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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보정당

일본 사회당

사회민주당

현재

社会民主党
(しゃかいみんしゅとう)

영문 명칭

Social Democratic Party: SDP[1]

약칭

社民党(사민당), 社民(사민), 社(사)

한글 명칭

사회민주당

창당일

1945년 11월 2일 (일본 사회당)[2]

당명 변경

1996년 1월 19일 (사회민주당)

이념

사회민주주의

입헌주의

공생주의

좌파 혁신

평화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 좌익

당 색

하늘색 (#01A8EC)

주소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2초메 4-3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二丁目4-3)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 (福島瑞穂)

부당수

요시카와 하지메 (吉川元)

간사장

요시다 다다토모 (吉田忠智)



참의원

2석[3] / 245석 (0.8%)

중의원

2석[4] / 465석 (0.4%)

도도부현의회[5]

31석 / 2,688석 (1%)

시구정촌의회[6]

212석 / 29,762석 (1%)

국제 조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당원 수

14,549명 (2019년 2월 28일 기준)

기관지

사회신보, 월간 사회민주

공식 사이트

http://www5.sdp.or.jp/

SNS

1. 개요
2. 성향
3. 지지 기반
4. 역사
4.1. 2016년
4.2. 2017년
4.3. 2018년
4.4. 2019년
4.5. 2020년
5. 기타사항
6. 역대 선거결과
6.1. 중의원 의원 총선거
6.2.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7. 둘러보기

1. 개요

사회민주당일본의 진보 성향의 정당이다.

1996년 일본사회당이 일본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이 개칭되면서 탄생하였다.[7] 사민주의 정당 모임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가하고 있는 정당이다.

2. 성향

주된 정책 노선은 평화복지이며, 고용 창출 및 고용 안정, 충실한 복지를 근간으로 한 경제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래는 일본사회당 말기의 노선을 계승해 '사민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1998년 자민당과 연립이 깨진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색채가 강해졌다.

평화헌법의 수호와 헌법 이념의 실현을 호소하며, 자위대가 평화헌법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6년의 '사회민주당 선언'이 대표적인데 '자위대의 축소를 도모하며 비무장의 일본을 목표로 한다'는 강령이었다. 그외 국제 분쟁을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8] 다만 안티들에겐 미국에는 반대하면서, 한국이나 중국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선동당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대응이 충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9] 물론 현재는 영향력 자체가 미미한 실정이지만.

다른 정당들과 비교해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인데, 성평등 의지와 여성의 권리 확립을 지향한다.

3. 지지 기반

1996년 이후, 일본 혁신 진영에서 리더 지위를 민주당계 정당에게 내준 상황이라 예전에 비하면 기반이 매우 미비한 편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지역적 기반은 다음과 같다.

  • 큐슈쪽에선 지역구는 아니지만 오이타 2구에서 석패율을 통해 큐슈 지역 비례대표로 중의원이 당선되기도 한다. 사실 예전 사회당 시절에는 홋카이도, 주부 뿐만 아니라 큐슈 지역도 꽤나 사회당 세가 강한 편이었다.[10] 그러나 현재는 사회당 · 사민당의 세가 많이 약화된 상태.

인적 기반은 다음과 같다.

  • 전국 노동 조합 연락 협의회, 일본 노동 조합 총연합회 일부 조직, 일본 음악 협의회
  • 사회민주주의
  • 부락민 해방동맹
  • 평화주의자

4. 역사

사회당 말기 간 나오토가 중심이 되어[11], 사회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일본)을 결성하는데 사민당은 민주당으로 참가하기로 했지만 곧 참가 의견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간사장이었던 사토 간쥬 등을 포함하여 반 이상의 국회의원이 사민당을 떠나 민주당 결성에 참가했고 이때 사회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조합도 민주당으로 가는 바람에 1996년 10월 20일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30석에서 15석으로 의석수가 반토막이 나 망했어요 상태가 된다. 이후 1998년 지지율이 부진한 자민당과의 연정을 깨지만 그 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2000년 중의원 선거에서 20석으로 부흥의 움직임을 나타내려 싶었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고 민주당(일본)이 수권야당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 미래당 등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가 2012년 12월 16일 선거에서 그나마 있던 것도 3석을 잃으며 대패했다. 일본 공산당이 거의 유지한데 비하면 그저 안습. 그나마 이것도 출구조사에서는 한 석도 못 얻는 것으로 나왔었다(...). 소선거구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을 가까스로 얻어 원내 진입 유지.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부진과 극우정당의 지리멸렬에도 진보성향 표가 공산당으로 몰릴것으로 예측되면서 잘해봐야 1~2석 정도 확보할걸로 보이고 최악의 경우 1석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참의원 선거에서 단 한 석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패배했다.

