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북한)

이름

김정남(金正男)

출생

1971년[1] 5월 10일

평양직할시

사망

2017년 2월 13일 (45세)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스팡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본관

전주 김씨

학력

제네바 대학교 정치학 학사

가족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배우자 신정희
자녀 김한솔 포함 3남 1녀[2]
이모 성혜랑
사촌 이한영

SNS

아카이브[3]

1. 개요
2. 권력 계승?
3. 경력
4. 기이한 행보
4.1. 생존전략?
5. 가족
6. 근황
6.1. 한국 망명 시도설
6.1.1. 2012년 대선 직전 MBC 취재
6.2. 박근혜와의 관계
6.2.1. 관련 이메일
6.3. 미국 정보기관과의 관련
7. 피살
8. 평가
9. 대중 매체에서 등장하는 김정남
10. 기타 읽을 거리
11. 관련 문서

1. 개요

김일성의 장손이며, 김정일장남. 그리고 사생아. 미혼이던 김정일과 유부녀였던 성혜림[4]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1971년 5월 10일 생. 21세기 이후로는 중국이나 마카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등의 동남아시아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등지에서 중국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자주 출몰했다. 북한 내에서도 적이 많다고 알려졌다.

두 번의 입국 금지 전력이 있다. 첫 번째는 2001년 일본입국을 시도하다 거부당해 베이징으로 돌아간 거고 두 번째는 2007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오려다 홍콩 입경처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입국을 거부한 것.[5]

김정남이 태어날 때 할아버지도 득남했다.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현과 같은 해(1971년)에 태어났다.족보 브레이커

1981년에 찍힌 김정남의 모습. 김정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김정남이다. 뒷줄 왼쪽부터 성혜랑(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 성 씨의 자녀 이남옥, 이한영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신동아

성혜림의 조카, 김정남의 이종사촌형이자 북한이탈주민이었던 故 이한영[6]의 회고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상당히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고…[7][8] 실제로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 당시 어린 김정남을 만난 최은희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남의 이름은 왜 물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 곧바로 김정일이 "정남아, 어른이 물어보시면 대답을 똑바로 해야지."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 멀어지면서 총애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도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데 한몫했다는 얘기가 있다. 젊은 시절엔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생활했다고 하며, 북한의 외국인 전용(겸 고위층용) 나이트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천장에 쏴버렸다. 이에 분노한 김정일이 허리띠를 뽑아서 그걸로 엄청 때렸다고 한다.[9]

저명한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온갖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제외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10] 그러나 커가면서 망신도 당하고 권력 승계에서 멀어지자, 처세의 일환으로 자중하는 듯하다.

2. 권력 계승?

김정일의 첫째 아들이란 점에서 남한에서 한때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적이 있다.[11] 다만 김일성 시대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일은 자신의 자식들을 일찍 후계자로 정하지 않고 있어서 김정일만큼은 주목받지 못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가 가장 많은 아들이었기에, 가장 인지도는 있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제왕조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정실 부인이 아닌 유부녀와의 불륜 관계로 태어난 김정남은 종법제에 의하면 이른바 사생아 혹은 서자 정도의 위치인지라 계승에 장애물이 있다.[12] 실제로 김일성이 아직 힘이 있고, 김정일이 아직 후계자로 내정되지 않았을 땐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일의 권력 계승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13] 성혜림과의 관계가 불륜이었기 때문에 고용희 소생인 김정은이 결과적으로 권력 계승에 성공하였다. 고용희는 후처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밀린 듯하다. 더불어 김정은 역시 고용희 미화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2010년 9월 이복동생 김정은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보아 김정남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물론 아직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김정남은 김정은이 정식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해 '3대 세습을 반대한다'면서도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 거다. 정은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돕겠다'는 말을 했다.[14] 이에 대해선 권력에 대한 미련을 보인 거라는 둥, 세습은 반대해도 정은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둥, 사실상 망명 상태라 그로 인한 반감이라는 둥,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서양의 반응을 생각한 거라는 등, 추측이 다양하다.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행보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북한은 일단 예정대로 김정은 후계 체제로 돌입하고 있지만 내부 지지기반만 없다 할 뿐 경력이나 공로, 경험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한 김정남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김정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15] 피바람이 불지, 아니면 김평일처럼 영원한 떠돌이 신세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김정남이 단순히 한량이거나, 쫓겨나서 떠도는 신세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정일의 지시로 해외에서 자금줄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특히 마카오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자금 세탁 라인의 책임자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교민에 의하면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고 간혹 프랑스에도 가며 인터뷰 당시에는 쭉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16] 그리고 2007년에는 홍콩에 입국하려다 거부당했다.

