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후

  고급 한방 화장품에 대한 내용은 The history of 后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더 후
THE WHO

멤버

피트 타운젠드, 로저 달트리, 존 엔트위슬, 키스 문

입성 연도

1990년

후보자격 연도

1990년

후보선정 연도

1990년

}}}

더 후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4년 헌액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 섀도우즈
1960년대: 비틀즈, 롤링 스톤스
1970년대: 밥 말리,
1980년대: 마이클 잭슨, 마돈나
1990년대: U2, 로비 윌리엄스

2005년 헌액

핑크 플로이드
유리드믹스
아레사 프랭클린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조이 디비전 / 뉴 오더
더 후
킹크스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

2006년 헌액

제임스 브라운
레드 제플린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윌슨
본 조비
프린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3년 등재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4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1975)

2005년 등재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Pet Sounds> (1966)
존 윌리엄스,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Nevermind> (1991)

2006년 등재

뮤지컬 '쇼보트(Show Boat)' 앨범 (1932)
데이브 브루벡,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 앤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Daydream Nation> (1988)

2007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Burnin'>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8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핸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Thriller> (1982)

2009년 등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7)
더 후, <My Generation> (1966)

2010년 등재

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9)
빌 에반스 외,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7월 25일 녹음)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2011년 등재

캡틴 비프하트, <Trout Mask Replica> (1969)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2년 등재

부커 T.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Purple Rain> (1984)

2013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1977)

2014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Volumes 1 and 2)> (1954)
본 미더, <The First Family> (1962)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79)
U2, <The Joshua Tree> (1987)

2015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더 도어스,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6년 등재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Abraxas> (1970)
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2017년 등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People> (1964)
데이빗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Remain in Light> (1980)
N.W.A,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8년 등재

메를 트래비스, <Folk Songs of the Hills> (1946)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Rumours> (1977)
Run-D.M.C., <Raising Hell> (1986)

}}}





좌측 부터 보컬로저 달트리, 베이스존 엔트위슬, 드럼키스 문, 기타피트 타운젠드

로저 달트리

피트 타운젠드

존 엔트위슬

키스 문

1. 개요
2. 역사
2.1. 디투어스, 하이 넘버스
2.2. 더 후 출범
2.2.1. 60년대 - 70년대
2.3. 키스 문의 죽음 - 현재
3. 음악적 특징
4. 사건, 사고 및 여담
5. 디스코그래피

1. 개요

공식 홈페이지

공식 스토어

1964년 결성된 영국록밴드. 동시대 비틀즈, 롤링 스톤즈와 더불어 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밴드 중 하나이다. 하드 록, 헤비 메탈 장르의 단서가 된 밴드 중 하나로 거론되며, 거친 무대매너와 연주력, 기성시대에 반발하는 가사로 많은 평론가들이 사실상 펑크 록의 창시그룹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모드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2. 역사

2.1. 디투어스, 하이 넘버스

영국 일링 아트스쿨에 재학하던 피트 타운젠드는 음악적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키워가고 있었다. 어느날 동네 친구인 로저 달트리로부터 밴드를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로저는 이미 베이시스트 존 엔트위슬을 구했다고 했는데, 로저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베이스 기타를 들고 있던 존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 피트는 스타일이 좀 거친 로저와의 밴드활동이 내키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로저가 어릴적부터 계집애같다는 놀림을 받아 그게 싫어 대장간 같은 힘쓰는 곳을 전전하며 거칠게 살았다고 한다. 아무튼 세 사람이 모이면서 밴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더후의 베타 버전인 '디투어스 (The Detours)'가 결성된 것. 그러나 당시 유행하던 알앤비와 컨트리 음악에 영향을 받은 밴드라 인기는 그냥저냥이었다.

