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 아처

이름

콜린 머리 "겜" 아처(Colin Murray "Gem" Archer)

성별

남자

출생일

1966년 12월 7일

1. 개요
2. 헤비 스테레오
5. 비디 아이 해체 이후
6. 노엘 갤러거의 하이 플라잉 버즈
7. 관련 항목

1. 개요

겜이라는 애칭은 아치 게밀(Archie Gemill)라는 70년대의 유명한 스코틀랜드 축구선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종종 발음을 헷갈린 초보 팬들이나 기자들이 아처(...)라고 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발음은 이 맞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많이 헷갈렸는지 오아시스에 합류하고도 시간이 꽤 지난 2005년 단독 인터뷰에서도 서론에서 겜의 g 발음이 hard G라는 걸 설명해주기도 한다. 참고로 겜은 "젬"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리듬 기타리스트였고, 그 전에는 헤비 스테레오라는 록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다. 헤비 스테레오 이전 80년대 초에도 The Edge와 The Contenders라는 이름의 밴드들로 음악적 활동을 해왔다. 또한 비디 아이의 기타리스트였으며, 데뷔 앨범인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에서 기타베이스를 치고 백 보컬을 하였다.

생긴 게 한창 때의 폴 매카트니를 닮았다 하여 겜 매카트니라고 불릴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팬들이 새로 유입된 팬들에게 폴 매카트니의 숨겨진 아들이며 비틀즈 빠돌이노엘 갤러거가 일부러 영입했다는 구라를 친다. 최근 모습에서는 폴 웰러를 닮아간다고도 한다.

채식주의자이다.

2. 헤비 스테레오

90년대 초반 겜이 소속돼 있었던 밴드인 Whirlpool[1]이 해체된 후, 겜은 인디 록 음악 레이블인 크리에이션 레코드로 들어가 글램 록 밴드 헤비 스테레오를 새로 결성한다. 이때 겜은 리드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였다. 혹시라도 그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링크로 들어가보자. 꽤나 의외의 목소리다. 비디 아이 1집 수록곡 The Roller 데모

1996년에 오아시스의 역사적인 넵워스 공연과 로크 로몬드, 더블린 공연의 오프닝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앨범인 Déjà Voodoo는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 [2] 그러나, 그들은 더 잼의 트리뷰트 앨범인 Fire and Skill - Songs Of The Jam를 내고, 폴 웰러의 투어에 오프닝을 서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겜은 그때를 "우리의 새 음악은 최고였어." 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지병이 심해지고 나서는 밴드의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3. 오아시스

어머니를 돌보며 집에 있던 중, 겜은 티비 쇼에서 본헤드가 노엘과의 다툼으로 인해 오아시스에서 탈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말하기를, "그 때 내가, 젠장! 쟤네들 이제 해체하겠구나! 진짜 팬이었는데! 라고 생각했지. 그냥 빈말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오아시스는 로큰롤을 다시 살려낸 장본인들이었거든."

그러나 그는 전부터 겜을 알고 있었던 노엘 갤러거가 겜의 아들인 조엘의 생일 파티 때 전화를 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겜의 어머니가 회복된 이후, 노엘은 오아시스의 4집 앨범인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믹싱하던 곳인 올림픽 스튜디오에 겜을 초대한다.

"우리는 술집에 갔는데 난 내가 밴드의 멤버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것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어. 기네스 맥주를 반 파인트도 안 마셨을 때쯤에 내가 물어봤지, "리암은 뭐래?"라고. 그러니까 노엘이 "내 fucking 밴드에 내가 누굴 넣든 내 맘이지." 라고 했어."

겜은 4집 앨범 녹음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열티를 받지는 못했고, 나중에 공연당 85파운드 가량을 받아가며 오아시스의 새로운 기타리스트의 역할을 해냈다. 그의 맨 처음 등장은 "Go Let It Out"의 뮤직비디오에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출연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앤디 벨이 합류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노엘이 베이스를 쳤다.

공식적으로는 오아시스의 리듬 기타리스트였지만 그의 역할은 그보다는 더 컸다. 라이브 공연에서 노엘과 겜은 자주 파트를 바꿔가며 연주했는데,[3] 노엘과 리암 모두 그의 기여를 높게 평가하였다. 노엘이 보컬인 곡에서는 리드기타 역할을 한 곡도 있다. 대표적으로 little by little. 사실상 노엘이랑 겜 둘이서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를 서로 번갈아 가면서 쳤다고 보면 된다. 겜의 합류는 오아시스 라이브 연주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기존 기타리스트였던 본헤드가 거의 스트러밍밖에 하지 못해서 노엘이 모든 기타 리프와 솔로를 담당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밴드가 굉장히 단조로운 연주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겜의 훌륭한 기타 실력 덕분에 노엘도 리드 기타 부담을 덜 수 있었고 밴드 전체적으로도 사운드가 다채로워졌다. 또한, 라이브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도 겜에 의해서 오아시스는 변화할 수 있었는데, 초창기 오아시스의 단조로운 로큰롤 사운드에서 변화를 주고 싶었던 노엘에게는 겜의 연주와 노하우는 큰 도움이었다. 확실히 위 사진만 보아도 겜 합류 이후 그전까진 순수 리드기타에 가까웠던 노엘이 리듬기타를 병행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겜은 송라이터로서도 활동했는데, 오아시스에 합류하고 나서 처음으로 낸 곡은 5집 앨범 수록곡인 "Hung In A Bad Place"[4]이다. 그의 역할은 6집 앨범부터 확장되기 시작했는데, 6집 앨범에 겜의 곡인 "A Bell Will Ring"과 리암과 공동으로 작곡한 "Love Like A Bomb"이 수록됐고, "The Meaning Of Soul"에서는 백 보컬을 한다.[5] B-Side 트랙도 작곡을 했는데, 수록된 곡으로는 "Eyeball Tickler"와 "The Quiet Ones"가 있다. 그는 7집 앨범인 "Dig Out Your Soul"의 수록곡인 "To Be Where There's Life"도 작곡했다.

