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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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마련한 <대한민국 건국강령>

1948년 8월 15일 <大韓民國政府樹立國民祝賀式>(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하식)

1958년 이승만 정부 시절 발행한 "정부수립 10주년 기념우표"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발행한 "정부수립 15주년 기념"스탬프를 찍은 관제엽서

1. 개요
2. 건국절 제정에 대한 찬반 논쟁
3. 건국 시기에 대한 논쟁
3.1. 1919년 건국론
3.1.1. 3월 1일 건국론
3.1.2. 4월 11일 건국론
3.1.2.1. 4월 13일 건국론
3.1.3. 4월 23일 건국론
3.1.4. 9월 11일 건국론
3.2. 1948년 건국론
3.2.1. 7월 17일 건국론
3.2.2. 8월 15일 건국론
3.3. 제3의 의견
3.3.1. 개천절 건국론
3.3.2. 광복 즉 건국론
3.3.3. 건국 미완성론
3.3.4. 절충론
4. 제헌헌법에 따른 해석
5. '광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6. 현 헌법 전문과 그 해석에 대한 이견
7. 이승만 미화 추진 세력의 개입
8. 광복절과 건국절의 실제 충돌 사례
9. '건국기념일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
10. 결론
11. 관련 문서

1. 개요

건국절 논란은 건국절을 만들자는 여러 주장과 이에 따르는 논란들을 말한다.

이 논란은 2006년 이영훈 교수가 동아일보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2007년 9월 한나라당정갑윤 의원이 광복절건국절로 변경하는 국경일 법안을 제출하면서[1] 수면 위로 오르게 되었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를 출범하고 건국 60년 기념식을 거행함에 따라 논란이 증폭되었다.

이에 동년 8월 7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포함한 55개 단체가 헌법재판소에 건국 60년 기념사업에 대한 헌법 소원을, 8월 12일 한국근현대사학회를 비롯 14개 역사 관련 학회가 건국절 제정 반대 성명을, 8월 14일에는 독립유공자유족회 등 80여 개 단체가 건국 60년 기념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등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고, 이에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폐하고 그 자리에 건국절을 신설하는 국경일 관련 법률 수정안을 철회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4년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새로 발의함에 따라 정치권의 논쟁이 재개된다. 이어 2016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 이 '건국 68주년'을 언급하였고, 국정교과서의 도입과 맞물려 이념대립화되었다.

한편 2017년 광복절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규정했으며,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시적으로 일어났다.[2]

2017년 11월에는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100주년 기념사업 예산 배치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건국절을 언급하며 전액 삭감을 주장하였고, 이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기념사업 예산은 12월 예산안 통과 때 기존 50억 원에서 20억 원을 감액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뉴스1

2018년 삼일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뿌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으며 건국 100년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논평을 낸 반면 자유한국당은 1948년 건국을 지우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쿠키뉴스가 조원씨앤아이와 함께 실시하여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2%가 1919년을 건국 기점으로 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이는 지난 2015년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 유사한 수준이다. 노컷뉴스

2. 건국절 제정에 대한 찬반 논쟁

건국절 제정 주장은 주로 한나라당 계열의 정당과 보수 우익 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건국절 제정에 찬성하는 이들은 모든 나라에는 생일이 있는데 대한민국에만 생일이 없다며, 8.15를 건국절로 제정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한편 건국절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은 주로 민주당계 정당진보계 정당, 그리고 역사 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광복절을 폐하고 건국절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끔 하는 것은 해방 공간 3년 간 단독 정부 수립을 옹호하고 여기에 참여한 친일반민족행위자정치깡패들을 건국 공신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으며, 헌법에도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우리 역사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3. 건국 시기에 대한 논쟁

건국절 제정 논란은 이후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언제 건국되었느냐에 대한 논쟁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민주당 계열을 비롯한 진보 계열 인사들은 1919년 건국론을, 자유한국당을 위시로 하는 보수 계열 인사들은 1948년 건국론을 각각 주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3] [4] [5]

3.1. 1919년 건국론

대한민국1919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으로 김구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처음 수립할 때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초대 국회의원들이 48년 첫 헌법에 공식적으로 명시한 사항이다.

3.1.1. 3월 1일 건국론

3월 1일독립선언독립 봉기가 일어난 날이다. 3.1 건국론은 대개 제헌 헌법의 전문 구절에서 기한다.[6]

3월 1일 건국론은 한 나라(또는 민족)의 독립 선언의 상징성과 그 의미에 주목한다. 대개 건국은 실정법이 아닌 자연법, 즉, 선언이나 혁명 봉기 등에 의해 선포되는데, 3월 1일은 대한민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로 이론상으로는 일제에 의해 정부가 소멸했으나 국체 및 정체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국민이 엄연히 존재하여 스스로의 명확한 인식(집단적 동의·Collective Agreement)에 의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는고로 이 시점이 건국 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 주 논리이다.

