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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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수형생활
3. 처우
4. 사형수
5. 연혁
6. 관리 문제
7. 민간인이 수감되는 경우

1. 개요

당연하겠지만, 영창이 그냥 커피라면 교도소는 TOP 커피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군사 교도소이다. 흔히 "희망대"라고도 부른다.[1] 국내 관영 교도소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법무부 소속이 아닌 곳이다. 명칭은 교도소이나, 사형수 등 미결수도 수감하는 구치소 기능도 한다.[2] 소장은 각 군 헌병병과 중령이 맡는다. 군 교도소이므로, 교도관 역할은 교정직공무원이 아닌 헌병들이 맡는다. 홈페이지여기다.

모든 군종의 1년 6개월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3] [4]과 군 사형수[5], 또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군대와 관련된 사고를 친 민간인 범죄자(군무원)를 수용한다. 장교준사관,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부사관, 이들에 상응하는 계급을 받고 장기 근무한 군무원은 수감 기간과 관계 없이 무조건 수감되므로 무기수나 장기수도 의외로 많다.

2013년까지는 영관급 장교위관급 장교, 준사관, 중사 이상 부사관들은 병, 하사와는 달리 독방을 쓰며, 괜히 사고치다가 독방에 수감되는 병들 역시 장교 및 부사관들이 생활하는 "장교동" 이라는 독방에서 생활하는데 이게 은근히 폐쇄공포증을 가지고 온다. 교도소 내부 구조는 구치소 성격의 "미결수"동 형이 확정된 "기결수"동 그리고 위에서 언급된 사형수와 영관 및 위관장교 그리고 중사 이상의 부사관이나 장교들이 홀로 생활하는 "장교동"이 존재한다. 미결수 간부들은 부사관과 위관, 영관으로 나누어 혼방을 사용하며, 형량이 확정되어 기결수가 되면 계급과 상관없이 여주교도소로 이송된다.

2. 수형생활

이곳에선 죄수라고 불리지않고 수련생으로만 불린다.

죄수복 색상은 미결수가 갈색, 기결수가 하늘색이며, 사형수는 형이 집행되지 않았기에, 미결수 갈색 죄수복을 입으며, 죄수복에는 일반 교도소와는 달리 상의 뒷면에 "희망" 이라는 큼지막한 글씨와 하의 허벅지 양쪽에 희와 망이라는 글씨가 써진게 특징. 일단 군법상의 죄를 짓고 들어오면, 우선 해당부대 영창에서 구속수사를 한뒤에 해당사단 혹은 군단의 군사법원에서 1심 판결 후 국군교도소로 이감된다.

미결수인 경우엔 아직까진 군인의 신분이기에 월급이 지급되며[6], 재판 출석 시에도 군복으로 갈아입고 재판에 임한다.[7]국군 교도소로 미결수 동에서는 열심히 반성문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항소심의 경우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이뤄지며[8],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집행유예가 아닌 형 확정후 1년 6개월 미만의 경우는 기결수 동으로 옮겨지며, 2년이 넘으면 여주교도소로 이감된다.

3. 처우

죄수복의 경우 피복은 하계, 동계용으로 2벌을 지급하고, 식사 역시 수감된 방이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함을 원칙으로 한다. 단 식사의 경우엔 해당 부대의 급양식단과 똑같은 식단으로 먹는다.[9] 2004년 여름을 기점으로 국가 인권 위원회의 권고로 교도소내의 PX를 열었으며,[10] 병 기결수동 내부에 개인샤워시설이 생기고, 하루 저녁 8시마다 1시간만 볼 수 있었던 뉴스시청시간을 2시간으로 늘리는 등[11] 수감자의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말에는 철 지난 영화겠지만, 영화감상 역시 가능하다.[12] 운동 및 체육활동은 우천시를 제외한 하루 한번 오전 및 오후시간까지 허용된다. 하지만 단체로 나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종교행사 역시 일요일에 주 1회 참석이 가능하다. 주로 여가활동으로는 독서가 있고,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최대 5권까지 책 대여가 가능하다. 물론 독방수감자 역시 대여는 가능하지만, 도서 목록에서 선택하면 교도병들이 방안으로 넣어준다. 부식같은 경우도 건빵이나 사발면같은 간식도 정말로 잘 주는 편. 주 1~2회정도 단체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가 허용된다. 허나 자살이나 자해의 문제로 샴푸같은 액체세제는 불허, 무조건 비누같은 고체세제만을 허용한다.