3. 경력

스위스 제네바 대학[17]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 유럽에 체류한 엘리트 계층이다.

자신이 평양의 몇몇 주요 건물을 설계하기도 하고, 조선콤퓨터쎈터 설립을 주도하는 등 북한의 각종 정보기술 산업정책을 맡아왔다고 알려졌다.

당연하게도 외국어에 대단히 능숙하다는 말이 있다. 제네바 대학의 학사과정은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여기를 입학하고 졸업하려면 DELF B2 이상이 필요한 면을 볼 때 김정남의 프랑스어는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유창할 것이다. 그 외에 언론에서는 독일어에 능숙하고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보도했다. 영어의 경우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인 듯.[18] 중국에서 장기 체류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어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긴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유학생활을 한 적도 있어서 러시아어도 유창하다.#

2007년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

2010년 일본방송 출연 모습

위 영상에서 보다시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째 아들이면서도 한국어로 인터뷰를 할 때 거의 서울말에 가까운 말투를 쓴다는 게 특이점. 일설에 의하면 김정남이 해외에서 대한민국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해왔기 때문에 자연히 말투가 서울말에 가까워졌으며, 한편으로는 한국 방송을 즐겨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가짜 이주일을 알아봤다는 것부터가 이미 남한 말투에 익숙해있다는 증거다. 밑에도 나와 있지만 위의 말과 달리 이에 놀랄 게 없는게 원래 서울 억양과 이북 억양은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평양말과 서울말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한 편이고, 북한의 표준어 격인 문화어는 경기 방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19], 고등 교육의 수혜를 입은 북한 고위층이 서울 말투 비슷한 억양, 발음으로 말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당장 세종시로 수도 이전을 한다고 해서 표준어가 충청도 사투리로 바뀌는 건 아니듯, 남북이 갈라지고 북쪽 정권이 평양에 수도를 차렸다고 해서 당장 표준어가 평양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북한 고위층들이 공식적으로 쓰는 말은 서북, 동북 방언의 느낌이 살짝 가미된 서울말에 가깝다. 실제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말투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북한 말투'와는 달리 오히려 서울말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데다, 북한 영화를 보면 배우들도 서울말 비슷한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20] 특히 경기도와 가까운 개성 같은 도시 출신의 경우, 서울말과 상당히 흡사하고 오히려 같은 북한 사람인데도 북쪽 윗동네 사람들 말투가 무척 억양이 강하다고 느낄 정도라고 한다. 2017년 판문점으로 귀순한 오청성 군이 방송에서 쓰는 말투를 보면 그냥 경기도 청년이다. 유튜브 링크 한마디로 김정남이 일부러 배우지 않았더라도 '서울말'을 쓰는 데는 별다른 무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

허나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말투가 북조선스러운 평양식의 억양이 섞인데 반해 김정남의 말투는 오히려 대한민국에서도 다소 특이하게 느낄 수 있는 서울 깍쟁이들의 말 그 자체라는 점에서 분명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사실 그의 생모 성혜림과 어릴 적부터 가정교사 역할을 해온 이모 성혜랑이 서울 토박이였다는 점, 그리고 출생부터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것을 고려해보면 그가 평양식보다는 서울식 억양을 가진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4. 기이한 행보

이상하게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김정남은 순전히 외모 때문에 불공정하게 오덕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빈번한데, 2001년 5월 1일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은 아키하바라 방문 목적 운운하며 비웃을 일이 아니라 중대 정치 뉴스였다. 이게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김정남은 북한에서의 위치 덕분에 암묵적으로 사실상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당연했다. 실제로 김정남의 위조 여권에는 이미 여러 번 일본을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일본은 김정남을 불법 입국자 수용소에 처넣었고 5월 4일에 추방해버렸다. 이때 김정남은 비행기 1등석을 모조리 사버리는 돈지랄을 통해 비행기까지 쫓아온 기자들을 따돌렸다.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CIA 개입설(#)은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 되었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당시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여졌다는 증거다. 김정일이 노발대발할 만한 일이 맞는다. 또한 김정일이 노한 것에는 김정남이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했다는 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이복 동생들에게 상당 부분 밀려나 있던 그가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린 사건이라고 평한다.

