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상위 문서: 산업

1차산업

농업

(축산업)

임업

수산업

農業 / Agriculture

세계 각국의 농업생산량이 변하는 모습 .

1. 개요
2. 역사
2.1. 현대
3. 부작용
3.1. 그럼 대체 왜?
4. 분류
5. 관련 문서
5.1. 생산 시설
5.2. 작물
5.2.1. 원예작물
5.3. 농자재
5.3.1. 농기계·기구
5.4. 관련 정책 및 농업 관련 시설
5.5. 기타
6. 농업(교과)

1. 개요

확실한 소득이 보장되는 직업 가운데 가장 좋은 직업이 바로 농사다.

농사보다 더 생산적이면서 즐겁고 자유인에게 적합한 일은 없다.

- 키케로

경작지가 생기는 곳에 다른 기술과 예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농부야말로 바로 인간 문명의 선구자이다.

- 대니엘 웹스터

農者天下之大本 (농자천하지대본)

- 농업(農業)은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根本)이라는 뜻이다.

농사라고도 부르며 땅에 작물의 씨앗을 뿌려 그곳에서 자란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를 수확 혹은 가축을 길러 먹고 사는 일을 일컫는다.가축은 축산업으로 분리되었다 농업은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대표적인 1차 산업이며, 인류가 현재까지의 문명을 이루게 해준 1등 공신이다. 때문에 농업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도 빤스만 입고 오른손에 돌멩이를 들고 사자호랑이같은 맹수들과 같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며 다니거나, 숲 속의 열매를 따먹고 살았을 것이다. 인류의 식단을 탄수화물 위주로 바꾼 일등공신.

물론 후술하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생기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제법 괜찮게 이어지고 있는 편이다. 게다가 농업을 택한 것 자체가 인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면도 있다.

인류진화에서 도구를 사용한 이후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지금껏 지구상에서 농업을 하는 동물인류와 가위 개미[1] 정도.

2. 역사

흑점토를 구워서 만든 수메르의 돌 낫(기원전 3000년전 추정).

기원전 9050년전 레반트 지역(지금의 시리아 부근)에서 인류 최초의 농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텔 아부 흐레야(Tell Abu Hureyra、تل أبو هريرة)유적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세계 4대 문명을 거쳐 농업은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을 먹여 살리는 중요한 1차 산업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여담으로 마빈 해리스의 문화 3부작에 따르면 농업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 이전에도 화전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였으며, 수렵을 하며 떠도는 호주 원주민에게서도 비슷한 양태를 볼 수 있다 한다. 농업이 인류의 혁명을 일으키게 된 계기는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상당한 동물 종들이 대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멸종당해 농업이 인류 살기 위한 업이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혼자보단 여럿이 모여 품앗이하는 게 편해 집단(마을)으로 발전, 왕따 역시 이 시기에 최초로 생겨났다.[2][3][4] 이후 이러한 농업 개념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인구 또한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5] 동시에 소수의 권력층이 잉여 생산물을 축적하면서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에 따라 여성도 부계 안에 포함, 동시에 상대의 재산을 약탈해 편히 살려고 무리나 부족간 전쟁이 발발, 군사 조직과 더불어 국가의 기틀도 짜여졌다.

다만 최근에 발견되어 연구되는플라이스토세시기에 건설된 거석문명유적인 괴베클리 테페와 그 근방의 근시대, 후대의 유적 연구로 인해서 먼저 종교가 있었고, 그 종교를 위한 유적을 세우고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체계화된 작업을 했고, 그 모인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나서 먹고 살기 위해서 도구의 발전과 농업이 생겨났다는 기존의 학설과 거꾸로 돌아가는 고고학적 발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항목 참조.

경우에 따라 원예농경(Horticulturalism), 원시농경, 산업농경, 현대의 집약적 농경으로 나뉘기도 한다. 점차적으로 더 많은 기술과 도구, 비료 등을 활용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정작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1. 현대

현재 기준으로 이런저런 면을 고려하면 이쪽의 왕중왕미국.

