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서울)

<span style="color:white">한양</span>의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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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남산에 가는 방법
4. 남산의 명소
4.2. 맹세의 열쇠철망
4.5. 남산과학관
4.6. 구 통감관저 터
4.7.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5. 남산 위의 저 소나무

1. 개요

서울특별시에 있는 남산. 중구용산구의 경계에 있다. 높이는 해발 262m.

남산의 한자표기는 南山. 그 뜻은 앞산을 뜻하는 것으로 유래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봤을 때 앞에 있는 산이 이 남산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론 사대문 주변 10리도 성저십리라 하여 한성부 소속이었지만 당시엔 임야와 논밭지대라...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 인경산이 있다.

남산에 가 보면 국내 최대의 송신탑(?)인 N서울타워(구 서울타워)가 있으며 남산 봉화대 등 다양하게 있다. 그 외엔 그다지 볼 것도 없고 뭐. 일단 정상에 올라가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건 맞다. 그러나 서울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서울타워에서 보는 광경과 남산 봉화대에서 보는 광경 둘 다 다르다(봉화대에선 경복궁과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야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2. 역사

그리고 사실 굉장히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남산 일대는 조선시대 때 도성을 수비하는 군대가 무예를 닦던 '무예장'[1]이 있던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이 예장 터에 성을 지어 '왜성대' 또는 '왜장대'라고 불린 아픈 역사가 있었고, 구한말 시기부터 경복궁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남산에는 통감부 건물(1926년부터 총독부가 경복궁에 신축되면서 과학관으로 쓰였다)과 통감 관저(구 주한일본공사관)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류지가 있어 왜성대라 불렸다.

또한 일제는 풍수상 서울의 중심을 남산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 산에 조선의 기를 누른다는 의미에서 현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분수대 위치에 조선신궁을 세웠고 현 숭의여자대학교 자리에 경성신사를 세운 데 이어 현재의 남산원 자리에도 노기 마레스케를 기리는 신사를 세웠다.[2] 조선신궁은 신사 자체도 작지 않았지만 신사로 가는 길과 부속건물의 면적이 장난이 아니게 컸다. 덕분에 남산의 자연은 큰 훼손을 당하고 만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 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심지어 남산 꼭대기에 소재했던 국사당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제사를 뜻하는 사(祀)자를 스승 사(師) 자로 바꿔 무학대사 사당으로 축소한 채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신궁은 없어졌지만 훼손당한 산의 공터를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남산 식물원, 백범공원 등의 시설이다. 때문에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세울려고 했으나 이는 4.19 혁명으로 백지화 되었다. 그러나 1961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데다 이후 남산 외인아파트[3], 숭의초/숭의여중/숭의여고/숭의여대, 남산아파트,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거의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갔고, 이에 따라 경관 파괴라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갖추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1995년 안기부 이전과 1996년 안기부 별관건물 철거, 그리고 필동에 있었던 수도방위사령부를 이전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등 남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3. 남산에 가는 방법

  • 걸어가는 방법 : 남산 코스를 이용하면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남산의 계단 코스는 필히 가볼 것. TV에서 많이 나왔다. 일본의 성우여행사에서도 노지마 켄지히로하시 료가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었다.
  • 버스 이용 : 노란색 순환버스인 서울 02, 03, 05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케이블카 이용 : 남산 케이블카는 엄청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름 명물 중에 명물로써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타볼 만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 참고로 명동역 4번출구나 회현역 1번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남산 3호터널 근처에는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무료 실외 엘리베이터가 있다.[4]
  • 자전거 이용 : 서울에 사는 자덕들이라면 반드시 올라간다. 1.9km의 짧은 코스로 경사도도 평균 6.6%, 가장 경사진 곳이 10% 가량이니 초보자 연습용으로 추천. 다만 서울시 측은 자전거 이용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무수한 민원과 사고 때문에 자전거 이용자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 주된 민원 사유는 자전거의 인도 침범과 역주행, 과속. 인도 침범은 남산 좁은 도로에서 관광버스를 보면 비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쳐도 일방통행 구간에서 잠시 돌아가는게 귀찮다고 버스와 맞다이 뜰 기세 역주행(남산 전망대→국립극장 방향)을 하다가, 과속은 내리막(전망대→남산도서관 방향)에서 제한속도(시속 20km/h) 이상으로 다니다가 패인 곳이나 물이 고인 곳, 요상한 과속방지턱[5] 때문에 버스/보행자와 사고가 잦았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여름에 남산 내리막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환자가 발생하자 서울시 측에서 한동안 자전거 통행을 일절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자전거 단체들의 계속된 요청에 2014년 3월 1일부로 자전거 통행이 재개됐다. 단, 자전거 이용 등반 시 회현역 방향이 아닌 충무로, 동대입구 방향으로 가야한다. 일방통행이기 때문. 내려올 때는 회현역 방향으로 내려 오면 된다.
  •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 이용 : 가카 및 다른 높으신 분들의 욕을 하다가 걸리면 검은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의 안내를 받아서 코로 공짜밥도 먹고 문신도 새기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잘 찾아보면 있다는 소문이 돈다. 요즘은 국가정보원에서 데려다 준다 카더라

