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

발해의 역대국왕

걸걸중상

초대 고왕 대조영

2대 무왕 대무예

고왕 대조영 표준영정

시호

고왕(高王)

연호

불명[1]

걸걸(乞乞) / 대(大)

조영(祚榮)

생몰년도

? ~ 719년

재위기간

698년 ~ 719년(22년)

1. 발해의 개국군주
2. 관련 기록
2.1. 《구당서》의 기록
2.2. 《신당서》의 기록
2.3. 《신오대사》의 기록
3. 의문점들
4. 오늘날의 대조영

1. 발해의 개국군주

발해의 제1대 국왕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에서 고구려의 유민들을 국외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영주 지역에서 적지 않은 수가 있었는데, 가혹한 통치로 거란인들이 봉기하여 영주 일대를 점거하면서 고구려, 말갈의 유민들도 이 때 당나라에서 지배에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했고 이 때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을 이끌었다.

이후 말갈족도 흡수하면서 동쪽으로 진군해 천문령에서 당의 군사를 격파했으며, 다시 동쪽으로 향해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인 동모산(東牟山)에서 터전을 잡으면서 발해를 건국한다. 대조영이 698년 (震/振)이라는(진국) 국호로 정했다가 당나라가 대조영을 발해군왕에 봉하면서 국호를 발해로 바뀌었다. [2]

대조영에 대한 기록이라봤자 얼마 안되니 여기에 《구당서》와 《신당서》,《신오대사》에 실려 있는 대조영 기사의 전문을 수록한다. 연호는 당대의 기록에 발해 고왕에 대한 연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천통(天統)'라는 연호를 사용해했다고 하지만 관련 기록이 20C이후에 출현해서 신빙성이 낮다.

2. 관련 기록

2.1. 《구당서》의 기록

渤海靺鞨大祚榮者,本高麗別種也。高麗既滅,祚榮率家屬徙居營州。

발해말갈(渤海靺鞨)의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구려[高麗] 별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가족을 데리고 영주(營州)로 이주했다.

萬歲通天年,契丹李盡忠反叛,祚榮與靺鞨乞四比羽各領亡命東奔,保阻以自固。盡忠既死,則天命右玉鈐衛大將軍李楷固率兵討其餘黨,先破斬乞四比羽,又度天門嶺以迫祚榮。祚榮合高麗、靺鞨之眾以拒楷固;王師大敗,楷固脫身而還。屬契丹及奚盡降突厥,道路阻絕,則天不能討,祚榮遂率其眾東保桂婁之故地,據東牟山,築城以居之。

만세통천년(萬歲通天年: 696)에 거란(契丹)의 이진충(李盡忠)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각자 망명자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달아나서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 이진충이 죽자, 측천무후(則天)는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에게 군대를 이끌고 그 잔당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여, 먼저 걸사비우를 물리쳐 목을 베고, 이어서 대조영을 추격하여 천문령(天門嶺)을 넘게 되었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모아서 이해고에 대항하자 당군(王師)은 대패했고, 이해고는 겨우 탈출해서 돌아왔다. 때마침 거란과 해(奚)가 모두 돌궐(突厥)에 항복해서 도로가 막히게 되어 측천무후가 토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대조영이 자기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의 계루부가 있던 땅을 차지하여 동모산을 근거지로 삼아 성을 쌓고 그곳에 살게 되었다.

祚榮驍勇善用兵,靺鞨之眾及高麗餘燼,稍稍歸之。聖曆中,自立為振國王,遣使通於突厥。

대조영은 용맹하고 용병에 뛰어났기 때문에 말갈 무리 및 고구려 유민이 점점 모여들었다. 성력(聖曆, 698∼699) 중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이 되었고 사신을 보내서 돌궐과 연락했다.

其地在營州之東二千里,南與新羅相接。越熹靺鞨東北至黑水靺鞨,地方二千里,編戶十余萬,勝兵數萬人。風俗瑟高麗及契丹同,頗有文字及書記。

영토는 영주에서 동쪽으로 2000리에 있었고 남쪽으로는 신라와 맞닿았다. 월희말갈(越熹靺鞨) 동북쪽으로 흑수말갈(黑水靺鞨)에 이르렀고, 영토가 사방 2000리에 편제된 가구(編戶)가 10여만 호, 강군(勝兵)이 수만 명이었다. 풍속은 고구려 및 거란과 거의 같았으며, 제법 문자를 쓰고 기록을 할 줄 알았다.

