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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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네팔 연방민주공화국
सङ्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
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1]

국기

국장

면적

147,181km²

수도

카트만두

정치 체제

연방제, 의원 내각제, 공화국

대통령

비디아 데비 반다리

임기

2015년 10월 29일 ~

부통령

난다 키쇼르 푼

총리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임기

2017년 6월 7일 ~

인구

29,532,338명(2018)

인구밀도

km²당 199명

종교

힌두교 81.3%, 불교 9%, 이슬람교 4.4%, 기독교 1.4%

공용어

네팔어

통화

루피 (NPR)

GDP

명목 246억 6,700만$(2016), PPP 740억 2,000만$(2016)

1인당 GDP

명목 837$(2016), PPP 2,573$(2016)

국제 전화

+977

도메인

.np

HDI

0.548(2014)

시간대

UTC +5:45

국가

백송이의 꽃(सयौं थूंगा फूलका)

1. 개요
2. 역사
2.1. 역대 국왕 (1768 ~ 2008)
2.2. 역대 의회 (1959 ~ 현재)
2.3. 왕정 폐지 이후
3. 정치
3.1. 중앙
3.2. 지방 정치와 행정구역
4. 경제
5. 시간대
6. 자연과 환경
7. 외교 관계
8. 군사
9. 언어
10. 사회
10.1. 민족
10.2. 치안
10.3. 위생
11. 스포츠
12. 한국과 네팔
13. 관광 팁
14. 해당 국적의 캐릭터
15. 해당 국적의 유명인

जननी जन्मभूमिष्च स्वर्गादपि गरियसि

(어머니와 조국의 대지는 천국보다 좋다.)

1. 개요

네팔어: नेपाल (Nepāl)

티베트어: བལ་ཡུལ། (Bal yul, 밸윌)

히말라야 산맥, 인도중국 티베트 점령지 사이에 위치한 나라. 정식 국명은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सङ्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이다.

네팔(नेपाल)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 있는 음식점에는 누군가 Never Ending Peace And Love 라고 나름 적절한 풀이를 적어놓았다고.오행시 최강자

민족 구성을 보자면 인도계가 대략 70% 이상이고 나머지가 티베트계에 속한다.

2. 역사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유명한 룸비니(लुम्बिनी)가 네팔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네팔인들은 석가모니를 인도인이 아니라 네팔인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걸 두고 항상 인도랑 티격태격한다. 예전에 네팔에서 석가모니가 인도인이라는 설정을 한 인도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바로 상영관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전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고, 불교 신자는 10% 정도. 무슬림도 소수 있다. 다만 원래 힌두교는 다신교로써 여러가지 신을 포괄한다. 석가모니도 힌두교에서 주로 모시는 신 중 하나이고, 심지어 특이한 경우 예수까지도 자신의 신으로써 모시는 힌두교 사원도 있다. 그래서 네팔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으며 세속국가이다.

여러 작은 부족국가들이 나뉘어져 인도티베트의 지배를 받으며 지내다가 1768년 12월 21일에 브리트비의 주도 아래 통일 왕국이 되었다. 1814년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구르카를 필두로 저항한 끝에 영국과 종전협정을 맺고, 영토 일부를 영국에게 할양한 대신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와 밀접한 연관이 큰 라나(राणा, Rana) 가문이 1850년대부터 100여 년간 섭정직을 독차지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들이는 통에 혼란만 더 일으켜왔다.

1950년대에서야 비로소 구르카계 샤(शाह, Shah) 왕조가 절대 왕정을 이루지만, 그마저도 왕비 및 여러 기득권에 라나 집안 후손들이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런 가운데 1972년에 즉위하여 1990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비렌드라 국왕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반대로 왕비인 아이슈와랴는 라나 집안 사람이었고, 절대왕정 보수파를 대변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는 아주 최악이었다. 1998년 왕과 왕비 내외가 거리 탐방을 나갈 때조차 사람들은 왕비에게만 돌을 집중으로 던져, 왕비가 큼직한 돌에 이마를 맞고 피멍까지 들기도 했다. 그 정도로 네팔 민중들이나 진보파, 좌익으로부터는 공적 1호로 왕비가 모든 미움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해도, 150년 가까이 네팔 기득권을 누려온 라나 집안 및 귀족들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기에 네팔 경제 다수 부는 소수층만 가져갔고, 결국 마오쩌둥주의자를 비롯한 저항세력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인도가 절대적 영향을 누리는 네팔에서 중국이 마오쩌둥주의를 받드는 마오쩌둥주의자들을 이용해 배후조종한다고 비난하자, 중국은 이들을 견제하고 네팔군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인도군이나 부탄군까지도 마오쩌둥주의자들을 견제하고 적으로 삼았기에 이들 세력은 극히 미미했다. 지금은 사라진 월간잡지 지오에서 90년대 후반, 네팔까지 가서 마오쩌둥주의자들 기지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몽둥이나 농기구와 화살까지 들고 훈련받으며, 실전에 쓰는 총기조차도 자기들이 만든 1발짜리 권총이 휴대무기일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해 안 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취재하러 올때는 차원이 달라졌는데, AK-47로 무장한 군인들 투성이에 로켓포, 수류탄같이 네팔 정부군급으로 무장이 달라졌다. 때문에 네팔 왕실은 중국이 지원한 것이라고 여겨서 중국이 이를 달래고자 중국 무기들까지 지원했었다... 그런데 막상 마오쩌둥주의자들이 합법적 정권을 열자 중국이 더 환영하는 걸 보면...

그러나 2001년 6월 1일 갑자기 비렌드라 국왕의 장남인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궁 파티석상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 국왕과 왕비, 누이 등 왕족 9명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디펜드라 왕세자는 혼수상태에서 3일 후 숨졌다. 그래서 이 3일간은 디펜드라가 왕위를 자동 승계하여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왕세자가 결혼에 반대하는 국왕 부부에게 불만을 품고 저지른 소행으로 발표되었다. 왕세자는 파스후파티 라나 전 외무,재무장관의 딸 데브야니 라나와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왕비가 라나는 인도계라고 반대했다는 것이다.[2] 일설에 따르면 왕비가 "왕세자께서 35세 이전에 결혼하면 요절할 것입니다"라는 점성사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으며, 피살된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왕위 찬탈을 노리고 배후에 개입하였을 거라 의심하고 있다. 갸넨드라는 현장에 없었으며, 갸넨드라의 아내와 아들은 현장에 있었으나 모두 살아남았다. 또한 국왕과 왕세자 등 왕족 10명이 숨진 중대한 참사인데도, 속전속결로 장례가 치러진 점도 의심을 샀다. 왕정 폐지 후 네팔 정부는 이를 재수사하기로 했다. 디펜드라가 자살한 게 맞느냐는 의혹까지 있다.

갖가지 의혹 속에 국가평의회는 형식적으로 디펜드라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다음에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 샤를 섭정으로 지명했고 갸넨드라는 곧 왕위에 올랐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왕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데다가, 이전부터 선왕과 달리 갸넨드라 왕은 상류 보수층들만 끼고 놀았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못받았고 거만한 성품으로 인해서 인기가 없었다. 더욱이 뒤를 이을 게 뻔할 파라스 왕자도 네팔에서 인기가 최악이었다. 이 왕자는 술 먹고 깽판 부리기로 악명을 떨쳤다. 심지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무고한 사람까지 치어 죽였는데, 피해자가 네팔에서 인기 많은 대중음악가였고, 이걸 덮으려고 하다가 들통나면서 더더욱 욕먹었다. 그런 왕자가 왕이 된다면... 네팔 사람들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네팔 왕실에 등을 돌리면서 최악이던 마오쩌둥주의자들은 졸지에 무시못할 세력으로 커져갔다.

