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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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발생

1987년 11월 29일
사고일로부터 +11986일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 상공

사고기

대한항공 858편(KAL 858)

기종

Boeing 707-3B5C[1]

기체 등록번호

HL7406

출발

1987년 11월 26일 오후 2시 1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경유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제공항

경유 예정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

도착 예정

대한민국 서울 김포국제공항

유형

테러

원인

북한의 대남도발

탑승 인원

승객

95명

승무원

20명

인명피해

사망

탑승자 115명 전원 사망

실종

0명

생존

0명

1. 개요
2. 테러 발생 전 사건 경위
3. 사건 발생
4. 범인 검거
5. 형사 재판
6. 테러의 목적은?
7. 음모론
7.1. 납북 일본인에게 일본교습을 받은 김현희
7.2. 유족들의 반응
8. 재수색 요청
8.1. 33년 만의 추정동체 발견
9. 미디어
10. 기타
11. 관련 문서

영화 마유미에 나온 폭파 재현 사진. 기종은 보잉이 협조를 거절해서 에어버스A300기가 쓰였다.

1. 개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보잉 707[2]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 KAL기 (폭파) 사건이라고 하면 보통 이 사건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폭발'로 결론을 지었으며,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2인조가 액체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책 항공사의 국적기가 공중 폭파 테러를 당해 탑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항공 사건사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참사였음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굉장히 미온적이었는데, 부실한 인력으로 구성된 조사단에, 추락 위치를 잘못 짚어 엉뚱한 곳을 수색했으며, 도중에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현 미얀마)과의 대립과 장비 부족 등을 이유로 열흘 만에 수색대를 철수했다. 이후 현재까지 동체 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가 2019년에 들어 대구 MBC의 수중 탐사에서 858편으로 추정되는 동체가 확인되었다#. 이종인 탐사단장[3]과 취재진들은 이것이 858편의 동체라고 확신하고 있다(하술 '33년 만의 추정동체 발견' 단락 참조).

당시 한국은 6·10 민주 항쟁의 결과 10월 27일 9차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으며,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전두환 정부가 퇴진하고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기 불과 보름 전이었다. 이에 국가안전기획부는 대선을 앞두고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북풍 몰이를 했다(일명 '무지개 공작'). 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오후 공작범 김현희를 김포공항으로 압송하고 이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중계하는 등의 안보 선전을 했으며, 이는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무산과 함께 야권의 대선 패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러한 비판 때문에 과거 일부 친북 성향 논평에 의해 '북한이 항공기를 폭파한 것이 아니라 남한의 조작극이 아니냐'는 식의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음모론은 2020년 현재에 와서는 다수의 증거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에서 재조사를 시행했을 때도 사망자 시신 미발견 등의 의문점이 제시되었기는 했으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의 소행임을 뒤집을 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김현희가 방송에 자주 나오는 것에 대한 비판은 합리적 비판으로, 김현희의 태도에 대한 비판일 뿐 음모론과 전혀 관련이 없다.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 출신 폭파범이 아니라면, 김현희의 태도에 대한 비판 자체의 논거가 없어진다.[4]

이는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선정한 7가지 사건[5] 중 유일하게 북한과 직접 연관되었음이 확정된 사건이기도 하다.

문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 표와 같다.

김현희가 폭파했나?

O (본인진술 일치,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

김현희는 북한 소속 공작원인가?

O (북한 방식의 치과치료 흔적이 있음)

안기부의 폭파자작극인가?

X (증거 없음. 극소수의 음모론)

안기부가 폭파 계획을 알았지만 방조했나?

X (증거 없음. 극소수의 음모론)

사건의 진행 시계열은 대구MBC에서 정리한 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2. 테러 발생 전 사건 경위

동일 기종

영문 위키에 따르면, 1987년 11월 12일 북한요원 두 명은 평양을 떠나 소련 모스크바로 이동했고, 모스크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헝가리에 주재한 다른 북한요원의 집에서 6일간 머물게 되고, 11월 18일에 자동차를 이용하여 오스트리아 으로 이동한다. 이때 헝가리에 있었던 안내요원이 국경을 넘으며 일본위조여권 두 장을 넘겨준다. 이후 빈에서 호텔에 약 9일간 머물게 되며 그 동안 오스트리아 항공을 이용하여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바그다드, 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한다.[6] 그리고 아부다비에서 로마로 가는 또 다른 티켓 한 장을 도피용으로 구매한다.[7] 그리고 11월 27일 다른 북한요원이 이들에게 액체 폭발물과 기폭장치 등을 건네주었고, 다음 날 바그다드 공항으로 떠났으며,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에 밤 11시 30분 경 탑승한다. 이후 자신들이 앉은 7B, 7C 부근에 폭탄을 설치하고, 테러요원들은 아부다비에서 내려 도피계획을 세운다.

3. 사건 발생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보잉 707 기종의 KE858편(HL7406)[8]UAE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서울(김포)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 및 돌풍 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이 중에 기체 고장의 가능성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10년 전인 1977년 9월 13일에는 부산(김해)을 떠나 김포로 착륙하던 중 유압 장치가 고장이 나 동체 착륙한 전력이 있었으며[9], 사건 2개월 전이자 10년 뒤인 1987년 9월 2일에는 제주를 떠나 김포로 향하던 기체가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 동체 착륙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10]이 있었고,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 그래서 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관제탑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러모로 의아한 사건이었기에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테러에 의한 공중폭발. 물론 TWA 800편 추락 사고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폭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폭탄처럼 갑자기 뻥! 하는 건 힘들다.

4. 범인 검거

대선 전날에 대한항공 DC-10 특별기 편으로[11] 대한민국에 도착한 김현희. 자살을 막기 위해 재갈을 물리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상태이다.[12][13]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 승객 2명이 출국을 시도하다 위조여권 사용으로 검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14] 즉시 이들이 검거되었다.[15] 검거된 남성의 신원은 70세의 노인 하치야 신이치(蜂谷 真一, 본명은 김승일(金勝一)), 여성은 25세의 하치야 마유미(蜂谷 真由美)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담배갑에 숨겨두었던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하치야 신이치는 사망했으나 하치야 마유미는 앰풀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16]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17]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국내로 압송 할 수 있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추가 조사를 벌여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수법은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 해당 비행기는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 됐다.

북한에 남아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은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자 김정일의 지시로 모두 요덕 수용소보내졌다. 이는 1995년 성혜랑[18]이 아들 이한영[19]과의 전화 통화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 신문 기사.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 당국에 붙잡힌 김현희 소식을 듣고 여자는 요물이다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해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미국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1월 15일에는 MBC에도 출연했다. 당시 방송분의 일부.[20]

이 사건 후, 수뇌부에서 특전사, 707특임대를 북한에 침투시켜서 북한의 핵심 표적에 대해 응징하는 보복작전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결국 작전 계획이 실제로 실시되진 못했다.

