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인쇄창

대한민국 국군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열악한 와중에도 수많은 공보물과 교본등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러나 군외 민간인쇄업자에게 의뢰한 특성상 군사인쇄물의 정보유출은 막을 수 없었고, 군에서도 자체적인 인쇄조직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창설되었고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에 의해서 육군인쇄창령이 제정되면서 육군인쇄창이 존립근거가 마련된다. 이후 공군과 해군에도 각각 인쇄창이 창설된다.

인쇄창 중 장비와 규모가 가장 방대한 것은 육군이었으며 국직부대 인쇄물도 위탁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육군인쇄창은 해군과 공군이 군수사령부와 통합된 것과 달리 각 야전군사령부가 위치한 지역에도 예하조직을 편성하였다. 육군인쇄창 본부는 1993년까지 부산에 위치해있었다가 계룡시로 이전하였다.

1970년대 까지 국내에서 대량의 인쇄와 제본을 할 수 있는 곳이다보니 일부 민간부문의 출판물도 위탁받아 처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국내 인쇄역량이 크게 성장하면서 군사정보 인쇄에 집중하였다. 대부분 군내에서만 유통 소비되는 인쇄물은 대부분 인쇄창에서 제작한 것이다.

인쇄창의 조직구성은 대부분 간부 + 군무원이며 극소수의 병사로 구성되어 있다. 애초에 전문조직이다 보니 병사는 거의 경비요원이나 업무보조요원 정도로만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가장 많이 공격받는 조직이 되었다. 가뜩이나 전방이 병력부족으로 허덕이는데 충분히 민간위탁도 가능한 인쇄부문에서 간부와 병사를 별도로 배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후 국방개혁 추진과 더불어 점차 간부와 병사의 배치를 줄이고 군무원 비율을 계속 늘리며 최후인 2009년에는 아예 삼군의 인쇄창을 합병하고 국직부대로 변경하여 국군 인쇄창을 창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군인쇄창 병력은 대대급 규모에서 2개 중대급 규모로 줄어들었다. 얼마나 군무원 비율을 늘렸던지 2009년 창설 당시에는 창장부터 직원들까지 260명 전원이 군무원으로 채워졌다. 초대 인쇄창장의 경우 육군 인쇄창장이었던 김도필 대령이 전역 후 군무원 신분에서 다시 국군인쇄창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선일보는 여기에 대해서 민간공모직임에도 불구하고 군 출신이 임명되었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1대 김도필 창장 이후 2대 창장은 학군 18기 이재수 예비역 대령이 맡았으며 2016년 현재 육사 40기 박진학 예비학 대령이 3대 창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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