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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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訣

1. 개요
2. 역사
3. 상세
4. 각필구결
5. 전산화

1. 개요

우리말로 '입겿'이라고 하고 '토(吐)'라고도 한다.[1] 이두와는 달리 한문 원문 어순은 유지하되 형식 형태소를 삽입한 표기법이다. 주로 한문을 익히거나 경전에 토를 달아 읽기 쉽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고, 본래의 한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이두와는 달리 위 사진과 표에서 볼 수 있듯 한자의 획을 따거나 기존에 있던 한자를 간략화했다. 한자의 일부를 따왔다는 점과 한문(백문)에 토씨를 표기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는 점에서, 훈독에 쓰이는 가타카나와 매우 비슷하다.[2]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한문을 읽을 때 문맥에 맞게 한국어의 토씨(조사 등)를 달아 읽는데(현토·懸吐), 구결은 보통 이 토씨를 원문 옆에 작은 글씨로 메모할 때 사용하였다. 한글보다 획이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구결이 계속 토씨를 메모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3] 현대에도 한문을 배우는 사람은 구결을 익혀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문 고전을 배울 때 구결로 토씨가 적혀 있는 책을 구해서 하는 경우가 꽤 있다.[4]

2. 역사

구결은 이 땅에 한문이 들어와 체계적인 학습을 하게 되면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에 대학(大學)을 세워 자제들을 교육하였으니 이 때에는 구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백제도 이 무렵에 박사(博士)가 있었으니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 있었고, 이에 따라 구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는 이보다는 늦지만, 진덕여왕(眞德女王) 5년(651)에 ‘국학(國學)’을 설치하였으므로, 이 때에는 경전(經典)의 구결이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다. 구결

3. 상세

구결은 한문 원문의 실질 형태소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석독(훈독) 구결과 음독 구결로 다시 세분되는데, 처음에는 전자가 주로 쓰였으나 후에는 대부분 후자를 이용하였다.

논어》의 첫 구절을 통해 음독 구결의 예시를 살펴보자.

《논어》 원문: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논어》 구결문: 學而時習之面 不亦悅乎牙(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한문 원문의 어순은 그대로 유지하되,[5] '面(면)'으로 어미 '-(으)면'을 나타냈으며,[6] '牙(아)'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아'를 나타냈다.[7]

한편 석독(훈독) 구결은 어순까지 한국어 식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의 사례를 보자.

《구역인왕경》 원문: 復 有 五道 一切衆生(부 유 오도 일체중생)

《구역인왕경》 구결문(약자): 復丷𠃍七𠂇㢱 五道 一切衆生.(또으며 오도 일체중생.)[8]

《구역인왕경》 구결문(본자): 復爲隱叱在旀 五道 一切衆生.(또으며 오도 일체중생.)

첨자로 쓰인 글자는 세로쓰기 구결문에서 오른쪽에 쓰인 글자이다. 아래 첨자로 쓰인 글자는 세로쓰기 구결문에서 왼쪽에 쓰인 글자이다. 읽는 방법은 우선 위 첨자[9]가 있는 것부터 읽다가 "."(점)이 찍힌 곳에 다다르면 거슬러 올라가 아래 첨자[10]가 있는 것부터 읽으면 된다. "또한 오도의 일체중생이 있으며(ᄯᅩᄒᆞᆫ 오도ㅅ 일체중생이 잇겨며)"가 된다.[11]

즉 실질 형태소를 음독으로 읽는 음독 구결은 한문 어순을 유지한 채 읽기에 순독 구결이라고도 하고, 실질 형태소를 뜻으로 읽는 석독(훈독) 구결은 어순까지 바꾸어 읽기에 역독 구결이라고도 한다. 한자를 읽는 방법에 주목하면 음독 or 석독(훈독), 한문을 읽는 방향에 주목하면 순독 or 역독.

상단의 방식을 쓰되, 글자로 쓰지 않고 점과 선의 부호로 쓰여진 구결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구결을 뾰족한 나무 모양의 '각필'로 새겼다고 '각필 구결'이라고도 하고, 점으로 되어있다고 하여 '점토 구결'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응하여 위처럼 글자로 된 구결은 '자토 구결'이라고 부른다.

구결은 지금도 한문 경전을 읽을 때 자주 사용된다. 한학자 어르신들께서 한문 원문 어순대로 음독하시다가 중간중간 넣는 '이/가, -하시니, -(으)면' 등이 바로 구결이다. 중·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의 한문도 독해를 돕기 위해 구결 비슷하게 되어있다. 위 논어를 설명할 때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등.