캔자스 주에 있는 경작지. 보이는 건 길과 농작지 뿐이다.(...)

마인크래프트 MARPAT

미네소타 주의 경작지. 흰색 도시부분을 빼고 전부 밭이다. [6]

미국은 농지가 너무나도 넓기 때문에 비행기로 농약을 뿌린다. 미국은 세계에서도 제일 가는 기름진 토양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데[7]이 토지를 농업에 이용하는 면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중국이나 인도 공화국에 비하면 미국의 농작물 생산량은 적은 편이지만, 앞의 두 나라는 국내 소비가 많기 때문에[8]농산물 수출에서는 미국을 따라올 자가 없다.

대부분 식품에 반드시 들어가는 옥수수를 예로 들자면,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2009년 기준 333,010,910톤이고 2위인 중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163,118,097톤이다. 하지만 중국의 옥수수가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되는데 비해, 미국은 자국소비량을 제외하고 전부 수출하는데 그 양이 전세계 옥수수의 약 40%이다!!

즉 미국이 갑작스럽게 옥수수의 수출을 중지해버리는 순간, 옥수수 값이 폭등하는 것은 물론이요, 식량자급률이 낮아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일부 선진국들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물론 거래되는 옥수수는 사실 대부분 사료용이나 식품가공용으로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옥수수가 없으면 사람은 다른걸 먹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일단 대한민국은 그나마 자급률이 높아서 주구장창 쌀밥만 퍼먹어도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일단 당장 가축들의 사료도 전부 옥수수고[9], 대부분의 식품첨가물 표지만 봐도 옥수수가 안들어가는 곳이 없다.[10]

한국의 농업의 가장 큰 한계는 규모 문제로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전국 경지면적이 국토의 17% 정도로 17,000㎢ 정도여서 유럽 상당수 국가는 국토의 25~35%가 경지로 활용되는 것과 대비된다. 때문에 전체 경지 면적이 넘사벽으로 적은 편이다. 프랑스, 독일은 경지 면적이 남한 전체 넓이보다 넓고 그 외에도 영국 61,070㎢, 네덜란드 10,790㎢에 달한다. 역시 국토 대비 경지 비율이 10% 대인 미국, 중국 등은 전체 넓이가 넘사벽. 다만 일본도 국토 대비 경지 비율이 12%로 높은 인구 밀도와 맞물려 한국과 마찬가지인 낮은 식량자급률로 나타나고 있다.[11] 쓸모있는 땅은 적은데 비해, 농업인구 비중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농업 인구가 6%로 아직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따라서 농업인구 대비 농지면적은 선진국 중에서는 최저 수준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농지를 용도 전용하여 도시화 및 공단 용도로 전환하면서 경작지는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서해안의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으로 경지면적을 보충했지만 환경파괴 문제로 이것도 한계에 달한 상태다.

1994년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은 0.39ha로 세계 115위, OECD 27위 수준이었으며 2010년에는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 0.73ha로 증가 했으나 미국 32.08ha, 프랑스 14.08ha에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고 심지어 일본 1.59ha와 비교해도 절반에 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다만, 공업에서는 분업과 규모의 경제가 효율성을 높이므로 '좁은 농토에 상대적으로 많은 농업인구 때문에 소농 비율이 높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들어가는 높은 비용을 무시한다면 면적당 생산량은 소농이 더 높다. 중장비는 흙을 눌러서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뿌리 뻗는 게 힘들어지고, 공기 비율도 줄어 뿌리가 호흡하기도 곤란해진다. 또한, 화학비료는 토양을 산성화시켜 유익한 미생물을 죽이고 영양분 이용을 어렵게 만든다. 식물은 적당한 pH에서만 [12]이온 [13]을 흡수할 수 있다. 농업은 원래 미생물이 주 역할을 하고 인간이 토양구조를 만들어 유익한 미생물을 골라 지원하는 구조인데 농약을 뿌리면 미생물이 다 죽어서 나중에는 생산량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어찌되었든 기계화된 대규모 농업이 우위다. 소규모 농업은 노동집약적으로 인건비의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고 최종 가격에서 생산, 유통비용의 비중이 높은 고비용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유럽, 북미의 대규모 농업이 한국보다 인건비가 비싼 지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임에도 더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위해 정부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기업농을 육성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으나 사회구조적 부분을 손보는 것이라 단기간에 변화하기는 어렵다.

