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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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양수산부 장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제19대
김영석

제20대
김영춘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갑)

제15대
김상우

제16·17대
김영춘

제18대
권택기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구 갑)

제19대
나성린

제20대
김영춘

현직

이름

김영춘 (金榮春)

출생일

1961년 12월 24일 [1]

출생지

부산광역시

본관

김해 김씨 경파[2]

최종학력

고려대학교 정치학 석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다니엘)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선거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갑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6, 17, 20

소속 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약력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윤봉길기념사업회 부회장
열린우리당 윤리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제20대 국회 농해수위원장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입문
2.2.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 시절
2.4. 문재인 정부(해양수산부 장관)
3. 논란
4. 트리비아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대한민국의 제16대, 제17대, 제20대 국회의원으로, 20대 국회 기준으로 소속되어 있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처음엔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의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당시 독수리 5형제와 함께 민주 진영으로 건너왔다. 20대 때 김영삼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덕분에, 5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년의 정치 구력을 가진 중진급 인사.

상도동계에 있었을 때에는 '거산의 셋째 아들'로 불렸을 정도로 김영삼의 총애를 받았던 상도동계 직계 막내였다. 그러나 이제는 박재호와 같이 단 둘 뿐인 상도동계 직계 출신 민주당 의원이 됐다. 그러나 본인은 이러한 계보, 조직, 계파 분류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나는 YS를 도와주러 온 동지다'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부울경 약진을 견인해낸 공신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민주당이 밀고 있는 부산의 차세대 대표 정치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18개 부처 장관평가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고,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는 유력한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꼽히기도 했다.

2. 생애

1961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부산 지역구가 있는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해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부모님은 당연히 법대를 가라고 하셨지만.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도호국단을 없애는 대신, 부활된 총학생회의 첫번째 회장 선거에서 당선(서울대는 이정우, 연세대는 송영길)된 뒤, 같은 해 11월 민주정의당사 점거 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YS가 비서실장인 김동영 의원을 통하여 민주화 당시 구속자들을 초청해 식사를 하며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이겼다.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였고, 이후 김영춘은 김동영 의원에게 직접 연락해 제발로 김영삼을 찾아갔다. 김영삼이 김영춘을 워낙 총애해서 당시 상도동계 선배들조차 김영삼에게 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김영춘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상도동계의 명실상부한 막내라고 할 수 있다.[3] 고려대 후배였던 안희정도 김영춘이 김덕룡에게 천거하여 김덕룡의 비서로서 1989년 정계에 입문하였다.

2.1. 정치 입문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前 대통령과 김영춘 現 의원. 왼쪽이 김영춘이고 가운데가 김영삼이다.

1988년 김영삼의 비서를 그만 두고 고려대학교로 복귀하여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소련 페레스토로이카'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렇게 YS를 떠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당시 3당합당이 일어났고, 당시 김영춘은 YS에게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저를 찾지 마십시오"라고 거부하였으나, 2년 후 민자당에서 YS가 박철언, 김종필과의 싸움을 앞두고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 잡는 싸움에 실패한다면 내가 은퇴한다. 이 싸움이 정말 두 번 다시 없는 마지막 싸움이니까 이 싸움만 니가 나를 좀 도와줘라'라며 '영춘아, 니가 나를 한 번 도와줘야 되겠다'라고 하자, 정치에 뛰어든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시작해,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30대 비서관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너무 위화감을 조성하니 행정관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문화체육부 차관 출신인 김도현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상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 때 나이 겨우 만 35세. 그 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김상우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중앙선대위 2030위원회 총괄본부장을 지내며 이회창 총재를 돕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회창에게 "왜 TK(대구·경북)과 민정계에 업혀 정치하느냐", "대통령이 되려면 도덕적 개혁적 보수 인사로서 정책과 인맥 구성을 해야 한다"고 직언을 하는 등 정치적자유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2003년, 노무현의 당선과 이회창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이 대선불복을 시사하는 등 한나라당의 개혁가능성이 0으로 수렴한다고 판단한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독수리 오형제 중 20대 총선 이후까지 정치계에서 살아남은 인재가 김부겸,김영춘 이 2명이다. 한나라당에서 상도동계로 그냥 남아 친이계로 편입했으면 김무성 이상의 거물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개혁하지 않는 독재세력과 계속 손 잡을 수 없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상도동계 직계로 분류돼던 인물 중에 이 때부터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민주개혁진영으로 편입된 유이한 인물이 김영춘과 박재호로, 이 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4]