(2001년)

해당 밀입국의 목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중동 지역 미사일 판매 대금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는 둥 추측이 많았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유치원생 나이의 어린 아들 김금솔과 아내 신정희, 그리고 처가 친척으로 알려진 리경희만을 동반한 점으로 볼 때 사실 진짜 도쿄 디즈니랜드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현지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내와 여자 친구는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김정남의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진을 보고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동행한 사람은 김정남의 아내가 아니라 보모이며, 선글라스를 낀 미녀가 김정남의 아내라는 설도 있었다. 또는 선글라스녀는 경호원이라는 설도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자는 이름은 서영라, 1976년생으로 조선로동당 126 련락소 직원으로 김정남의 경호원 겸 감시역으로 배치된 상태였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때는 내연녀였지만 나중에 세 번째 부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21] 아무튼 이 사진의 실체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던 것은 사실.

일본 밀입국 시도 사건 때문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나서 외국을 떠돈다는 소리가 있었으나 김정일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발 벗고 달려가 프랑스측 의료진을 섭외해서 평양으로 왕진 오게 했다고 한다. 나름 효심은 있는 듯했다.

해외에 쌓아둔 인맥이 많은데, 특히 중국에서의 인맥이 막강하다. 김정은의 측근이 김정남을 제거하려고 하자 중국이 막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고.# 실제 김정남은 상당기간 중국 마카오에서 생활했으며 아들 김한솔이 김정남의 암살후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서 아들인 자신과 김정남의 가족들을 도와준 정부로 네덜란드, 미국과 더불어 중국 정부를 언급한 것을 보아[22] 실제로 김정남은 중국정부와 큰 접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김정남이 살아 있을때는 중국의 지원을 뒤에 업고 북한내 친중국파 장성들과 같이 동생과의 내전을 벌이는 예측도 나왔고, 김정남이 암살당한 이유가 중국의 개입이나 북한내 김정남파의 봉기를 두려워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방송 인터뷰를 보면 "북한"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이게 얼마나 파격적인 일이냐면 남한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23] 그나마 김정남이 김정일의 장남이니까 당장 화를 안 입었지 만약 단순한 북한 고위층이었다면 얼마 못 가 죽었을 것이다. 결국 6년 후에 사망했지만. 게다가 개인적으로 3대 세습을 반대한다는 말을 매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물론 목숨을 생각해서 바로 내부적인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살짝 물러나긴 했지만.

이미 그로부터 약 1년 반 전인 2009년 3월 말 북한의 미사일 파동 때, "북한의 공격에 일본이 자위 수단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본국 송환 뒤 즉결숙청감인 소리를 대담하게 하여 '지 아비와는 뭔가 다르구나.'라는 인상을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어주기도 했었으며, 김정남이 북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유에 대해서도 과거 자신이 지도자가 되면 개혁, 개방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아들인 김한솔에게 '언제나 고통 받는 인민들을 생각하라'는 말도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상식인 축에 속하는 것 같다.

4.1. 생존전략?

탈북자들이 쇼 형식으로 참여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출연자는 김정남이 김정일 시절 주요 후계자로 거론될 때 인민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실시해서 북한에서는 평이 좋았으며, 다들 김정남 시대가 되면 살기 좋아질 것이라 기대가 컸다고 발언을 한 사실도 있다. 오히려 마카오 등지에서 권력에 관심 없다며 도박을 즐기는 등 기행을 일삼는 것도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의 견제를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4]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권력 승계에 관심이 없다는 둥의 발언을 하는 데다가 아버지, 할아버지와 체형(?)도 비슷한 것으로 봐선 김일성, 김정일 급의 정치 센스를 가졌을 확률도? 김정일의 경우 김일성을 유일한 수령으로 모셔놓고 자신은 국방위원장이 되었는데 오히려 권력집중도가 높아졌다. 고도의 정치적 술수를 쓴 셈이다. 김일성의 경우 북한의 수령이 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것이고…

외부적으로 밝혀진 것만 봐도 김정일의 자식들 중 가장 외국에 많이 나다녔다. 물론 중앙권력획득엔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김정일이 그만큼 신뢰하는 자식이라는 말도 가능했다.

하지만 김정은에게 암살시도를 당했다든가(#망명설이 떠돌거나 하는 등(#) 설왕설래가 많다.

김정남이 북한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상당히 민감해하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을 두고 "김정남이 정치에 대해 관심 없음을 피력하며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김정남이 팽 당할 것을 두려워해 정계를 떠난 장량처럼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환기시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김정남의 존재여부와 관계 없이, 김정일의 후계자라는 정당성밖에 없는 새파란 1인자와 산전수전 다 겪은 잔뼈가 굵은 왕년의 '후계자'와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김정남 자신이 표면적인 게 아니라 진짜로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설도 있다. 하긴 온 세상에서 미움 받는 집단의 수령이 되어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권력을 누리느니, 권력은 없어도 해외에서 자유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상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그가 김정일의 첫 번째 아들이라는 거 자체만으로도 김정은에겐 위협이기 때문에 생존형(?) 쿠데타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천안함 피격사건로 항의를 했다는 거나(#) 김정은이 김정남의 측근을 제거했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어쨌든 김정은과의 사이가 험악한 듯하다.

