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맥아더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Congressional Gold Medal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의회 명예 황금 훈장</span>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마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우즈 2세
대위 에드워드 맥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톤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컵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의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던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데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우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자레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란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콤

중위 데이빗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사무엘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대령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즈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들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스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란시스 퀸

윌리엄 시노트

1942년

1945년

1946년

롤랜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멤버들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미합중국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들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안소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미합중국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C.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마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나탄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테오도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먼로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 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쉘튼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br[ 해리 & 엘리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14대 달라이 라마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산수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브룩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서비스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100연대 보병 대대
442 연대 전투단
군사 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남녀들

라울 발렌베리

애디 매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롤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들

미국의 공군 에이스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들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들

OSS

2017년

밥 돌

}}}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건국훈장</span> 대한민국장(重章)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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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김구

김규식

김좌진

김창숙

더글러스 맥아더

민영환

박정희

필립 제이슨

손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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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쑹메이링

안중근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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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윤봉길

이강년

이승만

이승훈

이시영

이준

임병직

장면

장제스

조만식

조병세

조소앙

천궈푸

천치메이

최익현

트루먼

밴 플리트

한용운

허위

응오딘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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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영어: Douglas MacArthur

생몰년도

1880년 1월 26일 ~ 1964년 4월 5일 (84세)

신체

183cm

출생지

미국 아칸소 주 리틀록

사망지

미국 워싱턴 D.C.

종교

장로회

가족

아서 맥아더 주니어(부)[1] 메리 핑크니 하디 맥아더(모)
핀릴 맥아더(형) 맬컴 맥아더(형)
진 마리 페어클로스 맥아더(재혼)
헨리에타 루이즈 크롬웰 브룩스 매카서 애트윌 하이버그(이혼)
아서 더글러스 맥아더(장남)

복무

미합중국 육군
필리핀 공화국 육군

복무기간

1903년 ~ 1937, 1941 ~ 1964년[2]

최종계급

미국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y U.S. Army)
필리핀 육군 원수(Field Marshal Philippine Army)

근무

UN군 사령부

지휘

UN군 사령관

참전

멕시코 혁명(1910~1920)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한국전쟁(1950~1953)

명예훈장, 수훈 십자 훈장, 육군 수훈 복무 훈장, 해군 수훈 복무 훈장
공군(전) 수훈 십자 훈장, 은성 훈장, 청동성장, 공군 수훈장, 퍼플 하트 훈장

더글러스 맥아더 훈장내역정리(영어)

1. 개요
1.1. 이름 표기
4. 그의 명언들
5. 그의 후손
6. 기타
7. 대중매체 등

1. 개요

Douglas MacArthur. 미국군인이자 정치가이다.

통칭 '맥아더 원수'. 한국에서는 그를 맥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는 군인이다. 한국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의 주역으로 유명하다.

미군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누린 군인 중 한 명이다. 일단 모든 군복 부착물중 최고인 계급부터가 육군 원수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약장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름부터가 넘사벽인 명예훈장부터 시작해서 하나 받아도 가문의 영광인 수훈십자장 3회 수훈(천만에 가까운 미육군 누적참전 병력 중 지금까지 겨우 13000명만 수훈받았다.), 하나 받아도 베테랑 병사 취급받는 은성훈장 6회 수훈, V기장(영웅적인 행동을 한 군인에게 수여)이 달린 동성훈장 수훈, 육군 수훈복무훈장 4회 수훈, 대통령 부대 표창 6회 수훈, 태극무공훈장 수훈, 그 외에도 육군항공 조종사 마스터 기장, 소총,권총 특등 사격기장까지. 그야말로 맥아더는 군인이란 직업에 있어 그 커리어가 신에 해당하는 경지까지 간 사람이다.

하지만 적을 지나치게 과소 평가하고, 자신의 공적을 부풀리기 위하여 아군을 무시하며 전장에서 전달되는 정보는 물론이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도 무시하는 독선적인 면으로 인해 실적과 평판이 크게 손상되었다.

