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교섭단체 구성

초대
노회찬

2대
장병완

정의당 원내대표

제3대
정진후

제4대
노회찬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 성산구)

제19대
강기윤

제20대
노회찬

현직

역임한 직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진보신당 대표

초대
노회찬
·심상정

제2대
노회찬

제3대
조승수

진보정의당 대표

창당

초대
노회찬
·조준호

제2대
천호선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병)

제18대
홍정욱

제19대
노회찬
[1]

제19대
안철수

}}}

이름

노회찬 (魯會燦)

출생일

대한민국 38(1956)년 8월 31일(61세)

출생지

부산광역시

본관

강화 노씨

배우자

김지선

종교

없음 (무신론)[2]

최종 학력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0000000 소속 정당

정의당

선거구

경남 창원시 성산구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7, 19, 20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

현직

정의당 원내대표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진보정치연합 대표
국민승리21 정책기획홍보위원장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진보신당 공동대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외부 링크

트위터, 블로그

1. 개요
2. 생애
2.1. 학창시절
2.2. 노동운동가 시절
3. 정치 경력
3.1. 정의당 활동
3.2. 4.13 총선 준비 과정
3.3. 제20대 국회 활동
4. 선거 이력
5. 평가
6. 어록
7. 기타
8. 둘러보기

1. 개요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과 함께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소속으로 최초이자 단 둘뿐인 3선 의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이다. 2018-07-24 23:39:09 기준 제20대 국회의 창원시 성산구의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소속이다. 의 노, 초사[3]의 노. 대중정치의 감성을 갖고 있는 진보정당계 유일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그의 일생을 다룬 영상.

2.1. 학창시절

1956년 부산에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경도 출신으로 6.25 전쟁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전쟁 직후 서로 만나 결혼해 둘 사이에 노회찬, 노회건 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매우 유복한 환경 가운데 태어나 문화적으로 풍부한 유년시절 속에 성장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4],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한다.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어필을 많이 해서 90년대 초반에는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첼로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고, 본인도 정치인으로서 인지도가 올라간 후에는 첼로에 대한 얘기를 꺼려하고 있다. 학창 시절 음악 뿐만 아니라 펜싱과 육상에 뛰어났다고 한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하여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5] 이 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다.[6]

중학생 시절의 모습

경기고 재학시절에는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다. 유인물을 만들어서 배포하는 일을 하며 이 시기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7][8] 이 시기 다양한 책을 접하며 함석헌, 선우휘, 백기완 등 재야인사들과 만나게 된다. 당시 경기고 동기 중에는 이종걸황교안이 있다. 황교안은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종걸 노회찬이 반독재 유인물을 뿌리고 다닌 걸 생각하면 참 대조적이다. 또 1년 선배로는 정두언 전 의원이 있다. 나중에 박근혜 정부 말기 탄핵 정국에 "황교안 대행과 고교 동창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입시에 낙방했다. 그는 곧바로 군대에 지원해 입대한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변혁이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고려대학교 재학 중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 등을 따서 용접공으로 현장 노동자들 틈으로 섞여들어가, 일명 '학출'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9]

노회찬은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죄로 수배되었다. 그는 꽤 긴 시간 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도망다녔다.

2.2. 노동운동가 시절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회찬은 인천,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들을 연합하여 인천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민노련)을 출범시키는 데 핵심 멤버로 활동한다. 이 조직은 당시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활동했으며,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인민노련은 당시 노동현장에 뿌리를 둔 조직 중 가장 전위적이고 가장 큰 조직이었다.

1989년, 인민노련 결성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다. 인민노련 멤버들은 이 당시 법정에서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 떳떳히 밝혀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당시의 공판 자료를 엮은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 #

인민노련은 기존의 민족해방파제헌의회파가 너무 교조주의적이고 이상론에 머물러있다며 보다 실질적인 노동계급 운동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인민노련은 현재 PD 계열의 원류로 평가된다.

