1조 원이라는 산출 내역이 어떻게 되어있고 산출 내역이 되는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온 걸로 밝혀졌더냐 물어봤더니 그거까진 미처 확인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열을 냈죠. 아니 이런 불분명한 데이터를 대통령 시정 연설에 넣고 이렇게 회의 자리에 맨날 넣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그 당시 산자부(산업자원부) 장관하던 정태익, 정세균 장관이 (저랑) 같이 화를 벌컥내면서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해놓으면 정부 공문서 전체가 불신 받지 않냐,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제가 직접 조사했죠. 한국은행과 협조해서 그 유학생이나 상사주재원 교민 말고, 치료를 목적으로 출국한 사람 환전 기록을 데이터로 조사해서 해 봤더니 적자 폭이 56억 원이라고. 1년 동안이요. 그래서 56억 원이면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컨소시엄을 민간 합동으로 만들고 그래서 바로 흑자로 전환시켰죠. 대통령이 나중에 보고를 받고 징계하라고 했어요, 책임자를.

근데 재경부에서 징계 안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관료들이 다 짜고 하는 거예요. 노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 좋은 분이잖아요. 정치적으로 싫어하더라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런 (머리 좋은) 대통령도 데이터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정 연설 와서도 읽는 거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에, 이건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예요. 일국의 대통령의 담화문에 이런 게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만 이렇게 했어요 (중략) 밥 먹고 취재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나 학자들 있잖아.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1.18 #

묘한 기사들이 나왔더라고요. '보험업계 걱정 지금 손보자'라든가. 생보사(생명보험 회사)에서 그동안에 여러 가지 미끼 상품으로 종신 연금을 많이 팔았거든요. 근데 소득대체율(소득이 없을 때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금전의 비율)은 40%~50%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도 올려야 되고 안 올릴 순 없어요. 보험료를 올리게 되면 민간 가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공적 연금 노후 소득 보장율이 높아지니까 사적 연금이 줄어들 거라고 수요가.

이것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엄청 로비를 하는 건 불보듯 뻔한 거고 (중략) 국민연금의 문제점의 하나가 가입하면 무조건 이익을 봐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봐요. 나중에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도 국민연금은 다른 민간 보험 상품보다 수익율이 높아요. 왜? 단순한 이유예요. 우선 이윤을 안 남겨요.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없고, 경영진이 수십억 연봉 가져가는 것도 없고, 관리비도 국가에서 다 대요. 국민연금 기금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 기여금, 이거는 고대로 기금 운영을 해서 돌려주기 때문에 민간 보험과 견줄 수 없어요. 그럼 나중에 부가식으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해서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이 국민연금의 수익율은 고소득 계층에게 있어서도 민간 보험보다 무조건 유리하고 중간 소득 이하 계층들은 수익율이 더 높고, 거기다가 비용 근로자는 회사에서 반을 내줘, 무조건 이익인 거예요.

그러니까 중산층 강남3구 중산층 주부들이, 임의 가입자들이 많다니까 이게 최고의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꼭 가입할 필요가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40만 원, 50만 원 막 내서 가입하는 거야. 그래서 이게 없는 사람만 몰라서, '나는 국민연금 싫어', '나는 손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 이 점이 좀 안타깝고요, 두 번째는 합의 기구 구성 문제인데, 저는 이거 야당이 50%를 굳이 명시 안 한다고 해도 된다고 봐요, 그냥 '일원 정도로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포함하여 배제하지 않는 걸로 포함하여', 뭐 여부 못박기 싫으면, '50% 소득대체율 인상을 할지 여부를 포함하여' 그렇게 (법안 문구를) 합의를 보면 청와대에서 뭔 말 못 해요. 50%로 못박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국회와 민간이 다참여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여러 활동을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하면 될 거 아니야. 이거는 서로 간의 정치 공방을 주고 받고,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건 그냥 돈 계산하고 따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이런 거는 국회에서 구성을 해서 몇십 년을 하는 거야. 계속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변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함구적으로 국회의장 산하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놓고 국회 정당이 참여하고, 민간 전문가도, 가입자 단체, 이익자 단체, 관련자 단체 다 참가해서 논의를 정권이 바뀌건 국회가 선거를 새로하든 상관 없이 상시적으로, 인적 구성은 바뀌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돼요 근데 뭘 대통령이 뭐 공무원 연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이야기하지 마라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5.05.11#

