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고

(なが)()(ごう) / Nagai Gō

2015년 신형 초합금 그레이트 마징가 발표회장에서 활약한 마징가풍 코스프레를 한 시노자키 아이와 함께.

1. 소개
2. 작품 성향
3.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
4. 화풍
5. 여담
6. 작품

1. 소개

일본 나가이 고 팬 사이트

1945년 9월 6일생. 일본의 만화가로 본명은 나가이 키요시(永井 潔)다.

만화가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데즈카 오사무로스트 월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그 밖에 이시노모리 쇼타로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만화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으며, 지금도 만화가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천직이라고 여긴다. 중, 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가 되기 위한 소재를 얻기 위해, 어떤 날은 하루에 영화관을 3, 4관을 옮겨다니면서 보고, 소설과 라쿠고 등 뭐든지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보고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진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던 중, 3주 동안 멈추지 않는 설사에 시달렸는데, 형이 "그건 대장암에 걸린 것이다."라고 엉터리로 알려줬다. 나가이 고 본인은 자신이 죽고 난 후 세상에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만화를 그려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다.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은 아니고 장염으로 판명 나고 약 먹고 1주일만에 나았지만, 이 때의 결심으로 재수생활은 3개월 만에 그만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짬짬이 그린 만화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들겼지만 제대로 상대해 주지도 않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는데, 그 가운데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던 소년 선데이 편집부의 친한 편집자에게 어떡하면 데뷔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프로의 어시스턴트가 되면 데뷔하기 쉽다는 말을 듣고, 평소 존경하는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으로 찾아갔지만 데즈카 선생님은 부재중이었고, 그 자리에서 데즈카의 제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소개를 통해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1]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습작을 쌓아가던 나가이 고는 1967년, TVA '꼬마 괴수 야다몽 #'의 만화판 기획을 담당하게 되고, 그 전에 실력을 점검하는 의도로 개그 단편 <메아카시포리키치(目明しポリ吉)>로 데뷔한다. 본인은 어릴 적부터 SF를 좋아해서 스토리 만화, 특히 SF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이시노모리의 어시스턴트 생활이 너무 바빠서 (본인 말로는 바쁠 때는 2주일간 하루 2, 3시간 잠을 자고, 화장실 가고 "가끔" 식사할 시간밖에 없어서 화장실에서 기절한 적도 있다고) 스토리 만화를 그릴 시간이 없어서 그림이 간단하고 배경이 없어도 되는 개그 만화라면 그릴 수 있겠다 싶어서, 스토리 만화 기법으로 개그 만화를 그린다. 개그 만화는 3등신이라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8등신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칸 나누기도 큰 칸을 사용하고, 2페이지 전면 컷을 집어넣는 등 새로운 스타일 개그 만화를 선보인다. 물론 나중에는 내용면에서도 파격으로 치달리게 되지만.

이 무렵 데뷔하고 5번째로 발표한 단편을 보고 잡지 모험왕의 편집장 카베무라 타이조(壁村耐三[2])가 찾아와 그의 작품을 칭찬하고 아카츠카 후지오에게 나가이 고를 소개시켜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아카츠카는 그의 단편을 보고 '어린이 상대로 이런 잔혹한 만화를 그리면 안된다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나가이 고는 오히려 개그만화의 거물 아카츠카 후지오가 못하는 것, 안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슬랩스틱,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요소를 집어넣은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데뷔한 다음 해인 1968년, 새로 창간된 주간 소년 점프에 몇 편의 단편으로 실렸다가 연재가 된 파렴치 학원은 출세작으로 초기의 소년 점프의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하였고, 이후 쏟아지는 개그물의 의뢰로 한동안은 개그만화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70년대 부터는 <스스무쨩 대충격(ススムちゃん大ショック)>[3] 같은 심각하고 쇼킹한 주제의 단편들을 내놓더니 오니, 마왕 단테, 데빌맨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가 그리고 싶어하던 스토리만화의 세계로 뛰어든다.

