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이름

나훈아 (羅勳兒)

본명

최홍기 (崔弘基)

출생

1950년[1] 2월 11일 (69세)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학력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졸업

가족

자녀 슬하 1남 1녀, 사촌동생 나진기[2]

가요대상 대상[3]

남진, 김상희
마음이 고와야지
참사랑
(1971)

나훈아, 하춘화
고향역
물새 한 마리
(1972)

남진, 하춘화
그대여 변치마오
영암 아리랑
(1973)

1. 개요
2. 특징
3. 대표곡
4. 활동
4.1. 1970년대
4.2. 1980년대
4.3. 1990년대
4.4. 2000년대
4.5. 2010년대
5.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
6. 개인사
7. 이야깃거리

1. 개요

트로트의 전설적인 카리스마

엠넷 레전드 100 아티스트에서의 소개문구.

대한민국가수. 1950년 2월 11일부산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1966년 서라벌예고 2학년 무렵에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4].

트로트 장르에서도 유명세를 탔지만, 또한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데,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는다.

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세계 최다임을 스스로 공인할 정도이며,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한다. 이처럼 나훈아는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리는 가수다.

2017년, 11년만에 컴백할 예정이라고 한다. #네이버 기사

그리고, 정말로 11년만의 공백기를 깨고 2017년 7월 16일 앨범 "Dream Again"으로 컴백했다. 이후 2018년 앵콜공연과 전국순회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2. 특징

묵직하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 이를 활용하면서 나오는 트레이드마크인 꺾기로 대표되는 나훈아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달리 나훈아의 노래는 가수가 자기만의 색을 입혀서 노래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노래로 유명한데 나훈아의 노래를 소화하다보면 자칫하면 어설픈 모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나훈아의 창법은 엄청나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히트곡이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 의해 작곡된 히트곡도 꽤 많다. 일례로 2005년에 발표한 "고장난 벽시계(윤중민 작사, 박성훈 작곡)" 같은 곡은 의외로 나훈아가 작사 작곡을 하지 않았다. "행운", "남자라 울지 못했다" 등. 자작곡 중 유명한 노래로는 <땡벌> (강진이 부름)이 있다. 사실 "땡벌" 은 나훈아가 1987년에 이미 직접 불러서 발표했었다. 또한 1991년에 원로가수 정원이 "인생은 본전" 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만 바꿔서 불렀다. 나훈아는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잘 주는 편은 아니다. 땡벌 외에는 이자연이 부른 "당신의 의미",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등이 대표적인 곡이다. 자작곡 전반을 보면 평생에 걸쳐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한 형태의 음악적 시도를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3. 대표곡

