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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泉八雲

1850년 6월 27일 ~ 1904년 9월 26일

1. 개요
2. 생애
3. 주요 작품 및 특징
4. 그 외
5. 대중매체

1. 개요

라프카디오 헌은 일본인의 마음을 가장 잘 웅변하고 가장 충실하게 대변했다.

- 니토베 이나조[1]

아일랜드영국 출신으로 일본귀화소설가. 귀화하기 전의 이름은 패트릭 라프카디오 헌(Patrick Lafcadio Hearn).

2. 생애

그리스의 레프카다(Lefkada) 섬에서 태어나 6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태어난 아일랜드로 이주해 이모할머니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언어, 종교적 문제로[2] 외롭고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16살에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하였다.[3] 19세 때 미국 신시내티로 건너갔지만 극빈자 생활을 면치 못해 평생 망상증과 인간 불신을 가지게 된다.

다행히 친구인 헨리 왓킨의 도움으로 급사로 일하다가 1872년부터 기자활동을 하였으며, 뉴올리언스와 서인도제도를 전전하며 글을 쓰다가 1890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가게 되면서 일본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일본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헨리 왓킨에게 "나는 지금 꿈의 나라에 와있네."라고 평할 정도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시마네 현의 이즈모(出雲)에서 공립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게 되고, 사무라이의 딸 마쓰에 세츠와 재혼한 후 1895년 일본에 귀화하여 슬하에 4명의 자녀(3남 1녀로 차남 이와오는 이나가키 가의 양자가 된다.)를 두게 된다. 그는 1874-1875년 경에 한 번 결혼했었는데 상대는 당시 20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매티(또다른 이름은 알레테아) 폴리였다. 이후 1877년에 이혼했으며 매티도 재혼.

이후 1896년 도쿄제국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당시 도쿄제국대학 교수로서의 그의 위상은 학생들과 사상계에서는 확고했으나, 임금을 갑작스럽게 절반으로 삭감[4]한 학교와 충돌해 1903년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5]

이후 1904년에 와세다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와세다의 분위기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으나 임용된 지 반 년 만에 심장병으로 일본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장례식이 치루어지는 날 와세다 대학 문학부는 휴강을 하여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다.

사후 마츠에에 있는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그 옆에는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3. 주요 작품 및 특징

주요 작품으로는 《괴담》 외에 《치타 Chita》(1889), 《동쪽 나라에서 Out of the East》(1895), 《마음 Kokoro》(1896), 《부처의 나라의 낙수 Gleanings in Buddha-Fields》(1897) 등 여러 권이 있다. 작품의 특징은, 그가 원래 서양인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본풍 정서가 진하게 녹아 있다. 특히 《괴담》을 쓸 때에는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정서를 살려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 자체에 저자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 있다.[6]

그가 이렇게 일본의 괴담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영국과 미국에서 살아 오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왔고, 이로 인해 과학적인 것보단 영적이나 자연적인 것들에 더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1893년에 자신의 친구이자 일본학자인 바질 폰 체임벌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이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인생에 살아갈 목적을 부여해준 것은 영적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신, 악령, 수호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인류를 위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목적을 부여했고 자연을 경외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중략) 유령도 수호신이나 악령, 신도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은 전기와 증기, 그리고 숫자의 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정말 허무한 일입니다.

4. 그 외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풍기는 일본 특유의 정서 때문에 박경리가 싫어하던 작가이기도 했다.

국내에 번역된 이 작가의 책을 찾고 싶다면, '코이즈미 야쿠모' 라는 이름보다 귀화 전의 이름인 '라프카디오 헌' 으로 된 책이 많으므로, 이 이름으로 찾아 볼 것.

