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강

1. 개요
2. 전적
2.1. Spirit MC
2.2. PRIDE
2.3. UFC
2.4. UFC 퇴출 이후
3. 파이팅 스타일
4. 기타

1. 개요

Denis Gang.

한국인 아버지프랑스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프랑스와 캐나다 이중국적이며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랐다. 1977년 9월 17일생. 한국명은 강대수. Spirit MC 시절의 별명인 '슈퍼 코리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타이틀

Spirit MC 2004 무제한급 그랑프리 우승

Spirit MC 2대 헤비급 챔피언

기타

PRIDE 2006 웰터급 그랑프리 준우승

체격

180cm / 84kg / 195cm

2. 전적

셔독

  • 무효: 데니스 홀먼, 로버트 빌레가스

UFC에서 활약하던 호이스 그레이시를 보며 브라질리안 주짓수에 매료된 그는 복싱레슬링을 수련하며 격투가의 꿈을 키워갔다. 21세의 나이에 MMA 무대에 뛰어들어 UWC, BRI, Pancrase, UCC 등의 중소단체를 전전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Spirit MC라는 MMA 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가의사를 밝혔다. Spirit MC 측은 데니스의 출전을 승낙함과 동시에 비행기표까지 부쳐주었다고 한다. 국내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운행비용 및 숙식비 등이 없어서 Spirit MC측에 우승을 하면 비용 일체를 모두 갚겠다고 협상을 하였고 실제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의 특이한 이력 등으로 인한 일반인의 관심이 증가하였기에 실제 그 비용을 Spirit MC 측에서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2.1. Spirit MC

2004년 9월 Spirit MC 2004 무제한급 그랑프리에 참가한 데니스는 하마다 준페이, 김재영, 양진호를 연달아 1라운드에 잡아내며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고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같은 해 12월 M-1에서도 1승을 챙기며 주가를 올린 데니스는 PRIDE로부터 오퍼를 받게 된다.

2005년 4월 PRIDE 무사도 6로 난생 처음 메이저 무대를 밟은 데니스는 오바 타카히로를 4분만에 암바로 제압하며 PRIDE 첫 승을 따냈다. 스탠딩과 그라운드 모든 면에서 타카히로를 압도하며 가볍게 따낸 관광승이었다. 이후 안드레이 세메노프와 마크 위어에게 3연승을 거둔 후, 2006년 4월 다시 돌아온 Spirit MC 8 대회에서 알버트 바스콘셀레스를 12초만에 펀치로 보내버렸다.

2.2. PRIDE

PRIDE 2006 웰터급 그랑프리 참가자격을 얻은 데니스 강은 2006년 6월 PRIDE 무사도 11 열린 1회전에서 브라질 슈트박스 아카데미의 강호인 무릴로 닌자를 맞게 된다. 미들급과 헤비급을 넘나들며 활약한 닌자를 상대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15초만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관자놀이에 적중시켰고 이어지는 펀치러쉬에 이은 파운딩으로 승리를 결정지었다.

2006년 8월 PRIDE 무사도 12에서는 무릴로 부스타만테를 이기고 올라온 아마르 슬로예프와 격돌한다. 데니스는 웰터급 최강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던 아마르를 스탠딩에서 거세게 몰아붙였고, 결국 1라운드 4분만에 리어네이키드초크를 완성시키며 승리,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2006년 11월 PRIDE 무사도 13에서 열린 4강전에서는 일본의 강호 고노 아키히로를 만나 접전 끝에 만장일치로 판정승을 따내 결승에 진출, 미사키 카즈오에게 승리를 거둔 파울로 필리오와 그랑프리 왕좌를 두고 경합하게 되었다. 다만 데니스 강은 고노와의 경기에서 파운딩 미스로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게 된다.[2]

