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남미 도주

1. 개요
2. 남미로 도주한 전범
3. 기타 국가로 도주한 전범
4.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범
5. 대중문화
6. 관련 문서

1. 개요

남아메리카도주나치당 잔당들을 다루는 문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수많은 나치 전범들은 공소시효 없이 영원히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외에도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당시 완전포위되어 바다를 통하여 탈출한 독일인들 중 상당수가 독일본토가 아닌 남미로 항로를 잡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나치 전범들도 순순히 잡혀 줄 마음은 없었고 연합군의 추적을 피해 신분을 세탁하고 각국으로 도주했는데 주로 남미가 주 도피처가 되었다. 남미가 주 도피처가 된 이유는 남미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고[1] 미국이나 유럽, 소련의 영향력이 비교적 미미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남미 국가들은 나치 인사들의 송환에 비협조적이기도 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대통령이던 후안 페론[2]과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가브리엘 곤살레스는 나치 인사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숨겨 주거나 나치 전범과 부역자의 자국 망명을 묵인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이를 지휘했던 장관이 다름아닌 전직 우스타샤 전범 안테 파벨리치.[3] 덕분에 구드룬 부르비츠, 오토 슈코르체니, 한스 울리히 루델, 알로이스 후달같은 친나치 인사이나 전범은 아닌 이들의 지원과 더불어 수많은 전범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초반부터 독일인 이민이 많았으며[4][5],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고국의 사정에 절망한 독일인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쳐들어온 동프로이센을 배를 이용해 탈출한 독일인들이 많이 이민을 갔기 때문에, 그리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수가 많지 않고 미개발지도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나치 인사들이 숨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특히 남미 중에서도 95%로 백인의 비율이 높아서 백인인 자신들이 숨어살 수 있었고 또한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인간들의 눈에 보기에는 당시로서는 미국과 유럽 등을 제외하면 '그나마 나은' 문명 세계이기도 했다. 그중 부유했던 아르헨티나가 주 도피처로 선택되어 수많은 나치 전범들이 도주하게 되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다 잡힌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가 매우 유명하다. 체 게바라가 의대생 시절 남미를 여행하던 중에 한 집에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에 살던 사람이 도망친 나치 인사였다고 한다.

독일 나치 전범들만 간 것은 아니고, 많은 수의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왕국 파시스트들과 크로아티아 독립국우스타샤, 독일 국방군 점령 시기 나치 독일군에게 협력하던 유럽 국가들의 매국 부역자들도 많이 따라갔다. 비슷하게 몇몇 일본군 잔당들은 브라질로 도주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브라질이 친추축 국가라는 의견이 나오는데, 브라질은 약간 사정이 다른 게, 위의 주석에 언급되었듯이 아르헨티나처럼 연합국에 이름만 올려 놓은 게 아니라 잠수함에 지상군까지 투입해서 추축군과 싸우던 국가이다. 당장 전후 브라질의 독재자였던 카스텔루 브랑쿠부터가 2차 대전 당시 참전으로 이름 좀 날리던 양반이다.(물론 그와 별개로 윗 주석에 써놓듯이 통치방식에 있어서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건 사실이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본군 잔당들이 굳이 브라질로 피신한 까닭은 브라질에 일본계 후손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섞이기 쉽기 때문으로, 지금도 일본 이외에 세계에서 일본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미국도 아닌 브라질[6]이다. 일본군 패잔병 문서 참고.

그렇게 아르헨티나는 나치 관련 음모론에 자주 엮이게 되었고 남극 은신설이나 히틀러, 혹은 히틀러 자식의 은신설 등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게 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칠레 또한 옆나라 아르헨티나 못지 않아서 파울 셰퍼와 발터 라우프 등이 칠레로 도주하였고 칠레로 도피한 나치 전범 파울 셰퍼와 피노체트 군부 독재 정권이 유착하여 일어난 콜로니아 사건이 있었다.