피트, 로저, 존은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인 음악을 하기로 결정하고, 드럼 좀 친다는 친구 한 명을 가입시켜 밴드 연습을 시작한다. 연습이라고 해봐야 하교시간 이후 교실 하나 빌려서 연습하는 정도였는데, 워낙 음악에 재능이 있던지라 얼마 안 가서 학교 축제나 동네에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이 와중에 키스 문이 최종멤버로 그룹에 가담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골때린다. 기존멤버인 피트, 로저, 존은 같은 학교친구로서 학교에선 싸움도 자주 벌이는 등 거의 말썽꾼에 가까웠다고 한다. 서로간에도 늘 치고받고하며 티격대던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 당시 키스도 같은 학교였지만 이들과는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연습하던 어느 날,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만취 상태인 더벅머리 아이 한 명이 술병을 들고 막무가내로 연습실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드럼세트로 가서 드러머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강제로 내쫓았다. 내가 무슨 잘못했다고 그러고는 자기가 드럼을 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피트의 증언에 따르면 거의 실성 직전의 발광적인(...) 연주였다고. 그리고 키스는 전 드러머가 산지 얼마 안되는 새 페달을 단 한 곡 연주로 박살을 냈다고 한다. 이러니 다른 멤버들에게 욕설과 몰매를 맞고 쫓겨날수 밖에 없었지만... 키스의 연주실력은 멤버들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고, 얼마 안가서 키스는 정식으로 밴드에 가입하게 된다.[2]

이후 밴드명을 '하이 넘버스 (The High Numbers)' 로 개명하게 되고, 매니저 피터 미든과 계약을 맺어 당시 유행하던 모드족 컨셉을 받아들여 밴드의 방향을 전환한다.[3] 당시 하이패션이던 모드 패션은 이들에게 있어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알앤비 음악을 시끄럽고 강렬하게 연주하면서 점차 이름을 알려나갔으나, 전체적으로 구닥다리 블루스를 연주하는 느낌이라 큰 음악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 때 피터 미든이 써준 싱글 I'm The Face를 발매하지만, 당시에 넘쳐나던 알앤비 곡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에 상업적으로 망했어요.

사실 더 후는 모드족의 붐에 묻어간 면이 없지 않았으나,[4] 오히려 당시 모드족 붐을 적절히 반영하며 "시대를 반영한" 밴드가 된다. 단순히 묻어가는 차원이었다면 시대의 흐름에 쓸려 내려갔을텐데, 그만큼 당대 젊은이들의 분위기를 잘 반영했고, 이러한 점이 공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모드족의 대변자이자 스스로 모드족으로 칭한 밴드는 거의 없었다.

위기를 느낀 멤버들은 밴드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활동하기로 결정했고, 모드 컨셉은 유지했지만 음악적 감각은 없었던 매니저 피터 미든을 잘라버리고 다른 프로듀서를 찾기위해 킹크스의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던 미국인 프로듀서 셀 타미와 계약을 맺은 다음에 The Who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거친 느낌의 알앤비를 연주했던 특성을 잘 살려서 Maximum R&B이라는 슬로건을 매 공연마다 붙이게 된다. 개명 이후 공연. 키스문의 미친듯한 드러밍이 깨알같다

2.2. 더 후 출범

2.2.1. 60년대 - 70년대

첫 싱글 "I Can't Explain" 발표 이후 첫 앨범 'My Generation'이 히트하게 되면서 유명해진다. 타이틀 곡인 "My Generation"은 하드 록펑크 록의 시초로 거론되는 위대한 곡으로, 특히 이 곡의 '늙기전에 죽고싶어' (I hope I die before get old)란 가사는 이들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멤버 중 가사를 실천한 사람은 키스 문 밖에 없다. 본인의 의지로 그렇게 된건 아니지만[5] 또한 이들의 독특한 패션은 모드로부터 출발했지만, 모드에게 다시 영향을 미쳤다. 로저 달트리의 화려한 의상은 유행을 선도했고, 피트 타운젠트는 영국 국기유니언 잭으로 자켓을 만들어 입었다. 이는 록 역사에서 일종의 패션 코드가 되었고, 존 엔트위슬은 군복 셔츠나 자켓을 입고 나와 록 역사상 최초로 밀리터리 룩을 선보이기도 했다.

1966년, 2집 'A Quick One' 발표 이후 더 후는 기존의 음악스타일에서 한층 진일보한 모습을 선보인다. 키스 문의 드럼 사운드가 돋보이는 "Happy Jack"이나, 존 엔트위슬의 베이스 라인과 묵직한 그로울링[6]이 돋보이는 "Boris The Spider"가 싱글로 발매된다. 당시 수많은 비트 밴드들이 명멸하던 시기에 이 앨범으로 인해 더 후는 록스타의 지위를 더욱 굳히게 된다.