  • 사랑 :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아내들이 남편에게 듣고 싶어하는 노래 1위. 각종 대중가요 관련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선정되는 국민 애창가요이다.
  • 영영 :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의 타이틀곡.
  • 울긴 왜 울어 : 울지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것 사랑 때문에
  • 무시로: 이미 와 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일본어라고 오해받지만, 무시로의 뜻은 정한 때가 없이 수시로라는 단어이다. 2011년 백지영이 나는 가수다에서 열창해 재조명을 받았으나 그 후 모종의 문제로 2017년까지 음원서비스를 하지 않았던 비운의 곡. 최근 저작권 협의가 되어 들을 수 있게 됐다. 박우철 그리고 훗날 조항조가 불러 유명해지게 된 '남자라는 이유로'의 모티브가 되어 다시 화제가 되었다.
  • 고향역 :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 나훈아의 무명시절을 날려 준 곡.
  • 공: 살다보면 알게돼 일러주지 않아도
  • 물레방아 도는데 :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 대동강 편지 :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1981년 발표곡으로 오랜만의 컴백 앨범이었다. 당시 보기 드물었던 8페이지 풀컬러 화보집이 LP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태양음향 전속으로 발매.
  • 갈무리: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 1989년 발표곡으로 나훈아가 재기할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곡 중 하나.
  • 홍시 :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1992년 후배 가수 김지애의 앨범에 '석류가 웃는 이유'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김지애의 앨범에 레퍼토리로 자주 나왔음에도 뜨지 못 했고, 나훈아 본인이 리메이크하여 대박이 나자 김지애가 아예 수록곡으로만 치부했던 곡으로 새 앨범을 내서 활동중이다.
  • 애정이 꽃피던 시절 : 첫 사랑 만나던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
  • 천리길 : 돌뿌리 가시밭길 산을넘어 천리길 나훈아의 첫 데뷔곡이다.
  • 너와 나의 고향 :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 머나먼 고향 :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
  • 강촌에 살고 싶네 : 날이 새면 물새들도 시름없이 나는
  • 해변의 여인 :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 어매 :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 감나무 골 : 산제비 넘는 고갯길 산딸기 피는 고갯길 재 넘어 감나무골
  • 인생길 나그네길 :사나이 한번나서 고향에만 살수있나 젊어서 한때라면 고생을 사자
  • 사랑은 눈물의 씨앗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잡초 : 아무도 찾지 않은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 가라지 : 간다면 누가 너를 못 보낼 줄 알고 가라지 누가 너를 잡을 줄 알고
  • 사내 : 큰 소리로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진 것은 없어도 비굴하지 않았다
  • 모르고 :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했어요. 당신을 사랑이 이렇게 아픈줄도 모르고 당신을 사랑했어요
  • 18세 순이 : 살구꽃이 필때면 돌아온다던 내사랑 순이는
  • 건배 : 냉정한 세상 허무한 세상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은
  • 모정의 세월 : 1973년 신인가수 한세일이 리메이크하면서 큰 히트를 기록. 원곡의 가수는 나훈아.
  • 고장난 벽시계: 이 곡은 2005년에 나훈아 데뷔 40주년 기념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트로트 작곡가들의 헌정음반 비슷한 개념으로 몇 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곡이다. 즉 나훈아 본인이 작사작곡을 하지 않은 곡.(윤중민 작사 / 박성훈 작곡) 발매 당시에는 이런 곡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2008 ~ 9년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외에도 당시 앨범에 같이 수록된 곡으로는 "남자라 울지 못했다", "행운", "너도 역시 여자였구나", "발코니에 앉아서" 등이 있다. 나훈아 본인이 작사 작곡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곡들은 이후 현철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이 많이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워낙 리메이크가 많이 되어서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층도 한번쯤은 들어본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이다.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이름을 손고장난벽시로 개명한 아저씨가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파를 탄 적이 있다.
  • 땡벌: 흔히 트로트 곡 제목 '땡벌'이라고 한다면 강진이 부른 노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훈아가 부른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나훈아판 땡벌과 리메이크 땡벌은 가사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트로트 가수들끼리도 다른 가수가 히트친 곡을 자기만의 색깔로 뽕짝화해서 리메이크해서 출시하는데, 나훈아 버젼이 아닌 강진이 리메이크한 가사와 구성을 바탕으로 뽕짝화 리메이크를 하는 일이 잦다.
  • 녹슬은 기찻길
  • 평양 아줌마: 이 곡은 1985년 대한적십자사와 북한 적십자사의 주최로 분단 40년 만에 처음 남북 이산가족 교환 상봉 및 남북 예술단 교류로 나훈아, 하춘화, 김희갑 등 많은 연예인과 MC, 국악인 등 예술인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예술인들이 처음 서울에서 공연을 개최한 역사적인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나훈아가 평양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이 곡을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곡이 발표되고 방송과 공연에서 불리우자 많은 실향민탈북자들이 고향 생각을 하며 울었다고 한다.
  • 청춘을 돌려다오 : 발표 당시 가수 신행일의 노래로 녹음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들어 나훈아와 현철이 다시 불어 비로소 히트됨.
  • 고향으로 가는 배 : 2017년 11월 3일 나훈아 Dream 서울 콘서트에서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북한의 김정남 얼굴을 스크린에 띄우고는 "난 정치를 모르지만 이 사람이 생전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10번 불렀다고 한다"며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르기도 했다.
  • 팔자 : 인생의 팔자를 표현한 곡으로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살자고하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 불길
  • 가지마오
  • 님그리워 : 1969년 노래로 사촌지간인 가수 나진기씨가 가요무대에서 불렀고 다른 가수들도 많이 부른다.
  • 남자의 인생 : 2017년 11년만에 컴백하면서 발표한 타이틀 곡. 현대적인 느낌의 가사와 중장년 층 남자의 삶에 대 하여 나훈아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와 새로운 느낌 의 신곡.
  • 몰라
  • 아이라예
  • 찻집의 고독 : 70년대 발표한 곡. 서정적인 가사로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그 시대의 분위기에 잘 맞게 세련된 느낌으로 부른 곡. 나훈아씨가 젊을 적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괴한에게 흉기로 칼을 맞아 얼굴을 다쳤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왠만한 공연에서 이 노래만 부르면 그때가 생각난다해서 잘 안부른다.
  • 아리수 : 2005년 한강 아리수 기념으로 만든 곡. 무대위에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부르면 그 모습이 천하제일대장군이다.
  • 아담과 이브처럼 : 난 그냥 니가 왠지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그냥 좋아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후에 탤런트 배종옥과 듀엣곡으로 부르면서 히트하게 되었다. 2001년 취입, 동명의 KBS 일일드라마 삽입곡이기도 했다. 나훈아씨의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곡. 래퍼가 피처링한 버전도 있다. 2001년 명예의전당 무대에서 가수 장나라씨와 이지훈씨가 이 노래를 헌정곡으로 불러 나훈아씨의 미소를 자아냈다.
  • 낙엽이 가는 길 : 나훈아씨가 가진 가을 노래 중 몇안되는 가을 곡.
  •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 간간히 너를 그리워 하지만 어쩌면 너를 잊기도 하지 ... 나훈아 씨 특유의 창법과 애절하고 예쁜 가사로 만들어진 곡. 1998년 IMF 외환위기 시절 발매되어 나훈아가 90년대에도 건재함을 알렸다. 발라드 풍의 곡으로 수많은 남녀 커플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
  • 오로라 : 인도풍 느낌이 나지만 나훈아 특유의 간드러지고 감성적인 목소리가 느껴지는 애절한 느낌의 노래.
  • 홍시 : 나훈아 모친을 회상하여 추모하는 곡으로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떠나가신 어머니와 부모님을 생각해 눈물을 흘렸다는 댓글이 많이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가사가 너무 애절하고 어머니를 추모하는 가사이기 때문이다.[5]