1.1. 이름 표기

외래어 표기법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매카서'가 되었어야 한다.하지만 관용 존중 차원에서 통용되는 표기인 '맥아더'가 단독으로 인정되었다. 당시에 정확한 발음에 대해 몰랐다기보단 스코틀랜드계 성씨인 MacArthur에서 MacArthur를 분리해 읽고 그 원형에 맞춰 아더로 표기하게 된 것이 굳어진 뒤 관용 표현으로 인정된 것. 사실 [맥, 아더\]와 같이 끊어 읽으면 받침 ㄱ에서 [k\] 발음이 나겠지만, 뒤에 바로 모음 '아'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침 ㄱ이 유성음화되어 [매가더\]의 [g\] 발음으로 실현된다는 게 좀 에러다. 또한 Arthur의 'th'발음은 과거에는 유성음과 무성음에 관계없이 'ㄷ'으로 옮겼으나 무성 치 마찰음[θ\]이므로 표기법상으로는 'ㅅ'이 된다. [3] 똑같은 원리로 굳어질 뻔했던 "아더 왕"은 현재 "아서 왕"으로 잘 쓰고 있기에 아쉬운 부분. 관용 표기라 하니 더글러스 맥아더만 이리 표현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아예 "MacArthur" 자체를 "맥아더"로 표기하기로 결정되었으므로, 같은 철자를 가진 다른 인명도 맥아더로 표기하는 것이 현행 규정상으로는 맞다.

일본어에서는 원어 발음에 따라 '맛카사'(マッカーサー)라고 부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것과 거꾸로 처박혔다는 뜻의 '맛사카사마'(真っ逆さま)를 이용해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더글러스 맥아더/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평가

  자세한 내용은 더글러스 맥아더/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그의 명언들

  •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퇴역식에서 한 말. 사실은 옛 군가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오늘날에는 맥아더의 어록으로 더 기억되고 있다.
  • "의무, 명예, 국가(Duty, Honor, Country)." - 1962년 5월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생도들에게 '군인이 명심해야 할 가치'로 역설한 말. 위에 소개된 '노병은 죽지 않는다'와는 달리, 이 말은 맥아더의 오리지널 어록이다.
  •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In war,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 -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에도 쓰여 있는 말이다.
  • "우리는 이제 실업자가 되겠군." - 핵무기의 위력을 보고 한 말이다.
  • "I shall return." - 일본군의 침공으로 필리핀을 탈출하면서 한 말로, 그는 결국 이 약속을 지켰다.
  • "일본은 12살의 소년이다." - 일본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 한 말이다.
  • "일본인은 쇼군에게 칼을 대지 않습니다."[4]
  •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혹은 "전쟁에는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람들은 자동화기의 위력을 못 본 사람들이다(Whoever sai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obviously never encountered automatic weapons)."

펜이 총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자는 아마 기관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마지막까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용기, 확신을 갖는 용기, 꿰뚤어 보는 용기이고, 세상은 항상 용기있는 사람을 모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군중의 고함과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역사만큼 오랜 싸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 간다.

우리는 돈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싸웠고, 대공황의 해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는 철학을 잊어버리고, 윤리를 등한히 여기며 미학을 멀리한 사회이다.

우리는 모든 전력을 다하여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은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전투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서 실패하는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본인 이야기 아닌가?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유효한 수단을 동원해 신속히 그 전쟁을 끝내는 것 말고 달리 대안이 없다. 전쟁의 최고의 목표는 우유부단하게 끄는 것이 아니라 승리이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이제 나는 군인으로써 생애를 마치고 사라진다.