실제로 미국은 미 연방 정부가 수립된 날이 아닌 미국 독립선언서에 헌법의 아버지(The Founding Fathers)들이 서명한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리고 있으며, 아일랜드필리핀, 베트남,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수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의회나 민중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3월 1일 건국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의 사례를 들어 3.1 독립선언을 민주공화국의 기원으로 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국제적 사례에도 부합한다고 말한다.[7]

아울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3월 1일은 가장 중요한 국경일로 지정돼 있었는데, 1920년 국내에 잠입한 임시정부 소속 요인들이 살포한 전단에 3월 1일이 「건국의 기념일」로 적혀 있었다는 사실은 3월 1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임을 주장하는 사례로 언급된다.[8] 이외에도 1941년 반포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도 3월 1일은 민주공화국 건립의 시원으로 명시되어 있다.[9]

3.1.2. 4월 11일 건국론

4월 11일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한 날이다.

2018년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으로 알려진 4월 13일을 임시정부수립일로 지정하여 기념하였는데, 이는 일제가 만든 「'조선민족운동연감」에 나와 있는 "4월 13일 임정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다"는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임시정부에서는 4월 11일을 「입헌기념일」로 지정하여 이날을 임시정부 성립일로 기념하였다는 사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 학계에서는 이를 수정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10] 그리고 결국 2018년 4월 13일, 정부2019년부터 4월 11일을 수립일로 인정하고 기념일을 수정하기로 했다.

4월 11일 건국론은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주장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과 임시정부 법통을 명시한 현행 헌법 전문에 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당시 지하신문을 통해 그 건립 계획이 이미 알려졌으며, 13도를 대표하는 1000여 명의 간접 선거로 대의사(代議士)를 선출하여 이들이 제정한 임시 헌장을 기반으로 선포되었다. 임시정부는 삼권 분립을 지향하는 민주공화제 정부로, 입법 행위는 물론 일정 한도의 주권 행사와 사법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서 엄연히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4월 11일 건국론자들은 주장한다.[11]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민주공화제 정부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억하자는 것이 주된 이유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로부터 정부 승인을 받았으며[12], 해방 전후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아니 한 것은 강대국의 정치적 셈법에 의한 것으로 이를 근거로 임정의 의의를 폄하하는 것은 전형적인 외세지향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국가의 건립은 구속력 없는 국제법이 아닌 민족의 총의를 바탕으로 한 자주적인 정부 수립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임시정부의 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3]

해당 주장에 대한 논거는 한일합병조약의 무효성과 불법성, 북한 영토에 대한 소유권과 민족사적 정통성의 우위 확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비판 등에 있다.[14] 더불어 임시정부 법통 긍정 평가 항목도 보면 좋다.

3.1.2.1. 4월 13일 건국론

4월 13일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 선포된 날로 추정되어 임시정부수립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9년부터 학계의 의견을 따라 4월 11일로 수정하기로 2018년 4월 13일에 결정되었다.

4월 13일 건국론의 주요 논거는 4월 11일 건국론의 것과 같다.

3.1.3. 4월 23일 건국론

4월 23일서울에서 13도 대표가 회집하여 국민대회를 갖고 임시약법과 행정부 요인, 한성 정부의 조직을 선포한 날이다.

4월 23일 건국론의 근거는 한성 정부의 정통성에 기한다. 1919년 9월 11일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의 한성정부가 통합될 때 한성 정부의 법통을 승계할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실제로 이승만은 1919년 일왕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 건국 통보문」을 작성, 발송하였는데, 이 문서에는 「1919년 4월23일 한국이 완전하게 조직된 자주통치국가(completely organized, self governed State)가 됐음을 당신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15]

3.1.4. 9월 11일 건국론

9월 11일은 대한국민의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성 정부가 하나의 정부 조직으로 통합, 선포된 날이다. 통합에 의의를 두는 측면에서 거론되는 주장이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3.2. 1948년 건국론

1948년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이다.

3.2.1. 7월 17일 건국론

7월 17일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된 날로, 제헌절로 지정되어 있다.