4. 활동

오빠부대, 요즘은 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많았던 인기 가수였다. 전성기 시절에도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2010년대인 현재에도 트로트 가수 인기순위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정말 많다. 트로트의 쌍벽으로 유명한 남진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2008년 기자회견 후 잠적. 11년만에 복귀하여 2017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현재 다시 성인가요 시장의 불을 지폈다.

4.1. 1970년대

1970년대 방송사 가수왕은 내내 남진 차지였고 나훈아는 항상 2등이었다.콩라인 사실 7, 80년대를 기준으로 두 가수의 행보는 조금 차이가 있다. 1973년 7월 비밀리에 공군 병사로 자원 입대, 군악대에서 복무하였다.

군 복무 당시의 모습. 강정호 아니다

4.2. 1980년대

1980년 초반대에는 나훈아씨가 세번째 부인이었던 정수경 씨와 혼인하여 가정생활을 하였고. 대표적으로 '사랑' 이라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였다. 그 후 87, 88, 89년도 무시로, 갈무리 등을 발표하며 히트를 쳤고 방송사에 얼굴을 가끔씩 비췄다,

4.3. 1990년대

1993년 당시 남진은 '내 영혼의 히로인' 등을 히트시키며 또 한번 주목을 받았으며, 나훈아는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들을 내고 꾸준한 몸관리와 공연 등이 알려지면서 그 이후로도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젊은 층에게 꾸준히 어필이 된 듯. 방송 출연이 없어서 그렇지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훈아의 인기는 여전했다. 이런 차이는 남진은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도 워낙에 많은 방송 출연과 공개 활동으로 이미지가 일찍 소비된 반면에, 나훈아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신비주의 전략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공중파 TV에선 매년 명절 때마다 나훈아를 모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4.4. 2000년대

2000년대 이후로 또 다시 둘의 상황은 정반대가 되는데, 남진의 경우 1999년 '둥지', 2005년 '저리가', 2008년 '나야 나' 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꾸준한 활동을 했다.

