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

歐陽修[1]

1007년~1072년

1. 소개
2. 생애
3. 영향
4. 《추성부》(秋聲賦)
5. 참고자료

1. 소개

북송의 문인. 중국 산문의 대가. 자는 영숙(永叔)과 스스로 붙인 취옹(醉翁), 혹은 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인 '문충(文忠)'을 따서 후대 문인들에게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라고도 불렸다.

한글 발음이 비슷한 구양순(歐陽詢)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구양순은 6세기 말-7세기 초 사람으로 당나라 때 활약한 서예가로, 구양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2. 생애

구양수는 길주(吉州, 현 장시 성)의 여릉(廬陵, 현 지안 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지 3년만에 부친이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지냈고, 그럼에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아 1030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하지만 관직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036년 범중엄이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할 때 범중엄의 편을 들다, 범중엄이 귀양을 가게 되자 마찬가지로 이능(夷陵, 현 후베이 성)으로 좌천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7년 뒤 인종이 구양수를 불러 다시 조정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045년에 모함을 받아 또 저주(滁州, 현 안후이 성)로 귀양을 가고 만다.

그러다 9년 뒤인 1054년 이부류내전(吏部流内銓)이라는 관직을 얻어 다시 중앙에 진출하였고, 4년 뒤 한림학사 겸 사관수찬(翰林學士兼史館修撰), 즉 과거 시험관직을 맡아 자기 마음에 드는 글을 쓴 사람을 천거할 권리를 얻었다. 이 때 소식을 발굴하였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오르고, 증공의 추천을 받아 그의 친척인 왕안석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며, 1072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한 뒤 영주(永州)에서 사망한다.

야사 중에는 소동파를 차석으로 내린 원흉(?)이란 이야기도 있다. 구양수는 과거 시험의 채점관을 맡았는데, 당시엔 부정 채점을 막기 위해 답안지의 이름을 가리고 채점했다. 소동파의 답안을 본 구양수는 '이렇게 글을 잘 쓴 것을 보니 내가 아끼는 제자의 글이 틀림없다.'라고 착각하고, '글 자체만 놓고 봐도 장원급제 감이지만, 자칫 내 제자라서 점수를 잘 줬다고 뒷말이 나올 수 있으니 차석으로 점수를 주자'라고 생각해서 소동파를 차석으로 급제시켰다는 이야기이다.

3. 영향[2]

구양수는 주로 북송(北宋) 중기에 활동한 정치가이면서 사학가요, 경학가인 동시에 문학가이어서 북송의 정치 · 사상 · 문학 등의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먼저 사학(史學) 방면에서 그는 송기(宋祁) 등과 함께 편찬한 《신당서(新唐書)》외에도 자신이 저술한 《신오대사(新五代史)》가 있으니, 중국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가운데 그 한 사람이 양사(兩史)를 저술한 셈이다. 경학(經學) 방면에서 그는 《역경(易經)》 · 《모시(毛詩)》 · 《춘추(春秋)》 · 《예기(禮記)》 등의 유학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하였고, 만년에는 《육일시화(六一詩話)》를 집필함으로써 '시화(詩話)'라는 문학평론 장르를 처음으로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구양수의 가장 큰 업적은 문학 방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시, 사, 부, 산문 등 문학 장르의 다방면에 걸쳐 볼만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특히 산문 부분에서 더욱 큰 성취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송 양대(唐宋兩代)는 중국산문사에서 질적, 양적으로 가장 풍성한 수확을 하였던 시대이다. 특히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들을 중심으로 한 산문창작은 역대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당송팔대가들 중에서도 당대의 한유(韓愈) · 유종원(柳宗元)과 송대(宋代)의 구양수(歐陽修) · 소식(蘇軾)이 특히 주목을 받아왔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구양수는 만당(晚唐), 오대(五代)에 유행하였던 유미주의 문풍(文風)인 시문과 송대에 새로이 등장한 태학체(太學體)를 비판하면서 당대(唐代)의 한유가 지었던 그러한 산문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한유, 유종원이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사실상 계승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송대의 고문운동을 주도하면서 나름대로의 명확한 산문이론을 정립하고 실제 창작을 통해 그 이론을 실천함으로써 중국산문사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지만, 보다 신빙성이 있는 역사서에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일례를 들자면 《사조국사(四朝國史)》에서는 문장방면에서의 구양수의 업적을 "당대의 문장이 오대를 거치면서 피폐해졌는데 구양수에 이르러 다시 일어났다.(唐之文涉五代而弊,至修復起)" 라고 하였고, 《신종구사(神宗舊史)》에서는 "구양수의 문장이 나오자마자 천하의 선비들은 다 메아리처럼 흠모하여 따라 지음에 오직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니 일시에 문장은 크게 변하여 고문을 좇았다(至修文一出,天下士皆響慕,爲之惟恐不及,一時文章大變從古)" 라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구양수의 문학방면의 업적을 높이 평가함에 따라 여기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연구도 다방면에 걸쳐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구양수 문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경향 가운데, 이름난 개별 작품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이 가장 많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취옹정기(醉翁亭記)>에 관한 논문이 가장 많고, <영관전속(領館傳續)>에 관한 논문, <매유옹(賣油翁)>에 과한 논문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개변 작품 가운데에서도 특히<취옹정기>가 빈번하게 연구대상이 된 데에는 중국 대륙이나 대만에서 중학교 교재에 이 작품이 채택되어 있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들 작품 이외에도 개별 작품에 한정해서 분석, 해석한 것이 상당수 있으므로 구양수 산문에 관한 기왕의 연구는 주로 중요한 개별 작품별로 이루어져 온 경향이 있고, 또 개별 작품이 중시되고 있다. 구양수는 후배 양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는데, 아직까지 중국의 최고의 문장가로 여겨지는 소식(蘇軾)과 그 동생 소철(蘇轍) 역시 구양수의 제자였다.[3] 또다른 당송팔대가 일원인 증공 역시 구양수가 주최한 과거에 합격한 인물이다.