어떤 국민 경제를 파멸에 빠뜨리는 가장 빠른 길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란 말이 있어요. 이게 케인즈가 한 말인데요. 한 국민 경제를 타락시키고 싶으면 화폐를 타락시키면 돼요. 그러면 모든 거래 관계가 다 불신에 휩싸이고 저절로 경제가 밑으로 꼬라박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는 제일 빠른 길을 저는 언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국론 분열이라는 용어 있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부터 아주 지겹도록 들었고요, 제가 20대 때는 저나 노 대표님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을 가리켜서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 언론, 또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좌경 불순 세력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지금 "국민이 분열되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도 모아져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가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찾기 위해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국론 분열은 문제다, 국민을 통합해야한다, 이런 것이 적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 되죠.

ㅡ 특집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7.03.26

2002년 7월달에 그때 마포 제 작업실에 오셨을 때 저한테 물어봤었거든요.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아, 오지요. 100% 오죠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그랬더니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내가 그때 그랬어요.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때 또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너무 냉정하게 말을 했다는 후회를 나중에 좀 했는데. 근데 이제 그렇게 말씀드려도 하나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좀 앞서 나간 것 같아요.

앞서 나갔다는 표현보다 노무현이라는 이 사람의 존재 그 자체, 그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한 인간, 정치인으로서의. 이게 받아들일 수 없는 풍토예요 우리가.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그 캐릭터로는. 근데 됐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던 거예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고, 마치 좋은 결과를 못 낸 것 같은 그런 시선을 받는 거고.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는 면도 많아요, 왜 저러는지. 그래서 노 대통령 자신이 너무 앞서간 거는 아니에요. 그분은 대중과 함께 가려고 계속 노력했던 분이고. 근데 그분이 가직 있는 모든것의 총합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 이 존재 그 자체가 너무 앞서 있는 존재였어요 제 생각에는.

ㅡ 2017년 2월 9일 노무현재단의 인터뷰 中

4. 방송 활동

4.1. 과거 출연작

5. 저서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아니면 기본으로 10만 부는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경제 관련 저서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꽤 유명하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집필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집필했고, 201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의 NLL대화록 관련하여 중립적인 시선에서 기술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 있다.

2014년에는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서술한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출판했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에 대한 책이라고. 글쓰기 특강의 경우에는 다음 크라우드 펀딩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해 먼저 진행했다.

자녀의 대입 논술도 스스로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가르쳐서야 하느냐고 투덜댔지만, 자녀 유수진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26] 중학교 때까지 축구에만 관심이 있어 성적이 별로였던 아들도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전교 1등이라고...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밝히길 '너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호나우두나 메시가 될 재능은 아버지가 물려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꼭 축구선수가 되는 것만이 취미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영국 유학을 가서 스포츠 평론가가 될 수도 있다' 라고 차근차근 달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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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돌베개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많은데, 돌베개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돌베개출판사는 이해찬 전 총리가 설립한 회사로, 유시민은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3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고양 덕양 갑)

개혁국민정당

14,833 (43.3%)

당선 (1위)

[30]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덕양 갑)

열린우리당

40,288 (47.6%)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을)

무소속

23,005 (32.6%)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국민참여당

2,079,892 (47.6%)

낙선 (2위)

[31]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통합진보당

2,198,082 (10.3%)

낙선 (12번)

[32]

7. 비판과 논란

  자세한 내용은 유시민/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전과

상기한 서울대프락치사건으로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1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특별 복권되었다.# [33]