나훈아는 간헐적인 콘서트(나훈아 빅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전국 순회 공연)외에는 방송출연 등의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칩거생활을 반복했다. 이후 2006년의 순회 콘서트가 2007년 3월 예정된 단독 콘서트 취소로 마지막 공연이 되었고, 이후 유명한 인터뷰 사건 이후로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2008년 야쿠자 테러설 기자회견과 2013년 이혼 소송과 투병이 알려지면서 심경이 복잡한 듯. 나훈아가 2008년 이후 칩거에 들어간 반면 남진은 2008~2010년에 걸쳐 대한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1970년대 당시의 라이벌 구도에 대한 증언 역시 남진의 입장을 중심으로 정리되었고, 굳어지게 되었다. 나훈아는 계속 칩거하면서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는 중이었다. 덕분에 나훈아 팬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2008년 기자회견에서 격한 퍼포먼스를 한 바람에 5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계속 패러디되고 있었다.

4.5. 2010년대

11년만의 공백기를 깨고 2017년 7월 16일 앨범 "Dream Again"으로 컴백했다. 그동안 나훈아 앨범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이번 신곡 앨범은 7월 17일 12시부터 온라인에서 노래를 다운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유튜브에서 타이틀곡인 “남자의 인생”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

2017년 11월 3일부터 11월 5일, 총 3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內 올림픽홀에서 단독(게스트無) 공연을 선보인다.

2017.12.15 ~ 2017.12.17 대구 EXCO 컨벤션홀, 2017.11.24 ~ 2017.11.26 부산 벡스코오디토리움에서 공연이 차례로 이어질 예정이다. 티켓예매는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고 전 티켓이 7~10분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사재기를 해서 되파는 사람들을 적발해 티켓을 회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며 재판매를 하기도 했다.

공연시간은 120분. 서울 공연 첫 날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아무런 말 없이 10곡 넘게 노래만 부르던 나훈아는 ’에끼 이사람이’ 무대 뒤 비로소 관객들에게 직접 인삿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하다. 미안한 마음은 구석에 놔두고 얼굴을 두껍게 하고 공연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팬들이 환호로 위로를 하자 나훈아는 “노래를 11년 굶었다”며 “계속하자 하면 밤새도록 노래할 준비가 돼 있다” 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 지구 다섯 바퀴를 돌았다. 미국에서는 한국 라디오에 ‘사나이 눈물’이 흘러나와 울기도 했다”고 밝혔다. 나훈아는 “우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나이 눈물’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관련기사1 관련기사2 관련기사3

컴백과 동시에, 그동안 음원사이트에서 서비스되지 않았던 음반들[6]이 서비스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발표한 인기곡인 "고장난 벽시계", "홍시", "모르고" 등의 곡들을 음원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게 되어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2017년 서울, 대구, 부산 콘서트의 대흥행으로 2018년에는 20개도시 전국투어를 추가로 개최했다. 2019년엔 5월부터 투어를 돌게 되는데 이번에도 부모님을 위한 자식들의 예매 전쟁이 불꽃을 튀기며 전개되었고, 결국 5월 공연분 3만장이 8분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2017년