의료 및 건강상의 문제로 교도관에게 얘기하면, 한달에 한두번정도 해당부대 군의관이 와서 진료를 해주며, 질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외진이 가능하다.[13]

기결수 확정후 일단 징역형이기에 일을 해야되는데, 여기서 기술교도대 출신 기간병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급여도 지급된다. 일을 함과 동시에 한식 중식 조리사,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 그리고 자동차 정비기능사 그리고 전기 및 가스용접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2014년 이전까지는 육군교도소라는 이름으로 육군본부 인사사령부에서 관리 및 운영하였기에 해군(해병대 포함), 공군 소속의 교도대상자는 모두 위탁받아 수용했다. 소속이 바뀐 이후 해·공군 및 해병대 헌병 등이 배속되었다. 해군의 2차 발령지 겸 공군의 무덤이 하나 더 늘었다.

수감자가 탈옥할 경우, 인근의 육군 제7강습대대 5분대기조가 출동하여 탈옥수를 체포한다.

과거엔 남한산성 근처에 있었기에 '남한산성'이라는 은어도 있었다(당연히 지금은 사어가 된 상태).[14]

국군 장병들이 사용하는 침대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15] 법무부나 민영 교도소처럼, 이곳에서도 출소 후를 대비한 직업 훈련 등의 일환으로 교도작업을 하는데, 군부대에 들어가는 비품 일부가 이 곳 수감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수감자 숫자를 생각하면 모든 군납 비품을 거기서 만들 수 있을 리는 없고, 대부분은 각 군 군수사령부에서 민간 업체를 통해 구매한다.

구 육군교도소 시절부터, 경찰서 유치장과 마찬가지로 수감자가 0명이 되면 백기를 올리는 규정이 있었다. 육군교도소 시기 창설 이래 딱 한번 잠시 올라간 적 있는데, 이는 경찰서에서도 작은 단위 경찰서에서나 어쩌다 가끔 있을 만큼 드물다.

요즘은 꽤나 처우가 병사보다 좋아져서인지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최신영화를 주 2회본다.

군대 내에서 동성간 성추행을 저질러 여기로 온 사람들은 그들끼리 따로 수감시킨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샤워를 할 때도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이유로 교도병들이 뒤에서 감시를 한다고 한다.

4. 사형수

2016년 기준으로 4명이 있는데, 전부 병 출신으로 육군 3명, 해병대 1명이다. 언론과 나무위키 관련 문서에 실명이 공개되어 있어 그대로 작성한다. 입소 순으로 작성.

  • 김용식

1996년 10월 1일 강원도 화천군의 육군 제7보병사단에서 당시 상병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인질극을 벌이다 2시간 반만에 투항하였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중 일어난 일이고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길 때 일어 났던 사건이라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 기사도 사건이 일어났다고 짤막하게 보도된 게 전부이다.

1985년 제28보병사단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 이후로 한동안 군인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았고[16] 이후는 사형집행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여서 국군교도소의 최고참이다. 짬밥이 교도소장이랑 비슷하다. 신학대 과정을 공부하고 소내 이발 봉사, 각종 작업, 교회 집사(!)[17]등을 하고 있다. 헌병이나 수감자들이 '사람 좋은데(!) 대체 왜 사형수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보인다. 실제로도 모범수이다.[18]

  • 김동민

530GP 사건, 소위 김일병 사건의 그 김일병이다.