사실 한나라당 시절에는 아직까지 김영삼과 상도동계의 영향력이 상당하던 시기였다. 이때 김영삼이 김영춘을 부르면서 "여기에서 편하게 정치하지 뭣하러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탈당하냐?"라고 묻자, "선생님도 자유당에서 탈당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응수했으며 "당이 민주정의당처럼 변해가는 데 저는 거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고 대답하여 김영삼을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 직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이적했고, 현재도 민주당계 정당의 상도동계 직계 정치인이다. 김영춘은 아직까지 '염산테러를 당하면서도 박정희한테 굴복하지 않았던 그 김영삼의 정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야당 총재를 제명시키던 정권과의 그 험한 싸움을 감당했던 70년대 말의 그 청년 김영삼'의 애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신 계승을 명시하고 있는데, 김영춘은 김대중이 아닌 김영삼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더불어민주당 주류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내세우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30년 전에는 PK출신 정치신인(노무현, 김영춘, 김무성, 정의화 등)은 모두 김영삼이 데려갔고, 전라도 출신 정치신인은 모두 김대중이 데려갔다는 이야기에 따를 때, 나름의 이유가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2.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 시절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잦은 충돌과, 그와 별개로 국민들의 삶이 양극화 되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감과 자괴감을 많이 겪고, 결국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으로서 당의 간판을 내리는 역할을 하고, 스스로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수도권의 386을 포함한 개혁파 의원들까지 모두 '도로민주당'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크게 괴로워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열린우리당의 후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여 "사람 중심 경제"를 외치는 문국현창조한국당에 입당하나, 2008년 문국현 대표의 당 운영에 반발하여 다시 창조한국당을 탈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하였다.

이후 3년간 야인으로 지낸다.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며 틈틈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나라뒤집기>(2011)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한다.

2010년 10월, 민주당 당대표로 손학규씨가 당선이 되며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헌신해달라"며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정계복귀를 요청하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정계에 복귀함과 동시에 1996년부터 15년간 기반을 쌓아온 서울 광진구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 진구로 내려간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의 종로와 비견되는 부산의 정치1번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는 패기를 보였다. 기존의 광진 갑에 출마했으면 고생도 덜하고 충분히 편하게 당선될 수 있었을텐데, 지역주의 극복하는 새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가족들 다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다.[5] 아들도 진중으로 전학시켜서 지역을 위해 낙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선거당일 출구조사에서는 1위였고, 개표 초반에는 1위로 시작하다 역전의 역전을 거듭했지만, 초읍동에서 나성린에 대한 몰표가 쏟아져 추격전 끝에 3,000여 표 차이로 눈물을 삼켰다. 추후 선거에 출마할 것을 약속하고,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정책연구소인 인본사회연구소를 서울에서 서면으로 옮겨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 부산광역시장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 범 야권 무소속 오거돈에 양보하였다. 하지만 그 선거에서 오거돈은 낙선하였다.[6]

2.3. 제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미 2012년부터 약 4년 동안 지역을 거의 박박 기다시피 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왔기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7]

그러나 상대인 나성린은 경선을 뚫고 공천되었고, 부산에서 유일하게 야당 간판을 달고 3선이 되었던 조경태의 새누리행, 야권의 분열로 인해 악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성린에게 크게 뒤진 상황이었다(2016. 3. 23. 부산일보 여론조사: 나성린 57.3%, 김영춘 25.7%). 반면에 새누리는 부산 싹쓸이를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사 출구조사에서는 오차범위내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왔고, 실제로는 개표이후 계속 앞서갔다. 그리고 개표 90% 시점에서 당선을 확정해 설욕에 성공하였다. 총 득표 45,706표 (49.6%). "내가 직접 발로 뛰어본 결과, 여론조사가 엉터리라는걸 확신했다." 부산시당 위원장으로서 부산심장까지 공략에 성공해 더민주의 영남권 약진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4월 1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이춘석과 비상대책위원으로 추가 선임되었다. 6월 13일, 3선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도시 지역구인데 해양수산도시 지역구 이니까.

20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당선자 전재수, 김해영, 박재호, 최인호와 더불어 신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다. 김영춘은 두 번이나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게 되는 셈.

2.4. 문재인 정부(해양수산부 장관)

2017년 5월 치러진 장미대선 당시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으로부터 문재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내, 대선 승리공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17년 5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으로 지명하였고, 6월 14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바로 다음날 15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으로 거론되는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았던만큼, 청문회 자리에서 내년 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의원들이 많았다. 일단 본인 장관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힘.