4. 《추성부》(秋聲賦)[4]

歐陽方夜讀書,聞有聲自西南來者,悚然而听之,曰:“異哉!”初淅瀝以蕭颯,忽奔騰而砰湃,如波濤夜惊,風雨驟至。其觸于物也,鏦鏦錚錚,金鐵皆鳴;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予謂童子:“此何聲也?汝出視之。”童子曰:“星月皎洁,明河在天,四無人聲,聲在樹間。”

  予曰:“噫嘻悲哉!此秋聲也,胡爲而來哉?蓋夫秋之爲狀也:其色慘淡,烟霏云斂;其容淸明,天高日晶;其氣栗冽,砭人肌骨;其意蕭條,山川寂寥。故其爲聲也,凄凄切切,呼號憤發。豊草綠縟而爭茂,佳木葱蘢而可悦;草拂之而色變,木遭之而叶脱。其所以摧敗零落者,乃其一氣之餘烈。夫秋,刑官也,于時爲陰;又兵象也,于行用金,是謂天地之義氣,常以肅殺而爲心。天之于物,春生秋實,故其在樂也,商聲主西方之音,夷則爲七月之律。商,傷也,物既老而悲傷;夷,戮也,物過盛而當殺。”

  “嗟乎!草木無情,有時飄零。人爲動物,惟物之靈;百憂感其心,萬事勞其形;有動于中,必搖其精。而況思其力之所不及,憂其智之所不能;宜其渥然丹者爲槁木,黟然黑者爲星星。奈何以非金石之質,欲與草木而爭榮?念誰爲之戕賊,亦何恨乎秋聲!”

  童子莫對,垂頭而睡。但聞四壁蟲聲唧唧,如助予之嘆息。

이하의 내용은 나무위키에 한하여 직접 번역한 것으로, 구양수의 당시 상황과 추성부의 내용을 다소 결합하여 원문과 조금의 차이가 있다.

내가 변량으로 돌아온 지 10년째이다. 그리고 나의 나이 역시 어언 쉰을 넘었다. 눈은 이미 잘 안보이고, 왼쪽 어깨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딱히 이룬 것 없이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남은 것은 노쇠한 육신과 피폐한 정신밖에 없구나.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뛰어난 인재라고 나를 추켜 세워줬고, 나 역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아래 나의 지기들과 동분서주 뛰어다녔고, 그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면서 살아왔으며, 얼마 전까지 뛰어난 후배를 양성하는 것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였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진 요즘 매일 밤 고독히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없구나.

지금 내 상황은 저주에 있을 당시보다 훨씬 좋다. 몸은 술에 취해있었지만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남아있었고, 아직까지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보잘것없는 늙은이로구나. 매일 나의 눈은 책을 향하고 있지만,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알 방법이 없도다. 나의 작은 방안을 채워주던 불빛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나의 눈이 또 말썽이구나. 갑자기 빗소리가 들리는 구나,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는 여름을 슬퍼하여 하늘이 울고 있는 모양이다.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은 더욱 처량해지는구나. 빗소리에 섞여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소리와 빗소리는 점점 사나워지고, 물건에 부딪쳐 쇠붙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비명소리에 이어 이제는 재갈을 물고 적을 습격하러가는 병사들의 발소리와 말 발굽소리가 나의 귀를 넘어 마음까지 진동을 하게 하는구나.

