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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고비아

독일 기사단국 말보르크 성[1]

조선 수원화성

장안성[2]

센고쿠시대 나고야 성

류큐 왕국 슈리 성

/ Castle / Keep / Citadel / Hold

1. 개요
2. 어휘
2.1. 한국어
2.2. 유럽 제어
3. 역사
3.1. 기원
3.2. 고대
3.3. 중세 초기
3.4. 중세 성기 및 후기
3.5. 대포의 등장과 성형 요새
3.7.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쇠퇴
3.8. 전초기지로서의 역할
4. 방어 목적 이외의 발전
4.1. 도시로의 발전
4.2. 개인 거주지로서
5. 기능
6. 양상
6.1. 한반도
7. 분류
7.1. 위치
7.1.2. 평지성
7.1.3. 평산성
7.2. 재료
8. 구성
9. 매체에서의 등장
9.1. 판타지
9.2. 게임
10. 관련 문서
11. 나무위키에 등재된 성 목록

1. 개요

적의 공격 및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기본적으로는 방어용 시설이다. 시대와 지역, 용도에 따라 다양한 양식을 띄게 되었다.

2. 어휘

2.1. 한국어

현대한국어에서는 포괄적으로 각종 야생동물이나 적의 침입에서 보호받기 위해 지어둔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잣'이라고 하였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성'보다는 '잣'이 더 범용적으로 쓰였는지, '석보상절'에서는 "성(城)은 '잣'이라고 하는 말이다."라는 식으로 협주(일종의 주석)를 달았다. 그 외의 순우리말로는 재, 작(신라어), 홀, 구루, 책구루(忽, 溝漊 고구려어), 기, 긔(只, 己 백제어)가 있다. 그래서 한국 각지의 옛 고유어 지명을 보면 '재(또는 자, 고자라니 등)', '홀(미추홀, 매홀 등)', '기(또는 지, 노사지, 두잉지' 등)' 등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이 모두 삼국 시대에 성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참조링크 1참조링크 2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국 성(城)의 명칭들

촌(村 ; 스키)[3]: 의류촌(意流村 ; 오루스키), 주류수기(州流須祇 ; 츠루스키). 두 촌은 백제의 주류성(周留城)이다. 일본서기엔 주모성(州柔城 ; 츠누사시) 도도기류산(都都岐留山 ; 츠츠키루노무레)이라고도 적혀있다.

모라(牟羅 ; 무라):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 ; 쿠레무라노사시). 구례산(久禮山 ; 쿠레무레[4])으로 부르기도 한다. 왜인 근강모야신의 어그로로 애꿎게 구지파다지(久知波多枳 ; 쿠치하타키)등의 성이 함락되고 탁순국의 영토에 백제의 구례모라성이 세워진다. 신라에선 왕성을 건모라(健牟羅)라 불렀다고 한다.

지(枳 ; 키):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 이시키무라노사시)

성(城 ; 사시): 대성(大城)의 훈이 코니사시로 백제에서 대성을 부른 말인듯 하다. 코니는 건길지의 건과 같은 말로 크다는 뜻이다. 신라의 향가 혜성가에서 성(城)을 城叱이라 적고있다. 질(叱)은 말음의 으로 성의 순우리말 '잣'을 적은 거라 보고 있다.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 이시부레치칸키)처럼 질은 시로 읽힌다.

기부리(己富利 ; 코호리)[5]: 능비기부리(能備己富利) 배평(背評)이라고도 한다.[6]기부리는 순우리말 고을의 옛말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도 평(評), 군(郡)을 코호리라하여 행정구역명으로 사용했다. 큰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금물현(今勿縣) -> 기문현(己汶) 금물현은 큰물이라고 불렸고 건길지를 코키시 라고도 하니 큰벌 큰마을이라는 뜻이 맞겠다.[7]

축족류성(筑足流城 ; 츠쿠소쿠로노사시) / 도구사기성(都久斯岐城 ; 츠쿠시키노사시): 축족류성과 도구사기성은 같은 성의 명칭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싸운 기록에서 나오는 성의 이름이다. 시키, 소쿠로가 성, 촌(村)을 뜻하는걸로 추정된다.수탉을 죽여라

'성'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발달하여 용례가 비교적 다양하다. '성'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 시대까지의 방어 시설을 의미하며, 아래의 성형 요새까지도 성에 포함시키곤 한다. 한편 콘크리트를 쓰기 시작한 근대식 요새(마지노선 등)나 벙커, 토치카 등은 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편 '요새'(要塞)라는 말은 군사적 시설에 한정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영어 'fortress'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쓰는 경우가 많다. 방어 시설 중 어느 단계부터를 '요새'로 부르는지는 확실히 정해져있지는 않은 듯하다. 대개 근대 이후에 거주지의 기능과 분리된 방어 시설을 '요새'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2.2. 유럽 제어

'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개념은 크게 5가지로 구별될 수 있다. 중세사 고증에 충실한 역자가 즉 역덕이 번역한 경우라면 이 다섯 개념을 비록 나무위키에 서술된 아래의 역어들과는 다르더라도 나름의 기준대로 제각각 구별되는 번역어를 채택하여 독자의 혼란을 방지하나, 이런 데에 무지한 자가 번역을 했을 경우 이들 중 몇 개 이상을 동의어로 제멋대로 여기고는 '성'이나 '성채'로 통일해서 번역하는 바람에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태를 초래한다.[8] 즉, 다음의 다섯 개념은 동의어가 아니고, 문학적 수사를 위해 바꿔쓸 수 있는 어휘들이 원칙적으로는[9] 아니다.

  • 성(castle): '성'이라는 번역어가 아주 적절하지는 않다. 서양의 'castle'은 해당 지역의 군주가 거주하는 요새화된 저택인데, 동양에서 통용되었던 성(城)의 개념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주거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행정구역의 명칭에도 많이 포함된다. 좀 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castle'을 성관(城館)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성채(citadel): 도시의 방벽(wall) 내에서 방어 거점으로서 따로 요새화된 구역. 엄밀히 말해 성채(城砦)는 조선시대의 평양성, 진주성, 남한산성과 같이 성(城)들 가운데 군사적으로 중요하여 방어시설이 잘 갖추어진 것을 가리킨다. 영어단어 'citadel'과 가장 비숫한 시설은 내성(內城)이다.
  • 아성(keep):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 내에서 최후의 방어 거점으로서 요새화된 건물. 일본식 성에 있는 천수각(天守閣)이 정확하게 같은 기능을 한다.
  • 요새(fortress, stronghold): 오로지 군사적 목적만을 가지고 평시의 민간인 거주기능이 최소화된 형태로 설립된 방어시설. 요새(要塞)라는 단어는 군사용 방어시설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많이 쓴다. 과거 동양에선 이와 같은 시설을 진보(鎭堡)나 보루(堡壘)라고 불렀다. 보루는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어단어 'bastion'을 번역할 때도 자주 쓰인다.
  • 방벽(wall): 외적의 침입을 막는 벽. 개념을 세분화하면, 도시를 두르는 성벽은 성곽(城郭), 여러 지역을 통과하며 길게 늘어선 성벽은 장성(長城)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castle'(캐슬)은 군주(또는 영주)가 거주하면서 주변의 장원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방어시설 겸 군주의 주거시설이다. 보통은 성 내부의 안뜰에 어느 정도까지는 민간인의 거주구역을 갖추지만, 보통은 도시마냥 대규모의 인구 거주 능력을 갖추지는 않았다. 농노들은 성 주변의 들판에 갖추어진 장원에 거주했으며, 유사시에는 성에 주둔하는 영주의 가신들이 출격하여 외적을 요격하거나, 농노들을 성 안에 불러들이고 성문을 닫아 농성했다.

영어 'citadel'(시타델)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 내부에 있으면서 별도의 성곽과 방어시설을 갖춘 요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원은 이탈리아어로 도시를 가리키는 città이다. 고대, 중세 대도시의 지배자들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도시 안에 이런 시타델을 지어 놓고 직속 병력과 함께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공성전이 벌어졌을 경우 당연히 최후의 저항 거점이 되며, 실제로 공성전 중 도시 성곽은 함락시켰는데 시타델을 함락시키지 못해 교착 상태에 빠진 사례도 여럿 있다. 그래서 시타델 자체를 저항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번역할 때에는 '성채'(城砦)에 대응시킨다.[10] 해당 도시가 자유도시가 아니라 군주가 거주하면서 통치하는 도시일 경우, 대부분은 군주의 거주 시설과 집무실을 성채 안에 (후술하듯 성채 안의 아성에) 마련했다.