3. 정치 경력

사실 노회찬의 정계입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9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이는 그가 속한 인민노련의 노선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90년대에 들어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도권으로 나와서 활동해야 한다고 노선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인민노련은 합법 정당 운동을 위해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 창당위원회로 전환하게 되고, 노회찬은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대표를 역임하게 된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는 95년 9월 24일, 또다른 진보정당운동세력인 민중정치연합[10] 과 결합하여 '진보정치연합'으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95년에는 '반3김'을 구호로 내세운 개혁적국민정당[11] 창당준비위에 가담했다. 이 정당은 그해 10월 창당하여 꼬마민주당과 결합하여 통합민주당을 이루었다. 노회찬 역시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였고, 강서 을을 지역구로 총선을 준비했지만 사면복권이 안 되어서 실패.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원외인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원외인사로 활동하던 노회찬은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였다. 유시민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 수명은 참으로 짧았지만, 이색적인 이력.

제도권 정치를 향한 노회찬의 발길은 진보정치연합의 대표로 권영길의 대선 출마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은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안착. 이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12]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2004년 총선 선거운동전까지는 노회찬은 일반시민에겐 무명에 가까운 진보인사 a 였는데, 당에서는 노회찬의 말빨을 아주 잘 알았는지 총선때 자주 있던 각종 토론 프로에 나오며 촌철살인과 함께 일명 대중을 웃기는 유머러스한 컨셉의 토론으로 단숨에 유명인이 되었다. 뉴스, 신문에서 노회찬에대해서 대서특필할정도로 노회찬 신드롬이 분것. 노회찬의 활약이 도움이 되어 원래 민주노동당 예상 비례당선권인 5-6번을 훌쩍 넘어 본인번호인 8번까지 당선이 되었다. 말그대로 스스로 멱살 잡구서 비례대표 득표율을 13%라는 경이적인 숫자로 끌어올리면서 본인도 당선된것. 당선 이후 대중적인 인지도의 유명 진보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NL-PD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초기의 공동 당대표를 역임하였다.

2010년엔 서울시장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이때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것 때문에 일부 야권 지지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13] 그러나 민주당도 성의있게 단일화 협상을 하지 않았음이 훗날 나꼼수에서 밝혀지는데, 이때 노회찬 의원이 게스트로 출연해 밝힌 바에 의하면 민주당 쪽에서 자신에게 선거기간 동안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고 토로하며 물러나려고해도 물러날 명분조차 안 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 부분에선 반성(?)한다는 모습. 무엇보다도 2년 전 선거 때는 도리어 노회찬이 민주당 때문에 패배한 것을 감안하면...[14]

만약 이때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여 오세훈 시장이 떨어졌다면 훗날 박원순 시장은 아마 역사에 없었을 것이다...

이후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밀고 나가다 결국 부결되면서 심상정, 조승수와 함께 당을 탈당했고,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치른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 국회의원을 지냈다.

3.1. 정의당 활동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때에 탈당하여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의 떡값검사(일명 떡검)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아내이자 노동운동가인 김지선 씨가 노원 병 지역에 출마했지만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4년부터 정의당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고정멤버로 출연했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 동작구 을 지역에 출마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이 4당이 후보 단일화로 막판까지 시끌벅적하였다. 통합진보당 후보가 노동당 김종철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하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동민 후보가 노회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해 마지막에는 나경원 VS 노회찬 VS 김종철의 3자 대결로 갔지만 결과는 노회찬 48.7%, 새누리당 나경원 49.9%로 나경원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때 김종철 후보 표를 합치면 50.1%가 되어 나경원 의원을 이길 수 있었다.

2015년 결선투표제로 치러진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1차 선거에서는 큰 표 차이로 1등을 차지했지만 2차 선거에서 심상정 의원에게 역전을 당해 낙선하였다. 당시에 상당수가 노회찬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덕분에 노회찬의 캠프 쪽에서 방심한 반면 심상정의 캠프에서는 필사적이었다고 한다.