날짜

도시

국가

장소

기타

11월 3일

서울

대한민국

올림픽 홀

11월 4일

11월 5일

11월 24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1월 25일

11월 26일

12월 15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 홀

12월 16일

12월 17일

2018년

3월 23일

서울

대한민국

올림픽 홀

3월 24일

3월 25일

3월 31일

청주

청주대 석우문화체육관

1일 2회공연

4월 13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4월 14일

4월 15일

4월 20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 홀

4월 21일

4월 22일

4월 28일

전주

전주 실내체육관

1일 2회공연

5월 5일

울산

동천체육관

1일 2회공연

5월 1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1일 2회공연

5월 19일

원주

원주 종합체육관

1일 2회공연

5월 26일

대전

무역전시관

1일 2회공연

7월 7일

창원

창원체육관

1일 2회공연

7월 14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1일 2회공연

7월 21일

고양

고양체육관

1일 2회공연

7월 28일

양산

양산종합운동장

1일 2회공연

10월 13일

광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

1일 2회공연

10월 27일

강릉

강릉 아이스아레나

1일 2회공연

11월 10일

안동

안동체육관

1일 2회공연

11월 24일

진주

진주실내체육관

1일 2회공연

12월 8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1일 2회공연

2019년

5월 17일

서울

대한민국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5월 18일

5월 19일

6월 8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일 2회공연

6월 9일

6월 15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 홀

6월 16일

6월 29일

청주

청주대 석우문화체육관

1일 2회공연

7월 6일

울산

동천체육관

1일 2회공연

10월 12일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

1일 2회공연

10월 19일

광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육관

1일 2회공연

11월 9일

천안

천안 유관순체육관

1일 2회공연

11월 16일

안동

안동체육관

1일 2회공연

11월 23일

창원

창원체육관

1일 2회공연

11월 30일

제주

제주컨벤션센터

1일 2회공연

12월 1일

12월 13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12월 14일

12월 15일

12월 21일

진주

진주실내체육관

1일 2회공연

12월 28일

인천

인천남동체육관

1일 2회공연

2019년 5월 3일에는 새로운 앨범 "벗2" 를 발표했다. 2005년 발표한 40주년 기념앨범인 "벗"의 후속 개념으로, 1곡을 제외하고 모두 다른 작곡가가 쓴 곡으로 채운 앨범이다.

2019년 5월 17일부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3일 무대를 시작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가진다.

여담으로 이 서울 콘서트의 둘째날인 5월 18일 공연의 진행이 후배이자 인기 아이돌 그룹인 여자친구콘서트 첫날 타임과 완전히 겹치며 귀갓길 올림픽공원역몽촌토성역, 그리고 일대 도로에 큰 혼잡이 벌어졌다.

5.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부터 라이벌로 경쟁했고, 두 사람의 팬덤도 갈라져 있었다. 마침 언론 및 대중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 딱 좋은 차이점들이 여럿 있었다. 남진은 수려한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로 대중성이 강했고, 나훈아는 상대적으로 투박한 외모를 가졌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성을 어필하는 느낌이 강했다. 노래의 성격 역시 남진은 도시의 세련된 이미지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한 반면 나훈아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시골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했다. 두 사람의 집안 배경조차 대조적이어서 나훈아는 부산 출신의 서민 집안이지만,[7] 남진은 전남 목포 출신의 매우 부유한[8] 집안이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외모 차이와 분위기 탓에 양쪽 팬덤에서도 라이벌 대립각이 만들어져서, 당시 공연장에 가면 남진 팬들은 나훈아에게 '소도둑놈 저리가라'고 외치고, 나훈아 팬들은 남진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 치워라'라 외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80년대 칼럼 두 사람은 '어머님 생전에(1973년)'같은 영화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남진이 인기가 좀 더 많았지만 나훈아가 후에 부각되며 라이벌로 불리게 되었다.

6. 개인사

1972년 6월 4일, 어느 스토커 같은 이에게 테러당해서 한동안 입원한 적도 있다. 사이다 병 파편으로 왼쪽 얼굴을 찔렸는데 무려 70여 바늘이나 꿰맸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남진이 사주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라이벌인 남진도 테러당한 적이 있다. 남진 항목 참조. 1990년대 TV에 나와 과거를 회상할 당시 가수 위기를 겪었다고...

