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레이와 시대에 대한 내용은 레이와 시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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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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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126대 천황
[ruby(徳, ruby=なる)][ruby(仁, ruby=ひと)]
나루히토

출생

1960년 2월 23일 (59세)

일본국 도쿄도 치요다구 궁내청 병원

재위

2019년 5월 1일 ~ (재위 중)

즉위식

2019년 10월 22일
도쿄 황거 정전(正殿) 마츠노마(松の間)

연호

[ruby(令, ruby=れい)][ruby(和, ruby=わ)](레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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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徳, ruby=なる)][ruby(仁, ruby=ひと)](나루히토, 한국 한자음: 덕인)

[[칭호#s-3|어칭호]]

[ruby(浩宮, ruby=ひろのみや)](히로노미야)

부모

부황 아키히토 상황, 모후 미치코 상황후

형제

2남 1녀 중 장남
(남동생) 황사皇嗣후미히토 친왕,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황적이탈로 현재 평민)

배우자

마사코 황후

자녀

1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

학력

가쿠슈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 수료

신체

165cm

십이지

쥐띠 (경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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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 기타
6. 상훈(賞勳)

1. 개요

일본의 제126대 천황.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의 2남 1녀 중 장남이다. 2019년 4월 30일에 아버지 아키히토가 평화 헌법이 새로 제정된 이래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생전 퇴위하여 동년 5월 1일에 차기 천황으로서 삼종신기를 아버지 아키히토 상황으로부터 물려받고 정식으로 즉위하였다.

일본 역사상 2번째로 고령인 나이에 즉위했다.[1] 다만 평균 수명이 여간 높지 않은 시대의 천황이고, 현재의 60대 초반의 건강 상태는 과거 40대 후반과 비슷한 정도이고 하니 이 59세의 나이가 아주 많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세계의 군주들 중 유일하게 'Emperor'로 불리는 군주이다.

즉위 1달 전인 4월 1일 열린 내각 임시각료회의를 통해 연호를 최종 결정했는데, 나루히토가 사용하게 될 연호레이와(令和)로 결정되었다. 레이와 시대는 2019년 5월 1일 0시 부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훗날 나루히토가 사망하게 되면 '레이와 덴노' 로 불리게 될 것이다. [2]

어린 시절에 받은 칭호(어칭호)는 히로노미야(浩宮).[3] 일본 황실로부터 받은 문양 문장은 개오동나무. 아내 마사코 황후와의 사이에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내친왕)을 두었다.

2. 어린 시절

  자세한 내용은 나루히토/쇼와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나루히토의 유년 시절부터 20대까지의 행보에 관한 내용이다.

3. 황태자 시절

  자세한 내용은 나루히토/헤이세이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나루히토의 황태자 책봉 이후 즉위 이전까지의 행보(1989-2018)에 관한 내용이다.

4. 즉위 후

  자세한 내용은 나루히토/레이와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한 이후(2019.05.01~ )의 행보에 관한 내용이다.

先に日本国憲法および皇室典範特例法の定めるとこにより皇位を継承いたしました。

얼마 전 일본국 헌법 및 황실전범특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위를 계승했습니다.

ここに正殿の儀を行い即位を内外に宣明します。

이 자리에서 정전의 의례를 거쳐 즉위를 내외에 천명합니다.

上皇陛下が30年異常に亘る御座いの間連れ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願われ如何なる時も国民と苦楽を共にされながらその御心をご自身のお姿でお示しになってきたことにふかく改めて深く思いよいたし、ここ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常に願い国民に寄り添いながら憲法に則り日本国よび日本国民統合の象徴としての務めを果たす事を誓います。

상황 폐하께서 30년 이상 재위하시면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시어 어떠한 때에도 국민과 고락를 함께하시면서 그 성심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것을 다시 깊게 생각하면서, 여기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고 국민의 곁에 있으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国民の叡智と弛み無い努力によって我が国が一層の発展を遂げ国際社会の友好と平和、人類の福祉と繁栄に寄か与する事を節に希望いたします。