2019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당연하다는듯이 항공기 폭파를 남한의 조작이며, 당시 당 서기였던 황장엽과 루디 아른트 유럽의회 사회당 그룹의장의 북한 방문 때 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황장엽 당시 당서기는 아론트 그룹의장에게 한반도 분단은 외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특히 1987년 11월에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 유럽의회가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데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으며, 그는 이 사건이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듬해 1월 중앙아프리카의 외교행사장에서 오경환 당시 북한대사가 김승호 당시 한국대사에게 "남조선이 도전적인 태도로 나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오늘밤 죽여버리겠다"고 폭언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산케이신문이 KAL기 폭파 사건을 남북 지도자를 변태 성욕자로 묘사하는 만평에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외교 경로를 통해 편집장 파면과 만화가와의 계약 해지, 산케이 그룹 회장의 사죄, 사과문 게재 등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산케이 서울 지국을 폐쇄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결국 산케이 그룹 의장이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방문해 사과하면서 우리 측 요구가 관철됐다.#

5. 형사 재판

이 판결의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 1990. 3. 27. 선고 89도1670 판결

[국가보안법위반,항공법위반,항공기운항안전법위반][집38(1)형,660;공1990.5.15.(872),1017]

【판시사항】

가. 성장교육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관념으로 인하여 행위자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강제되는 경우가 형법 제12조 소정의 강요된 행위에 포함되는지 여부(소극)

나. 공범자가 범죄의 부수적인 일부의 실행에만 가담한 경우 공동정범의 성부(적극)

다. 다수의 승객이 탑승한 국제민간항공기를 폭파시킨 범인에 대한 사형선고가 무거워 부당하다는 주장을 배척한 사례

【판결요지】

가. 형법 제12조에서 말하는 강요된 행위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 등 다른 사람의 강요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의 성장교육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내재적인 관념 내지 확신으로 인하여 행위자 스스로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강제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경우까지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나. 형법 제30조의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라 함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의 실행에 공동가공한 경우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고, 수인이 공동하여 범죄의 실행을 모의하고 그 공동의사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모의자 사이에 역할에 차이가 있어 모의자 중의 일부가 그 범죄의 부수적인 부분의 실행에만 가담한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다. 피고인이 그 성장교육과정과 그후 밀봉교육에서의 사상주입으로 사실상 인간도구화된 하수인이 되었고, 귀국후 참회하고 있으며, 이 사건 진상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증인이더라도 다수의 승객, 승무원들이 탑승, 운항중인 국제민간항공기를 이른바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하여 폭파, 희생시킨 범행의 실행에 직접 가담하여 실질적인 임무를 분담, 수행하고 그로 인하여 귀국중이었던 다수의 해외 근로자와 항공기 승무원 등 115명의 인명이 살해되었다면 이는 극단의 비윤리적 행위로서 국제협약에서도 이를 엄중한 형벌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으며, 결국 대한민국의 존립, 발전 또는 기능을 침해 내지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음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제1심판결의 양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

이 판례는 형사법상 책임조각사유로서 강요된 행위(형법 제12조)를 부정한 사례로서 의미를 가진다. 즉 '어떤 사람의 성장교육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내재적인 관념 내지 확신으로 인하여 행위자 스스로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강제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경우'까지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이 일종의 확신범으로서 형법 제12조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례의 주문과 이유 부분에 대해서는 판결문 전문을 참조 바람. 판결문 전문

6. 테러의 목적은?

학계의 의견은 확고하다. 정설은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당시에 확증은 없었지만 사건 발생 1년 전인 1986년에 발생한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기 위한[21]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었고, 서울 올림픽 유치 직후부터 북한은 올림픽 경기 일부를 할당해 달라는 개드립을 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KE858기는 폭파 당시 올림픽 특수 도장을 하고 있었다.[22]

2019년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대응책으로 이듬해 1월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해 KAL기 사건 관련 대북 규탄 여론을 만들기 위한 특별대책반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당시 서기관이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사무관이던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 1차장 등도 참여했다.

정부는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뿐만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무역기구(WTO) 등 거의 모든 국제기구를 상대로 대북 규탄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2020년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결국 ICAO 이사회에서 규탄 결의가 채택됐지만 '북한'은 명시되지 않았고, 외교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고, 북한은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는 상반된 평가를 낳았다.#

특히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자유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진영보이콧해 '반쪽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1988 서울 올림픽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중국소련[23]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급했던 북한은 공산 진영의 참가를 막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비행기에 중국인이나 소련인이 한 명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소련이 빡쳐서 전쟁걸 듯

이로 인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에도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갖고 도발한 일이 있고 해서, 유사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을 생각해 인천국제공항이나 외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국적기에 대한 보안과 경계를 임시로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일단 테러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7. 음모론

사건 2년 뒤인 1989년에 국내 사회과학출판사 '도서출판 힘'에서 반미청년회 자주언론팀 수집 자료를 토대로 낸 책 <의혹 속의 KAL기 폭파사건>을 필두로 하여 이후 딴지일보 기사로도 다뤄진 적 있으며, 가톨릭계 뉴스인 '지금여기'에서는[24] 안기부 소행이란 제목으로 기사[25]가 다뤄지기도 했다.

하필이면 13대 대선 직전의 가장 민감한 시기에 터진 테러라서, 여당의 승리를 위한 한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많이 퍼졌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황상 음모론은 그냥 음모론으로 보는게 맞다.

초기 음모론은 단순 사고로 실종된 대한항공기를 남한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몰고 갔다는 단순한 이야기[26]였는데, 점차 음모론이 정교해져서 '사실은 남한에서 일부러 폭파시켰다'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새롭게 조사에 착수했을 때 이런 류의 음모론 소설이 난무했는데, 실제로 이 음모론을 밝히려고 직장까지도 포기하고 전 재산 날리신 분도 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월간 인물과 사상에 글 올린 전직 공무원 아저씨 등 일부 유족들은 지금도 '김현희를 자신에게 직접 넘기면 진상을 밝히겠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유족들 앞에 나타난 이철승이 대놓고 빨갱이 드립을 날리다가 스스로 욕처먹을 일거리만 늘려버린 적이 있다.

음모론의 핵심은 대한항공 858기의 탑승자 시신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고, 블랙박스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좌우지간 증거가 개인의 증언 뿐인데, 은폐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단 공중 폭발이 아니더라도 망망대해에 떨어진 항공기는 파편이라도 발견하면 다행인 경우가 많다.

또다른 의문점은 김현희의 폭약의 양에 대한 증언 신빙성이다. 범인 당사자의 증언으론 컴포지트 250g이라 했는데, 사실 이 250g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폭파 효과가 아니라 은닉 수단이었다. 이 폭파 과정에서 언급된 양은 C4 350g을 파나소닉 휴대용 라디오에 숨기고, 액체폭탄인 PLX 700cc는 술로 위장했다고 언급을 했다. 그런데 C4 350g이면 파나소닉 라디오의 내부를 텅 비워야 간신히 들어갔는데, 김현희는 라디오가 정상 작동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C4 350g 설이 파기되고 250g으로 줄어들어서 다시 발표되었다. 나중에 이 분량이 안기부 추정치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정형근 당시 수사본부장에 의하면, 김현희에게 들은 것은 '라디오에 고체폭약을, 그리고 술병에 액체폭약을 넣었다'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을 듣고 그럼 고체는 C4이고 액체는 PLX로 결정짓고, 이 정도 폭발이 되려면 얼마나 필요한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27]해서 용량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즉, 비행기가 터질 만한 용량을 설정한 것이 초기의 350g, 700cc였다는 것이고, 350g이 라디오에 은닉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라디오가 정상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용량인 250g이 다시 설정된 것이다.

