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1. 개요
2. 보편교회의 공의회
2.1. 제1차~제7차 '세계 공의회'
2.2. 가톨릭에서만 인정하는 공의회
2.3. 정교회에서만 인정하는 공의회
3. 보편교회 이외의 교파에서의 인정 여부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Concilium / 公議會

그리스도교에서 교리, 의식, 규범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의. 보편 공의회라고도 한다.

사도행전 15장에서 공의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안티오키아 지방에서 일어난 할례, 율법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들이 하던 일에 대해 보고하고 할례와 율법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베드로야고보[1]의 주장으로 인해 할례를 하지 않고 다만 우상과 피를 멀리하자고 결의한다. 특기할 점은 이때 베드로가 회의를 결론짓고 내용을 선포하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교의를 재확인하고 불분명한 점을 분명하게 하여 이단을 정죄하고 교회의 4대 속성인 단일성, 보편성, 지성성(至聖性), 사도전래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차례 공의회가 열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아래 7차례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보편 공의회에서 신앙도덕에 관하여 결정한 사항은 공의회에 참여한 주교단 전체에 내린 성령의 감도에 따른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없고[2], 다음 공의회나 교황도 폐기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참고로 중세는 미개하다는 생각을 전재로 한 양판소 이세계물을 반박할 때 이 공의회를 예로 든다.

2. 보편교회의 공의회

2.1. 제1차~제7차 '세계 공의회'

가톨릭정교회가 모두 인정하는 일곱 차례의 공의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처음 세계 공의회를 소집한 이후로,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소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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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명칭

소집자

주요 사항

1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 1세

아리우스파 단죄, 니케아 신경 성립

2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테오도시우스 1세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성립

3

431년

에페소 공의회

테오도시우스 2세

네스토리우스파 단죄, 테오토코스 논쟁 정리

4

451년

칼케돈 공의회

풀케리아

단성론 단죄[3]

5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유스티니아누스 1세

삼장 문제 토의, 칼케돈 공의회 교리 재확인

6

680년
~
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콘스탄티누스 4세

단의론 폐기

7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이레네

성상 파괴 운동 배척

2.2. 가톨릭에서만 인정하는 공의회

동서 대분열 이전에 개최된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빼면 모두 로마 교황이 소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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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명칭

소집자

주요 사항

8

869년
~
870년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바실리오스 1세
교황 하드리아노 2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우스 추방[4]

9

1123년

제1차 라테란 공의회

칼리스토 2세

최초로 서유럽에서 개최된 공의회

10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

인노첸시오 2세

대립교황 및 이단들에 관한 조항 추가, 페트로브루스파 단죄, 헨리코파 단죄

11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

알렉산데르 3세

알비파 단죄, 교황 선거법

12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인노첸시오 3세

왈도파, 카타리파 배척. 성체변화 정의

13

1245년

제1차 리옹 공의회

인노첸시오 4세

신성 로마 제국 프리드리히 2세 파문

14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

그레고리오 10세

콘클라베 제도화, 동서 교회 합일[5]

15

1311년
~
1312년

비엔나 공의회

클레멘스 5세

성전기사단 해산

16

1414년
~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

그레고리오 12세
마르티노 5세

대립교황 폐위, 존 위클리프, 얀 후스 화형

17

1448년
~
1445년

바젤 공의회
피렌체 공의회

에우제니오 4세
니콜라오 5세

동서 교회 합일 시도[6], 아르메니아, 시리아, 마론파와의 합일 모색

18

1512년
~
1517년

제5차 라테란 공의회

율리오 2세
레오 5세

교회 개혁 시도(실패, 종교개혁 불러옴)

19

1545년
~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바오로 3세
율리오 3세
비오 4세

개신교 단죄, 가톨릭 교의 재확인

20

1869년
~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비오 9세

교황무류성 교의 결정

21

1962년
~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요한 23세
바오로 6세

개별 문서 참고

2.3. 정교회에서만 인정하는 공의회

정교회에서는 동서 대분열 이전 일곱 차례의 공의회만을 '세계' 공의회로서 인정한다. 한국정교회대교구의 설명에 따르면[7] 정교회는 에큐메니컬 문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래 공의회들을 세계 공의회로 부르지 않는다. 또한 이들 공의회에서 채택된 문서들은 정교회의 교리가 맞지만, 세계 공의회의 권위에 종속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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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명칭

소집자

주요 사항

5-1,
6-1

692년

퀴니섹스툼 공의회

유스티니아누스 2세

명목상 제5차, 제6차 공의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교리 문제들을 정리하기 위한 공의회.[8]

8

879년
~
880년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바실리오스 1세

위에서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10년 후에 개최. 이그나티우스의 사후 포티우스를 다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인정. 또한 서방 교회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또한 성자로부터'(필리오퀘)를 넣은 것을 규탄.

9

1341년
~
1351년

제5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헤시카즘 인정.

10

1662년

야시 교회회의

파르테니우스 1세

칼뱅주의 교리 정죄.

11

1672년

예루살렘 교회회의

도시테오스 2세

루카리우스의 칼뱅주의 교리 접모 시도 단죄, 정교회 신앙고백 채택.

3. 보편교회 이외의 교파에서의 인정 여부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예전의 그 사기꾼 말이다. 도시에서 열리는 교회의 공회의 참석차 온 김에 들린 거 같았는데,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 것인지! 글을 읽을 줄 똑똑한 아이를 보내면 교황청에서 키워준다는 헛소리를 믿으시고, 교황청과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 널 보낸 대(大) 지델님도 문제였지만!』>>『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 1막


  1. [1] 사도 야고보가 아닌 주님의 형제 야고보
  2. [2] 이를 무류성(無謬性)이라 한다.
  3. [3] 그 외에도 제28조를 통해, 황제와 원로원이 있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로운 로마'이기에 새 로마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로마에 이어 서열 2위로 격상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에게 로마 주교에 버금가는 권위를 부여할 것이 논의되었으나, 이는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4. [4] 테오필로스 황제의 황후 테오도라는 이그나티오스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었다. 그러나 테오도라가 물러나고 미카일 3세의 친정이 시작되자, 테오도라의 오빠이자 실권자인 바르다스는 이그나티오스를 추방하고 포티우스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로마 교황 니콜라오 1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동방교회에 개입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위는 바실리오스 1세에게 넘어가고, 바실리오스 1세는 서방교회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기 위해 포티우스를 추방하고 이그나티우스를 복직시켰다. 그러나 불가리아 기독교가 서방에 속하는지 동방에 속하는지의 문제로 인해 서방교회와의 관계 개선은 물거품이 되었고, 10년 후 포티우스는 다시 총대주교로 돌아온다. 포티우스 분열은 동서 교회 대립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5. [5]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한 후 미카일 8세가 참가하여 동방교회는 신경의 '또한 성자로부터' 문구와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신앙의 전통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는 동방교회의 신도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큰 소용이 없었다.
  6. [6] 그러나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이 망해버렸다.
  7. [7] 신학, 한국정교회대교구, 2016년 9월 14일 열람
  8. [8]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교황 세르지오 1세에게 여기에서 결의된 102개조를 승인할 것을 강요했으나 교황은 거부했다. 이에 황제는 교황을 체포하려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오늘날 이 공의회는 정교회에서는 제5차, 제6차 공의회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가톨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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