1972년에 다이나믹 프로라는 어시스트를 포함한 만화가 창작집단 회사를 설립했다. 이윽고 그의 만화 마왕 단테를 애니메이션화하고 싶어하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기획부장과 만나서 데빌맨, 마징가 시리즈 등의 히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면서 재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이 로봇에 탑승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조종한다는[4] 아이디어는 거대로봇물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본만화계는 데즈카 오사무에게서 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가이 고에게서는 특유의 성적 개방성폭력성을 배웠다고 흔히 표현한다. 데즈카 오사무 역시 어두우며 폭력적이고 성적인 만화들을 많이 그렸음[5][6] 에도 유달리 나가이 고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일본 만화계의 수위 논란 당시 이미 데즈카 오사무는 상업적인 전성기를 지나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데즈카의 초창기 작품의 상당수는 디즈니의 영향을 받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것들로 이뤄져 있었던데다 데즈카 자신은 모든 연령대를 생각하고 만화를 그린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7], 치마들추기라는 성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를 만화의 이야기 구조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만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 나가이 고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것. 이 과정에서 나가이 고는 이전까지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만화 파렴치 학원을 처절하게 마무리 시키고 더욱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만화 데빌맨을 히트시키면서[8] 자신의 이미지를 데즈카 오사무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변모,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2010년에 진 마징가 충격! H편의 연재를 시작하는 동시에 바쿠만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자신의 실제 연재경험을 바탕으로 그리는 (일단 서두에서 픽션이라고 하고 있지만) '게키만' 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주간 만화 고라쿠에서 연재 중. 아무리 봐도 나가이 고 본인으로 보이는 가공의 만화가가 주인공인데 이름도 나가이 게키. 어? 주로 자신의 작품에서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갔는지 그 의도를 간접적으로 해설해주거나, 연재 중 에피소드 같은 게 나오는데 바쿠만 주인공들을 앞서나가는 그의 발상력과 대담함, 행동력을 보면 역시 나가이 고란 말이 나온다. 물론 과장도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2005년부터 만화가나 소설가 등을 초빙하여 교수로 삼는 오사카 예술대학의 캐릭터 조형학과의 교수가 되었었다. 또한 2009년에 자신의 고향에 나가이 고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제자로는 이시카와 켄이 있다.

2. 작품 성향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라고 불리우는 3대요소로 유명하며 본인도 그러한 것을 몹시 즐긴다.

사실 원래는 개그만화 작가였다. 물론 지금보면 이게 과연 개그만화에서 해도 되는 짓인가 싶은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은 진지한 작품은 거의 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본인은 원래부터 진지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다지만 데뷔작이 개그만화였던 것도 있고해서 개그만화 말고는 연재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나가이 고는 "난 평생 개그만화 말고는 그릴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렴치 학원 사건이 터지는데 파렴치 학원은 당시 만화를 사냥하던 PTA(학부모협회)에 의하여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PTA의 영향력[9]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언론에 의해 동정이라 상상이 변태적이라서 작품이 그렇다는 둥 하지만 사람은 일단 체험하고 나서야 진짜 취향을 안다, 오카마 바에 출입한다는 둥 언론이 만들어낸 루머에 시달렸다. 또한 파렴치 학원의 교사진이 당시까지의 권위적인 교사상에 반했기 때문에 교육자층도 앞장서서 나가이 고를 공격했다. 그런데 당시 편집부에서도 그런 소문을 믿었는지 나가이 고가 편집자에게 외로우니 여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하자 편집부는 '나가이 고가 여자를 만나면 지금과 같은 대박 아이디어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당황하면서 무려 슈에이사 편집부 전체와 같은 동료 작가들에게까지 나가이 고는 절대적으로 동정을 지켜야 하니 여자를 소개시켜주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흠좀무.