사건후 5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생활을 하였다. 교도관, 수형자와 일체 대화를 하지 않고 종교 생활도 하지 않으며 밥도 식당이 아닌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다. 5년이 지난 2010년정도 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풀려 혼자 화초도 키우고, 동물도 돌보고 다른 수형자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어쩌다 한번 교회도 가고 판타지 책도 잘 읽는 편. 10년간 독거 생활만 고집 하다가 2014년~2015년에는 김용식과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조금 밝아 졌다. 목격자에 의하면 깔깔이에 슬리퍼 끌고 여유있게 걸어 가는데, 나이도 많고 머리도 길어서 간부 수형자인지 알았다고 한다.

유족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가족이 북한군에게 죽었다고 믿고 있어서 최근까지도 국군 교도소로 찾아와 동민이를 만나고 싶다고 면회 신청 하고 있다. 이에 김동민 일병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

  • 김민찬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소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이다. 아직까지 교도소에 적응 못하고 욱하는 성질을 보이고 있다.

  • 임도빈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그 임병장이다. 재판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다.

민간 교도소에서는 사형수의 경우 무기수가 가석방 받을 수 있는 기준인 징역 20년의 1/3정도가 지나야 적응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까지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에만 처박혀 있거나 말 안듣고 싸움질 하는 등 개판으로 생활한다. 1/3 시점이 지나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2/3정도가 지나면 슬슬 무기수로 감형 받기 위해 행형점수에 신경쓴다.

그러나 법정 유기 최고형이 징역 15년에 가중시 20년에서 2010년 10월 16일부터 징역 30년에 가중시 50년(...)으로 늘어 나면서 다 포기하고 개판치면서 살고 있다. 2010년 이전 기준으로 무기수는 빠르면 징역 18년 정도만 살고 출소하고 늦어도 21년 정도 살고 출소 했다. 2010년 이후에는 몇년간 출소자가 없다가 최근들어 고령의 모범수의 경우 징역 상한선에 가까운 27년째에 가석방 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국군교도소의 사형수 4인방도 대략 수형생활 30년을 전후하여 무기로 감형 받고, 무기수로 좀 더 살다가 언젠가는 가석방 될 것이다. 민간교도소의 사형수에 비해, 국군 교도소는 사건 발생시 나이들이 워낙 어리니 가석방 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국군교도소 수용복 등짝에 찍힌 두 글자가 "희 망" 이다. 재소자들에게는 출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목숨만 부지할 뿐이지, 사회생활 할 수 있는 청/장년 시절을 교도소에서 다 보냈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봤자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고, 석방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령에 의한 자연사혹은 질병 등으로 인해 비유적으로 형이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

5. 연혁

  • 1949년 3월 1일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육군형무소로 창설
  • 1950년 12월 18일 - 대구광역시로 이동
  • 1955년 7월 21일 - 부산광역시 서면으로 이동. 당시 위치는 경남공업고등학교 옆이었다.
  • 1962년 6월 28일 - 경기도 성남시로 이동, 제1·2교도소로 분할
  • 1979년 7월 1일 - 제1·2교도소 통합, 육군교도소로 개칭
  • 1985년 10월 22일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이동
  • 2014년 11월 21일 - 대한민국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기관으로 변경 및 국군교도소로 개칭

6. 관리 문제

국군교도소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반교도소와 달리 더 엄격하게 관리할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엔 언론을 통해서 수감자 관리가 일반교도소보다 더 허술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이 다른 수감자들을 상대로 6개월 동안 폭행, 성추행[19]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것이 드러나 추가 기소되었는데, 이찬희 병장을 비롯한 수감자들의 관리를 간부 헌병 간부가 아니라 헌병 병들이 관리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던 게 이전까지 병 계급으로 이찬희 병장처럼 잃을 게 없는 상황에 놓였으면서 잃을 게 많은 단기 수감자들만으로 구성된 감방에 갇힌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20] 즉 잃을 게 없어진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 군교도소 측이 경험이 없었기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후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국군교도소장이 이 병장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 문제를 계기로 교도직 대한민국 군무원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래 이찬희 병장 같은 경우는 형이 확정될 경우 법무부 산하 민간 교도소로 이송되어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국군교도소에 수용했던 것.