이후 1967년, 여러 기발한 시도를 하던 타 밴드들의 영향을 받아 여러 시도를 하던 끝에 3집 'The Who Sell Out'이 발매된다. 곡 중 짧게 등장하는 광고음악이나, 라디오 음악을 집어넣어 앨범 전체가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곡들을 구성하는 컨셉트 앨범으로,[7] 수록곡 "I Can't See For Miles"는 빌보드 싱글차트 9위를 기록하면서 더 후의 유일한 10위권 진입 히트곡이 된다.

전작의 성공에 고무받은 피트 타운젠드는 이는 인도힌두교 요기 사상가인, 메헤르 바바 (Meher Baba)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아예 앨범 하나를 통째로 스토리라인으로 구축해 하나의 뮤지컬처럼 만들 계획을 한다. 이에 구상해 낸 스토리가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한 젊은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워드 페인팅' (Word-painting) 기법에 의해 곡들이 쓰여지고, 1969년, 록 역사상 최초의 록 오페라로 기록되는 4집 앨범 "Tommy"가 탄생한다.[8] 총 오리지널 24곡으로 구성된 두 장짜리 LP는 1969년 영국 앨범차트 2위에 오르는 성공을 이루었고, 이러한 록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도는 이후 핑크 플로이드, 예스, 등의 다른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훗날 이 음반은 오페라 버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되며, 1975년 켄 러셀 감독의 실사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9] "Tommy"역으로 보컬 로저 달트리가 출연, 사이비 교주 역에 에릭 클랩튼, "Acid Queen"역에 티나 터너, "Pinball Wizard"역에 엘튼 존이 출연하는 등 /록 음악 팬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뮤지션들이 나온다. 영화 자체도 상당히 수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당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더 후는 더이상 젊은 층의 패기를 대변하는 밴드가 아니었고 이를 싫어한 과거의 팬들과 모드족들은 상당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더 후의 음악성은 날로 진보해나간다.

1971년, 5집 "Who's Next"가 발매되었고, 이는 더 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최고로 손꼽히는 앨범이 되었다. 빌보드 4위, 영국차트 1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한다. 이 앨범에서는 신디사이저를 적극 도입해 더욱 더 진일보한 음악성을 보여준다.[10] 이전부터 쌓아오던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성향을 뿜어낸 Baba O' Riley, 더 후의 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인 8분짜리 대곡 Won't Get Fooled Again 같은 명곡들을 수록하며 이들을 역사상 최고의 록 아티스트 중 하나로 만들어 준다.

1973년. 더블 앨범으로 기획된 록 오페라 앨범 "Quadrophenia"를 발매하여 빌보드 2위, 영국차트 2위의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멤버들 성깔이 죽은건 아니라서 1976년 5월 31일 찰튼 애슬래틱스의 홈 구장에서 공연했을 당시, 120데시벨의 소음을 내서 한동안 기네스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공연'으로 남기도 했다.

2.3. 키스 문의 죽음 - 현재

성공도 잠시, 드러머 키스 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Who Are You" 앨범 발표 후 1978년 9월 7일 사망했고, 그 뒤 밴드는 새로운 드러머 케니 존스를 영입해 여러 앨범을 냈지만 예전의 기량을 보이는데 실패하였고, 1982년 해체하게 된다.[11]

이후 각자 솔로 활동을 펼치다가 1989년 투어를 끝내고 90년대 들어서 재결성 후 1996,1997년에 쿼드로페니아 투어 공연을 하고 1999년부터 공연을 다시 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2002년 존 엔트위슬이 코카인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비틀즈처럼 현재 오리지널 멤버는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 뒤에도 여전히 세션 멤버들을 대동하고 종종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 중 오아시스 세션으로 활동했던, 링고 스타의 아들 잭 스타키가 드러머로 있으며, 2010년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서기도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록밴드인 만큼 2012 런던 올림픽 폐회식에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였다. "Baba O' Riley", "See Me Feel Me", "My Generation" 세 곡을 연주했다.