본인은 이 시절 철저하게 자신의 인격을 부정당했다고 회상하며 이 때의 분노가 담긴 것이 파렴치 학원의 대전쟁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쟁은 외부세력이 학원에 간섭하여 학원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처절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며 이 외부세력은 PTA를 암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분노는 파렴치 학원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고 이후로는 흔히 알려진 에로,그로테스크,인간 비판 작품을 주로 그리게 된다. '마왕 단테'에서는 초고대문명을 이룩한 고대지구인들이 우주에서 침략해온 에너지 정신체인 신에 의하여 학살당하고 악마가 되어버렸으며 현재의 인류는 신에 의하여 편리한 도구로 인공적인 진화를 마친 유인원이라는 충격적인 전개를 내던졌다. 신에 의하여 악마가 돼버린 초고대인들은 신의 주구인 인간과 대립을 피할 수 없으며 주인공은 악마의 수장으로서 신과 맞선다는 스토리였다. 마왕 단테는 연재하던 잡지의 휴간으로 도중에 끝나버렸지만 후에 이러한 설정은 데빌맨에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편집자는 나가이 고가 인간 그 자체를 증오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했고 후에 나가이 고는 선선히 그것을 긍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사회적이라고할 수도 있는 성향은 언론과 각종 시민단체에 의하여 당시 주목되던 만화에 대한 사회적인 탄압에 딱 좋은 표적이 되었지만 반면에 동종업계인들과 만화의 독자층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예술지가 아니라 상업지인 만화잡지에서 계속해서 나가이 고의 만화를 연재하게 한 것도 사회적인 규탄을 받는다는 손해를 상회하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만화가로서 시리어스한 측면만이 평가되어 코믹, 개그 만화가로서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한 감이 있는데 어떤 만화에서도 개그를 잊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단순히 심각한 만화만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작업 스타일도 상당히 특이한 편인데, 처음부터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단지기본적인 캐릭터와 배경만을 설정한 뒤 스스로 거기에 몰입해서 '캐릭터가 움직이는 대로' 그려낸다고 한다. 덕분에 모 작품에서 주연급 캐릭터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전개가 있었는데, 본인 말로는 정작 그려놓고 자기도 엄청나게 놀랐다고(...).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선 삘 받아서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 떡밥 또는 미묘하게 맞지 않는 앞뒤가 매우 많은 편이다.

또한 몹시 질리는 게 빨라서 작품의 연재가 오래가지 않는 것은 특징 겸 단점으로 수십 종이 넘는 만화를 연재했지만 그 중에서 10권을 넘긴 것은 드물다. 그나마 길게 연재한 것은 초기의 대표작인 파렴치 학원과 그 밖에는 바이올런스 잭과[10] 아바시리 일가 정도가 있다. 그나마 그 바이올런스 잭과 아바시리 일가도 후반에 가면 작가 본인이 질린 게 뻔히 느껴지는 게 보일 정도로, 지금까지 해왔던 거하고는 딴 얘기를 한다거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거나 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일본에선 데빌맨의 원작판을 제외하면 그가 그린 만화판은 의외로 그렇게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난 천재적인 발상력에서 나오는 캐릭터와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받는다. 그 자신이 그린 만화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어도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중에선 40년이 넘게 인기를 끄는 작품이 많다.

여담이지만 작품의 성향과는 달리 실재로 대할 수 있는 그의 성품은 넉살좋은 동네 아저씨라고 한다. 실재로도 굉장히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머감각도 상당하다고 한다. 2007년 무렵 한국에 방한했을 때 잔인하고 야한 만화를 주로 그리기에 뭔가 꼬인 성격이 드러나는 모습일 줄 알았던 만화팬들이 현장에서 그가 보인 인품에 반했다는 후문이 있다. 사실 파렴치 학원 사건 때 편을 들어준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그의 평소 성품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야한 만화를 그리는 나가이 고를 까려고 취재를 갔다가 사람이 너무나 멀쩡하고 작품에 대한 주관도 뚜렷해서 까는 기사 쓰는 걸 접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3.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