당의 진로에 대해서 원로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호헌을 기치로 야권 재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사민당이 발전적 해체를 할수도 있을것이라고도 언급. 그러나 개헌에 반대하는 민주당-사민당-공산당 등의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호헌만으로 야권이 재편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3년 8월 말,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가 사퇴하고, 2013년 10월 14일 사민당 개칭후 첫 당수 선거에서 이시카와 타이가 구의원을 꺾고 요시다 다다토모 참의원이 당수로 선출되었다. 취임은 10월 29일 했다.

4.1. 2016년

2016년에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생활당보다 출구조사 결과가 좋다는 건 함정 지난 2013년 참의원 때 고작 1명만 당선되었고 일본에서는 진보가 제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에,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진보 표는 민진당, 공산당으로 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시다 다다토모 대표는 민진당과의 합당을 고려하고 있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민당 명예당수(81대 총리)도 사민당이 점진적 해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미즈호 부당수는 사민당의 정책, 공약, 역사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반대했다. 만일 민진당과의 합당이 실현될 경우, 가타야마 데쓰,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을 일으켰고, 도이 타카코의 마돈나 열풍을 일으킨 71년 역사의(사회당+사회민주당 역사)/20년 역사와 전통의 사회민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1996년 사회당 해산 후 따로 갈라져 나온 신사회당만 남게 되는 형국이었다.[12] 그러나 민진당 내에서도 민진당이 좌익의 이미지가 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당원과 나쁘지 않다는 당원들과 의견이 갈렸으며,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여건이 된다면 한 번 진지하게 상담하고 싶다고도 했다.

공산당, 민진당과는 다르게 선거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모양이다. 지난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1석밖에 못 얻었고, 당 내 입장이 위에서 보듯 갈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요시다 다다토모, 후쿠시마 미즈호에게는 단두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비례대표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되면서 1석을 겨우 얻었다. 사회민주주의자 등 고정 지지세력들이 뽑아준 듯하다.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이 확실해지면서 요시다 다다토모 당수는 낙선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결국 낙선했다.

그래도 가고시마현지사 선거에서 현직 보수계열 이토 유이치로 지사를 물리치고 민진당(일본)과 공동으로 후보 추천을 한 TV 아사히 기자, 해설위원 출신의 미타소노 사토시가 당선되는 등 어느 정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써 유지를 할 수 있는 발판만 남겨둔 상태이다.

2016년 7월 26일, 생활당과 통일회파 희망의 회(希望の会)를 결성하였다.

그래도 중의원 쪽은 오키나와 2구, 전국 큐슈 비례대표 2명이다. 그러지만 일본 정당법에 따르면 중의원, 참의원 합산 5석 이상의 의원을 보유해야 정당으로 인정하는 규정에 의거하여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4.2. 2017년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최근 선거마다 이어져온 민진-공산-자유-사민 야4당 연대가 깨졌다. 민진당 내에서 희망의 당과의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할 지를 두고 갈등을 빚어 오다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 사민당은 진보 성향이 강해 고이케 세력(보수주의)과 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사민당은 입헌민주당-공산당과 연대하기로 했다.

선거 결과 2석을 확보, 현상 유지에 성공했다. 당선자 역시 오키나와 2구의 데루야 간토쿠, 큐슈 블럭 비례대표 요시카와 하지메로 전과 같다.

4.3. 2018년

정당구성 요건에 필요한 양원 의원 수 6명을 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당 교부금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어, 통일 지방선거와 내년 참의원 선거를 전후로 입헌민주당에 합류를 타진하고 있다.

2월에는 요시다 다다토모 당수가 사퇴하고 마타이치 세이지 간사장이 당수가 되었다.

4.4. 2019년

1월에 참의원에서 입헌민주당과 통일회파 '입헌민주당・민우회・희망의 모임'(立憲民主党・民友会・希望の会)을 결성했다.

4월에 실시된 통일지방선거에서는 도도부현의회에서 22석, 시정촌의회에서 53석을 얻어, 당초의 47석, 72석에 비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7월에 실시되는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지역구 3명, 비례대표 4명을 공천했다. 3년 전의 24회 선거에 비해 4명 줄었는데, 입헌민주당이 일부 사민당 지방의원을 자기 정당 후보로 옹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수 이에 대해 마타이치 당수는 "매우 불쾌하다. 양당공조 균열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난했으며, 입헌 내에서도 이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사(일본어))

참의원 선거 결과 전국 2.1%의 득표율로 정당법상 정당 요건을 유지했고, 비례구에 출마한 前 당수 요시다 타다토모 후보가 당선되어 참의원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과거 사회당이 강세를 보였던 오이타 선거구에서 자당 추천을 받은 아다치 키요시 후보를 당선시키고, 오키나와와 함께 유일하게 두 자릿수의 비례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내에서는 사민당의 당세가 축소되는 가운데에서 거둔 유의미한 세력 확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마타이치 세이지 당수가 불출마 선언과 정계 은퇴를 선택하였다.(다만 당수는 임기가 만료되는 2020년 2월까지 맡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이 좌파 성향 인재풀을 가져가면서 더 암울한 상황이다.

