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

나일강 / النيل (안-닐)/ Nile River

1. 소개
2. 역사
3. 인근 국가 관계
3.1. 아스완 댐 문제
3.2. 그레이트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제
4. 그 외

1. 소개

이집트에 위치한 세계 최대 길이의 으로, 길이 약 6,650km이다. 2위인 아마존 강은 여러 조사 기록의 평균이 6,296km인데, 최대 가장 긴 기록은 6,762km. 아무래도 아마존 강의 길이에는 정글 지대이다 보니 수원을 명확하기 짚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된 듯하며 지류의 길이까지 포함시키면 강이 훨씬 복합적으로 형성된 아마존이 길다…. 어쨌건 중요한 건 아주 길다.

아프리카 대륙을 반쯤 종단하고 있으며, 백나일 강은 부룬디의 산악 지대에서 발원해 르완다탄자니아 서북부를 거쳐 빅토리아호로 흘러들고, 우간다남수단에 이른다. 청나일 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데, 이 두 지류가 수단 공화국의 하르툼에서 합쳐지며, 이후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를 지나고 최종적으로 지중해로 흘러나간다. 유역 면적은 3,400,000km².

2. 역사

이름인 '나일'은 '강'이라는 뜻의 고대 셈어 나헬(nahal)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역시 히브리어로 강을 뜻하는 나할 'nachal'(히브리어 'נח"ל‎')의 어원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나일 강을 이테루(iteru)라고 불렀는데, 이는 보통명사 '강'과 같았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나일 이외의 강을 몰랐기 때문에, 이테루가 곧 강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콥트어에서는 피아로(piaro/phiaro)라고 했는데 역시 의미는 'The River'.[1]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군대를 이끌고 최초로 이집트 영역을 벗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원정을 했을때,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이집트인들이 보고 가장 놀란 것은 거꾸로 흐르는 나일이었다. 남에서 북으로만 흐르는 나일만 보다보니,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비상식적인 존재였던 것.

이와 같은 강의 흐름 방향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하다. 북쪽이 위쪽으로 표기된 지도에 익숙한 우리 시대 사람들은 상/하 이집트 개념을 북쪽이 상이집트, 남쪽이 하이집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남쪽이 상이집트, 하류인 북쪽이 하이집트다. 즉, 나일 강이 흐르는 방향은 현대의 나침반처럼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는 지리적 방향의 척도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리적 방향 개념은 상류방향(남쪽)/하류방향(북쪽)의 두 방향 뿐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이집트의 지리적 특성상 강 유역은 농업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지만, 강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거주가 불가능하고 통과도 극히 곤란한 사막이 시작되니, 지리적 차원에서는 동, 서 방향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집트 역사에서는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와 중동,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지중해 동부지역과 교류하거나 분쟁을 벌이는 부분이 많아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집트 역사 초기의 수천년간은 실질적으로는 외부와 교류가 없었거나, 그나마의 교류도 역시 나일 강 유역을 따라 있는 누비아 지역과의 교류가 많았고, 사막을 건너야 하는, 그나마도 거리가 짧은 동쪽 사막이지만, 중동 지방과의 교류는 이미 이집트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 후기에 주로 있었다. 즉, 그 전 수천년간은 종종 이민족이나 대상의 접근은 있더라도, 단순히 '외부인'으로만 생각하지, 동, 서쪽 지역을 생활영역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역사 문서를 참조하길 바람.

정기적으로 범람하면서 많은 양의 퇴적토를 나일 강 하류 연안으로 가지고 왔기에, 농업 생산력이 높아져 고대 이집트 문명을 번영시켰다. 또한 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예측할 필요성이 크게 작용하여 이집트 천문학과 역학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주기 예측과 범람으로 인한 토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측량술과 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나일강의 신인 하피가 인간이 수학을 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피 개새x[2] 비록 이집트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았지만,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도 이른 시기에 문명과 국가가 발흥한 것 역시 (이집트의 영향도 있지만) 나일 강의 덕이 컸다.[3]

3. 인근 국가 관계

나일 강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당연히 이집트이고, 수단 또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외에도 에티오피아, 남수단, 우간다는 직집적인 관련이 있으며, 콩고,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케냐 등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3.1. 아스완 댐 문제

이집트의 아스완 댐은 1889 ~ 1902년 영국에 의해 건설되었고, 증축공사가 1910년, 1942년 두번 더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댐이 된 것은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교묘한 양팔정책으로 미국영국의 지원을 얻어내면서였다. 하지만 1956년 중동 갈등으로 지원이 철회되고,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그리고 1964년부터 수원 저장을 시작해서 1976년 수원 한계량을 채우게 되었다.