  • 기생수는 이야기의 구조가 판에 박은 듯이 데빌맨과 유사하다. 기생수의 작가인 이와아키 히토시는 데빌맨빠로 유명하며 앤솔로지 코믹에 자신의 작품을 낸 적도 있다. 그 밖에도 애증 어린 신화적인 존재와 대립한다는 구조가 만화 베르세르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캐스커 관계의 전개는 데빌맨의 일부 전개에 대한 오마쥬라고 알려졌다.
  • 마징가Z는 당시까지 원격조종형인 철인 28호와 자율형인 아톰에 대하여 탑승형이라는 3번째의 형태를 제시했으며 사실상 일본에서 인간이 로봇에 탑승하는 모든 작품의 선조가 되었다. 물론 마징가Z가 최초의 탑승형 로봇은 아니지만 비주류였던 탑승형 로봇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로봇의 한 가지 형태라고 인지시킨 것은 마징가Z이다. 또한 마징가Z는 로봇물의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였으며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켜졌고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 ATLUS사의 간판 게임인 여신전생 시리즈 역시 데빌맨의 세계관이나 특성들을 빌렸다.

4. 화풍

화풍에 고유한 몇가지 특징이 있다.

스크린톤의 비중이 적고 대신 검은 먹선 위주로 채색하며 그라데이션 표현이 거의 없어 음영이 뚜렷하다.

데빌맨 시리즈의 캐릭터들

마징가 Z 코믹스

큐티하니 코믹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 눈 위아래 폭이 넓고 눈꼬리부분이 위로 치솟아 매서워보이는 눈매를 가졌으며, 눈 밑에 아이라이너를 바른 듯 미간부터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선이 강하다 .눈동자는 작아 흰자의 비중이 큰 삼백안이나 사백안이다. 쉽게말해 윗쪽을 잡아늘인 사다리꼴 스타일. 대표작인 데빌맨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이런 눈매를 가지고 있다. 미키처럼 눈동자가 크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순정만화풍 눈매를 지닌 여캐는 매우 드물다. 나가이 고는 작품과 캐릭터에 따라서 눈모양에 확연한 차이를 두는 스타일로 눈모양만으로도 캐릭터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그리는 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화가 되면 그림체가 좀 더 소년만화처럼 변하게 되는데,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이가 원작 만화를 보면 강한 개성에 이질감을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는 나가이 고도 그렇고, 나가이 고에게 영향을 받은 이시카와 켄도 마찬가지이다.

헤어스타일도 둥글기보다는 끝부분이 뾰족하게 빠지며, 단발머리의 경우 머리끝이 안쪽으로 뾰족하게 뻗혀있다. 바보털과는 다른데, 꽁지나 뿔처럼 날카로운 실루엣이다.

남녀 주연급중에는 갸냘픈 캐릭터는 별로 없고, 요즘 용어로는 근육으로 육덕진 체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남녀 공통으로 역삼각형 근육질이 많으며, 특히 대흉근, 광배근, 삼각근이 두드러진다. 대신 상대적으로 하체근육은 크게 그리지 않아서 다리는 굵지 않은 편. 삼각근이 자기 머리통만한 바이올런스 잭도 다리근육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나가이 고의 바이올런스 잭 묘하게 이녀석과 비슷하게생겼다

하라 테츠오의 북두의 권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비슷하게 상체근육이 큰 스타일인 하라 테츠오미우라 켄타로와도 차이가 있는데, 하라나 미우라는 바지를 입은 하체를 그릴 때에도 무릎과 대퇴사두근의 굴곡이 표현하는 편이지만 나가이 고는 그러는 경우가 별로 없다.

여캐의 경우에도 삼각근, 대흉근은 상당히 발달된 형태로 그리는데, 여성의 유방을 엎어놓은 밥공기 형태로 그리는 특유의 그림체와 겹쳐서 의젖같은(...) 형태다. 큐티하니시레누, 데빌맨 레이디가 대표적 케이스.