5. 그의 후손

맥아더의 외아들은 아버지의 소망과 달리 군인이 되지 않았고 맥아더라는 성마저 버렸다. 맥아더가 지은 시인 "아들을 위한 기도"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데, 이 시의 주인공인 그의 외아들 아서 맥아더 4세는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자신의 성을 바꾸고 잠적했으며, 친한 친척들하고만 연락이 되고 있고 다른 행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에 의해 뉴욕 시에 거주한다는 것만 알려진 상태다. 2000년에 어머니인 진이 사망했을 때도 언론에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햄버가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완전 허구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중반쯤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와 연락이 되는 친척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솔직히 이름 바꾸고 숨어버릴만 한게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유명한 아버지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았다. 아버지가 원수 계급장을 달 정도가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아들은 이미 장성해서 사회의 중견이 되어 있지만[5], 아서 맥아더 4세의 경우 맥아더가 58세가 되어서야 본 늦둥이라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맥아더는 미군 최고위 장성이었다. 그리고 2차대전을 겪으며 맥아더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자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비상해져서 어렸을 때 이미 라이프지의 표지 모델이 될 정도였다. 또 맥아더가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을 때도 그는 고작 7살 꼬마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유럽 어느 나라의 왕자나 다름없는 위치였고 세간의 관심 또한 평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몰라도 장성하면서 그는 이런 세간의 관심을 점점 견디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가 죽자 이름을 바꾸고 은거하게 된다. 그의 친척들도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에 대해서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형인 아서 맥아더 3세와는 사이가 좋았는지, 서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자신의 형제 이름을 붙여줬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2세는 실제로 더글러스 맥아더의 조카이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들 이름은 아서 맥아더 4세다.

6. 기타

옷차림새가 대단히 특이하다. 필리핀 육군 원수 정모에 짙은 선글라스, 수제 콘파이프(옥수수 자루로 만든 담배 파이프)가[6][7] 트레이드 마크. 탈모가 있어서 전쟁 중 사진에는 모자를 벗은 것이 없다.[8]