국민의 뛰어난 지혜와 해이해지지 않는 노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즉위식 연설문

5. 기타

유년 시절부터 교양 교육의 일환으로 바이올린비올라를 배웠고, 그중 비올라는 가쿠슈인 아마추어 관현악단에서 수석을 했을 정도의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독주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내악이나 관현악 연주회에 종종 참가하고 있는데 2004년에 한일 우호 특별 기념음악회에서 한국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라이 에이지, 러시아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모차르트피아노 4중주 제1번을 협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2007년에도 '우정의 다리 만들기'라는 이름의 한중일 합동 실내악 콘서트에 참가해 한국의 정명훈(피아노)과 안동혁(콘트라베이스.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 중국의 자오징(첼로), 일본의 카시모토 다이신(바이올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협연했다. 위 사진은 2007년 공연 때 촬영된 사진으로 왼쪽에서 4번째 비올리스트가 당시 나루히토 황태자. 가쿠슈인 아마추어 관현악단의 OB 콘서트에서도 정기적으로 참가해 공연하고 있는데 2013년에는 도호쿠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 말라 죽은 고목으로 만든 비올라로 연주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위의 결혼식(御結婚の礼)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4] 성우나 아나운서 못지 않은 맑고 시원한 목소리에다가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한다. 해당 영상에서 잠깐 나왔던 남동생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부분. 여담으로 어머니 또한 목소리가 곱기로 유명한 점을 감안하면 "모전자전"인 듯.

대한민국 정치인 중 원희룡 제주지사와 많이 닮았다.[5] 특히 1993년 나루히토의 결혼식 사진의 경우, 원희룡과 도플갱어 수준(…).[6]

나루히토가 정장 차림으로 시구하는 사진은 1988년 제70회 고시엔 기념식에서 한 기념 야구 시구 사진이다. 황태자가 된 것은 이듬해, 즉 조부 쇼와 덴노가 오랜 병환으로 끝내 붕어하고 당시 황태자였던 부황 아키히토가 즉위한 후로, (쇼와 덴노가 위독했기 때문에 사실상 황태손 취급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냥 황태자의 장남이라는 일개 황족인 상태에서 시구식을 했다. 천황 직계 황족이 시구식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일본 내에서 상당히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타자였던 니시 토시히사[7] 선수는 "황족이 던진 공을 치면 주변으로부터 불경하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일부러 공을 안 쳤다."고 고시엔 100회 기념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실제로 당시 시구식 영상을 보면, 타자인 니시 선수는 의도적으로 몇 박자 늦은 타이밍에 천천히 배트를 휘두른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8]

이후 2018년 고시엔甲子園 100회 특별 개회식에도 참석했다. 시구는 하지 않고 기념 연설만 하였다. 당시 이때는 아내 마사코 황후와 함께 참석했는데 나루히토 부부가 고시엔에 함께 참석한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당년에 더위가 대단했던 관계로 대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했는데도 더위가 심해서 나루히토는 선수와 관중을 배려해 4분 남짓으로 짧게 연설을 끝냈다. 그런데 나루히토 이후에 연설을 한 인사들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연설을 한 탓에 일본 현지에서는 '황태자 전하께서는 선수들을 배려해서 짧게 하셨는데 너희들은 눈치가 없냐'라는 비판이 나왔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한 야구[9] 이외에도 테니스[10], 검도를 하거나 등산[11]을 하는 등 몸을 쓰는 데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에도 역시 운동을 좋아하던 마사코 황후와 운동하는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었다. 2019년 궁내청이 나루히토 59세 생일 기념으로 특별히 공개한 영상을 보면, 패럴림픽 시각장애 달리기 메달리스트의 보조를 하면서도 그렇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것으로 보면, 신체 능력은 나이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사진 촬영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으로, 영국 유학 당시에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거나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게 일과였을 정도였다.[12] 결혼 이후 나루히토의 주요 피사체는 자연 풍경 혹은 가족들이라고 한다.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첫눈에 반했던 마사코 황후에게 7년에 걸친 구혼을 하다가 "전력을 다해서 당신을 지키겠습니다"(全力を尽くしてあなたを守ります。)라는 말로 결혼에 골인하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왔다. 2004년 일본 황실에 큰 파문을 낳았던 인격부정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로,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커리어나 이에 기초한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폭탄 작심 발언을 던짐으로써 아내를 음해하던 궁내청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해당 영상에서 26초부터 당시 나루히토 황태자가 말한 "인격부정발언"