결국 입헌민주당에서 사회민주당에 합당을 제안했고, 사회민주당에서는 마타이치 세이지 당수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열리는 2020년 2월 당대회 때에 결론을 낼 것으로 정해졌다. 그래서 당수 선거는 취소되었다.#

4.5. 2020년

일단은 국민민주당의 입헌민주당 합류, 사민당 지방조직 내의 반대 등 여러가지로 얽혀있어 일단은 당수 선거는 치른다.#

2월 22일 당 대회가 개최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했다. 당 대표로 후쿠시마 미즈호가 무투표로 당선되어 6년만에 당수 직에 복귀했다. 이로 인해 기존 입헌민주당과의 합류 논의에는 신중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5. 기타사항

  • 한국에선 정의당과 교류 중이다.### 실제 스탠스적으로 두 당이 비슷한 측면이 있긴 한데, 다만 당세는 2010년대 기준으론 정의당쪽이 나은 편이다.[13]

6. 역대 선거결과

6.1. 중의원 의원 총선거

연도

의석수

정수

득표율(지역구/비례대표)

일본 사회당에서 당명 변경

1996

15

500

1,240,649(2.2%)/3,547,240(6.4%)

2000

19

480

2,315,235(3.8%)/5,603,680(9.4%)

2003

6

480

1,708,672(2.9%)/3,027,390(5.1%)

2005

7

480

996,007(1.5%)/3,719,522(5.5%)

2009

7

480

1,376,739(2.0%)/3,006,160 (4.3%)

2012

2

480

451,762(0.7%)/1,420,790 (2.3%)

2014

2

475

419,347 (0.79%)/1,314,441 (2.46%)

2017

2

465

634,719 (1.15%)/941,324 (1.69%)

6.2.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연도

개선의석/비개선의석

득표율(지역구/비례구)

일본 사회당에서 당명 변경

1998

5/8

2,403,649(4.3%)/4,370,763(7.8%)

2001

3/5

1,874,299(3.5%)/3,628,635(6.6%)

2004

2/3

984,338(1.8%)/2,990,665(5.4%)

2007

2/3

1,352,018(2.3%)/2,634,713(4.5%)

2010

2/2

602,684(1.0%)/2,242,735(3.8%)

2013

1/2

271,547(0.5%)/1,255,235(2.4%)

2016

1/1

289,899(0.5%)/1,536,238(2.7%)

2019

1/1

191,820(0.38%)/1,046,011(2.09%)

7. 둘러보기


  1. [1] 다른 국가들의 사회민주당 구별하기 위해 SDPJ도 있다.
  2. [2] 법률 상으로는 사회당이 당명을 변경한 것이 사민당이다.
  3. [3] 비례대표 2석
  4. [4] 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
  5. [5] 한국의 광역의회에 해당한다.
  6. [6]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
  7. [7] 참고로 사회당의 경우 20세기엔 일본에서 55년 체제를 이루기도 했던 제1야당이었고, 사회민주당으로 바뀌기 직전인 90년대 중반엔 중도우파계 온건파들이 많던 자유민주당과 잠깐 연정을 하기도 했었다. 무라야마 담화를 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이기간 나온 총리.
  8. [8] 결국 군사 균형이 중요한데 군비 증강을 통한 군사 균형이냐, 군비 축소를 통한 군사 균형이냐의 문제. 당연히 후자가 지향되어야 할 가치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외교력.
  9. [9] 과거 사회주의국가라고 착각한 북한에 방북단을 주기적으로 보내는 등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기에 그런 이미지가 강한 측면도 있다. 사실 사회당보다 더 진보적인 일본 공산당이 북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관련해 강경한 논조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과 대조되는 측면은 있다.
  10. [10] 악명 높은 아소 다로의 지역구인 후쿠오카현 제8구도 원래는 사회당의 표밭이었다. 치쿠호 탄광 광부 및 노동자의 표가 몰렸기 때문.
  11. [11] 단, 간 나오토는 혁신정당에 몸을 담기는 했어도 사회당 소속 인물은 아니었다.
  12. [12] 그러나 이 당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당이 사라지면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없어지게 된다.
  13. [13] 오히려 지지율이 10% 내외로 나올때도 있는걸 보면 당세만 놓고 봤을땐 2010년대 중후반 기준 정의당은 일본 공산당이랑 비교하는게 더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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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20-04-28 20:3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