  •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맥아더는 수원비행장에 도착해서 한강 이북의 전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후퇴하지 않고 참호 속에 남아 있던 어느 한국군 병사에게 맥아더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고 묻자, 그 병사는 "상관의 후퇴 명령이 없습니다. 명령이 있기 전에는 이 참호를 지켜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탄복한 맥아더가 무슨 소원이 없냐고 묻자, 병사는 "국군에는 소총밖에 지급되어있지 않고 그나마도 탄약이 부족합니다! 적들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무기와 탄약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9] 이에 감격한 맥아더는 바로 지원군 파견을 승인했다.[10] 참고로 이 때 맥아더의 시찰 비행 기록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일부에서는 이때 만남의 주인공이 2013년에 작고한 신동수 씨라고 하는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정식으로 부정했다.
  • 한국에서의 임팩트는 정말 커서 일부 무속신앙에서 신앙의 주체로도 나타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양담배가 금지되었던 시기 그를 모시는 무속인들이 양담배를 불법으로 입수하여 제물로 써서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지금도 그를 모시는 무속인들이 남아있다. 이 때문인지 다음 만화속세상 '도사랜드'에서 무당인 주인공의 어머니가 섬기는 제네럴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3화부터 등장하기도 한다. 현대판 관운장 정작 맥아더 본인은 개신교 장로회 신도다
인천광역시 자유공원에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그의 동상도 서 있다. 그러나 2005년에 NL성향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이 동상의 철거를 요구한 일이 있기도 했다. 서울 자하문 터널 옆에도 동상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하문 터널 옆 정확히는 자하문 고개에 있는 동상은 김신조 외 20여명이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던 1.21사태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다. 다만 맥아더 장군 동상은 1960년대 말까지 경복궁 내와 반공회관(현 광화문 KT 사옥) 앞에 있던 적이 있긴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다.
  • 호주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호주는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주력 사단이 대부분 북아프리카 등 유럽 전선에 파병나간 상황이라, 예상되는 일본의 공격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맥아더가 미국의 급조된 2선급 사단과 준정규군인 호주 민병대를 이끌고 뉴기니 전선에서 악전고투, 일본군의 전력을 야금야금 깎아먹으면서 버텨내고, 산호해 해전에서 미 함대가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어내면서 호주는 일본의 위협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이후 뉴기니 전선에서, 그리고 미군의 과달카날 상륙 이후 과달카날에서 일본군 지상전력이 급격히 소모되면서, 호주에 대한 일본군의 위협은 완전히 일소되었다. 소규모 일본군 병력이 호주 서부에 상륙했다는 떡밥이 있긴 한데, 어차피 전황에 손톱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은 관계로 무시당했다(...).이렇게 보면 호주에서 맥아더를 높이 평가해야 맞겠지만, 막상 미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공세로 돌아선 이후로는 맥아더는 호주군의 주 업무를 전략적으로 가치가 떨어져 미군이 지나친 섬들에 대한 토벌전 정도로 한정지었다. 개전 초기, 가장 어려운 전선에서 열악한 여건에도 용감히 싸웠던 호주 사람들은 당연히 격분했다.
  • 3인칭화로 자신을 지칭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하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대통령 특사나 장차관들 앞에서도 종종 이런 말투를 썼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를 인류 역사에 남을 역사적 위인으로 생각한 맥아더의 자기 인식이었겠지만,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다들 기겁했다고. 맥아더는 역사에 남을 위인이 되고 싶어요!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맥아더 걔는..." 이런 식으로 말한 꼴이다. 어떻게 보면 웃기다고 할 수 있는데, 저 3인칭화법이 전근대 유럽 왕들의 화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예를 들어서 미국 역사에서는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자신을 3인칭으로 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건 맥아더가 스스로 왕, 혹은 대통령으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트루먼을 무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걸 확대해석이라고 볼 여지가 줄어든다. 최대한 축소해서 봐도, '내가 나인데' 급의 권위주의자 였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해석을 무시하고, 맥아더를 긍정적으로 보면 나오는 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야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런 3인칭 화법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소문으로는 맥아더 본인도 자신을 카이사르의 환생으로 생각했다고 하나 실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전기작가 중에도 이런 떡밥을 문 사람이 있는지 자신의 맥아더 전기 제목을 'An American Caesar(미국의 카이사르)'라고 지었다.
  • 맥아더는 군생활을 공병 장교로 시작했다. 당시 미군에서는 엘리트 코스가 공병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종찬 장군과 비교되는 점이라는 말이 있다.
  • 맥아더는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6개의 펜을 사용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만년필 외에 5개의 펜을 더 사용한 것인데, 이는 종전 문서에 서명한 펜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5개를 더 만든 것이다. 이중 2개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항복조인식에 초대된 조나단 웨인라이트 미국 장군과 아서 퍼시벌 영국 장군[11]에게 각각 1개씩 선물로 주어졌다. 1개는 아들에게 물려줬고, 1개는 웨스트포인트 미국육군사관학교에 보냈고, 마지막 1개는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냈다. 맥아더라는 인물의 치밀함과 동시에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도대체 누가 종전문서에 서명하면서, 각각 보낼 곳을 정한 6개의 펜을 사용할 생각을 할까?[12] 여담의 여담으로 이 만년필은 모두 Parker사의 듀오폴드 만년필로, 이 때문에 파커사는 맥아더를 기리는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 이승만이 선물한 향로를 부대에도 가지고 와 전시했는데 적군의 기습으로 급히 비행기로 퇴각하다 한 장교가 향로를 태평양 한가운데에 떨어뜨린 것에 분노, 열흘 간 온 해군을 소집해 태평양 지대를 뒤진다. 작전명은 '향로 찾기'.

맥아더 원수의 무공 훈장에 네 번째 백엽 장식을 서훈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 맨 오른편은 오마 브래들리 원수.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 섬.