2. 남미로 도주한 전범

  • 마르틴 보어만 - 1972년에 유골이 발견되었지만 확실하지 않다가 1998년 DNA 대조 검사로 공인됨.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사망 처리였으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남미 도주설이 유력했던 인사 중 하나였다.지옥으로 도주
  • 아돌프 아이히만 - 모사드의 추적 끝에 이스라엘에서 사형 당했다.
  • 안테 파벨리치
  • 요제프 멩겔레 - 아이히만과 같이 모사드가 추적했지만 끝내 검거에 실패하고 결국 멩겔레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 한스 울리히 루델 - 전후 아르헨티나로 잠깐 피신하여 다른 전범들의 도피를 돕는 겸 남미 각국의 군사 고문 일을 하다가 다시 서독으로 돌아와 노골적으로 네오 나치 활동을 하였다.
  • 에두아르트 로슈만 - 라트비아 리가 게토의 책임자로, 굶주린 개에게 사람을 던져주는 등의 짓거리로 유명했으며 거의 35,000명이 이 작자에게 죽었다고 추정된다[7].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과 신분을 바꾸고 재혼까지 하며 잘 살았지만, 하필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중혼죄로 기소되어 쫓기는 과정에서 전력이 드러나 체포 영장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도주 실력이 워낙에 좋았던 탓에 아르헨티나를 잽싸게 떠나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숨어 살다가 끝까지 체포되지 않고 1977년 파라과이에서 사망했다.
  • 클라우스 바르비
  • 구스타프 바그너 - 소비보르 절멸수용소 소장으로 브라질에 숨어 살다가 1978년 시몬 비젠탈 센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가 이스라엘, 폴란드, 오스트리아의 인도를 모두 거절함으로써 잔류할 수 있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1980년 자택에서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된다.
  • 프란츠 슈탕글 -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소장으로 바티칸의 알로이스 후달의 도움을 받아 미군에 체포되어 있던 중 탈출한다. 이후 가족과 시리아에 머물다 1951년 브라질로 가서 폭스바겐에 취직한다. 그러나 로슈만과 달리 자기 이름을 떳떳하게 사용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1961년 서독 정부에 기소되어 본국으로 끌려와 종신형을 선고받아 1971년 옥중에서 사망한다.
  • 발터 라우프 - 차에서 낮잠 자다가 배기가스에 죽을 뻔한 경험을 되살려 초기 유대인 학살 방법이었던 가스바겐을 고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전후 시리아로 도피하여 이스라엘 건국에 맞서기 위해 현지 정보기관에서 일했는데, 하필 그 해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레바논으로 도주 후, 이탈리아를 거쳐 에콰도르로 도피한다. 이후 다시 칠레로 도피하여 피노체트의 자문 역을 했고, 1984년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거기 거주한다. 당연히 수많은 나치 추적자들이 그를 쫓았지만 칠레 정부는 당연히 그의 송환을 거부했다.[8]
  • 파울 셰퍼 - 콜로니아 사건의 주범. 나치가 망하고 난 후 독일에서 컬트 종교를 운영하다 1961년 아동성폭행 수사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치 전력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급하게 신도들을 데리고 칠레로 도주하여 거기서 계속 컬트 종교 콜로니아를 이끈다. 이윽고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자 셰퍼는 적극적으로 군부에 협조했고 그의 종교시설은 피노체트의 아우슈비츠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독일 대사관까지 매수해가며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콜로니아의 40년동안 탈출한 사람은 5명뿐이었고 수백명의 정치범이 그의 시설에서 죽어나갔다. 이후 어찌 기소되어 2005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지만 결국 다시 잡혀와 20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2010년 사망한다.
  • 에리히 프리브케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로마 외곽 동굴에서 수백 명을 학살한 나치 전범.[9] 2013년 10월 15일, 100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죽었다. 아르헨티나에 있는 부인 묘 옆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의 매장을 거부했다.[10]

