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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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위엄
2. 명단

국방장관의 기

현직 송영무 장관

1. 개요

* 정부조직법 제33조 (국방부) ① 국방부장관은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 국군조직법 제8조 (국방부장관의 권한)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

대한민국국방부 장관이다.

문민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정치문화 때문에 대개 전역한 대장이 취임한다. 원칙은 대장이지만 해군, 해병대, 공군중장도 취임이 가능하다. 실제로 윤광웅예비역 해군 중장 신분으로 국방장관에 취임했고 이것이 2004년 일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보통 국방장관은 고위 장성출신이 되는 성향이 강한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너무 심해 민간인은 커녕 군 출신이라도 부사관 출신이거나[1] 장교 출신이더라도 위관이나 영관급에서 군 생활을 마친 사람이면 국방장관을 하는건 불가능할 정도. 심지어 장성급도 육군4성장군이 아니면 꿈도 못꾸고, 아예 장관을 4성 장군 출신으로 차관을 3성 장군 출신으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다.[2] [3] 다만 해군과 공군의 경우는 4성 장군의 숫자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해병대의 경우는 4성 장군이 아예 없어서 비육군의 경우는 중장 출신까지는 장관 후보 명단에 올라가 있다. 때문에 말이 문민통제이지 사실상 대한민국 국방장관 직위는 제복군인 보직·계급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전역한 뒤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시기도 너무 빠르다. 합동참모의장을 맡다가 전역하고 한 시간 만에 장관에 임명된 42대 김태영 장관의 사례도 있다. 그것은 약과로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임의로 제대한 뒤 바로 장관에 임명된 40대 김장수 장관도 있다. 김태영은 그나마 합참의장 임기라도 다 채웠지만 김장수는 중간에 그만두고 국방장관이 된 것이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되는 나라일수록 국방장관은 군 출신자더라도 군에서 전역한 기간이 적지 않아 사실상 민간인화(化) 된 사람을 임명하려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의 현행 국방장관 임명 방식, 특히 김장수의 사례처럼 군복무 하고 있는 상태의 현역 군인을 바로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사체계는 북한군과의 대치하는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그만큼 한국이 국방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비관심으로 인한 의식일뿐이다. 냉전시대 개전시작과 동시에 전술핵 수백발과 전략핵 수십발이 난무하는 유럽의 최전선인 독일만 하더라도 독일연방군 자체가 철저한 문민통제 우위를 기반으로 국방전략과 정책을 수행하였고 그러한 문민통제 때문에 동독군과 소련군 등과 같은 공산권 군대들에 비해서 오히려 전략적 열세나 대치중의 전력열세에 처하는 형국은 없었다. 더욱이 그로 인한 제복 입은 국민의 개념과 의식이 군대에 확실하게 적용되어서 국가 속의 국가를 만드는 일도 없었기에 냉전종식 후 공산권 군대들이 서방 군대의 복지수준이나 의식수준에 대단히 찬사와 부러움을 나타내야했고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군이 자발적으로 독일연방군에 편입을 자처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군부의 핑계와 일반적으로 전쟁과 군대에 관심이 적고 이해가 부족한 병폐라고 보면 되겠다. 더욱 중요한것은 한국과 같은 제1세계 국가들중에는 한국과 같은 군 출신 4성 장군이 전역한 지 1시간도 안되어서 보직연장하는 형태의 장차관을 하는 경우는 대만 밖에 없다.

한국이 국방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바로 잡아야할 문제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문민통제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하겠다. 당장 병영문화 개선이나 국방개혁이다 할때마다 군부의 외부개입 간섭이나 사회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종종보거나 봐주기식 혹은 매우 소극적인식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문민통제가 안되는 한국의 국방장관 존재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2대 국방장관이었던 신성모 부터가 상선사관 출신이라 사실상 민간인 출신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본 문서 하단에 첨부된 역대 국방장관 목록에서도 대한민국 초기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의 존재가 다수 확인된다. 사실 민간인 국방장관이 금기시 되는 것은 2대 신성모 국방장관의 한국전쟁 당시에 일으킨 흑역사들의 교훈 문제와 함께 제2공화국 시절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으로 문민통제를 시도했다가 결국 5.16 군사정변을 막지 못하여 정권이 붕괴된 탓도 크다. 민간인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아 군부 내부사정에 어두워서 변고를 당했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되려 이후 정권에선 문민통제를 위해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기피하게되는 경향이 생긴 것과 동시에 쿠데타로 인한 군 장성 출신 대통령들의 인사에 있어서도 군 출신을 뽑는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었다. 특히 12.12때는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 형태로까지 국방장관-차관-장성단이 구성되는 현실까지 볼수 밖에 없었던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각 정권에서는 군부 개혁 의지를 드러내더라도 국방장관 인선을 비교적 정치력이 약한 해군이나 공군, 또는 육군이지만 힘이 약한 기수에서 뽑는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 결국 문민통제의 실현 가능 여부는 단지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데 달린 게 아니라, 국방장관의 재원이 될 민간 출신의 국방전문가 육성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가에 달려있다.