웨이크 섬의 회담에서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몇 시간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한 게[13]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수하들이 감히 그의 잠을 깨우지 못한 건지 모르지만 트루먼이 도착해서 비행기 문이 열릴 때까지 미처 마중 나가지 못하고 트루먼은 비행기 문에 서서 마중나오는 그를 한참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그 뒤에 트루먼의 표현을 빌자면 "70살 쳐먹은, 그것도 원수라는 인간이 19살 소위처럼 빌어먹을 선글라스와 채우지도 않은 상의와 부착물들이 잔뜩 달린 모자를 쓰고 나온" 맥아더를 접견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트루먼이 "난 당신을 만나려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왔소.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따위 것이 아니오. 당신이 해리 트루먼이란 인간을 어떻게 대접하던 어떻게 생각하던 난 신경 안쓰지만 다시는 군 통수권자를 기다리게 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시오. 알아들었소? "라고 말하며 무안을 주었고 맥아더는 이때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14]

  •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토론 중 언급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IS에 대한 공격 계획이 엉망이라면서 맥아더는 안 좋아할 것이다라고 했다.
  • 미국 보수 성향 국제 전문지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NI·THE NATIONAL INTEREST)은 맥아더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 중 하나로 꼽았다.#
  • 2017년 12월 17일,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측근이었던 에드워드 라우니가 별세했다. 최종 계급은 예비역 중장으로 향년 100세.#
  • 여러모로 맥아더의 파면은 이승만 입장에선 상당히 아쉬운 일이 되었다. 1951년 당시엔 중공군의 참전으로 눈 앞에서 통일을 놓치게 된 상황에서 휴전에 대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염원하였으나 미국 정부의 상당수 요인들은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북진통일을 할 생각이 없었고 따라서 기존의 남한 영토를 어느 정도 수복하고 나면 바로 휴전을 할 생각이었다.[15] 맥아더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이승만과 뜻을 같이하여 북진통일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었는데 맥아더가 파면되었으니 당시 한국측 입장에서는 든든한 후원자를 놓친 셈.