아스완 하이 댐과 아스완 로우 댐으로 나뉘는 데, 특히 아스완 하이 댐이 규모가 크다. 길이만 3,830m이며 넓이는 기본구조물로만 980m이다. 중심축의 넓이는 40m, 길이 111m 이다. 최대 11,000m3의 수원이 매초 내보내질 수 있으며 추가로 5,000m3의 수원 방출구가 있다.

하지만 아스완 댐의 건설로 인해 아부심벨 대신전과 팔레 신전 등의 문화 유적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유네스코 등에서 문화재 구출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신전은 해체되어 옮긴 뒤 다른 지역에서 재조립되었다.

한편으로 아스완 하이 댐이 지어지자 수량 문제로 다른 나일 강 인근 국가와 이집트 사이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다. 그러니까 주변상황좀 보고 댐 짓든지 말든지… 심지어 이집트 대사관이 짱돌로 공격받은 일도 있었을 정도. 나일 강은 하류를 관장하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청나일 강과 백나일 강을 놓고 벌어지는 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의 분쟁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남수단에선 백나일 강 근처 소유권을 두고 부족갈등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3.2. 그레이트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제

나일강은 2개의 큰 블루나일강(청나일)과 화이트나일강(백나일)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2개의 강은 수단의 하르툼에서 합쳐져서 이집트로 향한다. 나일강의 수원의 75% 는 에티오피아 나탸호에서 시작되는 블루나일강으로 부터 유입된다. 그런데, 에디오피아는 블루나일강 상류에 크고 아름다운 댐을 짓겠다고 발표하고, 2013년 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관련기사

에티오피아는 이 댐에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설치하여, 공업활동의 기반이 되는 전기 확보에 목을 매고자 한다. 6000MW 급의 발전 능력을 목표로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4] 자국에 전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된 전기를 주변국에 수출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의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국책사업이다. 에티오피아는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 48억달러(약 5조원)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댐이 완성되면 저수지에 물을 저장하게 위해서, 하류에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이집트는 결사 반대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문제는 수단인데[5], 이 댐에 대해서는 이집트 편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편을 들었다. 댐이 완성되면 홍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로부터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도 있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수단 외의 다른 주변국가와도 이미 협력관계를 맺어 놓은 상태이다.

여튼 이 댐에 얽힌 이해 관계를 풀기 위해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3국이 협의를 진행중이지만, 어찌 해결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관련기사

4. 그 외

지금은 관개목적과 치수사업을 위한 댐 건설로 인해 범람을 못해서 하류의 비옥한 농토가 조금씩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1년 2작으로 효율 1. 8은 된다. 그러나 강이 자연적으로 배출하던 광물 성분은 사라졌고 되려 소금기가 농작지와 고대 유적들로 스며들어 염해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 어업은 댐 건설 이후 나일 강의 미네랄이 줄어들며 극히 안 좋아졌다. 무엇보다 나일 강 농업이 19세기 이집트 인근 면화 사업의 융성으로 주목받게 된 탓에, 댐은 환경이나 농경민의 생활의 고려가 적었던 산업적 차원에서 건설되었다. 그 결과 이집트는 댐에 대해서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황.

보통은 나일 강을 양쯔 강이나 아마존 강처럼 강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넓은 곳은 약 30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약 100m 정도로 매우 좁다. 이는 폭이 넓은 곳은 1km는 되는 상류[6]에서 하류로 흐를 때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비가 그나마 오는 삼각주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비해 조금 더 상류에 있는 멤피스나 카이로 같은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지류 또한 없으니, 강물이 유입될 요소가 없기에 그런 것이다. 따라서 좁기도 좁거니와, 하류로 갈수록 폭도 좁아진다.


  1. [1] 비슷한 경우로, 강을 지칭하는 한자 '河'는 본래 황허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였다. 그러다가 낙양 - 장안 지역이 지나치게 오래 수도로 자리잡은 탓에 무리한 개간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토사가 강에 대대적으로 유입된 대 이후로 강물 색이 바뀔 정도라고 해서 '황하'로 불리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낙양 - 장안 지역은 이후 중국 통일 왕조의 수도 자리를 회복하지 못한다. 물론 중국의 경우에는 황하 이외에 강이 없지는 않아서, '河'는 강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였지만 어쨌건 오리지날은 황하라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江'자도 원래는 장강(양쯔강)만을 의미했으나 일반적인 강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 글자다.
  2. [2]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나일 강이 있었기에 이집트 문명이 발흥할 수 있었다는 얘기.
  3. [3] 달력의 1월 1일도 사실은 태양과 시리우스가 같이 뜨는 날로 이날부터 나일 강의 범람이 시작되어서 정한 것이라 함.
  4. [4] 대한민국의 원자력발전소 1기의 발전 능력은 대략 1000MW 급으로, 이런 발전소를 6기 짓는 것과 동등한 발전 능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5. [5] 수단과 에티오피아는 별로 사이가 좋진 않다.
  6. [6] 청나일, 백나일. 각각 아비시니아 고원과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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