7월 17일 건국론자들의 논거는 헌법이 근대입헌국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기한다. 헌법은 천부인권 등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 체제의 운영 및 조직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으로, 정부 수립을 비롯한 모든 행정, 사법 행위는 헌법을 근거로 일어난다. 그렇기에 헌법의 성립은 곧 국가의 성립이며, 헌법의 제정은 곧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시점이라고 7.17 건국론자들은 주장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헌법의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헌법 제정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2008년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헌법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으며, 헌법 정신을 되살리고 건국의 기념을 올바르게 할 수 있게끔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고 성대히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6] 2017년 재지정 조사에서 78% 이상이 찬성했으며 20~30대에서는 무려 90%가 넘는 찬성률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공휴일 제헌절'로서 부활하는 것이지, 엄밀한 의미의 건국절로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3.2.2. 8월 15일 건국론

8월 15일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현재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8.15 건국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의에 초점을 둔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1948년 5월 10일 전 국민의 95% 이상이 참여한 총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수립되었으며, 1948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받음으로써 근대 국제 정치 체제에서 처음 주권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19년 건국론과는 달리 8.15 건국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현 대한민국의 관계를 '정신사적 연속성'이 있는 관계로 국한한다. 임시정부는 민의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었으며, 국가의 3요소를 보유하지 않았음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거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사상적, 정신적 맥을 이어 유형의 국가로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17]

이 견해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에 불과하다. 1941년 임시정부가 반포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는 사료로 8.15 건국론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는 건국 과정이 아닌 독립운동 과정에 속한다.

실제로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정부는 1948년을 건국의 기점으로 보았는데, 8.15 건국론자들은 1949년 치러진 '독립 1주년 기념식', 1958년 거행된 건국 10주년 기념 행사,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개최된 건국 50주년 기념 사업을 근거로 1948년 8월 15일 건국론이 지난 반세기 동안 보편적인 인식이었음을 주장한다.[18]

자세한 내용은 임시정부 법통 회의론 문단을 참조하면 좋다.

3.3. 제3의 의견

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 이외에도 개천절 건국론, 광복 즉 건국론, 건국 미완성론, 절충론 등이 존재한다.

3.3.1. 개천절 건국론

10월 3일 개천절에 건국을 기념하자는 주장이다. 개천절은 임시정부 시절 당시부터 건국기원절이란 국경일로 기념된 바 있으며, 해외에서도 'Gaecheonjeol'이라 표현하기 곤란할 때는 'National foundation's day of Korea'라 덧붙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비록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기념일이지만 국경일의 지정은 국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지난 한 세기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개천절이 민족의 건국기념일로 봉축 기념돼 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개천절 건국론자들은 우리나라의 범위를 공화국 체계의 현 대한민국에만 국한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한민족이 반만년 역사에서 분립과 통일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으나 이들을 '남의 나라'로 인식할 이유가 없으며, 한 국가의 결정 요소인 국체-정체의 주체인 한국인이 없어지거나 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갈라지고 합쳐지며 그 과정에서 국호와 통치자만 바뀌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훗날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룩하였을 때,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나라의 건국'이 아니라 '남북 재통일'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19]

다만 일반여론에서 '개천절 = 건국기념일'로 인식하는 경향은 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개천절의 의미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굉장히 많으며, 건국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거나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람의 수가 타 국경일에 비해 더더욱 적다는 점이 반론으로 제기된다. 또한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이라는 일자 자체가 실제 고조선의 건국 시점이 아니라는 점 또한 문제다(고조선 문서 참조). 대종교적 견해를 배제하고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이 날은 오히려 앞의 4월과 8월 15일에 비해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신화상의 추정날짜를 건국기념일로 지정한 사례는 일본이 있긴 하나, 일본의 사례가 특이한 것이지 그것이 개천절-건국절 지정의 근거로 활용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3.3.2. 광복 즉 건국론

1945년 8월 15일한반도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날이다. 광복 즉 건국론은 이날에 건국을 기념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광복론자들은 독립유공자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을 든다. 이 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사람에게만 수여되는 것으로, 상훈법과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석할 경우, 건국은 곧 독립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이 일던 2008년 광복절을 옹호하며 광복은 건국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경우에는 '건국'의 정의가 논란이 된다. 이 논란은 자연스럽게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논의로 이어지는데 이 문제는 해당 문서의 개요를 참조하는 갓이 좋다. 아예 이 광복건국론자의 일부는 사전적 '건국절' 개념은 생략하고, 미국처럼 광복절 = 건국적 특성이 가미된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로 보아 현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기도 한다.