4. 남산의 명소

4.1. N서울타워

남산 최대의 명소이자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4.2. 맹세의 열쇠철망

남산에 올라가고도 솔로 내지 마법사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풍경인 바로 커플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의미를 담아 철망에 매단 자물쇠가 빽빽히 박혀있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냐면 더이상 자물쇠를 끼워둘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보고 있으면 절단기를 가져오고 싶어진다 게다가 주요 방문자들도 주로 가족이거나 연인들이다(...) 그나마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행인정망정이지만 솔로로 가면 답답 그 자체인 곳이다. 떼어내서 고철로 팔면 돈 꽤나 벌지 않을까 또한 잘 보면 가려져서 잘 안보이지만 몇년~10년전 자물쇠는 녹슬어서 글자도 잘 보이지않는다아 옛날이여..... 녹슬어가는 자물쇠 위에 계속해서 쌓여가자 케이블카 근처에 2차 분지가 완성중이다.

어느정도 공간이 차면 자물쇠를 싹 잘라 폐기한다는 설이 있는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4.3. 남산도서관

남산도서관은 원래 '경성부립도서관' 을 옮겨온 것으로 상당히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건물 자체도 1964년에 완공했으니 이쯤 되면 등록문화재 수준. 남산공원이 근처에 있다. 원래 공원 일대에는 식물원, 외인아파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지만 1994년부터 시작된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 에 의해 철거되고 현재 공원화되어 있다.

4.4. 주한독일문화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독일문화원(괴테인스티투트)의 서울 지부. 독일어를 공부하거나 독일 관련 자료를 찾고자 할 때 유용하다. 남산도서관과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4.5. 남산과학관

남산공원 근처에 있는 과학관. 아래로 내려가면서 각종 과학 체험 시설들이 있으며, 지하1층에는 플라네타리움이 있다. 입장료는 무료.

4.6. 구 통감관저 터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 공사관으로 세워져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통감 관저로 바뀌었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맺어진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 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일합방 이후 통감 관저는 총독관저로 바뀌다가 1939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새 총독관저가 생기자 남산 총독관저는 자기네들의 흉악한 업적을 자랑하고자 시정 30주년을 맞이해 '시정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1940년 11월 22일에 나온 매일신보에서도 이 건물을 다뤘는데,

“2층에는 17점의 사군자폭(四君子幅)이 걸려 있다. 이것을 보아가던 기자는 우뚝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는 방 안에 나섰다. 이 방은 합병조인실(合倂調印室). 이 방이 바로 30년 전 일한합병의 도장을 찍던 그 한순간을 가졌던 방인 것이다. 오늘의 조선을 낳아놓던 역사적 산실(産室)이요, 이 강산 백의인에게 새길을 밝혀준 봉화대(烽火臺)도 되었던 것이다. 여섯 칸 남짓한 방 안에 거울을 좌우로 이토공(伊藤公)으로부터 미나미 총독에 이르기까지 8대 통감 총독들의 흉상이 놓여 있고 중앙의 테블- 그 위에는 벼룻집과 ‘잉크 스탠드’가 있고 좌우로 네 개의 의자와 한 개의 소파가 놓여 있다. ‘자, 이것으로서 완전히 우리는 한 형제요 한 임군을 섬기며 나아갈 길을 연 것이요’ 하며 ‘허허허…’ 하고 소리를 높여 웃는 옛 어른들의 환영이 눈앞에 움직이는 것 같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옛 통감관저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당시 국립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당시 국립민족박물관)이 들어섰으나, 한국전쟁 이후 국립박물관이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 1954년에 덕수궁 석조전 건물로 옮길 때까지 1년 6개월가량을 사용했고, 이후 연합참모본부가 들어섰다가 1960년 전후로 헐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부는 시내 중구 예장동에 있는 ‘연합참모본부 건물’을 개수 내지 증축해서 국무총리 관저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동 건물은 신관과 구관으로 되어 있는바 한일합병조약 체결 당시 합병조인을 하였던 구관은 건물이 낡았기 때문에 허물어 버리고 신관만을 개수 또는 증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960년 9월 22일 동아일보 기사.)