성(castle)과 성채(citadel) 안에는 또 최후의 방어시설로 성의 다른 부분 또는 성채의 다른 부분과 좁은 문으로 격리된 탑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keep'()이라 하며 번역하여 '아성(牙城)'이라고 한다. 아성 부분을 성채로 오역하거나 성채를 아성으로 오역하는 등 이해에 혼선이 많기는 하나, 'keep'은 그 개념상으로는 'citadel'과 확연히 구별된다. 'Keep'은 탑, 즉 단일 건물이고,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가 함락되었을 때 방어자들이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저항하는 건물이다. 반대로 성채(citadel)은 도시 내부에 별도로 벽을 둘러 추가로 요새화된 구역을 의미하며, 성채를 둘러싼 도시가 함락되었을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요새화된 지역이다. 성채마저 함락될 경우 성채 안에 있는 건물인 'keep'으로 퇴각하여 저항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방어적 이점 덕분에, 성을 지배하는 군주의 거주 시설이나 집무실은 아성 안에 마련되었다. 아성 1층이 평시에는 군주의 집무실 겸 연회장인 식으로. 마찬가지 이유로, 도시가 군주가 거주하며 통치하는 수도 도시일 경우, 군주의 집무실은 도시 안의 성채(citadel) 안의 아성(keep)에 지어졌다. 책마다 번역어가 약간씩 다르므로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데, 원문을 참조하여 'citadel'과 'keep'을 헷갈리지 말자. 위에도 나와있듯이 동양의 단어 중 가장 유사한 개념은 천수각인데 (군주의 평시 거주 기능을 제외하면 군사적으로는 유사 수준을 넘어서 거의 정확하게 같은 기능을 한다), 이건 또 일본식 성에만 있는 거라서 한국이나 중국 내의 문헌에서 'keep'을 '천수각'으로 번역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요새(fortress)는 성(castle)과 달리 군주의 주거 시설이나 민간인의 주거구역이 갖추어지지 않은 방어 시설로, 오로지 군사 목적으로 요충지에 세워진 방어 시설을 의미한다. 보통은 기사단등의 군사집단이나 상비군이 주둔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주시설을 제외하면 무기고마구간 등의 군사시설로 가득 차 있었다. 'fort, fortress'의 'fort-'는 [강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fortis'에서 온 말로 음악에서 쓰는 포르테(forte)와 어원을 같이 한다. 요새를 일컫는 다른 말로 'stronghold'(스트롱홀드)가 있다. 이는 라틴어 어근에서 기원된 'fortress'와 달리 순수 게르만 제어를 어원으로 한다. 영어에는 이런 식으로 같은 의미이면서 한 쪽은 라틴어 기원, 다른 쪽은 게르만어(즉, 영어 입장에서의 고유어) 기원인 단어들이 꽤 있다.

방벽(wall)은 만리장성과 매우 유사한 개념인데, 어떤 구역을 둘러싸는 형태가 아니라 형태로 세워진 성벽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경우도 성이라고 불렀으나 유럽에서는 다른 말로 불렀다. 대부분의 경우는 국경에 설치되어 국경 밖의 외적이 국경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는데, 그 무지막지한 규모와 건설 비용 상 유럽 역사에는 이러한 형태의 방벽이 설치된 경우가 잘 없다. 다만, 고대 로마 시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야만족의 땅인 칼레도니아로부터 브리타니아 속주를 보호하기 위해 둘 사이에 방벽을 세웠는데, 이것이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이다.이것이 현대까지 스코틀랜드잉글랜드의 차이를 야기하는 등 아주 중요한 역사적 영향을 남겼다.

도시를 둘러싼 방벽 역시 city wall(도성)이라 부른다. 동양에서 "양양성을 함락시켰다", "평양성을 탈환했다" 식으로 도시 이름을 붙여서 '성'이라고 부를 때는 이 city 내지 city wall에 해당한다.

영어 'castle'은 라틴어 'castrum'의 지소형(指小形, diminutive) 'castellum'[11]이 고대 북부 프랑스어 'castel'를 거쳐 후기 고대 영어 'castel'로 들어온 것이다. 'castrum'의 복수형 'castra'는 조금 더 일찍 들어와서 'ceaster'로 유입되고 영국 지명에 '-caster', '-chester' 등의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기원은 스페인어 'alcazar', 'castillo'[12], 프랑스어 'château'와 마찬가지이다. 한편 영어에서는 어중의 'st'에서 [t]가 묵음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13] [ˈkæsl]이라고 읽게 되었다. 재미난 점은 프랑스어에서는 'château'도 그렇고 같은 상황에서 [s]를 묵음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14]

독일어로 성을 의미하는 '-burg'(부르크)는 중유럽의 여러 지명에도 남아있다. 예를 들어 잘츠부르크(Salzburg)는 소금 성이라는 뜻.[15] 이는 영어의 'borough'와도 동원어 관계에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edinburgh'의 '-burgh' 역시 기원이 같다. 독일어에서 'castle'을 의미하는 단어는 'die Burg'(부르크), 'palace'(궁전)은 'Schloss'(슐로스)[16]로 구분한다.

스페인어로는 alcazar라고 한다. 다른 성이나 요새를 뜻하는 alcazaba[17], castillo란 단어에 비하면 세밀하게 순수한 군사용 목적 뿐만 아니라 왕들이 거주하는 왕궁이란 뜻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3. 역사

3.1. 기원

성이 언제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신석기 혁명 이후 가족 단위의 원시 집단이 대형화 되면서 하나의 부락을 이루었을 때, 부락의 외곽에 설치했던 시설이 성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최초의 요새는 사람이 넘어오지 못하는 수준으로 담을 높게 쌓은 형태였겠지만, 넘어오려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도록 담 위에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되어 발굴이 끝나 보고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는 성곽도시(城郭都市)는 이스라엘예리코로 BC 8000년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밖에도 문명의 4대 발상지에서 모두 성의 구조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이스라엘의 예리코 성이 축조된 시기 이전에 성이라는 방어 시설의 개념이 존재했고, 이후, 세계 각 지역으로 서서히 전파되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으로 전파된 것으로 파악된다.

3.2. 고대

춘추전국시대삼국시대 시기 중국의 경우, 성을 쌓는데 벽돌을 이용하지 않았다.[18] 당대의 성벽을 쌓는 공법은 일단 맨 땅에 흙반죽을 쌓고 그 위에 건초와 흙을 섞은 건초 반죽을 쌓은 뒤 다시 흙반죽을 쌓는 방식을 반복했다. 중간중간에 건초 반죽을 넣는 이유는 건초가 흙을 붙잡아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19]. 그리고 한 번 쌓을 때마다 최대한 다져서 성벽의 내구도를 높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만리장성이 시작된 부분의 유적. 전술한 방법으로 성벽을 쌓았다. 만리장성에서 벽돌로 만들어진 부분은 명나라 이후시기에 지은 것이고 삼국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부분은 이 공법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중국 이외의 동북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 등의 한국 왕조들이 이런 식으로 성을 쌓았다.

또한 중국의 토성 벽은 모래와 자갈을 섞어 올린 토벽에 벽돌을 쌓아 포격에 대비하기도 했다. 탄도체가 벽돌을 때려도 충격이 흡수되고 설사 벽돌이 무너져도 토벽이 계속 성벽의 역할을 하는, 공격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열받는 구조. 거기에 공성시작과 함께 성위의 병력을 보호할 임시 요새가 건설되어버리기도 한다.

백제마한 등의 한반도 남부 지역의 왕조의 경우는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흙을 높다랗게 쌓아서 언덕을 쌓은 다음에 그 위에 목책을 두르는 방식으로 성벽을 조성했다. 이런 방식은 냉병기를 이용한 전쟁 방식 밖에 없던 고대에는 상당히 유용한 축성기술이었다.

고대 중동권 지역에서는 주로 벽돌로 성벽을 쌓았다.예로부터 건축물 건축에 벽돌이나 적당한 크기로 깎은 돌을 이용하는 방식이 발달했기 때문이며[20], 따라서 성벽같은 군사 시설도 이런 방식으로 자주 짓곤 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 문명은 상당히 인상적인 성벽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인 바빌론의 성벽 자체는 벽돌을 쌓아서 지은 전형적인 중동 스타일 성벽이지만, 겉을 파란색으로 칠한 도자기 타일로 마감처리하여 미관상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시기는 아직 방어용 요새와 통치자[21]의 관저 역할을 겸하는 성관은 등장하지 않았던 때다. 그런 건물의 개념은 중세 중기 이후에나 등장했고, 당시에는 유력자가 사는 곳은 경비 인력을 더 늘리는 정도에서 끝내는 게 고작이었다.

3.3. 중세 초기

중세 초기 성벽 형태인 모트 & 베일리.

유럽의 경우 대략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봉건사회 지배자의 무장된 주거지로서 점차 견고한 것으로 발달했으며, 세 가지의 역할을 지닌 건조물이었다. 영주의 주거, 성이 구축된 지역의 방어시설로서의 한 요소, 비상시 백성들의 피난처 등의 역할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기의 성은 성터 주위에 해자를 파고 그 파낸 흙을 쌓아올려 원추형의 분지를 구축하고 그 정상에 목조로 탑상의 건물인 킵을 세우거나 아니면 대지에 접속시켜 목책이나 해자를 둘러치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 형식은 11세기 무렵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1세기에는 킵을 석조로 만든 예도 나타났고, 동시에 견고한 성벽을 둘러쌓는 형식도 발달하였다.