이 폭약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후 청문회에서 다시 언급할 정도로 논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다만 고성능 폭약이라면 250g으로도 항공기 대파가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으며 대파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이 점도 고려해야 한다.[28] 순항고도에 오른 항공기는 작은 동체 균열로도 충분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이 여러 항공사고로 증명되었고, 여압이 깨진 것만으로 조종사가 기절하여 추락한 사고도 있었기에 350g든 250g든 항공기 폭파라는 사실 자체가 뒤집힐 정도의 오류는 아니다.

폭파 지점에서 좀 먼 곳의 승객은 시신이 온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폭발 지점은 뱅골만 한복판으로 한국의 서해, 동해, 남해 면적을 합친 거보다 더 넓은 바다에서, 게다가 정확히 어디서 폭파되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신을 1구라도 찾으면 그게 더 용하다. 블랙박스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태국-버마[29] 국경 카렌족(람보4의 그 카렌족이 맞다)의 추락 목격 신고에 따라 육지 수색에만 전념하느라 7일을 허비했다. 이후 생각을 바꿔 해상 수색으로 전환하지만 3일만에 포기한다. 이유는 수심이 너무 깊고 유속이 빨라 정확한 위치를 추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블랙박스를 찾기가 어렵고 상어 등에 의해 이미 훼손되었을 테니[30] 시신을 찾을 가능성도 거의 없을 거라서.[31][32] 물론 이 시기에 조사 내용들은 아직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부에서 한 내용이라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겨우 불확실한 제보로 정글을 해맨 것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33] 또한 합동조사단에는 항공기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교통국의 직원들은 없었다.[34] 진실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수사한 것이라는 의심은 나올 수 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유류물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행기 폭파는 확실했고, 김현희도 잡아놨는데 폭파된 비행기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으니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정당의 똥줄이 타들어가는 상황, 이때 증거물 2가지가 발견되는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첫 번째는 한국 배 다곤 1호[35]에서 발견한 구명보트였다. 여기서 발견한 배의 국적을 왜 강조하느냐면 당시 버마 정부는 사고 해역에 선박 1400여 척, 쾌속정 4척, 전투기 28대, 민간 비행기 8대, 경비행기 1대를 동원해서 수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최초 발견자는 지나가던 한국 선박, 그것도 느려터진 화물선이었으니...

당시 가장 유력한 유류품이라고 발견된 이 노란색 구명보트는 인조피혁으로 제조된 것이었는데, 개어진 형태였으며 내부의 49가지 물품도 멀쩡하게 발견되었으나, 공중 폭발 시의 파편이 공기압축펌프만 파손시킨 상태였다. 당시 유일한 증거품으로 제시된 이 구명보트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유류품은 사건 이후 2년이 지난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이번 발견품은 기체 파편. 가장 발견 확률이 낮은 기체 파편,[36] 그것도 정확하게 증거가 되는 자료만 딱 발견된 것이다. 일본 아사히 TV에서 미국 MIT 대학 항국우주학과 존 한스만 박사는 이 파편에 대해서 폭발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했다.[37] 그리고 이 자료는 서둘러 폐기해버려서 또 한 번 의구심을 모았다.

이 모든 음모론의 중심에는 김현희 본인에 있었다. 김현희는 정말 그 철저하게 훈련받는 북한공작원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 오락가락하였고, 행적에 의문이 많았다. 앞서 언급한 폭탄 양에 대해서도 김현희의 입에서 나왔고, 김현희가 증언한 사소한 개인사는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졌다. 조작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예를 들어서 북한 내 주소를 평양시 문수구 문수동이라고 했는데, 평양에는 문수구역이나 문수구, 문수동이 없었다. 부친의 직업을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밝혔는데, 이 역시 북한에 없는 직책이었다. 가장 압권이 김현희 사진조작 사건이었다.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의 핵심은 북한에서 찍은 사진에 김현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증거로 나온 것이 사진 3장이고, 김현희는 자신이 4번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북한 출신인 정희선이 4번은 자신이고 3번은 김송희라고 밝히면서 거짓이 증명되어 버렸다. 이 후 이 사진 3가지는 변조다, 아니다, 누가 누구다 하고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현재는 김현희는 3번으로 추정되면서 김현희가 북한에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라는 중간결론이 나왔다. 다만 당시 꽃을 받은 인물이 왜 이동복이었다가 장기영으로 바뀌어서 알려졌으며, 김현희는 왜 자기를 잘못 지목했는지[38], 그리고 진짜 저 3번째가 김현희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결론이 나왔다.[39] 후술하는 자신의 자서전 초판에서도 출판 직후부터 위의 주소같은 오류가 수십군데에서 발견되었고, 그리고 이 오류들이 모두 수정된 재판이 다시 나왔다. 이 자서전도 소설가 노수민이 대필[40]한 것이라는게 나중에 알려졌지만, 기본적으로 김현희의 구술을 받아서 쓴 것인데, 왜 이렇게 기초적인 신상명세부터 오류가 많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즉 김현희는 오랜기간 강도높은 특수공작원 교육을 받은 엘리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데서 허술한 측면을 너무나도 많이 드러냈다. 이와 같이 굳이 속일 필요없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유년 시절 및 가족 관계와 같은 정보의 진위성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사건이 정부측에서 꾸민 것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김현희를 중심으로 한 사건 진상 재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한이 실수로나마 이 사건을 일으켰음을 시인했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북한의 리근 외무성 미국 국장이 우리 측 관계자와 사석에서 대화 중에 "우리는 KAL기 폭파사건 이후로 테러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인데, 잠깐. 그럼 KAL기 폭파 사건은 지들이 했다는 거 아닌가?

또한 이 사건을 추적한 일본 기자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국 입국을 막아버린 것도 음모론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김현희가 어린 시절 화동을 했다라고 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사진에 대해서 나중에서야 실수라고 번복했기에 음모론을 정부가 더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김현희가 결혼한 상대가 사건 당시의 수사관인 것과, 항공기 폭파 사건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면 왜 사형 당하지 않았냐는 것, 그리고 그 당시 땡전뉴스이던 언론들이 김현희에게 묘하게 호의적이었다는 것도 있다.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독재정권과 수구언론들이 북풍색깔론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옥죄어왔던 것이 마치 부메랑처럼 이런 음모론으로 돌아와서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계속 거짓말만 하니 마지막엔 진짜 늑대가 왔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시큰둥했던 것처럼... 매번 선거 때마다 간첩단 사건이 터지고, 정권이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전가의 보도처럼 북풍몰이를 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사건들이 대부분 독재정권의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더더욱 신뢰가 떨어진 것이다. 금강산댐 수공 조작,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민청학련 사건 같은 조작 사건이 한두개가 아니다보니 이제는 다들 콩으로 된장을 쑨데도 안믿는 지경까지 가버려서, 이제는 그 시절 북풍과 색깔론의 피해자들이 집권해서 '이건 정말 북한이 저지른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려도 못믿겠다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따위는 하찮게 보는 테러국가, 막장국가라는 북한의 본질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천인공노할 사건인데 오히려 군사정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어설픈 음모론이 생겨나버렸고, 이제는 오히려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묻힌 일이 돼버렸다.