5. 여담

  • 나가이 고는 일본에 존재하는 5개의 소년 주간 만화잡지에 5개 작품을 동시에 연재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소년 점프에 파렴치 학원, 소년 선데이에 애니멀 캐다군, 소년 매거진에 오모라이군, 소년 킹에 파이팅 스포콘군, 소년 챔피언에 아바시리 일가. 그러나 역시 너무 무리가 따랐는지 소년 킹에 연재되던 파이팅 스포콘군은 연재 5주만에 종료되었다. 소년 킹은 폐간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11] 또한 데빌맨을 연재하게 되면서 여기에 집중하기위해 당시 최고 인기작이었던 파렴치 학원을 그만두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소년 점프에 마징가Z를 연재하게 되면서 이 일정조율은 헛고생이 되었다. 다만 파렴치 학원을 더 그릴 모티베이션이 없는 상태라 그만둔 것이기 때문에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 먼저 연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데 잡지사 측에서 "나가이 선생님의 만화를 연재해주시겠다는 것은 고맙지만 도저히 연재료를 지불할 수 없으니 포기하겠다"는 말을 들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가이 고의 작품의 권리 등을 다루는 다이나믹 프로가 나가이 고의 인기를 빌미로 사기적인 액수의 연재료를 요구한 것이었다.
  • 나가이 고는 데즈카 오사무를 매우 존경하였으며,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딸 데즈카 루미코가 트위터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는데, 나가이 고는 "신이 죽었다는 기분이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서는 항상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됐고 앞으로 연재 할 차기 작품의 구상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 밖에 거대로봇만화의 방법론을 제시한 데츠카 오사무의 최고의 제자 요코야마 미츠테루이시노모리 쇼타로도 만화의 선구자로서 무척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2004년 요코야마가 화재사고로 별세하자 언론사에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며 "철인28호가 없었으면, 나의 마징가도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술회했고,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인 사이보그 009과의 콜라보 작인 "사이보그 009 VS 데빌맨"의 제작이 결정 되었을 때에도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 미국 성우들 몇몇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신 큐티 하니 북미판 더빙 성우는 나가이 고 자신이 직접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초기작 파렴치 학원의 1부 결말에서 정부 측 대표로 학원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몰살시키기 위해 출전하는 악역의 대동아 전쟁이라고 언급하는 광기스런 대사와 게키만에서 밝힌 데빌맨의 배경 설정[12]으로 보면 최소한 극우적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는 없다.[13]
  • 한국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것 같다. 단순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지만 여행 갔던 제주도의 제주도민들에게서 선물도 받는 등 따듯한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 실제로 용비불패문정후 작가에게 자신의 대표작인 데빌맨의 리메이크를 맡기는 등 한국 만화계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
  • 젊었을 때 연애 경험은 거의 없고, 만화 2차원 캐릭터에 빠졌는데, 데즈카 오사무리본의 기사에서 남장 여인 주인공 사파이어 공주가 여성으로 드레스를 입었을 때 젖가슴이 보였을 때 심쿵했다고.
  • 이시카와 켄은 절친이자 술 친구로, 해외 여행도 같이 갔고, 함께 술 마시면서 "만화가는 마감이 없다면 이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텐데"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였다.
  • 소년 점프에서 많은 히트작을 연재했음에도 소년 점프에서 자신들 잡지의 대표 작가들을 언급할 때 나가이 고나 그의 작품인 파렴치 학원, 마징가 Z는 보통 생략된다. 마징가 Z 연재 당시 소년 매거진에서 마징가 Z를 연재하기로 하고 점프판 마징가 Z는 대충 연재종료를 해버린 사건이 있기 때문에 괘씸죄로 언급을 안 한다는 얘기도 있다. 나가이 고 사건 이후 이후 점프에서는 전속계약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속계약제를 도입한다.
  • 의외로 제대로 완결난 작품이 몇 없다. 파렴치 학원도 상술한 파렴치 전쟁 에피소드 이후 급 완결났고 마징가 시리즈는 사실상 40년 넘게 완결이 되지 않고 있다.[14][15]

