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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군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춘생문 사건의 주역들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임최수

±이도철

이재순

이범진

이윤용

이완용

윤웅렬

윤치호

김홍륙

헐버트

다이

베베르

안경수

이진호

-2 ※ --취소선 표시--는 거사 때 [[배신]]한 인물
※  __밑줄 표시__는 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하는 인물
※ ±표시는 거사 실패 후 사형당한 인물

}}}

누동궁의 역대 종주

2대 영평군 이경응

3대 청안군 이재순

4대 풍선군 이한용[1]

}}} ||

1. 개요
2. 초기 생애와 가계
3. 양자 입적 이후
4. 트리비아
5. 매체에서
6. 후손

1. 개요

淸安君 李載純.

생몰 기간: 1851년 10월 24일 ~ 1904년 3월 2일.

조선왕족, 이름은 이재순(李載純). 장조의 서장자 은언군의 양증손자이고 전계대원군의 양손자이며 영평군 이경응양자로, 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양조카이다. 초명은 이순달(李順達). 전계대원군의 종가(宗家)누동궁(樓洞宮)의 2대 봉사손이자 3대 종주이다.[2] 시호는 효정(孝貞). 는 덕일(德一)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 초기 생애와 가계

1851년(철종 2년) 10월 24일, 선조의 9남 경창군의 9대손으로 후일 판서로 추증 된 음직 부사 이휘응(李徽應)의 아들로 태어났다.[3] 조선 왕실과는 200년 ~ 300년 전인 선조의 아들 대에 갈라졌기 때문에 원래는 단순히 왕실의 후손이었을 뿐, 종친은 아니었다. 그러나 1860년대 초에 누동궁 주인인 영평군 이경응이 병이 있어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4] 1864년 9월에 영평군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이름도 이재순으로 고쳤다.[6]

3. 양자 입적 이후

이후 영평군 이경응의 아들 자격으로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68년 왕족에게 실시하는 특별 과거인 종친정시문과(宗親庭試文科) 을과로 급제하여 같은 해 4월 11일 홍문관 부교리[7]를 거쳐 헌납(獻納)을 지내고, 이후 부사과(副司果)[8]와 교리(校理)를 지낸 뒤 종친부정(宗親府正)을 역임했다.

이후에도 상당한 고위직을 많이 맡았는데 우선 집의(執義)를 거쳐 병조참의(兵曹參議), 부호군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9]을 역임했다. 그 외에도 종정경(宗正卿), 이조참판(吏曹參判), 그리고 사헌부 대사헌(大司憲)과 도승지[10], 한성부 판윤[11], 예조[12]와 형조 판서[13]을 맡았다. [14]

1895년 5월부터는 시종원경 겸 시종장(侍從院卿兼侍從長)[15]에 제수되고, 이 해 7월 28일 특파대사(特派大使)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 때 어느 한 역사적 사건과 엮이게 되는데 10월 12일 이범진, 이완용 등과 함께 친일 정권을 타도하고자 고종경복궁 밖으로 옮기려다 실패한 사건, 춘생문 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실패하고 대부분의 가담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태형 100대, 징역 3년의 형을 받았으나 종친이었던 까닭으로 3년의 징역을 면제받고 3년 기한의 향리방축(鄕里放逐)[16]의 벌을 받았다.

해가 바뀌어 아관파천이 일어나 사면되었고, 이후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을 거쳐, 홍문관 시강(弘文館侍講)과 규장각 학사(奎章閣學士)등을 역임했다. 1899년 5월에는 육군 부장(副將)[17]이 되고 표훈원 의정관(兼任表勳院議政官)[18]을 거쳐 군부대신 대리를 맡았으며, 이 해 법적 고조할아버지 사도세자가 장종대왕을 거쳐 장조의황제로 추존되면서 황제의 4대손은 황족으로서의 작호를 받는다는 예법에 따라 청안군(淸安君)에 임명되었다.[19]

1904년 3월 2일 오전 1시에, 오랜 병고 끝에 향년 54세로 별세하였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진관리[20] 산 47-1번지 북한산의 지산 이말산에 처음 안장되었다가 1980년 경에 전계대원군회평군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21]이장되었다.

4. 트리비아

  • 아마 한국인 최초로 영화를 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1899년 미국인 여행가 버턴 홈스가 들여왔다는 것이 정설인데, 이 때 휴대용 촬영기와 영사기를 이용해 찍은 서울의 모습을 제일 처음 보았기 때문. 이 때는 영화를 활동사진으로 불렀는데, 이 새로운 문물에 감탄한 청안군은 황제 고종에게 영화의 존재를 소개했다.
  • 덩치가 커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Fat Prince', 즉, '뚱보 공(公)'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 특이하게도 상당한 중증의 고양이 공포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황제삼촌[22] '뚱보 공'이 을 흘리며 을 헐떡거리며 '이 어린이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일단의 당황한 내시들과 손에 고양이를 품은 아기(영친왕)가 뛰어 들어왔다. 나는, 고양이가 그를 불행하게 만든다며 고양이를 너무도 싫어하는 뚱보 공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 공사관만찬에서도 비록 그가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느끼고 있던 커튼 뒤에 숨어 있는 고양이 때문에 다시 그가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William Franklin Sands, Undiplomatic Memories)
  • || ||
한 때 청안군의 사진흥선대원군의 서장자인 완은군 이재선으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다. 아마 이 당시 외국인들이 청안군의 이름 이재순의 'Sun'과 'Soon'을 혼동해서 표기했고 이 와중에 'Sun이 아닌 '선'으로 잘못 읽어 이런 오해가 빚어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진들을 보면 확실하게 'Soon'으로 표기 되어있다. 그리고 사진 설명문에는 1890년에 촬영했다고 하는데 완은군 이재선은 1881년에 안기영의 난으로 사사(賜死)되었기에 사진을 찍을래야 찍을 수 없다. 그리고 밑에서 1번 째 사진에 해당 인물에 대한 설명이 'Cousin of King' 으로 되어있는데 비록 이복형제라 해도 엄연히 아버지가 같은 형제인데 'Cousin' 으로 쓰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여기서 Cousin은 단순히 4촌이 아니라 다른 방계 혈족의 형제 뻘을 이르는 단어로 쓰인 것이고 족보고종8촌인 청안군 이재순은 이에 해당된다. 그래서 이 사진들 속 사람은 청안군 이재순이 맞다. [23]

