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슈인

学校法人学習院
학교법인 가쿠슈인
Gakushūin

국가

일본

창립

1847년(고카 4년)

법인 설립

1947년(쇼와 22년)

이사장

나이토 마사타케(内藤政武)

부속학교

가쿠슈인대학
가쿠슈인여자대학
가쿠슈인고등과/여자고등과
가쿠슈인중등과/여자중등과
가쿠슈인초등과
가쿠슈인유치원

1. 개요
2. 역사
3. 구성
3.1. 가쿠슈인대학
3.1.1. 학부
3.1.2. 대학원
3.2. 가쿠슈인여자대학
3.2.1. 학부
3.2.2. 대학원(남녀공학)
4. 여담 및 특징
4.1. 하락
5. 탈(脫) 가쿠슈인 경향
6. 가쿠슈인 측의 대책
6.1. 진실은?
6.2. 앞으로의 일본 황족 진학 문제
7.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와의 갈등
8. 가쿠슈인 출신 인물

1. 개요

일본의 종합교육기관으로 고등교육기관 2개, 중등교육기관 4개, 유초등교육기관 2개를 설치경영하는 대형 학교법인이다. 국내서는 학습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학습원(学習院)의 독음 '가쿠슈인' 으로 지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패전 이전 관립학교이던 구 가쿠슈인과 이후 사립학교화 된 현 가쿠슈인을 역사는 이어지는 별개의 학교로 보지만 여기서는 하나의 문서로 서술하고 있다.

2. 역사

전신은 1842년 닌코 덴노의 어명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허가를 받아 교토고쇼에 설립된 학습소(学習所)를 기원으로 본다. 첫 강의는 1847년이였기에 설립은 이해를 기준으로 보는데 귀족(황족화족)자녀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없었기에 이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 막부 말기의 정치적 혼란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가 메이지 유신으로 집권한 신정부는 대학기숙사(大学寮代)로 개칭했다.

1877년, 화족학교학칙이 제정되어 사립으로서의 화족학교가 설립되었고 1884년, 가쿠슈인은 궁내성에 소속된 관립학교로 바뀌게 되었다. 1906년 화족학교가 가쿠슈인에 병합되었으며, 화족여학교는 가쿠슈인 여자부(후에 여자가쿠슈인)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일본의 패전이전까지는 철저하게 황족과 화족에게만 문호가 개방된 귀족학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 이후 1947년 학습원학칙, 여자학습원학칙이 폐지되었고 이들 학교도 법적으로 폐지가 되었다. 이후, 가쿠슈인과 여자가쿠슈인은 재단법인[1] 가쿠슈인으로 바뀌게 되었고 성격도 사립학교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일반인에게도 입학이 개방되었고, 황족이 일반인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2]

현재 가쿠슈인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과정이 완비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가쿠슈인이라고 하면 가쿠슈인 대학을 말한다.

중·고등학교 과정은 남중/남고여중/여고로 분리. 대학은 가쿠슈인 대학(남녀공학)과 가쿠슈인 여자대학이 있는데, 가쿠슈인 여대는 가쿠슈인 대학보다 규모가 작다.[3] 대표적인 중고일관교이며, 많은 일본의 사립학교처럼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을 한다. 한 번 입학하면, 별도의 수험 없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의 교복. 초등과는 빨간색, 여자 중등과는 파란색 스카프를 맨다. 남학생 교복은 검은색 가쿠란.

가쿠슈인 초등과 교복을 입은 마코 공주카코 공주.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 어머니 키코 비와 함께.