이후로 네팔 정부군 상당수까지도 왕실에 등을 돌리고 이들이 마오쩌둥주의자들에 넘어오면서, 열악한 게릴라전을 벌이던 이들이 전문적 군인들이 훈련시키고 무장 수준도 장난 아니게 달라져서 네팔 정부군이 고전하게 된다. 그러자 미국까지도 네팔군을 지원하고 나섰지만, 민심이 등을 돌린 정부군보다도 마오쩌둥주의자 세력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러다 보니, 내전은 이전과 너무나도 다를 정도로 장난이 아니게 달라졌고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도 커져가며 경제등급 악화에서부터 네팔 경제와 외교 여러 모로 타격이 컸다.

게다가, 이런 혼란을 수습해야 할 갸넨드라 왕은 집권 초기부터 어용내각을 앞세우고 공포정치를 일삼았으며 되려 2005년 절대왕정을 부활시키면서 민심만 폭발시키게 만들었고 이 혼란을 틈타 마오쩌둥주의자들이 대도시 부근까지 진격해 전투를 벌였으며, 이런 혼란을 막겠다고 벌인 선거조차도 야당을 탄압하면서 왕당파들이 절대적 압승을 거두자 더더욱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린 꼴이 되었고, 야당 전 세력에서부터 진보, 좌익, 심지어 우익온건파들조차도 이들과 손잡고 왕정 타파를 주장한다. 결국 이런 절대왕정 부활 2년도 안가 왕은 모든 권력을 이양한다고 물러나야 했고, 2007년 12월 25일 마오쩌둥주의자와 정부가 사실상 왕정폐지에 합의했으며 5월 29일의 선거에서 마오쩌둥주의자 정당이 압승하면서 239년만에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되었다.

하지만, 네팔에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인도 측은 마오쩌둥주의자 정권을 안 좋게 여겼다. 인도 동부 차티스가르 주 및 서벵골 주 등 여러 주에도 낙살라이트(Naxalite)라고 불리는 마오쩌둥주의자 반군이 있는데 이들도 장난이 아니다. 2009년만 해도 이들 테러에 민간인과 경찰을 합쳐 인도에서 906명이 죽었다. 참고로 화약고인 잠무 카슈미르에서 그 해 사망자가 민간인, 군인 합쳐서 132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내전급이다. 이런 상황때문에 인도는 네팔에 여러 혼란이 계속되는 것도 두고보고 있다. 마오쩌둥주의자 측은 중국에게 더 매달리지만, 이걸 환영하면서 중국도 정작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마오쩌둥주의자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던 미국이나 인도 눈치 때문에, 왕정복고 어쩌고 하는 뻘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갸넨드라 국왕 일가는 폐위되어 카트만두 근교 별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뭐 권력으로 밀려나서 좌절할지 모르지만, 모아둔 돈과 인도 및 여러 상류층과의 협약으로 여전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데도 별다른 물의를 빚지 않고 내쫓기 무섭게 마오쩌둥주의자 운운하며 왕정 복고 논란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니 네팔 민심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현재 네팔의 의회에서도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당이 4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왕정복고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4월 25일에는 네팔 동부에서 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관련기사 이후 자세한 정보는 2015년 네팔 대지진 참조.

2.1. 역대 국왕 (1768 ~ 2008)

01대 : 브리트비 : 1768년 9월 25일 ~ 1775년 1월 11일 (6년)

02대 : 프라탑 : 1775년 1월 11일 ~ 1777년 11월 17일(2년)

03대 : 라나 : 1777년 11월 17일 ~ 1799년 3월 8일(폐위, 21년)

04대 : 기브란 : 1799년 3월 8일 ~ 1816년 11월 20일(17년)

05대 : 라젠드라 : 1816년 11월 20일 ~ 1847년 5월 12일(30년)

06대 : 수렌드라 : 1847년 5월 12일 ~ 1881년 5월 17일(34년)

07대 : 프리트비 : 1881년 5월 17일 ~ 1911년 12월 11일(30년)

08대 : 트리후반 : 1911년 12월 11일 ~ 1955년 3월 14일(43년[3][4])

09대 : 마헨드라 : 1955년 3월 14일 ~ 1972년 1월 31일(17년)

10대 : 비렌드라 : 1972년 1월 31일 ~ 2001년 6월 1일(29년)

11대 : 디펜드라 : 2001년 6월 1일 ~ 2001년 6월 4일(56시간[5])

12대 : 갸넨드라 : 2001년 6월 4일 ~ 2008년 5월 28일(7년)

왕위요구 : 갸넨드라 : 2008년 5월 28일 ~ 현재

2.2. 역대 의회 (1959 ~ 현재)

의회(1959~1960)

1959년 2월 18일에 네팔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를 실시하여 국회의원 109명을 뽑았다. 투표율은 42%였고 NCP[6]가 74석을 차지하였다.

무정당 판차야트 1기(1961~1980)

1960년 12월, 당시 국왕인 마헨드라는 민주주의를 네팔에 어울리지 않는 외래사상으로 간주하고 직접 통치를 선언,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와 내각을 해산했다.

ㅇ NCP(네팔의회당)와 공산당 등 모든 정당은 불법화하였고, 독재에 대한 불평과 비판을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등 언론출판의 자유도 완전히 억압하였다.ㅇ 마헨드라 국왕은 자신이 수상과 내각을 구성하고 의회의 기능을 대신하는 ‘무정당 판차야트[7] 체제’를 도입하였다.ㅇ 판차야트를 소집하고 폐회할 권한이 국왕에 있고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 감독하에 있기 때문에 의회(판차야트)는 당지 명목상의 기구로 전락해버렸다.ㅇ 최초의 판차야트 선거조차도 마헨드라 국왕이 사망할 즈음인 1971년에야 실시되었고, 그나마도 보통선거가 아니었다. 국왕이 16명을 임명하였고, 각종 단체가 뽑은 대표 15명[8]에, 지역 대표 90명, 그리고 대학 졸업자[9]에게 만 투표권을 줘서 4명을 뽑았다.[10]

무정당 판차야트 2기(1981~1990)

1979년 4월에서 5월에 걸친 네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11]에 당시 국왕이던 비렌드라가 1980년 다당제와 무정당 판차야트 가운데 어느 것을 국민이 선택할 것인지 투표에 부의하였는데, 투표 참여자의 54%가 판차야트를 지지하였다.[12]

새 판차야트[13]의 임기는 5년이었고 1981년과 1986년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후보가 무소속으로 등록해야 했던 이 선거에 네팔의 정당들은 참여를 거부했다.[14]

의회(1991~2002)

1990년 네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국왕 비렌드라는 정당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국왕이 임명하는 의원을 폐지[15]하였다. 1991년, 1994년, 1999년 세 차례의 총선에서 30년을 견딘 근성의 네팔 의회당과 역시 30년을 견딘 네팔 공산당이 번갈아 1당을 차지하며 양당 체제를 구축하였고, 국가민주당은 제3당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임시의회(2006~2007)

국왕 비렌드라가 아들에게 피살된 뒤 왕위를 계승한 갸넨드라가 헌법을 폐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독재 정치를 하고 이에 반발하는 마오쩌둥주의자가 내전한 끝에, 2006년 민주화운동(Loktantra Andolan) 승리로 구성된 임시의회[16]가 임시 헌법을 만들어 그 때까지 존재하며 상원 역할을 하던 국왕 주도의 국가 회의를 폐지하고 단원제 국회를 만들었다.

이 임시의회는 위의 한 문장으로 끝내기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였는데,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의 의원인 비디아 데비 반다리가 올린 의원의 3분의 1 이상을 여성으로 선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제헌의회(2008~2017)

임시의회가 만든 임시헌법에 따라, 새 의회는 정원 601명으로 지역대표 240명[17]과 비례대표 335명, 의회 임명 26명으로 구성되었다. 2008년 4월 10일 실시된 총선에서 마오쩌둥주의자는 229명[18][19]을 당선시키며 제1당이 되었고, 전통적인 양당이던 네팔 의회당이 115석, 네팔 공산당이 108석을 얻었다.

