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1]

1. 개요
2. 전개 과정
3. 이 시대의 인물
4. 관련 문서
5. 이 시대를 다룬 작품
6. 외부 링크

1. 개요

Napoleonic Wars(여러 차례의 전쟁, 전역이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어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씌여진다.), Napoleonic Era(아예 하나의 시대로 취급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프랑스 혁명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정복전쟁. 독일 일대(특히 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서는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항해 싸웠다는 이유로 이를 '해방 전쟁'(Befreiungskriege)(정확히는 제6차 대프랑스 동맹과 프랑스가 벌인 독일 전역을 일컫는 명칭이다.)이라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전쟁과 워낙 밀접하게 맞닿아있는지라 '정확히 어느 시점을 나폴레옹 전쟁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1796년의 이탈리아 전쟁을 그 시발점으로 본다. 다만 제1, 2차 이탈리아 전쟁이나 이집트 원정 모두 프랑스 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혁명전쟁의 일부이기 때문에 혁명전쟁과는 관련없는 순수히 나폴레옹 본인의 야심으로 시작한 전쟁 만으로 따지면 영국이 아미앵 화약을 파기하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된 1803년이 시발점이며, 끝나는 시점은 이론의 여지없이 워털루 전투가 끝나고 프랑스가 항복했던 시점인 1815년.

나폴레옹의 이름값 뿐만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영향을 잔뜩 끼친 시대이기도 하다. 특히 군사 부문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과거에는 임시 편제였던 사단 편제가 본격적으로 상설화되고, 체계적인 징병제가 시작되었으며[2], 근대적 참모본부제도가 형성되는 등 이 시대를 기점으로 서구의 전쟁사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 외에도 나폴레옹 법전을 통한 헌법의 발달, 나폴레옹의 대규모 정복 활동을 통한 자유주의의 급속 전파 등, 정치 부문에서도 군사 부문의 그것 못잖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이후의 국제정세 또한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이 전쟁이 끝난지 100년 뒤에[3] 유럽 대륙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된다. 두 전쟁시대 사이의 유럽에서는 전 유럽을 휩쓸어버릴 정도 되는 규모의 큰 전쟁은 없었다. 이 시대 이후로 유럽은 산업화제국주의의 도래로 벨 에포크라는 일종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군사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전쟁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영국은 1807년 퍼커션 캡이 발명되었음에도, 특허료 주기 싫다는 이유로 계속 플린트락 소총을 고집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기구를 통한 정찰을 도외시 했고, 증기기관을 선박에 적용하는 것도 회의적으로 보았다[4]. 사실 어쩔 수가 없는 게 전쟁터에서는 새로운 무기보다 신뢰할만한 무기를 더 선호한다. 퍼커션 캡 소총이 후장총 만큼 획기적이지 않은 데다, 이 시기는 물론,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부족으로 증기기관은 안전성에 신뢰를 받지 못했다. 여기에 기구 역시 전장에서 사용하기 번거롭고 추락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외면 당할 수 밖에 없다.

2. 전개 과정

3. 이 시대의 인물

※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5]하지 않은 인물은 ◆표시가 되어있다.

4. 관련 문서

5. 이 시대를 다룬 작품

6. 외부 링크


  1. [1] 왼쪽은 대프랑스 맹국. 오른쪽은 프랑스와 그 동맹국 및 위성국이다.
  2. [2] 당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3. [3] 사실 정확히는 99년이다.
  4. [4] 참고로 이 시기에 최초로 증기기관식 자동차가 발명 되었다. 문제는 핸들이 없어서, 직진만 하다 남의 집 담벼락만 허물었다.
  5. [5] 직접적 관여자의 예시: 참전국의 국가수반, 군인, 정치인. 외교관 등.
  6. [6] 나폴레옹은 이들을 두고 '나는 배신당한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한다.
  7. [7] 웬수 4호. 1800년 나폴리의 국왕 조아키노 1세로 즉위.
  8. [8] 웬수 3호.
  9. [9] 나폴레옹 입장에서 단연 웬수 1호. 그리고 명실상부한 전쟁의 최대 수혜자.
  10. [10] 웬수 2호. 이 양반의 전적(...) 덕분에 전후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위의 웬수 1호는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이라도 듬뿍 받았는데
  11. [11] 바르샤바 공국의 전쟁장관, 주 방위 사령관을 겸직하였다.
  12. [12] 1806년, 나폴리의 국왕으로 즉위.
    1808년, 스페인의 국왕 호세 1세로 즉위.
  13. [13] 1806년, 이탈리아의 부왕(Viceré)으로 즉위.
  14. [14] 당대의 이름난 맹장중 한명. 경기병대를 이끌었으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보통 뮈라나 네에게 뭍힌다 어찌보면 콩라인
  15. [15] 나일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등지에서 넬슨에 맞선 프랑스의 제독.
  16. [16] 본래 오스트리아 인물이나, 나폴레옹의 두번째 황후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프랑스측으로 기재함.
  17. [17] 엄밀히 따지자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부각되는 인물이나, 나폴레옹의 유일한 적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곳에 기재함.
  18. [18] 나폴레옹 집권기에 내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나, 수학자로서의 면모에 주목하여 비관여자로 분류함.
  19. [19] 나폴레옹의 몰락에 큰 공을 세웠던 프로이센의 유명한 장군 게브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의 성을 자신의 첫 증기기관차의 이름으로 땄다.
  20. [20] 아일라우 전투에서 활약한 장군. 나폴레옹을 상대로 백중세의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이 전투를 기점으로 연합군에게 나폴레옹도 해볼만 하다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
  21. [21]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동일인물.
  22. [22]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술트 원수를 상대로 분전했던 장군.
  23. [23]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영국군과 함께 분전했던 장군.
  24. [24] 나폴레옹의 군대에 몸을 담기도 했었으나, 그보다는 페루의 총독, 그리고 아르헨티나 최초의 장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5. [25] 이탈리아 왕은 나폴레옹이 겸하고 있었다.
  26. [26] 조아생 뮈라와 동일인물.
  27. [27]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
  28. [28] 이집트 원정 당시 아크레 공성전에서 니자므 제디드 군대를 이끌고 나폴레옹을 격퇴했다.
  29. [29]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
  30. [30]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
  31. [31]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
  32. [32] 나폴레옹 전쟁과 접점이 매우 많으므로 추가.
  33. [33] 본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작품이었다. 자세한건 해당 항목 참조.
  34. [34] 나폴레옹이 주요 캐릭터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건 여기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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