가쿠슈인 유치원복. 사진은 2006년 4월 유치원에 입학한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와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여자 고등과, 여자대학의 교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철제 문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877년에 만들어진 문이니 무려 143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3. 구성

3.1. 가쿠슈인대학

3.1.1. 학부

3.1.2. 대학원

  • 인문과학연구과
  • 법학연구과
  • 정치학연구과
  • 경제학연구과
  • 경영학연구과
  • 자연과학연구과
  • 법무연구과

3.2. 가쿠슈인여자대학

3.2.1. 학부

  • 국제문화교류학부
    • 일본문화학과
    • 국제커뮤니케이션학과
    • 영어커뮤니케이션학과

3.2.2. 대학원(남녀공학)

  • 국제문화교류연구과

4. 여담 및 특징

1847년 고메이 덴노교토고쇼에 마련한 황족&귀족을 위한 교육기관인 학습소(學習所)를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로 옮겨졌다. 메이지 덴노쇼켄 황후 부부도 개교식에 참석하고 학교를 방문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전과 달리 여성교육의 필요성도 서서히 느껴 여학교들도 설립되기 시작하던 시대여서, 학습소에도 여자부가 생겼다. 가쿠슈인이 도쿄로 옮겨진 후 학습소 여자부는 화족 여학교 → 가쿠슈인 여학부 → 여자 가쿠슈인 체제를 거쳐 오늘날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ㆍ여자 고등과ㆍ여자대학[5]이 되었다.

본래 황족화족 전용의 관립학교였다.[6] 영친왕의 아내 이방자 비가 1984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에 의하면, 가쿠슈인 학생들은 등·하교 때마다 시종들을 거느리고 다녔고, 학교에는 이러한 시종들을 위한 대기실까지 있었다고 한다. 황족 시종 대기실과 화족 시종 대기실이 따로 있었으며, 시종들은 쉬는 시간마다 모시고 다니는 도련님/아가씨의 머리를 새로 빗겨주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는 등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패전 이후로는 사립학교로 전환되었으며,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금수저들이 많이 다닌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 특성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때까지 그대로 남았고, 지금도 황족 대다수가 가쿠슈인에서 풀코스를 밟고 있기 때문에, 가쿠슈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황족과 부잣집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한다. 지금도 (특히 초등과~고등과의 같은 반에서) 황족과 같이 공부하는 일반인은 고가쿠유(ご學友)라고 불린다.[7]

꼭 가쿠슈인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귀족(華族:화족)은 제국대학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입학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에, 가쿠슈인을 중퇴하고 제국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다.

출생년도를 황족에 맞춰 황족을 친구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 일본인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황족과 일반인이 섞여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도 있다.

대학 시절, 대학 교류 세미나로 알게 된 여자 선배가 있었다.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ㆍ여자 고등과ㆍ대학을 졸업한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시절, 같은 반이었던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에게 전화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황궁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직통으로 연결될 리가 없었고, 몇 번이나 수행원들에게 전화가 돌아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해 가면서 수화기에 대고 사정을 설명해야 했던 선배는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아, 정말 한참 전부터 쭉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좀 적당히 하세요!!!!!!"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그 사람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고, 그제서야 겨우 사야코 공주가 받았다. 거기서 조금 주눅이 든 선배는 "저기, 미안한데… 방금 전에 전화받은 사람, 어떤 분?" 하고 사야코 공주에게 물었다.

사야코 공주 가라사대 "아버지."

그 후, 그 선배에게는 '황태자에게 고함친 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8]

(출처: 리라하우스 별관)

이 이야기의 원전(?)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우국의 라스푸틴의 모델이기도 한 스즈키 무네오 의원이 국제교류기금에 전화해 도지삽니다 진상질을 했을 때 상대가 묵묵히 듣고 있다 사과했는데, 그 사람이 아키히토 천황의 사촌동생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이었다는 버전도 있다. 이 일화는 사실인 듯. 노리히토 항목 참조.

과거에 대한제국에도 수학원(修學院)이라는 비슷한 목적의 학교가 개교된 적이 있었고,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대한제국 황족들 중 일부가 가쿠슈인에 다닌 적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친왕 이은[9]덕혜옹주, 이건, 이우. 원래 일본 황족 출신이었던 이방자 여사도 가쿠슈인 출신.