3.3.3. 건국 미완성론

대한민국의 건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주장은 남북 분단의 현실과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통일된 독립민주국 간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장차 건설할 국가로 통일된 민주독립국을 지향했으며, 절대 다수의 국민들도 분단된 정부의 수립이 아닌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끝내 분단 정부의 수립으로 좌절되었으며, 헌법에서 명시한 대한민국의 영토 조항도 38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건국은 남북통일을 완수한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 건국 미완성론자들의 입장이다.[20]

한편 대한민국의 국민국가(nation state)성을 강조하는 측에서도 건국 미완성론을 주장하는데, 이는 국민의 지지와 일체감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영토와 주권이 있어도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라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을 거론하며 미국의 건국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밝힌 바 있다.[21]

3.3.4. 절충론

절충론은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 양측에 모두 일리가 있으며, 이에 따라 둘을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련의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1919년 수립된 통합 임시정부는 전 세계의 한민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내의 국민과 연결하는 연통제-교통국 등의 제도를 확립하고, 국민개납주의-국민개병주의-국민개업주의의 명목 하에 통치권을 일부 행사하며 대외 활동을 벌여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하며, 1919년 건국론자들은 정부 수립으로 건국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되고 1948년 건국론자들은 1919년의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싸웠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22]

한편 동아일보는 김명섭 교수와 한시준 교수 간의 토론을 바탕으로 1919년이든 1948년이든 건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보도했다. [23]

4. 제헌헌법에 따른 해석

제헌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서

국가 원년[24] 3월 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선언을 함으로부터

에 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헌헌법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의 기원을 1919년 임시정부의 출범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948년 제헌국회 개원식 축사에선

"대한민국 29년 만에 부활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연호를 기미년(1919년)에서 기산하여 '대한민국 30년' 에 정부 수립이 이루어졌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해방이후인 1948년 9월 1일 발간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大韓民國三O年九月一日)"로 표기 되어 있다.# 모든 국가행정행위의 기본이 되는 공문서로서의 효력을 갖는 관보의 특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에 이미 대한민국의 법통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부터 기원했다고 보는 것을 명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수립 당시 제헌 국회 의원들과 정부 요인들이 대한민국의 기원을 1919년으로 보고 있었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 측의 입장을 보여주는 초대 법무부 장관 이인의 발언이 있다.

3․1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우리가 결국 8월 15일 이전에 국가가 없었느냐 하면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있드래도 정부가 없는 법이 있읍니다. 국가가 있어도 정부가 일시에 총사직을 한다든지 미처 조직을 못 했다든지 할 때 정부가 없을망정 국가는 여전히 있읍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법률적으로 역시 우리는 시종일관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정부 측에서는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립되어 1948년에 주권을 회복(독립)하였다고 보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1919년 건국론자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25]

현행 헌법체계 하에서 삼일절을 국경일로 기념해서 치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삼일절은 단순한 만세운동이 아닌 한민족의 독립의지의 염원이 전국적으로 표출된 운동으로, 추후 망명정부로 이행하려는 노력을 한 임시정부의 수립에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건국절을 1948년으로 지정하는 것은 현행헌법은 물론 제헌헌법의 의지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다만 제헌 헌법의 해석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존재하여 헌법을 통한 해석에도 상당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5. '광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광복은 사전적으로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부수립(건국)도 의미한다. 그러므로 건국절로의 명칭 변경은 불필요 할뿐더러 광복절이 국경일로 제정되던 당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을 의도했다는 정황이 과거 신문들을 통해 드러난다.

1945년 8월 15일 직후, 즉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광복이 이미 달성된 이후에 쓰이던 '광복'의 용례를 살펴보면 의외로 지금과 다르게 의미가 혼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광복으로 표현한 문장도 있지만, 광복을 여전히 달성해야 할 목표로 보는, 즉 외세로 넘어가 있는 주권을 완전히 되찾는 것을 광복이라 표현한 문장도 많이 보인다. 이것이 광복의 본래 의미라면 대만의 광복절이, 일본의 항복선언일이나 중화민국의 승전일이 아니라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편입된 기념일인 것도 설명된다. 원주민의 광복은 아직 요원하다 단, 승전일(9월 3일)은 '국군의 날'로 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빨간 날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날을 2015년부터 빨간 날로 하였다.

이를테면 미군정기이던 1945년 신문기사에는 '광복에 빛나는 병술년(1946년)'이라며 이미 광복이 된 것으로 보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해방된 우리 민족, 그리하여 광복될 우리의 신국가'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또한 1949년에 정부수립 1주년을 광복 1년으로 표현한 기사도 존재한다.