6. 작품


  1. [1] 출전: 週刊少年 「永井豪」 インタビュー.
  2. [2] 나중에 소년 챔피언의 2대 편집장이 되어 발행부수 25만부였던 꼴찌 잡지를 250만부까지 끌어올려 업계 선두자리를 차지한 소년 챔피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물' 편집장. 마감을 넘긴 전성기의 데즈카 오사무를 찾아 가 멱살을 잡고 항의를 한 적도 있는 야쿠자같은 무뢰배로 유명했다. 한물 갔다고 평가받던 데즈카 오사무에게 블랙잭의 연재를 의뢰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가이 고에게는 처음으로 월간 잡지의 연재를 맡기고 최초의 어시스턴트도 데려와 주기도 했다. 나가이 고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3. [3]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이유도 없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는 내용. 경찰이 어린이를 총으로 쏴 죽이고, 주인공인 스즈무쨩은 엄마한테 식칼로 목이 잘려 죽는다.
  4. [4] 애니메이션으로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1952)가 훨씬 더 빨랐다.
  5. [5] 아야코MW 같은 작품들은 동성애, 살인, 납치, 시체유기, 강간, 시간, 수간 등을 묘사한 바 있다.
  6. [6] 사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런 선정적인 부분은 어느정도 순화시키는 선에 묘사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적극적인 나가이 고와는 대조적인 편이다.
  7. [7] 만화가의 길 참조
  8. [8] 데빌맨 연재 당시, 소년지에서 강간 장면을 처음으로 그리겠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악마를 범하는 거니 괜찮다"라고 이야기했던 게 바로 나가이 고다. 당연히 이는 기각되었고, 결국 후배 만화가들이 그린 앤솔로지에서야 비로소 구현된다. 그리고 데빌맨 Crybaby에선 영상화까지 되었다.
  9. [9] PTA의 조직내에서의 서열은 남편의 사회적인 직위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런 탓에 PTA 회원들의 남편 중에서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10. [10] 단 바이올런스 잭은 연재를 몇 번 중단했다가 성인잡지로 옮겨서 완결했다.
  11. [11] 소년 킹이 그저그런 잡지였던 것은 아니었고 1963년부터 출간된 유서깊은 잡지였는데 은하철도 999초인 로크 등이 연재되었을 만큼 나름 저력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기고 메이저 주간만화 잡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폐간되었다. 여담인데 초인 로크는 가히 국내만화가 김진의 저주를 능가할만한 수준으로 소년 킹 이후에 지면을 바꿔 연재되는 잡지나 사이트마다 죄다 망한 전설의 레전드 작품이다(...)
  12. [12] 아키라의 행동은 3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젊은 사람의 경험이었고, 데몬족의 힘은 과학기술로 군사국가화된 일본이었다든지.
  13. [13] 사실 나가이 고와 같은 시절 데뷔한 일본인 만화가들 중에선 대부분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14. [14] 어둠의 제왕의 정체는 뭔지,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렌다이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영원한 떡밥이다
  15. [15] 이러한 점은 마징가 시리즈가 끊임없이 리뷰트만 진행되는데 정작 리부트 작품들도 완결이 되지 않으면서 더욱 악순환되고 있다
  16. [16] 데빌맨의 장, 마징가Z의 장, 큐티하니의 장 이후 마징가 Z&그레이트의 편 연재 개시
  17. [17] 실제로는 이시가와 켄 작품. 자세한 사정은 항목을 참조하자.
  18. [18] 2018년 3월 7권 발매 예정
  19. [19] 원안 담당.
  20. [20] 3p, 남매근친이 나온다...
  21. [21] 19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주간 영 점프에 연재했던 에로 만화. 한국에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해적판 성인만화 '사랑의 박격포'로 소개된 적이 있다. 주인공 하나헤이. 통칭 '하낫페'가 악마로부터 자신이 손가락(남자 거시기처럼 변한)으로 가리키는 모든 여성과 성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내용이 2010년대 지금 기준으로도 수위가 높다. 만화 원작자가 코이케 카즈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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