2010년 9월경 "바통 터치하러 북한에 가야 하지 않는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곧 망할 나라인데 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란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참고로 김정남을 패러디한 영화가 나왔다. 세균열도 참조.

2013년 12월 김정남의 고모부이자 북한 2인자였던 장성택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북한에서 최악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공개회의 석상에서 체포당해 숙청당했는데, 공식 발표에 따른 반역 시도가 그 원인.# 물론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닐 거라고 배제할 수도 없는 데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죽이지 못했던 데 장성택의 보호가 있었다는 정황은 유력했기 때문에 # 김정남과 아들 김한솔의 신변에도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애시당초 장성택이 당장은 김정남을 생각하지 않았다 쳐도 김정은 제거 이후 올릴 수 있는 인재가 누구겠는가?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북한 입장에서 장성택은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다. 그런 인재를 확실하게 증명되지도 않은 혐의를 씌워 죽이는 동생을, 김정남이 상식인이라면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죽기전까지 마카오에서 고미술품 유통업과 와인 판매 사업을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프랑스어권에서 주재한데다가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지원이 끊어졌어도 살길은 찾을 수 있었던 듯.

5. 가족

본처인 신정희 외에 사실혼 관계(동거)를 거친 동거녀가 이혜경, 장길선, 서영라 등 3명쯤 있다고 한다.[25] 자식으로는 본처에게 얻은 아들인 차남 김금솔과 동거녀인 이혜경에게서 얻은 장남 김한솔, 장녀 김솔희, 다른 동거녀인 장길선에게 얻은 3남 김이순이 있다.

김정남의 아들 중엔 장남인 김한솔이 유명하다.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UWCiM)'을 졸업하고 2013년 가을 프랑스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에 입학했다. 자기 페이스북에 삼촌을 비웃는 합성 사진을 링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나만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미안하다"라고 할 정도로 비교적 개념 탑재된 모습을 보이는 중. 2012년 10월 19일 김한솔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일을 꿈꾸는 김정일의 손자. 2017년 김정남이 숙청된 후엔 잠적했다고 한다.

숙부인 김현과는 나이가 동갑이다. 이 때문에 김정남은 김현과 촌수를 초월하여 친구처럼 지냈다고. 김현이 숙청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으나 김현은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종 사촌으로 이한영이 있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로, 동구권에 유학 중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홀로 망명하였다. 최고위급 귀순자로 계속 은둔생활을 하다가 책을 출판하고 공개활동을 시작한 이후인 1997년 2월에 총격으로 사망하였다.[26] 그런데 의도한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김정남이 암살당했다면 이한영이 암살당한 지 정확히 20년 만에 암살당한 것이다.

6. 근황

2014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포착됐다.

2014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목격됐다.

6.1. 한국 망명 시도설

2012년 말쯤부터 '김정남이 한국에 망명을 시도했다', '이미 했다', '국정원이 망명 시키기 위해 공작 중이다.' 같은 소문이 떠돌았는데, 2012년 11월 12일 원세훈 국정원장이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설사 국정원이 망명 공작을 했다 하더라도 김정남이 망명을 했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김정남처럼 김씨 일가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치명적 위력을 가진 인물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사실 안전한 곳이 못 된다. 이미 이한영 암살이나 황장엽에게 늘 도사렸던 암살 시도만 보더라도 한국은 고위급 탈북자들에게 안전 지대가 되기 힘들다.[27] 더구나 김정남은 북한 정권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김씨 일가의 직계 가족이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반드시 제거 당할 것이므로 엄청난 경호 인력과 보호 체계를 요구할 것이기에 그리 권장할 만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김정남 자신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선호할 것이 확실하기에 더욱 어렵다. 아버지가 물려준 비자금으로 한량 생활을 하며 자유를 누리던 사람인데, 한국에 오면 주목을 받는 데다가 경호 인력이 따라붙어서 사실상 반 감금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으니 김정남으로서는 굳이 한국에 올 필요가 없었다.

즉 김정남은 차라리 마카오에 짱박히거나 필리핀, 호주 등 다른 곳으로 가는 게 훨씬 신상에 이롭다. 이미 그의 아들인 김한솔은 포르투갈 국적을 갖고 있기도 해서 유럽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기도 하다.