영화배우 김지미가 나훈아의 재능을 크게 사서 예절과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가르쳤다. 그 덕분에 현재도 나훈아는 서예에 능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연인 사이를 유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 원의 돈을 건넸는데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엔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나훈아의 대인배다운 면모가 보이는 일화. 한편으로 김지미와 나훈아의 혼인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며,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혼인이 조금 후회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을 말한 적도 있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면서 살고 싶어했지만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2008년에 일본 야쿠자와 여배우 K[9] 를 놓고 시비가 붙어 고자되기를 당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 너무 돌자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었고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바지를 내려서 증명하려 하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나훈아가 웃통을 걷어부치고 단상 위에 올라가자 당연히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며 셔터들이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고 나훈아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증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여기서 딱 5분간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이때 나훈아의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서 내리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기자 정신에 입각한 반응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당황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상으로 나훈아를 말리지 않은 기자들의 행동 자체는 윤리상 옳은 행동이다. 기자에게는 '현장 불개입의 원칙'이 있어서 기자회견장이 졸지에 '사건 현장'으로 변해 버렸어도 당사자에게 '해라'라고 하거나 '하지 마라'라고 할 수 없다. 당초 나훈아가 그런 내용을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팬들이 믿는다고 외쳐서 기자들이 개입할 틈도 없었다. 다만 당시 이런 루머들을 유포하는데 앞장선 기레기들 때문에 이미지가 매우 나빠서 기자들은 '그 와중에도 기사 쓰려고 나훈아를 말리지도 않고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라는 식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거침없긴 했지만 이렇게 적극으로 해명한 덕에 스캔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들으면 퍽이나 웃긴 모습 같지만, 실제로 나훈아의 용감한 행동에 압도되어 이런 류의 소문은 쏙 들어갔다. 그 외에 인터뷰로 기자들이 펜대로 연예인들을 죽인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당시 루머에 휩싸였던 후배 배우들을 강하게 언급했다.

당시 모습이 수염을 멋지게 기른 것이 참 미중년이다.

대중문화 기자 백은하는 "땅으로 내려왔던 셀러브리티가 그렇게 다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올라갔다."라고 그 '퍼포먼스'를 평했고 음악을 평론하는 차우진은 "이런 카리스마는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교주님이라 외칠 만하다."라며 극찬했다. 한겨레신문

이와는 별도로 개그맨 황기순의 첫 번째 부인 불륜 상대가 나훈아였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지만 그냥 루머인 채 끝났다.

2012년 12월에는 인도와 티베트를 돌아다니며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고 한다. 지인이 말한 바로는, 거의 도사의 모습이 됐다고(...).

2013년 1월, SNL 코리아 최민수 편에서 최민수가 패러디하기도 했다. 다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뭘 패러디 한 건지도 알 수 없게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였다.

2013년 4월 세 번째 부인 정수경과의 이혼 소송 중. 제일심에서 승소하였으나 정 씨 측에서 상고를 결정한 듯. 또한 지병이 있다는 게 알려지고 칩거하는 중. 양평에 있던 자택도 내놓았다고 한다.

나훈아의 아내 정수경이 2014년 10월 8일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나훈아도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결국 조정 절차 거쳐 이혼에 합의 하였고 재산분할로 12억을 지급하였다.

7. 이야깃거리

체력과 폐활량, 근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저음을 불러도 단순히 목소리 내리깔며 부르는 게 아닌, 힘있는 저음처리였기 때문에, 이를 보고 반하는 음악팬들도 있었다고.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삼성일가가 개인적 파티에서의 공연을 요청했을 때 유일하게 거부한 연예인.[10] "나는 대중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 티켓을 끊어라"고 했다고. 더불어 1990년대 연예인들의 정치 입문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신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한 이들에게 거부하면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난 가수가 천직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또한 스타란 하늘의 별과 같아야 한다신비주의를 장려(?)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인데 가수의 뒷무대가 보여지면 환상이 깨질 수 있다고 말하였다. 덧붙여 본래 슈퍼스타는 30%의 안티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연예계 최고의 슈퍼스타답게 시장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11]

노래방 책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가수다. 2위는 . 덕분에 저작권료가 월 5,000만~ 1억원이라고 한다.

야구선수 강정호와 닮은꼴로도 유명하다.

