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자키 요시노부

1. 개요
2. 범죄
3. 저작권 문제
4. 사망

1. 개요

西崎義展

1934.12.18, 도쿄시 분쿄구~2010.11.07,도쿄도 오가사와라 제도 치치지마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겸 애니메이션 감독.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바다의 트리톤,우주공모 블루노아, 초신전설 우로츠키동자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연극배우를 목표로 하던 청년이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 창가학회 밑에 있는 회사에서 음악 프로듀서를 하고 있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바다의 트리톤과 야마토 제작 때도 음악 선정은 직접하고 어린이 음악 작곡가가 아니라 가요 작곡가를 데려올 정도로 음악을 중시하였다. 클래식 음악도 좋아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시구로 노보루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중책으로 기용할 정도로 음악에 애정을 보였다.

당시의 방송계와 연예계가 야쿠자, 종교 단체까지 얽혀 온갖 암행을 저지르는 추악한 업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중에 비교적 깨끗하게 굴러가고 있었던 애니메이션 업계에 눈독을 들이고 그쪽으로 전향하기로 한다. 당시 사업에 재능이 없던 데즈카 오사무를 도우면서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저작권을 데즈카에게 말도 없이 팔아서 데즈카의 신임을 잃고 때마침 무시 프로덕션은 경영 악화로 파산. [2] 니시자키는 혼자 방황하던 중 우주전함 애니메이션을 구상해 우주전함 야마토를 제작하고 대박을 낸다.

야마토 시리즈는 니시자키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통과되지 않았다고 한다. 후지카와 케이스케는 어차피 각본을 써도 니시자키가 뜯어고치는 환경에 신물이 나서 시리즈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마토 시리즈는 니시자키를 실질적인 총감독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럼에도 의외로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기도 해서 음악 프로듀서 출신으로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제작해야될지는 몰랐지만 당시 애니메이터 야마모토 에이치 말로는 자신이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만드는 거 아니다" 라고 불만을 말하자자 갑자기 무릎을 꿇고 도게자를 하면서 "그럼 제발 알려주십시오" 라고 하고 그를 야마토의 감수, 구성, 각본 역으로 스탭롤에 올릴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한다.[3] 야마토의 저작권 소송에서 마츠모토 레이지에게 승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당시 애니메이터들의 증언이 결정타였다고 한다.

당시 저작권이나 상표권 같은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프로듀서로서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나 상표권을 확실하게 챙겼으며 야마토 시리즈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토미노 요시유키 말로는 영업 수완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으로 날마다 새로운 스폰서와 스탭을 어디서 잘도 계속 구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 실패로 도산하여 과거 작품의 판권은 다른 회사에 몽땅 넘기게 되었고, [4] 말년엔 다수의 범죄로 교도소에 가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야마토 전성기에는 직접 여러가지 이벤트에 나가거나, 잡지 인터뷰를 하거나,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나가면서 팬과 교류를 많이했고 작품 해설에도 많이 참여했다. 그래서 당대의 일본 야마토 팬은 야마토하면 이 사람을 떠올릴 정도로 이미지가 좋았다.그러나 말년에는 각성제사건과 총기 사건, 해외도피 사건, 경제사범, 투자사기 건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교도소를 들락날락하고 전재산을 날리고 거액의 빚을 지는 등 몰락하게 된다.

여자 문제가 문란하기로 유명한데 여자 비서를 5~7명씩 두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와 성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출장을 다닐 때도 항상 새로운 여자와 동행했다고 한다. 한편 유명한 어린 여자 아이돌 두 명과도 추문이 있었다. 당시 그와 교제하던 여자들은 일도 놀이도 활력적으로 하는 사람이라 매력이 있었다고하며 정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각성제 때문이 아닐까 그거 이 때문에 가정이 붕괴해서 이혼을 3번 했으며 말년에는 아무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접근해서 니시자키를 챙겨주고 양자가 되어서 야마토의 제작권한을 이어받은 사람이 니시자키 쇼지라는 사업가다. [5]

정치 성향은 우파. 친했던 지인이 이시하라 신타로로 같이 우파적 정치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총기류 사건에선 같이 연루되기도 했으나 니시자키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시하라는 "이 정도로 저 인간이 바보일지는 몰랐다." 라면서 사건 이후 니시자키와 절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짜준 우주전함 야마토 부활편의 원안의 경우 절교하기 전에 작성해준 것이다.