왕정을 지지하는 국가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자 없이 비례대표 단 4명 만이 당선되어 네팔의 왕정 폐지는 시간 문제가 되었다. 결국 2008년 5월 28일 개회한 새 의회는, 첫 의제로 왕정 폐지를 올리고 찬성 560, 반대 4로 왕정을 폐지해버린다.

헌법 제정이 늦어 2013년에 제헌의회를 다시 구성했다.

의회(2017~)

새 헌법에 따라 구성한 첫 의회이다. 제헌의회보다 의원 수가 줄었다.

2.3. 왕정 폐지 이후

마오쩌둥주의 정부도 네팔에선 잠깐 인기를 끌었다 뿐이지,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왕정에 대한 반발이 거셌음과 동시에 마오쩌둥주의자가 벌인 횡포가 엄청났기에 일부 사람들에게 마오쩌둥주의 정부도 증오를 받기 때문이다.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외국 나가서 고생해 돈을 많이 벌어왔다면 집에 몰려가 돈을 내놓으라며 온갖 협박에 심지어 납치, 약탈까지 벌이던 사건들이 꽤 많았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주의 수뇌부는 일부드립 및 가짜 마오쩌둥주의자라고 했지만 고위 간부들도 연루된 상황이라서 반마오쩌둥주의 정당이나 여론에서 신나게 비난했고 수뇌부는 데꿀멍했다.

국내 여행가인 임현담의 <가르왈 히말라야>라는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도 나온다.

"인도에서 네팔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마오이스트들의 약탈로 재산을 잃고 인도로 달아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네팔인은 해외에서 10년 넘게 죽어라 일하면서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벌어오자 절반을 내놓으라며 집으로 찾아와 기르던 소를 쏴죽이는 마오이스트들 때문에 고생하다가 한 마오쩌둥주의자 병사에게 장작을 던져 화상을 입히고 죽어라 달아난 끝에 겨우 인도로 피했다는 사람이나 반대로 돈도 없음에도 마오쩌둥주의자에게 징발로 아이들을 짐꾼으로 빼앗긴 이들 같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네팔 현지에서 마오쩌둥주의자에 대하여 질문하면 무척 분노하는 반응이 흔하다."

게다가 마오쩌둥주의자들은 이전부터 파업 같은 반정부 활동을 강제로 참여하게 하여 파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나 문을 연 가게들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는 일에서부터 셰르파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이란 명목을 마구 돈을 뜯었던 일도 벌였기에 마오쩌둥주의자에 대한 불신감은 자업자득이다. 선거에서 이겼으나 마오쩌둥주의 정권도 경제정책에서 무능하기는 마찬가지고 사람들은 이건 왕정이나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로 친중 정책이 오래 지속될지는 의문. 마오쩌둥주의 독재정권이라면 계속 이어지겠지만 과반수를 확보한 상황은 아닌지라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반대파(네팔국민의회당,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등)가 득세할 건 뻔하다. 중국으로서도 이웃 나라인 네팔을 계속 친중으로 묶어두고 싶지만 마오쩌둥주의 정권의 뻘짓으로 불안한 걸 두고 봐야 하는데 반대파들이 친인도나 친러, 친미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으로서 국회의원이 된 골체 사르키는 마오쩌둥주의자조차도 고위 카스트들이 간부로 이뤄져서 왕정주의자와 차이가 없는 모순주의자라고 비난했는데 불가촉 천민들에겐 마오쩌둥주의자나 왕정파나 차이가 없다고 뜻을 같이했다. 2011년 한국 여행자가 네팔 현지인들에게 물어본 마오쩌둥주의 정권의 인기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결국 2010년 총리 자리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에서 마오이스트당은 의석의 반 이상[20]을 잃으며 대패했고 네팔국민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연립정부를 수립하여, 수실 코이랄라(सुशील कोइराला) 네팔의회당 총재를 다음 총리로 선출했다.

공화제로 전환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헌법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1990년의 왕국 헌법을 대신해 2007년에 제정된 임시헌법으로 때우고 있는 형편이며, 2015년까지도 정식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21] 가장 큰 쟁점은 연방구획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거라고 한다. 마오쩌둥주의자와 지방(사실상 민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인종과 민족을 기준으로 획정하길 바라는 반면, 네팔 의회당과 네팔 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여당은 지형과 자원을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특히 떠라이-마드헤시(Terai Madheshi) 지역이 가장 많이 반발하는 지역으로, 2015년 말에도 여전히 새 헌법을 반대하며 유혈사태를 벌이고 있다.

왼쪽 환한미소 시선강탈

헌법 제정 시한인 2015년 1월 22일에 헌법 초안이 의회에 상정되지 못 하게 난동을 부리는 마오쩌둥주의자 의원 때문에 국회 공성전이 벌어지고, 결국 헌법 초안은 상정되지 못 했다. 그러나 이들의 횡포에도 결국 2015년 9월 20일 헌법이 공표되었다.#

2015년 10월 11일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 공산당의 샤르마 올리 총재가 네팔 38대 총리로 취임했다.#

2015년 10월 28일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 공산당의 비디아 데비 반다리 부총재가 네팔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네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1979년에 공산당 학생 운동에 가담하면서 정치에 몸 담기 시작했고, 이미 2010년에 국방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새 헌법에 반대하는 떠라이-마드헤시(Terai Madheshi) 지역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7년 12월 8일에 네팔에서는 총선거가 있었는데, 새헌법아래 치뤄지는 첫 의회, 지방선거에서 친중정권의 집권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 정치

3.1. 중앙

세계에서 가장 공산당이 힘을 쓰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미 왕정시절부터 공산당이 짧은기간이지만 집권하기도 했고, 주요 3당중 2개 정당이 공산주의 성향이다. 네팔 의회는 단원제 의회로 의원 정원은 601명이다. 지역구에서 240명, 정당 비례로 335명을 뽑고, 임명직 의원이 26명이다. 총선에 봉쇄조항이 없어 소수 정당이 의회에 많이 진출해있다.[22][23][24] 다만 실제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과 마오쩌둥주의자 공산당, 네팔 국민회의등이 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난립되어있지는 않는 편.

대통령과 총리는 의회에서 뽑는다. 총리가 정부 수반으로서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은 의전상의 국가원수직을 수행한다.

2015년 제정된 헌법은 의회에 여성 의원을 1/3이상, 대통령과 부통령 중 한 명은 여성, 정부와 위원회에 여성을 반드시 포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국회 의장과 대통령도 여성이다. 2015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디아 데비 반다리는 적극적인 여권운동가로 새 헌법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정을 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2006년에 임시의회에서 의회에 여성 의원을 1/3 이상 선출하도록 의무화한 법안을 제시한 바로 그 사람이다.

특이한 것은 네팔의 많은 정당 중 통일교 교리를 당 이념으로 삼는 ‘네팔가정당’이 있는데 평화재건부 장관을 배출하였으며,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네팔노동자농민당도 있다는 것이다. 네팔노동자농민당은 자유 선거가 이루어진 1991년부터 당선자를 배출했다.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박타푸르를 지역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네팔노동자농민당에 대한 투표율이 100%에 이른다고 한다.과연 주체사상 신봉자들 #

3.2. 지방 정치와 행정구역

네팔이 1991년 민주화되면서 지방 의회가 조직되었고, 첫 선거는 1992년에 있었다. 1997년에도 지방 선거가 치러졌고, 2002년에 다음 지방 선거가 예정되었으나 당시 국왕이던 갸넨드라가 의회를 해산하면서 벌어진 내전으로 치러지지 못 했다. 2006년에는 갸넨드라가 민심을 달래려고 지방 선거를 실시했으나, 정당들이 참여를 거부하면서 투표율이 낮았다. 2015년에 헌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2017년에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다.[25]

네팔의 지방은 7개 주로 구분된다. 각 주를 지칭하는 이름은 없으며 번호를 붙여서 구분한다.