이 발언의 파장은 매우 커서 아키히토 당시 천황이 궁내청 장관을 통해 질책할 정도였고, 이 발언 이후 '황태자 교체론'(皇太子の交代論)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다. 물론 신중하고 현명한 나루히토가 자신의 발언이 빚을 논란을 모르고 했을 리 없다. 자신의 입지를 흔들리게 할 일임을 알면서도, 아내를 지키기 위해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수하고 작심 발언을 던진 것이다. 나루히토의 애정은 마사코 황후가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한다는 점을 봐도 분명하다. 실제로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으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사실 나루히토의 구혼이 마사코 황후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렸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원망을 해도 이상하지가 않은데 말이다. 그만큼 나루히토의 애정과 책임감을 마사코 황후가 인정하고 더욱 고마워한다는 뜻이다. 쇼윈도 부부가 의심되는 후미히토, 키코 비 부부와는 정말,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렵게 얻은 귀한 딸 아이코 공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나루히토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일본에서도 화제였는데 그는 직접 딸의 기저귀를 손수 갈아줬다. 또 언론 앞에서 황태자가 아기 캐리어를 직접 매고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황실 최초였다. 이는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한 일본에서, 그것도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2000년대 초반에서, 무엇보다 아직도 1000년 전을 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극보수적인 황실의 남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적극적인 육아참여 부분이다. 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틈만 나면 아이코 공주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발언을 종종 했었고, 자기 나름의 육아방침을 열심히, 꾸준히, 자주 얘기하였다. 황태자 부부는 아이코 공주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리듬체조 발달 코스를 들었는데, 마사코 황후가 몸이 아파 참가하기 어려우면, 나루히토가 직접 딸과 함께 와서 참여했다고 한다. 간과하면 안 될 게 이 당시 나루히토는 부부가 나누어서 해야 할 수많은 공무를 혼자서 하랴, 자신을 위시한 집안 전체에 대한 황실 내외 음해 세력들의 음험한 공작 막아내랴, 아픈 아내 신경써주랴, 외국어 등 개인 공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딸을 위해서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참석할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애하여 딸에게 쏟아부었다. 아이코 공주가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마찬가지라 시간이 나면 그는 딸의 등하굣길을 함께 하면서, 딸 아이코 공주에 대한 언론 매스컴의 부정적인 보도로부터 잘 지켜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아이코 공주의 영상 중에 해외로 떠나는 나루히토를 배웅하러 나갔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시무룩해하더니 반대로 아버지가 귀국하는 날에는 설레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면서 기다리는 모습도 부녀지간의 돈독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오냐오냐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코 공주가 등교를 거부하자 "이제는 꼭 가야 한다"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불안함에 떨던 어린 딸을 잘 설득했으며 딸이 거식증을 앓자 "키운 사람,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라"고 혼내면서 밥을 먹게 하였다. 이처럼 부모의 깊은 애정이 자칫 잘못하면 과잉보호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적절한 훈육을 해주었고, 그 결과 이러한 애정에 근거한 훈육 등으로 올바르게 자란 아이코 공주는 명석한 두뇌 외에도 성숙하고 예의바른 성격으로도 사촌동생 히사히토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키코 비는 이것이 너무 과하여 히사히토를 진짜로 과보호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사춘기인 히사히토는 지금 친구나 주변 시종 그리고 자신의 큰 누나 마코 공주 등을 하대하거나 함부로 부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영 삐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도쿄대학을 바라보고 있는 조카 아이코 공주를 견제하고 아들을 꼭 차차기 덴노로 올려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증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나루히토 천황 내외와 아이코 공주의 승합차 합승 배석이다. 나루히토는 사람들에게 잘 띄고 기자들의 사진에 잘 찍힐 수 있는 앞좌석이 아니라 찍히기 어려운 맨 뒷좌석에 앉고, 마사코 황후, 아이코 공주를 앞좌석에 태운다. 사실 이러한 습관이 일본의 상징인 덴노가 되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2019년 5월 11일 상황 내외와 첫 식사를 하러 고쿄에 갔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타고 고쿄로 들어와서 앞으로도 이런 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황사(皇嗣)가 된 남동생 후미히토 일가는 후미히토 부부, 마코 공주/카코 공주, 히사히토가 각각 따로 차량을 타고 다니고 있다고 하니 가족 간 불화가 여간 크지 않은 듯하다.