3.2. 4.13 총선 준비 과정

2015년 11월 경에는 다시 서울시 노원구 병 지역구로 이사해 총선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현 의원, 그리고 새누리당 이준석 전 혁신위원장과의 3파전 양상이 예상되었다.[15][16]

그러던 중 창원 성산 출마설 기사가 나왔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84편에 따르면, 창원시 성산구의 경우 지역과 정의당 경남도당의 출마요청이 있어 고심을 하고 있었다. 또 같은 방송에 따르면 광주 광산구 출마 역시 요청 받고 있다고 힌다. 2016년 1월 30일 전국위에서 결국 창원 성산 출마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구에는 현역의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후보, 민주노총 소속의 손석형[17] 후보가 이미 있다. 국민의당 후보 출마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야권 단일화는 필수로 보인다. 허성무 후보는 이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손 후보와는 민주노총 지지 후보 투표로 단일화 투표가 진행 중이다. 두 번의 단일화와 본선거, 모두에서 승리하여야 당선되는 상황이라 매우 어렵다.

MBC경남의 여론조사에서는 야권 단일화를 이룰 경우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노회찬이 24.6%로 가장 앞섰다.#

2월 20일, 민주노총 단일화 후보 투표에서 승리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박빙의 승부였다고.#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가 3월 27~28일 양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후보와의 단일화 후보 투표에서 승리했다. 양측 합의로 조사결과는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2016년 4월 3일 선관위로부터 야권단일후보라는 홍보 문구를 지적 받았다. 아직 국민의당 후보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당일 선거 결과에서 51.5%로 여유있게 승리하며 당선됐다. 단일화 두 번과 본선에서까지 모두 승리하며 노회찬의 저력을 입증한 셈이다. 문젠 선거제도 안 고치면 4년 후 또 '본선보다 단일화가 더 어려웠어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

3.3. 제20대 국회 활동

당선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2016년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긴급현안질문에서 "속단하지 말라"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반론을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안 '지단遲斷'이라며 맞받아쳤다. #[18]

2017넌 1월 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발의자 중 한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해당 안은 성폭력 피해자에게로의 2차 가해를 막기위한 취지로 발의된 것이나, 성폭력 무고죄 고소를 성폭력 수사 종결 후로 미룬다는 부분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17년 1월 11일, 이명박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창당 시, 축하 인사 차 찾아와서 이재오에게 반갑게 인사한 다음 축사를 낭독하기도 했는데, 그가 이명박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좀 이례적이다. 하지만 노회찬은 과거에 이명박과도 인연이 있었으며,[19] 특히 이재오의 경우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 중 한 분이라고 언급했다. 거기다가 이명박과 노회찬 모두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 한편으로 이재오 또한 2013년 당시 안기부 X파일 문제로 노회찬이 의원직을 상실할 때안타까움을 표현했으며 그의 의원 상실직을 막고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발의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20] 거기다가 실용정부시절, 노회찬과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에서 탈퇴한 직후 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랑 창당 2년차 때,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내기까지 했다.[21]

2017년.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 투표 중 신 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이 여당 상대로 마구 항의를 했는데 그걸 조금 떨어진 곳에서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중계를 했다. 근데 이때 모습이 안 찍는 척 안 보면서 조 의원을 찍는 게 언론에 잡히면서 노 룩 라이브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중에 기자가 왜 안 보면서 찍었냐고 물으니 찍고는 싶었는데 보고 싶진 않았다고.

법원행정처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혼인무효소송 관련 판결문을 상대방 여성의 개인정보가 노출된 상태로 공식 요청을 받은지 불과 8분만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제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17년 5월 30일 정의당 원내대표직에 재신임되면서 1년을 더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 말고는 다 비례대표인 정의당의 상황을 감안하면 20대 국회 내내 원내대표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2017년 10월 19일 감사원국정감사에서 눕회찬을 선보였다. 박근혜가 자신이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UN 인권위에 제소한 걸 두고 자신이 직접 반박하려고 선보인 것이다. 일반 재소자들의 수용면적은 신문지 2장 반 크기인데 박근혜는 그보다 10배나 더 넓은 면적의 방에서 지내고 있으므로 인권 침해는커녕 오히려 분에 넘치는 특혜를 누리고 있음을 직접 신문지 2장 반 위에 누워서 몸으로 보여주었다.#