7개 주 밑에 카트만두를 포함하는 광역시 6개, 준광역시 11개, 지방자치체 241개, 시골 지방자치체 486개가 있다. 광역시, 준광역시, 지방자치체에서는 시장과 부시장을 선출하고 시골 지방자치체는 시장과 부시장 대신에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시장/의장과 부시장/부의장은 러닝메이트가 아니라서 시장과 부시장이 다른 정당에서 선출될 수도 있다.

각 지방자치체 밑에 기초자치단체가 있다. 각 기초자치단체는 구의장 1명과 구의원 4명을 선출한다. 네팔이 정치에서 양성평등을 보장하도록 헌법에 규정하는 나라인 만큼 구의원은 남자 2명, 여자 2명을 선출하게끔 되어있다. 해당 선거구에 여성 후보자를 제대로 공천하지 않은 정당에 여성 의석이 할당될 경우, 남성 후보를 당선자로 넣던가 당선자 없음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네팔 의회에서 네팔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2강 1중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각 지방 정부도 이들 세 정당이 거의 장악했다. 2017년 5월 실시된 지방선거[26]에서 부시장/부의장까지의 당선자 합계를 보면 맑스레닌주의 공산당이 275명, 네팔의회당이 196명,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97명이고, 그 다음 정당이 6명(...)일 정도로 3대 정당에 당선자가 몰려있다.

4. 경제

5. 시간대

네팔 표준시간은 희한하게도 UTC+05:45를 사용한다. 사용하는 자오선은 86°15' E. 인접국인 부탄이 UTC+06, 인도가 UTC+05:30을 사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정수차 시간대를 추천하는 국제규약상으로는 UTC+06, 교역 등의 이유를 생각하면 인도와 마찬가지로 UTC+05:30를 사용하는 편이 이치에 맞지만, 네팔은 그 어느 쪽을 채택하기도 거부하였다. 특히 인도가 사용하는 82°30' E 자오선은 네팔의 서쪽 상공을 통과하는데도 이를 거부하였다.

이것은 네팔이 인도와 자존심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1956년에 네팔이 표준시를 채택하면서, 의도적으로 인도가 사용하던 시간대를 피하려고 조치한 것이다. 덤으로 네팔이 사용하는 86°15' E 자오선이 국토의 정중앙에 가깝기도 하다.

6. 자연과 환경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가 이 나라에 위치하고 있다. 평균 고도가 1,350m일 정도로 높은 산이 많은지라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했다가는 "저런 건 네팔에선 앞동산이라고 하는 거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당장 내가 서있는 곳이 3,000m인데 그런 거 산이라고 치기는커녕 보이지도 않는다. 네팔인이 강원도로 여행을 와서 암벽지대까지 있는 버젓한 '산'을 가리키며 '한국어로는 Hill(언덕)을 뭐라고 해?' 라고 물은 일도 있었다고. 응 한국에선 그걸 mountain이라고 불러

허영만이나 서나래의 만화에 따르면, 대충 7,000m 이하의 산들은 이름도 안 붙여 준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4,000m 이하 산은 정말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데, 딱히 산이 낮아서 우습게 본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냥 그 높이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즉 4,000m 이하 봉우리(?)는 산 이름 대신 마을 이름이 붙어 있는 것. 가령 해발 1,600m인 사랑곳(Sarangkot)이라는 마을은 네팔에선 아이들이 평지(...) 번화가의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통학하는, 흔하디 흔한 마을 중 하나일 뿐이지만 1,700m 설악산을 험하다고 하는 한국 기준에서 명백한 산이다. 이 정도 높이를 평지 취급할 수 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이라 고산병 걸리기 직전 고도에도 마을이 드물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일.

산지를 안내하는 셰르파들도 굉장히 번창했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이 중에 8개가 네팔에 있다. 1위 에베레스트(8,848m), 3위 칸첸중가(8,586m), 4위 로체(8,516m), 5위 마칼루(8,463m), 6위 초오유(8,201m), 7위 다울라기리 1(8,167m), 8위 마나슬루(8,156m), 10위 안나푸르나(8,091m) 가 네팔에 있으며 2위 k2(8,611m), 9위 낭가파르바트(8,126m), 11위 가셔브룸 1(8,080m), 12위 브로드피크(8,047m), 13위 가셔브룸 2(8,035m)는 파키스탄에 있고 14위 시샤팡마(8,027m)는 중국에 있다. 하지만 14좌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봉우리다.[27] 네팔과 파키스탄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중국과 경계에 있다.

카트만두를 제외하면 개발이 잘 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 깨끗한 편이다. 국립공원 근처로 가면 공기가 너무 맑아서 다양한 생물들과 맑은 공기를 먹고 자란 한국에서보다 크기가 더 큰 생물들(바퀴벌레, 나방, 거미같은...)을 볼 수 있다. 카트만두의 경우 한국 나이드신 어른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거리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군데군데 망가진 포장도로, 구정물, 버려진 자동차 프레임, 쓰레기들, 오래된 타타 차에서 나오는 검은 매연들이 즐비하다. 타 지방 출신 현지인들도 카트만두 가서 수돗물이나 우물물 마시면 설사한다고 한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왕래하는 터멜의 경우는 깨끗한 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곳곳에 쓰레기들이 버려져있고 길가의 거지들이 많이 도와달라고 붙잡는다. 이들은 마트에 들어가서도 끝까지 따라오는데 한 번 이들에게 무언가를 사주거나 돈을 주게 되는 경우 옆에서 보던 다른 거지들도 붙게 되므로 아예 처음부터 주지 않는게 좋다. 화장실을 갈 경우에는 꼭 휴지를 가지고 들어가자.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대체로 물을 받아서 닦는 식으로 뒤처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에는 바가지 하나와 수도꼭지 그리고 구식 변기밖에 없다. 현대식 좌변기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시설 좋은 호텔같은 곳을 가면 볼 수 있다. 공항 화장실의 소변기마저 90년대 벽에다가 볼일을 보는 듯한 그 소변기와 같으니...

여러가지 기술 미흡 및 자본 문제와 건기에 보충할 전력 보충 문제로 정전이 하루에 10시간 정도 매일 일어난다. 정전 시간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을 정도(...). 그리고 의외로 수도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해마다 눈이 많이 녹는다고 환경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으며 물이 어디에나 풍부한게 아니라 아주 황무지같은 곳도 많다. 그래서 마을마다 공동 수도(우물) 혹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가 있고 개인수도는 흔하지 않다. 절대로 목이 마르다고 이걸 마시면 안된다. 해외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현지인이 아니기에 물갈이를 할 확률이 높다.

아닐 것 같지만 악어코뿔소(!)와 코끼리도 산다. 네팔에도 밀림과 초원이 있다. 오죽하면 네팔 여행사 대표가 한국에서 홍보하면서 "네팔에는 에베레스트와 산만 있는 게 아닙니다"라며 밀림과 코끼리와 늪지도 있다는 열변을 토한 바 있다(게임 파크라이 4에서 이것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 네팔의 이 밀림지대는 치트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정글에 철조망을 넘어(혹은 기어서) 들어가면 이들을 볼 수 있는데 (물론 불법이고 목숨을 건 행위이다) 랍티 강 같은 큰 강에서는 악어(수영하다가 봉변당한 사람들도 있다), 목욕하는 코뿔소들을 흔하지는 않지만 볼 수 있고 더 깊이 정글 속으로 들어가면 야생코끼리와 표범이나 여러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잠시 이 철조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전기 문제로 인해 낮에는 전원이 안들어와있고 높이도 2m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3m를 점프하는 야행성 호랑이들이 가뿐히 넘을 높이다. 가끔씩 국립 공원의 호랑이들이 마을로 나와 사고가 나기도 한다.