캠퍼스가 상당히 거대한 편인데, 도쿄 도내에서 메지로 캠퍼스보다 거대한 곳은 도쿄대학 정도. 도쿄에 위치한 대학 중 학내에 승마장이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한다.

메지로 캠퍼스에서 남쪽으로 1 km 떨어진 곳에 가쿠슈인 여자대학이, 남동쪽으로 1 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와세다대 와세다 캠퍼스가 있다. 동쪽으로 1 km 떨어진 곳에 국립 오차노미즈여대, 3 km 떨어진 곳에 도쿄대, 북쪽으로 1 km 떨어진 곳에 릿쿄대 이케부쿠로 캠퍼스가 있다.

위치는 JR그룹 야마노테선 메지로역 바로 앞. 말 그대로 역 건물 출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학교가 있다.

여담으로 여자부가 독립한 가쿠슈인 여대의 경우, 학교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을 제지당한다. 여자도 그런데 남자면 얄짤 없다. 인풋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보다 아래이지만, 이미지는 상당히 격이 높다. 옆에 있는 와세다대 남학생들이 언제나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다.

4.1. 하락

21세기 들어서는 어쩐지 일본 내부에서도 선호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재학생들의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너무 우월감에만 젖어 나태해진 탓에 교육 수준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횡행하는 중. 편차치는 MARCH급이다. 그래서 GMARCH라고도 불리나 독특한 입학기준으로 인해 편차치를 기준으로 한 대학순위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쿠슈인 대학 입학시험은 0점에서 시작하여 문제를 맞춘 만큼 점수를 더하지 않고 100점에서 시작하여 틀린 만큼 점수를 빼는 식이기 때문에 묘하게 까다롭다고 한다. 그게 그거 아닌가 싶다

교수들이 도쿄대학 출신으로 가득해서 토다이(東大, 도쿄대의 약칭)의 식민지라 불리기도 한다.

유래가 유래인만큼 일본에서 우익 성향을 나타내는 대학 중 1, 2위를 다툴 정도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명문 사립대학 취급을 받고 있으나, 국제적인 평가로는 QS 세계대학순위, Times Higher Education (THE) 세계대학순위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마코 공주결혼 소동 탓에, 아이코 공주의 대학 진학을 두고 '아이코 공주의 우수한 성적[10]에 비해 격이 떨어지긴 하지만, 황실 여성을 아내로 받아들일 자격이 없는 어중이떠중이는 들어올 수 없는 가쿠슈인 대학에 아이코 공주를 진학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정도니 가쿠슈인 대학 학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그냥 '부자들 다니는 학교'라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곳으로 전락했다.[11]

5. 탈(脫) 가쿠슈인 경향

본래 일본 황족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가쿠슈인에서 공부하는 것이 관례였다. 패전 이전에는 '황족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고 법으로 정해놓았다. 패전 후에 이 법은 없어졌으나, 여전히 황족들은 관례대로 가쿠슈인에 다니는 것이 암묵의 룰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면서,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대학교를 선택하는 황족들이 눈에 띄고 있다. 2008년 9월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황족들의 탈(脫) 가쿠슈인 사례가 줄을 이었다.

5.1.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동생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3녀 중 장녀. 가쿠슈인 여대를 중퇴하고 영국 에든버러(Edinburgh)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2002년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자 쓰구코는 유학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 황실궁내청이 밝힌 공식적인 이유는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한 후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생활비가 줄어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쓰구코 공주의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쓰구코 공주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9월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했고, 2013년 3월 졸업했다.

이것이 탈 가쿠슈인의 첫 사례였다.

5.2. 모리야 아야코

노리히토 친왕의 3녀 중 막내. 큰언니 쓰구코 공주와 마찬가지로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대학을 택했다. 2009년 3월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졸업한 후, 4월에 죠사이(城西) 국제대 복지종합학부로 진학했다. 가쿠슈인 대학이나 가쿠슈인 여대에는 복지 관련 학과가 없었기 때문인 듯.