2017년 11월 24일 '사회적 참사법' 표결 불참으로 논란이 생겼다. 세월호 사고 및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이 날 본회의에서 통과했는데, 노회찬 의원은 이 표결에 불참했다. 게다가 노회찬은 당일 국회 구내식당에서 국수를 먹은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렸었다. 그래서 국회에 있으면서 왜 표결에는 불참했냐는 논란이 나왔다. 다음날 트위터에서 해명하였다. 요는 통과를 축하하는 잔치국수 인증샷이라는 것이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2,774,061 (13.3%)

당선 (8번)

[22]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진보신당

32,111 (40.1%)

낙선 (2위)

[23]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진보신당

143,459 (3.3%)

낙선 (3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통합진보당

52,270 (57.2%)

당선 (1위)

[24]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 을 국회의원)

정의당

37,382 (48.7%)

낙선 (2위)

[25]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성산)

정의당

61,897(51.5%)

당선 (1위)

낙선한 3번의 선거의 경우 사표론이 제기가 될 정도로 해당 선거의 1, 2위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그중에서 2010년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사표론으로 비난 받는 입장이었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와 2014년 재보궐 선거는 사표론을 주장해야되는 입장이었다.

역대 선거 벽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대 총선 (노원구 병)

5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19대 총선 (노원구 병)

상반기 재보선 (동작구 을)

20대 총선 (창원시 성산구)

}}}

여담으로 벽보가 따로 없는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모든 선거 벽보에 쓰인 사진이 다 똑같다.

5. 평가

정치 인생 내내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향을 지키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치판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대중주의적 정치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같은 정당의 심상정 조승수 등과 더불어 학생 운동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도권 정치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특히 노회찬은 원래 유복한 가정 출신이었는데도 고시나 인맥 등을 통해 입신양명에 치중하지 않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는데, 환경이 아니라 소신으로 형상한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장점과 더불어 운동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강성의 이미지 대신 소통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름 많은 풍파를 겪었음에도 유명세에 비해 비판이 비교적 적은 편. 2016년 메갈 문제로 정의당과 심상정이 한참 비난을 받았을 때에도 노회찬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다. 다만 그에 대한 비판이 적은 것은 기본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소수 정당에서만 활동하였으며 검증압박이 심한 대선이나 광역단체장의 유력후보가 된 적도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거 이력들이 많이 발굴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26]

한편 나름 유명 정치인이 되었음에도 주류정당에 편입되지 않고 계속 진보성향의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소신과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고 호평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2000년대 이후 민주당 등의 중도성향의 정당과 정치적 지향성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졌는데도 분파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성격이나 성향 측면에서 봐도 진보 정당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정당에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다.[27][28] 반면,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범용성과 확장성이 높은 면은 오히려 그와 노회찬 본인이 속해있으면서 당의 중진 중 한 명이기도 한 정의당이 외연을 넓히기 좋은 장점이기도 하다.

진보신당 창당 당시에는 사민주의 우파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이는 사민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친NL계 민중의소리에서의 평가라 걸러들을 여지가 있다.

언변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한데, 같은 정당 소속인 유시민 못지 않게 뛰어난 말솜씨를 자랑한다. 도리어 어떤 경우에는 유시민도 능가하는 언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시민이 보수 계열 정당의 정치인 중 토론 상대로 가장 좋은 상대로 꼽은 인물이 박형준과 유승민으로 모두 정계 인물 중 뛰어난 토론 실력으로 유명한데, 노회찬은 그 박형준을 상대로 맹공을 퍼부어서 잠시 쩔쩔매게 한 적까지 있다.(...) 다만 말하는 스타일은 두 사람이 전혀 다른데, 유시민이 뛰어난 논리력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안에 대해 분석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노회찬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비유와 풍자를 통해 복잡한 사안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노르가즘 이 때문에 김어준 총수는 "홍준표와 토론에서 다이다이(...)를 떠서 상대가 될 만한 정치인은 역대급으로 뽑아도 한 손을 채우지 못하지만, 노회찬 의원은 능히 상대가 될 만하다"고 평했다. 홍준표의 토론 스타일은 논리 대신 강한 어휘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이기에 논리로 상대하려다가는 도리어 말려들기 십상이지만, 노회찬 의원의 언변이라면 그것마저 받아치는 게 가능하다고 본 듯. 글쎄 19대 대선 토론보면 딱히 그런거 같지도 않은데 그야 뭐 대선 땐 사람이 맛이 가니까또한 특유의 유머감각과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있어서 일단 그가 방송에 출연하면 민감한 사안에서도 험악하거나 민망한 분위기가 잘 연출되지 않으며 항상 최소한의 재미가 보장된다. 여담으로 노회찬이 100분토론에서 손석희에게 대놓고 노안과 나이 인증을 강제로 당했다.(...) 이런 능력 덕분에 정치인 노회찬은 단순히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을 넘어 대중적인 인기도 높아졌다.

