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

일제강점기 조선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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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오등작]] 중 [[일제강점기]] 조선귀족에 [[공작]]은 없었으며, 그에 준하는 작위와 관련한 정보는 [[왕공족]] 문서 참고.
※ --취소선 표시--는 작위를 박탈당하거나 반납한 사람을 뜻하고, __밑줄 표시__는 작위를 반납하려 했는데 일제의 거절으로 반납하지 못한 사람을 뜻함.
※ * 1872년생 이완용(李完鎔)으로 1858년생 [[이완용|이완용(李完用)]]과 다른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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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 金嘉鎭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름

김가진(金嘉鎭)

자/호

덕경(德卿)/동농(東農)

생몰년도

1846 ~ 1922

국적

조선대한제국일제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업

정치가, 대신독립운동가

작위

조선귀족 남작

종교

유교(성리학)

1. 개요
2. 생애
3. 독립문 글씨의 진짜 주인인가?
4. 사진
5. 기타

1. 개요

조선 말의 문신이며 개화파이자 독립운동가[1]이다.

2. 생애

188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에도 참여했다. 정부 고관인 농상공부 대신[2], 법무 대신[3], 중추원 의장[4] 등 을 맡았다. 정부 고관 자격으로 독립협회창설을 주도하였다. 이후 독립 운동 단체인 조선 민족 대동단의 총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문역을 맡았다.

1910년 경술국치일본에게서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그의 행적은 일본에 설설 기며 호위호식하는 다른 조선귀족과는 달랐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의친왕상하이로 몰래 망명시키려 준비했다가 중간에 들통나서 작위를 박탈당했고, 기왕 들킨 거 눈치 볼 것도 없겠다. 박탈당한 후엔 아예 자신 스스로 중국으로 망명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합류하여 도움을 주게 된다. 분명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내다 버리고 독립 운동에 뛰어든 용자. 한국의 조선귀족 중엔 정말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다만 일제로부터 받은 남작 작위는 공식적으로 박탈된 것이 아니어서 죽어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1922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장례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성대하게 치뤄졌다.

김가진은 독립 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남작 작위를 일제에 '공식적으로' 반납하지 않았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국가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보류했다. 다만 그 아들인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독립 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자신은 작위 문제 등으로 서훈은 받지 못했으나, 자녀들에게 자신이 받을 서훈을 대신 주었으니 어느 정도 독립운동의 결실은 이룬 것. 또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도 그의 항일 행적을 인정하여 사전에 김가진은 등재하지 않았다.

3. 독립문 글씨의 진짜 주인인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독립문 편액 글씨는 이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손자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이 2010년에 한겨레와 중앙선데이에 건의 주장을 폈다.

독립협회 결성의 주역 중 한 사람이던 할아버지는 당대 명필로도 꼽혀 서대문 밖에 세운 ‘독립문’의 한자·한글 제자 모두 쓰셨다. 비원에 있는 현판도 대부분 할아버지 글씨다. 독립문의 제자가 ‘역적’ 이완용의 글씨로 일부 잘못 알려져 있는데, 육안으로 서체만 비교해도 틀린 주장임을 알 수 있다.

- 한겨레 2010년 1월 3일자 기사 [길을찾아서] <일본 작위 내던지고 망명한 할아버지 / 김자동> 중에서

우리 집안에서는 당연히 할아버님(동농 김가진·1846년 ~ 1922년) 글씨로 알고 있습니다. 강단이 남달랐던 어머니(정정화·1900년 ~ 1991년)의 회고록 장강일기에도 한문과 한글 현판을 정성 들여 쓰셨다고 나와 있고요. 어머니는 홀로 상하이에 건너가 시아버지를 모셨어요. 할아버님은 1903년 중추원 부의장으로 계셨을 때, 비원 감독직을 맡아 창덕궁 모든 현판 글씨들도 쓰셨습니다.

- 중앙SUNDAY 2010년 9월 18일자 기사 <일제의 만행 증언하는 사형장 앞 ‘통곡의 미루나무’> 중에서

그러나 위와 같이 당사자 후손들의 증언이나 기록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앙SUNDAY 기사에서 제3자인 서예 전문가 김선원은 독립문의 ‘문 문(門)자’와 ‘설 립(立)자’의 체형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단언했으며, 이완용 글씨로 알려진 경복궁 함원전(含元殿) 현판 글씨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로써 그는 완숙한 독립문 글씨와는 체형과 서법이 다르다고 전했다.

그 증거로 김가진이 1903년에 창덕궁 후원의 감독을 맡아 쓴 몽룡정, 부용정, 애련정, 희우정, 금마문, 폄우사, 운경거 등의 편액 역시 전부 글씨체가 뭉텅하며 예리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이는 독립문 편액 글씨체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미스테리를 풀 핵심인 독립문의 한글 현판은 현재 김가진이 쓴 한글 친필이 전무한 관계로 '비교의 대상'은 한문 편액밖에 남지 않는다.

또 독립협회는 출범 뒤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바꾸면서 현판을 내걸었는데, 현재 현판은 전해진 것이 없으나 1897년 5월 25일 독립신문 잡보에 따르면 태자 시절의 순종 황제가 썼다. 또 1898년 1월 25일자 독립신문 잡보에선 당시 황해도 관찰사인 김가진이 독립문에 관심을 지녔을 것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황해도 관찰사 김가진 씨가 해주 먹판을 금번에 새로 만들어 먹에 박아서 전국에 반포하였는데. 그 먹 전면에는 제국 독립문(帝國獨立門)이라 박아 도금 하였고 후면에는 독립문을 온통 모본하여 박고 국기와 독립문에는 또한 도금을 하였더라. 물건에 까지 이렇게 판각하였으니 김씨의 마음에 독립이자 사랑하는 것을 깊이 치사하노라. 전국 인민이 일심으로 애국하여 독립이자 생각하기를 이 먹에다 각(刻)한 것과 같이 함을 우리는 바라노라.

- 1898년 1월 25일자 독립신문 잡보

그러나 독립문의 글씨를 누가, 언제 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므로 서체 고증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정운현은 위와 같은 견해들을 종합해 보아 김가진의 것이 맞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4. 사진

대례복을 입은 모습

상하이 망명 때

백운장에서

관복을 입은 모습

노년의 모습

대례복 초상화

김가진 초상화[5][6]

관직 생활 때 모습

5. 기타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는 조선의 역사가 변하면서, 그가 가게 될 행보도 변화하게 된다.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면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유사해질 듯.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1. [1] 단 국가 보훈처는 인정하지 않는 대신 김가진의 후손들에게는 유공자로 지정했다.
  2. [2] 오늘날의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3. [3] 오늘날의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4. [4] 오늘날의 국회의장.
  5. [5] 새비지 랜도어가 그렸다.
  6. [6]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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