하지만 필리오가 부상을 이유로 결승진출을 포기하면서, 암바로 완패를 당했던 미사키가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미사키는 시합 내내 소극적인 아웃파이팅으로 일관했고,[3] 데니스는 고노와의 4강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심판은 노골적으로 미사키에게 유리하도록 시합을 진행시켰다. 데니스가 4점 니킥을 신나게 먹이는 상황에서 스탠딩이 선언될 정도니 할 말 다한 셈. 결국 판정으로 넘어간 시합은 다운을 한차례 뺏고 레프리의 꼼수로 암바 캐치 사인을 한 차례 받아낸 미사키의 손을 들어주며 스플릿으로 미사키의 우승이 선언되었다. 경기 이후 국내 격투 관련 커뮤니티는 언어 그대로 폭발했다. 아울러 경기 이후 디시인사이드 격투 갤러리의 몇몇 유저들을 중심으로 경기 시간이 조작되었다는 루머가 퍼져나갔지만 XTM측의 경기 시간 시계 오류로 밝혀졌다.(위 기사의 덧글에도 나와있다.)

PRIDE가 도산한 후에는 K-1으로 둥지를 옮겨 2007년 10월에 K-1 HERO'S에서 추성훈과 대결한다. 한 수 아래의 상대로 평가받는 상대였고, 두 사람의 체격 역시 데니스 강이 추성훈보다 키가 4cm나 컸으며 추성훈 자신도 "내 승률은 높아봐야 30%"라고 할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라운드 4분경에 터진 펀치에 쓰러지며 충격의 KO패를 당한다.

2008년 4월 DREAM 미들급 그랑프리에서도 게가드 무사시를 상대로 유리하게 시합을 풀어나가다 트라이앵글초크로 역전패하며 부진에 빠지게 된다. 2008년 8월 김재영을 상대로 KO승을 거둬 Spirit MC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했고, 2008년 10월에는 베테랑 MMA 선수인 마빈 이스트먼을 초살 KO로 꺾었다.

2.3. UFC

이후 Spirit MC를 떠나 UFC행을 선언한다. 2009년 1월 UFC 93에서 앨런 벨처와 대결했지만 아깝게 길로틴에 걸려 패배하고 말았다. 데니스는 그래플링에서 벨처를 압도했으나 시종 포지셔닝 위주의 지루한 시합을 펼쳤고 관중들은 야유를 시작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기습적인 태클을 시도했는데 벌처가 이것을 놓치지 않고 길로틴으로 카운터를 먹이며 탭을 받아낸다.

2009년 4월에는 UFC 97에서는 사비에르 포우파 포캄을 맞아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을 선보이며 만장일치로 판정승을 거둔다. 포캄은 뛰어난 타격능력을 가진 스트라이커였으나 15분 내내 등으로 바닥을 걸레질한 끝에 무력하게 판정패하고 말았다. 이번 경기도 아메리칸 탑팀에서 준비하지 못했다.

2009년 11월 UFC 105에서의 상대는 영국의 인기스타인 마이클 비스핑이었다. 데니스는 초반 카운터 펀치로 다운을 시키고 이내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유리하게 경기를 끌어갔으나 중반 이후 뚜렷한 체력저하를 보였고 결국 펀치에 맞아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데니스강의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 시작 3분 이후 이미 체력이 바닥났고 본인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UFC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퇴출 이유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비자 문제로 UFC와 시끄러웠다는 루머가 있다.

2.4. UFC 퇴출 이후

2010년 6월에는 W-1에서 김대원에게 특기인 원투에 이은 암트라이앵글초크로 승리했다.[4] 그러나 김대원의 소속팀 원주 팀포스 관계자 말에 따르면 경기 당시 김대원은 이미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고 훈련기간도 짧았다고 한다. 2010년 7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생단체인 Impact FC에서 파울로 필리오를 맞아 접전을 벌였고, 다소 지루한 그래플링 위주의 경기 끝에 무승부가 선언되었다.

2011년 Road FC와 다경기 계약을 맺고 4월의 ROAD FC 2에 출전, 한국의 이은수를 맞아 레슬링으로 관광을 태우며 판정승을 거둔다. 다만 3라운드 원렉태클을 치다가 스프럴에 막힌 상태에서 이은수가 파운딩을 치자 후두부성임을 어필하며 스스로 경기를 중단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문에 야유를 듣기도 했다.[5] 기량면에서도 국내 전문가들이 극찬했던 타격과 그래플링을 볼 수는 없었는데, 시합을 앞두고 부상을 입었고 컨디션도 최악이었다고 한다.