7. 대중매체 등

  • 닐 스티븐슨의 소설 <크립토노미콘>에 보면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동시에 은근 웃기게 나온다.
  • 일본 우익 만화나 가공전기에선 포로로 잡혀 참수당하기도 한다. 어느 만화에선 무사의 자비랍시고 담배 파이프를 물게 해줬다. 감히 이 맥아더 쇼군을 참수하려고 하다니! 그 만화의 작가는 마루오 스에히로로서, 해당 작품의 이름은 "일본인의 혹성". 흔히 우익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마루오 스에히로 본인은 반전주의자에 일본 제국주의를 혐오하는 인물이다.
  • 일본 작가 모토 라이치의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주적으로 등장. 다만 육군이라 주인공인 쿠루스와 별접점이 없어서 비중은 낮다. 어째서인지 실제보다 젊은 모습으로 나오며 상당히 경박한 모습이다. 작가인 모토 라이치는 후에 아사히 신문사에서 출간한 주간 망가 일본사에서 맥아더의 GHQ 통치기를 그렸다. 여기서 맥아더는 일본인을 사랑한 푸른 눈의 쇼군으로 군국주의 일본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묘사한다.
  • 일본식 발음으로는 막카-사-(マッカーサー). 일본어로 진적좌(真赤左)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재벌 해체와 노조 허용, 토지 개혁 등의 조치를 두고 일본에서는 '진짜 좌익 빨갱이'라는 뜻으로 비꼬기도 했다.
  • 한국에서도 번역가 류한수 등이 '매카서'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긴 한다. 그래서인지 몇몇 번역본에선 매카서라고 쓰기도 하는데, 그래서 대체 이 인물은 누구냐 하는 독자들의 불편함을 자아낸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행 외래어 표기법상 매카서라고 표기하는 게 맞다. 다만 위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관용 존중 차원에서 맥아더라 쓰고 있다.
  • 당연히 영화로도 나왔다! 1977년 영화 맥아더에서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그레고리 펙을 캐스팅한 이유는 실제 맥아더와 닮아서라고.[16] 1962년 5월 맥아더가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생도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는 장면을 시작과 마지막에 넣고, 그 사이에 2차대전과 6.25 전쟁 시절을 회상 방식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2차대전 장면은 적절한 고증을 보여 주지만... 한국전쟁 컷에서 패튼 전차가 나온다, 근데 2차대전 때에는 멀쩡하게 셔먼이 나온다. 그리고 F-4도 나온다. 맥아더 미화 때문에 트루먼이나 루즈벨트가 약간 찌질이로 나오지만 의외로 맥아더에 대한 연대기 서술이나 보통은 잘 잊어버리는 일본 군정 시기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KBS 방영판에서 맥아더 성우는 유강진.
  • 전설의 망작 오! 인천에도 당연히(?) 나온다. 당연히 그레고리 펙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통일교 문제로 시끄러워서 본인이 거부하고 로렌스 올리비에가 캐스팅되었다. 상당히 망작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변명하자면 이 영화 촬영 전에 그가 사경을 해맬 정도로 힘든 수술을 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나름 싸게 먹혔고 본인도 돈이 궁했다는 게 정설. 그 자신도 이 영화를 흑역사로 생각해서 언급을 안한다.
  • 한국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주한미군을 불법으로 섭외해서 나오는 지나가는 역이나 공기의 비중이다. KBS에서 80년대 방영한 세미 다큐드라마 <전쟁 6.25>와 <휴전 6.25> 연작에서는 당시 유명한 외국인 배우 데니스 크리스틴이 열연했다. 이 배우는 80년대 거의 유일한 외국인 전문 연기자였다. 망작인 <죄 없는 병사들>의 주연 및 제작 감독이기도 했고 가장 최근작인 여명의 눈동자에서 장하림의 상관으로 나왔다.