2014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영국 투어에 돌입했고, 두 멤버에 따르면 "이번 투어는 긴 이별의 시작"이라 밝혔고, 로저 달트리는 "이번 투어는 정말로 마지막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공연을 할 수는 없다. 나는 내 목소리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빌보드 등 외신에 따르면 밴드는 2015년 11월~12월을 마지막으로 런던, 더블린, 벨파스트 등에서 9회에 걸쳐 공연을 펼친다. 영국 공연이 끝나면 미국에서 투어 공연이 이어질 전망. 출처는 이곳. 2014년 11월 3일 데뷔 50주년 기념 히트앨범인 "The Who Hits 50"이 발매되었다.

2015년 미국 투어는 로저의 뇌수막염으로 연기되고 2016년, 로저가 회복하며 런던을 시작으로 연기되었던 미국, 캐나다투어 일정을 소화하였다. 그 후 유럽 국가들의 공연을 끝으로 2016년의 일정이 끝이 났다. 이후 2017년 로열 알버트 홀에서의 청소년암 환자 지원 콘서트를 시작으로 투어 공연을 할 예정. 2019년 새로운 공연을 하는 듯 하다. 2019년 5월 7일부터 미국 순회공연, 7월 6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며 더불여 영국 한정으로 새로운 엘범(LP&CD(지금은 구매할수 없는 Exclusive CD 와 Standard CD이 있다.)(영국을 제외한 다른나라로의 배송은 안되는듯 하다.)구매대행지를 써보자 2019년 5월 7일부터 Moving On! Tour 를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 Moving On! Tour 참조

3. 음악적 특징

당대부터 오늘날까지 통틀어 멤버 개개인의 기량은 가히 최상급이었다.[12]

보컬인 로저 달트리는 록 오페라 스타일의 드라마틱한 보컬과 로큰롤 에서의 정열적인 보컬 둘다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사람이라 많은 록 팬들에게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라이브 퍼포먼스도 정열적인데, 쉴세없이 몸을 흔들고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특유의 굵직하면서도 울부짖는 듯한 창법이 살아있다. 또한 공연내내 마이크를 쥐불놀이하듯 뱅뱅뱅 돌리다 잡는게 트레이드 마크. 마이크가 날아갈거 같은 스릴이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역시 세월은 못이기는지 90년대 후반부터는 그나마 얌전하게 기타를 치거나 가볍게 몸을 흔드는 정도로 바뀌었다. 언제나 힘차고 박력 넘치며 와일드한 사실상의 밴드 창시자 로저 달트리는 성격 또한 와일드 해서 밴드 초창기에는 주먹으로 밴드를 이끌다시피 했는데 작은 키와 예쁘장한 외모. 그리고 여자 형제가 많아서 그의 행동거지에 여성스러움이 배어 있었다는 게 그에게는 컴플렉스였기 때문에 짐짓 더 거칠게 행동하였다고 한다. 친구 사이다 보니 의견충돌이 있을 때는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늘 싸우던 멤버들이라 키스가 죽기 전 수년간을 불화로 공백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싸우고 해어진 뒤라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뭐 피트와 로저가 불화의 주된 이유였다. 그러다가 수년의 공백 후 피트가 로저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가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로저가 펑펑 울며 사과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새 앨범의 계획이 수립되고 레코딩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1977년 발매된 후기 명작중 하나인 "Who are You" 앨범이다.

드러머 키스 문의 드럼 연주는 그 자체로 정열이 넘쳐 흔히 천둥 소리로 비유되기도 한다. 키스 문은 라이브 도중 드럼 세트를 수도 없이 부숴 먹었다. 게다가 실제로 호르몬 과다분비 등의 질환으로 혈기를 억누르지 못하는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키스의 연주를 생각해 본다면 키스는 그 당시 여타의 드럼 연주자들 보다는 훨씬 사용하는 탐의 수가 많다. 물론 무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더블베이스 드럼을 나누어 주고 마운트도, 플로어, 스네어를 통틀어 탐 수가 거의 8~16여 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탐을 사용했는데, 놀랍게도 키스는 그 모든 탐을 참으로 전광석화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키스 문은 슈퍼밴드 Cream의 드러머이자 '드럼의 마왕'이라 불리우던 진저 베이커 와의 일화로도 유명하다. 진저 베이커가 훨씬 먼저 데뷔했으나, 하드 록 시대에 접어들자 두 사람 다 경쟁적으로 드럼 구성을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 때 앨리스 쿠퍼 밴드의 드러머이자 키스 문의 친구였던 닐 스미스도 둘보다 항상 드럼 개수를 하나 늘려서 연주했다고 한다. 이 답없는 경쟁은 당시 그저 병풍에 불과했던 드럼의 세계를 확장한 훌륭한 결과를 일구어 냈다.