2011년 5월 BFL 8에서 제시 테일러에게 초크를 잡혀 패배. 2011년 7월 24일 개최된 ROAD FC 3에서는 위승배에게 니킥을 허용하며 2라운드 TKO 패를 당했다. 데니스 강이 로블로를 맞았는데 레프리가 스탑 선언을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후 속행하여 위승배가 승리.

2011년 12월 ROAD FC 5에서 오야마 슌고에게 1라운드 TKO패를 당했다. 2012년 7월 ROAD FC 8에서는 손혜석을 상대로 KO승을 거두었다. 이후 계약상의 문제로 ROAD FC와 결별했다.

2012년 11월 레볼루션이라는 신생 단체와 계약하였으나 내부 문제로 첫 대회가 취소되면서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2012년 12월 31일 Dream 18에서 멜빈 만호프 를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는데, 킥복서인 멜빈을 상대로 타격전을 시도했으나 멜빈이 피해버렸고, 클린치 상태에서 갈비뼈에 니킥을 맞으며 1라운드 50초만에 KO패를 당했다.

최근 전적이 1승 4패로 4패중 3패가 KO패이다. 점점 전적이 안좋아지고 있다... 안습

2013년 3월 23일 레볼루션 1회 대회에서 양해준 선수와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다.설마 또 취소되는건 아니겠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경기 1주일 전 어깨 부상을 입으며 결장하게 되었다.

이후 활동이 없어서 잠정 은퇴한 상태. 잠깐 동생을 따라 한국에서 연예인 활동을 했으나 그만두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2019년 현재는 캐나다에 위치한 UFC 짐[6]에서 코치로 활동하는 중.

3. 파이팅 스타일

복싱브라질리안 주짓수[7], 레슬링에서 고른 실력을 갖춘 웰라운드형 파이터로 그래플링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타격과의 연계도 살아나는 타입. 특히 195cm라는 긴 리치에서 나오는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상당히 위력적이다. 동생인 줄리엔 강이 193cm의 키와 208cm의 리치를 가졌다는 걸 생각해 볼때 긴 리치는 이 집안의 특징인듯.

여러모로 컴플릿 파이터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고, 한때는 MMA 미들급의 톱 컨텐더로 평가받았다

약점으로는 내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며, 불안정한 멘탈과 그에 따른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2007년부터의 하락세는 사실상 PRIDE GP의 미사키 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상승세를 탈 때도 Spirit MC에서 거둔 연승이 PRIDE에서의 호성적으로 이어진 것인데, 기세를 타면 무섭지만 한번 삐끗하면 슬럼프가 오래 가는 듯.

또한 의외로 그래플링에서 헛점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포지셔닝 문제나 체력과 집중력 때문인지 주짓수 블랙벨트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쉽게 서브미션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4. 기타

캐나다 동쪽에 조그맣게 있는 프랑스 영토인 생피에르 미클롱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일화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와 캐나다 이중국적자이다.

00년대 한국 종합격투기의 인기를 끌어올린 견인차 노릇을 했다. 최홍만이 K-1에 진출하여 프로격투기를 한국에 소개했다면 그것을 발전시키고 가꿔나간 것은 김미파이브, Spirit MC 등의 토종 MMA 단체들이었고, 이 흥행의 선봉에는 데니스 강이 서 있었다. 2008년 UFC로의 진출을 결정했을 때는 Spirit MC 측에서도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미친듯한 판정수면제 퍼레이드로 웰터급 GP 폐지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상당히 암울했던 2006년 PRIDE 웰터급 GP에서 홀로 매우 화끈한 경기를 뽑아내며 사실상 웰터 GP의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활약상을 펼쳐 보였다. 심지어 반한 성향이 강한 2ch에서조차 그를 칭찬했을 정도. 안타깝게도 우승을 미사키 카즈오에게 내주며 스포라이트는 미사키가 가져갔고 최강자 이미지는 파울로 필리오가 가져가서 사실상 페이크 주인공 취급을 받긴 했지만댄 헨더슨 안습 데니스 강이 웰터급 GP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정식 국적은 캐나다이지만 흥행을 위해 PRIDE 시절 한국 대표로 출전한 적도 있으며 특히 2006 년 웰터급 GP 결승전에서 애국가를 들려주며 많은 격투팬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근데 일본놈한테 편파로 졌다 젠장 한국어는 거의 하지 못하고 당연히 군대도 안갔다왔다.[8] 그래도 한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긴 한 듯. 애초에 메이저 무대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과 Spirit MC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PRIDE에서는 태극기를 두르는 세리머니를 하다가 주최측으로부터 제지를 받고 그만둔 적도 있다. 그 후에는 소속팀인 아메리칸 탑 팀의 기를 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막내동생 줄리엔 강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바 있다.