훗날 참여정부의 재조사에서 당시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 후보의 선거 승리를 위해서 북한 소행인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무지개 공작을 진행한게 확인이 되었다. 테러범 김현희를 대선 직전에 송환해서 국민들 앞으로 세워서 북풍을 자극하고 불리한 대선 판도를 뒤집자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실제 1987년 대선에서 김현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김영삼이 선두였다는 것이 2007년 공개된 미국 비밀문서에서 확인되었다[41] 이는 국정원 진실조사 위원회의 재조사에서도 또 한번 확인 되었다.

당시 사건 담당 공안검사였던 이상형 변호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저한 증거주의 및 논리에 입각하여 김현희의 선고가 이루어 진 것이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재판에서만 공개된 확실한 증거들은 훨씬 많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사진의 경우 문제가 있었던 건 맞지만 곧바로 제대로 된 다른 사진이 확보되어 실제 증거 확보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모론에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김현희 압송 시점 또한 대선을 하루 앞둔 것은 바레인 당국에서 압송 허가를 내줬을 때 시점이 하필이면 그때였고, 가뜩이나 어렵게 이뤄낸 허가인데 압송을 곧바로 진행하지 않았다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 보니, 국내 일정과는 관계 없이 가능한 대로 당장 데려오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김현희를 압송해서 국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것도 선거 전 날에 공개적으로 생중계한 것을 볼 때 이 부분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작전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9년 공개한 외교문서

그리고 사형 당할 김현희가 갑작스레 사면된 이유는 '그녀 자체를 살아있는 증거'로 남기고자 했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다. 김현희가 재판 받을 당시에 이미 안기부 측에서 운동권을 중심으로 '김현희는 가짜'라는 내용의 음모론이 퍼지는 것을 것을 감지했었으며, 대통령의 재량으로 김현희를 사면시켜 안기부의 보호를 받으며 안보강연 등의 활동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만약 정말 안기부가 그녀를 이용해서 조작을 했다고 친다면 차라리 사형 집행을 서둘러 하여 영원히 입막음하는 게 훨씬 더 완벽했다.[42] 만약 당시 김현희가 곧바로 사형되었다면 음모론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식으로 변형되어 퍼졌을 텐데, 오히려 이건 정말 음모론 중에서도 탄탄한 기초가 되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하는 미궁으로 빠지고 북한의 테러라고 믿는 쪽과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믿는 쪽이 극심한 대립을 하며 사회 혼란만 가중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도 사건이 더더욱 입에 오르내리며 유가족들은 더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43]

다만 살아있는 증거로 남기고 싶었다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만 시켜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죄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음모론과는 별개로 '김현희 덕에 선거에서 이겼으니 고마워서 사면해준 것'이라고 비꼬는 의견도 상당하다. 실제 사면 과정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김현희의 감형안도 거론되긴 했었으나, 수감 중 심경의 변화가 생길 수 있고 관리가 어려우며 감형 후 다시 사면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세 가지 이유로 사면이 되었다고 한다. 교도소보다는 정보기관에서 평생 관리하는게 훨씬 확실하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수십년간 수감되던 비전향 장기수들도 아직 남아 있던 상황에서 대규모 테러가 비전향보다 그 죄질이 가벼웠는지는 의문이며 더불어 비슷하게 출소한 김신조의 경우 사람을 죽이기 않은게 확인되었는데 김연희가 과연 김신조 정도로 죄질이 약했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사건은 조작되지 않았지만, 당시 군부독재정권이 대선 승리를 위해서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한게 오히려 음모론을 부채질했다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의 재조사에서도 북한의 명백한 테러로 다시 한번 결론이 났기에 안기부 자작극 혹은 미국폭파론 같은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겨레에서도 기사와 같이, 김현희 자체는 진짜임을 전제한다. 2018년 사설에서도 폭파범 김현희씨라고 정확하게 나온다. 자주민보, 미디어오늘 같은 언론에서 항공기 테러 자체가 당시 안기부의 소행이라는 음모론이 나오긴 하나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44]. #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 살상한 테러범인데도 혼자 살아남아 반공투사 마냥 활동하는 김현희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아래 링크된 월간조선의 기사에서 보이듯, 엄연한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치 좌파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받은 피해자로 행세하면서 유가족들을 종북으로 모는 것에 대해서는 여론의 반감이 심하다. 언론에 나타나서 국민과 유가족의 어그로를 끌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진정한 사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사람을 그리 죽여놓고 정권의 비호하에 살아났으면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나 댓글이 수시로 나온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김현희가 폭파범이기 때문에 김현희의 반공투사 코스프레에 대한 비판이 합리적인 것이다.이 사건 자체가 국정원의 날조였다면, 김현희에게 저런 비판을 절대 가할 수가 없게 된다. 다만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방조 등의 역할이었어도 국민적 비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못하는 것도 당연지사이다.

7.1. 납북 일본인에게 일본교습을 받은 김현희

김현희가 진짜 북한간첩인지에 대한 의문에 하나의 답을 줄만한 사건이 납북 일본인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관련된 논의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기이한 실종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대부분이 젊은 20대 남녀였으며[45] 모두 해안가 근처에서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납북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80년 산케이신문의 보도였는데,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며 한국 정부 측에서 이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 측에 귀띔을 했지만 일본에선 사실상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웃어넘길 정도였고 누구도 인정조차 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들어 일본 경찰공안 당국은 본 문서의 사건의 주범 김현희의 증언을 시작으로 북한 출신의 탈북자와 망명한 북한 공작원, 북한으로 갔다가 돌아온 재일교포, 일본인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정부가 일본인들을 계획적으로 납치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1955-1986?, 당시 22세)는 1978년 6월 29일 납치되었다. 도쿄의 음식점 점원으로 1984년 오사카 중국 요리요리사였다가 납북된 하라 타다아키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86년 남편이 병사하고 같은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 홍수로 묘지가 유실되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이은혜라는 여성에게 일본인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증언하자 몽타주를 그리게 하여 88년 일본 각지에 '1980년 이전에 행방불명된 이 여성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대대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91년에 들어 1978년에 실종된 타쿠치 야에코가 '이은혜'와 동일인인 것으로 추정했으며, 김현희와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교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일본 조사단이 서울에 수감되어있던 김현희와 직접 면회, 동년배 여성의 사진 10장을 뿌리고 이 중에서 교육관이었던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했을 때, 김현희가 타쿠치 야에코의 사진을 보고 정확하게 '이 사람'이라고 얘기함으로써 타쿠치 야에코=이은혜가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북한은 타구치 야에코가 이은혜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납북 일본인 관련 글