박근혜 정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으로 통진당 세력이 무너진 후, 노회찬과 심상정이 이끌고 있는 정의당이 사실상 진보세력의 원내 입성을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 버렸다. 정의당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름의 입지와 지지도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존 주류정당의 대안으로까지 부상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 원인으로 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특유의 진보성을 구축하는 대신 대중성에만 치중하다가 진보정당 특유의 선명함이 많이 퇴색하고 기성정당과의 차별성이 모호해진 점, 노회찬/심상정/유시민 등 소수의 스타 정치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고 인재 영입이나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2016년 현재 이들도 이미 환갑 줄에 들어섰기 때문에 빨리 지명도와 자질을 갖춘 후배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마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진보세력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당 수뇌부에 젊은 당원들을 기용하는 등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다.

6. 어록

촌철살인 비유

언어의 연금술사

기본적으로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화법을 구사하지만 그 속엔 촌철살인의 의미가 숨어있어 진보 진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으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수많은 진보논객 중 2017년 시점에서 유일하게 원내에 들어있는 현직 국회의원이고, 그 안에서도 기회만 되면 유머러스한 드립을 치는 유일한 사람이다. 실제로도 시종일관 어둡고 권위주의적인 여의도 정치판에서 여전히 독보적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회찬에게 감탄하는건 역시 비유실력. 하나의 대답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쉬운 비유를 바로 탁탁 내보내는 능력은 감히 적수가 없을 정도.

이런 말솜씨 덕분에 각종 방송이나 토론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요청을 많이 받는다. TV 토론프로그램에 노회찬이 출연하면 꿀잼 확정 특히 언론인 김어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어준이 진행하는 파파이스뉴스공장그리고 블랙하우스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여러 어록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거기다가 이명박 前 대통령이 적폐청산에 불만을 나타내는 페이스북 글을 게시하자, 노회찬은 그 글을 페러디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민주 의원님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꺼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2004년, KBS 심야토론에서.

"우리가 이 정권을 그대로 두면 집이 무너집니다. 대한민국이 망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망가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고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수가 없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때까지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번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끝장 내야 됩니다! 정권 서울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경기도에서, 다시 빼앗아 옵시다! 여러분!"

2010년 서울역광장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규탄 시위를 하는 중#

"한 달 내로, 지금으로부터 한 달 내로 정봉주의원 사면복권 안 시키면 바로 그 자리이명박 대통령 집어넣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구해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2월 이명박 前 대통령에게 직접 고발당한 정봉주가 교도소에 수감돼자 정봉주를 사면시킬 것을 요구하며#

정옥임: 야권 연대면 당을 통합하든가 하지 같은 당도 아니면서 왜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죠?

노회찬: '같으면 통합을 해야 하는데 다르기 때문에 연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요, 우리나라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2년, SBS 시사토론에서 #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 균이 나를 속였다, 대장균 단독범행"이라고 얘기하는 격"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 관련해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을 때 했던 말.

"학교 앞에 즐겨다니던 분식집 사장에 소환되니까 수업을 거부한 것"

고용노동부김장겸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이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을 때 했던 말.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에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거나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2017년 9월 2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공수처 신설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그러니까 탄핵당했지. 이 사람아."#

2018년 1월 2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게.#

김성태: 정책 보복하지 마세요. 4대강도 이미 20조를 넘게 쓴 사업인데 지금 와서 그걸 철거하고, 물을 빼는 게 잘하는 일입니까?