특히 1949년 4대 국경일이 법제화된 직후 총무처에서 광복절 노래를 비롯한 각종 국경일 기념가를 일반에 공모할 당시[26] 신문기사를 보면 각 기념일의 정의를 확인할 수 있다. 광복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발족한 기념일이라 되어 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정부 측의 표현을 그대로 실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러한 당초의 제정 의도와는 다르게 일반에서는 8월 15일을 일제로부터의 해방 기념일로 보는 인식이 더 우세하였고 결국 광복이란 말 자체와 더불어 정부에서 기념하는 법정 국경일로서의 광복절의 의미도 수 년 안에 자연스럽게 변천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럴 만도 한 게 애초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경일의 명칭과 날짜만을 정해놨을 뿐 정확히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는 굳이 따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현 헌법 전문과 그 해석에 대한 이견

그러나 현 헌법 전문과 그 해석에 대한 의문과 이견, 즉 1948년 건국론이나 헌법적 요소에 대한 지적 또한 제기되고 있다. 일제 때문이지만, 근대 국가의 3요소인 국민, 국토, 주권의 어느 것도 온전하지 못하며, 역사적, 행정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의 3요소를 국민, 영토, 주권으로 보고있으나, 헌법학에서는 국민과 영토는 단지 헌법의 효력이 미치는 인적/장소적 적용범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임시정부 역시 수많이 세워진 독립단체들 중 외교노선을 택한 단체일 뿐이고 오래 살아남아 참전했다는 것만으로 대한제국을 임시정부가 계승했냐는 실질적 계승 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 단체나 무장독립 단체, 국내계몽 단체들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법조항을 그대로 따르자면, 당시 전국에 3.1 운동이 일어났으니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어야 했겠지만, 광복 후 소멸했으며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미소군정이 출범했다가 새롭게 건립되었으니 임정 법통을 유기적으로 이어왔다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임시정부가 제정했던 대한민국 임시헌법에서 대한민국의 판도는 구한국의 영토로 정한다고 하였다. 좌익 세력들이 불법으로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인 한반도의 북반부를 점거했다고 하면 참작의 여지는 있다.

헌법적 요소 역시 1987년에 포함된 것이라는 이유에서 당시의 정치적 요구에 맞는 가변적인 해석으로 보기도 한다. 30년이 지난 오늘날과 1987년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 당시는 냉전이 아직 유효한 때이자 남한이 군사력으로 북한을 압도한다고 보기 힘든 시대였지만, 지금은 냉전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모든 면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 때이다. 해당 규정으로 북한이 불법단체가 되는 것도 비합리적이고 구시대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저 '체제 자체가 불법'이 87년 체제에서는 '태생 자체가 불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연히 불법단체와 대화 및 협상에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태생부터 불법이므로 남침을 사과하고, 인권을 개선하고, 북핵을 폐기해도 불법단체다. 따라서 북한이 불법단체인 이유를 현 북한이 펼치고 있는 남침행위, 국가적 불법행위, 반인권행위, 핵개발 등 전쟁위험행위, 국가적 빈곤과 기아 등으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듯 실제적으로 국가가 세워진(건국된) 것은 1948년이라고 보는 국가의 실제적이고 기능본위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1948년을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게 되면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에 의한 남한만의 정부가 되고 북한은 소련 군정에 의한 북한만의 정부가 되어 별개의 정부가 수립이 되어버린다. 위 경우 헌법 전문에 밝히고 있는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통성과 함께 한반도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명분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구성은 1948년에 이루어졌으나 헌법 전문에 밝히고 있듯이 한반도 지배권에 대한 정통성은 임시정부를 계승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런 견해에 따르면 1945~48년 사이의 미 군정이 '점령군' 혹은 '식민지배'로 해석될 여지도 존재한다. 미 군정에 수탈/국권침탈의 의도가 없어 식민지배라 할 순 없으나, 과거 일제의 영토를 군사적으로 점령했다는 의미에서 (임시정부를 배제하고) 한반도 이남을 미군정이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7. 이승만 미화 추진 세력의 개입

이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건국절 주장에 뉴라이트 계열의 극우세력들이 활발하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건국절을 주장한다고 무조건 뉴라이트인 것도 아니고, 딱히 보수 성향으로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건국절 찬성 측에서 뉴라이트가 어느정도 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라, 인터넷 여론은 역효과가 가득하다.

이들은 실제적 국가를 중시하는 척 하면서, 임시정부의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축소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공만을 강조해 이승만을 국부로 세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건국절 문제 자체가 실제적이지 않은 이념적인 문제일 뿐더러, 대개 이러한 주장을 내는 세력이 뉴라이트 계열이어서 보통 적극적으로 나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때문에 뉴라이트 같은 세력들만 목소리를 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작 이승만 본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라 인정해주기를 당시 일본 정부에게 요구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즉, 이승만 본인도 1919년을 건국 원년으로 봤다는 뜻이며, 실제로 1948년 취임식에서는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자칭했다. 즉, 이승만 본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던 것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이를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이 때문에 건국절 자체의 찬반 논란과는 별개로 '자기들이 존대한다는 인물과도 말이 맞질 않는다'라는 조롱을 받기도 한다.