북한은 이은혜로 하여금 김현희 씨에게 일본어와 관습을 가르쳐 그를 일본화 했다. 김현희씨가 이은혜 선생으로부터 일어를 배운 것은 그가 대남전복활동과 테러를 할 때 일본인으로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김현희 씨에게 일어와 일본습관 등 일본인화 교육을 한 이은혜에 대해서는 김현희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제1부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녀는 1978~79년경 일본해안에서 피랍, 선박편으로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은혜의 신원은 한․일수사기관 공조수사로 1991년 5월 비로소 자세하게 밝혀졌다. 그는 도쿄 도요시마에서 거주하던 타쿠치 아예코(당시 22세)라는 여성이며 여상고를 중퇴했고 재학당시 배구선수로 활약했으며 그후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할 때 <치도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타쿠치(은혜)는 1978년 북한에 납북돼 1981년 7월 4일부터 1983년 3월까지 평양부근 동북리 3호초대소에서 김현희씨에게 일본인화 교육을 담당했다. 김현희씨는 1991년 서울을 방문한 일본경찰과의 면담때 타쿠치의 사진을 정확하게 골라냄으로써 타쿠치의 납북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김현희와 이은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는 1970년대~1980년대에 주로 일어났다. 이에 일본은 북한측에 납치 문제를 강력히 문제제기했지만 북한은 그간 납치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그러다 북한은 2002년 1차 북일정상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납북 사실을 시인하게 된다.

북한은 납북자 중 5명이 생존했고 8명이 사망했으며 2명은 납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5명의 생존자와 함께 2명의 사망자 유골을 일본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은 나머지 6명의 사망자 유해는 홍수로 유실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측의 확인 결과, ‘8명은 사망, 2명은 납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무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확인과정

요약하자면...북한이 일본인을 십수명을 납치하고, 간첩 양성등에 활용한 사실에 대해서는 80년대 한국, 일본 당시 모두 그다지 자세히 알려진게 없었다. 그러나 김현희의 이은혜라는 일본인에 대한 증언 이후에, 1988년경 일본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이슈가 되고 본격적인조사가 들어간것이다.

김현희의 증언으로 몽타주를 그린 이후에 일본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조사하다보니 타쿠치 야에코라는 일본인 실종자와 유사하다는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1991년 일본의 조사단에 의해서, 김현희가 10장의 사진중 타쿠치를 정확히 찾아냈으니 일본정부는 타쿠치가 납북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거기에 2002년 북한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납북자 신원을 공개하면서, 타쿠치 야에코의 납북도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사실 보통 김현희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하는 측에서는 이은혜의 존재에 대해서도 김현희의 주장뿐이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즉, 타쿠치 아에코가 납북자인 건 맞지만 김현희가 말한 이은혜는 타쿠치와 동일인이 아니거나 이은혜 자체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 [46]

그런데, 김현희가 북한과 무관하고, 이은혜라는 일본인도 상상의 산물이라면. '김현희의 상상으로 만든 이은혜라는 가짜 몽타쥬를 만들었더니,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타쿠치 아에코라는 실종자가 나왔고 하필 그 실종자가 진짜로 납북자였다'는 것이 되는데 정말 정말 희박한 확률일 수밖에 없다.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이 아니고 안기부의 공작관련인사라는 주장대로라면, 안기부가 다른 경로를 통해 납북자였던 타쿠치 야에코의 신상을 미리 파악하고 김현희 시켜서 공작을 시작했다는 건데 안기부의 북한 정보 수집능력이 그 정도로 대단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소한 김현희가 실제로 북한출신이다라는 것은 인정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납북 일본인 항목을 보면 나오지만 한국 안기부는 이미 1980년부터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는 것이 반론을 제기하는 측의 근거이다.

7.2. 유족들의 반응

애초에 진상조사 자체가 유족들의 줄기찬 요구로 시작되었다. 참여정부 국정원의 고위관계자는 피해 유족의 지속적인 조작 의혹 제기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민관합동 조사를 벌여 북한의 지령에 의한 테러로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 그 이전에 승객 유가족들의 사고 현장 방문 계획에 대해 정부가 수색에 방해가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에 김현희가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납북 일본인 가족과 만나고 납북자 인권에 대해 언급을 하는 활동을 했는데 김씨가 유족들에게 사과는 하지 않은 채 납북자 인권을 말하는데 대하여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구제적인 증거를 제시해 폭파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

김현희가 '가짜 공작원'설을 언급하며 방송에 자주 출연하자 유족들은 크게 분노했다. 유족들은 김 씨의 '가짜 몰이'에 대해 반박을 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김 씨가 직접적으로 사과한 적도 없고 의문점에 대해 답변한 것 하나 없으면서 이제와서 자신들을 좌파 종북으로 몰아간 이유가 뭐냐고 맹공했다.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인수위에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상규명대회와 추모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김현희는 참석하지 않았다. #

2018년 07월 23일 KAL858기 희생자 가족회와 진상규명 대책본부에서 김현희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지속적으로 종북좌파로 매도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2018년 11월 20일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대책본부는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시 사건 조치과정에서 안기부가 사건을 주도했다며, 제주 4.3 사건이나 5.18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에 버금가는 국가적 재난이었던 만큼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하며, 피해자들의 명예도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8. 재수색 요청

2018년 11월 20일, 사고 31주기를 맞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고 현지의 전면 재수색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이 사건의 대처 등에 대해 재조명하는 방송을 2018년 11월 29일에 진행했다. 이어 KAL858의 사고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47]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 이후 유가족 모임인 'KAL858기 가족회'는 정부에 수거한 잔해의 검증과 사고 지역에 남아있는 잔해들의 국내 반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했다.

가족회는 “정부와 대한항공사 사장은 지난 1987년 12월과 1993년에도 유해유품잔해들을 찾아 인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속서 13에 새로운 잔해와 중요한 잔해가 사고 지역에서 발견될 경우 재수색과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의 청원은 담당부서인 국토부 소속 항공철도조사위원회로 넘어가 있으나, 사건의 규모로 볼 때 이 위원회에서 결정될 일은 없으며, 국토부, 외교부, 청와대 등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고위관계자는 KAL기 폭파사건이 테러로 규정되어있는 것이 재수색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2019년 2월 19일 유족들은 대한항공 서소문빌딩 앞에서 사고 지역에서의 재수속을 통해 희생자 115명의 유골과 유품 수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추가 수색이 가능한지, 수색에 나선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2019년 2월 20일 정부가 추가 수색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KAL 858기 폭파사건' 유해 수습·잔해 인양 수색 검토