참고로 치트완 국립공원 쪽에서 코끼리를 타고 정글에 들어가는 체험과 배를 타고 악어를 볼 수 있는 네팔의 자연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비용은 약 500네팔루피[28]라고 한다.

7. 외교 관계

외교적으로는 이웃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더불어 절대적으로 인도에 의존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임에도 인도 귀족들이 와서 네팔 정계와 경제를 삼켰고, 2000년대까지도 네팔 경제 대부분을 인도계가 쥐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 상당수가 인도가서 일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인도에서 받는 대우는 아주 최악이다. 엄청 낮은 월급에, 그마저도 안주는 것. 게다가 구타와 폭력, 사기에 휘말리는 게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다른 나라도 해당사항이 많을듯.

그러나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며 네팔에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네팔 마오이즘 반군이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으면서 친중국 성향으로 가고 있다. 굳이 이 기사 말고도 '네팔 중국 티베트'라고 세 검색어를 넣어서 뉴스 검색해보면 네팔이 얼마나 친중국으로 되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네팔 민중들은 별로 중국에 대하여 친근함을 가지지 않는데 중국인 이민자들이 네팔에 와서 장사하는 게 조금씩 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네팔은 산업화된 경제가 아니라 실업자가 굉장히 많은 나라이니 외국인이 와서 장사하는 걸 아니꼽게 볼 수밖에. 안 그래도 티베트 망명자들도 차별을 많이 당하는 곳인데 이젠 중국인 숫자가 늘어나는 걸 더더욱 신경쓰는 분위기라고.

네팔 정부가 친중국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가시적인 경제성장이 별로 없는 게 아무래도 여기도 윗 정치인들이 참 썩은 모양. 결국 선거에서 마오쩌둥주의자 정당은 참패했고 친중 노선도 타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인도가 네팔에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인도와의 갈등도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018년에 모디 총리는 네팔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네팔을 세번째로 방문했다.#

8. 군사

시크족과 싱할라족 다음으로 세계 최강의 용병으로 꼽히는 구르카족이 바로 네팔의 3대 수입원 중 하나라는 말이 있다. 구르카의 명성과 역사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미(美)의회 도서관 자료실 정보에 따르면 군사력 총합으로 세계 84위이다(...). 참고.

9. 언어

네팔어가 공용어이다. 그리고 네팔내에도 티베트계 민족들도 거주하고 있어서 셰르파어, 네와르어 등의 티베트어 계통의 언어들도 사용되지만, 문자는 네팔어와 마찬가지로 데바나가리 문자(!)로 표기되고 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영어도 곧잘 한다. 네팔인들이 영어를 곧잘 하는 이유는 영국과의 전쟁 이후 네팔 왕조가 일종의 강화조약을 통해 영국의 작은(?) 지배를 수용한 뒤, 나름 서구화를 지향했던 것이 큰 이유이다. 이후 1960년 대 서구에서 히피즘이 유행할 때 인도를 방문했다가 네팔까지 여행하면서 네팔에 머무르던 서구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나름의 아마추어 관광사업이 유행했을 때 '영어'는 네팔인들에게 중요한 언어로 새겨진다. 현재 네팔 도시의 초등학교들은 영어로 된 교과서로 교육을 한다. 이유는 역시 관광업과 해외 취업이 중요한 나라이므로 영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며, 네팔에 잠시라도 머물러본 이들은 네팔의 영어가 많은 부분 영국식 영어라는 점, 교육 제도 또한 영국식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동네 작은 식당 아저씨도 영어할 줄 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들의 영어는 '할 줄 안다'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관광객 응대용 수준. 남대문이나 명동 상인들과 비슷한 정도라고 보면 될 듯. 그래서 비교적 유창한 영어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보통 아이들을 호출한다...(...) 실제 아이들은 정규교과로 영어를 배우고, 실생활에서도 사용하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오히려 영어 실력이 나은 편이다.

10. 사회

10.1. 민족

네팔의 민족은 크게 아리안 계열, 몽골리안 계열, 그리고 토착민 계열이 있다.

아리안 계열은 전형적인 인도인들과 비슷한 주로 바훈[29]과 체트리 사람들이고 몽골리안은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토착민 계열은 피부가 매우 검은 흑인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다.

네팔에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한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야는 아리안 계열이다. 브라만은 순수 아리안 계열[30]이다. Acharya,[31] Adhikari, Bhatta, Bhattarai, Gautam, Ghimire,[32] Poudel 등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이 계층이다. 체트리는 크샤트리야 아리안 계열 중에서 브라만과 타 민족 혼혈의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브라만 사람들과 같은 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주로 Chhetri(체트리)라는 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크샤트리야보다는 체트리라고 한다. Basnet이나 Karki 같은 체트리 고유의 성도 존재한다.

바이샤 계급에는 Shrestha,[33] Newari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네와리족 계열로 네팔의 상업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많다. 한 예로 상당수의 로컬버스에서 광고로 볼 수 있는 Shrestha 여행사라는 곳도 있다. 과부들이나 이혼녀들이 돈 많은 네와리 계열 남자와 재혼하는 경우도 적잖게 볼 수 있다.

수드라에는 토착민 계열이 주로 속하는데 피부색이 많이 까만 사람들이 주로 이 계열에 속한다. Nepali, Sunar, Pariyar, B.K.(Bishwakarma) 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네팔 내에서 카스트 제도를 거의 따지지 않아[34] 서로 다들 친하게 지내다보니 이들은 계급이 낮아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가끔씩 이들 중 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있는데, 정말 유명한 한 사람은 좋지 않은 방식으로 미국에서 성공(?)했다.

이 외에도 몽골리안 계열로 Tamang, Rai, Limbu, Magar, Gurung, Sherpa 등이 있다. 이들은 산간지역 출신 사람들이 많다. 특히 그 유명한 구르카 용병[35]의 3대 기원의 성씨 중 2가지(Magar, Gurung)가 바로 이쪽 계열이다. 몽골리안 계열이다보니 생긴 건 한국인, 중국인, 티베트인과 비슷하게 생겼다. 특히 Tamang(따망)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많이 비슷하게 생겼다.

이들 중에서도 여러 갈래로 또 나뉘는데 Tamang의 경우 Lama Tamang이 있고 Magar 같은 경우에는 Pun Magar(뿐 머거르), Rana Magar(라나 머거르), Thapa Magar(타빠 머거르) 등이 있다. 이 몽골리안 계열들은 비 힌두교 출신이라서 카스트에 넣지 않지만 굳이 넣자면 바이샤보다 아래지만 수드라보다는 위인 그런 위치다. 이들 외에 다른 민족 계열로 Tharu(타루)족인 Chaudary 혹은 Mahato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네팔의 성씨는 민족을 의미한다. 같은 성씨면 같은 민족이나 민족 출신을 뜻한다. 어찌보면 한국의 성씨 혈통과 비슷하지만 네팔의 경우 민족이 다른, 즉 성씨가 다르면 외모도 좀 차이가 있다. 외모를 보고 성씨나 카스트를 맞출 수도 있다.

