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자

이름

김연자(金蓮子, キム・ヨンジャ)

출생

1959년 1월 25일 (60세) 광주광역시

신체

154cm, 47kg, O형

학력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졸업

데뷔

1974년 노래 '말해줘요'

소속

홍익기획, YJKcompany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활동
3. 복면가왕 참여
4. 그 외
5. 수상 기록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일본에서 활동하는 원조 한류스타.

1959년 1월 25일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계은숙이 없는 현재 한국에서 배출해낸 명실상부한 일본 엔카계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중의 한 명이다.

본 문서의 내용은 한국/일본 위키백과의 내용에 더해서 작성되었다.

2. 활동

1974년 동양방송에서 열린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1977년에는 '여자의 일생'으로 일본에서 첫 데뷔를 했다. 중박 정도는 꾸준히 쳐 왔지만, 이후로는 히트곡이 없어 한일 양국에서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81년에는 '노래의 꽃다발'이 한국의 음반 시장 최대 360만 장의 판매를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는 공식 기록은 아니고 자체 조사에 길보드 차트까지 포함해서 추산한 기록으로 추정되며,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고의 단일 앨범 판매량은 조용필, 김건모, 김연자가 아닌 길보드의 제왕이자 넘사벽으로 군림하는 김란영이 역대 1위가 된다.

<씨름의 노래>

198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메들리

1993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수은등>(1984)

1984년 NHK홀 콘서트 라이브가 레코드가 한.일 동시 발매를 기점으로 동년도에 '수은등'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1988년 전설적인 명작곡가인 길옥윤이 작곡한[1]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2]로 일본에서 다시 데뷔하게 되며 개사를 하게 된 이 곡은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했다.

1986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아침의 나라에서>

1989년 NHK 홍백가합전

당시에 일본에서 HD하이비전으로 방영되었다

서울 올림픽 폐막식 엔딩 세레모니로 주 경기장에서 10만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의 김연자는 엔카계의 거물로 우뚝 서게 된다. 그 기세를 몰아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했으며, 총 3번 출연하는 등[3]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엔카 가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원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였던 '흐르는 강물처럼'을 부르는 것을 보면 왜 일본에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

知らず知らず 歩いて来た 細く長いこの道

(시라즈 시라즈 아루이테 키타 호소쿠 나가이 코노 미치)

모르게 모르게 걸어 온 가늘고 긴 이 길

振り返れば 遥か遠く 故郷が見える

(후리카에레바 하루카 토-쿠 후루사토가 미에루)

뒤돌아보면 저 멀리 고향이 보여

でこぼこ道や 曲がりくねった道

(데코보코 미치야 마가리쿠넷타 미치)

울퉁불퉁한 길, 고불고불 구부러진 길

地図さえない それもまた人生

(치즈사에나이 소레모 마타 진세-)

지도조차 없는 그것도 또한 인생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ゆるやかに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유루야카니)

아! 강물의 흐름처럼 완만하게

いくつも 時代は過ぎて

(이쿠츠모 지다이와 스기테)

여러 시대는 흘러서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とめどなく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토메도나쿠)

아! 강물의 흐름처럼 끝없이

空が黃昏に 染まるだけ

(소라가 타소가레니 소마루다케)

하늘이 황혼에 물들 뿐…

生きることは 旅すること 終わりのない この道

(이키루 코토와 타비스루 코토 오와리노 나이 코노 미치)

살아가는 건 여행하는 것, 끝없는 이 길

愛する人 そばに連れて 夢探しながら

(아이스루 히토 소바니 츠레테 유메 사가시나가라)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데리고 꿈을 찾으며

雨に降られて ぬかるんだ道でも

(아메니 후라레테 누카룬다 미치데모)

비에 젖어서 질퍽이는 길이라도

いつかはまた 晴れる日が来るから

(이츠카와 마타 하레루 히가 쿠루카라)

언젠가는 또 다시 맑은 날이 올테니…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おだやかに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오다야카니)

아!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この身をまかせていたい

(코노 미오 마카세테 이타이)

이 몸을 맡기고 싶어요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移りゆく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우츠리유쿠)

아! 강물의 흐럼처럼 변해 가는

季節 雪どけを待ちながら

(키세츠 유키도케오 마치나가라)

계절 눈이 녹는 날을 기다리며…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おだやかに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오다야카니)