3. 기타 국가로 도주한 전범

  • 호르스트 슈만(미국, 가나) - 아우슈비츠의 악명 높은 생체실험을 지도한 의사로 미군에 체포되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석방되었고 그대로 독일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1951년 총을 구매하다 전력이 드러나 영장이 발부되자 그대로 미국으로 도피했다. 한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다가 우연히 한 잡지에 가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제2의 슈바이처"랍시고 기재되었고, 당시 그를 비호하던 콰메 은크루마 정권이 1966년 무너지자 그대로 서독으로 압송되어 끌려온다. 슈만은 법원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지만 6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된다. 정작 슈만은 1983년 11년을 더 살고 사망했다.
  • 야키프 팔리(미국) - 미국에서 추방된 95세의 전범. 우크라이나인 부역자였으며 수용소의 경비병이었다. 이미 2001년에 전력이 드러났지만 그는 자신은 학살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게슈타포 및 무장친위대 훈련을 받은 사실과 라인하르트 작전 가담이 확인되어 2004년 국적을 박탈당하고 이민국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으나 독일, 우크라이나, 폴란드 모두 그를 환영하지 않아 무국적 상태에 놓였다. 이후 2018년 퀸즈에서 독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 사망했다.
  • 알지만타스 다일리데(미국) - 리투아니아인 부역자였으며, 빌뉴스 게토의 경찰이었다. 1997년 전력이 드러나 국적이 박탈되었으며 이후 리투아니아에서 다시 기소되었지만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수감되지는 않았다. 이후 2015년에 사망한다.
  • 미하일 고르슈코프(미국) - 에스토니아인 부역자였으며, 게슈타포 대원으로 3000명이 사망한 슬류츠크 사건에 관여한 것이 드러나 2002년 국적이 박탈되었다.
  • 헬무트 오버란더(캐나다) - 아인자츠그루펜 대원이었으며, 전력이 드러난 1994년 이후 현재까지도 캐나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그의 국적을 박탈하려 시도하고 있다.
  • 블라디미르 카트류크(캐나다) - 우크라이나인 부역자였으며, 156명이 사망한 벨라루스 카틴 학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시몬 비젠탈 센터의 추적 대상이 되었고, 캐나다 정부가 그를 기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실 처벌은 되지 않은 채 2015년 사망했다. 본인은 생전에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 알로이스 브루너(시리아[11]) - 시몬 비젠탈의 생전 마지막 추적 대상으로 유명하며 전후 시리아 정보기관에서 일했다. 모사드에서 1961, 1980년 두 번에 걸쳐 우편폭탄으로 그를 암살하려 했으나 경상만 입고 살아남아 추적자들을 조롱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간 큰 행위까지 벌였다. 이후 프랑스, 독일 정부는 브루너의 송환을 요청했으나 시리아에서는 무시한 끝에 2014년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다.
  • 아리베르트 하임(이집트) -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의사였으며, 수많은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전후 미군에 잠시 체포되었다 풀려났으나 1961년부터 서독 정부가 전범들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영장이 내려온 즉시 프랑스와 스페인, 모로코를 거쳐 이집트로 도주한다. 이후엔 가족 외에 모든 연락을 끊고, 심지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아랍식으로 개명하는 등, 대놓고 사람들을 도발한 알로이스 브루너와는 달리 절대 외부에 노출되려 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그 탓인지 모사드가 2009년까지 정말 기를 찾고 추적해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며 그저 기사를 통해 그가 1992년에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 레옹 디그렐(스페인) - 벨기에의 부역자이며 렉스당 지도자였다.
  • 오토 슈코르체니(스페인) - 연합국에서 자신을 정보원으로 쓴다는 소식에 수용소를 탈출하여 잠시 스페인으로 도피했다가 아예 정착하며 전범들의 도피를 지원한다.
  • 요아힘 파이퍼 (프랑스) - 형기를 마치고 1956년에 SS 동료들의 도움으로 포르쉐 직원이 되지만, 어쨌든 전범이었기에 기피 대상이었고 거기에 1960년대에 서독의 전범 추적이 거세지고 실제로 보베 학살 혐의로 재판에 고발까지 당하자 겁도 없이 한 때 침략했던 국가로 도피해 신분을 감추고 숨어살다가 후에 한 잡지의 폭로로 발각되었다. 이후 1976년 살인 예고를 받고,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진짜로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이 일로 기소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누구도 사실상 책임을 묻지 않아 수사는 흐지부지 끝났다.
  • 스테판 반데라 (서독) - 약간 특이한 케이스로, 주 무대가 우크라이나폴란드 등지였던지라 전후 자신의 범행과 접점이 없던 서독으로 망명한 케이스이다. 전후에도 네오 나치들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독립 운동을 계속 하다 KGB에 추적당해 죽었다.