그 외에 역대 천황 중에서도 유일하게 해외에서 2년간 유학 경험이 있기에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물에 관련된 국제적인 학회 발표 자리에서도 외국인들과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나 뉴욕에 가서도 무리없이 영어로 연설을 하거나, 네덜란드 순방 시에도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도 무리없이 영어로 대화하였다.[13] 또한,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는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불러서 도구고쇼에서 공부한다. 스페인어 교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스페인인[14]의 증언에 의하면, 나루히토 덴노가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한 이유는 과거 멕시코에서 관심 분야인 물 관련 국제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스페인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고 궁내청에 요구해서 해당 전문가를 부른 것이라고. 나중에는, 슬하 2녀를 두는 등 공통점이 제법 되어 친분이 있는 스페인의 펠리페 6세와도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스페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019년 기준으로 나루히토가 스페인어를 배운 지 10년 정도 되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부를 대충하는 일 없이 매사에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학구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가쿠슈인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이야기로, 그 영향을 받았는지 아이코 공주도 상당히 진지한 학업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1976년고구려 왕들을 주신으로 모시는 코마 신사(高麗神社)를 방문하여 참배한 바 있다.

울트라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루히토가 어린 시절이 딱 울트라맨 붐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것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골라 산 책이 울트라 괴수도감이었고 울트라 세븐 행사에도 직접 방문해 팬임을 밝힌 바가 있다. # 그 외에도 어린 시절에 오소마츠 군이야미의 셰에에~ 포즈를 따라하는 사진도 발굴되었다. #

지금은 수정되었으나, 예전에 올라온 사진은 가르마가 아닌 올 백머리로 나왔는데, 해당 사진은 2010년 1월 26일 일본 도쿄에 있는 UN 대학[15]에서 찍힌 사진으로 평소에는 가르마를 타고 있다.

영국 유학시절 브룩 실즈를 좋아해서 기숙사 벽에다가 산 사진 옆에다가 브룩 실즈의 사진을 걸어두었을 정도이다. 그걸 잘 아는 유학시절 미국인 친구가, 나루히토가 1985년경 유학을 마치고 바로 귀국하지 않고 방미했을 때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나루히토를 위하여 브룩 실즈와 만나게 해주었다. 그 만남에 나루히토는 상당히 좋아했다. 그 이후인 1990년에 브룩 실즈의 방일 시에도 그녀를 초대해서 만나기도 해서, 당시 몇몇 언론들은 "일본 황족 최초로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의외로 주당이라, 한 술집에서 진열된 술을 반절 이상을 시켜서 마신 적이 있었으며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취해 뻗어도 멈추지 않고 결국 다 마셨는데도 흐트러지지 않았었을 정도[16]라고 하는데 결혼을 계기로 술을 끊었다. 술을 일절 못하는 아내 마사코 황후를 배려하기 위한 것. 하지만 결혼 후에도 종종 시종 등과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푼 적이 있다는 보도를 보면,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아내, 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만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가 상징적 천황제는 곧 일본 국민들에게 개방된 황실을 꿈꾸는 사람답게 황태자 시절에는 딸 아이코 공주를 아내와 함께 양육하거나 등 뒤에 딸을 업고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는 장면을 언론을 통해서 공개하거나 유럽에서의 해외 공무 도중 외국인과 셀카를 찍고 그 외국인에게 자신과 찍은 사진을 외국인의 SNS에 업로드하라고 권하는 등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즉위 후 바쁜 중에도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영국 왕실 등 유럽 왕실들처럼 일본 황실도 공식 SNS를 개설해서 평상시 황족들의 생활들 일부를 공개할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다니면서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하는 등 여러모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6. 상훈(賞勳)