인지부조화 그 자체이며 뉴라이트 측은 역사에 대해 진지한 연구와 고찰을 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 위해 역사에서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승만에 진지한 평가나 존경 없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필요한 것만 선택하니 당연히 주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만약 뉴라이트가 이승만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면, 1919년 건국을 주장해야 앞뒤가 맞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역사적 인물들은 인간이기에 명과 암이 존재하고, 뉴라이트 측이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그의 주장 중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그런 식의 해명은 거의 보이지 않고 그저 반대측을 빨갱이라며 매도하기만 하니 문제.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건, 이들이 존경하는 이승만조차도 빨갱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는 곧 건국절 논란이 역사적 논쟁이 아닌 정치적 다툼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학자들이 이 논란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상 때문.

8. 광복절과 건국절의 실제 충돌 사례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딱 1번 건국절이라고 광복절을 대신하여 행사를 지냈다가 엄청난 반발을 받았다. 이마트만 해도 이 당시 건국절 사은행사라는 걸 했다가 같이 욕을 먹었다. 홈플러스는 그냥 광복절 특선 사은행사라고 하던 거와 대조적. 게다가 우파라고 자부하는 측에서도 반발이 거셌는데 건국절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야말로 건국절이라고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명박 정권도 이에 대해서 무척 난감해했는데 이명박을 지지하던 보수적인 대학교수라든지 여러 측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단군기원을 공문서에서 공식으로 사용하기 전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썼는데,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다.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잡으면, 1948년이 대한민국 30년이 된다. 그전에도 임정과의 연속성을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공감이 가는 게 많아서인지 웃기게도 뉴라이트 쪽에서도 4월 13일을 건국절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버렸다. 또한 미국도 1776년 7월 4일, 영국에 맞서면서 정식 건국절이 아닌 사실상 임시정부 수립일을 현재까지 독립기념일로 정했기 때문에 정식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삼는 주장이 힘을 많이 잃은 셈.

그리고 8월 15일은 정식 정부 기념 수립일 정도로 해야지 건국절을 이 날로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게 이명박 정권에게 더더욱 난감했던 게 결국 노는 날을 하루 더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우파라고 자부했더니만 이런 주장에 대하여 도저히 뭐라고 할 게 전혀 없다. 되려 보수우익 쪽에서도 이 4.13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이기 어렵다. 위에 서술한 대로 이승만 임시정부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뉴라이트 쪽도 그 이승만을 추앙하자면 이 건국절이라며 새로운 휴일을 하나 만들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일이 길어지면 그놈의 경제적인 손실이 있네 뭐네 이런 반감이 있으니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이후로 건국절 운운거리는 말을 일절 중단하고 그냥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으며 박근혜 정권도 다를 거 없는 모습을 보이나 했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이후 총 네 번 있었던 광복절 축사에서 세 번이나 건국절을 거론했다. 그 세 번째인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인정하면, 북한을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인정한 국가보안법이 원천 무효가 된다는 점에서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가치관에 정면충돌해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돼버린다. 또한 북한 주민과 새터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 취급을 당하게 된다. 공화국의 성립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국가의 3요소 중 영토는 한 나라 헌법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나타내는데,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게 되면 38선 이북은 우리 헌법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남한 한정의 신생국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9. '건국기념일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

한편 건국 기점이 언제인가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건국절 주장은 대한민국에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 말인데, 이들은 개천절이 이미 건국기념일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천절을 영어로 하면 National Foundation Day, 즉, 건국절이 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진무 천황이 일본을 개국하였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660년 음력 정월 초하루(양력으로 2월 11일)를 기원절(紀元節)로 기념하고 있다.