사서삼경을 읽을 때 현대까지도 구결을 붙어서 읽는 경향이 많아 현대의 출판물에도 한문 원문에 한글로 구결을 달아 놓는 경우가 많다.(조선시대 문집등을 볼때 유용하다)

4. 각필구결

각필구결(角筆口訣)

이전의 한문 경전을 훈독 및 현토(懸吐)하는 데 사용된 구결은 일반적으로 붓으로 쓴 묵서구결(墨書口訣)만이 알려져 있었으나, 이와는 달리 각필을 사용하여 종이에 눌러 쓴 구결 또한 존재했으며 이러한 구결을 일명 각필구결(角筆口訣)이라고 부른다.

현재 발견된 각필구결 문헌의 실물은 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시대 전기의 유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이미 삼국시대의 백제의 유물에서 각필로 쓴 문헌과 각필이 발견되고 있어, 그 연원은 상당히 그 보다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바야시 요시노리 교수에 의해 소개된 통일신라시대의 구결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문의요결(華嚴文義要決)』과 『판비량론(判比量論)』도 구결의 성립 과정을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이나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각필구결 문헌 중에는 조선전기의 것들도 있으므로 한국에서 각필구결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쓰였음을 알 수 있다.

日학자 "일본문자 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가능성"

‘가타카나 신라 유래설’ 제기한 일본 학자…“신라 입말 표기 ‘각필’ 볼수록 확신”

참고로 이 각필구결이 일본 가타카나의 기원이 아니냐는 의견이 히로시마(廣島)대학의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고바야시 명예교수는 "한자를 축약해 만든 가타카나의 근원이 한반도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5. 전산화

현재 유니코드에서는 몇몇 글자를 한자로 취급하여 실어두었다. 구결에서만 쓰이는 획을 생략한 글자들도 그냥 한자로 수록되는 중.

아래아한글에서는 구결을 별개의 문자로 취급하고 있고 유니코드의 PUA 영역에 대응시키고 있다. 일명 '한양 PUA'라는 코드가 바로 이것.


  1. [1] 구결 자체는 현대에 쓰이지 않지만 '남의 말에 토를 단다'는 관용어는 현대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2. [2] 아예 구결자가 가타카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있다. 각필연구 권위자인 히로시마대 명예교수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전래된 대방광불화엄경에 각필로 새겨진 구결과 훈점을 근거로 가타카나가 구결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3. [3] 단 '코'처럼 구결로 쓰기 애매하고 한글 획이 많지 않은 토씨의 경우 그냥 한글로 쓰기도 한다.
  4. [4]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편찬된 유교 경전이나 역사 책에 당대 유학자가 구결로 토씨를 달아 놓은 것을 현대에 다시 영인(影印)해서 출간한 책들이 있다. 오늘날 국내에서 한문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구매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5. [5] 한국어 어순대로 재조정하는 이두였다면 '不亦悅乎(불역열호)'를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 맞추어 '亦悅不乎(역열불호)' 정도로 바꾼 후 형식 형태소를 기입했을 것이다.
  6. [6] '面(얼굴 면)'의 음인 '면'을 빌렸으되, 실제 의미인 '얼굴'과 상관없으므로 음가자.
  7. [7] '牙(어금니 아)'의 음인 '아'를 빌렸으되, 실제 의미인 '어금니'와 상관없으므로 음가자.
  8. [8] 현대어로 의역한 것이다. 당시 구결문은 "ᄯᅩᄒᆞᆫㅅ겨며 오도 일체중생.".
  9. [9] 세로쓰기 기준으로 오른쪽 구결자
  10. [10] 세로쓰기 기준으로 왼쪽 구결자
  11. [11] '丷𠃍(爲隱)'은 'ᄒᆞ다(하다) 위(爲)'+'숨다 은(隱)'으로 구성되어 'ᄒᆞᆫ(한)'을 의도한 훈독자+음가자,
    '七𠂇㢱(叱在旀)'는 '꾸짖다 질(叱)'+'겨다(있다) 재(在)'+'땅 이름 며(旀)'로 구성되어 'ㅅ겨며(ㅆ으며)'를 의도한 음가자+훈독자+음가자',
    '七(叱)'는 '꾸짖다 질(叱)'로 'ㅅ(의)'를 의도한 음가자,
    '刂(是)'는 '이다 시(是)'로 '이'를 의도한 훈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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