또한 앤디 벨은 겜 아처를 두고 "오아시스는 완전히 진화했어. 노엘의 옛 친구들은 떠났고, 그는 이혼했지.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는 아직 리암을 데리고 있지만 그와의 관계는 변했어. 더 격렬하게 변했지. 노엘은 더 차분한 친구가 필요했고, 겜이 바로 그 친구야. 겜은 노엘을 진정시키지. 그리고 그게 오아시스를 더 안정시켜." 라며 밴드에서의 겜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곡한 곡 일람

Heathen Chemistry

  • Hung in a Bad Place

Don't Believe the Truth

Dig Out Your Soul

  • To Be Where There's Life

4. 비디 아이

노엘은 파리에서 리암과의 커다란 다툼 이후 밴드를 탈퇴하면서, 겜과 앤디를 두고 "새로운 곳을 찾아 해멜 수 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들"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겜은 앤디, 리암, 라이브 드러머인 크리스 샤록과 함께 새로운 이름으로 새 밴드를 결성한다. 노엘은 겜과 크리스와의 우정은 지속하고 있었으나, 리암과 앤디와는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작곡한 곡 일람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곡)

  • Yellow Tail[7]
  • The Roller
  • Wind Up Dream
  •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
  • Three Ring Circus
  • In The Bubble With A Bullet (The Beat Goes On 싱글 B-side)

BE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사/작곡)

  • Flick Of The Finger (리암 갤러거와 공동 작곡)[8]
  • Second Bite Of The Apple
  • Iz Rite
  • Ballroom Figured (크리스 샤록과 공동 작곡)
  • Back After The Break (BE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 Off The Next Exit (BE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5. 비디 아이 해체 이후

트위터로 근황을 올리고 가끔씩 공연장과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는 리암 갤러거나 라이드를 재결합한 앤디와 다르게 소식이 너무 없어서 팬들 사이에서는 겜 백수 드립이 흥했다(...). 그렇게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다가 노엘 갤러거의 BBC Radio 2 어쿠스틱 공연에 기타리스트로 나왔다!!! 공연 당시 노엘이 겜을 소개하면서 날린 멘트(예전에는 내 오른쪽에 있었던, 지금은 내 왼편에 있는 겜 아처야.)는 팬 커뮤니티를 염전으로 만들었다(...)

6. 노엘 갤러거의 하이 플라잉 버즈

2017년부터 노엘 갤러거의 하이 플라잉 버즈 투어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고있다. 또한 오아시스의 마지막 드러머이자 비디아이의 드러머였던 크리스 샤록도 함께 세션으로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하플버가 가끔씩 어쿠스틱 라이브를 할때면 오아시스 어쿠스틱 라이브에서도 보아왔던 노엘, 겜, 크리스의 익숙한 쓰리샷을 다시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상당한 동안으로 유명했으나 하플버 근황을 보면 머리도 백발이 되어 노화되었다. 염색만 하면 열 살은 어려질 것 같음

7. 관련 항목


  1. [1] 사족으로 블러와 같은 회사 소속이었다. 당시 나온 소속 레이블 Food사의 샘플러 CD에 두 밴드가 나란히 노래를 수록하기도 했다.#
  2. [2] 4개의 싱글을 냈는데 성적은 "Sleep Freak" (1995) - UK #46, "Smiler" (1995) - UK #46, "Chinese Burn" (1996) - UK #45, "Mouse in a Hole" (1996) - UK #53 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였다. Cartoon Moon을 싱글로 내야했다는 얘기가 있다
  3. [3] 오아시스의 대표적인 명곡 돈룩백의 경우 겜 합류 이전에는 노엘이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기타 파트를 연주했지만 겜 합류 이후에는 2절 이후 솔로 파트만 노엘이 담당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파트를 바꿔서 노엘이 리듬기타, 겜이 리드기타 파트를 연주했으며 지금도 노엘 솔로 활동 공연도 이 포맷을 유지중이다. 아무래도 노래 부르는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기타 파트 연주는 조금 피곤했나 보다. 물론 앞서 말한건 일렉기타 버전 즉 원판 버전 라이브를 말하는거고 어쿠스틱 버전은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노엘이 리듬기타, 겜이 리드기타이다.
  4. [4] 이 곡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미국판 광고 삽입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5. [5] All~ right~ I see the love~ in your eyes~ 부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바로 겜의 목소리.
  6. [6] 전체 오아시스 커리어를 통틀어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공동 작곡'으로 수록된 곡.
  7. [7] DGSS 초~중반 라이브 투어에서만 들을 수 있는 오프닝용 연주곡으로, 정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은 곡이다. 동명의 와인이 있다.
  8. [8] 2004년에 'Velvet Building'이란 이름으로 리암과 함께 만든 데모가 다시 쓰였다. 가사는 겜과 앤디가 이후 이 곡을 다시 작업할 때 공동으로 작사한 것이다.
  9. [9] 아내인 루 아처의 트윗에 의하면 겜은 계정을 파놓고 버려두는 게 버릇인 듯 하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예전부터 만들어뒀던 거지만 한번도 업데이트 된 적이 없다. 다만 2013년에 업로드 한 것이 하나 있긴하다.

최종 확인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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