농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그나마 농업 인구가 20%에 가까웠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정치권에서 농민 표를 의식했지만, 농업 인구가 6%대로 떨어진 지금은 약간 소홀한 편이 있다. 우리나라의 국토 상황과 인구 밀도상 우리나라가 농업국가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비슷한 문화와 큰 내수 시장을 가진 일본중국에 대한 수출을 모색하고 있으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뚜렷한 성과는 없으며 한류등의 영향으로 농산물및 가공식품이 수출이 2004년 17억달러에서 2014년 52억 2천만 달러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라면이나 고추장을 포함한 것이다. 특히 라면이 일등공신. (2016년에 전년 대비 68.1%)

한때 미국과 맞장을 뜨던 초강대국 소련이 몰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도 바로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농업 자급력일 정도로[14] 농업은 중요하다. 게다가 미국의 다국적 농기업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수집 혹은 M&A로 인수한 기업들의 DB에서 파생된 종자들을 국제적 특허로 등재시켜 특허비를, 게다가 종자 자체를 한 해 농사만 지을 수 있게 마개조 [15]해 좋든 싫든 종자를 계속 사게 만드는 이른바 '종자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청양고추.

3. 부작용

간혹 식자들 중에 농업이 인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농업 혁명이 채택된 이래 인류는 더 좋은 인구부양력을 바탕으로 큰 사회를 이룩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개개인의 영양상태 면에서는 채집 수렵 시절에 비해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 그외에도 다음의 문제들을 새롭게 떠안게 되었고 이와 같은 문제들은 거의 근대 혹은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거나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평균 신장이 감소했다.
  •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바뀌면서 비만이 생겨났다.[16]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훨씬 초라하고 영양학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식이생활을 했다.[17]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빈혈을 더 많이 앓게 되었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전염병의 확산에 더 취약해졌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여가 시간이 감소하였다.
  • 충치와 같은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 불평등한 계급 사회가 형성되었고 이와 함께 지배계급[18]부익부 빈익빈이 출현했다.
  • 강우량, 질병으로 인해 흉작이 되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된다.[19]
  • 농업은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더욱 활발해졌다.[20]
  • 집단주의가 강해졌다.[21]
  • 저장한 곡식은 화재와 수해, 곤충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장기간의 정착과 군집생활로 인해 질병이 만연하였을 것이다.

3.1. 그럼 대체 왜?

이처럼 한계점이 넘쳐나는데도 이상한 것은, 1만년 전의 인류는 어떻게든 농경을 시작하고 확산시켰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시작으로 황하 등의 전세계 (적어도) 12개소 이상의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농경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농업 사회와 수렵 채집 사회가 공존했던 지역에서는, 일부 수렵민들도 자기들끼리 나름대로 작물을 재배해보려고 노력한 흔적까지 발견된다고 하니, 당대에 농업은 확실히 첨단 기술로 여겨졌던 듯.

농업의 기원에 있어서 어째서 당시 사람들이 농업을 이처럼 좋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말끔하게 해결되지는 못한 문제이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의 설득력 있는 학설들이 존재한다.