노회찬: 네.

김성태: 에?

(청중 웃음)#

2018년 1월 2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게.#

Q. 적폐를 청소하는 것이 정치보복은 아니다라는 말씀이죠?

A. 그렇죠. 청소할때는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까?

JTBC 소셜라이브 인터뷰 中

7. 기타

  • 손석희 앵커, 박원순 서울시장 등과 동갑이다. 해당 영상은 100분 토론 손석희 앵커 하차 특집 때 나온 것으로, 손석희 앵커의 지나친 동안 때문에 노회찬 의원은 졸지에 노안이 돼 버렸다. 게다가 홍의락 의원이 노회찬보다 나이가 1살 많은데, 동안이라 같이 있으면 노안으로 보일 정도.
  • 정의당의 개그 페이지 정의당 X-File의 이름은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운영자 중의 한 사람이 전직 노회찬 대학생 팬클럽 회장이었을 정도로 노회찬을 좋아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인기를 끈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수요일 고정 패널로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당초에 이 코너는 임시로 설정된 것인데, 일단 시도해 봤다가 큰 인기를 끌면서 고정적인 코너로 정착되었다. 이 코너의 이름은 오랫동안 정해지지 않고 있다가 2017년 5월 이후 노회찬의 이름에서 유래한 '노르가즘'으로 확정되었다. 시국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촌철살인의 비유, 그러면서도 유쾌함과 웃음을 잃지 않는 컨셉 덕분에 국민 대다수의 기분과 생각을 대변해주는 코너로 자리잡았다. 이 코너에서 논의된 노회찬과 김어준의 대화는 상당수의 언론에서 그대로 기사화되서 내보낼 정도로 임팩트가 높다. 기본적으로 노회찬이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치인이었다면 절대 이 코너가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 중요한 정치적 선택들을 함께 취해왔기 때문에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 심상정과의 커플링(...)이 꽤 오래 회자되었던 듯 하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배우자가 있다. 심상정은 실제로 둘이 진짜 부부인 줄 알았다는 시민도 만난 적이 있다고. 심상정과 노회찬은 오랜 경쟁자 관계이기도 하다. NL에게 발리던 과거를 만회하기 위해 조직과 강한 리더십을 강조하는 심상정과 개인기의 비중이 강한 노회찬은 여러모로 대조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동지이자 라이벌인 셈이다. 참고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2015년 당대표 선거할 적 유세 겸 심상정 의원이 노유진의 정치까페에 나와 한번 다루기도 했는데, 확실히 가까운 유대감을 느끼긴 하는 것 같다.
  • 원래 친노 계열로, 후일 노회찬, 심상정과 합류하게 되는 유시민과도 친해졌고, 지금도 상당한 친분이 있어, 노유진의 정치카페 및 정의당에서 행적을 같이 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 시절, 정봉주수감되었을 때, 정봉주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1달 내로 정봉주를 사면복권시키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 이명박을 집어넣겠다"고 연설하기도 했다(...).[31]
  • '투캅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및 탤런트 박중훈이 '회찬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상당히 친한 사이다.[32] 그래서 박중훈이 노원역에서 노회찬의 선거 유세를 도와주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다. 박중훈은 개인적으로 노회찬을 "참 좋은 형"이라고 호평한다고 한다. 또한 노원구 병 국회의원 시절 삼성 관련 폭로에서 벌금형을 받아 국회의원직이 박탈된 적도 있으나, 노원구와의 인연이 매우 깊은 정치인으로, 맹형규법이나 다른 법에 걸리지 않았다면, 노원구에 출마하려 했고,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노원구에 출마하려 했으나 권영길의 지역구였던 창원이 걸려있어, 권영길이 노회찬에게 창원 지역구 출마를 요청해서 창원에 출마한 것이라 한다. 실제로 현재 잠시 창원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주거지와 주 활동 장소가 모두 노원구이기도 했다.[33]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홍정욱 후보에 밀려 노원구 병에서 낙선했을 때, 2년 뒤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낙선했고, 무상급식 문제로 오세훈이 사퇴한 직후,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당시 광고 해당 사진