서유럽에서 보이는 초기의 킵은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평면의 건물이며, 거기에는 우물 그레이 홀과 영주의 가족들과 하인들이 거주하는 방, 창고 기타 장기간 농성에 필요한 모든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예배당도 있었다. 벽은 매우 두껍고 모서리에는 커다란 우탑이 붙어, 높이는 2층 내지 4층으로 되어 있다. 입구는 통상 2층에 설치되어 걸쳤다 떼었다 하는 사다리로 출입한다.

이런 사각형 킵은 여러 방을 배치하기에는 편리하나 반면 파괴망치의 공격에는 약했다. 한쪽 벽면에서 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다른 벽에서 측면 반격을 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점을 제거하기 위하여 킵의 평면을 원형이나 다각형으로 하게 된 것은 제3차 십자군 원정 이후의 일이다. 서유럽에 동방이 영향을 준 것들 중 하나이다.

3.4. 중세 성기 및 후기

수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의 축성술을 알게 된 서유럽의 기사들의 체험은 12세기 말엽부터 본국의 축성술에 반영되었다.

성벽은 요소요소가 탑으로 강화되고, 그들 정상부에는 오목하면서 불록한 흉벽 또는 성가퀴가 설치되었다. 침입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회랑식 주랑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마시쿨리라고 불리는 투석구가 마련되었다. 그러한 성벽에 싸인 성곽 속에서 가장 초점이 되는 건물은 킵이며 그것은 공방전에서 최후의 거점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원형과 다각형 킵의 예로는 프랑스의 세자르 · 에탐프 · 프로방, 영국의 코니스보로 등이 있다. 한편 지중해 동쪽에는 11∼12세기를 통하여 비잔틴의 전통이 계속되어 1099년 예루살렘 함락 후는 십자군에 의하여 그러한 동방의 축성술을 살려 안티오키아에서 아카바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견고한 성이 여러 개 구축되었다. 12세기의 사오누, 마르가트, 그리고 크라크 데 슈발리에 등의 성채가 그 예다.

북프랑스의 가야르성은 장대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 이러한 형의 성채건축은 13세기를 통하여 더욱더 개량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1917년에 파괴된 쿠시성도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대지에 세운 걸작이며 그 킵은 지름 31.5 m의 원통형으로 벽의 두께가 기부에서 약 7.5 m나 되었다. 독일에는 바위산 위에 세운 팔켄베르크성이 있으며, 영국의 예로는 런던 탑 · 윈저성 · 에든버러성 등을 들 수 있다.

3.5. 대포의 등장과 성형 요새

  자세한 내용은 성형 요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형 화약병기가 보편화된 시점부터 그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는 듯했다. 그 전에도 투석기로 성을 좀 두드려보긴 했었지만 제대로 축조한 성은 외벽의 높이가 외벽의 두께보다 높고 제법 튼튼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는데, 화약의 힘으로 보다 무거운 돌이나 쇳덩이를 날려대기 시작하면서 외벽이 쉽게 무너져버리는 구시대의 성은 힘을 못쓰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성벽으로 꼽히는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이 오스만 제국의 거대 대포의 포격으로 함락된 사건을 패러다임 전환 시점으로 꼽는다. [22]

이탈리아 전쟁에서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자 이탈리아 축성 기술이 정점에 이르렀는데 이런 이탈리아식 성형요새가 등장해 성곽건축의 획을 그었다. 사실 성형 요새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온것으로 프랑스의 보방은 그것을 개량한것이다.

프랑스의 천재 공학자 보방(Vauban)이 설계한 공격 거점으로써의 성곽으로 발전하면서 공격자들의 머리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보방은 여러 개의 요새화 된 시설을 건설하면서, 방어지역에 포병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적의 접근 경로를 아군의 방어 방향 쪽으로 강제하면서 축차적으로 적을 소모시킬 수 있는 별 모양의 요새를 설계한다. 요새 벽면도 약 60도 정도의 경사를 주어 포탄의 직격을 경사로 튕겨내면서 보병이 간단히 뛰어오를 수 없도록 구축함으로써 당시 요새의 최정점을 만들어냈다 포병이 눈으로 보면서 사격하던 시절까지의 끝판왕. 이 때문에 유럽과 북남미 등 열강의 손길이 닿던 모든 지역에서 해당 형태의 요새가 많이 지어져 있다. 대다수는 현재까지도 남아있으며, 유럽의 경우는 아예 요새 안에 마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있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일본 하코다테에도 보방식 요새인 고료카쿠 성이 있다.

수직에 가깝게 쌓아 단순히 공격자들이 쉽게 올라오지 못하게 하던 구식 성벽 대신 약 60도 정도의 경사를 통해 공성포의 직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설계와, 계산된 각도의 성가퀴를 이용해 성 내부의 대형 요새 포로 적의 공격이나 참호를 분쇄할 수 있음은 물론 내부에 주둔한 병력을 활용해 적의 병참선을 공격할 수 있는 형태의 거점으로 변신한다. 이러한 형태의 거점으로서의 성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유효한 방어 거점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형 요새도 결국 곡사포고폭탄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된다.

대포의 발전에 대비한 이러한 형태의 축성술은 유럽에서 주로 나타났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화약 무기의 발달이 다소 정체되어 이러한 특징적인 모습의 성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이후 열강 시대에는 이미 근대로 온전히 넘어갔기에 이전까지 쓰이던 성과는 전혀 다른 콘크리트 요새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특정 양식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을 뿐이지 대포에 대한 대비는 이것저것 많이 나타났고, 조선수원 화성은 그러한 것들의 도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바 있다.

근세 열강이 팽창함에 따라 군대를 파병하고 그 지역에서 군사력 우세를 유지하기 위한 요새들이 세계 각지에 건설되었다. 도시를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권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전투병만을 가득 집어넣은 형태의 성이다.

3.6. 근대

  자세한 내용은 벙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철근 콘크리트라는 무식한 자재가 나오면서 높은 수준의 방어력을 추구하는 거점을 건설하게 된다. 이 개념의 극단이 유명한 마지노 선대서양 방벽 이외에도 콘크리트 전함이라고 불리는 드럼 요새와 같은 극단적인 방어용 시설이 등장하게 된다.

요새의 최종 형태중 하나인 드럼 요새. 콘크리트 전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시 요새의 최종 형태 중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의 '동물원 대공포탑'

이런 거점들을 정상적으로 해치우는 데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해졌고, 이걸 때려부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까지도 동원된다. 전략 개념에서야 우회해서 뒤통수쳐버리면 되지만, 당장 박살내야 하는 전술 수준에서는 피를 얼마나 흘려야 할 지 모르는 상황.

한편 일반적인 야전에서도 기관총과 포병 화력의 확대로 방어 진지를 구축할 필요가 생겼지만 땅 위로 뭘 세워서는 단기간에 유의미한 방호력을 제공하기 어려워져 땅 밑으로 파는 방법을 택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참호의 등장이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인 것을 '성/요새'로 부르기 때문에 참호와 같은 간이 방어시설은 '성/요새'에 포함시키지 않으나, 참호전과 같이 특수한 전장에서는 수십 k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되기도 하였다.

3.7.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쇠퇴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공군력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공군을 불러서 벙커버스터 한 발로 무식하게 두꺼운 지하 벙커도 보내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군을 동원할 수 없더라도 핵무기가 있으니 그냥 한방감. 이런 것들에 대응할 방어책들은 비용 규모가 너무 커져서 차라리 그 돈 갖고 공격수단에 투자하는 쪽이 더 이득이었다. 그래서 현대의 군대는 요새와 같은 시설을 건설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북한과 같이 상정한 적군이 미군처럼 강대한 경우, 요새급의 진지나 지하요새를 만들지 않으면 개전과 동시에 끔살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세월과 막대한 인원을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하도시급의 요새를 전국 각지에 건설한다. 하지만 지하요새의 최악의 단점 중 하나는 지하에 있다는 것으로, 지하에 있으면 습기에 취약해지며 환기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중국 등의 핵보유국이라면 직접적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핵무기가 아닌 독가스로 제압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일례로 제1차 세계대전참호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독일군이 신호탄을 올리자, 너도 나도 독가스를 써댔다. 물론 제독 절차가 좀 골 때리겠지만 애초에 핵무기 방사능이나 독가스나 하등 다를 게 없다. 물론 지하요새에 자체 정화시설 같은 게 구비되고 양압 장치 등을 이용해 화생방 방호를 완료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안 통하겠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벙커버스터로도 안된다면 해당 폭탄 내부를 소형 핵폭탄으로 바꾸어서라도 완전히 요새를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라는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의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게다가 월남전과 이라크 전쟁때 하도 데이고 데였던 미군이라면 이런 땅굴 내지 지하벙커는 그 누구보다도 잘 털어버리기 때문에 미군 상대로 어중간한 지하도시로는 어림도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 기계화 전력과 항공전력이 북한보다 열세였던 1980년에 서울 북방에 옛날 성처럼 성벽과 성문을 갖춘 '수도권 방벽'이라는 요새를 쌓기도 했었다.

