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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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救癩
2. 일본어 くら
3. 대한민국의 지명
4. 속어

1. 救癩

하나이 원장의 한센병 환자를 생각하는 '선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는) 일본 나학계의 "나 예방법 폐지 요구"(1995)의 '통일 견해'에서 말하는 "구라의 기치 아래 격리를 최선책으로 믿고, 그에 생애를 바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조선의 나(癩) 정책과 의료에 관여했던 사람이었다.[1][2]

滝尾英二,[3] 《朝鮮ハンセン病史 - 日本植民地下の小鹿島(ソロクト)》, 2001. 한국어 번역본.

명사. 나병 환자를 구제함.

위의 예문은 일제강점기 나병환자 격리수용소인 소록도 자혜의원의 2대 원장으로, 강제노역과 거세, 인체실험, 인권 탄압이 만연하던 소록도 자혜의원을 정말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환자 중심 병원으로 바꿔 놔 '의료인다운 의료인'으로 칭송받았던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1863~1929, 구 일본 육군 2등군의[4])에 대한 내용이다.[5] 지금도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의 국립소록도병원 앞 공원에는 하나이 씨가 사망한 직후 이를 안타까워한 자혜의원 환자들이 세운 창덕비가 남아 있다.

가톨릭에는 나병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구라주일(...)이 있다. 위에 언급된 소록도 중앙공원에는 한센병 완치의 희망을 담은 구라탑이 있다. 소록도 기행문

2. 일본어 くら

곳간(倉)이라는 뜻이다.

3. 대한민국의 지명

4. 속어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

-

영화 타짜에서 아귀가 내뱉는 대사

기본적인 의미는 거짓말. 맥락까지 따진다면 속임수나 허풍, 허세, 페인트 등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초기 문헌으로 1964년 5월 6일 동아일보 기사 '어린이들의 은어 속어'라는 기사에서 구라푼다(거짓말 한다)는 용례로 수록되어 있다.

어원에 관하여 일본어 晦ます(くらます, 구라마스)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晦ます는 '행방을 감추다, 남의 눈을 속이다'라는 뜻인데 이게 한국 도박판 등에서 타짜들이 속임수를 써서 승부조작을 한다는 뜻의 은어였지만 이것이 확장되어서 거짓말, 속임수라는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는 일본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문단에서는 입담이 뛰어난 작가들을 구라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가 황구라로 불린 게 좋은 예. 문단의 보수성을 생각한다면 일부러 일본식 별명을 지어 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6]

게다가 정작, 일제 시대에 일본식 교육을 받은 어르신에게 여쭈어 보면 변말(속어)이다란 말씀은 들을 수 있어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단 주장은 없다. 과거 우리말 운동가들이 쓴 기고문에 쓰메키리, 벤토란 말을 쓰지 말자는 주장은 있었어도 구라가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글은 없었는데 최근에 인터넷상에서 이런 주장이 부쩍 잦은 것을 보면, 세대가 단절된 상황을 악용한 거짓 주장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앞서 언급된 구라마스 유래설만 하더라도 2010년대나 되어서야 인터넷상에 등장한 것이며, 정작 어르신 세대 사이에서는 들을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어 잔재에 관한 내용은 과거 신문 기사가 오히려 자세하다. 저 당시엔 일제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므로 기본적으로 일본어 지식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어감만으로 일본어라고 지레짐작하는 기사는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1984년 10월 27일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쓰이는 일본어를 총망라해 다루었으며, 그중에는 어르신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에또~(えーと:저 그건) 같은 말[7]도 언급되었지만, 구라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기사

구라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것 중 하나는 대지도론이라는 인도의 대승불교 스님이 만든 저서에 나오는 가라구라충이라는 곤충이다. 이 구라라는 곤충은 "그 몸뚱이는 미세하지만, 바람을 받으면 커져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라고 표현이 되며, 스님들께서 이야기해주신 바로는 풍파, 어려움을 만나면 점점 커져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곤충이라고 한다. 흔히, 거짓말을 하면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것이 불어나서 감당이 안된다는 비유를 구라에 빗대어 표현된 것이라고 불교 내에서 설법하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정작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인데 기레기들이 광복절이나 한글날 무렵에 걸고 넘어지는 단어다. 심지어 이 기사에선 맞춤법도 틀렸다.

한편 60대 이상 세대들 사이에서는 구라가 단순히 거짓말, 허풍을 일컫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복잡미묘한 뉘앙스가 있는 단어다. 링크

<꼬방동네 사람들>이란 소설로 유명한 전직 국회의원 이철용 씨는 구라를 세 종류로 정의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구라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쌩구라, 날구라, 왕구라지요. 쌩구라는 팩트 중심으로 유창하게 말하는 거고, 날구라는 믿거나 말거나 나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왕구라는 아름다운 구라지요. 문익환 목사님이 서울역에 가서 ‘평양행 기차표를 내놔라’ 하신 것처럼 불가능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런 게 바로 왕구라예요.

이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화술을 속되게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황석영도 그렇듯이, 작가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던 말이여서인지 국어사전에도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오늘날로 치면 '썰 푼다' 할 때 ''에 대응된다. 다름아닌 방송인 김구라가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표방하던 '구라'가 이 뜻에 가까웠다.