1.1. 위엄

보통 4성장군/제독 출신이 장관이 되니, 현직 4성장군/제독들은 그저 얌전한 군 후임일 뿐. 직급상 하급자인 것에 더불어, 후임 + 후배이기까지…

길 안내 내비게이션해군참모총장해야 제 맛!.

칠판셔틀은 육군 중장이 해야 제 맛! 다만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 게, 국회에 설명하러 나가서 국회의원과의 질의응답을 보조하기 위해 나간 중장이 임시로 잡게 된 것 뿐이다. 뒤에 보면 해군대령이 있는 것도 보일 것이다. 해군대령은 차마 질의응답을 위해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갈 직급이 안 되기 때문에 밖에 있는 것. 그러니까 저 안에서 칠판이라도 잡으려면 중장은 되어야 한단 의미다.[4] 어째 죄다 김태영(군인) 장관이다

인사권 등에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합참의장 출신인 이상희 장관 재직 시절에 청와대에서 참모총장들에게 국방장관에게 보고하지 말고 서울특별시로 오라고 하자 참모총장들이 몰래 유선으로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했고 이 일로 국방장관은 엄청 빡돌았다 분개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제외한 대장들은 근무지를 벗어나려면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 관련기사

대한민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을 개인단위로 받을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김관진 前 장관도 그랬고# 한민구 전 장관도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송영무 現 장관도 열심히 받고있다.#

2. 명단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출신

비고

제1공화국

초대

이범석 (李範奭)

1948년 8월 15일 ~ 1949년 3월 20일

2대

신성모 (申性模)

1949년 3월 21일 ~ 1951년 5월 5일

민간

[5]

3대

이기붕 (李起鵬)

1951년 5월 7일 ~ 1952년 3월 29일

민간

4대

신태영 (申泰英)

1952년 3월 29일 ~ 1953년 6월 30일

5대

손원일 (孫元一)

1953년 6월 30일 ~ 1956년 5월 26일

6대

김용우 (金用雨)

1956년 5월 26일 ~ 1957년 7월 6일

민간

7대

김정렬 (金貞烈)

1957년 7월 6일 ~ 1960년 5월 2일

육사 특3기

8대

이종찬 (李鐘贊)

1960년 5월 2일 ~ 1960년 8월 23일

육사 특7기

제2공화국

9대

현석호 (玄錫虎)

1960년 8월 23일 ~ 1960년 9월 12일

민간

10대

권중돈 (權仲敦)

1960년 9월 12일 ~ 1961년 1월 30일

11대

현석호 (玄錫虎)

1961년 1월 30일 ~ 1961년 5월 18일

민간

12대

장도영 (張都暎)

1961년 5월 20일 ~ 1961년 6월 6일

군사영어 1기

13대

송요찬 (宋堯讚)

1961년 6월 12일 ~ 1961년 7월 10일

군사영어 1기

14대

박병권 (朴炳權)

1961년 7월 10일 ~ 1963년 3월 16일

군사영어 1기

15대

김성은 (金聖恩)

1963년 3월 16일 ~ 1968년 2월 27일

해사 1기

[6]

제3공화국

16대

최영희 (崔榮喜)

1968년 2월 28일 ~ 1968년 8월 5일

군사영어 1기

17대

임충식 (任忠植)

1968년 8월 5일 ~ 1970년 3월 10일

육사 1기

18대

정래혁 (丁來赫)

1970년 3월 10일 ~ 1971년 8월 25일

육사 7기

19대

유재흥 (劉載興)

1971년 8월 25일 ~ 1973년 12월 3일

군사영어 1기

제4공화국

20대

서종철 (徐鐘喆)

1973년 12월 3일 ~ 1977년 12월 20일

육사 1기

[7]

21대

노재현 (盧載鉉)

1977년 12월 20일 ~ 1979년 12월 14일

육사 3기

[8]

22대

주영복 (周永福)

1979년 12월 14일 ~ 1982년 5월 21일

공사 2기

제5공화국

23대

윤성민 (尹誠敏)

1982년 5월 21일 ~ 1986년 1월 8일

육사 9기

24대

이기백 (李基百)

1986년 1월 8일 ~ 1987년 7월 14일

육사 11기

25대

정호용 (鄭鎬溶)