3.8. 전초기지로서의 역할

요새의 퇴화라는 것도 사실 이렇게 거점을 이중 삼중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화력을 공군이나 미사일, 장거리 포격 같은 굳이 가까이서 상대 안 하고 멀리서 한방에 날려 줄 화력이 있는 강대국들끼리 전면전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비록 형태는 크게 변하였지만 빠른 시간 내에 건설되어 전략적 거점에 화력이 열세인 상대를 공간적으로 눌러 버릴 수단으로서 기동 진지는 현대전의 역사에서도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장 근대적 게릴라전의 시초로 여겨지는 보어 전쟁에서만 하더라도 광활한 남아프리카의 평원을 무기로 삼아 끊임없는 유격전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던 아프리카의 공화국들을 끝끝내 확실하게 꺾어버린 건 바로 강제 수용소와 철도로 따라 촘촘하게 1.5 마일 간격으로, 인근 흑인 노동력까지 징발하면서 하루에 무려 15개씩이나 지어대던 블록 하우스라 불리는 간이 진지들이었다.[23] 제5차 초공작전 당시 기세등등하던 중국 공산당의 게릴라 군세를 결정적으로 꺾어버린 것도, 다름아닌 국민당군의 토치카 전술이었다.

2차 대전 이후로도 베트남전 당시 월맹-베트콩 측의 구찌 터널을 비롯한 땅굴망이나, 이런 월맹 측 기동 거점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과 한국군들이 건설했던 기동 진지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된 1차 중동전쟁과 그 이전의 시오니스트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 충돌에서 유대인들의 승리를 굳힌 것도 저 보어 전쟁에서 쓰던 블록 하우스 거점 진지들을 바로 키부츠로 전환시키며 군사적 거점 점령, 사수와 동시에 아예 인구 폭탄을 같이 던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하가나, 레히 같은 시오니스트 무장 단체 투사들은 본인들이나 가족들이나 적지 않은 경우 방금 홀로코스트라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전부 다 문자 그대로 일상을 전쟁 속에서 살 각오를 하고 이주한 상황이니 사회학적, 정신적으로도 이런 극단적인 드롭-알박기 전술을 구사할 여건이 되었다.

반면 상술한 모든 사례에서 대치하던 보어, 베트콩, 팔레스타인 게릴라 입장에선 저런 거점 요새들을 강대국들 사이 전면전에서 퇴역시켜버린 한방의 장거리 화력을 투사할 중화기가 없으니 들락날락하며 습격, 테러, 사보타주, 선동, 보급, 인원 충원의 터전인 마을에 진입하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야 하니... 애초에 전쟁을 이기려면 단순히 수도와 거점만 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점과 선을 넘어선 면을 통제해야 하고 해당 지역의 저항 세력을 사회적 차원에서 분쇄해야 하는 비정규전, 게릴라전을 고려한다면 요새의 몰락이란 군사학적 테제는 재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4. 방어 목적 이외의 발전

4.1. 도시로의 발전

고대 문명권 이후로 수많은 민족의 번성과 폐망, 전쟁등으로 성곽도시(城郭都市) 및 성채의 형태로 더욱 견고하게 발전하여 중세 유럽시대에 절정을 맞이한다. 서양에서는 봉건시대에 장원을 구분짓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옛날 성의 이미지로 이미지가 박제된 한국의 성과는 달리, 지금도 중국어로는 사람들이 몰려사는 도시라는 의미다. 중국어로 도시를 '城市'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성(漢城)은 성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성벽을 포함해서 그 안에 있는 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원 화성(華城)도 마찬가지. 이런 성들의 성벽은 방어용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구획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 공통적으로 17세기 까지만 해도 나라를 불문하고 대도시, 권력의 상징이였다. 하나를 지으려고 해도 재료가 많이 들고 인부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자연스레 많아지므로, 성벽의 건축이 웬만한 대형 건물 한두채 짓는 것보다 더 까다롭다. 자연스레 시골 읍내보다는 권력자가 거주하는 지역이나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짓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단어의 어원은 '성(Bourg) 내부에 사는 사람'이다. 성도 건축물이니만큼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는데다가, 공간도 그리 넓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성 내부에서 거주하게 되면 당연히 유지 비용을 세금으로 거두곤 했는데, 이게 일반 서민들이 부담하기에는 큰데다가 기본적으로 이런데는 땅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결국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일반 백성들은 성 밖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성 내부에는 상공업 종사자, 귀족 같은 소위 '돈 좀 만지는 사람'만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인해 '성 내부에 거주하는 사람 = 재력 있는 사람 = 부르주아'가 된 것이다. 지금은 성 내부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재력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만 남았다.

물론 유럽이나 일본같은 경우 이러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의 조카마치(城下町) 거주자들의 경우도 어떻게 보면 부르주아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같이 중앙 행정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힌 경우는 봉건 사회와 달리 성의 의미가 권력자의 보호기구가 아닌 행정의 하위 단위인지라 웬만한 경우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 안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성전이 발생했을 때 전자의 경우 전투원들 위주로 성 안에서 농성하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 비전투원들도 입성해 함께 농성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24]. 특히 일본의 경우 전자의 경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란 에세이에서 이러한 차이를 흥미로운 관점으로 보고 있다.

4.2. 개인 거주지로서

중세 말에서 15∼16세기에 걸쳐 화기의 사용이 급속히 발달하게 되자 종래의 방어시설로는 효과가 없게 되어 그때까지 성이 지니고 있던 주거와 요새를 겸했던 두 가지 기능이 분리되어 성은 순전히 군사상의 요새와 거관으로서의 저택으로 나뉘었다[25]. 르네상스 시대 루아르강 유역에 세워진 일군의 성관들은 그러한 중세의 축성술을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거관이다.

주로 일부 귀족이나 왕족들의 취미나 거주 목적으로서 일종의 저택이나 별장으로 지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당시 바이에른 왕국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가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성을 재현해보고 싶어서 지었다고 한다. 물론 이게 엄청난 돈지랄이었기 때문에 얼마 못 가서 루트비히 2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빡친 의회와 국민들에 의해 폐위되고 정신병원에 처넣어졌다(...). 그리고 그의 말로도 좋지 않았다.

이는 당시에 불어닥친 낭만주의 열풍에 의한 것으로, 이 시기부터 성이 부유층의 저택이나 별장으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 20세기에 지어진 성도 있었는가 하면 성이 발달하지 않은 북아메리카에 지어진 성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허스트 캐슬이 대표적인데, 문제는 이게 영국 웨일스에 있는 800년된 수도원을 부숴서 지은 것이라서 문화재 훼손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 이외에는 캐나다 유일의 성벽 도시인 퀘벡 시티가 있다.

살기에는 썩 편한 편은 아니다. 겨울에는 무진장 추운데다가, 편의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옛날 건축물들인 만큼 단열이나 습기배출이 잘 되지 않아 겨울엔 엄청 춥다. 사실 진짜 석조로 지은 오리지널 중세 성은 여름에도 써늘하다. 개/보수도 대부분 지역법상 쉽지 않아 내/외장재를 현대식으로 재시공할 수도 없으며 도심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생활스타일에서 주거용으론 사실 부족한 면이 많다.

4.2.1. 부동산 거래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성은 주거용 저택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거래가 되긴 한다. 하지만 관리인원이 많이 필요해 유지비 폭탄을 맞는데다[26] 시골에 있어서 교통까지 불편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 생각만큼 고가에 거래되지는 않는다. 보통 돈 많은 사람들이 별장용으로 하나 구입하는 정도. 대개는 470만 유로 정도에서 시작해 드물게 정말 비싼건 5천만 유로 정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영국 랭커셔에 있는 해자까지 딸린 이 근사해 보이는 성은 고작 375000 파운드(약 6억 5천만원)에 매물로 나와있었다. 강남아파트 전세값이면 당신만의 성이 한채! 그럼 뭐해? 유지비 때문에 아무도 안 사는데. 이건 좀 과하게 많이 싼 편이지만, 보통 저 정도 성이라도 수백만 유로를 넘어가지는 않는 편. 레이디 가가스코틀랜드에 자신의 소유로 된 성이 하나 있다.

다만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국보급 성이라면 이런 식으로 쉽게 거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위 링크에 연결된 성도 겉보기에는 중세식 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파괴된 것을 19세기 후반에 중세를 모방한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재건한 것이다. 진짜로 중세 당시의 건축물이 온전히 남아서 문화적 가치가 막대한 성[27]은 국가나 문화재 재단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5. 기능

주로 성의 역할은 높고 튼튼한 성벽을 통해 적이 도시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적들의 공격 루트를 한정시키는 억제 효과가 있었고, 또 방어하는 측 병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전투 중 안정적인 엄폐물을 확보하게 해 줄 수 있는 여러 이점이 있었다.