  • 당시의 환경 자체가 농업을 강제하고 있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대형동물들이 줄어들었으며 여기에 인류가 가세하면서 대부분 멸종해버렸다 이것은 인류의 입장에서도 심각한 자원고갈 문제가 되었다. 결국 인류는 당시 새롭게 발견되던 아몬드 등을 포함한 몇몇 식물종들에 관심을 돌렸고, 곡물을 인류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실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몇몇 야생 짐승들을 길들이려는 시도로 축산업이 탄생한 것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농경과 목축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진작에 메갈로돈처럼 먹을 식량이 없어져서 멸종했을지도 모른다.[22]

  • 곡물의 뛰어난 저장성

식량의 보관 문제는 냉장고가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했다. 고기나 과일은 금방 상해버리고, 염장이나 훈제 같은 저장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빨리 먹어버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빼려고 노력하는 뱃살이 당시에는 유일한 에너지 저장방법이었다[23]. 하지만 곡물은 씨앗의 '휴면' 개념을 이용하면 훨씬 오래 보관 할 수 있으며 인류에게 안정적인 식량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다. 대신 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 농업은 개인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집단이나 사회의 차원에서는 확실히 유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개인의 불행을 감수하면서 사회의 생존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로 인생의 질곡들이 나타나기는 했어도 정착을 통한 출산율의 증가, 막대한 인구밀도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 더욱 고도화하는 정치 시스템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의사결정의 신속성, 이동거리도 짧아지고 상대적으로 정착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녀들을 낳는 등 사회적 차원에서 굉장한 강점이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보면 그 사회에게 농업의 혜택 자체가 매력적이었다는 것.

농경에 발생에 대한 가설들은 환경과 인구의 압력에 관련된게 주류이다. 과거 수렵채집의 방식으로 환경의 변화나 인구 압력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이 과정에서 수렵채집이 주 활동이고 농경은 부수적인 활동이었던 시기가 있었다.[24]

  • 무엇보다도 농업을 시작한 집단이 무력으로 수렵채집하는 집단을 밀어내거나 흡수했다.

개개인의 행복도는 떨어지고 영양상태도 안 좋아졌지만 어찌됐든 농업을 시작한 부족 및 사회는 머릿수에서 수렵채집인들을 누를 수 있었고 따라서 무력으로 수렵채집인들을 몰아내거나 노예 등으로 흡수가 가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의 수렵채집인들도 안 밀려나기 위해 똑같이 머릿수 늘리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래는 근동지방에서의 농경 출현에 대한 가설들을 제시한 것이다. 찰스 R.레드만의 <문명의 발생>에서 나온 내용이며 책의 내용이 어렵기도하고 40년전에 나온 책이 40년 사이의 갭이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을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첫째, 근동지방은 식량의 생산과 도시의 형성이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고 여겨지고있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서구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근동지방에 대해 다룬다. 둘째는 '가설'은 '가설'일 뿐이란 것이다. 가설은 연구를 통해 한가지 완결된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근동지방에서 이런 양상을 띄었을 것이다'는 아이디어 제출이지 정말로 그랬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니다.

  • 오아시스 가설

차일드의 오아시스 가설에 따르면, 최후 빙하기 끝무렵, 그러니까 기원전 10000년경에 빙하의 후퇴로 근동지방의 기후가 냉량습윤에서 고온 건조로 변화하게 됨에 따라 인간과 동물은 항상 물이 공급되는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식물은 물의 공급이 가능한 곳에 계속 밀집분포하였다. 인간이 동식물이 근접한 곳에 살게 됨으로써, 이들은 동식물의 행위와 연차적인 주기(life style)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두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는, 강물에 의한 자연관개는 곡물들이 밀집해서 자라도록 하였고[25] 이로써 낟알들을 싣고 거두는데서 인간과의 공생관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추수밭의 그루터기들이 동물들을 유인[26]하였고 이걸로 통해 동물들을 다른 동물로부터 보호하고 메마른 기간에 먹이를 줌으로써 인간과의 공생관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27]

다만, 차일드가 말한 오아시스 가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사람들이 잘 따르지않는다. 차일드가 상정한 정도의 급격한 기후변화가 실재하였는지, 중요한 문화적 혁신이 과연 기후변화와 동시에 발생하였는지, 차일드가 상정한 지역에서 최초 농경의 증거가 나타날 것인가가 문제이다.