10.2. 치안

이웃나라 인도 공화국과 달리 네팔의 치안은 자주 시위와 문제가 발생하는 카트만두를 빼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카트만두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36]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대체로 잘 해주는 편.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만큼 나쁜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종교 활동에 있어서 특히 그런데, 물감 축제를 할 때 종교가 다른 사람이 오면 보통은 그냥 물감이나 물만 맞을 걸 돌로 맞을 수도 있다. 지방에서는 동네 공산주의자 깡패들만 조심하면 된다. 이들은 외국인에게 대체로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1년 중 마약[37]이 허용되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은 외출을 삼가는 편이 좋다. 이 외의 경우에는 로컬버스나 투어리스트 버스를 여행자 혼자 타도 큰 문제는 없는 편이다(카트만두에서도. 대신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산간지방에서 내려와 평야의 정글, 국립공원 쪽으로 갔을 경우에는 야생동물들을 조심하여야 한다. 농담이 아니고 허술한 펜스를 벵갈호랑이와 같은 종의 호랑이가 넘어오고, 강가에서 수영을 할 때는 악어에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이런 몇 가지 경우를 빼면 안전하다.

저렇게 여행자제, 철수인 것도 전부 지진 때문이다. 난리가 보통 난리가 아니다보니 사회가 뒤숭숭해져서 그런 것.

한편으로 선진국 등산객을 대상으로 한 강도납치 사건이 매우 흔하다. 대개 희생자들은 돈과 소지품을 빼앗긴 후 암매장당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미나미노 사요코 실종 사건이 그런 실제 사건이다.

10.3. 위생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좋지 않은 편이다. 수도인 카트만두에서조차 그렇다. 물이 부족한 사정상 같은 옷을 며칠동안 입고 나서야 빨래를 하고 화장실의 경우 뒤처리를 할 때 손과 물을 사용한다. 그리고 변기 물 내리는 시스템이 레버로 되어있는게 거의 없기에 물을 받아서 변기에 쏟아붓는 식으로 물을 내린다. 식당의 경우 완전 고급 식당이 아닌 경우에는 위생을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조리 과정도 굉장히 오픈 되어있는 곳도 있는데 특히나 여름철에는 굉장히 안 좋다. 길거리의 오래된 타타 차의 매연, 엄청난 파리떼들 등이 조리 과정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게되면 네팔에서 맛난 거리 음식 혹은 서민 음식을 먹기 힘들게 되므로 그나마 깨끗해보이는 곳으로 가서 그냥 위의 소화 능력을 믿자. 정 못 먹겠으면 그냥 고급 식당에서 먹는 것도 좋다.

길거리 위생은 매우 지저분한 편이다. 금가고 이곳저곳 구멍이 파인 포장도로, 구정물, 버려진 자동차 프레임, 쓰레기들, 오래된 타타 차에서 나오는 검은 매연들이 즐비하다. 수도인 카트만두가 정말 심한데 이렇다보니 지하수에도 이게 스며들었는지 타 지방 출신 현지인들도 카트만두 가서 수돗물이나 우물물 마시면 설사한다고 한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왕래하는 터멜의 경우는 깨끗한 편이다.

11. 스포츠

축구가 네팔의 국기이다. 축구엔 마티어스 메모리얼 A 디비전 리그라는 1부리그 및 2부 리그(메모리얼 B)까지 갖추고 있긴 하지만 약체급이라서 AFC프레지던트컵에 나가지만 여기서도 뭐 내세울 성적이 없다. 게다가 재정난 및 여러 사정으로 1990~94년, 2007~08년까지 아예 리그가 열리지 못하는 열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도 초라하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예선전에서는 한국에게 0-11로 졌다. 이 경기에서 황선홍에게 8골을 내 주며, 한국 국가대표 개인 1경기 최다 골 기록을 만들어 줬다. 이 기록은 9년(...)이나 유지되다가, 2004년 아시안컵 지역예선(2003년에 치름)에서 한국에게 0-16으로 지며 한국축구 사상 최다골차 승리 기록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이건 네팔에게도 최다골차 패배 기록으로 남았다. 그래도 1986년 월드컵 예선전에선 한국과의 홈경기에서 0-2로 선전한 적도 있다. 그리고 1999년 남아시안게임 대회에서 부탄을 상대로 12:0으로 이기면서 몰디브와 더불어 90~2000년 사이에 10점차 대패를 당한 최약체가 10점차로 다른 나라를 이긴 기록을 거둔 바 있다. 그런 네팔 리그에서 한국 선수 모집을 한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기사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한국 선수들이 인도네시아나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같은 동남아 리그에서 꽤 여럿 활약하고 있다. 다만 서남아시아 쪽으론 활약하는 한국 선수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자세한 건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그러하듯 크리켓도 좀 하는 편이다. 1975년에 세미 프로리그이긴 해도 크리켓 리그가 문을 열었다.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같은 크리켓 강호는 그렇다쳐도 이웃 방글라데시나 아프가니스탄보다 실력은 떨어진다.

1999년부터 야구보급이 시작되어 약 17년을 거쳐 경기 인구는 약 300명까지 늘었다. 2010년 네팔 야구 연맹 (NBF)이 정식으로 설립.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예선 출전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2016년 12월 16일부터 18일 이틀 동안 사상 처음으로 네팔에서 5개팀이 참가하는 국내야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대회를 통해 2017년 서 아시안 야구 컵 대회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팀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7년 네팔 야구대표팀은 이 대회에 나가 이라크를 13-1로 콜드게임으로 이겼지만 다음경기인 파키스탄 전은 0:16으로 대패하며 콜드게임패로 탈락했다.

개인 종목은 어느 정도 하는 듯 하다.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 처음 나왔으나 메달을 1개도 못 받고 47년동안 불참하다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오랫만에 나와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받은 게 최고성적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 종목에서 동메달 3개를 받았으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권투에서 동메달 1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가라테에서 동메달 1개를 받았다. 88 올림픽 태권도에서 동메달을 받았으나, 시범종목인 탓에 집계에서는 제외됐다.

12. 한국과 네팔

한국과는 1968년 영사관계로 있었다가 1974년 대사관계로 격상되어서 수도 카트만두에 주 네팔 대사관이 신설되었다.

네팔은 셰르파라든지 관광업으로 종사하는 이들도 많지만 산업이 미비해서 워낙에 실업자 수가 많기에 결국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지못미 2010년 6월 16일자 네팔 히말라야 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 합법적 취업비자를 받고 가서 일하면 한 달에 보통 100만 원 정도를 버는데 이는 가까운 인도에서 버는 돈의 5배가 넘으며, 네팔에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이들 월급 3배가 넘는다고 한다.[38][39] 거기에다가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싱가포르, 홍콩, 일본보다도 임금이 높다고 한다.[40] 그러다보니 서로들 한국에 가려고 하면서 한국인 여행자들도 네팔 여행가서 현지인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혹시 한국에서 일할 곳을 부탁하는 요청을 자주 듣는단다.

하지만 연줄이 없으면 한국어 능력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합격해야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돈도 비싸거니와[41] 이 경우에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브로커들의 협박[42]에 시달리는 등 위험부담이 크다. 때문에 비싼 수강료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위한 한국어 교육 방송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효기간이 2년정도로 짧기 때문에 2008년 경제위기로 취업비자 발급건수가 크게 줄어들었을 때 상당수의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자들이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증 유효기간이 지날까봐 두려워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사장 혹은 상사에게 구박을 받거나 물리적 폭행 등을 당해 생기는 정신적 휴유증을 안고 돌아오거나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하는 사건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일할 경우 작업조건이 열악한 3D 업종에 종사하는 데다 업체 대부분이 영세하여 안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높은 빈도로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또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여 돈을 뜯기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나마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 능력시험의 난이도가 상당한 데다가 경쟁률이 높다 보니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고.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배낭여행자 거리인 타멜거리에 가보면 한국식당도 제법 볼 수 있는데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있으며 타멜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조금은 어설픈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네팔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경험이 있는 네팔인들이다.