대학 시절에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고 한다. 2013년 3월 대학을 졸업한 후 죠사이 국제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복지 공부를 계속하였다. 2016년 3월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5.3. 아키시노노미야 마코 공주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의 첫째로, 아키히토 덴노의 첫 손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졸업 후 2010년 4월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art-science)에 입학, 2014년 3월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몇 개월 동안 황족으로서의 공무를 하다가, 9월에 영국 렉스터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은 박물관학이라고 한다. 2016년 1월 석사학위와 큐레이터 자격을 취득, 귀국하여 박물관에서 비상근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12]. 2016년 9월에는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5.4. 아키시노노미야 카코 공주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의 둘째. 원래 초등교사를 목표로 2013년 4월 신설학과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입학으나, 이듬해 8월 말 중퇴하고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교육학과 입학 첫해에 826명이 지원하여 49명이 합격했는데, 카코 공주유치원부터 쭉 가쿠슈인을 다녔으므로, 에스컬레이터 식 진학으로 어렵지 않게 입학하였다. 카코 공주의 외가인 가와시마(川嶋) 가문에는 교육자가 많으며, 어머니 키코 비도 교직을 권했다고 한다. 카코 공주 본인도 띠동갑 터울의 남동생 히사히토 친왕을 맡아 돌보는 등,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 지원했다고 한다.

하필 카코 공주가 대학에 입학하는 해에 맞추어 교육학과가 신설된 것에 대해, 언론은 '오래 전부터 만들려고 준비해 오던 학과인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는 가쿠슈인 측 입장을 보도하는 한편 '우연함이 지나치다!\' 하는 세간의 이야기를 함께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한 지 불과 1년 반만에 중퇴,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하여 2달 후 3살 위의 언니 마코 공주가 졸업한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합격, 2015년 4월에 입학했다. 대학을 옮긴 이유에 대해 카코 공주는 '황족이라는 특별 대우가 불편했고, 유치원부터 쭉 가쿠슈인만 다녔기에 새로운 환경에서도 공부해보고 싶었으며, 국제기독교대학의 우수한 영어교육과 폭넓은 교양교육(liberal arts)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 밝혔다.[13]

5.5. 아키시노노미야 히사히토 친왕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의 셋째로, 아키히토 덴노의 유일한 손자이자 일본 황실에 41년만에 태어난 남아. 2010년 4월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에 입학했다.

초급학교부터 가쿠슈인을 외면한 데다, 당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자녀 3명 중 2명이 가쿠슈인을 외면하여 화제가 되었다.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아들이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를 원해서"라고 진학의 이유를 설명했다.

3년 후인 2013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소학교로 진학했다. 가쿠슈인 유치원 외의 다른 유치원을 다닌 황족 자녀들은 몇 있지만[14], 가쿠슈인 초등과가 아닌 다른 소학교에 입학한 것은 히사히토 친왕이 처음이다.

그런데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학교들의 경우, 중학교까지만 남녀공학이고 고등학교는 여고다. 이에 히사히토 친왕이 입시를 치러 타 고등학교로 갈 것인지,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할 것인지, 히사히토 친왕을 위해 오차노미즈 여대에 부속남고를 설립할 것인지, 향후가 주목된다.

다만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여고는 매우 유서 깊은 여학교라,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서는 동창회 등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총장인 무로후시 키미코(室伏きみ子)부터가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학교들을 쭉 거쳐 오차노미즈 여대 이학부를 졸업한 사람이라, 부속여고의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한편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최하위권 성적인 것으로 유명해서, 히사히토의 실력으로는 가쿠슈인 입학이 힘들어서라는 소문도 있다. 히사히토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 키코 비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박사학위[15]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특례를 만들어 히사히토를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유치원에 입학시켰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히사히토/소학교 등을 참조.