  • 핵심지구 가설

로버트 브레이드우드가 말한 핵심지구(nuclear zone) 가설의 기본 전제인 핵심지구란 최후 빙하기 말에 근동지방에서 개량의 잠재성이 있는 동식물의 야생종이 집중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그의 발굴단의 작업으로 과거 1만 2천 년 동안 근동지방에서 급격한 기후변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서식지구는 오늘날 동식물들이 야생상태로 분포하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한된 지역에 재배종들의 야생 선조가 존재하였다.(기후가 유사해 오늘날과 분포지는 비슷) 식물을 이용하고 동물을 능률적으로 잡기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지역 정착의 시기에선 영구적인 공동체, 노동과 도구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기술의 발전과 식량자원의 확대는 이전에 비해 이동에 소모되는 시간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인간이 제한된 지역에 정착하면서 동식물들을 이전보다 좀더 세밀하게 관찰할 기회를 갖게되었다. 따라서 인간과 재배 가능종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발달하고 식용가능 자원의 실험기간으로 최초의 농사실습이 이루어졌다. 이후 농사짓는 것을 잘 하는 농경촌락 공동체가 확립되었다.

핵심지구 가설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 가설이 농경의 개시에 대해 아직 설명되지 않은 인간의 독창적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경이 하필이면 이 시기에 발생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가 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다만, 핵심지구 가설은 이후 연구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리고, 초기 농경의 증거를 보여주는 몇몇 유적들은 브레이드우드의 자연서식지구로 설명하기에는 고도가 너무 높거나 낮은 곳에서 발견된 바가 있다. 따라서 브레이드우드 발굴단이 제시한 정보들은 근동지방의 최후 빙하기 말에 급격한 기후변동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즉, 근동지방 또는 이보다 넓은 지역이 기원전 9000년 이전에는 현재보다 춥고 건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후변화 양상은 차일드가 제시한 것은 매우 상이해서 오아시스 가설의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 신 기후변화 가설

자그로스 산맥의 다양한 지형과 자원이 동물과 사냥꾼을 유인하였다. 홍적세[28] 말기에 기후는 점차 덥고 습해졌고 이에 따라 곡물들은 자그로스 지역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겨울철이 그다지 혹독하게 춥지 않게 돼 동굴에서 개활지로 옮겨갔으며, 동물들은 자그로스 지역에 남았다. 자그로스 산맥에서 식물자원 이동과 이에 따른 환경의 압력으로 야생종의 이종교배가 활발해졌고, 이들 중 일부는 농경에 매우 적합했다. 볕 잘 드는 지저분한 지역에서 최초의 곡물이 자라나고, 개활지에서의정착이 사냥꾼들로 하여금 양이나 애완동물, 식용가능 동물들을 지키게하였다.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농사와 가축기르기로 발전하였다.

최후 빙하기 말에 발생하는 기후의 변화 이후에야 사육에 적합한 동식물과 가까이에서 인간이 서식하게 되었다는 연구결과의 이용여부가 신 기후변화 가설과 핵심지구 가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신 기후변화 가설은 홍적세 말에 농경이 개시되는 생태학적인 근거는 밝히고 있지만 이런한 발전을 자극하는 문화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후의 변화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야생 동식물의 분포에 얼마 만큼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해서도 반론이 많이 제기되었다.

  • 인구압 가설

에스터 보스럽은 맬서스와는 달리 인구의 성장이 자체적 독립적으로 다양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고, 농경기술과 생산성 변화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식량생산 기술과 농경체계의 변화는 더욱 많은 생산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식량공급에서의 인구압 증가에서 기인한다는 것.