냉병기 시절 성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제대로 축조한 성에 식량이 충분하다면 성 내부에 전염병이라도 돌지 않는 한 공격해 온 적군이 먹을 게 없어져서 물러갈 때까지 방어해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적을 전투에서 섬멸하기 위해 요구되는 공격 측과 방어 측의 병력 비율을 3:1이라고 할 때, 성이 있는 경우 이 비율이 5:1에서 10:1까지도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어 측이 성 내부에 일정 규모의 기동성 좋은 부대를 갖추고 있는 경우, 공격자 측이 공격할 성을 완전히 둘러싸고 포위하지 않으면 어느 구석에서 기어 나온 적군에게 뒤통수를 맞기가 십상이고, 포위했던 공격자가 물자가 다 떨어져 물러갈 때 모랄만땅 배만땅 채운 방어 측 기병에게 뒤통수 맞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28]

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병기를 제작하는 수법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런 방법은 병기 제작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자원이 들어가게 되며, 공성 과정에서 병력이 손실되게 마련이다. 손자병법에서도 이런 식으로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가장 하책으로 보았을 정도. [29] 애초에 역사적으로 봐도 그런 게 가능했던 건 공략에 만 단위의 보병과 우수한 공병을 투입 가능했던 로마군이나 중동 제국, 중국군 정도였다. 대포가 나온 후에도 콘스탄티노플과 같은 대규모 성은 거의 공격이 불가능했을 정도. 자세한 내용은 공성전 문서 참조.

공성전 시 대형 공성포를 운반할 수 있는 참호를 수성 측 사거리 바깥부터 길게 뻗어 들어가며 만들고 거점에 공성포가 설치되는 시점에서 수성 측이 명예로운 항복을 할 수 있었다. 참호 못 파게 하는 유격부대와 이 유격부대를 처리하려는 유격부대 간의 전투가 주요한 공성전이 될 정도였으며, 이러한 내용의 예는 삼총사의 라 로셸 공방전 장면에서 나온다.

규모도 10여 명을 간신히 수용할 수 있는 것부터 도시 전체가 일종의 요새가 된 것까지 다양하며, 마지노 선처럼 국경선 전체가 요새화된 방벽으로 된 물건이나 지면 밖에 나온 시설물은 거의 없는 데 반해 지하에 100km가 넘는 지하통로로 거미줄같이 연결돼 있는 구조인 지하요새도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베트민베트콩들이 건설한 구찌 터널이 이런 개념으로 지어졌는데, 비록 사람이 들어가기엔 대단히 비좁긴 하나, 내부에 작전회의실, 식량창고, 병사들용 침실에 사기 진작을 위한 간이 극장도 있는 등, 웬만한 것을 다 갖추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일부 군사기지도 종종 이런 식으로 건설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지노 선이나, 스위스방공호 등인데, 입구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구찌 터널과는 달리, 못해도 수천 명에서 많게는 천만 명도 넘는 인구를 수용해야하므로 내부가 훨씬 넓고 쾌적하게 되어 있다. 이런 요새는 주로 건축공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건설되지만, 데린쿠유같이 고대에 지어진 지하도시도 좀 있다. 이 경우는 화산암같이 파내기에 용이한 지형에 주로 건설되었으므로 건설 난이도는 다소 낮지만,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당대의 첨단 기술이 대거 동원되었다[30].

6. 양상

높은 벽을 쌓아 침입을 방지한다는 원리는 동일하지만 그 형태와 목적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만리장성이나 천리장성 같이 국경 등에 긴 담을 쌓아 올리는 장성이 있고, 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한 도시 외곽을 벽으로 둘러싸는 도시성곽, 유럽과 일본에 존재하는 권력자 거주용 성관(城館), 크라크 데 슈발리에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견제하거나 방어할 용도로 지은 요새형 성 등. 같은 나라, 지역 내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성의 형태는 제각기 다르다.

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는 따로 권력자용 거주 공간을 성처럼 쌓아 올리기보다는 대도시 내에 궁궐을 짓고 담으로 구분 짓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사람이 모이고 교역하기 쉬운 대도시는 전체를 둘러싸는 성곽으로 방어하고, 길목에 전투용 요새성을 따로 두어 거점방어에 이용한 것. 따라서 차단/요격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대도시들은 꽤나 손쉽게 적의 손에 넘어갔다. 농경지 약탈은 어차피 막기 힘들고, 인명 보호에는 도성보다 피난용 요새가 나았다. 주요 거점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순수한 요새형 성도 있다. 중국만리장성이 대표적. 이런 요새형 성이 따로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아권에서 성관을 따로 생각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요새형 성엔 거주용 성관을 지어놓지도 않았고, 지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혼란기 중국이나 서양은 조금 사정이 달라서, 옛 대도시들은 도시 외곽의 방어성이 필수적이었다. 큰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기보다 도시 단위로 공격받는 일이 잦은 경우 도시성 자체의 방어 능력이 중시되었던 것. 중세 유럽, 전국시대 일본 등 짧은 전쟁이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곳에서는 도시의 방어보다는 권력자 거주구를 중점 보호하는 형태의 성이 나타난다. 이쪽은 직업군인 간 전투로, 일반민 마을을 약탈하기보다는 권력자 목을 따고 구역 일대를 손에 넣는 형식의 전투가 주로 이어졌기 때문. 중국의 성은 평지성이 방어의 기본이다 보니 성벽을 매우 높게 짓고 다중 문 방식의 성문을 채택해 평지성이지만 높은 방어력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에는 성문이 기본적으로 작은 데다가 한두 개밖에 없고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라고 불리는 3중 성벽 구조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으며 침입해온 적군들을 언제나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도 미로같이 만들어놓아 역사상에서도 손꼽히는 매우 높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다만 그 대가로 교통이나 거주 편의성 등 평시 도시로서의 성의 기능을 많이 포기했다.

북아메리카에는 성이 발달하지 않았다. 성의 개념이 아메리카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가 이미 성이 쓸모없어진 시기와 겹쳤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포에 맞아서 무너진 곳을 빨리 복구하기 위해서 나무로 벽을 두른 요새가 대세가 되어서 돌로 지은 성 자체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성을 단순히 저택으로 쓴다고 해도 그런 곳에 거주할 귀족이 없었다.

중국의 성은 많은 인구 탓에 트럭 2대가 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성채를 자랑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경우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하다 보니 다수의 병력을 운영하면서 성곽방어도 그에 맞게 변형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편 전국시대 일본은 다이묘들이 오랜 전란으로 인해 산성에 도피용 산성을 따로 만들기도 했고 아예 산성에 주로 거주하는 경우까지 생겼는데, 이런 일본의 산성들은 평지의 성들과 마찬가지로 큰 데다가 복잡한 방호 시설들이 지어져 더더욱 난공불락을 자랑했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은 여전한 문제인지라, 성 방호기술이 발달하면서부터 점점 평지성, 평산성에 주력 자리를 내주게 된다.

요새형 성곽의 정점을 보고 싶다면 인도로 가보면 된다. 일본은 전국 시대를 겪으면서 긴 내전을 치르면서 성의 구조가 보완을 철저히 하고 성곽 특유의 독특한 구조가 매력인데 인도의 경우, 중국 못지않은 인구 대국인 특성과 다민족국가로 일본 못지않은 내전을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일본과 중국의 장점을 혼합한 듯한 요새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인도는 토양 기반이 사암이라서 일본보다 더 수월하게 성을 지을 수 있어서 일본보다 더 규모 있고 개성 넘치는 성들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인도의 어떤 성들은 아예 산 전체를 파서 산 자체를 아예 요새화 시킨 것도 있으며 또 어떤 것들은 아예 계곡을 깎아서 상대하는 입장으로썬 저걸 어떻게 뚫어야 하나 할 정도로 말 안 되는 구조를 가진 성들을 인도에선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 덕택에 수많은 판타지 덕후들이나 작가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 때 반드시 인도를 참고할 정도라고 한다.

거제 장목면 일대에 있는 매미성처럼 태풍으로부터 농경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관광지가 된 사례도 있긴 하다.

6.1. 한반도

삼국시대삼년산성.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는 전쟁이 매우 활발해 실제 전시 방어에 중점을 둔 견고한 성곽도시가 전국 요충지에 건설되었다. 역사에 이름을 떨쳤던 난공불락의 성채로 평양성, 대야성이 있으며, 웅진, 서라벌도 직접적인 공성전이 이뤄진 적이 있었다.

한국의 산성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입보항쟁, 청야입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사실상 청야전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왕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들이 산이나 구릉 위에 축조되었으며 왕성이라고 할지라도 구릉 위에 형성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즉, 수도에는 왕성(또는 그냥 왕궁)과 피난용 산성의 시스템을 갖췄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다.[31] 따라서 대부분의 산성에는 저장, 저수시설이 필수적이며 실제로 발굴조사에서도 특히 저수시설에 대한 관리는 수차례에 걸쳐 보완되는 흔적이 발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예 산성이 지방행정의 치소(治所)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되는 경우도 많다.

