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유골

1. 개요
2. 유래
3. 구전설화
4. 비슷한 표현

고사성어

닭 계

알 란

있을 유

뼈 골

1. 개요

일이 공교롭게 틀어짐을 뜻하는 고사성어.

'계란이 곯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곯다'의 음을 그대로 따서 '골(骨, 뼈 골)'자를 쓴 것인데, 이것때문에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원뜻은 '곯았다(속이 물크러져 상했다)'는 뜻이니 주의하자. 실제로 과거 마산서중학교의 어떤 한문 선생은 이걸 진짜로 "계란에도 뼈가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당시 동아출판사 중학교 한문 2학년 과정에 수록됐다.

여담으로 '뼈가 있는 계란'인 곤계란은 예로부터 식재료로도 약재로도 가치가 있었다.

2. 유래

출전은 《송남잡지(松南雜識)》다.

조선 세종대왕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집은 장마철에는 비가 새고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을 정도로 어질고 검소한 생활을 한 황희에게 세종대왕은 그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다가 묘안을 얻은 왕은 "내일 아침 일찍 숭례문을 열었을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 정승에게 주겠노라"라고 했다.

헌데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가 종일토록 멈추지 않아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가 들고간 모든 물건을 팔 수 있으니 굉장한 기회였을 텐데. 다 어두워져 문을 닫으려 할 때 무슨 까닭인지 한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 황희에게 주었는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 먹으려고 하자 달걀이 모두 곯아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는 야사에서 기반한 것이고,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이 그런 방식으로 도왔다는 말이 없는데다 실제 황희는 이 정도로 청렴하지는 않았으므로 황희에 대한 민중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여기면 된다. 아주 썩은 관리들과 청백리인 맹사성의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 외에도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도 ‘계란개골(鷄卵皆骨)[1]’이라 해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종대왕이 고려왕으로, 황희가 강일용(康日用)이란 사람으로 바뀐 것 외에 줄거리는 똑같다.

3. 구전설화

이와 관련한 구전설화도 전해 온다.

황희는 살림이 곤궁하나 재주가 무궁무진해서 하루는 부인이 “그렇게 재주가 많은 양반이 왜 굶고 사느냐?”고 따져 묻자 “그렇게 먹는 것이 원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며 부적을 써서 사방으로 던졌다. 그러자 오곡이 들어와서 마당에 쌓이자 부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면서 곳간으로 퍼 들이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곡식을 날려보냈다.

부인이 통곡을 하면서 원망하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계란 열 개를 들어오게 했다. 부인이 다시 없어지기 전에 얼른 먹으려고 삶아 껍질을 까나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속은 이미 병아리가 되려다가 죽은 것으로 모두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2]

황희는 “그것 보라.”며 “당신이나 나나 안 되는 사람은 계란에도 유골이라.”했고 부인은 망연자실한 채 대성통곡했다.

4. 비슷한 표현

관련 있는 속담으로는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사를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를 하면 비가 온다.' 등이 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은 뒤의 '유골'은 같지만 계란유골과는 전혀 관계없다. 이쪽은 '예사로운 말 속에 단단한 뜻이 있음'이라는 의미. 이것도 동아출판사 한문 교과서에는 언중유골과 계란유골이 나란히 실려있다.


  1. [1] 계란이 모두(皆) 곪았다(骨)는 뜻.
  2. [2] 하필 삶으려 할 때 병아리가 될 준비를 하다 부인이 삶으면서 목숨을 잃은 것.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23.89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