실제로 개천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 때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었으며, 당시에 이미 건국기원절이란 이름으로 불린 바 있다. 비록 신화에 의거한 것이긴 하나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족의 건국기념일로 존재해 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며, 국경일은 국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건국(建國)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 또한 지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 여럿 있긴 하나, 그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을 취사하여 건국기념일로 기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건국일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독립선언서에 건국의 아버지들이 서명한 1776년 7월 4일독립기념일이라고 기념하고 있으며, 프랑스중화민국 등의 국가는 공화 정부 수립일이 아닌 혁명시작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헌법이 발포된 1950년 1월 26일공화국의 날이라는 이름의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헝가리일본, 스위스최초의 국가 성립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처럼 건국일이란 개념 자체는 세계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있더라도 실제 건국일(또는 정부 수립일)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달리 건국 시점을 특정지을 수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학계에서는 건국의 개념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관점은 국가는 정부와 같은 기구의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역사, 문화, 영토, 민족 등 종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국가와 건국이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므로 그중 일부의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해서 국가가 건국됐다고 하거나, 반대로 그 일부의 조건을 미달한다고 해서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미국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데,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나 건국 헌법이라는 표현은 존재하지만 건국일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 선언은 물론 독립 전쟁, 독립 승인, 연방 헌법 제정, 연방 정부 수립 등 모든 과정이 일련의 미국 건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중화민국이 건국일 대신 혁명기념일만 기념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

더욱이 대한민국은 이러한 일련의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 여럿 존재한다. 민족국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개천절, 독립 선언과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기념하는 삼일절,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 국가 재건을 위한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일을 건국일로 지정하지 않은 데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대한민국이 온전한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도 한 몫 한다.

특히나 건국절 논쟁은 그 자체로 세가지 문제와 부딪힌다. 첫째 대한민국의 신생국 논란. 신생국이라 함은 현행 국가 이전에 선행하는 국가가 없는 나라를 의미한다. 둘째 식민 지배 합법 논쟁이 있을수 있다. 셋째, 국민적 합의 재도출이라는 문제와 낮닿아 있다. 정부 수립 당시 국가의 기원을 고조선 건국일로 지정해버린 상태에서, 건국기념일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면 국가의 기원이 단군 조선이 아님을 모두가 인정해야 하고, 대한민국이 신생국인지 아닌지를 합의해야 하며, 신생국이라 할 경우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 또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국기념일이란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만 일으킬 뿐이라는 것이다.

10. 결론

역사는 사실보다는 해석에서 문제가 갈린다. 사건 자체는 절대로 뒤집히지 않는데, 해석은 얼마든지 뒤집히기 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국경일 또는 국가의 기원을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국민들의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날을 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학계에서 건국절 논쟁의 소모성을 경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일부 진영에서 1919년을, 또는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삼기 위해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을 찾아 대응하고 대립하고 있으나, 엄밀히 들여다보면 이 건국절 논쟁의 원 시작은 건국 시점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주권의 발현, 한민족의 국가 형성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를 놓고 그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뉴라이트 진영의 밀어붙이기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사의 연속성, 국가의 동일성, 국가형성의 기초가 되는 국민공동체의 본질적 주권(Real Sovereignty) 등을 중요시하는 사학계는 건국절 논쟁을 경계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도 뉴라이트 진영의 건국절 주장은 과거 김일성을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하던 과거 주사파 계통이 본질은 그대로 놔둔 채 찬양의 대상을 이승만을 바꾸어 놓는 과정에서 등장한 수준 낮은 접근이기 때문에 이 논쟁이 지속되는 것을 꺼려할 수밖에 없다.

건국이란 용어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국이란 용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이래 삼일절, 건국강령, 제헌 헌법의 대한민국 재건,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 창조, 김대중 정부의 제2의 건국에서처럼 독립 선언과 임시정부 성립, 독립운동, 정부 성립, 민주화, 사회개혁 등 메타포적 용어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사실로, '건국운동'의 개념을 국치 이래 전개돼 온 민주공화국 건립을 위한 주권회복활동과 별개로 두어 반탁, 반공 세력에 국가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뉴라이트 진영의 '건국' 개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건국절 논쟁의 최고 핵심인 건국 시기에 대한 논쟁도 난해할 수밖에 없는데, 국가의 개념을 State(통치기구의 성격이 강함)로 보느냐 Nation(국민공동체의 개념이 강함)으로 보느냐에 따라 1919년도, 1948년도 모두 합당한 근거와 논리를 가진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경우, 본질적 주권에서 파생돼 나온 통치자의 주권이 포기되고 국민공동체로 환원되어 거족적인 합의를 통해 독립을 선포한 1919년이 역사적으로 왕조 시대를 마감하고 공화정 시대의 막을 연 건국 시점이 되는 것이고, 통치기구로서의 성격에 강조를 둘 경우, 국토와 주권을 완전 광복하여 한반도 내지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정부와 통치기구를 갖춘 것이 1948년이므로 이 또한 건국 시점으로서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건국 시점에 대한 정답은 없다. 양측 모두 합당한 논거가 있으며, 설령 후자인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지정해도 임시정부의 계승을 천명한 만큼 3월 1일을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기념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27] 더욱이 국제사회에서 인정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간의 국가적 동일성[28]과 당시 조약의 유효성, 국제법상 어느 부분 승인받은 임정의 망명정부적 지위와 현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연속성, 일제의 침략에 따른 '실패 국가화'[29] 등을 고려하면 건국 시기를 명확히 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해진다. 1919년 독립 선포와 1948년 총선거, 정부 수립 등을 통해 한민족의 본질적 주권이 양시에 행사된 바, 건국이 언제다 하는 것보다는 독립 선포, 임시정부 수립, 해방, 헌법 제정, 정부 수립 등 기존에 사용된 표현으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11. 관련 문서