  • 당연히 북한 영화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대전 전투를 다룬 북한 영화에서는 남조선군을 선발에 세우고 부상병을 대포밥으로 만들어라라고 킬킬대는 천하의 개쌍놈 기믹으로 나온다. 물론 따까리는 윌리엄 딘 소장, 결국 영화에서 맥아더는 발리고 딘은 찌질하게 손을 들고 투항한다. 외국인 연기자를 구하기 어려운 나라인지라 딘이나 맥아더 모두 북한 배우들이 연기했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 미군은 지금까지 그 어떤 무기에도 맥아더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다.[18] 같이 윗사람에게 대든 알레이 버크 제독의 이름이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에 붙어있는 걸 보면 맥아더가 얼마나 정치가들에게 미움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일반 시민들의 지지는 높아 맥아더의 이름을 딴 공공건물이나 도로, 거리 이름은 어지간한 대통령보다도 많다. 그 중 하나는 로스앤젤레스의 맥아더 공원[19]. 간헐천으로 유명하고 덕분에 영화 볼케이노에서는 화산 폭발이 일어난다.
  • 해리 터틀도브의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북부의 명장이자 맥클레런을 존경하는 다니엘 맥아더로 나온다. 웃긴 것은 실제의 맥아더는 스톤월 잭슨을 존경했다. 다만 이 작품의 시대는 남과 북이 갈려 있으니 이야기가 다르다. 1차 대전 당시 최연소 사단장으로 출연해서 그때까지 살아있는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경쟁자 겸 수제자로 나온다. 둘이 최초로 조우하는 부분은 명장면.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는 필요하다면 남부연합을 독가스로 선제공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남부연합 후방지역에 대한 기습상륙을 입안하는데... 뒤의 비중은 거의 공기 수준. 다만 등장인물의 언급으로 2차 대전 내내 리치먼드 북방에서 남부연합의 방어망에 걸려서 고전하는 것으로 나오긴 한다.
  • 대체역사물 스탈린의 편지에서는 소련이 대화상대로 맥아더를 점찍으면서 맥아더의 해임이 취소되고 미국과 소련의 비밀 거래를 통해 중국과 북한 전체에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한국전쟁이 동북아전쟁으로 확대되며, 한미연합군의 승리로 종전한다. 이로써 맥아더는 미국에서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게 된다.
  • 만화 보스의 두얼굴에서는 성기 컴플렉스를 가진 FBI 수사관 맥더아로 패러디된다. 일본의 맥아더에 대한 열폭 때문인지 온갖 찌질한 짓을 하다가 결국 미쳐서 본국에 소환당했다가 나중에 총맞고 죽는다.
  • Steele에서는 1942년 필리핀에서 탈출할 무렵에 강철의 대통령에 의해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숙청당한다. 애초에 강철의 대원수 동무가 미국의 대통령인 이상 대통령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적인 행동을 하는 맥아더가 멀쩡히 살아있는 게 더 이상하지...
  • 미일 합작 영화 <EMPEROR>에선 토미 리 존스가 분했다. 외모 면에서는 싱크로율이 아주 높지는 않으나 맥아더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나 오만에 가까운 행동거지를 매우 적절히 표현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는 <맥아더: 일본 침몰에 대한 불편한 해석>이란 괴이한 제목으로 개봉했다. 제목만 보면 맥아더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맥아더의 부관 정보장교였던 보너 펠러스(Bonner Fellers) 준장으로, 이 인물은 덴노의 전범 혐의 수사를 맡았던 일본에서의 행적 외에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행적 또한 논란의 대상이라 후세 전사학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가공의 사랑타령 때문에 역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혹평을 들었지만 맥아더 캐릭터만큼은 좋게 평가받았다.
  • 강해설교자로 유명한 미국의 목사 존 맥아더가 더글라스 맥아더의 먼 친척이다. 독선적인 성격은 비슷하다