“한국 국정원이 김정남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정작 김정남은 한국보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유럽은 대북 정보에 목말라 하지 않았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남이 김정일의 아들인 것은 맞지만 다른 고위급 인사들보다 정보 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특별한 대우를 원했던 김정남과 미국 측의 협상이 결렬됐고, 한국의 경우도 김정남이 요구하는 것과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의 갭이 워낙 커서 결국 그 정도까지 비용을 지불하면서 데려오는 것은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졌다.#

6.1.1. 2012년 대선 직전 MBC 취재

2012년 12월 18일 오전 MBC에서 특별보도 형식으로 김정남과 관련한 보도를 내보낼 거라는 이상호 기자의 폭로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 보도를 내기로 했던 MBC가 공식 발표로 사실무근이지만 싱가포르에 갔던 기자가 취재를 시도해서 허락은 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MBC 허무호 당시 방콕 특파원은 김정남과 말레이시아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고, 5분간 관련내용을 물어보기만 했다고 시인했다. 물어본 질문은 NLL 관련 의혹과 망명 여부였다고 한다. 망명설에 부인하였으며 한국 소식에 대해서 잘 아는 듯한 답변이 있었다고.

MBC의 취재가 국가정보원측이 도왔다는 의혹에 대해서 국가정보원은 부인하였으며, 허무호 당시 특파원은 "말레이시아에 무작정 갔다가 우연히 호텔에서 부딪쳐"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6.2. 박근혜와의 관계

한편, 박근혜 편지 사태와 관련하여 박근혜가 이사로 있던 유럽코리아재단의 대북 사업에 장성택과 더불어 비선으로 활동하며 북한과 불법 내통 했다는 의혹이 주간경향에 의하여 제기되었다.[28] 해당기사 참고. 겨우 피살 3일 전에 올라온 기사다.

박근혜의 유럽코리아재단이 김정남을 통해 장성택에게 한복, 부적 등을 한국에서 만들어 제공해줬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복은 전주에서 맞출 경우 2,400달러였고 서울 디자이너의 경우 5,000달러가 필요하다고 까지 전해주었기도. 한국의 역술인들을 통해 사주풀이도 전해주었다고 알려졌는데, 장성택의 사주를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고 풀었다고 한다.[29]

박근혜 주변에서 박근혜의 범죄행위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죽는 의문사 사건이 유독 많다. 이 암살에 대해서도 김정남이 박근혜의 국보법 위반 혐의의 비선으로 밝혀지자마자 죽은 것에 대해서 일부 네티즌들은 정말 박근혜 주변에 우주의 기운이라도 모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하기도. 묘하게도 암살되기 4일 전, 주간경향에서 박근혜의 유럽코리아재단의 협력자가 김정남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박근혜의 국가보안법 위반의 증인이 또 다시 죽어서 증언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김정남이 김정은 몰래 박근혜와 비선을 갖고 내통했다는 것에 대해 김정은이 알게 되었다면 체제 유지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김정남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힐 개연성이 높다. 또 다른 비선, 장성택이 갑작스레 숙청된 이유로 최근 박근혜와의 내통설이 제기되면서 이 시점부터 김정은이 김정남과 장성택이 박근혜와 불법 내통 했음을 알게 되어 김정남을 제거 대상에 올렸고, 이번에 성공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낳을 수 있는 상황.[30][31]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국정원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당선을 위해 NLL 녹취록 관련하여 김정남을 망명하도록 하는 공작을 시도했다는 기사에 주목하여 김정은 쪽에서 이 보도를 보고 김정남이 망명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 암살의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6.2.1. 관련 이메일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간부가 22건 이상 메일을 주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건모 의문의 1패

6.3. 미국 정보기관과의 관련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이 살해되기 직전 미국인과 이야기를 했고, 살해될 당시 미화 12만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자금의 출처는 미국 정보기관. 혹은 CIA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북한측이 김정남의 미국 접촉 사실을 알고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내 체제 아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란 발언을 했다.

7. 피살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평가

김정남이 피살당한 후, 김정남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생겼고, 김정남에 대해 "친중파였다", "김정남은 개혁개방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김정남은 3대 세습을 비판하였다" 고 하여,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남이 정말 개혁개방파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친중파였다는 것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아마 중국에서는 북한 정변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고려했을 개연성은 있다, 김정남은 베이징,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중국과 연락하기도 했으며# 대표적 친중파인 장성택이 김정남의 후원자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김정남의 죽음 이후, 중국의 반응을 살펴 보면, 김정남의 죽음이 과거 중국이 김정일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남을 지지했고 그 후 김정은이 이에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으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김정남은 친중파이거나 친중파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판단된다. #

3대 세습에 대해서는, 2010년 10월 일본 민영방송과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면서 그러나 "3대 세습을 한데는 북한 나름대로 내부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내부적 요인이 있었으면 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다. 즉, 3대 세습에 개인적 반대는 하였으되 이에 대해서 북한 나름의 내부적 요인으로 결정된거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완전한 비판이라고도 볼 수 없는 발언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동생 김정은이 수령으로 결정된 이후이고, 권력에 밀린 김정남이 동생에게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발언 때문인지 몰라도,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 사후 북한으로부터 생활비 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김정일 생존시 1년에 50만달러 정도 생활비를 수표 2장으로 받았었다고 하며, 김정일 사후 생활비가 끊기자 2012년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활비를 달라고 구걸하기도 하였다.