9. 여담

2019년 5월 알릴레오에서 한국당에 복귀하려고 명분 쌓고 있다는 말을 듣는 유승민을 보면서 어차피 정계 복귀한다는 말을 듣는 자신과 겹쳐 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기사

게다가 지구에서 달로 가는 것과 달에서 지구로 가는 것은 당연히 난이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구에는 대기가 있지만 달에는 대기가 없다! 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은 공기 저항을 고스란히 받으며 올라가서 달에 도착하면 감속에 쓸 연료까지 필요하지만 달에서 쏘는 로켓은 발사 시 공기저항 그런 거 없고 지구에 도착하면 대기와의 마찰로 연료 없이 감속하게 된다. 그냥 반미기질이 강해서 미국이 이런 일을 그 시대에 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연장선으로 보인다. 의심조차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부족한, 단순히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서 의심하는 게 아닌 그저 미국이 했으니까 못 믿겠다는 의심이다. 달 착륙을 의심하는데 우주에 먼저 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의심조차 안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이후 알쓸신잡 시즌1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1. [1] 의원직 상실
  2. [2] 버들 류 씨. 두음 법칙에 따라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 탓에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유 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 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 씨들이 행정상 유 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 씨로 정정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 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 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신문 기사 등에 '류시민'으로 나온 적이 꽤 있었다. 유시민의 초기 저서 중에도 저자를 '류시민'으로 표기하여 출판된 것이 있었고 영문 표기를 RYU로 한다. 위키백과에서는 Rhyu Si-min으로 표기 중이다. 그리고 이름이 '시민'이라서 '시티즌(citizen) 유'라는 별명도 있는데 보다시피 한자로는 전혀 다른 글자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여전히 류시민이라고 부른다.
  3. [3] 현 경주시. 경주 지진의 진원지다. 본인이 썰전에서 인증했다.
  4. [4] 26세손 시(時) 수(壽) 재(在) 항렬. 류성룡의 직계 13대손이다.
  5. [5]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3에서 인증했다.
  6. [6] 다섯째다. 누나는 작가 겸 EBS이사장 유시춘이고, 여동생은 작가 겸 번역가 유시주다. 유시주는 유시민의 부인과 대학시절 절친했던 친구다.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시누이와 올케가 되었지만, 유시민으로 인해 알게된 사이도 아니며 결혼은 커녕 유시민과 친해지기 전 신입생 때부터 이미 친한 친구였고, 부인이 유시민과 사적으로 가까워진 건 신입생때가 아닌 몇년 뒤의 일이었기때문에, 유시춘이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냥 평생 시누이관계가 아닌 친구로만 지내기로 해서 지금도 서로 반말로 이름부르는 친구 사이라고. 그 인터뷰 기사에서도 올케란 표현없이 그냥 "경혜가", "경혜는"이라고 되어 있다.
  7. [7] 유수진, 유지헌.
  8. [8] 이해찬 당시 평민당 의원 보좌관 시절. 1991년 4월 이해찬 의원과 함께 평민당이 당명을 바꾼 신민당을 탈당했다.
  9. [9] 2013년 정계은퇴 선언 후 평당원 신분으로 정의당에 남아있었으나, 2018년 지방선거 MBC 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이제는 정의당 당원이 아니라며 정의당을 탈당했음을 밝혔다.# 다만, 당시 당 대표였고 친구인 심상정의 요청을 받아들여 탈당 시기를 늦춰서 지방선거 당일에 탈당했다고 한다. 또한 유시민, 천호선 등이 수장격인 정의당 소속 참여계는 유시민의 탈당과 관계없이 전부 정의당에 잔류했다. 무소속이 된 이후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사이 어딘가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
  10. [10] 초선 때는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임기가 1년이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국회의원 재임기간은 총 5년. 이를 두고 전원책은 당선 수가 2가 아니라 1.25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1. [11] 2014년 11월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