2017년 나훈아 컴백무대인 "나훈아 Dream 콘서트"가 서울, 대구, 부산에서 각 3일씩 열리는데 온라인으로 예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쉽게 티켓을 예매를 할 수 있도록 전용 페이지도 개설하였다.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재촉에 티켓 판매를 기다라며 예매를 했고 인터넷에서는 나훈아 콘서트 티켓을 구했느냐 못 구했느냐로 효자 불효자가 나눠진다며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결국 서울 콘서트는 3분만에, 대구와 부산 표까지는 10분만에 매진되었고 예매당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8년 팬들의 성원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깊은 고민을 했다며 앙코르 공연과 전국순회공연을 추진하였다. 2월 8일 오전 10시부터 전용 홈페이지에서 표를 구입할 수 있고 이번에도 전석이 초고속 매진되었다. 앙코르 공연은 같은 장소인 서울(올림픽홀/ 3월23~25일), 부산(벡스코 오디토리움/ 4월13~15일), 대구(엑스코 컨벤션홀/ 4월 20일~22일) 에서 이루어진다. 몇몇 공연 후기에 따르면, 효도하기 위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가 본인이 입덕하고 말았다(...)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공연의 퀄리티가 우수하다고. 실제로 커뮤니티에서 장문의 리뷰글이 많이 올라온다.

2019년에도 상반기 전국 투어 콘서트 일정이 잡혔다. 공연 장소 및 일정은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5월 17일~19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6월 8일~9일), 대구 엑스코 1층(6월 15일~16일), 청주 청주대 석우문화체육관(6월 29일), 울산 동천실내체육관(7월 6일). 지난 공연 예매와 마찬가지로, 3월 20일에 열린 서울 공연 온라인 티켓팅도 3분만에 매진되었다. 이번에도 효자판독기 명성에 걸맞는 고난이도 피켓팅. 그리고 본인과 공연 주최측이 서울시내버스에 매진 감사 광고를 내기도 했다.

사촌지간인 나진기 씨가 KBS2 방송 가요1번지 무대 나훈아 편에서 강진 씨와 나와 나훈아 씨의 어릴적 비하인드 이야기에 대해 많이 나눴다.

월간조선 2002년 1월호 오효진의 인간탐험 나훈아 인터뷰 기사

공연료가 부르는 게 값인 단 3명 뿐인 가수 중 하나이다. 나머지는 가왕으로 유명한 조용필, 대한민국 가요계를 완전히 천지개벽한 서태지이다. 철저하게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셋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수염을 기르고 백발이 섞인 머리를 하여 나훈아를 닮았다며 마라훈아라고 불리기도 했다.


  1. [1] 프로필상으로는 1947년이나, 1950년이 실제 생년이다. 남진은 나훈아가 1951년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2] 가수로, 본명은 최진기다.
  3. [3] 1980년까지는 TBC 방송가요대상이라는 이름의 시상식으로 진행됐고 언론통폐합 이후인 1981년부터 KBS 가요대상으로 이름을 바꿔 진행했다.
  4. [4] 나진기의 증언에 따르면 " 원래는 '내 사랑' 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나 이 곡이 별 인기를 얻지 못하자 천리길이 나오고나서부터는 인기를 얻었다. "라고 증언하였다
  5. [5] UDT/SEAL65기의 기수가로 사용되었다.
  6. [6] 주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중반에 발매된 음반들
  7. [7] 사실 나훈아 집안도 이미지 만큼 서민적인 집안은 아니었고 어느정도 사는 집안이었다. 다만 그래도 남진 집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8. [8] 남진의 아버지인 김문옥씨는 곡물 정미회사, 언론사 등을 경영한 기업인이자 제5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된 인사였다. 남진의 회고에 따르면 한 때 전남도 전체에 개인 자가용이 두대 있었는데 하나는 전남지사를 위한 전남도청 것, 하나는 김문옥씨 것이었다고.
  9. [9] 일부 기레기들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김혜수 혹은 김선아라는 식으로 언질을 줬다. 이 때문에 나훈아는 후술할 기자회견에서 이 둘의 성명을 직접 언급하며 자살을 안 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늬앙스를 풍기는 일갈로써 기자들의 보도 작태를 강하게 질타했다.
  10. [10]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보통 가수들은 이건희의 생일 때 초청되어 노래를 2~3곡 정도 부르고 3000만원 정도 받아간다고 한다. 이건희의 위상으로 봤을 때 오히려 불러준 연예인이 영광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나훈아가 엄청나게 대단한 거다.
  11. [11] 100% 충성팬을 가진 셀럽이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이슈에서 멀어지기 쉽다는 것을 함축한 한 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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