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PC

1. 개요
2. 국민PC의 탄생 배경
3. 국민PC의 사양과 가격
4. 국민PC의 영향
5. 다른 나라의 국민PC

1. 개요

1999년 10월 20일부터 김대중 정권인 국민의 정부 당시 PC 보급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국민PC 사업의 결과 보급된 컴퓨터를 칭하며 다른 말로는 인터넷PC라고도 한다. 셀러론으로 무장한 100만원 짜리 컴퓨터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스펙과 타협하여 좀 쓸만한 PC는 120~150만원선에서 보급이 되었다.

본 사업의 이전이었던 1980년대에도 정부 주도로 컴퓨터를 보급하기 위한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이 2차례 있었다. 1983년에 시행된 8비트 컴퓨터 보급을 위한 1차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은 업체의 능력 부족 및 국민의 인식 부족, 국민 경제 환경의 미성숙 등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사업 자체는 성공적이지 못했더라도 이를 기점으로 컴퓨터학습과 같은 학생을 타겟으로 하는 컴퓨터 전문지가 창간되었고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으나마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PC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이는 1989년에 시행된 IBM PC 호환기종을 대상으로 한 2차 교육용 PC 사업이 성공리에 이루어질 수 있게 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1990년대 중반 PC통신 세대가 만들어지며 이들은 2000년대 한국 IT 산업의 주역이 된다.

이후 2010년대에는 20만원으로도 보급형 PC를 조립할 수 있게 된다(...)

2. 국민PC의 탄생 배경

국민의 정부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그 방법이 신용카드 사용 권장과 같은 소비 진작과 IT사업 집중 육성이었다. 물론 IT 사업을 육성하려면 먼저 국민들이 정보화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일단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1999년 당시는 다나와 같은 가격 비교 사이트도 없었다. 다나와는 2000년 2월 디카 가격 비교 사이트로 출발하였고, 더군다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기였다.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산다는 것 역시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엔 컴퓨터가 이미 있는데 컴퓨터(인터넷)로 컴퓨터를 또 산다고? 하는 반응이 많았다. 초창기에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산다는 건 굉장한 역발상이었다. 정말로. 용산 전자상가도 용던으로 건재했던 나름대로 리즈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200만원에 가까운 대기업 브랜드 PC를 사거나, 싸긴 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용산제 PC를 사는 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제2 시내전화 업체로 선정된 하나로통신ADSL이라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인터넷 망을 준비하고 있었고, 스타크래프트의 영향으로 PC방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 동향을 파악한 정부는 중소기업도 지원하고 국민들에게 컴퓨터도 보급할 겸 해서 정책을 입안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국민PC였다.

국민PC는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정책과도 맞물려 대기업의 입찰을 제한했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어, 총 12개의 업체가 선정되었다. 선정된 업체는 현대멀티캡, 세진컴퓨터랜드, 주연테크, 현주 컴퓨터, 컴마을[1], 용산전자상가조합, 멀티패밀리 정보산업, 성일컴퓨텍, 세지전자, 엘렉스 컴퓨터[2], iDOM엑스정보산업, PC뱅크이며, 이 중 2016년까지 남아있는 업체는 주연테크 뿐이다.[3]

3. 국민PC의 사양과 가격

국민PC는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저렴하게 쓸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 취지였기 때문에 본체 + 모니터 구성의 큰 본체 외에도 키보드, 마우스, 스피커(...), Windows 98 SE[4] 및 기타 소프트웨어를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피커는 지금이야 많이 저렴해져서 컴퓨터를 사면 끼워주는 물품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돈을 내고 추가로 구입해야 되는 물건이었다. 국가에서 밀어준 브랜드인지라 판매를 우체국에서 담당했으며 각 회사의 판매 대리점에서도 구입 가능했다.

사양은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눠서 출시가 되었는데 펜티엄 3 카트마이를 장착한 고급형 모델, 멘도시노 셀러론을 장착한 보급형 모델로 나눠 출시되었다.

