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총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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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웅종

김호영

신윤희

최석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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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국

허삼수

김진영

허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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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이차군

백운택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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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병

이필섭

권정달

고명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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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

장기오

우국일

최예섭

❁❁❁

조홍

송응섭

장세동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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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창

박희도

노태우

전두환

★★

★★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김윤호

★★★

★★★

★★★

★★

정호용

김기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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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의 역임 직위





정호용(鄭鎬溶)

1932년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51년 ~ 1985년

임관

육사 11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 참모총장

주요보직

육군 제50보병사단장
육군 특전사령관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1]

우리가 남이가[2]

1. 소개
2. 일생
2.1. 청소년기까지
2.2. 군인 시절
2.3. 관료 시절
2.4. 정치인 시절과 구속수감
2.5. 정계은퇴 이후
3. 대중매체에서
4. 선거이력
5. 둘러보기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군인, 관료, 정치인. 본관은 연일(延日).#

2. 일생

2.1. 청소년기까지

1932년 경상북도 대구부 신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대구남산초등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후일 육군사관학교의 동기가 되는 노태우는 경북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이자 동창이었다. 경북고-육사 동기로 김복동도 있다.

2.2. 군인 시절

1951년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육군에 병사로 입대하여 참전하였다. 그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임관했다. 전두환, 노태우가 육사 11기 동기생이다. 1964년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김복동 등과 사적 모임인 하나회 조직에 참여하였다.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을 거쳐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1978년 제50보병사단 사단장이 되었다. 12.12 쿠데타 이후 정병주의 뒤를 이어 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광주서울을 세 차례 오가면서 공수부대에게서 보고를 받거나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5월 27일 상무충정작전 직전 육군본부로부터 가발, 수류탄 등 군수품을 지원받아 현지의 공수부대에 제공했다. 이때 폭동 진압 명령자라는 논란이 있었다.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그 해 12월 제3야전군사령관이 되었다. 1983년 12월 황영시의 뒤를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2.3. 관료 시절

1985년 12월 예편한 다음 일해재단 연구위원에 임명되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초기 수습책으로 김종호의 뒤를 이어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가[3] 4개월 만인 그 해 5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축소 의혹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등에 의해 폭로되면서 민심 수습 차원에서 개각이 일어나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 등과 함께 경질되었다.

6월 항쟁6.29 선언 이후인 같은 해 7월 국방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하여 전두환이 퇴임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짧은 재임기간 때문에 국방장관으로서 눈에 띄는 치적은 없었지만,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이 실현된 것 정도가 그나마 기억될 만한 성과.

2.4. 정치인 시절과 구속수감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직할시 서구 갑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비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청문회로 사회 여론이 공직사퇴요구를 제기하자 결국 1990년 1월 8일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노태우 정부의 압력에 의해 후보직에서 다시 사퇴했다.

1992년 다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자유당 문희갑 후보를 꺾고 당선되고 후에 민정당의 후신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과거청산 작업에 따라 1996년에 다시 12.12 쿠데타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구속되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옥중에서 대구 서갑에 출마하였으나 2위로 백승홍에게 석패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호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수 차례나 광주와 서울을 오갔으며, 또한 정호용은 특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특전사 소속 부대의 잔혹행위를 둘러싸고 훗날 책임론이 제기됐다. 1989년에 열린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 소속의 진압부대들은 당시 광주 상무대에 있던 전투교육사령부에 배속됐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사조직 하나회의 인맥에 의한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빈발했고 실제 재판에서 이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1996년 1월에는 5.18 검찰 수사 결과 정호용이 5.17 내란에서의 내란모의참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이듬해 1997년 4월 대법원은 정호용에게 내란모의참여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5. 정계은퇴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12·12, 5·18 관련자를 사면하면서 석방된 정호용은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가 2002년에 종친인 정몽준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돕기도 했다.

2015년에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이맹희의 빈소에 방문해서 너무 일찍 갔다고 통곡하기도 했다.

2019년 12월 12일에는 12.12 군사반란 40주년이었는데, 이 날에자신의 절친인 전두환 前 대통령, 최세창 前 대장 등과 같이 호화만찬을 즐기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3. 대중매체에서

2005년에 방영된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윤승원이 역할을 맡았다. 외모상으로는 실제 인물과 별로 닮은 편이 아니었는데, '특전사령관',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해서, 경상도 사투리를 즐겨 쓰는 터프한,호탕한 싸나이 타입의 캐릭터로 나왔다.[4] 후반부로 갈수록 장세동과 대립각을 세우고, 박철언과 함께 노태우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드라마 방영 후 당사자인 정호용은 (전두환, 이학봉, 황영시, 최세창보다도) 내성적인 자신과는 매우 다른 인물로 묘사되었다며 유감섞인 평을 했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민주정의당

52,847 (54.3%)

당선 (1위)

1990. 1. 8 의원직 사퇴

1990

199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대구 서 갑)[5]

무소속

-

후보사퇴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무소속

50,533 (51.5%)

당선 (1위)

민주자유당 입당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무소속

19,583 (26.8%)

낙선 (2위)

옥중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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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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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거짓 해명을 하며 한 말. 5.18 당시 발포 명령자로 의심되며 적어도 5.18에 깊이 연관된 그가 한 말이라는 것이 유머 포인트.
  2. [2] 대구광역시에서 김영삼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한 말이다. 하지만 김영삼 집권 후 토사구팽되었다.
  3. [3] 당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라는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4. [4] 쓰리 허 수석들 일명 "허 가" 허 가들이 우릴 물로 본다고 노태우 장군이 말하자 "뭐 물?! 크하하하하하하핳 야! 물은 너 아니가?! 크하하하하하하핳...하는게 웃음 포인트
  5. [5] 전임자 정호용(본인 맞다) 의원직 사퇴로 발생한 선거. 이 당시는 소위 맹형규법이라 불리는 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본인의 사퇴로 벌어진 재보선에 본인이 재출마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