김정남 피살후에 그에 대한 북한 여론은 냉정한 평가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증언에 따르면 "김정남은 식당에서 술에 취한 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총을 마구 쏜 적이 있으며 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도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도 말리지 못한 ‘깡패’, 그 자체였다"는 평도 있고, 1990년대의 어려운 시기에 외국에 나가 여기저기에서 여자에 둘러싸여 있던 김정남이 아니냐며 그 김씨 일가 중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잘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김정은을 의식해 표면 상의 여론이 그리 흘러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아니더라도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외국에 나가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김정남에게 좋은 소리를 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김정남의 학창시절 어울려 지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그림을 잘 그리고 유머가 있으며 겸손하고 허풍을 전혀 떨지 않았으며 독재자의 손자, 아들인걸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신사적이고 평범하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또 김정남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중에는 아들인 김한솔이 개념찬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아버지인 김정남의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밥을 먹을때, 가난한 인민들을 생각하면서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김한솔의 증언이 있었다.# 또한 김정일은 김정남을 매우 아꼈다. 오죽했으면 유언이 '김정남은 나쁜 아이가 아니니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이었다.

다만 아궁이에서 김정남을 실제로 만나서 자세히 보았던 강명도 교수의 증언은 위에 내용과는 다르다고 한다. 방송 중 앵커가 "김정남은 어떤 사람이였냐?"라고 강명도에게 묻자 강명도는 김정남이 "그냥 개망나니였다"고 이야기했다. 젊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게다가 어머니는 비참하게 사망했으며 말 그대로 북한 내에서는 김정일의 아들이기에 감히 그의 성격을 고쳐주거나 지적해줄 사람이 없어 성격이 삐뚤어졌고 말 그대로 개 망나니처럼 살았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김정남은 형이라서 죽었다. 그것도 친형이 아닌 이복형이라서 죽었다. 일단 적자서자를 떠나서 김정남이 김정일장남이고 그래서 북한 내부에서도 정통성 운운하는 자들은 김정남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이게 자꾸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렸다. 게다가 그나마 어머니까지 동일한 친형이면 이게 좀 덜한데 문제는 김정남과 김정은은 어머니가 비동일인물이다. 이런 형국이니 김정은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불편했다. 반대로 김정은이 형이고 김정남이 동생이었다면 김정남은 위대한 형님이라면서 계속 김정은을 떠받들어주고 빵셔틀로서 최선을 다하여 비록 북한에는 못 들어올지언정 김평일처럼 외국 주재 북한 대사로 떠돌더라도 일단 살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동생이었더라면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김정남을 옹립할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정권에 위협을 가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보면 넘사벽으로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김정남이 일찍 태어난 죄로 인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계속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결국 김정은은 그렇게 형을 죽여 없애버렸다. 그러나 미국 정보기관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며 왜 저렇게 죽여야 했는지 근거가 밝혀지고 있는중. 정황상 죽일 건수를 찾다가 미국과 내통한것을 알고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9. 대중 매체에서 등장하는 김정남

만화 김정은이라는 책에 따르면 후계자로 인정 받았을 때는 군대 계급도 있었는데 그 계급이… 3살 때 소장, 4살 때 중장, 5살에 상장, 6살에 대장, 7살에 원수, 8살 때는 대원수다(…). 그것도 아버지 김정일이 계급을 올려주고 계급장을 군복에 달아주었다. 참고로 그때는 김일성이 살았을 때. 물론 지금 와서는…[32]

한때는 오덕들 사이에서 "김정남이 권력을 잡으면 대한해협 건너에 있는 좋은 문물(?)을 들여오기 위해 오덕 글라스노스트를 실행할 것이다"라는 주장이 퍼지기도 했으나 애초에 진지한 주장이 아니었으니 그저 웃음거리로 끝났고 지금 시점에선 고인드립이 될듯(...)