한반도에 현존하는 산성 유물 중에는 건축 당시 산성의 성벽 높이가 거의 보루수준인 곳도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당수가 허물어져서 그때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다. 전방의 국경지대가 아닌 이상 다른 후방의 성들을 유지하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쉬웠고 도시와의 접근성도 낮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지면 관리가 이루어지기 힘든 탓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지성이 읍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지어졌는데 외성만 있고 외부와 이어지는 정문이 많이 나있는데다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서 방어력이 약했다. 읍성은 정규군을 막아내기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관의 위엄을 높이고 행정 구역 표시, 도적 및 왜구를 막아내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적이 처들어오면 읍성을 비우고 산성에서 농성하는 것이 원칙이이었다. 타국의 성들과 비교했을 때 성벽과 성관의 규모가 단촐해보이는 것은 읍성에 그런 구조물을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읍성이 있기는 하되 전란이 일어나면 읍성을 비우고 산성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군사적 측면에서 허술했던 읍성은 임진왜란 때 이미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공성전에 이골이 난 일본군에게 매우 쉽게 함락되었다. 기존에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정규군이 주력 방어선인 산성을 돌파해버리자 왜군의 진로에 놓인 읍성들은 빠른 속도로 점령되었다. 반면 대 여진 전선이었던 함경도는 여진족의 침략이 잦았던지라 경성읍성같이 웅장하고 큰 성들이 존재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읍성도 기존보다 잘 정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예외적으로 읍성임에도 잘 지어져 여러 방어시설과 내성/외성 구분이 잘 되어있던 진주성의 경우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를, 2차 진주성 전투에선 함락당했지만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어 진군을 저지함으로써 뛰어난 방어력을 보였다.

조선시대에도 일부 산성은 조정의 명으로 새로이 축조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며,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쌓았던 산성들을 재활용하거나 새로이 간단하게 쌓음으로써 왜적을 효과적으로 굶겨서 막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산성의 기능이 어떠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어떤 늙은 왜인이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왜장들은 매양 『조선이 청야(淸野) 작전을 써서 산성으로 들어가고 곡식들을 다른 곳에 옮겨 저장하는 것이 걱정이다. 물길에서 가까운 지역의 산성이라면 10년의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식량 운반이 편리하고 군량을 계속할 수 있으니 기어이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만일 아주 궁벽한 지역에서 성곽을 튼튼하게 마련하고 식량을 쌓아 두고 청야 작전으로 막아낸다면 들에는 노략질할 것이 없고 뒤로는 계속되는 군량이 없게 되어 격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로서는 큰 걱정거리이다. 』 하며 이를 늘 논의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88권, 선조 30년 5월 18일 무신 5번째기사

도원수 권율이 적정을 자세히 보고하다

7. 분류

7.1. 위치

성이 지어지는 위치에 따라 산성, 평지성, 평산성을 구분한다.

그외 중요한 요처에 있는 관문 역시 방어시설로 성의 하나라고 볼만하다.

7.1.1. 산성

  자세한 내용은 산성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산성은 말 그대로 산에 지은 성을 말하며, 드물게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에 지은 성도 산성이라고 부른다. 산성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벽을 빙 둘러 지어서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테뫼식(머리띠식)과 성 안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산능성이를 따라 성벽을 지은 포곡식[32]이 있다.

산이나 구릉에 짓는다는 특성상 성의 규모는 대부분 그렇게 크지 않으며, 삼국시대 국경선 지역에 설치된 산성들은 산성이라기보다는 거의 돈대 수준에 가까운 작은 산성도 보인다. 높은 지형에 위치하기에 감시와 방어가 유리하며, 산을 끼고 지은 성이기 때문에 공성병기의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어 복잡한 방호시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형상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7.1.2. 평지성

평지성은 평야 지역에 건설되는 성을 말한다. 평야지역의 특성상 지형적으로 방어하기가 산성보다 불리해 높은 성벽과 복잡한 방어시설들을 만들어 성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고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산성이나 산성과의 공존이 일반적이었으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건축 기술력의 향상으로 수성기술이 점차 발전하게 되면서 산성보다 일반화된다.

그러나 방어력 증강을 위한 투자에 비해서는 방어력이 크게 늘지 않으며, 적의 대형 공성병기가 쉽게 성벽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이 완전히 평야인 경우를 제외하면 가급적 평야 중에서도 고지대를 취하거나, 적어도 성벽 내부에 약간이라도 고지대를 포함시켜서 내성을 만들어놓는 일이 흔하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성벽이 뚫리더라도 일부 지역은 살아남아서 농성전을 계속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지성들은 대체로 읍성이며, 방어적인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시에 피란하여 농성할 별도의 산성을 갖춘 경우도 많았다. 한반도의 특성상 어딜 가든지 산은 꼭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사시 피란이 전제된 읍성들은 대체로 성벽의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방어에 썩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7.1.3. 평산성

평산성은 산지와 평지를 아울러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을 말한다.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과거 고려/조선 시대의 개성/서울의 성곽이나 고구려 평양성, 백제 사비성, 동래읍성, 수원화성이 이런 평산성에 속한다.

다만 이러려면 지형의 조건이 평지 옆에 험준한 산이 붙어있는 등 여러가지 조건이 딱 맞아야 하므로 평산성은 짓고 싶을때 마음대로 지을 수 없어 그 수가 적다. 그리고 제대로 짓지 않으면 평지성도 아니고 산성도 아닌 것이 양자의 약점을 고루 가진 망작이 되기 딱 좋다. 더구나 성 안에 살고 있는 인구수에 비해 성벽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평산성이었던 읍성들이나 한양과 개성에서 성벽이 있는 송악산, 용수산, 북한산, 남산 등의 산기슭을 본다면 일단 개성에 갈 수 있을지 어떨지는 뒤로 하고민가가 하나도 없어 성벽 둘레에 비해 사람이 거주할 구역이 평지성보다 제한적이다. 당연히 성벽을 따라 배치해야할 병사들의 수도 외부의 지원군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방어하기 힘든, 불리한 구조다.

7.2. 재료

성의 재료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다.[33]

  • 목책성(木柵城): 목책, 책성, 성책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 형태의 성이다. 상대적으로 싼 값으로 쉽고 빠르게 세울 수 있지만 내구성은 낮으며, 특히 재질의 특성상 불에 약하다[34]. 상위호환형으로 목책도니성(木柵途泥城)이 있는데, 이것은 한옥의 벽을 만드는 것처럼 나무로 골조를 만든 뒤, 흙을 덧씌워 토벽을 만드는 것으로 일반 목책보다는 품이 더 들지만 다른 성에 비해 훨씬 싼 값으로 빠르게 지을 수 있으면서도 일반 목책보다 튼튼하다. 목책도니성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보루 건설에 많이 사용했으며, 이외에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전라도 해안지대에 많이 건설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역시 많이 사용했고, 이에 유성룡은 <설책지법>에서 여말선초기의 목책도니성과 왜군의 임시진지를 기초로 하여 대포를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목책도니성을 제시한 바 있다. 전축성, 석성이 일반화된 뒤에도 싸고 빠르게 짓는 게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 목성(木城): 느릅나무, 버드나무, 탱자나무 등 빨리 자라거나 가시가 있는 나무들을 최대한 일렬로 빽빽하게 심어 서로 엉켜 자라게 해 천연 방어벽으로 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사례로는 북방의 , 의 압력 때문에 자유로운 성곽 건설이 힘들었던 남송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 토성(土城): 흙을 쌓아 만든 성. 토루(土壘)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 황하 유역에서는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지형 자체가 널리고 널린 게 고운 진흙인데다 흙에 칼슘성분이 풍부해 토성임에도 매우 단단했기 때문이다. 목책과 같이 설치하여 방어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대에는 흙을 정교하고 일정한 두께로 깐 뒤 다지기를 반복해 만드는 판축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이 방법은 튼튼하지만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어 적당히 쌓아올려 만드는 성토법, 완만한 형태의 지형을 급경사로 깎아서 토성의 효과를 내는 삭토법, 돌로 일부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토성을 쌓거나 아예 처음부터 흙과 돌을 섞어서 쌓는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이 있다.
  • 석성(石城): 석축성(石築城)이라고도 한다. 이름 그대로 돌을 쌓아 만든 성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단단한 화강암이 풍부한 한국에서 특히 발달한 성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식으로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쌓은 편축성(片築城)과 성의 내외벽면만 돌로 쌓고 사이에 흙을 채워넣은 협축성도 석성에 들어간다.
  • 전축성(塼築城): 전돌(벽돌)을 사용해 쌓은 성. 벽돌을 만들기 좋은 고운 흙이 풍부한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 벽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엄밀히 말해 순수한 전축성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돌과 흙을 벽돌과 같이 사용한 혼축성(混築城)이 대부분이다. 물론 벽돌성은 규격이 일정하여 보기도 좋고 섬세한 구조물의 건설이 가능하며, 접착력이 강해 포를 맞아도 피탄된 부분만 부서지는 장점이 있어 여러 차례 도입이 시도되었다. 국내에서도 드물지만 순수한 전축성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토질적인 이유로 좋은 벽돌 만들기가 어려웠으며 기후적으로도 습기가 많아 벽돌이 흙과 잘 붙지 못해 내구성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좋은 석재가 풍부하고 가공기술이 잘 발달해 있어 한국에서는 전축성이 주류가 되지는 못하였다. 한국 건축 문서도 참조.

8. 구성

성은 아래와 같은 시설로 구성된다.

9. 매체에서의 등장

9.1. 판타지

각종 중세 기반 판타지 장르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장소다. 이런 판타지 상의 성들은 상당수가 유럽, 특히 독일의 성들을 모티브로 한다. 다만 그 양식과 크기는 현실보다 심히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35] 높고 멋드러진 성을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그런 풍경은 판타지에서 빠질 수 없기에, 설정상 가난하다는 왕국에도 백성들은 굶는다는데 어째 성채 하나는 숨이 턱 막히는게 서 있다. 누가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는 묻지 않는게 예의. 판타지 세계관에서 성의 존재는 갑옷 입은 기사만큼이나 포기하기 어려운 로망이기는 하다.