전성기 시절 키스 문의 탐은 무려 열 개(...)가 넘었다.

존 본햄 : 어휴... 저게 다 뭐야...

존 엔트위슬이 보여준 베이스 라인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뛰어난 것이었으며 소위 말하는 기관총 같은 베이스 테크닉을 록계에 처음 선보인 사람도 바로 존이다. 녹음에서건 무대에서건 늘 조용히 입을 다문 과묵한 그이지만 그 속에 있는 격정과 활화산 같은 열정이 그의 손에 의해 베이스라인으로 고스란히 표현된다. 그의 베이스 연주는 리드 기타의 역할을 대신 할 정도로 매우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빌리 시언, 존 디콘, 러시의 게디 리 등 후대 베이시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년기의 연주 영상을 보면 웬만한 후배들과는 격이 다른 노련한 정도가 아니라 후배들의 기량을 능욕하는 수준이라 입이 떡 벌어진다. 베이스를 신체의 일부인 마냥 마음대로 다루어서 괴물같은 스피드, 테크닉을 뽐내기 때문에 Thunder Finger라는 별명이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는 특징도 있다. 60년대 말부터 모습을 드러낸 헤비쉐입 베이스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알렘빅, 딘, 깁슨, 워윅 등 온갖 브랜드의 헤비쉐입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피트 타운젠드는 세계 제1의 리듬 기타리스트라 불리는만큼,동시대 에릭 클랩튼이나 제프 벡과 같은 유명 기타리스트에 비해 화려한 면모는 적었지만 밴드 음악 기초를 탄탄히 구축했고, 성격 답게 공격적이고 감정을 표출하는듯한 과격한 연주를 했으며, 피드백과 파워코드를 대중화 시키기도 했다. 그외에도 풍차 돌리기나 악기 파괴 등의 무대 퍼포먼스는 후대 밴드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또 대부분의 곡은 피트가 작곡했는데 Tommy 같은 록 오페라나 My Generation 같은 과격한 사운드의 초창기 앨범부터 The Who's Next 같이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세련된 앨범까지 보여주면서 후의 중심축이 되었다. 또한 보컬 실력도 출중해서 Goung Mobile같은 곡을 직접부르거나 대부분의 백보컬을 담당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컬 능력은 떨어져서 힘겨워 할때가 있고,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로저가 피트의 파트까지 담당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더 후"라는 밴드는 그 자체가 인기의 가도를 달릴 때도, 데뷔 당시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늘 티격티격 싸웠다고 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늘 내일 당장에라도 밴드가 깨질 것 같은 분위기 였는데…. 그만큼 절친했다는 간접증거도 된다. 가까울수록 더 싸운다고 하지 않는가…. 당시 다른 밴드들도 많이들 싸웠다. 뭐 더 후의 차이점이라면 서로 주먹질도 자주 했다는 것일 것이다. 흡사 오아시스를 보는 듯 하다

데뷔 당시와 전성기의 음악 스타일이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르로는 펑크 록, 프로그레시브 록 등에 주로 영향을 주었으며 레드 제플린, 더 클래시, U2, 러쉬, 펄 잼, 블러, 오아시스, 라몬즈, 그린데이 등의 밴드에게 영감을 준 록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밴드로 기록되었다.