아!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この身をまかせていたい

(코노 미오 마카세테 이타이)

이 몸을 맡기고 싶어요

ああ川の流れのように いつまでも

(아- 카와노 나가레노요-니 이츠마데모)

아! 강물의 흐름처럼 언제나

青いせせらぎを 聞きながら

(아오이 세세라기오 키키나가라)

푸른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2001년에는 북한 김정일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고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였으며, 그 외에도 사할린, 상파울루 등 해외 각지에서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에서 역시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하여 김치를 판매하는 등 한국과 관련된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한국에 오랜만에 컴백하여 '10분내로(이병오 작사, 이호섭 작곡)'를 발표. 한국 성인 가요계에서도 여전히 죽지 않은 김연자 파워를 보여주며 큰성공을 거뒀다. 이 후 이 곡은 일본 콘서트에서도 한국어로 불러지면서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EDM트로트를 결합시킨 곡인 '아모르 파티(2013)'가 인터넷에서 재조명받으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그래서 "김연자는 몰라도 아모르 파티는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후에 그분이 이 노래를 패러디했다

3. 복면가왕 참여

2017년 8월 13일 복면가왕에서 노래 안 하면 입에 가시돋나 마돈나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해 레이디가가, 롤러보이, 플라밍고를 이기고 62대 가왕 도전자가 되었으며 가왕과 접전을 벌였다. 판정단들도 가왕전을 보면서 둘 다 가왕감이라는 평을 할 정도였다.

가왕이 보여준 엄청난 파워와 고음, 현재까지 결승 진출자 중 최고령자로 겨룬 상대들과 판정단들이 젊은 층이라는 걸 고려할 때 맹활약한 셈이며 이 때문에 가왕의 우승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컸다. 그녀는 물론 준우승한 플라밍고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줬기 때문.

또한 판정단인 유승우는 그녀의 결선 무대 '꽃밭에서'가 역대 복면가왕 무대 중 가장 좋았다고 말했으며 2라운드에서 록 곡인 진달래꽃을 멋드러지게 소화하면서 다른 장르도 잘 한다는 걸 보여줬다. 참고로 트로트 가수 중에서는 최고 성적 보유자며 트로트 가수가 가왕 도전자가 된 것도 최초다.[4]

특히 이 경연 이전에 2번 엔트리에서 우승 이상의 성적을 거둔 참가자는 단 1명 밖에 없었고[5], 당대 최고의 트로트 가수인 나는야 웃기는 짬뽕, 윙윙윙 고추잠자리도 결승을 못 갔을 정도로 중년층 도전자들이 가왕 도전자로 선정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활약이 대단했다.[6]

그녀는 마지막에 '복면가왕 출연하면서 너무 좋았고 노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하면서 판정단의 극찬과 청중의 성원에 감사를 표했으며,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에 네티즌들도 찬사를 보냈다.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 수