군 교도병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국군교도소라고 하니 굉장히 특수한 부대같고, 특전병이나 해병대처럼 자원자 혹은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진 인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렇듯이 뺑뺑이를 통해 우연히 자대가 국군교도소로 배치된 인원들에 불과하다. 즉 그냥 군복무를 하러 입대했다가 그냥 헌병으로 뽑힌 다음 그냥 뺑뺑이 돌려서 국군교도소로 배치받은, 일반 육해공군 병들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헌병이라서 평균 신장은 조금 큰 편이지만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특히 해공군 헌병은 경계헌병 수요 때문에 체구가 작은 경우도 쉽게 뽑힌다. 요약하면 흔한 인남캐 A다.

반면 이들에게 요구되는 근무수준은 절대 쉽지 않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일과표에 따른 수용자 통제, 이동소요에 따른 계호, 외부 계호, 수용자간 혹은 수용자와 근무자간 마찰 중재[21], 돌발 상황 대처[22]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가 주어진다. 불침번이나 위병소와는 비교를 불허하며 당연히 영창 근무보다도 어렵다. 단순히 암기해야할 사항도 행정병급으로 많으며 외운다고 끝이 아니라 몸으로 완전히 체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 문서에는 "교도병은 2~3일 교육만 받으면 바로 배치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라고 적혀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간부나 병사/수병들도 근무난이도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신병은 절대로 혼자 근무에 투입되지 않는다. 헌병 병과 특유의 지독하게 길고(...) 주말을 가리지 않는 근무를 선임병과 함께 3~4주간 근무를 서면서 배우게 된다. 아마 "교도병은 2~3일 교육만~"하는 구절은 일반 영창 근무자의 사례를 교도소 근무자도 똑같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선임병과 함께 근무 투입한 신병을 정식 근무자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3~4주도 완전히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그런데 위의 문제점들은 진짜 문제점이 아니다. 교정직공무원들이라고 해서 죄다 우락부락한 떡대들인 것도 아니고 평범한 남성이라는 건 반대로 말하면 특별한 결격사유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근무난이도도 병으로서 어려운 수준일 뿐 정말로 교정직공무원들처럼 서류작업이나 수용자 상담같은 고급 임무는 당연히 맡기지 않는다. 일반 영창보다는 훨씬 복잡하지만 결국 교도관의 손발로써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재능없는 사람이라도 몇 달을 근무 서다보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한다. 진짜 문제점은 처음 서술한 바와 같이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냥 기간병이라는 것이다. 일단 책임감이 부족한 인원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23] 그리고 결국 이들은 전역한다. 열심히 키워서 숙련된 근무자로 만들어 놨더니 사회로 나가버리고 새로 들어오는 신병은 또다시 까막눈(...)이 돼버리는 이런 현상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간병을 모조리 다 없애고 그 자리에 전문하사를 넣는 편이 현재로서는 최선책이다. 적어도 1년은 더 복무하는 데다가 전문하사는 그래도 급여다운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7. 민간인이 수감되는 경우

국군교도소에 민간인 신분으로 수감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군형법이 군인 및 군무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군무원들이 수감된다.

  • 초병 폭행
  • 초병 폭행 후 초병의 개인화기 탈취
  • 독극물 살포
  • 군사기밀 유출[24]

민간인은 군사재판을 받을 경우 국군교도소로 가지 않고 법무부 교도소 및 소년교도소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헌병 대령출신인 자가 징역 12년을 선고 받고 장교동에 수감되었는데, AH-1H 코브라 관련 문제로 287억의 뇌물을 받았는데, 대부분 재산을 은닉했고 군검찰에서도 찾지 못 했다고 한다. 2017년 년 현재 이미 출소한 것으로 추측된다.