5. 매체에서

6. 후손

입양 릴레이

본인도 입양된 처지에 양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찌된 일인지 친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래서 소현세자의 8대손 이재철의 아들 이한용(李漢鎔)[24]을 입양했지만 1890년 16세로 사망, 요절했기에 역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덕흥대원군의 후손인 이해승을 데려다 풍선군의 아들로 입양시켰다.[25] 그래서 영평군 - 청안군 - 풍선군 - 청풍군까지는 전부 입양 관계인 셈.

청풍군 이해승의 자녀들부터는 진짜 친 자식들이다. 슬하에 아들 4명을 두었지만 아들 둘은 해방 전에 자신보다 먼저 죽었고 그 자신도 1950년 6.25 전쟁행방불명되었다. 그의 장손이 바로 그랜드힐튼 서울의 이우영 명예 회장. 즉 청안군의 후손이 현재 그랜드힐튼 서울 오너 일가이다.


  1. [1] 애초에 청안군 이재순의 뒤를 이어 4대 종주가 될 예정이었으나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다. 다만 편의상 4대 종주로 인식한다.
  2. [2] 위 틀에 나와있는 대수(代數)와 차이가 나는데 누동궁의 종주 자체는 전계대원군부터고 전계대원군의 제사를 모시는 봉사손은 영평군 이경응부터다. 그래서 1대 씩 차이가 난다.
  3. [3] 경창군 이주 - 창흥군 이수 - 고평부정 이철(생부는 경창군의 장남 창원군) - 연은군 이부 - 이기빈 - 이경 - 이유일 - 이명초 - 이도극 - 이휘응 - 청안군 이재순.
  4. [4] 부인을 둘을 두었지만 첫 부인은 후손없이 요절. 두 번째 부인도 하나만 두었고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했다.
  5. [5]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종친 항렬자 통일 명령으로 이휘응(李徽應)으로 개명했다.
  6. [6] 관련된 기록인 고종 실록 1권, 고종 1년 9월 21일 기미 3번째 기사를 보면 '1864년 청 동치(同治) 3년 종친부에서 영평군의 뒤를 잇는 사람으로 이순달을 정하였다고 보고하다 : 종친부(宗親府)에서 아뢰기를, "영평군(永平君)의 계후(繼后)에 대한 일로 유지(有旨)를 받들어 여러 파(派)를 상세히 조사한 다음 선조(宣祖)의 아홉째 왕자(王子)인 경창군(慶昌君)의 9대손 이신휘(李愼徽)[5]의 아들인 이순달(李順達)로 돈정(敦定)하였습니다. 예사(禮斜) 등의 절차는 해조(該曹)로 하여금 규례대로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라고 되어있다.
  7. [7] 弘文館副校理, 조선시대 홍문관에 두었던 종5품 관직.
  8. [8] 조선시대 오위(五衛)에 두었던 종6품 서반 무관직.
  9. [9] 지금으로 치면 성균관대학교 총장 급. 단 성균관의 이 당시 위상은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학교 정도였다.
  10. [10]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 급.
  11. [11] 지금의 서울특별시장 급.
  12. [12]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급
  13. [13] 지금의 법무부장관
  14. [14] 왕족이라고 고위직을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원래 들은 오히려 왕족에게 힘을 실어주길 원치 않았다.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청안군 이재순의 경우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왕족이라도 먼 촌수라 큰 위협이 안 될 것 같아 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5. [15] 임금을 호위하는 직책이다. 지금의 대통령 경호실장 급.
  16. [16] 벼슬을 삭탈하고 제 고향으로 내쫓던 형벌. 유배보다는 가볍다.
  17. [17] 정2품 지금의 참모총장 급.
  18. [18] 표훈원은 포장 · 외국훈장의 수령, 패용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19. [19] 군호는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에서 유래했다.
  20. [20] 현재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21. [21] 현재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22. [22] 저 당시는 고종 재위기라 저기서 말하는 황제는 고종인데, 후술하겠지만 고종과 청안군은 족보8촌 형제 관계로, 삼촌이라 쓴 것은 오류이다.
  23. [23] 단, 오른쪽 사진 설명을 보면 이재순이 손자들과 찍은 사진이라고 되어있다. 이재순은 친손자가 없는데 어떻게 '손자들'과 찍었을까? 여기에 나오는 손자들은 양손자인 청풍군 이해승과 그의 친생가 형제다.
  24. [24] 1907년 풍선군(豊善君)으로 추증. 청안군과 실제 혈통 상으로는 23촌이다.
  25. [25] 1908년 청풍군(淸豊君)으로 책봉. 근데 눈여겨 볼 건 이미 이 전에 이해승의 직계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입양이 되었단 점이다. 실제 혈통 상으로는 무려 월산대군의 후손. 그래서 청안군과는 실제 혈통 상으로 32촌, 풍선군과는 33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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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20-01-06 04:5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