2014년 3월 20일 프로듀서(PD)를 비롯한 국내 방송사 직원 3명과 여행가이드 등 한국인 4명이 네팔에서 힌두교 사원과 군사시설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18일 체포돼 사흘째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국 대사관에서는 이들의 촬영장비가 공중에서 전경을 촬영하는 헬리캠으로 군사장비가 아니며 불법 촬영 의도가 없었다고 현지 경찰을 설득하여 이들 4명을 풀려나게 했으나 19일 다시 경찰서로 간 뒤 20일까지 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43]

13. 관광 팁

  • 전반적으로, 외국인들은 자기들보다 훨씬 잘 살기 때문에 바가지 씌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게 잘못된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건 그 그 사람의 인성이나 도덕관, 성격과는 상관이 없는, 일종의 외국인에 대한 문화 같은 거다. 애초 자국민들 사이에서도 일단 다 알면서 높게 부른 후 깎는 게 일반적인 거래모습인 판이니. 확실히 붙임성 좋고 흥정 잘 하는 관광객이 유리하다.[44]
  • 국가적 바가지(...)도 있다. 인도 공화국, 부탄 등 무비자로 오갈 수 있는 국가와 여타 국가의 가격표가 대놓고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모습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거 네팔에선 합법이다. 당연하겠지만(?) 무비자 국가들의 경제수준 자체가 낮은 편이라 가격 역시 훨씬 저렴하다. 이런 품목에는 문화/관광 입장료, 일부 공산품, 레저/엑티비티 요금, 숙박비 등이 포함된다. [45]
  • 외국인 상대로 대부분 친절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든다. 간혹 끔찍한 강력사건이 생기긴 하지만 사실 비율로 따지면 (한국을 포함한) 타 국가 외국인 상대 범죄에 비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좀도둑은 상당히 많은 편. 심지어 숙소 주인이 관광객이 묵는 방을 뒤져서 여행경비를 절도하는 사례조차 드물지 않을 정도다. 오죽하면 장기관광객들은 가장 안전한 금고가 자기 주머니 속의 지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 선불 유심을 사서 쓰면 국제전화, 인터넷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일일이 전신주를 세우고 선을 깔아 유선통신 인프라를 만들 여력이 없는 나라라 오히려 무선에 투자를 많이 한지라 통신사정은 좋은 편이다. 인터넷이 느리고 자주 끊기긴 하지만[46] 전화 자체는 무리없고 요금도 한국 기준 생각하면 비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 한국처럼 네팔도 다양한 선불 요금제가 있고 취급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니 장기여행을 하며 인터넷을 계속 쓸 거라면 발품을 조금 파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히말라야 산속은 위성 Wi-Fi를 쓰는데, 롯지 주인과 역시 가격 흥정을 해야 한다.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딱히 비싸지 않지만 현지 물가로는 아주 비싼 편. 사람이 사는게 신기한 동네이니만큼 그러려니 하자. 가끔 담벼락 옆 스팟(...) 같은 것에서 무료 Wi-Fi가 잡히는 기가 막힌 산속 동네도 있다.
  • 먹거리, 기념품, 옷 등 대부분은 흥정이 가능하지만 공산품[47]은 흥정이 안 된다.[48] 부르는 게 값인 다른 제품들과 달리 공산품은 정찰제며 가격표가 붙어 있다. 달리 말하면 상인들도 바가지를 씌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 네팔의 산업구조 특성상 공산품 가격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고 질은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여기보다 더 비싸다고 봐야 한다.[49]
  • 공산품을 구입할 경우, A가게에서 100루피 가격표 붙은 물건을 그 돈 주고 샀는데, B가게에서 같은 제품에 같은 가격표가 붙었음에도 150루피를 달라고 할 경우 가격표로 클레임을 걸어 보자. 그때 주인이 할 수 없다는 듯 생색내며 정가를 받기도(...) 하지만, 단호하게 못 깎아준다고 하면 그 제품은 흥정불가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무작정 주인만 욕하기도 그런 게, 네팔은 유통수준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는지라 좀 큰 A가게에 들어온 공산품을 작은 B가게가 사다가 파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 네팔 물가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아득바득 단돈 1루피라도 아끼고 싶다면 안 된다는 걸로 실랑이 하느니 좀 더 걸어서 A가게 가는 게 낫다. 단 과자 같은 공장 생산 먹거리류나 주류는 일단 공산품 취급이라 가격표가 붙어 있긴 한데 한국 편의점 이벤트마냥(...) 싸게 파는 경우가 많다.
  • 만약 루클라나 포카라 등, 카트만두를 벗어났다면 기념품은 귀국하며 카트만두로 돌아왔을 때 구입하는 편이 낫다. 카트만두에서도 그곳들에서 본 모든 걸 구할 수 있다. 비슷한 제품이라도 카트만두(특히 타멜)이 훨씬 저렴하다.
  • 만약 당신의 철학 중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있다면 흥정은 적당히 하자. 먹거리는 물론 옷을 일일이 손으로 뜨고 짜서 만들고 심지어 기념품조차 한국처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손으로 붙이고 조립하는 식으로 만드는 곳이다.[50] 작정하고 깎으려 들면 정말 1/10까지도 깎을 수 있겠지만 항간에 도는 소리와 달리 그렇게까지 해도 남는 장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팔아야 하니 그런 거다. 제품을 살펴보고 한국이라면 이런 거 얼마쯤 줘야 할까 생각해 본 다음 가격을 물어 보면 상인이 바가지 씌운 가격조차 너무 싸서 놀랄지도 모른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공임'이라는 생각을 하면 비싸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 네팔에서 울(Wool)이나 캐시미어라고 하면 양털이 아니라 염소털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가 아는 뻣뻣한 염소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품질인데 역시 핸드메이드.[51] 가격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참고로 염색도 수제라 그런지 디자인이 비슷한 제품은 많아도 정확히 똑같은 제품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다른 핸드메이드 제품 모두에 해당.
  • 대마줄기로 만든 가방도 기념품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일단 한국에선 구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 역시 사람이 손으로 직접 짰단 유니크함이 있다. 대마줄기의 내구성은 합성섬유 뺨치기 때문에 품질 걱정은 접어도 좋다. 생가죽 제품[52]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대신 이쪽은 안감 처리 같은 게 안 돼 있어서 한국에 돌아와 수선집서 좀 보강해 줄 필요가 있다.
  • '에베레스트'나 '구르카' 등 네팔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구르카는 도수가 높고 에베레스트는 도수가 낮으니 참고. 단, 현지 담배는 거의 한국의 화랑, 청자 수준이라 선진국형 저타르 담배에 익숙해진 사람은 거의 뽕맞은 수준(...)으로 뿌리부터 휘청이는 느낌이 두통과 함께 몰려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반나절 동안 올라오는 가래는 덤.[53]

14. 해당 국적의 캐릭터

※해당국 작품 제외.