1987년 7월 14일 ~ 1988년 2월 25일

육사 11기

노태우 정부

26대

오자복 (吳滋福)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갑종 3기

27대

이상훈 (李相薰)

1988년 12월 4일 ~ 1990년 10월 8일

육사 11기

28대

이종구 (李鍾九)

1990년 10월 8일 ~ 1991년 12월 20일

육사 14기

29대

최세창 (崔世昌)

1991년 12월 20일 ~ 1993년 2월 26일

육사 13기

김영삼 정부

30대

권영해 (權寧海)

1993년 2월 26일 ~ 1993년 12월 22일

육사 15기

31대

이병태 (李炳台)

1993년 12월 22일 ~ 1994년 12월 24일

육사 17기

32대

이양호 (李養鎬)

1994년 12월 24일 ~ 1996년 10월 18일

공사 8기

33대

김동진 (金東鎭)

1996년 10월 18일 ~ 1998년 3월 3일

육사 17기

김대중 정부

34대

천용택 (千容宅)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4일

육사 16기

[9]

35대

조성태 (趙成台)

1999년 5월 24일 ~ 2001년 3월 26일

육사 20기

36대

김동신 (金東信)

2001년 3월 26일 ~ 2002년 7월 12일

육사 21기

37대

이준 (李俊)

2002년 7월 12일 ~ 2003년 2월 27일

육사 19기

[10]

노무현 정부

38대

조영길 (曺永吉)

2003년 2월 27일 ~ 2004년 7월 29일

갑종 172기

39대

윤광웅 (尹光雄)

2004년 7월 29일 ~ 2006년 11월 24일

해사 20기

[11]

40대

김장수 (金章洙)

2006년 11월 24일 ~ 2008년 2월 29일

육사 27기

이명박 정부

41대

이상희 (李相憙)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2일

육사 26기

42대

김태영 (金泰榮)

2009년 9월 23일 ~ 2010년 12월 4일

육사 29기

43대

김관진 (金寬鎭)

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육사 28기

박근혜 정부

44대

한민구 (韓民求)

2014년 6월 30일 ~ 2017년 7월 13일

육사 31기

문재인 정부

45대

송영무 (宋永武)

2017년 7월 13일 ~ 현재

해사 27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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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한국은 징병제의 특성상 병 출신은 민간인 출신 취급이므로 언급에서 제외. 미국의 경우 병 출신이 국방장관이 된 경우도 있다
  2. [2] 그래도 국방차관은 민간인이 임명된 적이 여러번 있다. 일단 현행 국방차관인 백승주도 정치·안보 전문가 출신의 민간인이다.
  3. [3] 국방부의 하위 기관인 병무청의 장도 군인이 여럿인데, 지방청이 아닌 중앙청장이 그렇다. 현직 병무청장 기찬수 청장이 소장 출신이며 바로 전 박창명 청장은 중장에서 전역했다.
  4. [4] 국회의원이 씹히기야 많이 씹히는 직종이지만 선출직 공무원이라 대표성에서 나오는 힘이 막강해 일반 공무원과는 끗발이 다르다.(그나마 기재부검찰청같은 막강한 기관이 국회하고 많이 충돌하기로 유명한데 이들도 국회가 제대로 힘쓰면 한 수 굽혀야 한다.) 애초에 국회의원은 개인개인이 모두 헌법 기관이다. 입법부 그 자체. 쉽게 이야기하면 입법 부분에서만큼은 한명 한명이 대한민국 권력 300분의 1을 대표한다. 그 대단하신 장관급, 차관급들도 국회의원 한 명 앞에서 깨갱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 [5] 상선사관 출신. 국부군 해군에서 교육받았으며 해방당시 영국령 인도의 상선회사 고문이었다. 이 때문에 민간이 아닌 해군 출신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정부수립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과 이범석 초대 국방장관의 회담에서, 미측은 신성모를 가리켜 "(그가) 영국 해군(Royal Navy) 출신 맞지요?"라고 질문했고 이범석 장관도 "그렇다"고 답변했다.(…) 덕분에 해방직후 상선사관 출신임에도 해군 중장 직위를 받기도 했다.
  6. [6] 현재까지 유일한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
  7. [7] 훗날 KBO 초대 총재가 되는 그분 맞다.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아버지이자 가수 서지영의 할아버지. 서승환 전 장관과 서지영은 삼촌-조카 관계다.
  8. [8]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에 의해 퇴임한 그 사람 맞다.
  9. [9] 5년이 지났으니 이제 문민이다.
  10. [10] 7년이 지났으니 이제 문민이다.
  11. [11] 5년이 지났으니 이제 문민이다.
  12. [12] 9년이 지났으니 이제 문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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