  • 지지자를 '자x'라고 오타를 낸 적이 있다(...) .
  • 2017년 3월부터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수요일 고정 인터뷰이로 출연하고 있는데, 특유의 명쾌한 분석과 촌철살인의 비유 덕분에 뉴스공장의 인기몰이에 한 몫 하고 있다. 원래 이 코너는 이름이 없다가 '(노회찬의) 노르가즘'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 2017년 현재도 촌철살인은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해 확연히 말투가 어눌해졌는데, 이제 만 61세밖에 안 되었으므로 나이 탓으로 보기는 어렵고 "알려지지 않은 지병 탓에 약간 쇠약해져서 그런 게 아니냐"는 견해의 추측이 있다. 무엇보다 감정표현이 다채로웠던 예년에 비해 표정이 단조로워진 경향이 농후해 이런 의문이 나오는 편.
  •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2001년 4월 6일, 음주운전으로 인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과 상당히 닮았다.
  • 손석희가 진행하는 토론에 많이 나와서 그런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내가 진행하고 손석희가 토론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손석희가 말하면, 자신이 전부 "짧게 해달라"며 말을 끊을거라고.
  • 광화문 광장에 박정희 동상 설치를 조건부로 찬성한 적이 있다. 지하 100m에 지어서 모두가 밟도록 하면 찬성하겠다고(...)
  • 2018년 4월 5일, 제 7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창원시장 선거연대를 언급했다. 문제는 창원시장에 20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노회찬과의 선거연대를 거부하다가 당지도부의 설득으로 노회찬과 단일화 경선을 치렀다 패배하여 후보를 사퇴한 허성무 역시 창원시장에 후보신청을 한 상태이다. 악연이라고 해야할지.....