15. 해당 국적의 유명인


  1. [1] 이 나라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쭉하다.
  2. [2] 이미 힌두교 결혼식을 비밀리에 올리기도 했다.
  3. [3] 역대 국왕 중 최장기 재위.
  4. [4] 1950년 11월 7일 망명했다가 1951년 1월 7일 복위했다. 그 사이 짧은 두 달 동안 국왕이었던 사람은 당시 네 살이던(...)
  5. [5] 역대 국왕 중 최단기 재위.
  6. [6] Nepali Congress party. 네팔 의회당
  7. [7] Rastriya Panchayat(국가 위원회), 줄여서 Panchaayat. 네팔어로 판차야트는 의회, 위원회라는 뜻이나, 보통 '판차야트'라고만 할 때에는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무정당 판차야트를 가리킴.
  8. [8] 농민 단체 4명, 청년 단체 4명, 여성 단체 3명, 노동자 단체 2명, 퇴직 군인 단체 2명
  9. [9] 1971년 당시 네팔의 대학 졸업자 수는 1만 3천 명이었다.
  10. [10] 지역 대표조차 국민이 직접 선출한 것이 아니니, 결국 네팔 국민 중에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대학 졸업자 1만 3천 명 뿐이었단 얘기다.
  11. [11] 정부가 발표한 인명 피해는 사망 11명에 부상 164명이다.
  12. [12] 국민투표는 노랑과 파랑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썼고 판차야트를 지지하는 사람은 노란 색, 다당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파란 색에 기표하도록 했다. 네팔 국민 대부분이 믿는 힌두교에서 노란 색이 종교적인 의미(성인(聖人)을 가리킴)가 있다는 점에서 국민투표 당시에도 색깔을 의도적으로 선정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투표 결과가 색상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13. [13] 지역 대표 112명과 국왕 임명 28명으로 구성되었다.
  14. [14] 1981년 선거는 1959년 이후 22년 만의 보통선거였음에도 투표율이 52%에 불과했다. 다당제를 지지한 사람들이 판차야트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
  15. [15] 대신 왕당파인 '국가민주당'이 창당되어 총선에 참여하였다.
  16. [16] 갸넨드라가 해산했던 의회의 의원과 임명직 의원을 합쳐 330명으로 구성되었다.
  17. [17] 지역구 120개에서 2명 씩 선출
  18. [18] 지역대표 120명, 비례대표 100명, 의회 임명 9명
  19. [19] 1위이든 2위이든 120개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단 얘기다.
  20. [20] 220석이 80석(!)으로 줄었다.
  21. [21] 이 때문에 2년 임기의 초대 대통령이 7년 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 2013년 총선도 제헌 의회를 다시 구성한 것이다. 제헌 의회 선거를 두 번 한 나라가 또 있나?
  22. [22] 산술적으로 득표율이 0.3% 만 넘어도 의석 배분이 가능하다. 실제로는 0.22%를 득표한 정당에까지 의석이 배분되었다.
  23. [23] 2013년 총선 때 의회에 진출한 정당은 30개, 이 가운데 당선자 수가 10명을 넘지 않는 하위 22 정당의 의원 합계가 78명이다.
  24. [24] 이상의 설명은 제헌의회에 대한 내용이다. 새 헌법에 따라 구성된 새 의회에 대한 내용 추가 바람.
  25. [25] 위키피디아에는 5개 대구역 아래 14개 주가 있고, 그 밑에 75개현이 있다고 되어있음. 근데 구글 지도로 보면 5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음. 추가바람.
  26. [26] 7개 주 가운데 북부 3개 주에서 실시되었다. 남부 4개 주는 6월 중 실시할 예정
  27. [27] K2, 가셔브룸 1/2, 브로드피크는 정확히는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해 있다. 두 산맥 모두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의 충돌로 인해 생겨났다.
  28. [28] 인도 화폐 1루피당 1.6네팔루피의 고정환율을 가진다. 2016년 3월 기준 약 5600원.
  29. [29] 네팔에서는 브라만을 바훈이라고 부른다.
  30. [30] 애초에 아리아하얗다는 뜻이다.
  31. [31] 어쩌랴가 아니라 어쩌레.
  32. [32] 기미레.
  33. [33] 발음은 슈레스트에 가깝다. 슈레스타, 쉬레스타가 아니다.
  34. [34] 공식적으로 폐지. 지방 일부에서만 '뼈대 깊은' 브라만들이 이런걸 따진다.
  35. [35] 네팔 사람들은 "고르카"라고도 많이 부른다.
  36. [36] 카트만두도 경찰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일부 골목거리를 제외하곤 치안유지가 잘 되있는 편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려고 하면 A.P.F란 명찰을 찬 방탄복 입고 소총이나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친절하게 가지 말라고 하니, 지시만 잘 따른다면 '위험한 어두운 동네'로 가게 될 일은 극히 드물다.
  37. [37] 양귀비꽃으로 만드는 아편.
  38. [38]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의 노동 조건 및 후생복리는 (한국인의 기준으로는) 매우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생활비를 아끼고 한푼이라도 바득바득 모아서 돌아가면 최소한 경작지와 집 한채는 떨어지기에 어떻게든 버티는 게 목적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어느 네팔인은 5년 간 일해서 번 돈으로 집 5채를 샀다가 마오쩌둥주의자들에게 3채가 파괴당하는 엄청난 불행을 겪은 걸 위키러가 직접 목격했다. 일주일간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걸 공장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줬으나 집 3채에 비하면야(...).
  39. [39] 주로 우리나라 공장 등에서 일하긴 하지만 현지에선 나름 대학까지 나온 고학력자다.
  40. [40]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보다 임금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이고, 싱가포르홍콩의 경우는 선진국이라 당연히 자국민의 임금은 훨씬 높지만 최저임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이 낮다. 아랍 에미리트 등 사우디를 제외한 걸프 만 연안의 석유부국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남아시아인들을 착취하다시피 부려먹는 걸로 악명이 높다. 일본도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임금이 일본인보다 낮은 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은 진짜 천국인 셈.
  41. [41] 500만원 정도만 받아도 무지 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이건 브로커랑 알거나 어찌 봐줘서 이뤄지는 경우이고 보통은 1000만원 이상을 줘야 하는데 이 나라 대졸자가 20만원 정도 받는 월급을 생각하면 이 돈이 얼마나 엄청남을 알 수 있다. 그래서요구하는 돈의 1/3정도만 주고 이자를 붙여서 한국에 가서 취직하면 월급받고 갚기도 한다.
  42. [42] 이들은 조폭을 배경에 두고 있기에 이들에게 줄 돈을 안주면 한국에서라도 죽이거나 온갖 구타를 한다.국내 뉴스로 보도되지 않은 외노자 살해사건이 브로커가 연루된 외노자 조국 조폭이 끼어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43. [43] 그래서인지 2015년 4월에 촬영된 JTBC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네팔편에서 공중촬영분에선 네팔당국의 허가를 받았다는 자막이 나왔다.
  44. [44] 이런 흥정문화는 도시화/산업화가 덜 된 문화/문명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정찰제를 장려하다 못해 어기다 걸리면 벌금까지 부과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45. [45] 사실 네팔 뿐아니라 관광자원 외에는 딱히 외화를 벌어들일 수단이 없는, 산업화가 미약하고 가난한 나라(예를 들어 이집트 등 중동의 저소득 국가)에서는 많이들 시행하는 정책이다. 주변국들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인데 요금을 서구 기준으로 받으면 아무도 안 올 테니까.
  46. [46] 사실 이것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20년 전 이미 고속인터넷에 젖은 한국 사람이나 복장터져하지 다른 나라 대부분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면 이 정도면 훌륭함 수준으로 평가한다.
  47. [47] 특히 라이터, 휴지, 비누 등의 소모성 생필품이나 약품 등.
  48. [48] 정확히는, 흥정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만약 응한대도 결과적으로 관광객이 현지상인을 등쳐먹는 결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하술.
  49. [49] 대부분이 아주 열악한 중국제거나, 그보다 못한 네팔 생산품.
  50. [50] 그래서 같은 제품이라도 미묘하게 모양이 다른 종류가 수두룩하다.
  51. [51] '메이드 바이 XX팩토리'라고 써 있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공장이 아니라, 수제품 생산 공장이다. 네팔 여성들이 커다란 건물 한 지붕 아래에 모여 직접 베틀 같은 걸로 뜬 거라 결국 핸드메이드 맞다.
  52. [52] 주로 (물)소나 염소 가죽.
  53. [53] 애초 궐련임에도 필터가 없는 종류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말보로 등 일부 브랜드는 네팔에서 생산할지언정 20년 전 군팔(...) 정도 수준은 된다. 그리고 던힐 등 아예 수입해 들어오는 브랜드는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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