이것이 구 통감관저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당초 정부는 1960년에 통감관저를 국무총리 관저로 쓰려고 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터져 중앙정보부가 생긴 이후 이 일대는 완전히 막히게 되었고, 구 통감관저 건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갔다.

이렇게 잊혀져가던 통감관저 터는 근현대문화재 전문가 이순우 씨가 3년간의 추적과 각종 자료를 통한 고증 끝에 2006년에야 통감관저 터를 찾아냈다고 한다. 게다가 통감관저 앞에 잔디밭에 묻혀 있던 하야시 곤스케(1860~1939)[6] 동상 받침대 판석 3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상’(男爵林權助君像)이라고 쓰여 있었다.

통감관저 앞에 있었던 하야시 곤스케 동상.

잔디밭에 파묻힌 하야시 곤스케 동상 표지석.

통감관저 터 발견 이후 2006년에 이순우 씨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경술국치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기 위한 활동을 벌였지만, 서울시와 중구청의 비협조로 중단되었으나 2010년에야 표지석이 세워졌다.

4.7.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원래 해당 건물 터는 통감부-조선총독부 청사가 있었던 곳이었다. 1926년에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으로 이전한 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관인 '은사기념과학관'으로 개조되어 해방 이후 국립과학박물관(현 국립서울과학관)으로 쓰이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빈 터로 남았다가 1961년 KBS 1TV 개국과 함께 완공된 TV 방송 사옥과 1957년경에 완공한 한국방송공사 종합(라디오 스튜디오/보도국 등의 사무실) 사옥이 숭의여자대학교 옆에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TV 사옥이 산하고 붙어있다보니 위에서 보면 단층 건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3층 건물이라는 점과 TV 개국하는데 그야말로 시간에 쫓기다보니 스튜디오를 미처 완공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방송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몇 개월 간을 그랬다니 다소 흠좀무.

1976년 KBS가 여의도로 옮겨간 이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청사가 되었으나[7] 1986년에 국토통일원 역시 광화문 근처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면서 국가안전기획부가 쓰다가 현재는 TV 사옥은 리빙TV의 사옥으로, 맞은편 종합 사옥은 1999년부터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이래봬도 방송인들에겐 명소

전시실과 아동을 위한 체험공간으로 이용되는 본관과 입주 업체를 위한 사무동 그리고 만화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본관의 전시 내용은 상당히 빈약한 편이며 전시를 빙자해 레고 등 굿즈도 판매하고 있지만 크게 잘 팔리지는 않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3000~5000원 정도를 지불하면 참가할 수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체험이라든가 몬스터 지갑 만들기, 색칠놀이 등 체험시설. 주말 이용객이 상당히 많음에도 안내 직원이 별로 없어 당황할 수도 있다.

이곳의 핵심 시설은 만화의 집이라는 만화책 도서관이다. BL이나 성인 폭력물을 제외한 상당한 양의 만화가 구비되어 있는 게 강점. 대중적으로 유명한 만화 이 외에도 만화 공모 입선작 등도 상당수 비치되어 있으며 노근리 이야기나 아돌프에게 고한다 같은 사회 고발형 만화들도 많이 비치되어 있다. 포즈집이라든가 만화 작법서들도 상당량 구비되어 있으니 관련 지망생이라면 일반 도서관보다는 공부하기 좋을 것. 다만 가방 반입이 금지되어 입구 쪽 사물함에 넣고 가야 하므로 짐이 많다면 불편할 수 있다.