2020년 5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단독 보도에 의하면 정부가 대구 MBC 취재진이 발견한 추정동체를 미얀마 현지조사하기로 결정하고 미얀마 정부와 협의중인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정부가 미얀마 정부에 제안한 방안은 한국 정부와 미얀마 정부의 공동조사, 한국 정부의 단독조사, 미얀마 정부가 단독조사하되 장비와 인력을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방안이라고 하며 어느쪽이든 미얀마 정부와의 협력하에서 진행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2020년이 한국과 미얀마의 국교 수립 4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이 친서를 교환했으며 양국 외교부장관 사이에 전화통화도 이뤄진 만큼 양국 관계는 우호적 분위기인지라 미얀마 내부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현지조사는 물론 인양까지도 가능할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이 나온다. 현지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우선 대구 MBC 취재진이 발견한 추정동체가 과연 대한항공 기체가 맞는지 대한항공의 엠블럼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전망이며, 이런 조사를 통해 KAL 858기임이 분명해진다면 이후 인양작업으로 이어질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8.1. 33년 만의 추정동체 발견

2019년에 대구MBC가 사건 32주기를 맞아 이 사건에 대한 연속 보도를 하면서 사건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KAL 858기 실종사건의 진실은? 플레이리스트 이후 특별취재팀을 꾸려 취재한 끝에 2020년에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KAL 858편 동체로 추정되는 잔해를 33년 만에 최초로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KAL858기 추정 동체 최초 발견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1월 23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이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취재기자에 의하면 원래는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위해 미얀마의 위안소에 대해 취재하러 갔다가 의도치 않게 현지의 저인망 어선 어부들을 통해 추정동체가 있는 구체적 좌표를 입수했고 수심 50m 지점에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또한 동체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어 블랙박스를 회수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MBC 보도가 잇따랐다.

이후 MBC는 2020년 5월 8일자 방송을 통해 지난 2월 탐사에서 KAL858기의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엔진과 동체 잔해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히며 해당 영상들을 공개했다.# 추가 탐사 결과 비교적 비행기 동체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80년대 말 정부 발표대로 기체가 공중폭발 해서 수직낙하 했다면, 형태가 이렇게 보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엔진이 날개에 붙어있는 것으로 볼 때, 충격은 상당히 마일드했으며 착륙시도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

9. 미디어

신상옥 감독이 부인 최은희와 함께 납북되었다가 탈북에 성공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만든 반공 영화가 바로 마유미이다. 영화 만추에서 현빈의 애인 아줌마로 나오는 김서라[48]가 주연을 맡았고 북한의 공작, 선량한 여러 근로자들이 대한항공기를 탑승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일본과 합작으로 특촬 기술로 나름대로 재현했다.시청주의. 무엇보다 김서라는 김현희와 비슷하게 생겨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보잉의 거부로 영화에서는 실제로 폭파된 비행기와 기종이 다른 비행기가 나왔다.[49]무엇보다도 탑승객들이 죽어가는 적나라한 장면 묘사[50]로 유가족들에게 욕을 무진장 먹었다.[51] 실제로는 이렇게 안 죽는다. 불타는 기내에서 죽는 것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피부나 팔, 다리, 옷이 찢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옷 정도가 바람에 의해 찢어질 수는 있겠지만, 인체는 생각보다 튼튼하다. 오히려 저기압으로 인해 산소부족과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도대체 고증인지 고어인지 헷갈릴 지경. 게다가 미얀마 앞바다에서, 폭파의 흔적이 거의 없고, 비스듬히 착륙하는 형태로 물 속에 가라앉은 동체가 발견됨으로서 해당 영화는 악의적 상상력을 동원한 고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당시에는 워낙 큰 충격이었기에 1988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첫 방영된 KBS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시즌 2에서도 이 사건을 주제로 반공물 에피소드를 다루기도 한다. 둘리와 도우너가 영희까지 끌어들여 우리나라 여객기를 폭파시킨 나쁜 놈들을 혼내주러 북한으로 쳐들어가기 위해 뻘짓을 하는 내용이며, 실제론 휴전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52] 온갖 사고만 치며[53] 고길동등골 브레이커로 활약하지만, 얼떨결에 한강잠수정으로 침투하여 KAL기를 한 대 더 까부수려던 무장공비 2명과 마주쳤고 도우너가 이들을 떡실신 시키며 자진 항복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들을 검거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둘리 일행은 자기들이 이룬 공적을 끝까지 모른채 또 북한을 혼내주겠다고 말썽을 피우다 혼나는 것으로 엔딩이 난다. 원작은 좀 다르게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고, 대상도 북한이 아닌 소련이다. 이건 원작에서 이 에피소드가 연재된 시점이 1983년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납치 문제와 연계되는 일이라 일본에서 극화가 꽤 많이 되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보다 오히려 연출력과 고증은 일본 TV 드라마가 낫다는 평이다.

2015년에 연재된 강풀무빙16화 프리퀄에서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이 사고로 추정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증오류로 극중 나오는 대한항공기는 구도색을 하고 있다.[54]

김현희 자신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년-고려원)"라는 회고록을 남겼는데[55] 제법 볼 만하다. 1급 간첩의 확보가 얼마나 방대한 대북 정보를 알려주는지 여실히 알려주는 책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북한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 '내 영혼의 눈물'은 동유럽 지역을 돌고 돌아 잠행 하다가 858편을 폭파시킨 이야기이다. 일부에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동유럽 지역명이나 호텔명 등 대부분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주로 딴지일보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2권 '꿈꾸는 허수아비'에서는 김현희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데, 꽤 부유한 집에서 잘 살았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관건은 잘 사는 집이니 어렸을 때 뽑혀서 위에서도 나오는 화동으로 남한측 대표에서 꽃을 전달 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진실 공방이 있다. 책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 있다. 특히 기존의 어렵게 살던 탈북자가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탈북했다는 내용 대신, 부유층이며 부러움 하나도 없이 행복했던 이가 간첩이 되어 가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회고록이 나오기 전인 1988년 덕문출판사에서 강인철이 쓴 "언니 미안해"라는 소설 형식의 책이 나왔다. 이 '언니 미안해'라는 말은 김현희가 안기부 여성 조사관과 며칠을 같이 지내는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때 맨 처음으로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근데 꽤 골 때리는 것이, 계몽사에서 이 책을 좀 간략하게 다듬어서 동명의 동화책을 냈다. 내용은 어느 국민학생 여자아이들이 마유미, 즉 김현희에게 편지를 썼고, 안기부가 이들에게 김현희와의 데이트를 주선해주는 댓가로 담임 선생을 통해 반공동화책을 내줄 것을 요구, 그림자의 감시 속에 김현희와 아이들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김현희의 인생역정을 듣는다는 꽤나 흠좀무한 내용. 김현희의 출생, 성장과정, 공작원 교육, 김정일에 의한 858기 폭파 작전 입안과 실행 등이 제법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56] 헤어질 때 아이들이 마유미에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마유미는 대통령 특사 외에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담담히 대답하는 장면이 클라이막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설명으로 끝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동화책이다! 하긴 계몽사의 이 창작동화집 중에는 영덕-강구 전투중에 수류탄으로 전차를 때려부순 이명수 상사를 다룬 이야기도 있다.