문 밖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렇게 늙고 힘없는 나의 소소한 즐거움인 명상을 방해하는 것인가? 문을 열려고 왼쪽 팔을 올리니, 팔을 잠깐 올라가다, 힘없이 떨어졌다, 몇 번 힘을 주어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꼬마를 불렀다. 불러도 별 다른 응답이 없었다. 배에 힘을 주고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부르니 옆방에서 눈을 비비며 꼬마가 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 보아, 밖에서 나는 소리의 근원을 알아보라 명하였다. 꼬마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발을 끌고 나갔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내가 만약에 다시 꼬마와 같이 된다면, 나는 좀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이없는 생각들로 나의 머리는 다시 한 번 복잡해지고 있었다. 밖에서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이어 방의 문이 열리고 꼬마가 들어오며 이야기하였다.

  “어르신, 후예가 태양이라 생각해서 활시위를 당길 것 같이 빛나는 별들과, 항아가 보일 듯이 밝은 달이 떠 있습니다. 그리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고 해도 믿을 만한 오작교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집 주위로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고 오로지 바람이 나무사이를 지나가서 나는 소리밖에 저는 듣지 못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일인가? 이제 나의 귀마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착오를 일으키는 것인가? 상실감은 다시 한 번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마음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이미 무더운 여름은 끝이 나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요즘 통 밖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다 보니 가을이 온 것을 알아채지 못 하였구나. 지금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자연이 가을을 알리는 소리구나.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 이렇게 일찍 왔는가?”

꼬마는 옆에서 멀뚱히 나를 바라보았다. 가을의 모습은, 그 색깔은 참담하여 안개처럼 흩어지고 구름은 걷히고 하늘은 끝이 없이 높아지고 태양은 찬란하다. 하지만 가을의 기운은 살을 파고들어 뼈 속까지 찌른다. 가을은 산과 물 자연을 고요함으로 채색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인지 가을은 애잔하게 흐느끼다, 포효를 한다. 풀은 가을이 오기 직전 생명의 푸른빛과 무성함을 경쟁하듯이 뽐을 내고, 나무들은 총롱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생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가을에 스친 풀은 본연의 푸름을 잃고, 나무 역시 가을과의 조우에서 생기를 잃는다.

가을과 만난 생물들이 이렇게 활기를 잃은 것은 가을은 사구(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형벌을 집행하던 계절이고, 사시절로 본다면 음에 속한 때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또한 병사들의 무기의 형상을 띄고 있고, 오행에서는 물을 제압하는 금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그 뜻은 생명의 생기를 뺏는 것이 목적이니라. 천하 만물은 봄에 생명력을 얻고, 가을에 결실을 맺게 되어있다. 서방의 상성이 가을을 의미하고, 12율 중 이칙은 7월의 음률로 가을 석 달 중에 첫 달인 맹추에 해당된다. 상은 슬픔을 뜻하며, 만물의 노쇠를 슬픔이고, 이는 죽는다는 의미이니, 만물이 번성함이 지나면 당연히 죽게 된다.

슬프도다. 자연 속 풀과 나무는 영혼이 없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생명을 다하지만, 유일하게 영혼이 있는 사람은 자연의 무심함을 영혼으로 느끼고, 만사의 수고로움이 몸이, 그 정신을 뒤흔들 것이다.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 앞에 대항을 하려고 해보지만 도리어 자신의 무능함을 느껴 한탄하게 된다. 한낱 만물중 하나인 나에게도 가을을 점차 다가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을 보라. 붉은 빛이 감돌던 나의 육체는 가을을 조우한 고목과도 같고, 윤기 있고 힘 있던 나의 머리는 이미 새 하얗고 힘없는 파뿌리와도 같다. 나는 불변하는 금속이 아니다, 무심한 하늘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나에게 다시 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이미 만개를 했다는 것인데, 낙엽처럼 떨어질 만개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에게 이런 상실감을 주는 가을은 나의 초여름을 달궈주었던 전유연 선생에게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소식ㆍ소철 형제, 증공 등에게도 찾아 올 것이다. 이렇게 공평한 가을을 어떻게 한스럽게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지금까지는 가을의 소리를 느끼지 못 하였는가? 문득 내 앞에서 골아 떨어진 꼬마를 보았다. 가을의 소리는 가을이 되어서야 들리듯이 아직 인생의 봄에 있는 꼬마는 이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릴 턱이 없을 것이다. 나도 봄과 여름을 지나쳐 왔으니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번역은 직역보다는 상당한 의역이 들어간 것으로 직역을 하자면 아래와 같다.