  1. [1] 예비역 미국 육군 중장 출신
  2. [2] 원수는 정년 없이 종신 복무토록 규정되어 있어, 비록 은퇴하여 실제 근무는 안 하고 그냥 집에서 놀더라도 군에서 받은 의전 예우 그대로 받으면서 지내는게 가능하다. 원수 개인이 "전역"을 희망하면 예비역으로 신분전환되는데, 이를 이용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잠시 전역 신청 후 대통령 임기 만료 뒤 육군의 예비역 소집 명령을 받는 식으로 다시 육군 원수 자리를 유지했다.
  3. [3] 대처(Thatcher)도 비슷하게 잘못 옮겨진 경우로, '새처'가 옳은 표기다.
  4. [4]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한국으로 가면 일본군이 반란을 하지 않겠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종전 후 맥아더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수많은 일본인들이 울면서 환송식을 했다고 한다.일제 군부의 폭주로 피를 본건 일본 국민도 마찬가지거든 하지만 칼 맞아 죽은 쇼군들은 몇 명 있다. 예를 들어 아시카가 요시테루.
  5. [5] 체스터 니미츠 원수의 아들인 체스터 니미츠 주니어는 일찍이 아버지와 같은 전장에서 잠수함 함장으로 활약했으며, 1957년에 해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Texas Instruments에 입사하였다. 미 해군사관학교 엘머 B. 포터 교수의 저술로 1977년에 나온 니미츠 전기에 의하면, 니미츠 주니어는 부친의 후광과 그 자신이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써 충분히 4성 제독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변질된(?) 해군 장교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생겨 결국 전역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니미츠 원수는 아들이 해군을 떠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으나, 따뜻한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6. [6] 필리핀 원수 정모, 선글라스와 함께 맥아더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콘파이프지만 사실 그는 싸구려 콘파이프를 그다지 애용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브뤼에르 나무로 만든 고급 수제품을 애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검소한 이미지로 보이려고 콘파이프를 사용한 건 아니고 바빠서 고급 파이프를 챙기지 못하고 콘파이프를 물고 있을 때 사진을 찍혔는데 하필 이때의 사진이 대단히 유명해져서 콘파이프가 그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 맥아더 자신이 이런 이미지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 그 뒤로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대중 앞에 나설 때는 항상 콘파이프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조차 대부분 이런 식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던 시절에 그는 시대를 앞서 이런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7. [7] 사실 옥수숫대 파이프(흔히 콘콥이라 부른다) 같은 경우, 어지간한 파이프 흡연자들 사이에서도 별로 인기 없는 물건이다.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내구성(특히 내열성)이 별로라 오래 쓸 수가 없다. 2015년 한국 기준으로 보더라도 저렴한 것은 3만원대, 어지간한 것은 7~8만원대 정도인 브라이어(브뤼에르) 목재 파이프의 경우 관리만 적당히 해 주면 1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 비해, 콘콥 파이프는 가격은 1~2만 원대지만 잘 써도 1년 쓰기가 어렵다. 즉, 가격은 싸지만 오래 쓸 수 없어서 오히려 비경제적인 것. 따라서, 콘콥 파이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애용하는 파이프는 따로 있지만 파이프 관리가 힘든 상황에서 막 쓰는 파이프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굳이 돈 주고 파이프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다(옥수수 농사를 많이 짓는 미국 농촌에서는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이웃집 옥수숫대를 좀 얻어서 햇볕에 말려뒀다가 직접 속을 파내서 파이프로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즉, 맥아더의 아이콘인 콘콥 파이프의 경우 여기저기 전쟁터로 출장(...)다닐 일이 많은 맥아더가 예비용 파이프로 가지고 있던 것을 들고 있다가 사진이 찍혔고, 이후 대중적 이미지 조성을 위해(특히 대선 후보 맥아더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보수적인 농촌 주민들에게 콘콥 파이프는 몇 번씩 직접 만들어서 써 본 소박하고 익숙한 아이콘이다) 사용했다고 보는 정도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8. [8] 그나마 모자 쓰지 않고 찍은 대표적인 것은 히로히토와 찍은 사진이다.
  9. [9] 이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영화)에서 나왔다.
  10. [10] 하지만 이와 별개로 다른 미군 장교들은 한국군의 군기와 전투력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았다. 문제는 투입된 스미스 대대의 군기와 전투력도 개판 오분 전이었다는 사실.
  11. [11] 싱가포르 전투에서 패배하고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12. [12] 단 이는 의외로 흔한 사례로,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경우에도 한 번의 서명에 20여개에 달하는 만년필을 사용하기도 했다.
  13. [13] 여기서도 맥아더는 잠시 눈을 붙였다고 하고, 트루먼 회고록에서는 쿨쿨 잤다고 깠다.
  14. [14] 트루먼이 말년에 쓴 회고록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이 회고록은 맥아더를 사정없이 까는 걸로 꽤 유명하다. 트루먼이 맥아더를 철저하게 미워하게 된 이후의 증언이라 좀 가려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70대의 원수가 19살 소위처럼 군다. 운운하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온다.
  15. [15] 미국 측도 휴전을 굉장히 하고 싶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알 수 있는데 우선 회담장을 개성으로 정한 점, 전쟁 중이지만 개성만큼은 절대 점령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공산군 측에 말한 점 등이 대표적.
  16. [16] 하지만 연기 자체는 별로였는지 그레고리 팩은 이 영화로 골든 라즈베리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골든 라즈베리는 1980년부터 시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 아래의 '오! 인천'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7. [17] 1979년 TBC 전국 대학가요 경연대회 출신이며, 양평군의원 재직 경력도 있다.
  18. [18] 육군 원수 아이젠하워의 이름은 니미츠급 항공모함에 붙어있다. 아이젠하워는 위대한 장군이면서 위대한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19. [19] LA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노숙자들의 천국으로 보통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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