  12. [12] 노무현재단 공식 유튜브 계정으로 '유시민의 알릴레오'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13. [13] 육군 제7보병사단 출신으로 정치인중 군 문제가 없는 자들중 하나다.
  14. [14] 참고로, 유시민이 독일로 유학을 가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했던 전공이 보건경제학이었다.
  15. [15] 립서비스와 거리가 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정도로 극찬한 케이스는 단 둘이다. 유시민을 제외한 다른 한 사람은 다름아닌 문재인. 조금 달랐던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극찬한 것은 대선후보 시절이었고, 유시민을 극찬한 건 퇴임 후였다는 점.
  16. [16]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가 노무현 서거 직후 애도만화에서 '노통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라 외치는 유시민을 그린 적이 있는데 놀랍도록 유사하다.
  17. [17]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내리 참패하면서 이 시기에 친노는 지금의 친박처럼 완전히 몰락했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이 커지면서 친노가 다시 부활해서 친노의 위상이 올라온 것이지. 이시기 친노는 진보진영에서 구세력으로 치부됐었다.
  18. [18] 이 불온한 자유주의자라는 간어는 유시민의 저작인 ‘Why Not?’의 부제에 사용되었다. 즉,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
  19. [19] 굳이 말하자면 같은 영남 출신의 민주화세력으로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산출마를 반복했던 노무현의 행보가 유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줬을 수는 있다. 유시민 역시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대구에서 출마하기도 했으니.... 다만 이건 영남 출신이라서 친노가 된 것과는 좀 다른 맥락이다.
  20. [20]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앞장 서서 탄핵을 막으려 한 행동 등이다.
  21. [21] 이에 대해선 유념할 게 있다. 암호화폐 투기 열풍 당시 언론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모든 경제학자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22. [22] 유시민이 창작한 말은 아니고 공자의 말이라는 것을 알리고 인용한 것이다. 공자의 원문은 "선한 자가 선하다하고, 불선한 자가 불선하다고 하는 자가 선한 자다." 참고로 유가의 안티테제로 매우 유명한 도가노자는 이에 대해 전면부정하였다. "선한 것을 선하다하고, 불선한 것을 불선하다하는 것이야 말로 불선하다"고 했으며, 맹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뒷부분은 공자가 한 말이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부분은 사이비라는 말의 원조인 맹자가 사이비를 설명할 때 한 말과 비슷하다. 어차피 맹자도 그 말 뒤에 "과거 공자님이 이러이러하다고 하셨다."로 끝냈지만.
  23. [23] 도로, 항만, 철도 등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이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라고도 한다.
  24. [24]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직무.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25. [25] 당시 유지수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26. [26] 유수진 씨는 그 유명한 서울대 담배녀 사건과 관련돼 구설수에 올랐다.
  27. [27] 2017년 7월 7일 신장판이 출간되었다.
  28. [28]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글을 모아 정리하고 내용을 덧붙였다.
  29. [29] 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이다. 2017년 개정신판이 출간되었다.
  30. [30] 전임자 곽치영, 선거법 위반에 의한 의원직 상실(2002.12.9)로 인한 보궐선거. 2003년 11월 3일, 열린우리당 합류
  31. [31] 야5당 연대후보. 정확히는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 협상이 거의 전부였다.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여론조사 단일화 끝에 단일후보 선정. 이후 민주노동당 안동섭 후보가 약간의 협상 끝에 자연스레 사퇴. 창조한국당은 경기지사 후보를 낼 당세조차 없었다. 진보신당은 심상정 후보가 출마했으나 선거 막판에 후보 사퇴했다.