  1. [1] 노컷뉴스 기사
  2. [2] 완전히 동일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보다 이른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8년에 대통령 소속으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건국 50주년을 홍보하며 제2의 건국이라는 사회개혁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좌우 이념대립이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건국이라는 명칭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최근 건국절 논란이 제기되면서 보수진영이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1948년을 건국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원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해당 위원회를 제안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에 쓰인 '정부수립 50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문구를 들 수 있다. 해당 경축사 기사 한편, 이와는 반대로 위에 나온 것처럼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에서도 1919년을 건국으로, 1948년을 정부수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다수 있다. 최근의 건국절 논란은 2000년대 중후반에 제기되어 찬성/반대측이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만을 원용하고 있다.
  3. [3] 이전에는 사학계에서도 1919년 건국론을 지지한다고 적혀 있었으나, 정통 사학계에서는 건국이란 용어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민주공화제라는 국체1919년에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구 역사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국으로 등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주류 사학계의 논리이다.
  4. [4] 바른미래당의 경우에는 건국 시기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5. [5] 한편 민주당계 정당, 또는 진보 계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919년 건국론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6. [6]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우리들 대한 국민은 기미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7. [7] 2016.08 광복회보
  8. [8] 시사인
  9. [9] 우리나라의 독립서언은 우리 민족의 혁혁한 혁명의 발인(發?:일의 출발)이며 신천지의 개벽이니… 이는 우리 민족의 3ㆍ1헌전(憲典)을 발동한 원기이며… 이는 우리 민족의 자력으로써 이족 통치를 전복하고 5천 년 군주정치의 구각(舊殼 : 낡은 바탕)을 파괴하고 새로운 민주제도를 건립하여 사회의 계급을 소멸하는 제일보의 착수이었다. 우리는 대중의 혈육으로 창조한 신국가형식의 초석인 대한민국을 절대로 옹호하며 확립하며 공동혈전할 것임.
  10. [10] 경향신문
  11. [11] 시사인
  12. [12] 여기서 말하는 승인은 '사실상의 승인'(de facto)를 의미한다. 실제로 국제적 승인을 받은 망명정부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상의 승인, 즉, 묵시적 승인을 받았는데, 국제법상 사실상의 승인도 법률적 승인으로 간주된다.
  13. [13] 대한민국 건국원년은 1919년
  14. [14] 2016.12 광복회보
  15. [15] ‘1919년 건국’ 이승만 문서 공개
  16. [16] 1948년 오늘 제헌절… 세계의 헌법기념일과 공휴일
  17. [17] 대한민국, 臨政이 뿌리지만 主權 인정은 1948년
  18. [18] 이승만도 '대한민국 30년' 연호 써&quot; &quot;臨政, 환국 직전 '건국' 다짐
  19. [19] 개천절’에 건국을 기리고, 3·1절은 ‘독립기념·선언일’로 개칭하여야 한다
  20. [20] 진정한 건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21. [21] 건국절은 없다
  22. [22] 대한민국 건국, 1919년 시작돼 1948년 완성
  23. [23] #
  24. [24] 당연히 1919년을 가리킨다.
  25. [25] 국적법안 제1독회
  26. [26] 결국 이 공모에서는 입상작이 없어 이후 전문가에게 맡긴 결과가 지금의 광복절 노래다.
  27. [27] 1948년 8월 15일을 새 나라의 건설이라고 하면서도 건국 기원을 대한민국 30년으로 서술한 경향신문 기사
  28. [28] 국제적 관례로 한 국가 내의 국체, 정체, 정권의 교체는 새로운 나라의 창설로 간주하지 않고 기존 국가의 연장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단 사회주의 국가의 창설은 대체로 새로운 국가의 창설인 '국가승인'이 이루어지는 편이다.
  29. [29] 식민 지배 등으로 인한 주권 행사의 제약은 '주권이 없다'로 간주되지 않고 '주권의 침식' '대외적 주권 행사의 일시적 보류'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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