게임에서는 나라의 중요 인물이 거주하고 있으며, 또 거주 인구가 많은, 즉 대도시라서 물건 수리, 주점, 훈련소 등등의 각종 서비스 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몇몇 MMORPG에서는 아예 성을 자신의 클랜 or 길드 or 기타 등등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공성전 시스템을 집어넣었다.

현실에선 화약병기가 보편화되면서 성의 개념이 몰락하기 시작했는데, 화약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마법이 판치는 판타지물에서는 여전히 성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화약무기의 발전에 맞춰 생각해보자면 총기와 같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위력도 적당한 마법이 등장하는 경우 갑옷이 먼저 쇠퇴할 것이고,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마법이 널리 퍼진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철근 콘크리트가 있기는 어려우므로 고정식 방어 시설은 대충 포기하고 1차 세계대전의 야전에서처럼 참호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으로는 판타지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에 따른 사회 변화를 그다지 진지하게 구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구태여 이유를 생각하자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 야만 종족들이 여전히 냉병기를 고수하고 있어서 성의 방어력은 이전 시대로 충분한 반면 그들의 병력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일단 고정적 방어 시설은 필요하다.
  • 공격 마법의 화력이 강력한 만큼 방어 마법으로 성의 방어력도 증진시켰다.
이러한 경우 각종 대규모 마법진들을 성에 설치해서 결계를 만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판타지에서 마법사들은 자기들이 미리 준비해둔 공간에서 상당히 강력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국가 단위로 발전하여 성의 모습을 띠는 경우도 있다.
  • 마법을 아무나 쓸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성벽을 파괴할 수 있는 마법사 자체가 드물다는 설정을 넣을 수 있다. 여기에 주인공 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나오면 훌륭한 먼치킨 메리 수.
  • 국제적 합의
오늘날 지뢰집속탄, 핵무기가 금지된 것과 비슷하게 인도적 이유 등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설정. 히어로메이커에서는 "마법만 있으면 성은 쉽게 함락할 수 있다"라는 설정이지만 대량학살의 위험으로 전쟁에서 마법을 쓰는 것을 금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9.2. 게임

도미네이션즈에서 부대를 지위할 강력한 영웅을 소환하는 군사 건물로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류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등장한다. 단일 건물로 구현하기 위해 대개 성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매우 튼튼한 방어시설로 대개 후반부에 등장한다. 상성이 뚜렷한 게임이라 공성 무기 없이 부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는 암흑시대 - 봉건시대에 이어 성주시대(castle age)로서 '성'이 시대 이름으로도 쓰인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는 'fortress'(그리스), 'migdol stronghold'(이집트), 'hill Fort'(노르웨이), 'palace'(아틀란티스)[36]로 각각 이름이 다르다. 마을 회관(town center)은 성채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주민을 넣어 성처럼 쓸 수 있게 되어있고 매우 튼튼하다.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는 같은 건물이 시대에 따라서 '진지(fort) - 성(castle) - 요새(fortress) - 보루(redoubt)'로 이름이 바뀐다. 비슷한 역할의 망루 쪽 건물이 '탑(tower) - 성채(keep) - 방책(stockade) - 벙커(bunker)'. '성채'와 '벙커'는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방어 시설에도 쓰는 말이어서 다소 혼란이 있다.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는 불가사의 역시 실재하는 건물로 등장하는데, 붉은 요새와 같은 것은 좀 더 강력한 성으로 기능한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워크래프트 3 인간 얼라이언스의 메인 기지 타운 홀(town hall, 마을 회관)은 킵(keep, 성채)-캐슬(castle, 성) 식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오크 호드의 그레이트 홀(great hall, 대전당) 역시 스트롱홀드(stronghold, 보루)-포트리스(fortress, 요새)[37]와 같은 방어 시설의 명칭을 가진 건물로 업그레이드 된다. 이는 워크래프트 2에서부터 내려져온 것이다. 휴먼은 석공술 업그레이드를 통해 건물을 강화시킬 수 있어서 해당 업그레이드가 끝난 캐슬은 게임 내에서 거의 가장 튼튼한 건물이 된다. 다만 공격 기능은 없기 때문에 우주방어로 대표되는 인간의 축성술(?)은 가드 타워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언데드 스컬지는 네크로폴리스(죽음의 요새)-홀 오브 더 데드(망자의 전당)-블랙 시타델(검은 성채)이며 2티어 부터 공격 기능도 갖추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도시 달라란에는 'violet hold'와 'violet citadel'이 모두 존재하여 번역어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관례대로 'violet hold' 쪽이 '보랏빛 요새'가 되고, 'violet citadel'은 '보랏빛 성채'가 됐다. 보랏빛 성채는 그냥 NPC가 있는 동네고, 보랏빛 요새는 감옥으로서 던전으로 기능하고 있다. 'citadel'에 주요 NPC들이 거주하고 'hold'는 완전히 군사 시설인 것이 위의 정의에서의 구별과 잘 맞는 듯하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은 국산 RTS 킹덤 언더 파이어에서 인간 연합은 '킵-캐슬-로드스 캐슬(lord's castle)'로 비슷하게 업그레이드되지만 암흑 동맹은 '포트리스(fortress)'로 그대로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아둔의 성채(citadel of Adun)라는 건물이 있지만 군사적 기능은 없고 업그레이드/테크용 건물이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테란 커맨드 센터행성 요새(planetary fortress)로 전환할 수 있다.

문명 5에서는 노동자를 이용해서 5턴(빠름 기준)을 소모해 요새(fort)를 지을 수 있고, 장군을 소모시켜 성채(citadel)를 지을 수 있다. 요새는 50%, 성채는 100% 방어 보너스를 주며 성채는 턴이 끝날 때 인근 유닛에게 30씩 대미지를 준다. 성채는 전형적으로 성형 요새처럼 생겼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들은 불가사의로 구현되어 이것저것 군사적 효과를 준다. 시나리오 중 하나인 1066년: 바이킹의 운명이 걸린 해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모트 앤 베일리를 지을 수 있는데 장군을 소모한 성채와 같은 기능이라 상당히 사기 시설이다.

문명 6에서는 요새 건설 기능이 공병에게로 넘어갔으며 위인 소모 시설은 사라졌다. 대신 특수지구 중 하나인 주둔지(Encampment)가 도시처럼 고유 체력을 가진 방어 시설로 추가됐다.

토탈 워 시리즈에서도 거점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미디블2의 경우는 중세 성채 테크트리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테크트리는 위의 중세 초기의 성채로 소개된 모트 앤드 베일리로 시작하며, 여기서 목성(Wooden Castle)-성(Castle)-요새(Fortress)-성채(Citadel)로 이어지게 된다. 도시의 경우도 울타리 수준에서 목조 성벽을 거쳐 석벽까지 이어지는 방어시설을 갖출 수 있다. 도시 테크트리나 성채 테크트리의 성(Castle)까지는 성문을 한 번만 통과하면 점령 가능한 거점이 나오지만, 요새부터는 내성을 한 번 더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에 시간제한을 걸어둔 경우에는 공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중세의 전쟁은 보급이나 기사들의 계약상 복무기간 제한 등을 이유로 전투가 가능한 기간이 짧았으므로 어찌 보면 충실한 현실 고증.

10. 관련 문서

11. 나무위키에 등재된 성 목록

11.1. 아시아

11.1.1. 대한민국

11.1.2. 시리아

11.1.3. 일본

11.1.4. 중국

11.1.5. 인도

11.1.6. 스리랑카

11.1.7. 터키

11.2. 유럽

11.2.1. 독일

11.2.2. 러시아

11.2.3. 네덜란드

11.2.4. 영국

11.2.5. 폴란드

11.2.6. 프랑스

11.3. 아메리카

11.3.1. 캐나다

11.3.2. 미국

12. 가상의 성·요새

가상세계에서는 위에 언급한 현실의 요새인 고정식 요새와 함께, 미칠듯한 기술과 자금을 들여서 요새를 이동가능하게 만든 이동요새와, 이동요새를 공중비행이 가능하게 만들고, 도시의 성격을 강화해서 만든 공중도시가 있다. 일단 거함거포주의의 최종테크중 하나로 남자의 로망에 속하는 물건이다.

고정식 요새라도 지표면에 자리잡은 요새 뿐 아니라 우주공간에 인공구조물을 건축한 우주요새가 있다. 우주요새의 경우에는 일단 항성이나 행성 주변을 공전하기 때문에 항상 이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위치가 고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공전궤도를 벗어난 이동이 불가능하면 고정식 요새로 잡는다.

12.1. 이동요새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에서.