일본에선 주로 위의 디즈니랜드설을 받들어 미키마우스 귀를 하고 나오거나 오타쿠로 나온다. 물론 일본에서 본 북한 이미지를 감안하면 비웃는 의도로 저렇게 놀린다(?). 正男을 일본어로 읽으면 마사오라는 굉장히 평범한 일본 이름[33][34]이 되어서 마사오라고도 불린다.[35] 그래서 일본어 백괴사전에서는 크레용 신짱의 어떤 울보 캐릭터와 합성하기도 했다!

2ch에선 뚱보인 점만 빼면 완전 만화주인공이란 평을 내리기도 했다.#

헛쯔모없는 개혁 애니메이션판에 등장한다.

여담으로, 어떤 한 네티즌이 김정남의 사진을 오타쿠로 합성했는데, 하필이면 그 사진이 각종 기사에 쓰였다. #1(BGM 주의) #2 R2-D2 탑재 라팔에 이은 기자들의 삽질이다.

10. 기타 읽을 거리

11. 관련 문서


  1. [1] 영어 위키백과에는 1970년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2. [2] 3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
  3. [3] 계정 이름은 가명인 김철로 되어 있다.
  4. [4] 김정일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형수였다고 한다.
  5. [5] 홍콩은 대북제재 일환으로 북한인의 취업비자 발급을 엄금하며 단순 관광객도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인 데다 빈곤국이라 불법체류 위험도부터 높기 때문. 북한 외에는 또 다른 불량국가들인 이란, 시리아, 미얀마, 쿠바, 수단 공화국, 소말리아, 리비아 등이 취업비자 발급 금지 국가이며 중국 본토인의 경우 홍콩이나 영미권에서 대학을 나와야 취업비자가 발급된다.
  6. [6]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성혜림이 말년에 소련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성혜림한국으로 데려오고자 하였는데, 성혜림의 존재가 드러나면 북한 체제에 굉장히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데려오기 전에 간첩에게 저격당했다. 다행히 어머니 성혜랑과 누나는 무사히 탈북해 서방 모처에 은둔 중이다. 성혜림은 2002년에 사망하여 모스크바에 묻혔다.
  7. [7] 그도 그럴 것이 이 북한이란 나라는 말만 공산주의 국가이지 실제로는 왕조 국가나 다름없는 곳인 데다가 김일성의 친족들을 지칭하는 은어적 명칭이 '로열 패밀리'였을 정도니 말 다한 것이다. 때문에 태어나서 어릴 때에는 김정일의 첫 아들인 만큼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8] 김정남의 가족이 모스크바에서 주소련 외교관 가족들의 모임에 갔는데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보고 북한에서 하던 대로 쟤네들 다 오라고 해봐. 하며 명령을 했고 사촌형인 이한영이 여긴 다른 나라라서 함부로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자 잔뜩 삐친 채로 그래도 오라면 와야 될 거 아냐라며 가버렸다.
  9. [9] 강명도著-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에 해당 내용이 나오니 참조 바람. 재밌게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도 이런 일화가 있다. 문제는 우다이는 술자리를 빙자해 마음에 안 드는 아버지의 심복을 죽였지만.
  10. [10] 이한영은 생전에 김정남이 코미디언 이주일을 좋아하여 그를 데려오기를 요청했다고 이주일이 진행하던 쇼에 출연해 증언한 바 있다. 이에 이주일과 비슷한 외모의 인물을 데려와 이주일이라고 했지만 단번에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이때 거의 유일한 친구는 작은아버지이자 나이가 동갑인 김현이었다. 둘 다 최고 권력자의 혼외자로 동질감이 있었던 듯하다.
  11. [11]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것도, 본인이 권력을 얻기 위해 눈을 불을 킨 것도 있지만 최현 등이 김정일이 적장자란 이유로 지지한 것도 컸다.
  12. [12] 김정일의 권력 계승도 김일성의 첫째 부인인 김정숙의 첫째 아들인 적장자의 위치가 크게 작용해 김평일과의 후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13. [13] 덕분에 성혜림의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14. [14] 일부 언론은 북한에서는 감히 꺼내기도 힘든 '북한'이나, '3대 세습'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3대 세습이라는 부정적 어투는 당연하게도 금기다. 북한이 아니라 북조선이라고 하는 것이 그쪽의 관례 그리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남조선이라 부르지 않듯이, 한국이라 부르듯이 그들도 스스로를 조선이라 부르며, 굳이 남북을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말할 땐 북조선이라 한다(우리가 우리를 남한이라 하듯). 북"한"이란 표현은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만든(조선이 아닌) 표현인데 그걸 썼다는 건 어떤 의도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황장엽처럼 남한으로 오고 싶어하는 건가?
  15. [15] 더구나 김정남은 자신의 출신성분, 그리고 어머니의 비참한 말년, 아울러 자신의 처지로 인해 북한에 좋은 감정을 가질 리는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그저 방랑 생활을 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다른 여러 국가로 망명할 가능성은 늘 열려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게 있어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16. [16] 강명도 씨에 의하면 김정남의 북한 여권은 기한 만료로 말소되었기 때문에 중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 여권으로는 입국이 아예 안 되는 나라가 많은데 싱가포르만 해도 북한인은 비자를 받고 들어와야 하고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중국 여권도 외국 입국은 까다로운 편이지만 불량국가는 아니다. 아울러 카더라로 중국 정부가 보호하고 있다는 말과 김정남이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했다는 말도 돌았다.