6. 가쿠슈인 측의 대책

이렇게 가쿠슈인이 학령기의 황족들로부터 외면당하자, 가쿠슈인도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2013년부터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에는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교육학과가 신설되었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둘째인 카코 공주가 첫해에 입학했다. 카코 공주의 외가인 가와시마 가문은 학자, 의사, 교수 등이 많은 학구적인 집안[16]이며, 어머니 키코 비도 교직을 권했다고 한다. 카코 공주도 12살 아래의 남동생 히사히토 친왕을 도맡아 돌보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에 관심이 많아 가쿠슈인 대학 교육학과에 지원했다고 한다.

일본 언론은 하필 카코 공주가 대학에 입학하는 해에 맞추어 교육학과가 신설된 것에 대하여 '예전부터 개설을 준비해 오고 있던 학과인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는 가쿠슈인 측의 입장과 함께 '우연이라기에는 좀 지나치다.'는 세간의 소문을 함께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코 공주도 2014년 8월 말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를 중퇴하고 언니 마코 공주가 졸업한 국제기독교대학에 지망하여 합격하였다. 이에 가쿠슈인 대학 측은 상당히 난처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6.1. 진실은?

표면적으로는 '가쿠슈인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3남매가 가쿠슈인에 입학하길 원했지만,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다른 학교를 원했다.'는 것이 가쿠슈인의 입장이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실상은, 마코 공주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이나 가쿠슈인 여대에 입학할 성적이 안 되었다는 것. 게다가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 재학 중에 낙제와 결석이 너무 많아서, 가쿠슈인 대학이 카코를 퇴학시키려 했다고 한다. 그 전에 어머니 키코 비가 손을 써서, 가쿠슈인 대학을 자퇴시키고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시켰다는 것. 또한 히사히토 친왕은 가쿠슈인 유치원과 초등과의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수준이라서, 가쿠슈인이 입학을 거부했다고 한다.

공식적이고 표면적인 입장과 달리, 가쿠슈인에서 먼저 아키시노노미야 3남매의 입학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히사히토 친왕이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소학교 4학년이 된 2016년에 '히사히토 친왕이 가쿠슈인의 요청에 따라, 중학교부터는 가쿠슈인 중등과(남중)에 다닐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히사히토의 성적이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세 자녀는 바보 3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성적표가 화려(?)하기로 유명하니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2017년 봄,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은 부속소학교의 학생들에게 국립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 진학에 대한 새로운 입시 유형을 발표했다. 부속소학교 학생 몇 명[17]을 입학시험 없이 서류와 면접 등으로 선발,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진학시킨다는 것이다. 졸업 후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반대로 쓰쿠바대학에서도 부속소학교 학생 몇 명을 선발하여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중학교로 진학시킨다고 한다.

명문학교인 쓰쿠바대학 부속중고등학교에 이리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시킨다는 것을 두고, 일본인들이 보이는 반응은 좋지 않다. 덤으로 이 입시 전형은 히사히토가 입학하는 다음해 중학교 입시까지 적용 후 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언플하던 때처럼 히사히토가 정당하게 중학교 입시를 치를 실력이 되었다면, 굳이 이런 꼼수를 쓸 리가 없다.

그러나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의 장녀이자 히사히토의 큰누나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때문에 이 꼼수는 무산되었다. 결혼 문제는 2019년에 들어서도 해결되지 않았고, 여러가지로 뒷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 판국에 무시험 전형 입학까지 강행한다면 더욱 부정적인 여론이 심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결국 쓰쿠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 진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6.2. 앞으로의 일본 황족 진학 문제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아이코 공주의 경우 소케이조치라 불리는, 일본 3대 사립 중 하나인 조치대학과, 국공립 명문으로 꼽히는 구 관립대학 중 하나인 츠쿠바대학, 히토츠바시대학을 목표로 했으나...

2018년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 탓에 '코무로 케이 같은, 황실 여성을 아내로 받아들일 자격조차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는 들어올 수 없는 가쿠슈인 대학으로 아이코 공주를 진학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고 2019년부터 '덴노의 외동딸'이란 전대미문의 위치 탓에 외부 대학 입학은 힘들 듯...했으나, 2019년 1월 일간지에서 아이코 공주의 성적이 기존 편차치 72에서 도쿄대 입학 안정권에 해당되는 수준으로 올랐다는 보도를 한 후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한풀 꺾인 상태라고 한다.