일본 제126대 천황으로 등극한 2019년 5월 1일의 즉위 첫 행사 당시의 사진이다.

  •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 본 사진에서 목에 패용하고 있는 훈장.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며, 상징적 국가원수로서의 권위를 상징한다. 수훈일은 당연히 레이와 원년 5월 1일 천황으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결정되었다.
  •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勲位菊花大綬章): 장경식 다음으로 높은 훈장으로, 적법한 황위계승자임을 상징한다. 황태자가 된 건 1991년이지만, 그보다 빠른 1980년에 수여받았다. '대수'라는 표현대로 원래 어깨에 걸치는 형태지만 본 사진에선 부장을 패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것보다 상급 훈장을 수훈받았기에 부장을 패용하게 된 것이다.
  • 동화대수장(桐花大綬章): 본 사진에서 어깨에 매고 있는 훈장이 바로 이것으로, 수훈일은 레이와 원년 5월 1일 천황으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결정되었다.
  • 문화훈장(文化勲章): 본 사진에선 패용하고 있지 않으나 일본 정부에 의하여 레이와 원년 5월 1일 덴노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수여받는 것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 일본적십자사금색유공장(日本赤十字社金色有功章): 이 또한 어떤 의미에선 황족이라는 이유로 주는 훈장이다. 본 사진에선 패용하고 있지 않다.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 벨기에, 바레인, 덴마크,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필리핀, 포르투갈, 카타르, 스웨덴, 스페인, 통가, UAE로부터 받은 훈장이 있다.