일단 고급형 모델의 기본 사양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여기에 모니터키보드마우스OS와 기타 잡다한 프로그램이 딸려오는 식. 100만원 미만의 PC를 보급한다는 정부의 생각보다 비싸게 결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능을 내면서 업체의 마진을 주면서 가격을 맞춰보았을 때 합리적인 가격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급형 모델의 유일한 단점은 64MB라는 램 용량으로, 당시 고사양 유저 기준으로는 약간 빡빡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6]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고 128MB로 업그레이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마침...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RAM 값이 똥값이 되어 많이들 업글하기도 했다.

그 외에 보급형 모델의 사양은 이러했는데

  • CPU: 인텔 멘도시노 셀러론 300~500MHz
  • RAM: 64MB (기본적으로는 64MB 이상을 권고했지만, 일부는 32MB에 불과한 것도 있었다.)
  • HDD: 6.4GB~10GB
  • ODD: 40배속 CD-ROM
  • 모뎀: 56kbps
  • 그래픽 카드:
    • ATi 레이지 IIc 4~8MB
    • 트라이던트 블레이드 3D 8MB
    • 인텔 810 칩셋 온보드 내장 그래픽
  • 사운드 카드:
    • 메인보드 내장형

이쪽은 모니터 포함으로도 100만원대 이하의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다. 사실 일반적인 인터넷 서핑이나 문서 작업, 가벼운 게임 용도로는 셀러론 CPU도 성능 면에서는 크게 손색이 없었고.. 대략 스타크래프트 권장 사양과 비슷하다.

12개 업체의 사양이 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정부가 사양을 지정해주고 그 틀 안에서 만들도록 지시했기 때문인데 견적만 주고 대충 지시했을 때 어떤 부속이 빠질지는 당시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국민PC의 가격은 모니터의 유무와 크기, OS의 종류(리눅스, 윈도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는 기종인 고급형 본체+윈도우 OS+17인치 모니터의 경우 150만원대에서 구입 가능했고 보급형 본체+윈도우 OS+17인치의 경우 110만원에서 120만원대에 구입 가능했다. 가격은 업체마다 2~3만원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거의 그 정도 선이 유지.

4. 국민PC의 영향

일단 정부가 의도한 대로 컴퓨터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신용거래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추어 국민PC 적금이라는 소액 대출을 내놓아 소비자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 상품은 우체국에서 대출은 안되고 예적금담보대출만 취급할 수 있어서 내놓은 꼼수였다. 그래서 추심업무를 할 수 없었던 우체국은 보증보험을 들게 했다. 소비자의 부담을 줄였던 덕분에 약 5개월 만에 약 28만대의 국민PC가 팔리고 19만여명의 국민PC 적금 가입자가 생겨났을 정도. 덕분에 당시 중고딩들은 집에 돌아가면 스타크래프트를 하느라 바빴다나 뭐라나(...)

기존 PC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등 대기업에서도 국민PC의 출현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PC보다는 약간 높은 스펙의 제품을 가격을 이전보다 내려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PC의 보급은 더 가속화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국민PC와 ADSL의 만남은 대한민국을 정보화 강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IT정책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

이런 성공에 힘입어 정부에서는 국민 노트북PC 사업도 진행했다. 가격은 160만원에서 240만원대로 지금의 고성능 노트북 가격에 가깝다. 하지만 이 쪽은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는데 지금과 달리 아직 노트북에 대한 필요성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노트북 가격도 상당히 비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7]

하지만 밝은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 불법복제네티켓 등, 관련 도덕 교육이나 관련된 법령이 전무한 상태에서 PC만 팔아 인터넷은 말 그대로 불법자료의 천국이었고 부모들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라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주 사용층인 자녀들이 음란물이나 사행성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인터넷 상의 상황이라고 하는 건 말 그대로 막_나가자는_거지요?.jpg 수준.