운이 없기로도 유명한데, 일단 한창 잘나가던 PRIDE 2005 GP 때는 부상으로 참가를 못했다. 2006 PRIDE 그랑프리 결승을 앞두고 약혼녀가 사망하는 일을 겪었고, 여기에 어깨 부상과 편파판정이 크리를 터뜨리며 근소한 차이로 판정패를 하고 말았다.

UFC에 진출한 이후에는 비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자신의 훈련캠프인 아메리칸 탑팀에서 훈련을 하지 못하고 캐나다의 중소 체육관을 전전했다. GSP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컨디션과 리듬 조절에 실패한 끝에 데뷔전에서 패했다고 한다. 비스핑전에서는 거의 1년만에 ATT로 돌아왔으나 오버 트레이닝으로 컨디션을 망쳤다고 UFC 퇴출 역시 비자문제 탓이 컸다.[9]

이밖에도 W-1에서는 메인 이벤트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고질적인 디스크가 재발하여 기회를 놓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캐나다가 MMA를 받아들이는 것이 늦었기 때문에 각지를 떠돌며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는데, 편파판정에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벌처전의 태클은 절대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UFC 웰터급 챔피언인 조르주 생 피에르와 절친이라고 한다. 서로와는 절대로 싸울 수 없다고 한다. 브라질리안 탑 팀의 파울로 필리오와도 친분이 있는데 Impact FC에서 싸웠을 때 그래플링 위주의 시합을 벌인 것은 친분이 있는 양 선수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혹도 있다.

브루스 버퍼는 인트로듀스를 할 때 '데니~~스 카아아아아앙'하는 식으로 '강' 부분을 유독 강조해서 말하는데 임팩트가 엄청나다.

로드FC와 계약이 틀어졌는데 이유는 대전료 인상,약자와의 대결 요구로 인한 갈등.*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과 입식으로 맞붙을 당시, 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태클을 걸어 넘어트리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1. [1] 어처구니 없게도 난타전도 아니고 단 1대 맞고 KO패했다.
  2. [2] 게다가 결승전을 앞두고 약혼녀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3. [3] PRIDE는 어그레시브한 파이터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하는 룰이 있다.
  4. [4] 김대원은 ADCC의 마왕 마르셀로 가르시아를 잡은 선수다. 타고난 힘과 센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5. [5] 1라운드에서도 후두부 가격이 나와서 이은수에게 옐로카드가 주어졌다. 데니스 강은 레프리의 판정에 불복했고 이은수도 반칙을 범했기 때문에 경기 후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어쨌든 메인이벤터로서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이 대세.
  6. [6] UFC Gym. UFC에서 운영하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이다. 은퇴 선수들이나 유망주들이 주로 코치로 활동하곤 한다.
  7. [7] 마커스 소아레스로부터 2004년경에 블랙벨트를 수여받았다. 현재 주짓수 블랙벨트 3단.
  8. [8] 한국국적도 없으며, 애초에 딱봐도 혼혈인 티가 나므로 한국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계속 자랐다 하더라도 면제긴 하다.
    이른바 제 2국민역.
  9. [9] 다만 많은 선수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경쟁하고 있고 컨디션 조절 역시 선수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큰 만큼 데니스 강의 부진을 전적으로 외부요인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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