인간 김현희에 대한 탐구서로는 조갑제의 인터뷰가 있다. 2012년에는 조갑제, 김현희 둘이서 같이 TV조선출연하기도 했고, 조갑제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월간조선도 김현희와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자주 싣고 있다. 월간조선 김현희 인터뷰 기사

뉴스Y가 2014년 8월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사고와 관련해서 전문가랍시고 김현희를 패널로 초대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오자키 유타카가 1990년 발표한 5집 앨범 '탄생'의 수록곡인 '銃声の証明 (총성의 증명)'은 김현희를 모델로 삼고 지어진 노래이다.

후지모토 겐지가 쓴 책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도 이 사건이 잠깐 언급이 된다. 김정일후지모토에게 "우리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후지모토는 "나라에 하등 도움이 안 될 일을 뭐하러 하셨겠습니까?"라고 대답했는데, 같이 있던 고용희가 "그렇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꼭 우리 탓을 한다니까요"라며 맞장구를 쳤다고. 다만 후지모토 겐지의 주장은 조금 걸러 들어야 할 필요는 있다. 자세한 내용은 후지모토 겐지 문서 참조.

KBS스페셜에서 2004년 5월22일~23일 두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858편의 미스터리"를 방영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 다른 부분 여러 의혹들을 담은 다큐를 재편집하여 유튜브에 게시하였다. ##

대구 MBC에서 2020년 5월 1일, 8일 두 차례에 걸쳐 미얀마 해안에 추락한 동체를 화면에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으며, 취재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2부에 걸쳐 방영되었다. #

10. 기타

이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는 양재시민의 숲에 있다. 여담으로 뒷편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도 있다.