구양자가 바야흐로 밤에 책을 읽고 있을 때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음이 있었다.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듣고 말하길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쓸쓸한 바람소리로써 부시럭거리더니 갑자기 큰 물결이 달려 올라 솟구쳐 가듯 한 것이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밤에 놀라 비바람이 달려 이르는 듯 하였다. 그것이 물건에 부딪힘에 쨍그렁 쨍그렁 하며 쇠붙이가 모두 울고 또 적에게 이르는 병사들이 재갈을 물고서 거세게 달리는 듯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고 다만 사람과 말들이 달리는 소리만 나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이르기를 "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네가 나가서 그것을 보아라." 하니 아이가 말하길 " 별과 달이 밝고 맑으며 하늘엔 밝은 냇가가 있고 네 군데에는 사람의 소리가 없으니 소리가 있는 것은 나무 사이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길 " 아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이다. 어찌하여 온 것이냐. 무릇 저 가을의 생김새란 그 빛깔은 슬프고 맑으며 안개는 연기처럼 날아가고 구름은 거두어진다. 그 꼴은 맑고 밝으며 하늘은 높고 해는 밝게 빛난다. 그것의 기운은 떨릴만큼 차가워 사람의 가죽과 뼈를 돌바늘이 파고드는 것과 같고 그 뜻은 쓸쓸한 가지처럼 뫼와 내가 아무소리도 없이 텅 비게 된다. 그러므로 그 됨됨이가 있었다. 서글프고 끊을만큼 울부짖으면서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살진 풀들은 푸르게 꾸며서 우거짐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는 파바구니처럼 되어 기쁠 만한데 풀들이 그것을 떨치면 빛깔이 바뀌고 나무는 그것을 만나면 잎이 떨어진다. 그것이 꺾여져 지고 시들어 떨어지는 까닭은 바로 그 하나의 기운이 남긴 매서움이기에 그런 것이다. 저 가을은 다스리는 벼슬아치요. 때에 있어서 그늘이고 또한 싸움을 나타내며 오행에 있어서는 쇠를 뜻함이다. 이는 이르길 하늘과 땅의 바른 기운이니 늘 매섭게 죽임으로써 마음을 쓴다. 사물에 하늘이 하는 것은 봄에 나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게 함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악에 있어서는 상성으로 네 군데의 소리를 아우르고 이칙으로는 일곱째 달의 음율이 됨이다. 상은 다치는 것이다. 사물이 이미 늙어서 슬프고 다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잡아 죽인다는 것이니, 만물이 크게 일어나는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아아, 풀과 나무는 느끼는 바가 없건만 때가 있으니 바람이 날려 떨어진다. 움직이는 만물 중에서 사람이 된것은 오직 넋이 있는 사물이라 많은 온갖 걱정이 그 마음에 느껴지고 많은 일들이 그 몸을 힘들게 한다. 마음 가운데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뛰어나게 좋은 것이 흔들리게 되니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아니하는 바를 생각하면 그 슬기로는 할 수 없는 바에 걱정하게 되어서 마땅히 그 두텁게 붉은 것이 마른 나무가 되고 새까맣게 검은 것이 별처럼 희끗희끗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쇠와 돌의 바탕도 아니면서 풀과 나무와 더불어 영예를 다투고자 하는가.생각컨대, 누가 저것을 죽이고 다치게하고 있기에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스러워 하는가" 하니 아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자고 있다. 다만 네 군데의 벽에서 벌레 소리만 찌륵찌륵 들리는데, 나의 한숨쉬는 것을 돕는 듯 하구나.

5. 참고자료

  • 구양수, 「구양수 산문선」 ,노장시 옮김, 명문당, 2004.
  • 구양수, 「신주 당송팔대가 문초 - 구양수」, 이상하 옮김. 전통문화연구회, 2009.
  • 한지희, 「구양수의 생애와 작품연구」 석사학위논문 - 성균관대학교 : 중국어교육전공 2007. 8.
  • 출처: https://hwalove.tistory.com/entry/추성부秋聲賦-구양수歐陽修 [빈막(賓幕)] 번역 충남대 한문학과


  1. [1] '구양'이 성이다. 참고로 현대 표준중국어 발음은 Ōuyáng Xiū이다.
  2. [2] 구양수, 「구양수 산문선」, 노장시 옮김, 명문당, 2004. 작가의 말 참조
  3. [3] 소식뿐 아니라 그의 가문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구양수이다. 소식의 아버지 소순(蘇洵)이 쓴 문장을 받아 그 진가를 알아보고 조정에 그를 천거하였기 때문이다.
  4. [4] 구양수, 「신주 당송팔대가 문초 - 구양수」, 이상하 옮김. 전통문화연구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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