  17. [17] 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이 정말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자식들을 중립국인 스위스로 다 피난 시켜 그곳에서 교육시켰다.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모두 스위스에서 학교를 나왔다.
  18. [18] 다만 그는 영어권에 주재한 적이 거의 없으니 이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말은 많이 어눌하고 발음은 좋지 않지만,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이니 영어도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19. [19] 1970년대 헌법 개정 전까지 북한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20. [20] 특히 남자-노역의 경우. 여자-아역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과거에 코미디언 김지선이 흉내내곤 했던, 간드러진 '북한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
  21. [21] '김정남 내연녀' 서영라는 北 공작원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22RAW88pjk
  22. [22] 영상의 진위여부는 불명확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김한솔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23. [23] 2012년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발언한 '남쪽 정부'가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24. [24] 조선왕조 시절 권력에서 밀린 장남들이 의도적으로 음주가무와 여자를 가까이 하여 일부러 민심을 잃고 왕권에 관심이 없음을 애써 보여준 모습과 비슷하다.
  25. [25] 이혼 후 다시 결혼한 게 아니기 때문에 동거녀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혜경과는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26. [26] 황장엽이 중국의 한국대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한 직후의 일이며, 이 점에서 북한의 보복성 살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7. [27] 차라리 안전 문제만 놓고 본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쪽이 더 낫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는 이미 예전부터 망명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니.
  28. [28] 박근혜-김정남-장성택-김정일이라는 루트로 내통이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박근혜와 김정일 간에 불법으로 서신이 오고 간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의 국보법 위반 혐의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어떻게 국가기관도 모르게 저 둘이 내통할 수 있었던 거지?' 하는 의문만 남아 있을 뿐이고, 김정남이 그 의문을 풀 실마리로 지목되었던 것.
  29. [29] 그러나 7년 후 장성택은 처형당한다. 완전히 틀렸다. 죽을 확률이 높은 시기를 벗어나서 죽을 확률이 적어졌다고 죽지 않는건 아니니 어쩌면 틀린건 아닐지도..
  30. [30] 김정남은 원래 제거 대상이며 우연히 이번에 제거되었다는 국정원의 발표와 일치되는 면이 있다.
  31. [31] 김정남이 그렇게 오랫동안 남한의 실력자와 내통한 것을 일개 주간지가 알아냈다면, 과연 북한 당국은 몰랐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관련해 주간경향의 보도는 그저 우연이고, 상기된 '김정남이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관리자였다'는 의혹과 연결해 해당 비자금의 자금원이 실은 박근혜-최순실이 돈세탁으로 해외에 빼돌린 부정 축재 재산이며, 박근혜 탄핵으로 김정남에게 해외 자금줄로서의 역할조차 사라지자 김정은이 그 전부터 만지작거리던 김정남 제거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최태민-최순실의 배후에 북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물론 음모론이란 얄팍한 근거와 단순한 논리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든다는 데 함정이 있지만.
  32. [32] 물론 원수와 대원수는 북한 내에서도 특별한 계급이니 신빙성은 별로 없다. 김정일이 첫 아들이라 기분 좋은 나머지 그냥 상징적인 뜻에서 계급을 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준 이유는 당연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를 김정남이 이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사에 확신이란 없는 법이고 결국 김정남이 아닌 그 한참이나 아래 동생인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를 계승했다.
  33. [33] 공교롭게도 박정희가 창씨개명 당시 썼던 이름과 독음이 같다.(다만 박정희의 경우 한자가 다르다.) 2012년 대선 토론 당시 박근혜 앞에서 이정희가 그 이름을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 대해 비판하여 유명해졌다.
  34. [34] 한국으로 치자면 김철수 정도. 그런데 암살 당시 소지하고 여권의 명의가 김철이었다(…).
  35. [35] 역으로 마사오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정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본명이 '야마다 마사오'라면 '야마다 정남'으로 불리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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