4.8. 구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소재지

명소라고 하기엔 살벌한... 남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 있었다. 이에 '남산'이 당시 정보기관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였으며,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시대가 있었다. 이로 인해 은어로 '남산에 간다'란 말은 코렁탕 심한 고문을 받을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두 발로 걸어나올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8] 이후 국가안전기획부가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중정-안기부 건물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구 안기부장 공관은 '문학의 집 서울'로, 안기부 체육관은 '남산창작센터'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안기부의 면회소 역할을 한 주자파출소는 현재 철거되었다.

남산 르네상스 사업으로 철거하고 공원화할 계획이라는데...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쓰자는 의견이 좀 나오는 편이다.

참고로 유스호스텔은 중정-안기부 본관이고 그 외에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와 TBS 교통방송 사옥, 서울시청 별관, 대한적십자사 사옥도 중정-안기부 건물이었다.

과거 안기부가 남산에 있던 시절의 건물들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 등지의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함.)

  • 서울유스호스텔 - 구 안기부 본관
  • 안기부 제1별관(대공/도청/감청담당) - 1996년 폭파철거.
  • TBS 사옥 - 구 안기부 수사담당 건물.
  • 서울종합방재센터 - 구 안기부 제6별관(일명 '안기부 지하벙커', 조사실/유치장으로 사용함.)
  •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 구 안기부 제6국(학원사찰 담당.)
  • 서울소방방재본부 - 구 안기부 행정담당 건물.
  • 서울특별시청 남산별관 - 구 안기부 제5별관(조사 담당.)
  • 산림문학관 - 구 안기부 경호원 숙소.
  • 문학의 집 서울 - 구 안기부장 공관.
  • 남산창작센터 - 구 안기부 체육관.
  • 대한적십자사 사옥 - 구 안기부 행정/감청담당 건물.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 서울중부경찰서 주자파출소 - 사실상 안기부의 면회실 노릇을 했던 곳. 현재 철거.

5.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남산에 서식 중인 소나무들을 보자면 애국가 2절에 나오듯 철갑을 두른 듯 튼실해보이는 모양새가 아니다. 철갑을 두른 소나무는 진송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볼 수 없다.

원래 남산에 있던 진송(토종소나무)들은 구한말 땔감용으로 벌목되었고 일제강점기 초기인 1920년 즈음부터 일본인들이 아카시아 나무(당시 일본인들은 아까시나무라고 불렀다)들을 대신 심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경을 위한 산갈나무도 아카시아 나무와 같이 투입되는 바람에 진송은 사실상 멸종하고 말았다. 이 아카시아 나무와 산갈나무도 1990년 즈음부턴 외국에서 들어온 재선충으로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

다만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이 서울의 남산인지 아니면 항목 처음에 나오는 그냥 동네 앞산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작사가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작사가의 의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요새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CG로 수난(?)을 많이 겪는다고. 즉, 소나무 재선충의 북상장면을 보여주면서 빨갛게 변한 남산을 보여준다던지, 21세기 중후반의 서울의 평균기온이 크게 올라 남산에 소나무 대신 야자수종려나무로 덮여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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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예장골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2. [2] 현재 사회복지시설 남산원 입구 바로 옆에 흔적이 남아 있다.
  3. [3] 쉽게 말하면 외국인 거주자 전용 아파트이다.
  4. [4] 물론 수직으로 운행하는 것은 아니고 약 25° 정도의 경사가 있다.
  5. [5] 과속방지턱을 네모 돌큐빅을 쌓아 만들었다.
  6. [6] 1899년부터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한 이후 1905년 을사늑약에 앞장선 주요 인물이다.
  7. [7]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근처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쓰여진 휘호(국토통일)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8. [8] 같은 말로는 "서빙고 호텔", "빙고 호텔" 에 간다는 말도 쓰였는데 악명 높던 보안사(지금의 국군기무사령부) 서빙고 대공분실을 뜻하는 말이다. 국민들이 남산, 서빙고, 남영동(치안본부=대한민국 경찰청 대공분실)의 서울의 세 지명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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