평상시의 인품은 어질고 상냥했지만 제대로 화가 나면 상당히 무서워졌다고 한다. 이에 관련된 일화로, 불한당들에게 심하게 놀림을 당하던 끝에 결국 폭발해서 한 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히고 나머지 일당들을 위협하자 그들이 겁을 먹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들이 후에 술회하기를, "아버지가 그 정도로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여파로 같은 해 7월 허클베리북스에서 나온 고이즈미 야쿠모의 '골동기담집'은 당초 책의 띠지에 선전문구로 "일본 환상 문학의 전설적 명저"라고 소개했던 것을 최근 새로 만든 띠지에 "사실은 영국 작가 책입니다"라고 바꾸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결과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 대해서도 파장이 끼칠 것을 우려해서 이같은 처방을 내린 것이라고.## 다만 고이즈미 야쿠모가 그냥 영국인도 아니고 아일랜드계 영국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2019년 8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일본을 사랑했으나 일본인이 아니라고 차별당한 백인이라며 간략하게 소개했다. 실제로 도쿄제국대학나쓰메 소세키를 후임으로 내정하기 위해 무리한 재계약 조건을 내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일본에서 내쳐졌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는 죽을 때까지 일본에 살았었으니 해당 앵커브리핑에서 '일본에서 내쳐졌다'는 말을 문면 그대로 일본에서 출국되었다(국외추방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라프카디오 헌 자신이 사랑했고 귀화까지 했음에도 직장으로 삼았던 도쿄제국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그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가 언급되었다는 점에서[7][8] 그가 느꼈을 충격이 일본에서 실제로 국외추방당한 것 이상으로 컸으리라는 의미로써 손석희가 '내쳐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9]

5. 대중매체

문호와 알케미스트등장한다.

동방 프로젝트의 제작자 ZUN의 발언에 따르면 오리지널 앨범에 등장하는 캐릭터 비봉클럽의 멤버 중 마에리베리 한야쿠모 유카리가 그의 이름과 연관이 있는 캐릭터로 보이며, 더 나아가 메리 = 유카리 설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세한 내용은 마에리베리 한 항목 참조.

유희왕 ZEXAL/코믹스의 등장인물 야구모 쿄지의 이름 또한 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1. [1] 일본의 학자이자 사상가. 일본의 무사도를 서구에 알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철저한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구 5천엔권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2. [2] 라프카디오 헌은 그리스 정교회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후 그가 이주한 아일랜드는 가톨릭 주류 국가다.
  3. [3] 이로 인해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커져 외모가 흉해졌으며,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은 대부분 왼쪽 눈을 가리거나 오른쪽 얼굴만 찍힌 상태다.
  4. [4] 라프카디오 헌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이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당시 일본 정부와 맞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5. [5] 그의 후임으로 부임한 교수가 바로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쓰메 소세키로, 나쓰메 소세키는 '그' 라프카디오 헌의 후임이 되었다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6. [6] 이에 영향을 받은 ZUN이 동방프로젝트의 스토리를 이런 스타일로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7. [7] 앵커브리핑에서는 이 부분에서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소설가인 세키가와 나쓰오가 스토리를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맡은 만화 <도련님의 시대>(한국에는 세미콜론에서 5권까지 정발)에서 도쿄대학 문과대 학장 이노우에 데쓰지로가 고이즈미 야쿠모에게 "옛 일본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개인의 취미라면 상관없지만 저희 일본인들은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옛 껍질을 벗어버리고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포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동포에게서 배워 한시라도 빨리 외국인 교사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은 것이 저희의 꾸밈없는 속내입니다."라고 한 대사가 인용되어 있다.
  8. [8] 여담으로 세키가와 나쓰오의 다른 저서 가운데 한국에 정발된 책은 《마지막 신의 나라 북조선》(1993)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당시 문익환 목사를 따라 방북을 결정한 황석영이 쓴 북한 기행문 《사람이 살고 있었네》을 두고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에게 환대받고 묘향산의 주석 별장을 집필실로 제공받은 것이 그리도 자랑이냐. 그러고도 스스로를 ‘작가’로 자부하다니 역겹다"고 굉장히 깐다(...).
  9. [9] 아무래도 한국의 경우에 빗대자면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 교수가 외국어 학과의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아무렴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 동포에게 교육을 받아야지"라는 소리를 들은 것과 같으니까. 일본이 좋아서 귀화까지 한 사람이 일본 현지인으로부터 듣기에 결코 좋은 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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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9-12-19 23:4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