이외에도 현재 도피중인 수많은 나치 전범 및 부역자들이 시몬 비젠탈 센터에 쫓기고 있다.

4.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범

5. 대중문화

김형배 화백의 1984년 연재 만화로, "히틀러와 UFO"라는 일본 3류 저널리스트 '오치아이 노부히코'의 음모론 서적을 기초로 작화했다.[12] 이 만화에서 히틀러의 UFO 기지는 아르헨티나에 있었다.
  •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후기 곡 'No one is innocent'에는 "God save Martin Borrman, and Nazis on the run"이라는 가사가 존재한다. 이 곡 자체가 섹스 피스톨즈 해산 이후 제작된 세미 다큐멘터리 그레이트 록앤롤 스윈들에 삽입된 곡인데, 영화 상에서 보컬 쟈니 로튼이 탈퇴하고, 시드 비셔스가 이탈한 뒤, 나머지 멤버 두 명이서 브라질로 날아가서 리우데자네이루에 은거하고 있는 열차 강도 로널드 빅스를 보컬로, 마르틴 보르만[13]을 베이시스트로 영입해서 새로운 섹스 피스톨즈를 만든다는 엉터리 내용이다. OMG 영화클립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도 에릭 렌셔가 복수를 위해 세바스찬 쇼를 찾아갔던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 시트콤 오피스의 메인 빌런(?) 드와이트는 할아버지가 아르헨티나에 숨어 사신단다. 슈츠슈타펠이었다는 설정. 워낙 돌아이 캐릭터라 시트콤 치고는 의외의 설정인 듯. 거기에다 마이클은 대놓고 '너네 할매 나치였다며'라고 갈군다.
  •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단편집에 수록된 '솔저 블루'에는 마르틴 보르만 (당시만 해도 마르틴 보르만은 전후 행적이 묘연했다)이 아르헨티나로 도주 후 네오 나치를 이끌고 세계 분쟁의 흑막으로 알게 모르게 손 대고 있다는 설정.
  • 히라노 코우타의 만화 헬싱에서는 나치의 남미 도주에 바티칸이 협력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남미로 도피해 세력을 키운 나치 잔당들이 바로 '최후의 부대' 라스트 바탈리온.
  • 마블 코믹스캡틴 아메리카에서도 제모 남작이 전후 남미로 도주하여 한 동안 조용히 은거하고 있었으나 캡틴 아메리카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스터스 오브 이블'이라는 빌런 조직을 결성하여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저스랑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바위에 깔려 사망하게 된다.
  • 헬보이에서도 당연히 등장. 나치 과학자 중 하나인 헤르만 폰 클렘프트가 이곳으로 도망쳐서 새로운 제3제국을 건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클렘프트가 나치 잔당에게도 미친 놈 취급 받은 것은 함정
  • 영화 오명브라질 리우로 도망간 나치 잔당들을 추적하는 스파이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잔당들은 무려 우라늄을 몰래 빼돌린다고 나오지만...이 사실이 밝혀진 후 빠르게 맥거핀화(...) 감독이 감독인 데다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로맨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심슨 가족에서는 아예 히틀러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6. 관련 문서