그런데 오히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컴퓨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세상에 컴퓨터 사면서 "이제 이걸로 숙제하면 내 학업 능력이 증진될거야!"(…) 하면서 기뻐한 청소년이 얼마나 됐을까. 다 야동 찾고 불법으로 영화/애니/게임 다운받으면서 쌓인 노하우와 게임 하면서 사운드 드라이버 잡던 실력들이 나중에 과제 하면서도 발휘되었던 것이다(…). 역시 컨텐츠가 빈약한 IT 기기는 사용자를 스마트하게 만들지. 개발도상국 아이들을 위한 OLPC를 이용해서 아이들이 야사와 야동을 찾아보는 비율아니면 게임을 한다든지이 높다는 소식에 한 컴퓨터 관련자도 "저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게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 않았나요? 좋은 현상입니다." 라고 쿨하게 넘겼다는 얘기도 있다. KOICA 소속으로 아프리카에서 2년동안 선생으로 자원봉사하고 온 이도 현지에서 컴퓨터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던 게 게임이나 동영상 관람이 압도적이었다. 인터넷 미비로 야동이나 야설은 구하기 어렵지만 낮은 사양인지라 고전 게임이나 저화질 영화 동영상이 인기폭발이었다고 했다.

또한 선정된 업체들 중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중소기업들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사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게다가 당연하지만 당시 용던이라고 불리면서 호갱님들을 뒤통수치던 용산 전자상가도 강한 타격을 입었다. 국민PC 사업 이전에는 안정적인 서비스나 편리함 브랜드를 고려하자면 대기업 PC를, 혹은 가격적인 측면을 고려하자면 조립PC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민PC가 등장하자 서비스는 대기업보다는 못하지만 용산보다는 편리하고 가격도 그리 높지는 않았던 점이 부각되었고 신용결제나 적금결제가 가능한데다 정가제였기 때문에 용산보다는 믿음이 갔다는 점이 크게 어필,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게 되었다.

물론 용산 전자 상가 내에서도 용산전자상가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크게 재미는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 왜냐하면 당시에 현대 멀티캡, 세진 컴퓨터, 현주 컴퓨터가 아직 살아있어서 브랜드 인지도에서 크게 밀렸기 때문.

5. 다른 나라의 국민PC

2006년경 독일도 컴퓨터 사용 저변 확대라는 목적으로 컴퓨터를 만든 적이 있었다. 지멘스후지쯔의 합작 회사인 후지쯔 지멘스에서 만든 PC이다. 사양은 다음과 같다.

  • CPU: AMD Athlon X2 5000+
  • RAM: 2GB
  • HDD: 씨게이트 바라쿠다 7200.10 320GB
  • ODD: DVD 멀티 RW
  • VGA: ATI 라데온 X1650GTO + HDMI
  • 듀얼 TV 튜너
  • 윈도우즈 XP 미디어 센터 에디션

OS로 윈도우 XP 미디어 센터 에디션을 설치하고 TV 튜너가 기본 사양에 들어있는 등 유비쿼터스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PC로 멀티미디어 관련 사양이 강력하다. 가격은 999유로로 1500원 환율을 적용했을 때 150만원 수준. 2015년 기준으로도 가벼운 작업용으로는 제법 쓸만한 사양이다. 애슬론X2 5000+는 2006년 3분기쯤이 지나서야 나왔다. 7년 사이에 참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사양.


  1. [1] 사설 컴퓨터 수리점이였다.
  2. [2] 애플 매킨토시 유통업체
  3. [3] 컴마을은 아직도 간판을 떼지 못한 대리점이였던 수리점이 남아있긴 하다.
  4. [4] 1999~2000년 당시 최신 OS이자 대세였다.
  5. [5] 공정과 클럭이 모두 개선되고 가격대까지 낮춘 코퍼마인 CPU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출시되기 5일 전에 국민PC 사업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코퍼마인 CPU로 채택될 수 없었다. 설령 코퍼마인 CPU의 존재 자체를 알아도 시장에서 실물을 볼 수 없었으니..
  6. [6] 2000년 당시 삼성 매직스테이션 데스크탑 중 중급형 기종의 램 사양이 64MB였다.
  7. [7] 대도시의 중심부 학교에서도 2~3대 정도만 보유하고, 그나마도 학생들은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귀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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