작품에선 그렇게까지 꼴통 극우같은 면이 별로 없는 편인데 어차피 직책이 감독이라기 보단 프로듀서였고, 여러 스탭과 회의를 하고 여러가지 의견을 모아서 하나로 묶는 식의 작업을 즐겼기 때문이다. 스탭들이 "회의하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라고 불평하기도 하고. 그리고 능력만 있으면 자신과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도 받아들였다고 한다. 마스다 토시오, 야스히코 요시카즈, 마츠모토 레이지는 니시자키와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의 인물들인데 이들을 적극 기용한 것은 물론 그들의 의견도 적극 반영하였다. 개인적으로도 저들에게 꽤 잘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니시자키도 태평양 전쟁 세대라 유년 시절 전쟁의 폐해를 체험해봤다며 전쟁이나 침략 행위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상당히 강했다. 일본군이 일본을 지켜준 것도 사실이니 아예 무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전쟁은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하며 이것은 여러 인터뷰에 남아있다. 니시자키 요시노부를 욕하기 위해서 나온 책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광가'라는 책에서도 니시자키의 온갖 사생활을 다 까면서도 니시자키가 군국주의자란 것에 대해선 주변인의 말을 빌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작품의 이미지가 일본군의 미화로 흘러가는 것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묘사나 행동도 많아서 안토니오 이노키처럼 일본의 보통국가 화를 지지하던 우파이지 역사인식이 잘못된 완전 개꼴통 우파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사람은 그런 정치성향 문제보다는 인성 때문에 까여야할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도 '반성'이란 게 결여된 사람이므로 전쟁 자체는 싫어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반성이란 과정이 아예 빠졌다는 비판도 있다.

성격으로는 변덕이 심하고 말과 행동이 달라 믿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적이 꽤 많은 편이다. 예를들어 바다의 트리톤때 같이 일했던 토미노 요시유키도 "진짜 싫은 사람" 이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고, 무시 프로덕션 출신 중에서도 바다의 트리톤 관련으로 니시자키와 같이 일한 경험의 기억이 별로 안 좋아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한때는 친한 사이였던 마츠모토 레이지하고도 소송건 이후 완전히 관계가 틀어졌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생애 최대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토미노의 선의의 경쟁의 라이벌이라면 이쪽은 웬수에 가깝다. 이 둘은 서로가 반대 성향인데다가 같이 일할 때 트러블도 있었기 때문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서로 대놓고 디스 배틀을 했다. 기동전사 건담도 야마토를 이기고 묻어버리기 위해 안티테제로서 만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니시자키는 야마토가 히트한 이후 애니 잡지나 방송에서 양복 입은 신사 이미지로 나오면서 제작 썰을 푸는 것으로 인기와 지명도를 얻었는데 이것은 이후 토미노가 건담으로 히트한 이후 거의 그대로 따라했다. 건담이 시청률이 저조할 때는 니시자키가 토미노에게 전화를 걸어서 비아냥대며 놀려 토미노가 굉장히 감정이 상했다는 비화도 건담창세 등에서 다뤄지고 있다. 나중에 토미노는 건담을 만들고나서 "니시자키는 이겼다." 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외모와 성격을 모델로 제작진이 만든 캐릭터가 데슬러 총통. 그에게 시달리던 스탭들이 비꼬려고 만든 캐릭터였는데 니시자키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엔 이벤트 등에서 데스러 총통을 따라하고 다녔다. 아예 '데스러즈 워'라고 데스러가 주인공인 작품도 만들려고 했었는데 스폰서가 안 붙어서 못 만들었다고. 데슬러 주변엔 여러 미녀들이 시중을 드는 장면이 있는데 니시자키는 실제로 여성 비서를 여럿 두고 그러고 살았다고 한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니시자키를 평소 야쿠자, 야만인이라고 욕을 서슴지 않았으나 "애니메이션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충고가 아니었으면 건담도 안 만들고 애니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이런 악인만이 만들 수 있는 좋은 작품도 있으며 현재의 애니메이션 업계엔 이런 자기 주장 강한 악인이 없는 것이 아쉽다며 애증을 보였다.

2. 범죄

1997년 각종 마약류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각성제류였으며 수사결과 꽤 오랜 시간 상습적으로 각성제에 손을 댔던 모양. 사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다크서클이 짙은 게 좀 수상하긴 했다. (…) 야마토 스탭들은 야마토 제작 당시부터 "니시자키가 잠을 자는 걸 본 적이 없다. 매일 날을 새며 현장에 있었다."라고 하며 그때부터 이미 각성제를 복용하던 게 아니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필리핀에서 총기류를 일본으로 밀반입을 하려던 혐의로도 걸렸었다. 이 때는 보석 기간을 풀린 상태였는데, 소총 말고도 유탄 발사기까지 들여오려고 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것은 중국인을 공격하려고 사간 것이 아니며 이시하라 신타로센카쿠 열도의 중국 해적에게 쓸테니 대신 사오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주장했는데 [6] 법정에서는 사실 인정되지 않았고 결국 말년에 징역을 살게 되었다.하지만 이 밀반입에 사용했다는 배는 이시하라 신타로가 1997년 니시무라 신고와 센카쿠 상륙을 시도 했을때 쓴 것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이시하라 신타로가 진짜로 시켜놓고 나중에 자신의 정치권력을 이용해서 꼬리자르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고친 스케일이 엄청난 것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 풀려났는데 이시하라 신타로가 뒤를 봐줬다는 설도 있다.

수많은 탈세와 범죄와 마약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 중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큰 범죄였다.