中宗即位,遣侍御史張行岌往招慰之。祚榮遣子入侍,將加冊立,會契丹與突厥連歲寇邊,使命不達。睿宗先天二年,遣郎將崔昕往冊拜祚榮為左驍衛員外大將軍、渤海郡王,仍以其所統為忽汗州,加授忽汗州都督,自是每歲遣使朝貢。

중종(中宗)이 즉위하자(705) 시어사(侍御史) 장행급(張行岌)을 보내 그들을 회유하고자 했다. 대조영이 아들을 황제에게 보내자(入侍), 책립을 내리려고 했지만 거란과 돌궐이 함께 계속해서 변경을 약탈하는 바람에 명을 받든 사신이 도달하지 못했다. 예종(睿宗) 선천(先天) 2년(713)에 낭장(郎將) 최흔(崔昕)을 보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하고 다스리는 지역을 홀한주(忽汗州)로 만들어 홀한주도독(都督)의 벼슬을 추가하자, 그때부터 매해 조공 사절을 보내게 되었다.

開元七年,祚榮死,玄宗遣使弔祭。乃冊立其嫡子桂婁郡王大武藝襲父為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

개원(開元) 7년(719)에 대조영이 죽자 현종(玄宗)이 조문 사절을 보냈다. 또한 그 맏아들 계루군왕(桂婁郡王) 대무예(大武藝)로 하여금 아버지 뒤를 잇게 해서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책립했다.

ㅡ舊唐書』卷212下「列傳」第149下 ‘北狄'

ㅡ 구당서 권 212 하 열전 제 149하 북적

 

2.2. 《신당서》의 기록

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高麗滅,率衆保挹婁之東牟山,地直營州東二千里,南比新羅,以泥河爲境,東窮海,西契丹。築城郭以居,高麗逋殘稍歸之。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붙은 이들이며 성은 대 씨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거느리고 읍루(挹婁)의 동모산을 차지했는데, 영토는 영주로부터 동쪽으로 2000리에 위치했고 남쪽으로 신라에 대하여 이하(泥河)를 경계로 하였으며, 동쪽은 먼 바다, 서쪽은 거란이었다. 성곽을 쌓아 그곳에 살게 되자 고구려 유민이 점점 모여들었다.

萬歲通天中,契丹盡忠殺營州都督趙翽反,有舍利乞乞仲象者,與靺鞨酋乞四比羽及高麗餘種東走,度遼水,保太白山之東北,阻奧婁河,樹壁自固。武后封乞四比羽爲許國公,乞乞仲象爲震國公,赦其罪。比羽不受命,后詔玉鈐衛大將軍李楷固、中郎將索仇擊斬之。是時仲象已死,其子祚榮引殘痍遁去,楷固窮躡,度天門嶺。祚榮因高麗、靺鞨兵拒楷固,楷固敗還。於是契丹附突厥,王師道絕,不克討。

만세통천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趙翽)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는 이가 말갈 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서 요수(遼水)를 건넜는데, 태백산(太白山) 동북쪽을 차지하고 오루하(奧婁河)를 막아 성벽을 쌓아서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 측천무후[武后]는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책봉하고 그 죄를 사면했다. 걸사비우가 명령을 받지 않자 측천무후가 옥금위대장군 이해고와 중랑장(中郎將) 삭구(索仇)에게 조서를 내리니, 공격해서 목을 베었다. 그때 걸걸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잔당을 이끌고 달아나자, 이해고가 추격해서 천문령을 넘게 되었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군대로써 이해고에게 대항하자, 이해고는 패해서 돌아왔다. 그때 거란이 돌궐에 붙어 길이 막히게 되어서 당군이 토벌할 수 없었다.

祚榮即並比羽之衆,恃荒遠,乃建國,自號震國王,遣使交突厥,地方五千里,戶十余萬,勝兵數萬。頗知書契,盡得扶餘、沃沮、弁韓、朝鮮海北諸國。

대조영은 곧 걸사비우의 무리를 합하더니, 아득히 먼 것을 믿고 건국해서 스스로 진국왕이라 일컬으며 사신을 보내서 돌궐과 교류했는데, 영토가 사방 5000리에 가구가 10여만 호, 강군이 수만 명이었다. 제법 글을 쓸 줄 알았고, 부여(扶餘), 옥저(沃沮), 변한(弁韓), 조선(朝鮮) 등 해북(海北)의 여러 나라를 모두 얻었다.

中宗時,使侍御史張行岌招慰,祚榮遣子入侍。睿宗先天中,遣使拜祚榮爲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以所統爲忽汗州,領忽汗州都督。自是始去靺鞨號,專稱渤海。

중종 때 시어사 장행급을 사신으로 보내서 회유하자, 대조영이 아들을 황제에게 보냈다. 예종 선천 중에 사신을 보내서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의 벼슬을 내리고 다스리는 지역을 홀한주로 만들어 홀한주도독으로 삼았다. 그때 처음으로 말갈이란 이름을 버리고 발해라 칭하게 되었다.

玄宗開元七年,祚榮死,其國私諡爲高王。

현종 개원 7년 대조영이 죽자 그 나라가 사사로이 시호를 고왕(高王)이라고 했다.