  1. [1] 최고령 즉위 천황은 나라 시대에 살았으며 즉위 당시 61세였던 제49대 코닌 덴노이고, 원래는 2번째로 고령인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나루히토 즉위 후 3번째가 된 천황은 부황 아키히토이다. 나루히토가 2번째라고는 하지만 코닌 덴노와 몇살 차이 나지 않는 만큼, 황사 후미히토는 최고령으로 즉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항목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형제 간 사이가 매우 안 좋기 때문에, 바로 조카 히사히토에게 넘기거나, 심하면 황실전범을 개정하고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에게 넘길 수도 있다. 한국사에서는 나루히토와 '만'으로 같은 나이에 즉위했던 강종이 있으며 더 많은 나이에 즉위한 왕으로는 64세(만 63세)의 신라 지증왕도 있다. 태국에는 나루히토보다도 늦은 64세에 즉위한 라마 10세가 있다. 라마 10세의 부왕 라마 9세는 붕어할 당시 세계 최장 재위 국왕이었으나, 현재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최장 재위자이자 최고령 국왕이다. 덕분에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71세인 지금도 할아버지왕세자로 있다(...).
  2. [2] 아키히토 또한 '헤이세이 덴노'라고 불리는 것은 사후의 일로, 재위 도중에는 외국에서는 '아키히토'라는 본명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폐하(陛下), 금상천황(今上天皇)으로 불렸다. 퇴위 후에도 상황(上皇)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사망 전까지는 본명이나 연호로 부르지 않는다. 아직 살아있는 아키히토나 나루히토를 헤이세이 덴노, 레이와 덴노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을 고인이라고 불러 죽은 사람 취급하고 모욕하는 것과 같다.
  3. [3] 덴노와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으로, 일종의 아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4. [4] 영상의 1분 51초, 3분 51초 부분이 나루히토가 직접 부모에게 인사 올리는 인삿말이다.
  5. [5] 원희룡은 1964년생으로, 나루히토보다 4살 젊다.
  6. [6] 참고로 아버지인 아키히토김근태 예비역 대장을 닮았다.
  7. [7] 훗날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여 일본생명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으며 2010년 독립 리그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이승엽과도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이승엽은 심지어 06WBC때 도쿄돔에서 나루히토 앞에서 역전결승투런을 친적 있다. 그때 감독시절때 33번을 달았던 나가시마 시게오와 구단주인 와타나베 츠네오도 같이 직관했었다.
  8. [8] 사실 일반적으로 시구 시에는 보통 타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그냥 설렁설렁(?) 배트를 휘둘러 헛스윙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시구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자칫하면 시구자가 땅볼이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맞아 다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장나라의 시구를 굳이 받아쳐서 하마터면 장나라가 다칠 뻔한 것 가지고 아직도 씹히는 걸 생각하면 쉽다.
  9. [9] 나루히토의 동창생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생 때 학우들을 직접 섭외해서 그 친구들과 같이 야구를 했었다고 한다.
  10. [10] 이건 테니스를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참고로 나루히토 황태자의 경우에는 아버지 아키히토의 타법을 그대로 흉내내서 하지만, 남동생 후미히토는 다른 방법으로 치는 편이다.
  11. [11] 대한민국문재인 대통령처럼 등산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학창시절에는 일본 각지 산들을 돌면서 등산했고, 영국 유학 당시 기숙사 벽에다가 각종 산 사진을 걸어두었을 정도로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편이다. 최근에도 기자들과 웃으면서 등산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 덕분에 키코 비2019년에 뜬금없이 히사히토를 데리고 험준한 산에 올려보낸 이유에 대해, "등산을 좋아하는 나루히토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신빙성 높게 회자될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키코 비가 등산객들을 막아버리면서 상당한 불편함을 주었다는 점. 이는 전통적인 황족관을 가진 나루히토의 입장에서는 키코 비의 행동이 황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인지라, 더욱 거리를 두게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데 감히 우리 가문에 기어올라? 실제로 해당 보도에 대해서 궁내청 직원들도 "키코 비가 너무 수세에 몰린 나머지 실수한 것 같다"고 했다.
  12. [12] 참고로 영국 유학 당시 현지 특파원들이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한 사진을 찍을 때는 나루히토는 의도적으로 잘 찍힐 수 있도록 자세나 위치를 스스로가 잡아주었기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네들을 배려해주는 태도에 감동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13. [13] 그의 아버지 아키히토도 영어 실력이 있지만 최근의 해외 순방 영상들을 보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큼 유창하지 않은 듯 말을 많이 아끼는 것처럼 보이며, 해외에서 행하는 장문 연설의 경우 그냥 일본어로 한다. 그 외에 히로히토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대화할 때 영어로 했다는 말이 있다.
  14. [14] 사실 이분은 일본 외무성의 스페인어 강사로도 활동 중이라고 한다.
  15. [15] 명칭만 대학일 뿐 실제로는 인류의 존속, 발전, 복지에 관한 세계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학자, 연구자들의 국제 공동체다.
  16. [16] 하지만 그러한 나루히토도, 동생 후미히토가 자기보다 먼저 결혼했을 때만큼은 흐트러질 정도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물론 나루히토가 취한 건, 어렸을 때부터 아끼던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축하하는 것을 술로 마시다보니 취해버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루히토가 장가를 간 후부터 황위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면서 형제 사이가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러한 대립은 2006년 히사히토 출생 후에 절정을 찍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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