반면 히사히토는 그 가쿠슈인조차도 못 가는 성적 탓에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 부정입학할 거란 공공연연한 소문이 도는 중이며, 2019년 2월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중학교 진학이 확정된 이후에도 '역시 다른 데도 못 갈 정도로 성적이 끔찍하다.'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레이와 시대가 개막된 2019년 5월이 지나서도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서 애꿎은 히사히토의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중학교 전 학년의 운동회가 취소되는 등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게 되자, 일본 여론은 '황족학교인 가쿠슈인으로 옮기라.'고 하지만, 후미히토와 키코 비는 경호에만 신경쓰겠다고무시발표했다.

한편 아이코 공주는 가쿠슈인 국제사회과학부로 진학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2020년 2월 21일 궁내청의 공식 발표를 통해 아이코 공주는 가쿠슈인대학 일어일본문학과에 진학이 결정되었다.

7.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와의 갈등

2016년 9월 26일부터 약 6주 동안, 당시 가쿠슈인 여중 3학년이던 나루히토 황태자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가 장기 무단결석을 했다. 그러나 가쿠슈인은 황실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므로 가쿠슈인과 황태자 일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었다고 한다. 뒤늦게 아이코 공주의 장기 무단결석의 원인이 위장장애 및 어지럼증이었다고 공개했다. 이 사태는 황태자 일가에 대해서 이상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궁내청이 의도적으로 황태자 일가와 가쿠슈인의 원활한 연결을 방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듯하다.

이러한 갈등 이후에는 별 다른 갈등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키히토의 생전 양위 발표 후 황태자 일가에 대한 궁내청과 주간지의 상상을 초월하던 부조리한 횡포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상황이 좋아졌고 이러한 여파인지 몰라도 아이코 공주의 건강 상태도 호전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현재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2학년인 아이코 공주는 편차치 72 이상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해, 가쿠슈인 대학이나 가쿠슈인 여대 이외의 대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래서 가쿠슈인에서는, 황실의 중요한 인물인 아이코 공주[18]가 타 대학에 진학할까 봐 상당히 우려한다고 한다.

실제로 2019년 1월, 한 일간지 보도에서 아이코 공주가 편차치 80 전후의 성적이라 오래 전부터 소문으로만 떠돌던 도쿄대 지망 및 진학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19]. 만일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 대학이 아니라 도쿄대를 선택한다면, 사실상 가쿠슈인은 원래 목적인 '황족들을 교육하는 학교'라는 명성이 소멸될 위기[20]에 처하기에 어떤 방식이든 노력할 듯하다. 하지만 현 황실 상황상 가쿠슈인 대학에 황족을 보내기가 어렵기에 과연 가쿠슈인의 노력이 성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인 상황[21]이다.

2020년 2월 궁내청 발표를 통해 아이코 공주는 최종적으로 가쿠슈인 대학 진학이 확정되었는 데 이는 히사히토에 대한 테러 미수 사건 등 여러가지 소란에다가 덴노의 외동딸이라는 신분 등을 감안해서 가쿠슈인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8. 가쿠슈인 출신 인물