  32. [32]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로 비례 선순위 후보들을 제명시키면서 승계할 수 있었는데 경기동부 세력들에 대한 압박의 제스처로 승계를 거부했다.
  33. [33] 특별 사면이 아니라 판결의 효력이 소멸된 것이 아니다.
  34. [34] 은빛마을5단지에 거주했다. 화수중학교 투표소에서 유시민이 투표하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35. [35] 훗날 썰전에서도 간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36. [36] 강용석은 정치활동 시기가 달라서 유시민과 직접 접해본 인연은 없다
  37. [37] 농담투로 얘기한 게 아니라 정말 경멸스런 표정으로 갑자기 그 말을 해서 분위기가 싸해졌다.
  38. [38] 劉의 원래 음을 '유'라고 아는 사람이 있으나, 원래는 劉도 똑같이 '류'다. 다만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 표기를 사용하고, 劉씨는 대부분 '유'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표기가 갈리는 것.
  39. [39] 서울대 출신들은 학교 다닐 때 알고 지냈던 사이가 아니면 사회에 나와서 굳이 선후배 따지지 않는다.
  40. [40] 정작 국회의원 시절에는 '박근혜 대표는 유승민 같은 초짜들이 써주는 것을 대충 읽고 있다'며 의문의 1패를 안긴 적도 있다. 다만 실제로는 유승민이 아닌 최순실이 써줬을 가능성이 높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전여옥 전 의원이 "유승민 의원은 글을 잘 쓴다. 그러나 어디만 갔다 오면 걸레가 되어 돌아온다" 직접 언급했을 정도.
  41. [41] 이명박 정부 시절 정무수석. 지금 썰전에 같이 출연하는 그 박형준 맞는다.
  42. [42] 다만,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사이가 안 좋아서 유시민과 남경필이 고소와 맞고소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화해하고 오히려 서로 친해졌다.
  43. [43] 해당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로 분노에 가득찬 눈빛으로 전여옥 전 의원을 노려본다. 이 토론을 보면 전여옥이나 유시민 모두 의도적으로 어그로를 끈다 싶을 정도로 독설을 퍼붓는다. 많이 부드러워진 현재의 모습과 대치되는 장면.
  44. [44] 이 일 때문인지 최근까지도 유시민 작가가 팟캐스트 출연했을 때 같이 출연한 사람들이 전여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그 사람 일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하느냐 다소 싸늘한 반응을 보였었다.
  45. [45] 이 연설의 하이라이트인 야 기분 좋다로 유명하다.
  46. [46]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설적인 성품이라 립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인물인데, 그 노무현이 극찬한 두 사람 중 하나가 유시민 작가. 나머지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문재인 現 대통령.
  47. [47]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이다.
  48. [48] 물론 참여정부 시절 두 사람은 민노당,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대립하는 사이었다.
  49. [49] 썰전에서 바른정당 의원들이 쇼 미 바른정당이라는 랩 대회를 여는 모습이 소개되자 자기는 왠지 공감된다며 측은한 모습을 보였다.
  50. [50] #
  51. [51] #
  52. [52] 참고로 이때 전원책 변호사는 롯빠인 걸 인증했다.
  53. [53] 소속 정당이 국민참여당에서 통합진보당이 된 것은 정당의 합당이기에 당적 변경이 아니다.
  54. [54] 심지어 개표방송이 끝나고 바로 썰전을 녹화했다(...) 그래서 이때 썰전 방송을 보면 평소보다 더 피곤한 모습이다.
  55. [55] 감옥 수감 중에 읽었다고 한다.
  56. [56] TO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1979년생 배우. 한때 KBS 어른들은 몰라요에 출연하고 SBS 시네마 특급 MC를 맡는 등 잘 나가던 청춘스타였으나 음반낸 게 실패한 이후로 현재까지 약 10년째 활동 소식이 없다.
  57. [57] 이후 31 ~ 32회에 걸쳐 나온 녹화사업-프락치 편에서 녹화사업의 피해자 윤선남(가상 인물) 역으로 나온다.
  58. [58] 예를 들어 썰전에서 카탈루냐 독립운동을 다루면서 카탈루냐와 스페인이 통합되는 과정을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는 등
  59. [59] 3위는 안민석, 4위는 이해찬, 5위는 나경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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