11. 관련 문서


  1. [1] 대한항공이 보잉에 첫 발주한 기체. 이전에 운용한 B707은 대부분 임차 받은 것이거나 중고를 사 들인 것이었기에 BCC가 다르게 나왔다. 대한항공에서 운용한 수많은 B707 중 이 기종 하나만 707-3B5라 불린다.
  2. [2] HL7406
  3. [3]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다이빙벨 투입 주장을 한 해난구조자.
  4. [4] 다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만약 그가 방조한 위치 등에 있었다면 그 자체로도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사건의 연루자로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덧붙여 김현희가 이렇게까지 자숙하지않는 모습은 그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5. [5] 인혁당 사건 및 민청학련 사건, 김형욱 실종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중부지역당 사건, 동백림 사건, 정수장학회 사건이 나머지 6개 사건이다.
  6. [6] 대한항공과 코드셰어된 티켓으로 추정된다.
  7. [7] 도피용으로 미리 여러 장소를 선정해 놓았다.
  8. [8] 이 기체는 대한항공 측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우선 1971년 대한항공 측에서 보잉에 직접 주문하여 인도받은 첫 번째 기체이다. 1971년 도입 초기에 신문광고에 실린 적이 있었으며, 또, 이 기체로 KE001/002편(당시 경로는 서울(김포) - 도쿄(하네다) - 호놀룰루 - LA)을 처음 개설했으며,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당시 헬싱키에서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특별기로 귀국된 적이 있었으며, 또한 1981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의 역할도 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까지 살아 있었다면 충분히 정석비행장에 전시되고도 남았을 기체였다.
  9. [9] KAL 보잉 707 위기일발(1977년 09월 14일 동아일보 7면)
  10. [10] 대한항공 여객기 동체 착륙(1987년 09월 02일 MBC 뉴스데스크)
  11. [11] KAL기 폭파사건 용의자 마유미, 서울 도착(1987년 12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12. [12] 압송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꽤 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수백 명을 살해한 공작원이라길래 험상궂은 인상을 생각했던 국민들은 의외로 곱상한 김현희의 모습에 놀라 "죽이긴 아깝다"란 반응을 보였다. 훗날 이 반응을 전해들은 김현희는 북한에서였다면 요물이라고 더 잔혹하게 죽였을 텐데...라며 희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3. [13] 이 대선 전날이란 절묘한 시점은 훗날 음모론이 피어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후술하는 '무지개 공작'을 참고.
  14. [14] 어떤 음모론에선 중간 기착지에서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우르르 내렸다고도 하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15. [15] 테러 용의자로 검거된 것이 아니라 위조여권사용혐의로 검거됨
  16. [16] 청산가리라는 네임드급 맹독성 물질을 바로 뺏기긴 했다지만 살아남은 게 용하다. 아예 섭취조차 못했거나 했어도 치사량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떠도는 카더라에는 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었다는 얘기가 있고, 담당 의사가 "쟤 쇼하는 거야"라고 슬쩍 흘렸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는 사지 멀쩡하게 자살에 실패했다.
  17. [17] 게다가 하치야 신이치, 즉 김승일의 허파에 박혀있던 2ml짜리 유리 파편은 1974년 다대포에 침투했다가 자결한 북한 공작원들의 부검에서 나온 청산가리 앰풀의 파편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치아는 북한에서만 쓰는 방식인 납으로 이를 땜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음모론자들은 1972년에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청산가리 앰풀을 소지한 적이 있는데 청산가리 앰풀이 뭐가 북한의 수법이냐고 주장했다. 청산가리 자살수법이 북한의 수법이라는 것이 아니라 부검 결과 나온 청산가리 앰풀 파편이 북한산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건데 기초도 알아 먹지 못한 무식한 음모론이라 하겠다.
  18. [18] 성혜림(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모친)의 언니.
  19. [19] 김정일의 전처였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이므로 김정일의 처조카였다. 1982년 9월에 탈북했지만 1997년 2월 북한 공작원에 의해 피살되었다.
  20. [20] 인세 8억 5천만 원을 유족들에게 내놓으며 용서를 빌었다는 기사. #
  21. [21] 폭탄 테러 발생일이 아시안 게임 개최일로부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22. [22] 이런데도 음모론자들은 당시 남한과 북한은 올림픽 개최에 굉장히 서로 협조적이었다며, 북한이 올림픽 개최에 훼방놓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23. [23] 소련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축구 등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국은 올림픽 5년 전의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 이후 대한민국과 관계가 조금씩 진전되는 중이었다.
  24. [24] 주교회의에서 관여하는 언론은 아니고, 일종의 민간 언론사이다.
  25. [25] 하지만 결론을 내리진 않아 음모론을 다루는 수준에 가깝다.
  26. [26] 과거 독재정권들이 워낙에 북풍몰이를 많이 해서 이 정도 수준의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 졌다.
  27. [27] 요즘처럼 수치적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단 의미가 아니다. 쉽게 말해 실제 실험 없이 가정을 통해서 추정했단 소리.
  28. [28] 미국도시전설 고증 프로그램인 '호기심해결사' 2시즌의 1화(7분 44초부터)의 부가 검증에서는 6.5g의 고체 폭약만으로도 폭약이 부착된 동체의 좌측과 상단이 완전히 날아갔다. 폭약이 설치된 앞 좌석은 아예 좌석이 통째로 분리되어 뒷좌석 위로 올라가있다.
  29. [29] 가장 걸작인 음모론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버마 지도자를 전두환 정부가 국빈 초청했고 당시 한국도 겁나게 가난한데 버마에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 버마 근처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당시 서로 군인 독재 정부가 들어선 한국과 버마가 뭔가 샤바샤바를 하지 않았냐는 음모론 오브 음모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건 거의 2차 창작 수준의 헛소리라...
  30. [30] 이 말을 한 말이 누구냐면 안기부 수사단장 정형근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너무 과장이 심했다. '수심 2000~3000m, 물살이 초속 300m, 상어가 득시글거린다'라고 주장했다.
  31. [31] 2, 3km 정도 되는 수심에서도 블랙박스가 발견된 사례가 있긴 하다. 심해잠수정으로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그마저도 포기 직전에 겨우 발견한 거지만... 문제는 그 경우는 최종 추락 지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치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애초에 무리다.
  32. [32] 2004년 일본 아사히TV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수심 70m(북위14도 45분, 동경 95도 38분), 물살 전혀 안 빠르고, 상어는 보이지도 않는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형근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이후 음모론은 더욱 거세졌다. 애초에 문제의 지역인 안다만 해의 평균 수심은 870m이다..
  33. [33] 다만 초기에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게 다른 미상의 추락기체의 잔해인지 그냥 설레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초동대응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뉴욕 타임즈 같은 외국 언론에도 분명히 나오고 이를 발표한 건 한국이 아니라 태국이다. 그리고 애초 어디 추락했는지 모르는 상태인데 목격자 진술을 '불확실하다'라고 말해봤자...
  34. [34] 음모론일 수도 있으니 출처 확인 요망.
  35. [35] 그것도 한국 해양공사 소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36. [36] 어디까지나 음모론자의 주장이다. 항공기 추락사고에서 가장 발견 확률이 낮은 것이 기체 파편이란 건 그냥 음모론을 펼치기 위해 조작된 개소리다. 추락 사고에서 가장 많이 발생되는 것이 기체 파편이고, 고열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고 사고 직후엔 일부 떠 있는 경우도 있는 게 기체 파편이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발견 확률은 원래 내려가는데, 그중에서도 다른 유류품들은 부식되거나 다른 부유물들과 구별할 수도 없게 돼버리기 때문에 일정 시기가 지난 후 그나마 발견 확률이라도 있는 건 기체 파편뿐이다. 당장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사고에서도 1년 4개월 후에 기체 파편 일부가 발견됐다.
  37. [37] 이 역시 인터뷰 일부만 발췌해서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다. 폭발 지점의 파편이 아니고 이후 그로 인한 기체 분해로 인한 파편일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기체 대부분이 발견되고 그중에 폭발로 추정되는 부분이 나온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아주 일부만 발견됐는데, 그거 가지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38. [38] 김현희의 주장으로는 자신이 4번째로 꽃을 주기로 했다는 것만 강박이 되어서 자기 얼굴 지목을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39. [39] KAL기 폭파사고 진실위원회 조사결과에서 가장 많은 의혹이 지목된 부분은 정치적 이용 논란과 함께 이 어설픈 북한 첩보원 김현희였다. 모든 행적과 언동에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40. [40] 원래 유명인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대부분 전문작가들이 당사자들의 구술과 주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대필한다. 비밀엄수를 조건으로 이런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고스트라이터(Ghostwrite)라고 한다.
  41. [41] 월간중앙 2010년 11월호 강준식의 대통령 열전.
  42. [42] 수지 김 사건 또한 기본적으로 피해 당사자인 김옥분이 사건 당시 이미 윤태식에 의해 살해되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국내에서 접근이 어려운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인 데다 오로지 윤태식의 진술만으로 증거가 시작되기 때문에 조작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43. [43] 김영삼이 암살되고 학생 시위에 이은 군부 내 쿠데타로 전두환이 물러가는 80년대 후반을 그린 '10월의 폭풍'이라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벌어지기 직전에 공작원이 자살하는 바람에 그때까지도 안기부의 조작이다. 아니면 북한의 실패한 테러 음모였다는 설이 대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딱 이런 스토리를 가정한 이야기다.
  44. [44] 결정적인 증거로는 러시아와 중국의 88 올림픽 참여다. 사건의 진상이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 그들이 안기부가 했다고 생각한다면 민간인을 테러 자작극의 희생물로 바치는 한국의 행보에 기겁해서 보이콧을 했을 것이다.
  45. [45] 10대 소녀와 50대 여성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46. [46] 인터뷰내용: 김현희는 과거 납북된 일본인 타쿠치 야에코가 북한에서 자신의 일본어 선생님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 타쿠치 야에코가 이은혜라는 한국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안기부가 내놓은 발표 내용은 김현희의 진술에만 기반한 것이다.​
  47. [47] 랜딩기어 부속품으로 추정
  48. [48] 당시 김서라가 스포츠서울에서 말하길, 극장으로 친구와 같이 보러갔다가 어느 아저씨가 마구 욕하면서 나오다가 친구와 언쟁이 벌어졌는데, 이 사람은 바로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유족이었다고 하여 김서라와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허겁지겁 나왔다고 한다. 김서라는 사건 당시 9시 뉴스 등에 나와서 김현희와 머리 모양이며 표정을 비슷하게 꾸미고 앉아 게스트 비슷하게 출연하기도 했다. 시켜서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닮은꼴 치고는 충공깽. 테러리스트 닮은꼴로 데뷔한 한국 최초의 연예인일 듯. 2015년 현재도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49. [49] B707이 아닌 A300이 나왔다
  50. [50] 그냥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비명을 지르고(비행기 뻥뻥 터지는 소리 빼곤 죄다 비명소리만 나온다) 어떤 사람은 팔이 찢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불타는 기내에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 등 적나라한 표현이 다 나온다.
  51. [51] 신 감독 자신은 북한에 간 후에 북한 영화 발전에 상당히 기여한 공로 때문에 남한으로 귀국이 어려웠고, 위장 귀순이라는 비난까지 받을 정도여서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이후 대한민국에 귀국했다. 《마유미》는 사실 신 감독이 자신의 충성심을 알리고자 만든 작품이다. 마유미 이후에 충성심을 검증받은 신 감독이 만든 작품이 바로 군사정변으로 대통령이 된 장군이 자기 부하인 정보부장을 지하실에서 총으로 처형하는 내용의 내용이다. 이 작품으로 무진장 비난을 받았다.
  52. [52] 보면 알겠지만 둘리 일당들은 도봉구 쌍문동고길동 집에 거주하는데 북한으로 간답시고 날아간 곳은 한강과 잠실 야구장 주변이다. 즉, 북한으로 가기는커녕 더 남쪽으로 간 셈이다.
  53. [53] 그와중에 되려 지들이 경찰에게 수상한 인간으로 찍혀 쫓긴다. 잠수정 간첩들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경찰이 둘리 일행을 쫓고 있는 와중에 둘이 한바탕 붙었기 때문이었다.
  54. [54] 1984년 CI 변경과 함께 현재의 하늘색 도색으로 변경되었다.
  55. [55] 사실은 김현희가 직접 쓴 책은 아니고 소설가 노수민이 대필한 것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56. [56] 다만 아버지의 직업이 앙골라 대사로 서술되는 등 어린이들이 대강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레인지 된 부분은 있다. 남북회담에서 꽃둥이로 나왔다는 주장도 그대로 차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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