  1. [1] 우리도 마찬가지만 학교법인이 법적으로 분류되기전에는 재단법인이 소유했다.
  2. [2] 그런데 말이 일반인이지, 그 일반인의 절대다수는 금수저들이다.
  3. [3] 쓰구코 공주의 대학 입학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아, 가쿠슈인 여대보다 가쿠슈인 대학을 더 높게 쳐주는 듯하다.
  4. [4] 2013년 신설된 학과. 갑작스레 개설되어 카코 공주의 입학을 위해 급조한거 아니냐는 의혹이 많았다. 그러나,가쿠슈인의 이런 노력에도 결국 3학기만에 중퇴하고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했다.
  5. [5] 본래 단기대학이었다가 4년제 대학이 되었다.
  6. [6] 평민이라도 부친이 고위 관직에 있거나 할 경우 입학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 정치가로 중의원 다선의원이자 일본 내각총리대신까지 지낸 이누카이 쓰요시는 "내 아들이 평민 학교에 다니면, '이누카이 대의사의 아들'이라며 떠받들려 성격이 나빠질 것이다." 하고 염려하여, 아들 다케루(健)가 겸손함(…)을 배우도록 억지로 가쿠슈인에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다케루는 가쿠슈인의 화족 가문 아들들과 아주 잘 지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친구들과 함께 시라가바파(白燁派)라는 문학사조를 이끌기까지 하였다.
  7. [7]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학우라는 말에 경칭을 붙인 것. 굳이 번역하자면 뜻은 '학우님' 정도?
  8. [8] 사실이라면 아키히토 천황이 황태자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구로다 사야코는 1969년 4월생으로, 1985년 4월에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에 입학, 1988년 3월에 졸업했다. 아키히토는 1989년 1월 8일 부로 천황으로 즉위했다.
  9. [9] 가쿠슈인 중등과를 다니던 중에 군사교육기관인 육군유년학교로 옮겨져 일본육사로 진학, 군인이 되어야 했다.
  10. [10] 도쿄대도 노릴 수 있는 수준.
  11. [11]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수재들과 왕+귀족,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하는 명문 학교로 명성이 높으며 이곳의 졸업자는 따로 '이토니언'(Etonian)으로 불리면서 여러 부문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이튼 칼리지와 비교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12. [12] 황족으로서의 공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근무 시간이 긴 정규 연구원으로는 일하지 못한다고. 고모 구로다 사야코 역시 미혼 시절 비슷한 형태로 일한 바 있다(조류 연구소 비상근 연구원).
  13. [13] 물론 이것은 대외적ㆍ공식적인 입장이고,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소문으로는 학점 미달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카코 공주 항목 등을 참조.
  14. [14] 구로다 사야코,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는 다른 유치원을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했다.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는 가쿠슈인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다른 유치원을 다녔다.
  15. [15] 키코 비의 박사학위 취득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자세한 것은 키코 비/결혼 후 참조.
  16. [16] 카코 공주의 외할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는 가쿠슈인 대학 경제학부 교수였고, 외삼촌 가와시마 슈(川嶋舟)는 수의사이며 도쿄농업대학 강사.
  17. [17] 당연히(?) 히사히토와 친한 친구들 몇 명을 뽑아서 함께 진학시킬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히사히토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18. [18] 고3부터는 천황의 외동딸이 된다.
  19. [19] 아이코 공주는 2020년 2월에 대학 진학 시험을 치른다.
  20. [20] 가쿠슈인을 싫어하는 후미히토가 아들 히사히토를 가쿠슈인을 한 번도 보내지 않았기에, 히사히토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더라도 굳이 가쿠슈인에 보낼 가능성이 낮다.
  21. [21] 현재 미성년자 황족인 아이코 공주히사히토의 대학 진학 문제는 사실상 형제간의 권력 혈투에 의하여 도쿄대 이외의 대학으로 진학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루히토 황태자가 천황에 오르는 순간부터 덴노의 유일한 자녀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황위 계승권이 없는 아이코 공주로서는 도쿄대 진학으로 자신은 여자이지만 황위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확실하게 부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아이코 공주를 막기 위해서, 키코 비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 히사히토를 도쿄대로 보내, 현재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구석으로 몰려서 자칫하면 천황 자리까지로 위험해진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각각 가문과 미래의 황위를 걸고 도쿄대 진학을 경쟁하는 것.
  22. [22] 6.25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고, 이맹희의 고등학교 동기들이 학도병 등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 동기들이 전두환, 노태우라는 게 함정
  23. [23] 이맹희의 동생 중 한 명인 이창희도 가쿠슈인에 입학했었으나, 졸업은 와세다대학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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