ㅡ『新唐書』卷219「列傳」第144 ‘北狄’

ㅡ 신당서 권219 열전 제114 북적

2.3. 《신오대사》의 기록

渤海,本号靺鞨,高丽之别种也。唐高宗灭高丽,徙其人散处中国,置安东都护府于平壤以统治之。

발해는 본래 말갈이라 부르며 고구려의 별종이다. 당고종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사람들을 이주시켜 중국에 흩어져 살게 하고,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그들을 통치하였다.

武后时,契丹攻北边,高丽别种大乞乞仲象与靺鞨酋长乞四比羽走辽东,分王高丽故地,武后遣将击杀乞四比羽,而乞乞仲象亦病死。仲象子祚荣立,因并有比羽之众,其众四十万人,据挹娄,臣于唐。

측천무후 때에 거란이 북쪽 변방을 공격하자, 고구려의 별종인 대걸걸중상이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요동으로 달아나 고구려의 옛 땅을 나누어 임금노릇을 하니, 무후가 장수를 파견하여 걸사비우를 공격하여 죽였고, 걸걸중상은 병들어 죽었다. 중상의 아들 조영이 즉위하여 비우의 무리를 병합하였는데, 그 무리는 40만명으로서 읍루에 웅거하며 당의 신하가 되었다.

至中宗时,置忽汗州,以祚荣为都督,封渤海郡王,其后世遂号渤海。其贵族姓大氏,开平元年,国王大諲撰遣使者来,讫显德常来朝贡。其国土物产,与高丽同。

중종 때에 이르러서는 홀한주를 설치하여 조영을 도독으로 삼고, 발해군왕에 책봉하니, 그 후세에 마침내 발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귀족(貴族)의 성은 대씨이다. 개평 원년(907)부터 국왕 대인선이 사신을 파견해와, 현덕 연간(954~959)이 끝날 때까지 항상 와서 조공하였다. 나라의 토산물은 고구려와 같았다.

諲撰世次、立卒,史失其纪。

인선(諲譔)[3]의 세차(世次)와 즉위년(即位年)·졸년(卒年)[4] 등은 사관이 그 기록을 빠뜨려 버렸다.

ㅡ 新五代史·卷七十四 四夷附录第三

ㅡ 신오대사 권칠십사 사이부록제삼

3. 의문점들

국가의 기틀을 3년만에 잡았다는데 그가 나라의 기틀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학계에서는 천문령 전투의 약빨과 군사력을 통해서, 그 시기까지 무주공산으로 존재하던 고구려의 영역과 여전히 엄존했을 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하면서 날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당은 사실상 고구려 영역을 흡수하지 못했고, 신라는 당과의 대립 과정 속에서도 최초로 약속한 대동강-원산만 라인을 넘어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대립된 시점에서는 이미 발해건국해서 다~ 먹은 뒤라는 이야기. 21년동안 왕에 있으면서 나라를 어떻게 통치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고...

한 나라의 창업주임에도 불구하고 저 기록이 정말 다다.

그리고 발해의 창업군주인데도 릉의 위치는커녕 소재도 모른다. 정효, 정혜공주묘와 무왕릉(정확하지는 않다.), 룽터우 고분군의 발해 황후묘들만이 유일히 확인된 발해시대 무덤이다.

4. 오늘날의 대조영

1992년 KBS 대하드라마 삼국기에 조연으로 등장. 안시성의 군관으로 고구려 멸망 후에도 항전하다가 안시성이 함락당한 후 양만춘[5]으로부터 나라를 다시 세우란 유언을 듣는다. 이후 최종회에서 발해를 세우지만, 천문령 전투는 생략되고 눈 쌓인 벌판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개국을 선포하는 것만 나온다.

그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로 문서의 맨 처음에서도 언급한 대조영이 있다. 배우는 왕 전문 배우 최수종. 하지만 워낙에 기록도 적고 이진충의 난 이전의 행보도 묘연한 인물이라 결국 창작설정이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하지만 시청률은 그야말로 대박. 이 드라마 덕분에 최수종은 2007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데, 이로서 최수종은 한 방송사에서 최초로 연기대상을 3번이나 수상한 대기록을 가진 배우가 되었다. 1998년 야망의 전설의 이정태 역할로 처음으로 연기대상을 받은 뒤, 2001년 태조 왕건에서 타이틀롤인 왕건으로 또 다시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6]

KDX-2 충무공 이순신급의 3번 함인 DDH 977은 대조영의 이름을 따서 대조영함으로 명명되었다.

참고: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1. [1] 천통(天統)이라는 연호는 20c 이후에 언급되므로 확실치 않다.
  2. [2] 처음부터 발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3. [3] 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大諲譔)
  4. [4] 재위 906 ~ 926으로 추정
  5. [5] 안시성주 항목에 나오듯이 실제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드라마에선 익히 알려진 양만춘으로 나온다.
  6. [6] 여담으로 이 기록은 KBS 2014년 연기대상에서 유동근이 다시 한 번 세우는데, 야망의 전설에서는 바로 최수종의 형인 이정우 역할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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