필립 스미스와 커일러 영 2세는 이러한 견해를 채택해 농경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가설을 구성했다. 기후가 좋아지는 데에 따라 식량공급이 충분해지자 홍적세 말기의 인구증가로 이어졌고, 집약적인 식량 생산(식물로의 전환)에 필요한 정착이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인구증가가 계속되었고, 식량 공급 증가의 필요성으로 인해 곡물의 밀집 장소를 인위적으로 늘려갔다. 그래도 늘어나는 인구로 휴경기간을 짧게 하고 기술을 증진시켜 집약농사로 바꿨다. 인구 증가는 계속돼 관개문명으로 이끄는 생산통제력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자원이 산재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에도 인간이 과연 다음해의 농경을 위한 종자를 저장 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거리를 지니고 있다.

  • 주변지구 가설

루이스 빈포드가 제시하고 켄트 플래너리가 완성하였다. 근동지방에서의 농경이 동식물의 야생종 서식에 적합한 환경지역의 주변부에서 순환적인 인구압의 반응으로 발생하였다고 설명하고있다.

(추가바람)

4. 분류

  • 재배 작물에 따른 분류
    • 경종농업 - 채소, 과수, 화훼류를 제외한 나머지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 원예농업 - 채소, 과수, 화훼류를 재배하는 농업
  • 경지에 따른 분류
    • 논농업 - 논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수도작(水稻作)이라고도 한다.
    • 밭농업 - 밭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사실상 논농업 이외에는 모두 밭농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토지 활용도에 따른 분류
    • 집약농업
    • 조방농업
  • 토지 소유에 따른 분류
    • 자작농업 - 자기 소유의 토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 소작농업 - 타인으로부터 임차한 토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 자소작농업
    • 위탁농업 - 토지 소유주의 위탁을 받아 경작하는 농업.
  • 경영 형태에 따른 분류
    • 자영농업 - 경영 주체가 농민 개인인 농업.
    • 장원형농업
    • 기업형농업
    • 집단농업
  • 생산 목적에 따른 분류
    • 자급농업 -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
    • 재식농업(플랜테이션 농업) -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

5. 관련 문서

5.1. 생산 시설

5.2. 작물

5.2.1. 원예작물

5.3. 농자재

5.3.1. 농기계·기구

퇴비 살포기

파종기

뒤지개

액비 살포기

자동 스프링클러

5.4. 관련 정책 및 농업 관련 시설

  • 농지개혁법
    • 경자유전 - 농지는 농부와 농업 기구만이 소유할 수 있게 한 원칙을 한 법규. 하지만 96년도부터 그 대상이 완화되었다.
  • 균전제 - 북위 효문제 당시 시행된 농지 전체를 국유화 하는 정책.
  • 논농업 직불제 - 논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헥타르 당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지만 소작하는 이들 대신 땅 소유주에게 지급해 논란이 있었다.
  • 농과대학(농업생명과학대학) - 농업 관련 학문을 가르치는 단과대학.
  • 농지은행 - 농지를 매매, 임차해 농부들에게 주는 은행.
  • 농협
  • 특성화고등학교/농생명산업계열[29]
  • 농촌지도사
  • 농업부
  • 추곡수매 - 정부에서 추곡의 수급 조절을 하는 것.
    • 이중곡가제 - 정부에서 시중가보다 좀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는 제도.
  • 절대농지 - 농업 이외의 용도로는 쓸 수 없게 못박은 토지.
  • 준농림지 - 농업 진흥을 위한 준 농림지.
  • 저수지
  • 정전제 - 사각의 토지를 9등분해 하나는 각각 경영하고 나머지 1은 공동 경작해 세금으로 내는 제도.
  • 한전제 - 농민들에게 국유지를 나눠주되, 임의적인 매매를 금지하는 제도.
  • 영농자재창고
  • 양곡창고
  • 디딜방아
  • 물레방아
  • 사일로
  • 풍차

5.5. 기타

6. 농업(교과)