62-1

2017년 8월 13일

사랑은 차가운 유혹

양수경

한선화

59

62-2

2017년 8월 20일

진달래꽃

마야

박용인

57

62-3

꽃밭에서

정훈희

전인혁

58

62-K

옥주현

43

4. 그 외

  •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자주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덕분에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되어 갖은 협박과 핍박을 받기까지 했다. 일본 활동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많이 받았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제압한 케이스다. 물론, 한복은 현재까지도 디너쇼에서 계속 입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한복 역시 특수제작된 한복으로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며, 한국의 기개를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더 화려하고 큰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 특유의 맷돌 창법의 경우에는 김연자의 성량이 워낙 크기에 만들어진 창법으로, 정엽의 맷돌 창법과는 차이가 있다.[7] 영상보기 옆에서 보고 놀라는 강민경이해리는 덤
  • 2012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하여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 Staff가 뽑은 1위에 꼽혔다. 다른 가수들이 모두 퓨전적이고 세련된 편곡을 한 것에 반해 김연자는 그야말로 정통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연자 특유의 폭풍 가창력과 뒷부분의 애절한 나레이션까지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관광보낸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1위를 기록한 문주란 이상 가는 호평을 얻고 있다.
  •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목포에 있는 고아원인 '공생원'에 '사랑의 음악당'을 건설하기 위해 자선 콘서트를 한일 양국에서 50회나 열었고, 2011년 대지진 때는 도전 1000곡의 우승 상금을 기부했다.
  • 남편은 재일교포 김호식(일본이름: 오카 히로시)씨'였'으며 지휘자 겸 앨범 프로듀서이며 김연자의 매니저까지 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는데 아이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두 사람 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김연자가 가수라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참고로 김연자와 18세 차이가 나며 김연자의 어머니와 2살차이 아버지와 7살 차이밖에 안난다고. 그런데 2012년 5월 조정을 거쳐 이혼했다. 이혼사유는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은 이유도 남편의 강권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간의 벌이는 남편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김연자 측에 따르면 남편 쪽에서 위자료 및 재산 분할을 일절 해주지 않았고 일본에서 잠정 은퇴한다는 식의 편지를 보내는 등 활동도 방해했다고 한다.
  • 씨름판하면 생각나는 그 유명한 "천하장사 만만세~"를 부른 사람이 김연자다. 곡명은 씨름의 노래로 1986년에 발표. 또한 1988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 역시 그녀의 노래인데 손에 손잡고가 워낙 인상 깊어서인지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무한도전에 출연했으며 유재석 팬이라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반갑웠다고 하며 해피투게더에서도 만나서 팬이라고 계속 말했다고 한다. 박명수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방배동 이웃 주민이고 EDM으로 통하는 게 있고 박명수가 엄청 챙겨 줬다고 했다. #
  • 2018년 부산대 축제에 참가 소식이 있었을때 반응은 이구동성으로 이게 대학생 축젠지 어르신 축젠지 모르겠다, 학생회장 토토했냐?등 혹평이 많았지만, 막상 축제에서 여러분으로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주고 아모르 파티를 부르니 가장 흥했다. # 이에 따라 축제 이후 섭외가수에 대한 불만은 일축되었지만 축제에 구원파의 한 일파에서 만든 IYF가 운영하는 선교단체인 굿뉴스코가 참여한 것이 드러나면서 여전히 까였다. 그리고 2018년 부산대 시월제 축제에 우정출연으로 또 온다!!! ㄷㄷ

5. 수상 기록

  • MBC 10대 가수 가요제(1982~1984년)
  • 한국 건전가요 대상 (1987년)
  • 제 43 회 일본 레코드 대상 기획상 수상 (2001년)
  • 제 36 회 일본 유선 대상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 수상 (2003년)
  • 제 37 회 일본 유선 대상 유선 음악 우수상 수상 (2004년)
  • 제 38 회 일본 유선 대상 유선 음악 우수상 수상 (2005년)


  1. [1] 패티김의 남편이였던 그 작곡가.
  2. [2] 국민 투표를 통해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낙점된 곡이었으나, 이후 어른의 사정으로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로 교체됨. 어른의 사정이 참 재미있는게, 국민투표로 이 곡이 낙점된 이후 '촌스럽다', '세계인들이 들을 노래인데 너무 뽕짝스럽다'는 이유로 신문에서 비난여론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그럼 국민 투표는 왜 했대? 이후 재공모를 통해 낙점된 곡이 외국 작곡가와 당시 한국에서 듣보잡이었던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이다.근데 솔직히 곡의 완성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조르지오 모르더코리아나의 조합은 당시로선 넘사벽일 수밖에 없었다...
  3. [3] 1989년 '아침의 나라에서', 1994년 '흐르는 강물처럼'(미소라 히바리의 노래이다.), 2001년 '임진강'이란 곡으로 출전했다.
  4. [4] 종전의 결승 진출자 중 최고 기록은 10차 경연에 참가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오비이락(1960년 생)이며 가왕 도전자 중에서는 54차 경연에 참여한 내 노래 들으면 나한테 바나나다.(1970년 생)
  5. [5] 그 뒤 67,77차 경연에서 이 더 나왔다.
  6. [6] 1부가 끝났을 때 많은 네티즌들이 플라밍고의 결승 상대를 롤러보이로 예상한 것도 멋지게 깨뜨렸다. 참고로 판정단인 김구라가 그녀의 우승을 예상했다.
  7. [7] 원래 수준급 가수들은 세밀한 마이크 컨트롤로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정엽도 그런 과정에서 속칭 맷돌 창법으로 불리는 기교가 만들어진 것. 김연자는 이선희와도 비슷한 케이스로 볼 수 있는데, 옛날에는 스피커의 질이 조악해서 너무 큰 성량의 소리가 들어가면 사운드가 갈라지는 걸 넘어 스피커가 아예 고장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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