4. 사건, 사고 및 여담

  • 현재 국내에서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매니아를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바닥에 가깝다. 그것도 80년대 앨범 "Who Are You"가 소개되고,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같은 범죄 드라마 시리즈에 음악들이 사용되면서 뒤늦게 그들이 알려지게 되었다.[13][14] 아마도 특유의 거친 음악스타일이 한국인의 성향에 잘 맞지 않은 듯.
  •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이라는 이름은 원래는 추락한 비행선의 이름에서 따온 밴드명인데, 이 밴드명을 지어준 사람이 바로 키스 문이다. 야드버즈에서 지미 페이지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다 탈퇴해서 홀로 남은 지미 페이지가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한 후 밴드 이름을 "뉴 야드버즈"로 지었는데, 야드버즈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탈퇴멤버 제프 벡이 야드버즈란 이름을 쓰지 말고 새로운 이름을 지으라고 요청했었다. 그러자 지미 페이지가 밴드명을 뭐라고 지을까 고민하던 차에 지인이었던 드러머 키스 문이 그 고민을 듣고 너희 밴드는 제플린 비행선처럼 금방 높이 뜨겠지만 무거운 납처럼 곧바로 추락할 거라며 장난 반으로 지어준 것이었다. 하지만 추락하기는 커녕 더욱 떠버렸다.
  • 악기 해체의 미학을 철저히 구현한 밴드로 요즘은 흔할 악기 부수기 행위의 원조격이지만,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천장이 낮은 클럽에서 공연하다가 피트가 기타를 높이 들어올렸는데, 그만 천장에 기타 헤드가 닿아 부러지는 바람에 ㅆㅂ, 됐다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기타를 부수기 시작했다고 한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리고 키스 문도 덩달아 드럼을 부수기 시작했다악기해체장면
  • 더 후는 가는 곳 마다 호텔 을 몽땅 부숴놓기로 유명했다. 특히 키스 문의 주도하에 이런 일이 많았는데, 변기에 M60 폭죽을 넣어서 변기를 폭파시킨다거나, 호텔 수영장에 캐딜락을 처박아 버린다거나, 창밖으로 티비를 던져 박살을 낸다거나 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나서 이를 모두 변상해 주고 두둑한 까지 얹어서 주고 나간다. 이런 퍼포먼스가 당시엔 멋지게 보였는지, 그 후로 롤링 스톤즈가 이런 짓을 따라했고, 1970년대엔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여러 후배 밴드들도 이런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했다.[15] 이로인해 이런 관행의 제일 원조이자 주범이었던 키스 문은 홀리데이 인, 쉐라톤, 힐튼 호텔에서 영구히 거부당했다. 결국 죽을 때 까지 그는 이러한 몇몇 호텔에 숙박할 수 없었다.
  • 키스 문은 약을 하도 많이해서 무대에서 기절한 적이 있다. 1973년 Quadrophenia 투어 도중 공연전에 말 진정제를 브랜디와 섞어 마신 탓에[16] 공연 중 무대위에서 기절한 것(...). 그 상황에서 피트 타운젠트는 즉석으로 "관객 중에 누구 드럼 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잘 치는 사람 으로."라고 말을 했고, 즉석으로 지원한 스콧 할핀이라는 젊은이가 드럼을 치게 된다. 그는 더 후의 심각한 였기 때문에 모든 노래를 줄줄 외우고 있었고,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다행인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공연 영상을 보면 다른 멤버들이 스콧을 위해 노래의 템포를 조절해주거나 중간중간 손짓이나 말로 가이드를 해 주는 등 상당히 배려해준 부분이 있다.)
  • 키스 문은 이러한 괴팍한 행보와는 별개로, 성공적인 영화배우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데이빗 에섹스가 주연한 록 음악 영화 스타더스트에서 드러머 역으로 출연한 이래, 크고 작은 영화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역시 정상이 아니야
  • 일본 애니메이션 케이온!!에서 히라사와 유이가 선보인 팔을 풍차처럼 돌려서 피킹하는 '풍차 돌리기'[17] 필살기는 원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젠드의 시그내쳐 무브이다. 또한 2기 3화에서 밝혀진 바로는 타이나카 리츠 또한 키스 문의 열렬한 광팬이라고. 하지만 그 행보는 따라하고 싶진 않다고 한다
더구나 케이온 극장판에서 엔딩곡 Singing!의 MV영상에서는 더 후를 오마주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18] 케이온 연출을 맡은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더 후의 열렬한 팬이라고.
  • 노브레인의 전 기타리스트이자 모노톤즈의 현 기타리스트인 차승우가 더 후의 팬이다, 실제로 2014년 모노톤즈 공연 당시 My Generation을 커버했을 정도.

