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시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총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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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웅종

김호영

신윤희

최석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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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국

허삼수

김진영

허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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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이차군

백운택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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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병

이필섭

권정달

고명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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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

장기오

우국일

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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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

송응섭

장세동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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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창

박희도

노태우

전두환

★★

★★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김윤호

★★★

★★★

★★★

★★

정호용

김기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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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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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시(黃永時)

1926년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50년 ~ 1983년

임관

육사 10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 참모총장

주요보직

육군 3사관학교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장성이자 반란군. 24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전임자는 이희성 대장이었고 후임자는 정호용 대장. 본관은 창원(昌原).

2. 생애

1926년 11월 6일 경상북도 영주군 안정면 묵리 노루모기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 서당에서 공부했고, 안정공립심상소학교(현 안정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안정국민학교 용산분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0년 육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했고[1] 1951년에 임관수경사 참모장, 주월한국군사령부 참모장, 3사관학교장을 거쳤다.

이후 1군단장 재임 중 12.12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쿠데타 가담자 중에 전두환보다 선배 장성은 그와 함께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이 있었는데 이 중 반란 작전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황영시 혼자였다고 한다.

반란 직후 논공행상에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추천되었지만 최규하가 반대했고 이희성 중앙정보부 부장 서리가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대신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해 이희성을 견제했고 곧 대장으로 진급하여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을 거쳐 1981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전두환이 5공화국을 세우던 참모차장 시절 군내 강경 분위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무력진압을 지시했다. 육군기갑학교장[2] 이구호 준장에게 "전차에 철조망을 달고 돌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철조망을 달고 가면 궤도에 꼬이는 건 물론이요, 전차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드러눕는다"라고 하자 "전차포를 쏘고 밀고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jtbc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부사령관 김기석에게 전차와 무장헬기를 이용해 신속히 진압작전을 시행하라고 지시했음을 1996년 검찰의 5.18 진상규명 수사때 인정했다고 한다. 김기석은 해당 지시가 전차의 발포와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제5공화국 핵심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권위 의식이 강한 편이라 참모총장 재임 시절 전두환이 속으로 그리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1983년, 임기를 2년 채운 후 본인이 1년 더 유임할 줄 확신했으나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전두환의 동기 정호용이 참모총장이 되어 육사 11기 참모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4개월 후, 자기 편 사람을 철저히 챙기는 전두환에 의해 제11, 12대 감사원장을 지냈다.

이후 12.12 사태로 재판을 받게 되고 1997년에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12월에 사면되었다.

부인 최옥영과(1931년생)와 2남 2녀가 있으며, 이 중 장남은 육사를 졸업하였고, 황영시가 육참총장 취임 당시 대위였다.

독실한 개신교도라서 박정희가 주는 술잔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돈다.[3] 그런 주제에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십계명을 대놓고 무시하고 헬기 기총소사를 명령했다.


  1. [1] 11기부터 4년제가 되었다.
  2. [2]육군기계화학교
  3. [3] 정작 그가 장로로 있는 경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약칭 기장)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기장은 성공회와 함께 진보교단으로 알려졌으며, 술담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경동교회는 같은 교단의 향린교회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