중학교 및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남학생들을 상대로 제6차 교육과정까지 가르쳤던 교과목으로,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32] 주로 군 지역 및 지방 소도시 소재 중, 고등학교에서 많이 채택되었다. 중학교에서는 3학년에,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에 가르쳤으며, 연합고사학력고사 시험 과목이기도 했다.[33]

내용은 크게 개요/기초이론/재배/사육/조림(造林)/농기계/농가공/농촌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쌀, 보리, 콩, 감자 및 몇몇 원예작물 재배법, 소 돼지, 닭 사육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 위주로 되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여기에 담배 등 공예작물 및 양잠 관련 설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물론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 실제로 교과서에 쓰여진 대로 농사를 짓는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교과를 배워본 사람들은 적어도 '최소양분율의 법칙'을 설명하는 그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농업 선생이 "이 그림은 잠잘 때 꿈 속에서도 나올 정도로 외워두어라"고 닥달했을 것이니...


  1. [1] 나뭇잎을 입으로 잘라 개미굴로 가져가 균류 농사를 짓는다.
  2. [2] 농사를 지으려면 여럿이 협동해야 하는데, 만약 몇몇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혼자 튀거나 하면 일에 차질이 생긴다. 때문에 이러한 이들을 집단에서 내쫓거나 처형하기도 했다.
  3. [3] 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고 무리를 지어사는 동물 내에서도 왕따 비슷한 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농사의 문제가 아닌 무리생활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4. [4] KBS 파노라마 고인돌 편에서는 위 협동정신이 (종교적 요인과 더불어) 고인돌을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5. [5] 것도 그럴것이 농업을 위해서 하는 일은 사실상 노가다로 지칭되는 건설현장 업무보다 가혹환 노동인지라 현대와 같이 자동화된 농기계들이 대중화하기 이전엔 사람밖에 없었기에 자손을 많이 낳아 일꾼을 늘려야 했기에 베이비 붐과 (지역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왕 낳을 바엔 힘 쎈 남아가 좋다는 남아 선호 사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지리나 기후적인 혹은 주변의 동물 등의 이유로 사망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여아 선호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일단 가혹한 환경 때문에 툭하면 일하다 죽어버리니 일꾼을 새로 생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연히 커맨드 센터(여성)가 많아야되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고 남자의 자연출생성비가 높은관계로 얼마 안있어 다시 남아선호사상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6. [6] 지리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국 대평원 지대에서는 서쪽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강수량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사진이 실린 캔자스주에서 동쪽 끝 지역의 강수량은 1,000mm를 넘지만 서쪽 끝 지역에서는 400mm정도밖에 안 된다.
  7. [7] 다른 나라, 특히 구대륙은 천 년이 넘는 경작 끝에 지력이 소실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국은 본격적으로 농사지은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8. [8] 세계 최다 인구 1,2위를 다투는 나라들이자 인구가 13억을 넘어가는 나라라서 당연하다.
  9. [9] 이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 앞으로 고기는 구경하기도 힘들어진다.
  10. [10] 쌀밥만 주구장창 먹으면 된다는 생각도 틀린 생각이다. 물론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100%에 근접하지만 그 외 보리, , (특히 밀은 자급률 1%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의 자급률은 매우 저조하다. 게다가 사료용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은 4~50%대를 유지하지만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를 웃돈다. 가축 사료용 곡물 대다수를 수입한다는 소린데 수입이 끊기는 즉시 가축들이 아사 위기에 처한다. 단기적으론 문제없지만 장기적으론 국민들이 영양 불균형 상태에 빠질 염려가 있다. 물론 돈과 기술력이 있다면 화학합성 등등 언젠간 인공 사료를 합성하거나 혹은 설국열차마냥 바퀴벌레라도 실험실에서 대량 번식시킨 후 갈아서 단백질 블럭을 뽑아내야겠지만...