오늘의유머에서 이 단어의 어원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댓글을 보면 부산 남구 일부 지역에서는 처음에는 구다라고 하다가 나중에 구라로 바뀌었다고. 지역마다 방언이 존재하는 듯하다. 링크

그런데 사실 일본에는 비슷한 단어로 구라사이(グラサイ)란 단어가 있다. 다름 아닌 사기 주사위[8] 다만 도박 은어인 만큼 그다지 자주 쓰이는 용어는 아니기때문에[9] 정말 여기서 유래했는지, 유래되었다면 어떻게 한국에서만 이렇게 넓게 퍼졌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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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 사진은 소록도 자혜의원에 영구 격리된 환자(사진 오른쪽)와 그 미감염 자녀들의 월 1회 정기 상봉 장면. 언제 촬영된 사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센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나병은 전염력이 매우 약하기로 소문난 병이고, 요즘은 아예 발병 초장에 약 몇 번 먹으면 더 이상의 신체 손상도 막고 균을 소멸시킴으로써 손쉽게 퇴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나균은 부모-태아 간 수직감염 또한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 뿐. 완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끼리 한지붕에 부대끼고 살면 멀쩡한 가족마저 감염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 수용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시대적 무지의 소산이겠거니" 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넘어갈 수 있겠는데, 이런 슬픈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60년 동안 6천 명이나 데려다가 강제노역과 인체실험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는 것이 정말 비극.
  2. [2] "구라의 기치 아래 격리를 최선책으로 믿고"라는 대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첨언한다. 우선 '한센병 환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은 약물치료에 의해 병원균 사멸(=완치)이 가능해진 현대적 관점에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본 문장은 일본 의학계가 1995년 4월 13일 채택한 대정부 성명서에서 따온 것인데, 당시의 잘못된 치료법에 근거한데다가 파시즘까지 가미된 악법 '나 예방법(1907년 제정·1931년 개정으로 절대격리주의 방침을 채택·1935년 조선 도입·1953년 독립한 일본에서 또다시 제정)' 때문에 환자와 그 주변인이 막대한 고통을 받았음을 역사를 되짚어보며 재확인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참고로 문제가 된 '나 예방법'은 일본 내 환자와 일본 의학계가 한목소리로 법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투쟁을 벌인 결과 1996년에서야(...) 폐지됐으며, 위헌 판결 내리는 걸 대놓고 꺼리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2001년, 위헌 판결까지 나왔다. 위헌 판결 직후 보상 규정이 만들어져 일본 정부는 '나 예방법' 때문에 격리수용소에 갇혔던 사람에게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조선·대만·팔라우·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야프·마셜 공화국의 잴루잇 등 일제 식민지 지역의 피해자에게는 어떻게든 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엄청난 비난의 쓰나미가 몰아닥치는 상황을 맞았고, 일본 정부는 2006년 법을 바꿔 국외 피해자에게도 보상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일제강점기 한센병 수용소 생존자 중 상당수에 해당하는 약 580명 가량의 한국인에게 일본 정부가 바치는 직접적인 사죄의 말과 함께 인당 800만 엔의 일괄보상비가 지급되었다. 무슨 놈의 주석이 본문보다 더 길어
  3. [3] 타키오 에이지. 1931년생. 사망 여부 불명. 히로시마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향토 인권연구가. 본업은 히로시마 현 지방정부 교육공무원으로, 1992년 정년퇴임 후 현재 서점 운영 중. 히로시마현 현립도서관 부관장 역임. 2005년 현재까지 발표된 논문 및 저작 13편 전부가 근현대 일본, 특히 식민지 조선 지역의 한센병 정책에 관한 것일 정도로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4. [4] 나중에 소장으로 진급한다.
  5. [5] 하나이 젠키치 원장은 재직 중 석연찮은 이유로 사망하는데, 그가 실시한 개혁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소록도는 다시 생지옥으로 변한다. 1945년 조선 해방 직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의료진이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환자들을, 고흥군 본토에서 건너온 조선인 자경단의 손을 빌려 산 채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때 살해된 환자 72명, 직원 9명, 개신교 목회자 3명의 유골은 2001년 12월 8일 국립소록도병원 앞뜰에서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2013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소록도에서 폭행 또는 살해당하거나 강제노역에 동원된 사람의 수는 총 6,462명으로 집계되었다.기사
  6. [6] 문학인들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만약 문인들이 이를 일본어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작품 속에서 이러한 단어를 즐겨 쓴 황석영을 오히려 비난했을 가능성이 높다
  7. [7] 다만, 마~그냥이란 뜻으로 쓰이는 경상도 방언이다. 일본어에도 그런 말이 있긴 하지만, 뜻은 그럭저럭이므로 쓰임 자체가 다르다
  8. [8] 무게 중심을 바꿔서 의도적으로 특정 눈이 더 자주 나오게 만든 주사위를 가리킨다. 뒤의 사이는 주사위를 의미하는 사이코로(サイコロ)를 축약한 것이며 앞의 구라는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안정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ぐらぐら에서 왔다는 설(무게중심을 조작해서 불안정하므로)이 있다.
  9. [9] 구글 기준으로 2만건이 검색된다. 상호나 게임용어도 섞여있어서 실제로는 이보다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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