  1. [1] 15세기 초반 그룬발트 전투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어도 군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어쨌든 기사단국의 정치적 독립을 족히 100년은 가까이 더 연장시켜준 중세 축성 기술의 정점이라 할만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2. [2] 다만 오늘 남아있는 성벽 대부분은 명나라 때 재건된 것
  3. [3] 일본에 촌주(村主, 勝 ; 스구리)라고 하는 카바네가 있다. 주로 한국계 씨족에게 내려졌고 족장을 의미하는 한국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촌(村 ; 스키)+ 주(主 ; 니리무) 혹은 족류(足流 ; 소쿠로)와 연관짓기도 한다.
  4. [4] 산은 무레로 훈독되지만 대산성(帶山城 ; 시토로모로노사시)처럼 모로로 훈독되기도 한다. 용비어천가에서도 산을 모로로 쓴 경우가 보인다.
  5. [5] 이형으로 조부리(助富利)가있다.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知干 ; 우루소호리치칸) 석우로의 지위는 서불감(舒弗邯)이었으므로 소부리라 적은듯 하다.
  6. [6] 그외에도 배벌(背伐) 비지(費智) 발귀(発鬼) 불지귀(弗知鬼)이라고도 한다.
  7. [7] 기부리(己富利) 스가발 -> 스가올 -> 시골, 가옳 -> 고을, 셔블->셔욿->서울.
  8. [8] 예를 들면 "성벽(wall)이 함락되어 성채(citadell)로 퇴각했다가 전황이 더 악화되어 성채마저 버리고 아성(keep)으로 들어갔다"라는 문장을 "성벽이 함락되어 성채로 퇴각했다가 전황이 더 악화되자 다른 성채로 다시 퇴각했다"라고 오역하는 식.
  9. [9] 노래의 경우 운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단어를 고른 경우가 좀 있는 편이라 고려가 필요하다.
  10. [10] 스타크래프트의 '시타델 오브 아둔'을 '아둔의 성채'라고 하는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11. [11] 지소형이 비슷한 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cerebrum - cerebellum(소뇌)이 있다.
  12. [12] 둘 다 어원은 라틴어로 같으나 'alcazar'는 아랍어 'al-qasr'를 거쳐서 들어왔기에 아랍어 정관사 'al-'이 붙었다.
  13. [13] 'listen', 'fasten', 'apostle' 등. #
  14. [14] 그런 식으로 's'가 묵음이 되는 경우에만 쓰는 diacritic으로 circumflex(◌̂)가 있을 정도. forest - forêt, apostle - apôtre 등.
  15. [15]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표트르 대제가 일부러 독일식으로 작명한 것으로, 1차 대전 이후에는 러시아식으로 '페트로그라드'라고 하기도 하였다.
  16. [16] 뜻이 상당히 멀어졌지만 영어 'slot'(슬롯)과 동원어이다.
  17. [17] 아랍어 '카스바'(kasbah)에서 온 말이다. 카스바는 문명 5 모로코의 특수 시설로 구현되기도 했다.
  18. [18] 삼국지 시리즈에서 나오는 벽돌 성벽은 고증오류이다.
  19. [19] 현대로 치면 철근 콘크리트 공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압축강도가 강한 콘크리트/흙과 인장강도가 강한 철근/건초를 섞어 구조물의 강도를 높이는 것. 물론 철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초의 소재적 특성상 구조물 자체의 강도를 비약적으로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흙반죽이 자기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정도로 효과가 한정되기는 하지만.
  20. [20] 이런 기술은 피라미드 건설에도 응용되기도 했다.
  21. [21] 군주제 국가라면 군주, 공화국이면 집정관같은 국가원수
  22. [22] 사실 대포 때문에 함락된 게 아니라 오스만 군이 대포와 무관하게 성문 하나를 여는데 성공해서 함락된 거였다.
  23. [23] 보어 전쟁 당시 보어계 공화국들이나 영국 당국이나 '이건 백인들 사이의 전쟁이다'란 암묵적인 공통된 이해 관계 아래 양쪽 모두 흑인 다수 현지인들을 대규모로 동원하는건 지극히 꺼렸는데 이런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흑인 노동력을 대거 이용했다는거 자체가 상당히 의미 있는 대목이다.
  24. [24]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에게 모랄빵을 안겨준 부분이 이것이다. 이미 오랜 옛날부터 고도의 행정 체계가 확고히 자리잡은 조선에서는 이 때문에 의병이라 하여, 민간인들이 성 안으로 도망쳐서 무기를 들고 농성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이런 류의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본군에게 극도의 멘붕을 선사하기 일쑤였다. 일본은 권력자들끼리만의 싸움이 대부분이라 웬만하면 백성들에게까지 전쟁의 화마가 미치는 일은 잘 없어서, 유력자가 사는 곳에만 성곽을 둘려쳐서 보호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영주가 어지간히도 성군이거나, 특정 종교의 지도자인 등으로 민심을 얻고 있던 경우가 아니면, 백성들까지 함께 농성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욱이 이런 관계로, 조선에서는 물자를 약탈할 만한 민가는 죄다 성 안에 있으니, 성 자체를 함락시키지 않는 이상, 보급로가 끊기는 비상 상황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도 덤이다. 이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패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25. [25] 이 중 전자는 15세기 말엽 이후로 성형 요새로 발전하게 된다.
  26. [26] 제러미 아이언스는 성 유지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 돈이 필요해 시나리오를 깐깐하게 안 보고 블록버스터형 액션영화에 참여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27. [27] 런던 탑이라든지, 도버 성이라든지, 웨일스에 에드워드 1세가 지은 일련의 성들같은 경우.
  28. [28] 물론 방어측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방어측 입장에서 특히 고난인건 식량 + 식수 조달 문제였는데, 아무리 많은 자원을 쟁여놓는다고 해도 일단 공성전이 시작되거든 인근 지역 사람들까지 다 성으로 몰리는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해서 식량과 식수를 조달하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식수의 경우 해자 역할을 하는 강 정도가 없는 한, 해자 주변에 있는 건 오염된 물일 가능성이 높아서...이외에도 방어측의 내분(공성전이 장기화되어서 방어측이 버티기 힘들어질 때 나타나는 문제) 첩자 문제, 방어측의 비효율적인 병력 분산 등의 위험이 있었다.
  29. [29] 참고로 손자가 가장 높게 쳤던 게 상대의 계획을 사전에 차단해 아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그다음이 외교전을 통해 상대를 고립시켜 이기는 것, 그다음이 실제 싸우는 것 순.
  30. [30]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가 한때 개신교 전도사로 활동할 적에 벨기에브라반트 주에 있는 지하도시에서 전도를 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다만 이 지하도시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건 아니고, 이 도시 시민들은 광산업으로 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인데, 광부들의 숙소를 마련하는 문제 때문에 일부 농사를 짓는 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구가 석탄이나 을 캐느라고 파냈던 갱도에 집짓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보다 범죄율이 높았던 옛날에는 돈되는 광물을 도둑질하러 오는 강도들때문에 이런 도시를 건설했을 가능성은 있다.
  31. [31] 예를 들면 고구려의 환인의 하고성자토성(추정), 오녀산성, 국내의 국내성환도성, 평양의 평양성대성산성의 구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백제만 보더라도 한성 도읍시절에도 남성과 북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웅진 도읍기는 아에 왕궁이 공산성 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비 도읍기에는 부소산 아래에 왕궁이 있었고 부소산성은 왕성 겸 도피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월성 또한 아에 산성의 범주에 해당한다
  32. [32] 부산의 금정산성과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대표적이다.
  33. [33] 참조자료 : <한국의 성곽>, 손영식 저, 비류성.
  34. [34] 중세 러시아도시국가들이 몽골군의 침략에 탈탈 털린 이유가 이것이다. 당시 도시국가들이 주변에 목책을 쳐서 방어용 시설로 사용했는데, 이를 안 몽골군들이 목책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대응한 것이다. 몽골 제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목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골이 나도록 중국 왕조들이 세운 만리장성같은 성을 공략하다보니, 다들 공성전에 있어서는 도사가 따로 없었다. 이를 모르던 러시아인들이 성벽 건설을 소홀히 하다가 개발린 것이다.
  35. [35] 순수 예술적 목적으로 19세기의 근대기술로 지어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정도를 제외하면 큰 규모의 성은 어디까지나 적 공격에 대한 방어가 목적이기에, 일정 규모 이상의 성들은 상당히 낮고 두꺼우며 투박해지는게 현실이다. 물론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유럽의 성들은 많지만, 판타지 규모의 그것을 찾으려면 막상 존재하지 않는다.
  36. [36] 국내 발매 시 정식 명칭은 '왕궁 요새'이지만, 영문판에서는 'palace'라고만 나온다.
  37. [37] 한국어 명칭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가져왔다. 워크래프트 3는 2019년 리포지드판이 나오기 전까지 유닛, 건물 명칭이 번역되지 않았다.
  38. [38] 별명이 '비행요새(flying fortress)'. 참고로 후속기인 B-29의 별명은 '슈퍼요새(Superfortress)', B-52는 '성층권의 요새(Stratofortress)'다.
  39. [39] 사실 얘들은 독자적인 이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데스 스타는 하이퍼드라이브까지 123개나 때려박아 초공간도약도 가능하다. 즉, 이것들은 요새보다는 함선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
  40. [40] 작중 최강의 요새, 특히 이제르론 회랑의 특수한 요소와 자급자족이 가능한 관계로 힘으로 뺴앗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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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20-04-28 00:3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