  11. [11] 때문에 OECD 주요국의 1인당 경지면적에서 일본도 한국과 함께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12. [12] 주로 7 내외의 중성
  13. [13] 마그네슘, 철, 인산 등
  14. [14] 공산주의 유머/소련에서도 나온 것이지만 미국에서 오는 곡물이 무사히 도착하도록 기도까지 하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재가 위대해도 그럼 어디서 곡물을 수입하느냐는 개그가 나온게 다 이유가있는셈이다.
  15. [15] 씨를 받아서 다시 심으면 원하는 게 아니라 이상한 게(열매가 작다든지)나온다. 예를 들어,수박은 F2(2세대)가 탁구공만하게 나온다.
  16. [16] 실제로 지방보다는 오히려 탄수화물이 더 살이 찐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17. [17] 심지어 과거 수렵채집민들의 식단은 현대인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세계 인구가 현대 대한민국 인구보다 훨씬 적었으니 가능한 일이지 현대인들이 모두 수렵생활로 돌아간다면 먹을 수 있는 생물종은 모조리 멸종할 것이다.
  18. [18] 일례로 신관이나 사제 등
  19. [19] 단 농경 이전에도 기후 변화나 남획 때문에 사냥감이나 채집식물이 감소하여 인류가 굶어죽었던 일은 존재하였다 허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 시기의 인류는 적당한 기후와 사냥감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채집 작물이나 사냥감이 멸종되는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거리들이 늘어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농경에 비해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므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이에 비하여 농경 시대에는 이러한 이동이 수렵시대에 비해 제한적이였다
  20. [20] 물론 석기시대에도 다른 씨족간의 싸움은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땐 역사시대만큼이나 빈번하지도 않고 입는 피해도 훨씬 적었다 인구자체 밀집도도 적었으니.
  21. [21] 무리지어 생활하는 짐승들을 생각해보면 이는 조금 생각해 볼 문제
  22. [22] 물론 오늘날에도 구석기 시대처럼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원시부족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소수 부족이다. 이들 때문에 야생동물이 멸종할 일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들 소수 부족들의 수렵과 채집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농경, 목축을 거쳐 산업화된 대다수 문명인들의 환경 오염이나 밀렵 등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중 어느 쪽이 생태계에 더 위협일까?
  23. [23] 사람이 굶주림을 비교적 오래 견딜수 있는 이유이다. 즉 식물(먹을것)의 섭취가 중단되면 체내 지방을 연소시켜 에너지로 쓰기 때문이다.
  24. [24] 동식물 개량등을 통한 것, 종자를 심어놓고 수렵채집하다가 일정한 시기에 다시 되돌아와 곡물을 수확하는형식
  25. [25] 반(半)유목생활일 가능성이 있다. 종자를 파종하고 그 지역을 떠나 생활하다 일정한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
  26. [26] 특히 건조기에
  27. [27] 기후의 건조화는 식량생산 경제를 채택하도록 자극하였다. 어쩔 수 없이 강가나 줄어드는 샘물의 주변에 모이게 되자, 토지를 비옥하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동물과 인간은 점차 사막으로 인해 고립되어 가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함께 서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병렬관계가 사육으로 표현되는 동물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조장했던 것이다. (1952:25)
  28. [28] 현재의 인류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어진 시기
  29. [29] 농업고등학교.
  30. [30] 한국영농학생연합회
  31. [31]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원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작물은 그 결핍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 즉 질소, 인 등 다른 원소들이 충분히 공급되었다 해도 칼륨이 덜 공급되면 작물은 칼륨이 부족한 만큼 생육이 저하되는 법칙.
  32. [32] 말 그대로 학교에서 선택하는 선택 과목이지, 개인이 선택하는 선택 과목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이 시기까지는 제2외국어 및 과학(생물, 지구과학)도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
  33. [33] 단 학력고사의 경우 제2외국어와 함께 3교시 선택과목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자기 학교에서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본어를, 실업 과목으로 농업을 배웠다면 일본어와 농업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분류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