  1. [1] 예전에 있었던 성남시 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예) 희망대공원, 희망대초등학교
  2. [2] 이건 몇몇 일반 교도소도 똑같다.
  3. [3] 1년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그 즉시 제2국민역에 편입되어 전역 처리되고, 6년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아예 군번이 말소되어 소속군에서 제적된다.
  4. [4] 수감 도중 복무 기간을 채우면 전역 조치하고 법무부 산하 교도소로 넘어간다.
  5. [5] 군 사형수들은 사형 집행이 군형법 제 3조에 따른 총살형이라 총살형을 집행할 수 없는 법무부 산하 구치소 및 교도소인 법무부 교정 기관으로 이송하지 않는다. 다만 군 사형이 1986년 이후 중단되었기에 현재는 사실상 무기 금고수로 처우하고 있다.
  6. [6] 이는 영창에서도 똑같다. 아직까진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7. [7] 1심 재판은 해당 부대에 인근한 군 재판소에서 이뤄지고 판결 뒤 교도소 수감후 2심 재판은 용산에 국방부 고등재판소에서 이뤄진다.
  8. [8] 호송차량를 타고 이천에서 서울 용산까지 간다.
  9. [9] 단 사고 치고 독방 수감 시 식판구멍 밑으로 직접 식사를 갖다준다(...).
  10. [10] 영치금이나 기교대 노역급여로 계산가능하다. 농협체크 카드가 쓰인다.
  11. [11] 주말의 경우, 검열을 거친 음악프로그램 등 뉴스 이외의 TV시청도 가능함.
  12. [12] 그래도 비디오 출시 후 3개월정도가 지난 영화를 틀어준다.
  13. [13] 굳이 하고싶겠는가? "희망"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수도병원을 가면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데도(...), 물론 미결수는 전투복을 입지만, 포승줄을 착용하고 고무신을 신은 상태로 이동한다. 오히려 명찰이 노출되어있어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로는 명예가 훼손되기도 한다.
  14. [14] 현재 이 자리에는 창성중학교(구 창곡중+창곡여중+영성여중, 2017년부터 통폐합)와 한국폴리텍1대학 성남캠퍼스가 있다.
  15. [15] 예전엔 주로 책상을 만들었다.
  16. [16] 당시 고등군사법원의 판사가 사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이 컸다.
  17. [17] 교도소 내에도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회, 성당 등이 있다. 별명이 아예 집사(2번 의미)인데, 소내 온갖 잡일도 하고 있어서 1번 의미로도 말이 된다.
  18. [18] 어느날 밤 방에서 계속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 교도병들이 달려가보니 이불 속에서 그거 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수감생활이 길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넘어가줬다고.
  19. [19] 성기노출, 타 수감자를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오줌을 갈김.
  20. [20] 재소자들은 원래 반성과는 별도로 교도관의 말은 꽤 잘 듣는 편이다. 어차피 사회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군교도소에 수용된 인원들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간교도소에 비해 형이 평균적으로 짧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는데 바로 사형수, 무기수, 그리고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기수들이다. 물론 군교도소 측도 이걸 알기 때문에 직업군인 출신 장기수나 병 사형수들은 당연히 별도로 관리하므로 사고를 치지 않지만, 이찬희 병장은 흔치 않은 병 출신 장기수였기에 관리를 어떻게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날뛸 만한 조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1. [21] 사태가 심각해지면 교도관이 해결하지만 사소한 수준의 마찰은 대개 근무병이 해결하고 추후 보고한다.
  22. [22]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뜬금없는 환자 발생, 문제있는 수용자의 난동을 비롯한 기행, 수용자간 통방 등등 예시를 들면 끝도 없다.
  23. [23]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이 병장이 교도소 내에서 행패를 부렸을 때 피해자의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그냥 지나간 것은 이렇듯 책임감도 권한도 없는 병들이 있기 때문이다.
  24. [24] 완벽한 민간인은 어렵고 주로 군무원들이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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