5. 디스코그래피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존 엔트위슬에 따르면 "키스 문과의 첫 공연 때 키스가 밧줄을 갖고 와서 드럼 세트를 꽁꽁 묶어 고정시키길래 왜 이러나 싶더니 공연이 시작되자 그 의문이 사라졌다. 키스 문이 드럼을 치자 드럼 세트가 앞뒤로 요동쳤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했다.
  3. [3] 그 전까지는 딱히 방향성이라 할 것도 없었고, 패션도 신경쓰지 않았다.
  4. [4] 모드족이 등장한 것이 1950년대 후반인데(50년대 비트닉 문화가 계승, 발전되었다. 50년대 테디보이 문화가 계승, 발전된 것이 로커), 1960년대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런던의 급진적 보헤미안 문화가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모드족 붐이 절정에 도달한 것이 1964년이고 하이넘버스의 첫 싱글은 1964년에 발매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5. [5] 후에 메탈밴드나 하드록 밴드들이 이런 레파토리로 곡을 꼭 만들기도 한다.
  6. [6] 당시 록계 최초의 그로울링 창법이었다.
  7. [7] 앨범 자체가 페이크광고 컨셉이다. 앞커버, 뒷커버의 멤버들이 실제로는 없는 상품을 광고하고 있는 셈.
  8. [8] 이전에 헤어같은 훌륭한 록 뮤지컬이 있기는 했으나, 정식으로는 더 후의 "Tommy"가 최초다.
  9. [9] 일설에 따르면 본래 이 영화에 스탠리 큐브릭을 감독으로 초청하려고 했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멤버들은 이에 빡쳤는지 'Who's Next'의 커버에 모노리스로 추정되는 콘트리트 물체에 오줌을 갈기고 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0. [10] 앨범 커버에 관하여 충공깽스러운 일화가 있는데, 퇴짜맞은 시안 중에 키스 문이 코르셋을 입고 말채찍을 든 모습이 있었다. OME 후방주의(?)
  11. [11] 1985년 Live Aid 공연에선 당시 멤버들이 모여 공연하기도 했다
  12. [12] 멤버들 모두 해당 분야의 역량을 따질 때 열 손가락을 벗어나는 일이 없을 정도.
  13. [13] 여담으로 멤버 로저가 CSI 라스베가스 시리즈에 범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4. [14] 이는 CSI를 처음 기획한 총감독 앤서니 자이커가 이 밴드의 팬이기 때문이다. 각각 라스베가스는 'Who Are You', 마이애미는 'Won't Get Fooled Again', 뉴욕은 'Baba O'Riley'.
  15. [15] 심지어 돈이 제일 넘쳐났던 레드 제플린은 호텔 벽을 뚫은 적도 있고, 아예 거액을 들여 호텔 한 층 전체를 통째로 빌려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 마약, 고급 창녀들 및 그루피족이 다 같이 흥청망청 노는 난장판식 퇴폐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존 본햄과 친구들이 호텔 복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방문을 때려부수고 파티 참가자들이 아무데서나 하고싶은거 다하며 마음껏 즐기고 스트레스를 플었다고 한다. 가난한 펑크밴드들은 그런거 하고 싶어도 돈 없어서 못했다. 어차피 이런 짓도 돈 많은 스타급들이나 할 수 있는거다.
  16. [16] 상기했듯 호르몬 분비 및 혈기 관련 증상이 있어서 웬만큼 센 약이 아니면 안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찾다 찾다 도달한 마약이 말 진정제(...). 말 진정제는 대체로 야생마같이 날뛰는 짐승들에게 쓰인다(...).
  17. [17] 윈드밀(Windmill)이라 부르는 그 행위가 맞다.
  18. [18] 특히 방과후 티타임 멤버들이 영국 국기를 이불삼아 껴안는 장면.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161.32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