  1. [1] 정말 적극적으로 싸운 곳은 잠수함지상군까지 파견한 브라질밖에 없고, 나머지는 일부 국가가 참전을 선언하거나 파견하기는 했으나, 생색 내기 수준이었고, 거의 다 1943년 이후에 참전했으며, 특히 칠레아르헨티나는 1945년 전황이 회복 불가능해지자 어쩔 수 없이 연합군에 줄서기한 수준. 여기서 만약에 줄을 잘못 서거나 줄서기를 안 하고 중립을 표방했다면?
  2. [2] 아이러니하게도 후안 페론 본인은 백인과 아르헨티나 원주민 테우엘체 족의 혼혈인이었기 때문에(1/4 원주민 3/4 백인) 집권기 동안에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의 권익향상에 신경을 쓴 인물이었다. 사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지도자였던 바르가스나 후안 페론이나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건 똑같았기는 했지만 다른 사상도 같이 짬뽕되었던 덕택에 인종차별 색체가 옅어졌고 결과적으로 중도화(?)되었던 것이었다. 후안 페론 개인은 반유대주의 성향이 없어서 이스라엘과도 수교하고 장관들 중에도 유대계 이민자 출신도 있었다.
  3. [3] 덕분에 현재까지도 시몬 비젠탈 센터가 추적 중인 나치 목록에 독일인 다음으로 비중이 많은게 크로아티아 우스타샤들이다.
  4. [4] 체 게바라의 여행담을 다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도 독일계 아르헨티나인들이 가끔씩 나온다. 가브리엘 에인세라는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도 독일 이민 후손이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의 남편이자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아버지가 스위스 이민 후손인데, 독일계 스위스인 이민자 후손이다.
  5. [5] 다만 아르헨티나에서 쓰이는 스페인어의 경우 오히려 이탈리아어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덕분에 발음도 이태리어랑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을 지경. 안데스 산맥 건너편 칠레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아르헨티나와 칠레 모두 발음 면에서 독일어의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한다.
  6. [6] 실제로 브라질과 일본을 오가는 수요가 상당히 많아서 일본항공은 2010년 파산 선언하기 직전까지 도쿄 출발 로스앤젤레스뉴욕을 경유해 상파울루까지 항공편을 띄웠을 정도였다.
  7. [7] 훗날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영장을 발부했을 때 확정된 인원만 따져도 어린아이 800명 포함 3,000여명이다.
  8. [8] 나치 추적자들에게는 애석하게도, 정작 라우프는 에콰도르에 있던 시절 수 차례 모사드와 접촉하여 협력했다는 기록이 CIA 문서에 남아 있다. 링크1 링크2 처음에는 단순히 시리아 정보기관 시절 정보들을 팔아넘겨 생존을 보장받는 정도였다면 후에는 아예 중동 국가들에 그를 은밀히 투입시켜 위장 스파이로 써먹으려는 계획까지 있었다고.
  9. [9] 성 비오 10세회 문서 참고.
  10. [10] 프리브케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아르헨티나 남부 관광 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 40년 이상 호텔 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인류의 존엄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1. [11] 쿠르트 발트하임이 사망했던 당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로 화환을 보냈던 국가 중 하나이다.
  12. [12] 오치아이의 음모론들은 알게모르게 한국의 UFO/음모론자 빅텐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 출판업계 특성상 미스테리 서적도 일본 서적의 해적판 형식으로 나오는 책들이 적지 않았을것으로 사료되기 때문. 90년대에 나온 한국의 그쪽계열 모 서적(내용 자체는 환뽕이 치사량에 달했다)에서조차 일본식 표현(유대 자본 배후를 유다야 신디케이트라고 표현했다. 일본어에서 유대인을 지칭할때 ユダヤ라고 한다)이 간혹 보일 정도면...
  13. [13] 설정상 남미에 숨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14. [14] 쌍제이의 인터뷰에 따르면 '나치잔당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재기에 성공했다'면을 가정한 것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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