3. 저작권 문제

니시자키의 범죄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던 도중, 반다이는 그가 채무로 인해 우주전함 야마토의 판권을 토오쿠신샤(東北新社)에 넘어간 것을 포착하고 이와 계약하여 야마토 관련 게임 시리즈[7]를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판권은 토오쿠신샤에 있었지만, 그 상표권은 니시자키 본인에게 속한 상태였기에 판매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게임 제작에도 관여한 마츠모토 레이지가 등장하게 된다. 해당 게임 시리즈 자체가 마츠모토의 색체가 강하지만, 애초에 야마토 시리즈 자체의 성립에도 그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야마토와 관련된 설정이나 캐릭터를 집어넣어 세계관에 편입시켰으며, 야마토의 저작권을 'ⓒ 마츠모토 레이지' 라고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1년 마츠모토의 권리가 인정되어 니시자키의 판매금지 가처분은 기각되고, 마츠모토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원작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우받게 된다.

그러나 이 후 니시자키는 저작인격권을 들어 원작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기의 이름을 게임 시리즈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게임 판매에 크레임을 걸게 되고, 결과적으로 2004년 상호 재판상의 화해의 형태로 마무리된다.

장기간의 재판의 결과는 과거 야마토 시리즈에 대한 니시자키의 저작권은 상실된 것이 되었지만[8], 저작권자로서 성명권 등으로 대표되는 저작인격권을 지킬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지는 야마토 시리즈에 마츠모토 레이지와 공동으로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9] 애니메이션 평론가 송락현은 이에 대해 "권리를 독점해 왔던 니시자키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패배였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는 송락현의 개인 해석으로 실제로는 니시자키가 이겼다고 할 수도 있다. 이 판결문은 돌려말하면 마츠모토 레이지가 유족의 허락 없이는 단독으로는 더 이상 야마토 신작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니시자키와 니시자키의 유족은 야마토의 제작에 관여할 권리를 가졌다. 무엇보다 송락현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광적인 팬이라 그가 쓴 글은 대부분 마츠모토 레이지에 우호적으로 해석되는 편이다.

애초에 야마토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했던 적이 있는 작곡가 아쿠 유우 [10]는 저작권 소송에서 니시자키가 한 게 더 많다고 탄원서를 쓰기도 했으며 "마츠모토가 원작자면 나도 원작자겠다."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마츠모토 레이지는 야마토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니시자키는 제작 현장의 폭군으로 여겨졌으며 스탭들이 내놓은 설정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마구 고쳐대기로 유명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그가 기여한 것이 더 많다는 것. 재판 당시 니시자키 편을 들어준 사람은 아쿠 유우, 마스다 토시오, 후지카와 케이스케 [11], 야마모토 에이이치 등이 있으며 심지어는 토미노 요시유키까지 이건에 한해서는 니시자키 편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여러 사람인 공동 프로젝트였는데 마츠모토 혼자서 '내가 다 만든거다'라고 하면서 저작권을 갈취하려고 했던 것에 가까운 사안이었던 것이다.

사건 이후 마츠모토가 제작하려 했던 야마토 유사 작품의 제작을 니시자키가 임의로 취소시키고, 부활편에서 기존의 마츠모토의 분위기의 작화를 빼버리는 짓[12]을 저질러 기존의 마츠모토적인 느낌을 좋아하던 야마토 팬들은 니시자키를 돈에 환장한 놈, 속 좁은 놈 취급을 하며 등을 돌려버렸다.

하여튼 이로 인해서 부활편,2199,2202에서는 스탭롤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이름이 원작: 니시자키 요시노부다.

4. 사망

2010년 직접 구입해서 개조하고 직접 이름붙인 유람선 'YAMATO'에 타고 수영을 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나이먹은 할아버지가 수영하겠다고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타살설이 돌기도 했다. '우주전함 야마토를 만든 남자 니시자키의 광기'란 책에서는 이 사람에게 사기당해서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실으며 넌지시 긍정하기도 했다.


  1. [1] 애초에 연극 배우가 되기 위해서 별다른 노력을 안 하고 방종했다는 증언이 많다.
  2. [2] 니시자키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3. [3] 출처: 우주전함 야마토를 만든 남자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광기~
  4. [4] 1998년 이전에 제작된 구작의 판권을 영화배급사인 도호쿠 신사에 팔았다. 다만 신작과 리메이크 제작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니시자키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5. [5] 야마토에 대한 권한을 이어받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설도 있다. 챙겨준 건 사실인 것 같지만.
  6. [6] 실제로 센카쿠 열도 근처에는 해적이 돌아다니고 있어 호신용 무기 없이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7. [7] 우주전함 야마토 - 아득한 별 이스칸달
  8. [8] 회사 도산과 함께 저작권이 넘어갔다.
  9. [9] 그의 사후에는 유족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10. [10] 야마토의 엔딩곡 새빨간 스카프를 작사한 사람이다.
  11. [11] 심지어 이 사람은 은하철도 999 각본까지 쓴 마츠모토 레이지의 친구인데도, 이 건은 니시자키 편을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야마토 시리즈는 거의 다 이 사람 각본인데 마츠모토 레이지가 자기 거라고 하고 있으니 꽤나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12. [12] 사실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를 지탱하던 것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신비주의적 작화, 미야가와 히로시의 음악, 사사키 이사오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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