6월 16일 문재인 정부 1기 해수부 장관 임명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진상규명과 후속대책을 약속하고, 일본 대사를 접견해 해양 수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양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포항과 울산 등 해양도시에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출범시키고, ‘재조(再造·다시 만듦)해양’의 의지로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등, 해수부의 위상을 제고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본인은 장관청문회 당시부터 줄곧 "출마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으나, 일각에는

  • 문재인 정부의 첫 해양수산부 장관이라는 점
  • 지난 2014년에도 부산시장을 준비했다는 점
  • 부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중 유일한 3선으로 최다 선수라는 점
  • 지난 2014년에 자신이 후보직을 양보했으며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기로 한 오거돈 전 장관이 김영춘 장관이 출마 선언을 한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후보직을 양보할 것임을 천명했다는 점

이상의 이유에서 유력한 부산시장 후보로 손꼽았다. 그러나 원내 1당을 사수하려는[8] 더불어민주당 측 추미애 당대표와 이춘석 사무총장이 직접 김영춘 장관에게 불출마를 권유했고, 청와대에서도 당의 의견을 따르는 것으로 하여, 김영춘 장관은 3월 11일에 다시 한 번 확고히 불출마 의사를 표하였고, 201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매우 잘한 결정이며 향후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는 평.

2018년 5월 8일 머니투데이에서 발표한 '18개 부처 장관평가에서는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여야의원들은 ▲야당과의 관계 설정, ▲높은 부처 장악력, ▲여야 없는 중립적인 정책설명 등을 김영춘 장관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하 머니투데이 기사: *

3. 논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2017년 8월 9일 인천광역시에서 열린 새얼아침대화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부산광역시가 기능해온 항만 해양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인천광역시를 부산과 비교해 평가절하했다는 논란이 있다. "부산은 과거 해수부가 없어졌을 때 지역이 똘똘 뭉쳐 해수부 부활을 이뤄냈는데 인천은 해양도시로서의 정체성마저 불분명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특정 지역에 쏠린 시각으로 말하는 자체가 정부 각료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본다"며 "김 장관 체제에서 해양도시가 균형 발전·동반 성장하기 보다는 부산을 중심으로 불균형 발전이 이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하 인천일보 기사: *

4. 트리비아

  • 17대 국회의원 시절 유시민에 대해서 '저토록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고 한 발언이 유명하다.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강경하고 날선 스타일인 유시민의 발언 성향을 표현한 것.
  • "힝 속았지?"로 유명한 <무한도전> 돌+i 콘테스트 출연자 김영춘(배우)와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신한국당

22,309 (27.9%)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한나라당

37,446 (50.8%)

당선 (1위)

[9]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열린우리당

44,519 (50.7%)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민주통합당

34,238 (35.8%)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더불어민주당

45,706 (49.6%)

당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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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음력 1961년 11월 17일
  2. [2] 김해 김씨 경파(京派) 24세손, 수로 74세손 '榮'자 항렬이다. 같은 정당의 정치인김부겸의 아저씨뻘이다. 참고로 김부겸의 부친 성함은 김영룡(金榮龍) 씨.
  3. [3] 참고로 제20대 국회의원 박재호도 상도동계 직계에서 막내그룹에 속한다. 실제로 김영춘, 박재호 모두 타 상도동계 직계인물들과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시절까지는 같은 정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후일 이 두 명은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하게 된다.
  4. [4] YS'키즈'까지 포함한다면 예전부터 김영삼과 결별하고노무현의 최측근이 된 안희정도 있고, 다른 인물들도 꽤 존재한다.
  5. [5] 김영춘 전 의원이 떠나고 무주공산이 된 지역구는 김한길 전 의원이 낚아채갔다.
  6. [6] 다만 그때 서병수와 오거돈의 득표율 차이는 1.31% 밖에 나지 않았다.
  7. [7] 중앙정치계에서 지방으로 진출하는 정치인들이 대개 자녀 교육 등을 고려해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단신으로 지역구 활동을 벌이는 것에 비해 전 가족을 모두 이끌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해 왔다는 대목에서 부산 시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8. [8] 20대 국회 원내 1당이자 여당인 더민주가 120석, 제1야당인 자한당이 115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석수 차가 불과 5석인 상황인데, 현역 의원들이 지자체장 선거를 노리고 의원직 사퇴를 감행하면서 동시에 이정현, 조원진 등 옛 새누리당에서 축출당한 의원들이 자한당 복당에 성공할 경우 의석수가 뒤집히면서 더민주가 기호 1번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더민주 지도부가 당 차원에서 최대한 현역 의원들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는 상황으로, 김영춘 장관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 김부겸 행안부장관 역시 대구시장 출마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9. [9]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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