8. 둘러보기


  1. [1] 의원직 상실
  2. [2] 출처
  3. [3] 정의당 초선 비례대표 4명
  4. [4] 이경규와 같은 학교 출신이며 냄비받침에서 만났다.
  5. [5] 당시에는 명문고 입시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중학교 4학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족이지만 그가 재수해서 들어간 해는 고교평준화 이전 마지막 입시였다.
  6. [6] 그래서인지 현재 노회찬의 말투를 들어보면 거의 사투리가 사라져 있다.
  7. [7] 1970년대까지는 고등학생들이 반체제 투쟁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이 당시에는 데모하다 학교를 잘려서 검정고시 쳐서 대학에 진학한 케이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8. [8] 노회찬 의원이 이런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모 TV프로에서 직접 얘기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의문점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9. [9] 70년대에는 전태일의 분신자살로 큰 충격을 받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던지고 용접이나 선반공 자격증을 따서 현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학생 출신'이라 하여 '학출'이라 불렀다. 여담으로 이쪽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지금은 노동자 인권은커녕 도지삽니다 사건으로 일명 꼰대로 낙인찍혀버린 김문수였다.
  10. [10] 현재 존재하는 민중정치연합과는 다른 또 다른 PD계열의 단체이다. 후일 민노당의 초기 건설에 추축이 된다
  11. [11] 현재는 새누리당에 있는 정태근, 그리고 국민의당에 속한 김성식도 이 정당 출신이다. '제3의 정치세력'을 표방했지만, 진보정당이라기보다는 현재 국민의당과 가까운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었다. 이들은 이회창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실패. 그 뒤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12. [12] 비례대표 8번이었다. 그리고 자민련의 비례 득표율이 0.2%만 높았어도 그는 낙선이었다. 참고로 0.2%가 모자라 낙선한 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은 김종필.(...) 참고로 이때 충격먹은 김종필은 정계은퇴한다.
  13. [13]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불과 0.6%차로 이겼는데, 노회찬이 가져간 표가 3%대였다. 물론 이 3%는 진보정당 쪽 고정지지층의 성격이 강했고 진보정당 지지자도 한명숙 쪽으로 몰표를 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실제 노회찬 표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회찬 의원은 '내가 투명인간이냐?'면서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4. [14] 당시 노회찬은 노원 병에 출마했는데,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와의 표차가 2000여 표였던 반면 민주당 후보가 가져간 표만 13000여 표였다.(...) 참고로 이때 민주당 후보는 2년 후 노원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그 다음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한 김성환.
  15. [15] 결론적으로는, 노후보 대신 더민주의 이동학 예비후보가 나와 3파전이 되었다. 정의당에서는 주희준 후보가 예비등록을 하긴 하였으나, 당선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다.
  16. [16] 참고로 이시기 노회찬 의원은 범야권후보면서 자기 지역구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으나, 이후 원내대표가 되면서 안 의원과 일부 정책연대도 하는걸 보면 어느 정도는 섭섭함을 털어버린 것 같다.
  17. [17] (구)통합진보당, (현)무소속. 19대 총선에는 48%로 석패하였다.
  18. [18] 훗날 유시민이 썰전에서 프랑스 축구선수를 말했다고 드립을 쳤다.
  19. [19] 이명박은 운동권 경력도 있는데다 이재오와 매우 가까운지라,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재오를 통해서도 노회찬, 심상정과의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듯. 실제로 이명박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심상정을 찾아가서 인사하기도 했었다.
  20. [20] 사실 정치적 성향이 상극이어도 인간적으로는 절친한 경우가 제법 많은데, 일례로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기정 전 의원이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때 강기정 의원이 눈물을 쏟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발언을 마무리하자 사회를 보던 정갑윤 부의장이 "나는 강 의원과 매우 각별한 사이다. 다음에 또 국회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는 말로 애정을 드러냈을 정도. 평소의 언행을 생각하면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다.
  21. [21] 진보신당계에 속해 있는 노회찬, 심상정의 경우 예전부터 이명박과 친분이 있었던 점이 있어 이명박이 직접 축하 의사표현을 했던 듯 하다. 또한 이명박은 민주노동당과는 인연이 전혀 없었지만,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만든 진보신당에는 창당 2년차 행사 때에까지 직접 대통령 명의로 된 축하 화환을 보내준 것을 보면 이들과는 다소 친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이명박의 동반자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마찬가지로 노회찬, 심상정과 친분이 있는 이재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22. [22] 2008.2.11 의원직 상실 (민주노동당 탈당에 따른 자동상실)
  23. [23] 홍정욱 당선
  24. [24] 2012년 진보정의당으로 당적변경, 2013년 2월 피선거권 상실
  25. [25] 전임자 정몽준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인해 사퇴.
  26. [26]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한명숙 2파전 양상이었기 때문에 노회찬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27. [27] 심상정도 강성 세력으로부터 진보정당들을 우경화 시켰다고 평가받는 마당에 그보다 우측에 있다고 평가받는 노회찬은 말할 필요도 없다.
  28. [28]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의 범용성이 어느 정도냐면, 노회찬의 경우 중도보수 성향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문제없는 수준이다. 정의당 내에서도 대중지향적인 성향의 참여계와 발맞춤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훨씬 온건한 스타일이라는 것.
  29. [29] 아이폰은 보안적인 측면에서 다른 스마트폰들 보다는 낫기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이 애용한다. 그리고 노회찬과 삼성의 악연을 생각해보면 갤럭시는 절대 쓰지 않을 것 같다.
  30. [30]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잘 실천하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진박이라 표현해 지지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31. [31] 정봉주는 노원구 출생이고, 노회찬도 현재 창원의 국회의원으로 가기 전까지는 노원 쪽에서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런 연유인지 정봉주와도 어느정도 친분이 있었던 듯 하다. 실제로 노회찬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국회에서 정봉주 사면복권 관련 기자회견 및 청원에 참여했다.
  32. [32] 다른 예로는 유인촌과 친한 이명박이 있다.
  33. [33] 특히 노회찬이 운영하던 씽크탱크 명칭도'마들연구소' 였다.
  34. [34] 가끔씩 회자되는 유시민의 조니 뎁 분장도 해당 광고이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